상처
-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 제작년도
- 1976
- 출연
- 프란시첵 피에츠카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복합문화공간의 진화 '에무시네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시작된다. 종로구 중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3호선 경복궁역과 873m, 5호선 광화문역과 915m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이 높다.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광장이 위치하고 서쪽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 경희궁, 숭정전이 있다. 남쪽으로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과 고종의 길, 국립정동극장이 있으며 북쪽에는 동인시장과 운경고택, 배화여자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가장 눈에 띄는 지리적 특성은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도 자연적 환경과 가깝다는 점이다. 에무시네마는 건물 뒤편으로 펼쳐지는 경희궁 숲과 맞닿아 있어 복잡한 번화가를 잊게 하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을 선사한다. 2010년 사계절출판사 건물의 지하 1층을 확보한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전시와 연극 등 실험적인 무대를 꾸리며 관람객을 위한 예술·공연의 장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공간은 소규모 공연장과 갤러리로만 가능했으나, 2014년 건물 전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1층에 아름다운 숲을 등진 '카페 에무'를 오픈하고, 이듬해 2015년 지하 1층을 공연장 '팡타개라지'로 개조했다. 공연장 한편에 바(bar)를 만들어 술과 음료까지 즐길 수 있게 된 팡타개라지는 관객이 무대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건물 2층에 에무시네마 1관을 개관하고 3년 뒤인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개관했다. 복합문화공간에서 에무시네마의 탄생이 가장 늦었지만 현재 많은 관객을 활발하게 이끌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하 1층 공연장 팡타개라지의 공연 무대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지하 2층부터 4층 옥상까지 차례대로 스튜디오 에무(B2), 공연장 팡타개라지(B1), 카페 에무(1F), 에무시네마 1관(2F), 에무시네마 2관(3F), 가르강 루프탑(4F)이 위치해있다. 에무시네마는 한 건물에 여러 문화 공간이 자리한 특성을 활용하여 위아래로 오갈 수 있는 입체적인 방식의 영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품을 보고 나서 카페에서 소모임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또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다른 상영관으로 향하는 관객 주도형 형태를 고안한 것이다. 수직적 이동이 아닌, 수평형 이동의 문화 행사도 있다. 코로나19 중 선보인 '격조콘'은 사람들이 같은 주파수를 맞춘 헤드폰을 쓰고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하도록 만든, 독특한 형태의 행사다. 관객이 건물 뒤편의 경희궁 숲길까지 따라가도록 유도하면서 에무시네마가 가진 공간적 여건을 십분 활용한 선례로 자리 잡았다. 에무시네마 1관 내부 1020세대를 위한 문화공간 한 건물에 여러 문화공간이 있는 덕에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영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시네마 브레이크'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상영회로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제공하며 30분짜리 짤막한 단편영화를 선보였고, '살롱 데 뷰'에서는 전문가와 영화를 관람하고 1층 카페 에무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을 진행했다. 또 건물 옥상을 활용한 '별빛 영화제'도 관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상영관의 폐쇄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는 밤의 포근함으로 대체되고 딱딱한 극장 의자는 푹신한 캠핑용 의자로 바뀌었다. 맥주, 커피, 핫도그 등 스낵 옵션을 제공하며 영화를 누워서 관람할 수 있는 빈백도 제공한다. 야외 상영의 아늑한 분위기는 실내 생활이 장기화 된 코로나19 이후 더 각광받았고, 상영마다 1분 내 매진 행렬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무시네마는 세 시그니처 행사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며 복합문화공간 에무만의 브랜딩 메이킹을 성공한다. 에무시네마 1관 앞 통로와 입구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이 1020세대인 사실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예술영화는 난해하고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에무시네마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이제 막 예술영화·다양성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들이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운영 철학대로 누구나 예술을 쉽게 즐기게 독려한 결과다. 다채로운 행사가 관객을 복합문화공간 에무로 진입시켰다면, 흥미로운 기획전은 공간에 대한 관심을 관람의 실천으로 연결시켰다.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실제 관객층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여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5월에는 5월의 날씨를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모아 <에릭 로메르 특별전>을 열었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프랑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언급된 <비브르 사 비>를 놓치지 않고 특별상영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에무시네마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기획전을 열어 작은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낯선 작품을 1020세대 눈높이에 맞춰 콘셉트를 부여하거나 관객의 수요와 반응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을 구성한 결과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에무가 이토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원천은 복합문화공간에 반영한 브랜드 철학 때문이다.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영향을 받아 엘리트주의에 저항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오직 교육받은 자만이 예술을 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모두에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짚어주었다. 건물 외부 통로 "숲속의 오솔길에서 에라스무스를 만나다"라고 적혀 있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복합문화공간 에무 2. 설립일: 2010년 11월 13일 3. 대표자: 김상민 4.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5. 입장료: 일반 9,000원, 청소년 8,000원, 경로, 장애인, 조조할인 6,000원 6. 공간 구성 1) 상영관 2개관, 2층·3층 2) 카페 에무: 1층 커피 및 음료 판매, 도서 판매, 20석 3) 팡타개라지: 지하 1층, 술과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 4) 스튜디오 에무: 지하 2층, 영화영상 콘텐츠 기획 및 미학 연구를 위한 공유 오피스 5) 가르강 루프탑: 옥상 가르강 루프탑. 단체 행사나 야외 상영회 진행 7. 극장 규모 및 구성 - 1관(2층): 좌석수 51석, 2015년 5월 개관 - 2관(3층): 좌석수 52석, 2018년 7월 개관 인터뷰: 김상민 대표(복합문화공간 에무 대표) 김상민 대표 이자연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팡타개라지, 카페 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다양한 공간 구성이 특징입니다. 지금 에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상민 _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처음 설립됐던 2010년에는 사계절출판사가 자리해 있었어요. 지하 1층만 복합문화공간 에무라고 일컬으며 갤러리, 연극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진행했었죠. 2014년 무렵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층별로 하나씩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비유하자면 강이 흘러 퇴적 현상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강줄기가 형성되잖아요. 그것처럼 순간순간 그 시기에 맞는 일을 해왔더니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1층에 '카페 에무'를 만들고 지하 1층에 '팡타개라지' 공연장을 설치하고, 지하 2층에 '갤러리 에무'를 두었어요. 영화관은 사실 뒤늦게 완성됐죠. 리노베이션 이후 2015년에 2층에 처음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리고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만들었어요. 영화관이 첫 개관했던 2016년 5월 5일. 저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이 생긴 덕에 재미있는 다양한 기획을 해볼 수도 있었어요. 