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 감독
- 이장욱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이효신, 장세훈
이 영화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신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기도를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든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위기상황을 접하면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영화는 제목처럼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기도를 업으로 사는 남자 태욱( 박혁권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을 해야 되는 교회니 당연히 형편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고 이런 연유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정인( 류현경 분)으로부터 장모의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과연 기도가 수술비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다. 과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 기도하는 남자 >( 강동헌 , 2018)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가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가를 따라가는 영화지만 이 설정은 그다지 특수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종교영화도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 모두의 얘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다. 지금부터는 이들의 선택이 내용이나 영상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는가가 이 영화가 처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선택은 아쉽게도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와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김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한번쯤은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해법이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 등에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3억 5천만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영화속에서 두 주인공과 장모가 선택한 길은 너무 극단적이기도 하고 행동에 대한 그 인물 자체의 내적동력이 약해 보인다. 마치 점프 컷을 보듯 인물들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용감한 시도에 비해 아쉬운 전개와 결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괜찮은 재료로 너무 자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요리를 만든 셈이다. 인물들도 급하고 기획도 급해 영화가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느낌 이상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아시다시피 두 주연배우 박혁권과 류현경은 매우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실력파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 점은 이 영화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과해서 그런지 인물이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상을 받은 것도 나로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점 또한 성취이자 숙제로 남았다. 데뷔작을 연출한 강동헌 감독은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뇌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조금 더 힘을 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잘 녹아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던지고 수습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과한 전개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 연출 등이 모자라진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나 매력은 적지 않다. 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제시라는 면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획과 설정이 과한 전개를 만나 풍파를 겪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도하는 남자>는 저예산영화이자 독립영화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을 모두 받은 나름 축복받은 독립영화인데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처럼 너무나 적은 개봉관을 배정받았고 당연한 귀결로 매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개봉시기를 보면 팬데믹의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셈이니 이 또한 운이 나빴다. 제작진의 간절한 기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망치까지 날아들었으니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기다린다고 더 좋은 개봉여건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현실 또한 엄연한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앞날을 생각하자면 <기도하는 남자>의 불행이 아니라 관객의 불행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화는 만들어질 때 영화가 아니라 보여질 때 영화라는 말이 절실히 와 닫는 지금. 예견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전진했던 <기도하는 남자>의 시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2000년대 초반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시기였다. 세계 종말도 Y2K도 없었다. (있었어도 나 같은 서민은 모를 정도로 능력자분들이 잘 처리해 주셨다.) 