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영화 에피소드 5 : 금순아!
- 감독
- 김홍준
- 제작년도
- 2004
이장호 는 70년대 '영상시대' 활동과 더불어 ‘청년영화의 기수’였으며 ‘최초의 스타감독’이라고 불린 시대적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80년대는 이장호의 전성시대였다. ‘80년의 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당시 청년 영화인들의 교과서였다. 당대 발표된 ‘8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 10’에는 그의 영화가 4편이나 선정되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 과부춤 >과 더불어 그 목록에 포함된 영화가 바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다. 85년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이제하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85년 영화제작 자율화 시행 이후 그가 설립한 판영화에서 제작하였는데, 87년 어렵게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을 했으나 관람 숫자는 미미했다. 당대의 지배적인 한국영화 관람 체험 속에서 이 영화는 낯설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편안한 관람 행위를 허하지 않는다. 수려하지만 그 수려함을 세피아톤으로 톤 다운시켜 놓은 강원도 산길을 익스트림 롱 쇼트의 롱테이크로 찍은 화표면은 마치 정지된 스틸의 그것 같다. 화면 왼쪽으로 원경에서부터 쭉 뻗은 길로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화면 앞 가장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때 까지도 그들은 식별되지 않는다. 아울러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내재적 사운드가 소거된 상태에서 마치 보이스오버처럼 원근감 없이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소리는, 현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미지와 비동조화된 사운드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인과법칙에 기초하지 않은 서사의 진행, 행위에 대한 동기와 설명의 희박함,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지우는 쇼트의 배열, 극적 흐름과 맥락을 단절시키는 몽타주 시퀀스들은 시공간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을 흩뜨리면서, 샤머니즘적인 운명론적 세계관의 묘사와 맞물려, 종국에는 불가해한 재현의 지점에 다다른다. 영화는 크게 황토 빛 모노크롬과 푸른 빛 모노크롬으로 처리된 두 개의 의미 계열체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개의 시간적 재배치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허무는 주관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황토 빛 모노크롬의 세계는 대체로 3박 4일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적 현재를 재현한다. 반면 그 황토 빛 시공간을 절단하고 틈입하는 푸른 빛 모노크롬의 의미 계열체는 인물들의 회상, 주관적 플래시백, 의식의 흐름, 운명적 암시 같은 현재 시제를 벗어나, 충돌하며 운동하는 이미지들의 배열이다. 이장호는 <바보선언>에서 실험했던 즉흥적이고 연상적인 연출법을 재도입하는데, <나그네>에서 그러한 연출 방식은 명확한 좌표 없이 강원도를 떠돌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직면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데에는 더없이 잘 맞아 보인다. 개성이 고향인 사내와 전쟁 통에 고향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내, 휴전선 부근 월산이 고향인 노(老) 회장 모두 전쟁으로 인하여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속초, 원통, 강릉, 경포, 인제에 이르는 영화적 공간에서도 원통, 속초 등은 분단과 그 결과인 휴전선 아래 마을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공간의 지정학적 의미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예컨대 여행 첫날 사내가 아내의 유골을 바닷가에 뿌리려다 군인에게 제지를 당하고 결국 철수하는 것이라든가, 강릉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회를 파는 전주식당의 사장이 "전쟁 통에 나같이 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고 반문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몇몇 장면은 자유연상과 자동기법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지정학적 트라우마 의미를 기입한다. 백사장에 놓은 가방 속 아내의 유골을 바라보던 시선이 “고향이 원산은 아니라예”라는 아내의 목소리 사운드와 연결되면, 강릉 앞바다 위로 포화와 피난 행렬을 담은 한국전쟁 당시의 뉴스릴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시선의 주체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국도 이미지의 몽타주 시퀀스 끝에, 우리는 국방 한계선과 상판이 없이 끊어진 다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시도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담대하다. 영화 전체에 걸쳐 산포되어 있는 분단의 트라우마가 영화적 주요 배음을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샤머니즘적 운명이라는 또 다른 배음이 날 선듯한 감각으로 강화된다. 사내의 주체의 중심 없음 혹은 부유(浮遊)함은 실향(失鄕)과 상처(喪妻)의 중층 결정의 결과물이다. 실향의 감각은 아내의 죽음과 이중 노출되어 있으며, 그와 연합된 상실감과 죄책감은 노정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성매매 여성과 ‘색시’, 그리고 ‘미세스 최’에게 투사된다. (아내, ‘색시’, ‘미세스 최’는 모두 이보희 가 연기한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최가 몇 해 전 받았던 점괘, 즉 “나이 서른에 물가에서 관을 세 개 짊어진 남자를 반드시 만날 것, 그가 전생의 남편”이라는 운명론적 예언을 향해 가는데, 기실 색시와 최는 모두 아내의 더블들이다. 그와 간밤에 관계를 가졌던 ‘색시’의 죽음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환시(幻視)로 대체된다. 최가 고향을 언급하며 “아우라지강을 아세요”라고 언젠가 죽은 아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사내에게 건넬 때, 최는 정확히 아내의 도플갱어로 확증된다. ‘미세스 최’란 인물은 철저히 대리보충적인데, 그녀는 지난 2년간 중풍환자 회장의 ‘인간 핫 팩’으로서 그가 결여한 혹은 상실한 온기, 활력, 고향의 따스함을 대리보충 해왔다. 그 역할은 사장 아들이 특파한 상무에게 끌려가면서 회장이 손에서 놓아 버린 낡은 사진과 기능적으로 같다. 또한 그녀는 남자에게는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이며, 마지막에는 오구굿 중 신내림을 받음으로써 영혼에게 몸을 주는, 사령(死靈)들의 대리보충 역할이 된다. 결국 남자의 주체성의 위기는 복구되지 않으며 파국을 맞는데, 그것은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으로써는 온전한 애도작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완수되지 못하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애도작업은 신내림의 형태로 최에게로 전이되며, 민족적 해원의 무게는 그녀의 무속 연행에 맡겨진다. 이장호의 80년대 작품 연보에는 사회적 참여의식이 강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과 대중추수적인 흥행 영화들, 그리고 작가의식이 녹아든 영화들이 교차했다. ‘황토빛 모노크롬 영화 한편 찍고 싶다’는 로망을 실현하고자 이장호가 직접 제작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지방흥행업자들의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연보에서 그리고 한국영화사에서 아주 낯설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고화질 VOD 보러가기 <<