오렌지필름과 단편영화제를 열거나 <프리즘오브> 잡지와 함께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또 직장인을 위해 점심시간에 '시네마 브레이크'라는 상영회를 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emu)라는 이름은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영화를 비롯한 인문학적 활동을 실행하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김상민 _맞습니다. 처음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만들어질 때 에라스뮈스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운영하려고 했어요. 에라스뮈스는 네덜란드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로 당시 <우신예찬>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현재까지도 교육 후원재단으로서 유럽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에라스뮈스는 당시 권력자 간의 비리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했는데, 이러한 맥락의 문제가 현대사회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잖아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로 에라스뮈스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했어요. 양질의 교육을 받고 학습한 자만이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맥락이에요. 이자연 _영화관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어졌어요. 가장 늦더라도 에무시네마를 꼭 개관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김상민 _제가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터라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와중에 이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찾아오게 되었죠. 2014년부터 자연스럽게 팀장직을 맡아 일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 대표로서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사적 맥락에서 영화는 제 삶의 중심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실험적인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요. 1층 카페 내부에서 바라본 테라스 이자연 _대표님은 무대 디자이너로서 꿈을 키우기 위해 공연예술의 메카인 뉴욕으로 떠난 이력이 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에무시네마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김상민 _만약 사업만 했다면 실무적인 디테일은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실무를 함께 작업해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겠죠. 무대 디자인은 커다란 목표를 산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과 조율이 필요해요. 기본적인 기틀을 함께 잡아나가는 과정이 에무시네마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공동체에서 내가 어떤 역할로 참여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또 명확한 무대 콘셉트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작은 결정을 이뤄나가야 해요. 논리적 판단이 무척 중요한 순간들이었죠. 그때의 시간들이 극장을 운영하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무척 유용했어요. 이자연 _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대표직을 맡았어요. 팀장으로 시작해 대표직에 오르기까지 책임감이 막중했을 텐데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김상민 _회사 운영이란 회사 전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업의 디테일을 잡아가야 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지만, 실무자로서 느꼈던 결정권의 제약이 아쉬워서 직접 키를 쥐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누군가 방향을 제시하면 맹목적으로 따르고 실행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일을 선도하고 결과를 책임지고 싶었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그로부터 배우고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안 해본 게 아직 많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쉽게 도전할 수 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 자리는 종로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어요. 언덕을 올라야 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지리적 환경이 에무시네마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도심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접근하기에 아주 용이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창조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제한된 구도 안에서 나타나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거리와 구조를 뛰어넘어 관객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니까 그런 점에서 에무만의 크리에이티브한 행사를 고안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이자연 _접근이 어려웠던 지점이 오히려 다양한 행사의 발판이 되었던 거네요. 그렇다면 어떤 행사를 진행했었나요? 김상민 _저희가 숲을 등지고 있거든요. 이 아름다운 숲을 강점화할 수 있었죠. 예를 들어 코로나19 중 '격조콘'이라는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거리를 두고 무선 헤드폰을 쓴 사람들이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면서 주파수에 맞춰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예요. 이런 활동도 경의궁 숲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또 경희궁 문화길 '두둥-탁! 페스티벌'은 경희궁길에 위치한 문화공간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진행한 행사였어요. 경희궁이 사실 사대문 안에서 파손이 가장 심한 궁이거든요. 우리가 복원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그 이야기와 의미를 살리는 활동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비롯한 다섯 단체가 모여 페스티벌을 구성했습니다. 또 '판타지아 에무'라고 아티스트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이나 짧은 특별 공연을 들어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나요? 김상민 _먼저 시네마팀은 양인모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시네마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사원으로 구성돼 있어요. 에무시네마의 개봉작이나 기획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진행합니다. 거기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매니저와 사원이 함께 관리하고요. 한 단계 나아가 영업과 홍보까지도 다루고 있어요. 공연장 운영을 담당하는 공연팀이 있고, '카페 에무'를 관리하는 카페운영팀이 있습니다. 에무시네마 사무실 내부 이자연 _에무시네마에는 총 2개의 관이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에 비해 적은 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에무시네마만의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김상민 _실험적인 영화나 개봉관을 찾기 어려운 작품을 위한 기획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실 큰 극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실험적 기획은 위험하게 여기거든요. 하지만 에무시네마같이 작은 규모의 영화관은 그런 계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이익을 따지는 기준이 그보다 낮기 때문에 도전의 기회가 더 많습니다. 기획 방향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만의 데이터를 쉽게 쌓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영화 산업에 있어서 작은 동네 영화관이 더 많아지고 오래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 구조 자체가 다양성을 독려할 수 있는 거죠. 또 영화관마다 개성과 색깔이 뚜렷해야 관객의 취향이 두루두루 분포될 수 있을 거라 믿고요. 이자연 _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겪었는데요. 에무시네마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나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2019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훌륭한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면서 최정점을 맞이한 느낌이었거든요. 영화 산업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활발했죠. 특히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어요. 그때 에무시네마는 외국인을 위한 <기생충> 영어 자막 상영까지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관객으로 붐볐어요.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도 했고요. 