그렇게 맞이한 밀레니엄에서 사람들은 뭔가 해방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2000년 이후의 삶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전과는 다른 문화현상들이 나타났고, 이전부터 근근이 이어지던 서브컬쳐들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영화계에서도 그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는데 과격한 상상력과 놀라운 실행력이 결합된 재미난 작품들도 많았다. 그런 경향의 일부였던 < 씨어터 >와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를 본 코너에서 소개하기도 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들 젊은이들의 재기가 꽃피우던 시기에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려 고독하게 16mm 카메라를 다찌마리로 수놓았던 어느 노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대한 것이다. 2003년 8월 21일 주간지 ‘일요 서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퀵서비스 배달원의 애환을 그린 영화 < 퀵맨 >이 최근 극장에서 개봉 돼 화제다.”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 퀵맨 >은 퀵서비스맨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 직업이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둘째, 개봉됐다는 언급은 있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KMDb에는 개봉 날짜 및 관람객 수 표기란이 아예 비어있고 네이버 영화에는 2002년 개봉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위의 기사는 2003년 기사... 도시 전설이 보통 이런 식으로 탄생하곤 한다. 게다가 ‘화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정말 <퀵맨>은 화제였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제’는 일반 관객이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영화는 1967년 < 새벽길 >로 영화인생을 시작해 1996년 < 알바트로스 > (그렇다 차인표 , 이휘재 의 국방부 퀘스트였던 그 영화다.)까지 쉼 없이 달리던 그가, 6년의 공백 끝에 발표한 영화기 때문이다. 이혁수 라는 이름은 뭐랄까. 임권택 도 남기남 도 아니지만 상당한 다작에(KMDb 등록 감독작이 51편이다) 나름대로 인정받는 흥행작, 장르의 걸작도 필모에 몇 편 포함되어있는 (그 중 42번째 영화이고 86년에 연출한 < 여곡성 >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이다.) 감독이다. 그는 결코 거장도, 연타석 안타의 흥행 마술사도 아니었지만 영화인으로서 오랜 시간 갈고닦은 연출력을 통해 장르 영화의 구조를 튼실하게 구축할 줄 아는 감독이었던 것 같다. 그의 필모에는 권격 영화, 호러 영화, 사회 고발, 코미디 등 여러 장르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액션영화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해 한 때는 흥행사로 불리기도 했다. ‘삐용삐용 B무비’의 다른 필진인 주성철 기자가 소개했던 < 애권 >에 언급되었던 ‘웃겨서 죽여버리는 권법’이 등장하는 < 소권 >이 이혁수 감독의 작품이며 이 작품은 장르 팬들의 애정을 받는 영화다. < 퀵맨 >은 그런 이혁수 감독이 2000년대에 들어 연출한 유일한 영화다. 영화가 제작된 2002년 당시는 디지털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한국 디지털 에로영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바로 이 시기였다. 클릭 엔터테인먼트와 봉만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 한국 영화계에 ‘새로움’이라는 화두가 실제로 눈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러나 이혁수 감독은 <퀵맨>을 16mm 필름으로 찍고, 등장인물은 퀵서비스 기사와 사악한 기업의 부사장이지만 영화의 골격은 무협영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권격 영화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놀라운 반전까지. 모델인 승희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난 미모 덕에 급상승 중이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들과의 술자리, 에이전시의 무리한 요구에 염증이 난 승희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의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 강사로 돌아간다. 한편, 코리아유통의 오 회장은 ‘코브라’라고 불리는 암살자에게 살해 당한다. 그는 사망 전 유언 동영상을 남겨 자신이 어릴 때 버렸던 유일한 혈육 ‘오승희’를 찾아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해 주기를 당부한다. 이 유언을 본 고문 변호사 문 변호사와 부사장 태욱은 ‘오승희’의 사진 한 장을 그 가지고 그녀를 추적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다르다. 문 변호사는 오 회장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그녀를 찾지만, 태욱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오 회장을 ‘코브라’에게 사주해 살해한 것이 태욱이기 때문이다. 회장을 살해하고 기업을 통째로 먹으려던 태욱에게 몰랐던 승희의 존재가 매우 성가신 것이었다. 태욱은 기어코 승희를 찾아내고야 만다. 위기에 빠진 승희는 우연히 만난 퀵서비스 기사 성민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적어놓은 줄거리만 보면, 적당한 액션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이런 식의 이야기기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를 주무르는 자의 ‘감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영화의 모양을 결정한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 퀵맨 >을 어디에서든 검색한다면 많은 정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포스팅에서 이 영화가 ‘괴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통할 법할 이야기를 현재시제의 상황으로 변형시킨 뒤, 감독 본인이 가장 잘했던 시절의 연출을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암살의 실행자 ‘코브라’와의 결전이 아니다. (진짜로 멋지게 찍힌) 성민 최후의 결투는, 영화 내내 이태리제 소파에 앉아 암살자에게 지시를 내리던 부사장 태욱과 이루어진다. 이것은 마치 한 명씩 적들을 격파하며 올라가는 옛 무협영화의 공식이다. 게다가 성민이 위기에 빠지자 수많은 오토바이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해 벌이는 깡패와 퀵서비스맨의 패싸움 장면은 마치 위험에 처한 사형을 구출하기 위해 단체로 출동한 ‘퀵서비스 문파’의 형제들을 보는 듯하다. 그렇듯, 이 영화는 진지하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진지함이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혁수 감독의 장기인 다찌마리 액션 장면을 떼어놓고 본다면 대사 하나하나, 상황 두 개 세 개가 황당하다. 