1. 1980년대, 이장호 의 시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신의 나이가 4.19와 5.16 시절에서 멈췄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를 자각 있는 청년으로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현의 표현처럼 1980년에 나이가 멈췄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끝없이 흘러가지만, 멈춰 있는 의식의 시간과 공간은 집요할 정도로 제자리 걸음이다. 그 제자리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제 발 밑을 더욱 깊게 파내려 갔을 것이다. 그 파내려간 자국, 나는 그것을 1980년 한국 근대의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1980년대 한국영화들 역시 그 상처의 흔적, 어눌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상처의 자국으로 본다. 그 영화들 속에 등장한 인물들, 그들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더 못나고 집요하며 파괴적이었다. 그 역할은 대체로 남자들이 맡았다. 남성 감독들은 그렇게 남성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1980년대의 한국 영화도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광란의 1980년대를 다시 되돌아본다면, 1980년대는 한국의 근대가 겪어야 될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독재 정권에 대한 ''힘없는 저항''은 당연히 또다른 독재 군사 정권을 낳았던 것이고, 그 독재 정권이 추동했던 경제 개발은 당연히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했고, 그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한 경제 개발은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의 미덕을 당연히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호 감독이 서있었던 지점은 바로 그 곳이었다. 우리가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서 언제나 이장호를 앞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장호는 독보적인 동시에 1980년대 영화 청년들에게는 ''스승''이었다. 그는 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한 인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다. 과거 '1980년 ''서울의 봄''에 때맞추어 나타난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를 시작으로 해서...'라고 표현할 당시의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란 바로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젊은 평론가들이 80년대 영화를 대상으로 뽑은 베스트 10에서도 이장호 의 영화는 < 바보선언 >(1위), <바람불어 좋은 날>(2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6위), < 과부춤 >(8위) 등 무려 네 편이나 포함될 정도였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이장호를 가장 많이 언급한 까닭은 6,70년대 한국영화의 전통을 흡수하여 80년대에 쏟아낸 피드백 장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장호 감독보다 여러모로 선배격인 감독들과 동년배 감독들도 그러한 역할을 했지만 그가 유독 돋보인 까닭은 가장 충무로적으로 자라났으면서도 가장 격변기의 청년의식을 잘 대변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풍부한 공식 기억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또 한국영화를 ''직업적으로'' 기억하는 평론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잊혀지고 있다. 그 망각은, 현란한 변화로 압축할 수 있는 21세기식 변화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즉, 80년대식 시선으로 이장호 의 영화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집단 기억 상실증 혹은 현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뭔가 석연찮은 미학의 부재 등이 그 망각 현상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는 이장호의 시대였다. 2. 이장호 라는 상처 이장호 는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감독길로 들어섰고 다행히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춘의 아름다움과 애정을 노래한 < 어제 내린 비 >(74), < 너 또한 별이 되어 >(75), <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75) 등을 연거푸 만들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5년간의 강제된 공백기간을 가졌다. 당시의 한국은 남자머리가 길다고 파출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자르거나 길을 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던, 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혹한 불행의 시기였지만 대통령의 부하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눌 정도로 국민들의 억제된 민주화 요구가 서서히 폭발 직전에 다다른 그 시절은 상대적으로 그의 의식이 첨예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 바람불어 좋은 날 >(80)은 바로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세 청년이 결국 서울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독재 정권의 경제 개발과 그 개발이 가져온 빈부의 격차와 인간성의 파괴 등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재기작에 심었던 것이었다.