그 이후에 코로나19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죠. 2020년 2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한 열흘 정도 쉬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관객 수가 한 자릿수인 날도 많아졌고요. 상당히 무기력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때 몇 번 진행한 공연장 대관 사업이 그나마 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적자로 힘들어지면 공연장 대관 요청이 들어오고, 또 힘들어지면 정부 지원을 받고. 이런 식으로 근근이 이어져왔어요. 그러다가 '별빛 영화제'가 확 성장했죠. 다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억눌려 있어서 그런지 야외 상영을 적극적으로 찾아줬어요. 에무시네마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별빛영화제가 열리는 옥상의 야외 상영장 이자연 _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했다고요. 김상민 _전 지역의 작은 예술영화관 사업인들이 모두 모여 있는 단체예요. 원래 그전에는 교류가 그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았어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매달 모여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게 됐어요. 서로 본받아야 할 점도 찾고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로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의지를 많이 했죠. 영화관들이 각자도생하던 시기를 넘어서 교감하고 협업하는 길로 나아가면서 어려웠던 코로나19를 서로 의지하며 버틸 수 있었어요. 인터뷰: 양인모 프로그래머(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 양인모 프로그래머 이자연 _에무시네마를 소개해주세요. 양인모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요. 고요한 언덕길을 올라오다 보면 금세 발견할 수 있죠. 뒤편으로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건물 자체가 영화적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살짝 벗어나 보이거든요. 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이 공간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이곳만의 큰 장점이에요. 에무시네마에서는 주로 예술영화와 한국 독립영화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프로그래머로서 상영작을 선정할 때 어떤 지점을 가장 눈여겨보나요? 양인모 _일단 개봉을 앞둔 신작 중 영화사적 맥락을 가지며 동시대성이 있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어요. 관객의 감각을 예리하게 하고 몸은 영화관에 있지만 어딘가 멀리 갈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거든요. 또 관객들의 성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을 살피고 경향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해요. 근래에는 관객 연령층이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아요. 세대적 취향을 프로그래밍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옛날 영화 중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은 작품을 골라 기획전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영화라도 누군가에겐 첫 영화죠. 새로운 관객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해요. 보통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관객들은 이제 막 영화에 입문하고 예술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이라 눈높이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가장 기억에 남는 에무시네마 기획전이 있다면요? 양인모 _1930년대에 제작된 프랑스영화를 모아 상영한 기획전이 있었어요. 그 당시가 영화사적으로 ‘시적 리얼리즘’으로 구분하던 시기였거든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막 이동할 즈음이라 영화가 말을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고요. 영화사에 이런 중대한 변화를 잘 보여줄 줄리앙 뒤비비에, 장 비고, 장 르누아르 감독까지 함께 담아 보여줬어요. 장 비고의 <라탈랑트>는 언제 봐도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제가 에무시네마에 와서 처음으로 진행한 기획전이었어요.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던 저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품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대의 영화다 보니 실제로 관객들로부터 새로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뿌듯했습니다. 이자연 _요새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경험하고 체험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무시네마 프로그램에 새롭게 적용하거나 전략을 세운 부분이 있나요? 양인모 _일단 극장에서의 경험 자체가 공간 경험이고 오프라인이잖아요. 한자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그 자체가 물리적인 경험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희소해지고 귀중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지점을 강조할수록 영화관의 지속성이 더 길어지지 않나 생각해요. 저희도 OTT 플랫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기도 해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걸 극장에서 상영하면 관객들이 찾아오거든요. 그 풍경을 보면서 거기에 바로 극장의 본질적인 희망이 있다고 봐요. OTT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경험들이 있는 거죠. 무엇보다 요즘엔 관객 사이에 적극적인 관람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N차 관람 인증이나 영화의 몇 장면을 SNS상에서 새로운 밈으로 만들어 재가공해 재미를 북돋는다든지. 그러한 관객 주도적인 현상을 공간에 접목시키도록 하고 싶어요. 에무시네마 매표공간 이자연 _코로나19 이후 극장 풍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 변화를 언제 가장 크게 체감하시나요? 또 어떤 대안책을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양인모 _저는 2020년에 입사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기본값인 상태로 일을 시작했어요. 오히려 그 전의 극장 프로그래밍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만의 희망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위기를 느끼고 관객이 드물게 오는 상황을 경험했지만 조금씩 회복하면서 긍정적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초반엔 영화인을 초빙해서 GV 등 다양한 행사를 시도했고요. 또 루프탑에서 상영하는 별빛 영화제의 경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야외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진행했죠. 빠른 매진을 거듭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이 자리를 통해 관객들과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교감을 하다 보니 좋은 관계성이 생겨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항상 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객들과 더 직접적인 연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자연 _팡타개라지, 카페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건물 안에서 예술 활동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게 구성돼 있어요. 이러한 환경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양인모 _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적이면서도 공동의 경험인데요. 그 경험을 확장하려면 아무래도 영화관의 공간적 요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영화의 감상은 극장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서 정리되기도 하고요. 또한 관객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동시에 같은 행위를 이루는 자리이기 때문에 에무시네마가 그 경험 그대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영화만 보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어떤 새로운 일이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극장에서 같은 시간에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만남의 우연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카페 앞 통로에 위치한 건물 층별 안내판 이자연 _공식 개관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에무시네마를 생명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양인모 _역시나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창작가가 있고 관객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죠. 제가 관객으로서 에무시네마를 처음 방문한 게 2016년이었어요. 