이런 장면이 있다. 성민과 승희의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정말 아무런 두서가 없이) 호스트바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처음 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 여자 손님이 선수(호스트바 남성 접대부를 지칭하는 말)가 마음에 안 든다며 꼬장을 부린다. 그러자 마담이 오늘 처음 온 친구라며 장발의 청년을 소개하고 이 둘은 잠자리까지 가게 된다. 둘의 욕정이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여기까지 한 5분 걸린다) 갑자기 성민이 등장한다. 다짜고짜 신참 선수를 때리기 시작하는 성민. 장면이 바뀌어 한강둔치로 예측되는 곳에서 성민은 계속 구타하며 말한다. '달수야 임마! 사내놈이 할 짓이 없어서 고추장사를 해!? 내가 널 친동생같이 생각하는 걸 모르는 거야?' 그러자 달수는 말한다. '형 그럼 어떻게 해! 취직도 안 되고 돈은 필요하고... 훌쩍훌쩍' '그래도 어떻게 고추 장사를 하느냔 말이야! 나는 널 이제 안 볼 거야!' 아무 말 없는 달수. 돌아가는 성민. 그러자 달수는 성민의 뒷모습에 대고 말한다. '형... 내가 잘못했어. 이제 고추 장사 안 할게.' 그러자 성민은 환하게 웃으며 달수에게 다가가 말한다. '그래. 잘 생각했어.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어야지. 앞으로는 형과 함께 퀵서비스를 하는 거야! 하하하' 그리고 달수는 퀵맨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소개에 할애된 시간이 무색하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다. 이런 장면도 재미있지만, 여주인공 승희의 사정은 감탄이 나올 정도라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모델 오승희는 코리아유통의 인물들이 찾던 승희가 아니었다. 진짜 승희는 그녀의 이모부인 박 선생(레전드 박동룡 선생님께서 맡아주셨다.)이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던 것이다. 결국 문 변호사는 그녀를 찾아내고 한국으로 입국을 시키면서 태욱은 멘탈이 붕괴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쫓고 있던 오승희는 누구란 말인가? 물론 이 배역은 전혜윤 배우의 1인 2역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영화 시작할 때 오승희를 찾기 위해 들고 있던 사진에는 얼굴에 점이 하나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모델 오승희에게는 점이 없다! 이 점을 영화 초반엔 극 중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태욱의 부하 중 하나가 “사진엔 점이 있는데 이 여자는 점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욱은 “요즘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점 하나 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대충 넘어가는 장면이 잠깐 나오긴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처리 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아유유...’ 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몸이 조금 오그라든다. 결국 진짜 승희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가서는 지금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내의 유혹>적 리얼리즘’이 이미 시도되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만다.(‘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공자님의 말씀. 막장의 세계에서도 이 진리는 통한다.) 그러니까 전직 모델 오승희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엮여 온갖 고초를 다 겪게 되었던 것이다. 불쌍한 사람. 그래도 성민이라는 듬직한 사랑을 만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인연이란 것은 꼭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만날 수 있는 것일 텐데 여하간 불쌍하다는 생각 외에는 그녀에겐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닮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런저런 산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액션에 관해서는 절대로 웃기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격투 씬 때문에 앞서 말한 황당함들 조차 잊을 수 있을 정도라면 조금 오바스러운 이야기일까? 특히 공장에서 펼쳐지는 내분으로 인한 코브라와 깡패들의 일대 다수 싸움, 마지막 개천에서 부사장 태욱과 성민의 결전은 왕년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원한 다찌마리였다. 이혁수 감독님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시고 본인의 내공을 풀어낸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액션 영화’라는 말은 있지만 ‘권법’이나 ‘권격’ 이라는 말은 거의 사장된 듯 싶다. 정말, 정말 마지막 권격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 퀵맨 >은 그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감독의 작별인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정의를 위해 세상을 등지는 쾌남의 시대는 없다. 세계는 그런 사람을 (예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완전한 멍청이로 보이게 재구성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의의 주먹은 현실에서 더욱 더 멀어져 만화 속에서 스크린으로 이주한 캐릭터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된 것 같다. 나는 이혁수 감독의 <퀵맨>을 보면서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고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는 단순하고, 영웅은 원래 바보다. PS : 영화의 주연인 윤세웅 (KMDb에는 ‘윤호’로 기재)씨는 배우 ‘ 윤양하 ’ 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는 많지 않은 수의 출연을 했지만 현재까지 성우로 맹활약 중이다. 전혜윤 윤호 송금식 감독: 이혁수 각본: 윤석훈 , 안진원
