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를 만나다
- 감독
- 란희
- 제작년도
- 2009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대로 인간의 역사치고 야만의 기록이 아닌 것은 없다. 인간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휴머니즘, 이성, 합리, 교양 등 번지르르한 의미들이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진 사례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법재판 중 가장 기괴한 판례로 꼽히는 O.J. 심슨의 ‘세기의 재판’ 역시 야만 중의 야만의 기록이었다. <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 >(이하 ‘<O.J.>’)는 이 야만적 기록의 속살을 들추어내는 영화이다. 영화감독 에즈라 에델만은 1995년 10월 3일 초조한 마음으로 TV 앞에 앉아 O.J. 심슨 사건에 대한 최종 평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사학 석사 출신의 에델만은 심슨에게 무죄가 선고되기를 기도했다. 당시의 에델만에게 심슨 스캔들은 범죄 스토리가 아니라 인종재판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4년 전 네 명의 백인 경찰관이 과속을 하고 도주하던 흑인 건설업자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사건에 무죄가 선고된 후 에델만은 흑인 남성이 강고한 미국의 인종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순간을 고대해왔다. ‘심슨에게 힘을 주세요!’ 에델만의 기원은 현실이 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에델만은 스스로의 신념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 자신의 편협과 무지에 대한 반성적 고백성사라고 할 수 있는 < O.J. >를 통해 에델만은 비열하고 치욕적인 속임수에 의해 각색된 역사를 도발적으로 전복한다. O.J. 심슨은 누구인가? 전미풋볼리그(NFL)을 호령했던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자 흑인으로서 가장 높은 단계의 명사로까지 도약했다가 일급 살인혐의를 받고 급속히 추락한 사나이. 천부적인 신체 능력을 타고난 ‘하드 바디’ 스포츠맨인 심슨은 인종의 장벽을 초월하여 전국구 지지를 받았던 슈퍼스타였다. 스포츠계에서 얻은 명성을 후광으로 삼아 심슨은 TV와 광고, 영화에서도 자신의 이미지를 전시하면서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로 진화해간다. 그러나 심슨의 유명세를 정점에 올려놓은 사건은 따로 있었다. 전 부인 니콜 브라운과 내연남을 도살한 혐의로 기소된 후 치른 이른바 ‘세기의 재판’을 통해 심슨은 낯선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총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 O.J .>는 심슨의 흥망사를 추적한다. 거칠게 분류하면 1장은 심슨의 성공기, 2장은 ‘세기의 재판’을 둘러싼 논쟁, 3장은 심슨의 현재에 해당한다. 서사시적인 웅장함을 유지하면서 에델만은 백인 중산층을 동경했던 말썽꾸러기 흑인 소년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의 기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득적인 운동능력, 흑인 시민권 운동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심슨의 정체성 부정, 미식축구 선수로서 성공 가도와 영예, 범죄용의자로의 전락, 그리고 돈과 권력, 편향된 여론에 의해 불의하게 결론이 난 재판의 과정을 훑는다. 이 30여 년의 시간은 흑인의 영웅이 아닌 미국의 영웅으로 이미지를 육성해가는 심슨의 수완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한 인물의 생애에 대한 전 방위 지도 그리기에 동참하면서 관객들은 먼발치에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심슨의 인생유전에는 ‘반(反)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종혐오도 포함되어 있다. 한 인물을 구성하는 이토록 다채로운 이미지는, 새로운 관점에서 심슨 사건을 조망하는데 탄력을 줄 뿐 아니라 미국 사회를 장악한 무의식, 합법적이고 상징적인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신화를 전복하려는 이 영화의 토대가 된다. 전기적 인물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 O.J. >는 인물연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은폐된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진실탐사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1994년 6월 17일 심슨이 벌인 사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자동차 추격전은 명백하게 그가 살인을 했다는 증거였으나 심슨 재판의 최종 결과는 ‘무죄’였다. 8개월 넘도록 이어진 재판, 100명이 넘는 증인, 4만 5천 페이지가 넘는 입증 기록에도 불구하고 심슨은 어떻게 무죄를 받았는가? 그러나 에델만의 관심은 심슨이 유죄인지, 무죄인지가 아니었다. 대서사의 초점은 어떻게 재판이 인종주의라는 이슈를 따라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는가로 모아진다. 스포츠맨으로서의 재능 외에도 미디어에 의해 재현되는 심슨은 가공할 매력의 소유자로 포장된다. 