이제 막 개관했을 때였죠. 어떤 GV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GV가 끝나니 아래 카페에서 회식 비슷한 자리가 마련되더라고요. 스무 명 정도의 관객과 감독이 함께 영화를 보고 회식을 한 거죠. 토론하듯 영화 얘기도 계속 나누고요. 이런 상황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신기하잖아요. 거기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게 에무시네마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지금 여기서 뭔가가 일어났어.’ 그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겠죠. 그게 없어지면 생명력이 희미해지는 것 같을 테고요. 10대 후반의 관객들이 세대적 흐름을 이어나갈 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자연 _청소년 관객을 위한 자리를 모색하고 계신 걸까요? 양인모 _그렇죠. 영화라는 게 영화의 경험과 극장의 경험이 뒤섞인 곳이잖아요. 청소년들이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을 에무시네마에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일상적 공간 하나만 생겨도 그 사람의 생에 아주 긍정적이고 큰 변화가 생겨나니까요. 게다가 10대 후반 때의 경험은 대부분 성인 때보다 더 크게 다가오잖아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운 경험이 그들의 삶에 일어나도록 돕고 싶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는 좋은 메시지를 담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는데요. 숫자와 성적이 중요한 세상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계속 보이는 게 왜 중요한가요? 양인모 _박석영 감독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싶어요. 사람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멋지고 세련된 사람도 있고 까칠하고 지루한 사람도 있어요. 영화도 사람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관객 각자에게 한 편의 영화가 모두 다르게 다가올 거라 믿어요. 그러니 그 다양성을 최대한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작지만 다채로운 작품을 더 많이, 더 자주 보여주고 환대할 수 있는 공간인 극장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야겠죠. 에무시네마 2관 내부 이자연 _앞으로 에무시네마에서 준비 중인 사업이 있다면요? 양인모 _공간의 경험을 강조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에요. 영화 감상 모임이라든지 영화 기반의 독서 모임이라든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커뮤니티 비즈니스 쪽일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고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도록 신경 쓰려 합니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비즈니스 활동이나 창작 활동을 유도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창작 활동이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에무시네마에 돌아올 수 있잖아요. 그런 선순환을 만들 수 있길 바라는 게 에무의 꿈입니다. 이자연 _2032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면 2022년은 에무시네마의 프로그래머로서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요? 양인모 _일단 올해는 특별 상영전을 많이 했어요. 폴 토머스 앤더슨, 에릭 로메르, 짐 자무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등 익숙하지만 늘 크게 다가오는 이름들과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또한 별빛 영화제와 한국영화 기획전을 통해 <접속>,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예전 한국영화를 만나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굿즈처럼 특별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걸 받아보시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특유의 밝은 표정이 있어요. 올해는 그 관객들의 표정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얼굴을 더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32년까지 쭉 이어가고 싶습니다. 필자: 이자연(씨네21) 사진촬영: 오계옥(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9월 21일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나의 백한 번째 영화가 아니라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지난 백 편의 작품에서 도망쳐 새로운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임권택 은 여러 자리에서 말했다. 두 번째 데뷔작. 다시 시작한다는 말. 영화사에는 두 번째 데뷔작의 역사가 있다. 이를테면 1950년, 로베르 브레송의 < 시골사제의 일기 >. 1978년, 고다르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 1979년,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 카메라 광 >. 1996년, 후 샤오시엔의 < 남국재견 >. 이들은 물론 각자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 영화들을 자신의 두 번째 데뷔작이라고 불렀다.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보면서 그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번째 시작한다는 말. 이제까지의 영화를 제로라고 선언하는 것. 왜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혹은 생겨난 것일까. 말하자면 결단. 그런데 어떤 결단? 서로 다른 판본의 대답. 그는 무엇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당신은 이 두 가지 질문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 중단되어야만 했다. 두 개의 무엇. 나는 < 달빛 길어 올리기 >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임권택은 무엇이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영화 안에서 중단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중단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한 말. 그래서 백 편의 영화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표현. 도망치다. 왜 버린다고 말하지 않고 도망친다고 말한 것일까. 임권택은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백 편의 영화라는 병풍. 나는 거슬러 올라가면서 셈하기 시작했다. (백 번째 영화) < 천년학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아흔아홉 번째 영화) < 하류인생 >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나는 백 편의 영화 안에서 한 편씩, 한 편씩 차례로 그 안에서 도망쳐야 한다, 는 말을 생각해볼 것이다.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면 두 번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뜻이다. n + 1. 언제나 이미 시작된 시작. 이때 도망치면서 (두 번째로 만든) 첫 번째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말하자면 n - 1 이라고 불러볼 수는 없는 것일까. 거기서 멈추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무엇을 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에 대해서 모두들 무엇을 새로 더했는지를 셈하였다. 나는 반대로 그가 일백 편의 영화로부터 도망친 다음, 혹은 도망치기 위해서 시도한 뺄셈을 생각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때 뺄셈을 시도하게 되면 우리는 다소 난처한 논제와 만나게 된다. 거기서 빼야 하는 것은 이제까지 우리들이 임권택 이라고 불러온 영화적인 방법들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것만을 우리는 뺄셈에서 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세계의 일부를 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계는 언제나 영화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셈을 시도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반(反) 임권택적인 영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제까지 임권택이 만든 일백편의 영화와 싸우(기 시작하)는 (첫 번째) 영화이다. 혹은 외면하려는 영화이다. 이때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임권택 영화냐고 근본적으로 반문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달빛 길어 올리기>가 지나칠 정도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어서 두렵게 느껴진다. 그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은 영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은 임권택 영화 안의 내재적인 기호들 사이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설명되어야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임권택이라는 일백 칸의 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집. 