1980년대 한국영화는 이상했다. < 결혼 이야기 >(1992)가 ‘기획 영화’의 시대를 열며 충무로 체질 개선을 시작하고 < 쉬리 >(1999)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장르화 속에서 이른바 ‘웰메이드’를 추구하며 한국영화가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다면, 그 이전인 1980년대는 중구난방의 시대였다. 이 시기 남한의 엔터테인먼트가 ‘3S 정책’의 억압 아래 있었고 그 여파로 충무로에 에로티시즘이 창궐했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인과 관계가 형성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영화는 어떤 정책을 수행하기엔 그 산업적 토대가 너무나 부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한 편이 완성될 때 그 최종심급은 심의와 검열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나온 영화들은 시스템이 아닌 모순적 사회 구조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에 산업적 전성기를 맞이했던 한국영화가 1990년대에 재 산업화에 들어가기까지, 그 사이에 이색지대처럼 존재하는 1970~80년대는 일종의 혼란기였으며, 1980년대는 그 혼란의 정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1980년대 한국영화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이 시기에 오면 한국영화의 정서적 기둥이었던 ‘신파 감성’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외국 영화가 맥락 없이 접목되며, 뜻하지 않는 장르적 시도들도 간헐적으로 이어지며, 때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마저 뒤흔드는 영화가 등장한다. 이런 증상은 이른바 ‘에로 영화’ 속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 어우동 >(1985)은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적 텍스트가 되었고, 위험한 섹슈얼리티 무비 < 사방지 >(1988)도 있었으며,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1985)의 정신분열증적 아우라는 시대의 파격이었다. 이 불균질적이며 뒤엉킨 계보도 속에 김성수 감독의 < 색깔 있는 남자 >(1985)가 있다. 2004년에 세상을 떠난 김성수 감독은 1977년 < 돌아와요 부산항 >으로 데뷔한 후 1980년대에 장미희 , 원미경 , 이영하 등이 출연하는 < 색깔 있는 여자 >(1981)로 에로티시즘 멜로의 세계로 접어든다. 여기서 혹시 < 색깔 있는 여자 >와 < 색깔 있는 남자 >가 연작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 전작이 한 여성의 이중생활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1977)를 연상시킨다면, 후자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 디아볼릭 >(1955)를 연상시키는 악녀 스토리다. < 색깔 있는 여자 > 이후 정윤희 주연의 < 여자와 비 >(1982), 김부선 이 등장하는 <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1983) <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 >(1984), 당대 급부상한 섹스 심벌 오혜림 이 마흥식 과 임성민 사이를 오가는 < 탄드라의 불 >(1984)까지 나름 일관성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던 김성수 감독은 < 색깔 있는 남자 >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패션 디자이너 최태욱, 일명 ‘샤르망 최’(임성민)가 귀국한다. 그는 후원자인 김문자 여사( 홍명진 ) 덕에 성공적으로 한국 패션계에 진입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질투한 변수린( 오수미 )은 김문자를 살해한다. 변수린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진 샤르망 최는 재미 교포인 주은몽( 오혜림 )과의 관계를 통해 벗어나려 하지만, 변수린의 집착은 점점 그를 옥죄어 온다. 결국 샤르망 최는 변수린을 잔인하게(기차 레일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살해하는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돈을 노린 주은몽의 계략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진 주변 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샤르망 최의 부티크 점원( 오경아 )이 주은몽과 함께 묵직한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 색깔 있는 남자 >는 한 명의 지골로를 네 명의 여자가 갉아먹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적 위력은 진정 압도적이다. 김문자 여사에겐 성 기능을 상실한 나이 든 남편( 변희봉 이 역할을 맡았다!)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부실한 성기에 대한 대리물로 일본도에 집착한다. 여기서 진정 놀라운 장면이 나오는데, 김문자는 남편 앞에서 일본도 손잡이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그 광경을 본 남편은 극도의 흥분에 휩싸이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복상사 따위는 우습게 만드는, 퍼포먼스만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놀라운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도 변수린에게 죽게 된다. 한국영화에서 팜므파탈을 평가할 때 만신전에 봉헌되어야 할 오수미는 이 역할을 만나 놀라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녀는 한 마리 음탕한 거미처럼 남자를 옭아맨다. 그녀의 대사는 당연히 직설법인데, 음산한 목소리로 샤르망 최에게 “누님이라는 소리 때려치워!” 일갈하다가도 “색깔 있는 남자, 당신 날 흥분시켰어”라고 속삭이는 모습은, 끈적끈적하면서도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을 지닌다. 여기서 대미를 장식하는 인물은 주은몽이다, 샤르망 최는 변수린을 살해한 후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고, 모든 것은 주은몽의 수중으로 돌아온다. 이때 그녀는 샤르망 최에게 쿨하게 말한다.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 그리고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감춰왔던 관계가 드러난다. 샤르망 최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점원은 알고 보니 주은몽과 동성 연인이었던 것이다. 얼음송곳만 없었지 < 원초적 본능 >(1992) 못지않은 < 색깔 있는 남자 >는,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들 속에서도 가장 거친 욕정을 드러낸 영화다. 이 영화의 여자들은 절대로 욕망을 억누르지 않으며, 이 영화의 남자는 언제나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강한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해 육체의 암투를 벌이고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먹잇감이 되는 지옥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섹스와 돈과 명예의 유혹이 넘실대는 에로틱 누아르 스릴러 <색깔 있는 남자>. 누구나 공감하는 걸작은 절대 아니지만, 이 영화만큼 강렬한 화면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