심슨은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사인을 하고, 자동차 렌탈 기업 ‘헤르츠’의 모델로 활약하면서 그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번개 같은 달리기 능력을 뽐냈다. 그는 백인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최초의 흑인 모델이었다. 인종의 경계를 넘은 우상이 희대의 살인 용의자로 나타났을 때 미국이라는 다인종 공동체는 다시 정의된다. 백인들이 심슨을 품어준 것은 아량일까, 신화에 대한 그들의 강박일까? 관대함과 카리스마를 갖춘 스포츠맨이자 셀레브리티로서 심슨의 모든 활동이 겨냥한 것은 미국의 백인 중산층에 내재된 무의식이었다. 심슨의 영웅적 풍모가 절정에 올랐을 때 미국인들은 그가 의도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카데미시상식 역사상 가장 긴 러닝 타임을 기록한 수상작이자 첫 TV 시리즈 수상작, 800시간에 달하는 푸티지, 72명의 인터뷰,’ 2017년 2월 치러진 8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고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 O.J .>가 뿌린 미증유(未曾有)의 기록들은 이 영화에 내포된 웅대한 야심을 모두 말해주지 않는다. 7시간 47분에 달하는 이 매머드 시리즈는 미국이라는 공동체의 형성과 몰락, 거짓과 광기로 유지되는 가짜 이미지, 끝내 드러나고야 말 이면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한다. 최근 미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블랙 무비’이다. < 노예 12년 > < 국가의 탄생 > < 문라이트 > <O.J.> < 겟 아웃 >으로 이어지며 러시를 이루고 있는 ‘블랙 무비’에는 미국 사회 안에서 흑인들이 공유한 체험, 의제들이 진하게 녹아 있다. <O.J.>는 지나치게 많은 자료와 의미가 들어있는 서사 다큐멘터리의 맹점을 극복하면서 끝까지 길을 잃지 않고 논점을 유지한다. 에델만은 한 나라에 대한 초상을 그려내기 위해 신화가 발아하고 진화하는 과정, 그 아성이 깨어지기를 두려워하는 무의식, 그 위에 똬리를 튼 허구적 이상화를 폭로한다. <O.J.>는 미학과 윤리, 양식의 측면에서 강력한 논쟁을 야기한다. 아마도 그 잔향을 숙고하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에델만은 여기서 심슨의 전기를 통해 인종 차별, 가정 폭력, 뉴스 매체의 과잉 등 미국의 모든 병들어가는 신경세포를 건드렸다. 심슨을 매개로 묘사되는 폭력의 역사는 차별과 특권의식, 화합할 수 없는 인종갈등의 골을 파헤쳐 보인다. 또한 최고의 논픽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대상에 매몰되지 않는 거리 두기, 성실한 리서치, 그리고 다루고자 하는 테제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보여준다. 이는 빈틈없는 조사와 핵심을 찌르는 인터뷰, 자로 잰 듯 정교한 편집이 이루어낸 위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기의 재판’ 과정은 내레이션 하나 없이 심슨의 친구와 적, 동료들의 인터뷰로만 중계된다. 상세하게 기술되는 에피소드들의 태피스트리는 심연의 구조와 시스템을 건드리고 몇몇 이미지들에서는 몽상적인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슨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는 강도와 유괴 혐의로 33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2017년 10월 가석방되었다)인 상태로 묘사된다. 세기의 재판이 종료된 후 심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은 보기에 고통스럽다. 타블로이드 잡지에나 등장할법한 누추한 범죄자로 네바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심슨은 참혹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심이 가득한 초로의 노안(老顔), 그의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푸석해 보인다. 이 세세한 여정의 끝에 목격하게 되는 것은 미국이 조형한 신화의 엔트로피이다. 한 흑인 스포츠 스타의 영락을 보여주기 위해 8시간이 필요했는가? 그 불가피함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할 수 있다. 4시간 40분에 달하는 마르셀 오퓔스의 < 슬픔과 동정 >(1968), 10시간 동안이나 상연되는 클로드 란츠만의 < 쇼아 >(1985) 같은 기나긴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가로질러 무의식의 밑자락을 드러내기 위해 시간의 누적은 필요조건이었다. 또한 그것이 인종갈등과 정치, 미디어, 쇼 비즈니스가 혼재된 이 비극적 서사 드라마의 성취를 보증하는 힘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간혹 극영화 감독들을 만나면 반복해서 듣는 소리가 있다. “제가 어떻게 다큐를 하겠어요?”, “다큐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해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죽기 전에 꼭 인생의 다큐 한 편 만들 거예요” 등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일반화하기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아마도 다큐멘터리 영화 혹은 다큐 제작에 대한 커다란 사회적 의미 그리고 제작에 임하는 작가윤리를 의식하는 듯하다. 마치 다큐를 만드는 사람은 거짓말도 못 할 것 같은 사람, 사회적 정의로 가득 차 있거나 이를 위해 기록 대상과 함께할 수 있다는 신념과 성실함이 필요조건인 것처럼 생각되는 듯도 하다 이런 대화는 “항상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이야기로 끝이 나곤 하는데, 그리고 나면 “나는 다큐하기에 괜찮은 사람인가? 