그 집을 등 뒤로 하고 다시 그 집의 주인이 ‘도망치듯이’ 떠나기로 결심을 했을 때, 누구보다 그 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가 거기서 나가려고 할 때, 그 집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권택 그 자신일 것이다. 두 명의 임권택. 아니, 백 명의 임권택(들)과 한 명의 임권택.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임권택(들)과 거기서 도망치고 있는 임권택. 그런데 그 집에서 어느 문을 열어야 거기서 나갈 수 있을까. 그 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무거운 빗장들.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정말 문일까. 그런 다음 마침내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을 열고 문턱을 넘자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상한 시작.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첫 장면은 “이 영화는 전주시에서 추진 중인 조선왕조실록 복본화(複本化)사업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라는 자막이다. 두 가지 사실. 첫째, 이 사업은 전주시와 한국고전문화 연구원이 2008년에 시작해서 (영화가 이미 2011년 3월 17일 개봉을 끝난 다음인) 2012년 7월에 완료하였다. 이는 태종에서 명종까지 13대에 이르는 조선 전기 왕조실록을 제작 당시의 원본에 따라 재현한 것으로 806권 614책 5만 5130쪽에 이르는 작업이었다. 이를 위해 15억 원의 국고를 지원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서 전주를 비롯하여 전국 24개 업체에서 공급된 전통 한지가 3만 8,000장이었다. (조선일보 2012년 8월 29일자 김창곤 기자)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이 사업의 진행 과정 중에 기획된 다음 전주영화제가 제작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안의 대사에 따르면) 2008년 7월 15일이다. 그러니까 전주시가 막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시작한 다음 영화는 그 완성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본화 사업의 성공 여부를 이 영화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종종 이 영화에 비판적인 글들은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전주시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정책홍보 영화라고 비평을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그 사업에 별 관심이 없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함께 시작한 다음 그냥 중간에 끝나는 영화이다. 둘째, 첫 자막이 끝난 다음 첫 장면은 전주시청 강당 회의실에서 전주 시장이 새로운 업무를 맡은 직원들에게 인사발령 임용장을 나눠주는 데서 시작한다. 청소과에서 근무하던 7급 공무원 한필용 주사( 박중훈 )는 이날 한 스타일 한지과로 새로 배속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내내 한필용을 따라 진행된다. 아니, 한필용이 등장하지 않는 씬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카메라로서의 한필용. 이야기의 동선으로서의 한필용. 이때 처음에는 이 첫 씬을 무심코 보았지만 이때 임용장을 나눠주기 위해 화면에 등장한 사람은 송하진 전주시장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권택은 종종 (주연이 아닌) 어떤 인물의 경우 전문적인 연기자를 사용하는 대신 거기에 걸 맞는 이들을 현장에 초대하여 이들에게 그 배역을 맡기곤 하였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공산군 장교들을 연기하는 (그 영화 촬영 당시의) 영화담당 기자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 자신이자 동시에 그 자신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자신이 그를 연기한다. 이때 두 말의 차이를 생각해주기 바란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영화에 출연해서 그 자신이 항상 해 오는 업무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 행동은 그에게 익숙한 일의 일부이며, 그는 이 장면을 위해서 별다른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송하진 전주시장 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자신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는 세 종류의 연기자가 있다. 하나는 박중훈 , 강수연 , 예지원 , 안병경 처럼 전문적인 연기자들이 영화 속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전문적인 연기자들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 역으로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 한지 수집가로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한지제작소 사장으로 민병록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전주시청 국장으로 장제국 동서대 총장처럼 임권택 의 지인들, 혹은 영화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이들이 자신과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한다. 그들이 아마추어의 연기자들이긴 하지만 종종 자신의 영화에서 그렇게 연기자를 선택하는 건 임권택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만일 척 보고 믿을만한 얼굴이나 살아온 모양새가 나지만 연기가 안 되는 사람과 연기는 잘 하지만 도무지 그 일을 했을 것 같지 않은 겉모습을 지닌 연기자 둘 중 하나를 써야 한다면 그 역할이 단역이면 단연 전자지요. 왜냐하면 모양새가 안 나면 그걸 설득시키는데 한참 걸리는 거예요. 그게 영화인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세 번째 경우이다. 우선 기술적인 설명. 이 영화는 전문적인 연기자 박중훈에서 시작하지 않고 전주시장 송하진이 그날의 하루 일과가 진행 중인 생활의 시간 안에서 시작한다. 전주시장 송하진에게 그 일은 항상 하는 일의 일부이고, 그 장소는 그가 생활하는 업무 공간의 일부이다. 부디 아무 것도 더 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아 주세요. 그때 박중훈은 그 장소에 들어와서 그 일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때 그 일과의 매카니즘 안에서 박중훈은 송하진과 연기해야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박중훈의 쇼트는 송하진의 쇼트와 서로 마주 붙어야 한다. 자크 오몽의 지적. 위대한 연기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만드는 순간은 나무 옆에 서 있을 때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의 일부인 나무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나무와 경쟁해야하기 때문, 이라고 썼다. 이 첫 씬에서 임권택은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를 분리해서 찍은 다음 그 둘을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둘이 하나의 프레임에 있는 경우는 없다. 프레임 안에서의 공존과 쇼트의 분리라는 문제. 이 방법은 < 달빛 길어 올리기 >에서 일관되게 몇 차례이고 상대를 바꿔가면서 반복되고 있다. 이때 나는 분리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대신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박중훈의 쇼트(라고 여기서 부른 연기자의 쇼트)를 찍어본 연출자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를 찍어 온 연출자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손쉽게 다큐멘터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송하진이라는 실재. 박중훈이라는 드라마. 이때 이 분리에는 송하진이라는 실재 안으로 박중훈이라는 드라마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견딜 수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송하진이라는 실재의 리얼리티를 포기할 수 없다는 어떤 구체적인 충실성에 대한 존중과도 같은 태도를 보게 된다. 이 장소에서 실재와 드라마 사이의 종합을 포기할지언정 그 둘의 어느 쪽도 다른 한쪽에 양보하거나 봉사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한 어떤 위장도 없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실재와 드라마, 현실의 일부와 허구의 이야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야기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냥 간단하게 세계와 영화 그 둘 사이의 서로가 서로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둘 사이의 어느 쪽도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상처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했다. 현실이, 실재가, 세계가 상처 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연기가, 영화가 상처 난다는 말은 두 개의 연결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할 수 없는 미학적 흔적의 고통이 뒤따른다는 뜻이다. 이때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영화의 어떤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일까. 종종 비평은 이 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때로 이 둘 사이를 오갈 때 무언가를 위반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그것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약속이 있다. 물론 이때 여기서 그것, 이라고 불리는 수수께끼는 항상 미학적 전쟁터가 되었다. 대부분 우리들은 현실에서 시작해서 영화가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왔다. 