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후 < 어둠의 자식들 >(81), < 낮은 데로 임하소서 >(81), < 바보선언 >(83), < 과부춤 >(83)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성 드라마 혹은 관객과 현실을 이어주는 영화들이 있는가하면, 여러모로 동의를 구하지 못한 작품인 < 일송정 푸른 솔은 >(83)이나 < 무릎과 무릎사이 >(84), < 어우동 >(85)같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 그의 부정적인 재능이 결집된 < 이장호의 외인구단 >(86), < 와이의 체험 >(87) 등이 그의 작품연보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사회 반영의 의지, 흥행 집착, 작가의 지향 등이 마구 뒤섞인 그의 작품연보는 보는 이들은 물론 본인조차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도 불안한 기간을 거치면서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평자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는 해도, 이 작품에 대한 견해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그리고 이야기와 형식의 독특한 경지를 확보한 것이라는데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장호 는 이 작품에서 민속신앙과 우리 민족의 용해된 삶,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가차없이 침범 당하는 개인의 삶, 분단과 통일에 대한 뒤틀린 견해로 가득찬 사회 등을 풍부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만 본다면 그는 작가이자 격조 높은 예술가였다. 그러나 예술가이면서도 그는 영화 제작자였다. 판영화사를 차려서 우습고도 야릇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장호를 근대 한국의 상처이자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상처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정확한 문맥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와 행적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영화의 모더니티, 신파성, 한국형 내러티브와 스타일, 집단주의, 사회문화적 맥락 등은 이장호 를 통하여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뉴 웨이브, 이장호]({영상문화정보}, 2002년 여름호)에 실린 글을 토대로 다시 쓴 글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교수) / 2003년 <프로필> 1945년 5월 15일 서울 출생 1966년 홍익대학 미술대학 건축미술과 2년 수료. < 작품 연보 > 1974 '' 별들의 고향 ''감독 데뷔 제13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 제11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신인상 수상 1975 어제 내린 비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6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1980 바람불어 좋은 날 제19회 대종상 감독상 수상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작품상ㆍ대상 수상 1981 어둠의 자식들 (흥행 베스트)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2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제21회 대종상 작품상ㆍ감독상 수상 제18회 한국연극ㆍ영화예술상 작품상 수상 1983 일송정 푸른 솔은 제 22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수상 1983 바보선언 시카고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OUTSTANDING OF MERIT' 수상 1984 과부춤 일본 키네마준보 우수외국영화에 선정 1984 무릎과 무릎사이 (흥행 베스트) 1985 어우동 (흥행 베스트) 1986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86 이장호의 외인구단 (흥행 베스트) 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2회 동경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1987 Y(와이)의 체험 1988 바보선언 ''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베를린 국제영화제 영인터내셔널포름 부문 동시출품으로 ZITY상, CALIGARI상 각각 수상 1988. 9. 제 26회 뉴욕 필름페스티발 선정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990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1992 명자 아키꼬 쏘냐 1995 천재선언 제9회 기독교문화대상 영화부문 수상 < 주요 경력 > 1996년∼2000년 8월 31일 -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1997년 -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1997년 - 제1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 창작 오페라 ''황진이'' 연출, 예술의 전당<오페라하우스> 공연 2000년 - 중국문화부초청 8월 24일, 25일 북경 21세기극장 오페라 ''황진이''공연 연출 2000년 - (사)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2001년 -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TM 공동개최기념공연 오페라 ''황진이'' 도쿄 신국립극장공연(4월 15ㆍ16일) 연출 2001년 - 전주시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02년 - 미주 한국일보 초청 오페라 ''황진이'' LA -Hollywoo d KODAK 극장 공연 (8월7. 8일) 연출 2002년 11월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3년 현재 - 전주대학교 예체능영상학부 연극영화전공주임교수 < 주요 논문 > 「부천 영상산업화 연구보고서 」(공동), 부천시 , 1997년. 「일본문화개방 이대로 좋은가?」(단독), 아태평화재단 , 1998년. 「큰 정신 작은 영화」(단독), 한성대학교 , 1999년. < 주요 저서 > 「모두 주고 싶다」 태멘출판사 , 1980년 「바보처럼 나그네처럼」 도서출판 산하, 1987년 < 기타 영상제작배급실적 > 1986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 제작배급 1987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작배급 1987년 - Y의 체험 제작배급 1988년 - 깜동 공동제작배급 1988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2 공동제작배급 1989년 - 독일 이탈리아 합작영화 '' 모모 '' 수입배급 1989년 - 베르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죄''(영국제작)수입배급 1989년 - 미스코뿔소 미스터코란도 제작 배급 1990년 - 미국영화 ''헬레이저'' 수입배급 1991년 - 미국영화 '' 헬 바운드 '' 수입배급 1992년 - ' '숲 속의 방 '' 제작배급 1992년 - '' 핸드백 속 이야기 '' 제작배급 1994년 - KBS 텔레비젼 특집드라마 3부작 ''너의 뺨에 입 맞추리'' 외주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