종종 이 과정에서 한쪽은 다른 한 쪽을 위해 봉사하거나 혹은 일부를 잘라 내거나 때로는 변형을 가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쪽은 다른 한쪽에게 어떤 불순물이 되어서 과도한 잉여의 불연속성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많은 경우 그를 둘러싼 세계는 이야기의 풍경이었다. 종종 풍경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혹은 미장센의 일부로 그 자리를 차지한 다음 슬그머니 이야기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그런 다음 인물을 설명하거나 혹은 칭칭 동여매듯이 그의 운명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다음, 의 연쇄적 사용법. 그런 다음은 여기서 중단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현실에서 시작해서 드라마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쇼트가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마주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서로 마주하는 순간. 그 둘을 움직이는 서로 전혀 다른 운동의 기록.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주인공이 작동하는 방식의 이야기와 인물이 작동하는 방식의 세계 사이를 분리시킨 다음 그 둘을 마주보게 만들고 있다. 이때 이 착상의 잔상들이 이제 서로의 쇼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을 건드리느냐는 질문이 되어 그 안에서 스스로 창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나의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뒤이어 이어지는 씬은 갑자기 이 영화를 원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자리에로 되돌려 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씬. 늦은 밤. 귀가하는 한필용.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을 따라서 걸어오면 그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집이 기다리고 있다. 뇌경색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내 효경(예지원). 한필용의 등 뒤를 따라가면서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장면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중에서도 특별하게 우아한 순간이다. 또한 필용과 효경이 이야기를 나누는 씬은 매우 간결하게 그 두 사람의 지난한 삶을 소개한다. 바람을 핀 필용 때문에 효경은 뇌경색으로 고생하게 되었고, 게다가 아내 효경이 한지 장인 집안사람이라 시댁으로부터 천대를 받았으며, 그 아내가 어려서 고향을 잃어버려서 간절하게 한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쓰러진 아내. 되찾아야하는 고향. 이제 이 영화가 나아가야 할 운동의 방향은 이미 여기서 결정된 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임권택은 이 장면을 매우 고전적으로 연출하였다. 무엇보다도 박중훈과 예지원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대부분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두 사람의 쇼트는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롱 테이크로 멈춰 선 카메라 앞에서 두 사람의 동선이 딥 포커스 안에서 이어지거나 아니면 두 개의 쇼트 사이에 위 아래로 분리된 두 사람의 육체의 일부가 중첩된다. 여기서는 이미 앞서 본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가 분리된 것과 완전히 반대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공간. 배우들의 연기. 그 안에 이야기 바깥의 실재는 그 방에 놓인 텔레비전 모니터 안에서 제한적으로 작동된다. 이때 임권택은 한편으로는 필용과 효경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방송물 <조선왕조실록 93년만의 귀환>을 보여준다. 이 방송 영상물의 쇼트가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독립적으로 우리에게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주기 위해 등장하지만 그러나 이 씬 안에서 이 쇼트들은 부분집합이다. 왜냐하면 재빨리 필용의 시점 쇼트가 이 장면들을 씬 안으로 다시 봉합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하진의 쇼트와 박중훈의 쇼트는 두 개의 모델이다. 그들은 각자 자명해보이지만 그러나 그 둘이 하나의 씬 안에 자리하는 순간 갑자기 세계와 이야기 둘 중 어느 쪽이 자명한 것인지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롤랑 바르뜨라면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썼을 것이다. 세계와 영화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새.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용법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는 인물의 쇼트와 세계의 쇼트 두 가지 방법 사이를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소 과도하게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집으로 들어가면 공존의 고전적인 운동에로 되돌아가고 세상 바깥으로 나오면 두 개의 분리된 쇼트들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워진 위험한 범주들 사이의 마주침에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싶다. 이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골목길. 여기에 한필용이 세계로부터 자기 집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달빛이 떨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스테디캠으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기나긴 쇼트. 이때 임권택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골목길을 걸어가는 장면 위에 송하진 전주시장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세계로부터의) 청각적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그의 등 뒤에 들러붙은 세계. 그런 다음 집 문 안으로 들어오자 그 청각적 신호는 중단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 임권택 은 세 번째 차원을 더한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을 한지제작업자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22분의 지점, 이 자리에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 지원(강수연)이 조수와 함께 나타난다. 갑작스러운 등장. 지원이 나타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두 편의 영화가 된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그녀가 한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 달빛 길어 올리기 >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 그러나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원의 다큐멘터리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지 제대로 전체를 보지 못한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 촬영 장면들은 별다른 사건 없이 그로부터 45분후, 그러니까 1시간 10분 정도가 되었을 때, 아직 영화가 40분이 더 남아있는 데도, “촬영 쫑이에요”라며 지원이 필용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물론 그런 다음에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임권택은 그녀가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끌어들여 과도하게 어떤 미학적인 게임을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지원이 등장하면서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녀의 다큐멘터리와 함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에 매달린 전주시청 공무원과 그 사업에 관련된 사업자들 사이의 이야기처럼 진행되던 이 영화를 갑자기 여기서부터 방향을 틀어서 한지 이야기로 옮겨간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처음 시작과 마지막 끝이 이상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이다.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하게도 그 자리에 모두가 목청을 높이며 서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진정한 한지 장인은 구석에 앉아 술에 취해 졸고 있지만, 그렇게 슬그머니, 이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유일한 장인. 오직 그만이 천년을 견딜 수 있는 한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는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현실 속의 환상. 그런 인물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혹은 적어도 (이 영화의 자막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실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 바깥에 있는 인물이다. 실재 안의 증후. 그러나 그런 인물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는다면 실망스러운 실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동시에 등장한 두 인물. 그 둘은 서로 반대 반향에서 나타나서 이 자리에서 마치 교차하듯이 동시에 공존한다. 이때 지원은 영화와 세계 사이에서 영화 쪽을 향해서 우리에게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난 영화의 자리를 계속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그녀는 영화와 세계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기는커녕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거리를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전시하고 있다. 반대로 이 한지 장인은 천년을 가는 종이라는 한지에 대해 품고 있는 내밀한 의심을 역설적으로 긍정하는 표상이다. 세계 속의 조건과 관계로부터 초월적 인물이라는 설정. 그 안에서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의 긍정. 사실상 < 달빛 길어 올리기 >가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 관한 영화라면 이 한지 장인은 매우 불합리한 잉여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으로부터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이야기는 한지에 대한 존재론적 보증과 함께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부조화 사이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교환가치가 필요해진 것이다. 다소 서둘러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먼저 생각해보자. 이제는 이름조차 사라진 산속 깊은 월곡 마을 폭포를 마주보며 한밤중에 보름달 아래서 한지를 뜰 때 그들 중 누구도 이 종이로 조선왕조실록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 사업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다시 한 번 당신을 환기시키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이 진행 중에 (그것도 거의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영화는 이 세 명을 놓고 한필용이 이들 사이를 오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이때 이 영화는 무언가 자꾸 이야기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만 중단된다. 그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계. 그저 놓여진 세계. 아무 것도 더 이상 손 써볼 수 없고, 거기서 어떤 것도 손대서는 안 되는 세계. 사실의 집합. 존재의 현상들. 그 사이에 선 영화라는 기록의 매체. 그러나 임권택 은 눈앞에 있는 존재들과 현상의 특징들을 찍었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를 담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 달빛 길어 올리기 >에는 어떤 곤궁에 처한 입장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이상한 것은 영화 전체에서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씬과 만날 때마다 그것을 느껴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시적이기는 하지만 세계 속에서 존재론적으로 허약해보이고, 세계는 자명해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인물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는 거리감을 끝내 좁히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유기적 관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한 대의 카메라처럼 한필용은 계속해서 이야기와 세계 사이를 오가면서 그들 사이의 동선이 되려고 한다. < 달빛 길어 올리기 >는 그 안에서 거의 기복을 느껴볼 수 없는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대부분의 모든 것들이 그냥 거기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서서 자기의 반경을 넘어서지 않는 정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이제까지 자기가 해온 삶에 대한 반복. 그 반복 안의 일상. 종종 그 삶을 전시하고 있는 듯한 인물들. 그런 다음 그 상태를 영화가 살짝 건드려보는 방법을 취한다. 지원은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선생님에게 한지란 무엇인가요. 작은 반응들.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씬들의 연속. 여기에는 어떤 결정적 행동이나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혹은 그 무언가를 설득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영화와 세계 사이의 거리.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필용은 한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러므로 한지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는 한지에 관한 정보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 다음 그 세계를 돌아다닌다. 한지라는 기호. 그를 둘러싼 수 없는 정보들. 반복적인 설명. 그때 임권택 이 발견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한 대답. 그는 달빛을 바라본 다음 밤하늘에 휘영청 뜬 보름달을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두 번째 밤 장면. 서울에서 막 사업을 승인받고 집에 돌아온 필용은 기분이 좋아서 아내를 마루에 나와 앉힌 다음 한 가득 물을 담은 세수 대야를 들고 오면서 “달 따왔다”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아내의 발을 씻겨주면서 고등학교 시절 불국사 수학여행을 갔을 때 효경이 써서 필용에게 건네준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다. “산속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탐나 물을 길러 갔다가 달도 함께 담았네, 절에 돌아와서야 응당 깨달았네, 물을 비우면 달빛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 영화 속의 네 명의 등장인물, 필용과 효경, 지원, 그리고 한지 장인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이 달빛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달빛에 관한 시를 읽은 다음 그걸 건네 준 효경. 이 시를 읽고 “뽕 간 다음” 임신한 그녀와 결혼한 필용. 둘이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달빛도 좋은 데 불을 끄죠”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필용이 아니라 지원이다. 그리고 달빛 아래서만 천년 가는 종이를 뜰 수 있다고 배우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한지 장인. 그 네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달빛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달은 저 하늘에 뜬 것이며, 달빛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비출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만이 그것을 바라보고 그런 다음 느껴본다. 그 말뜻은 달빛은 세계가 아니라 이야기의 구석구석만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신기한 것은 필용을 매개로 한 효경과 지원 사이의 공명 현상이다. 이규보의 시를 쓴 사람은,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효경이다. 필용은 지금 그걸 다시 효경 앞에서 낭송한다. 그러나 그 시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달빛 길어 올리기’로 정한 사람은 지원이다. 지원은 그 시를 낭송할 때 (영화 안에서조차) 아직 알지도 못한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이 시를 낭송한 씬 바로 다음에 지원과 한지 장인이 등장하는 씬과 우리는 만난다. 그래서 이야기 속의 이 두 사람은 이 시가 불러낸 등장인물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것이 이 두 인물에게 이상하게도 시적인 감흥을 감돌게 만든다.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단어는 월곡(月谷)이다. 나는 이 지명이 전라북도 전주에 실존하는 마을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이름인지를 알지 못한다. (실제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월곡리가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필용의 말에 따르면 “대구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아닌 것 같고”라고 효경에게 말한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아내의 잃어버린 고향 월곡을 찾아다녔고 이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지명이 이 영화를 자석처럼 이끄는 것은 이 이름이 ‘달빛이 떨어지는 계곡’이라는 뜻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아내 효경의 개인적인 기억의 지명이었을 뿐이었다. 필용은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의 고향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고향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월곡은 이야기의 외곽에 자리한 호명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규보의 시를 낭송한 다음 이야기 안으로 두 인물을 불러내고, 그런 다음 느린 속도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에서 한지에로 전회하면서 갑자기 월곡은 이 모든 인물들을 한 자리로 모으는 그 어떤 매개의 공간으로 조금씩 좌표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소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오로지 한지의 세계 내 존재의 보증을 온당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세계를 버리고 오로지 영화 내의 이야기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 현존재의 세계라는 현상을 버려야만 들어올 수 있는 잃어버린 고향. 말하자면 종종 마술처럼 작동하는 그 어떤 비밀이 담겨있는 말. 자기가 태어난 곳, 장인이었던 효경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 아주 오래 전 한지 장인에게 종이 뜨는 법을 가르쳤던 사람이 효경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 장소에 이르러서야 듣게 된다. 월곡은 <달빛 길어 올리기>가 세계라는 현상과 이야기라는 구조 사이에서 끈질기게 두 개의 씬을 오가면서 반복적으로 겪는 불안 속에서의 영화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물러나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여튼 일상적 흐름 바깥으로 나와야만 구할 수 있는 대답. 진정한 한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나요. 그건 지금 세계 안에서 불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천년을 가는 한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헛된 것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버리고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할 거에요. 필용과 지원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네, 맞아요, 그것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럼 어디에 있나요. 과거의 유산 속에 있습니다. 그저 남겨진 것만 남았을 뿐입니다. 동어반복. 필용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원은 여기서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실패했음을 느낀다. 다시 우리는 정신적인 대답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때 임권택은 자신이 쫓아낸 것을 여기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정보의 세계. 존재의 표면들. 세계는 한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자기의 수행적 차원이 종료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거기엔 (천년을 가는) 한지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바깥으로 나올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필요라는 요청. 그 무언가에게 해야 할 상징적 위임. 세계 속의 누구도 그 위임장을 받을 생각이 없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해지는 것은 세계와 이야기 사이의 절대적인 분리이다. 그 사이에 생겨난 틈새. 월곡은 정확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월곡으로 들어온다. 이때 당신은 이 영화가 다시 월곡에서 나가는 장면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장면 전체는 두 가지 모두로 읽힐 수 있다. 하나는 이 영화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는 방법이다. 사실상 이 장면은 어떤 목표를 가지지 않은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의 행위는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1시간 38분 지점에서, 필용과 한지 장인, 그리고 그의 아들과, 금둔사 주지스님이 ‘사라진’ 월곡 마을 깊은 계곡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갈 때 화면 가득히 가로 질러 걸려있는 ‘출입금지’라는 플랫카드는, 물론 여기가 사람들의 손이 잘 미치지 않게 잘 보존된 장소라는 정보의 기능을 하지만, 오히려 더 나아가 세계로부터 떨어져나간, 현재의 시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불가능의 장소에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출입금지’의 영화적 표지판의 신호를 잘 알고 있다. 가장 유명한 예. 오손 웰즈의 < 시민 케인 >의 첫 장면. 혹은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 그들은 여기서 세계로부터의 어떤 간섭도 없이 ‘천년을 가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런 다음 이 자리에 필용은 차례로 초대한다. 처음에는 아내 효경을, 그런 다음 한지에 대한 다큐멘터리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만든 지원을 부른다. 지원은 카메라를 들고 이 장소를 찾아온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모두 끝났고, 이미 시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는 “선을 본다”면서 시사를 마치고 필용에게 인사를 한 다음 서둘러 전주를 떠났고, 그런 다음 그녀는 영화에서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찍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일까. 물론 가장 따분한 대답은 보충 촬영을 위해서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장면 전체는 세계 안에서 마주친 그 모든 한지에 대한 불만족에 대한 대답처럼 진행된다. 필용은 끊임없이 한지 장인에게 질문한다. “정말 여기서 천년가는 종이를 뜰 수 있을까요?” 한지 장인은 대답한다. “여기가 선녀님들이 내려와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의 폭포 계곡이여,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이나 마찬가지여, 이런 데서 천년 종이를 뜨지 어디 가서 천년 종이를 떠”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도원경. 불가능한 장소. 말하자면 환상의 공간. 그냥 단 한 마디로 월곡. 효경은 여기서 잃어버린 자기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한지를 만들던 모습을 재현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지원은 진정한 한지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온다. (세계 안의) 불만족에 대한 (이야기의) 만족스러운 대답. 이때 이 장면 전체를 읽는 다른 또 하나의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모두 하나의 꿈으로 읽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꿈이 도피가 아니라 욕망의 실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좀 더 시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 꿈 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내부라는 잉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세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여기서 화면 가득히 보여주는, ‘출입금지’는 얼마나 적절한 보호막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마지막 장면을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다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과도하게 초월적인 정신에 몰두함으로써 사로잡히게 된 지나치게 시적인 대답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장면은 어쩌면 세계 바깥에서 실현된 저승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낮에 그들은 잠들고 밤에만 일어나서 그들은 천년을 가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잠들어버린 낮의 시간. 깨어난 밤의 시간. 여기에는 과거의 시간에서만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슬픔이 감돈다. 지나가버린 시간. 잃어버린 시간. 그 시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때 어쩔 수 없이 이 장면에서 바로크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느껴보는 멜랑꼴리.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어떤 행동도 완료되지 않은 것이지만(우리는 이 장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장의 종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냥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그들의 행위가 완수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그들의 행위가 충만했음을 알게 된다. 밤은 끝나지 않았고, 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떨어지는 보름달 달빛을 보면서 효경은 이렇게 말한다. 천천히 한 글자씩, 한 문장씩,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당신께서도 음미하시길. “달빛은 아무리 바라 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아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 친근한 빛으로 조용히 어둠을 밝혀요. 그 고요하고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한지의 품성이 달빛과 너무 닮았어요.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고 담담하고 조용해졌을 때 한지와 같은 달빛은 한가득 길어 올려질 거예요. 달빛은 길어 올린다고 해서 길어 올려지는 게 아니에요. 달빛은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 올려지는 거예요” (계속) 2010년 11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전주영화제 각본 임권택 각색 송길한 , 김미영 촬영 김훈광 음악 김수철 미술 주병도 편집 박순덕 박중훈 필용 예지원 효경 강수연 지원 안병경 덕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