이건 뭐지?”,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매번 ‘하, 그렇지 않은데’, 하며 부끄러워진다. 뭔가 이상한 감정이다. 타 예술 장르와 다르게 다큐멘터리에는 왜 이런 정치적 올바름, 역사의 정의와 진보에 대한 작가의 신념, 피사체에 대한 시선이나 태도 등 도덕 혹은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리고 작업, 작가 윤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해 본다. 2017년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된 김성은 감독의 < 스물다섯번째 시간 >은 위의 고민에 어떤 답들을 제시하는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대한 기록이다. 감독은 연출 의도에서 “방문자에서 연대자로 그리고 이주민으로 변해온 내 시선이 반영된 영상을 기록하려 했고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라고 말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저항의 시간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강정마을 주민들과 이 투쟁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의 삶과 기억들을 성찰, 기록해내고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다른 한 축으로는 제주 4.3사건으로부터 이어지는 이 땅 인민들에 대한 국가폭력의 역사-늘 그렇듯이 어느 투쟁지역에서나 국가권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의 논리를 폭력적으로 관철시킨다-를 기술해낸다. 매번 절망과 희망 없음을 확인하면서도 또 함께 일어나 서로 의지하며 일상의 평범한 권리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 이에 감독은 “어떤 폭력이나 각자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깨려고 할 때,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지만 이걸 이겨나가는 힘 하나하나, 한순간 한순간이 바로 평화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지켜냈다. 그들은 정당했다”, 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도 없는 시간, 역사 속에서 잊힐,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복원해야 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스물다섯번째’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많이 아팠을 시간과 사람과 자연을 위로하고 보듬어 안으며 한판 위령굿을 보내는 듯도 하다. 현장이다. 이와 같은 감독의 성찰과 깊은 사유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게 되는, 대상들의 구체적인 삶의 역사와 그 언어에 기인할 것이다. 제작, 작가윤리라 함은 정형화된 특정 의식 혹은 갖춰진 어떤 시선이나 태도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경험하게 될 세계의 윤리, 그리고 그 충돌에서 생겨날 긴장이자 진동일 것이다. 현장에서 함께 하는 다양한 삶의 이해들이 감독의 질문이 되고, 이러한 감독의 질문들을 통해 영화적 진실을 함께 찾아가는 그 긴 여정 어딘가에 기록의 의미가 위치할 것이다. 영화 < 스물다섯번째 시간 >은 그래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어떤 특정 유형의 사람들만 다큐를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계를 대면할 작은 용기와 함께하는 시간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안을 수 있다면, 끊임없이 나를 분열시키고 되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쩌면 우리 모두 다큐멘터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 스물다섯번째 시간 >은 우리가 지켜내야 할 생명과 평화에 대해, 그리고 함께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적 시간을 거치고 나서 나와 우리 이웃의 부조리함을 내 안으로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큰 성취가 있는 영화이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지 25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1992년에 시작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는 1,200회를 넘겼고, 60대였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으며, 생존해계신 소수의 할머니들은 어느덧 90대가 되셨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의 출연기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불가역적인 한일 위안부합의를 맺은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상징인 소녀상은 외교적 논란의 대상으로 비화되어버렸다. 캐나다 출신 티파니 슝 감독의 < 나비의 눈물 >(개봉제: <어폴로지>)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 세 할머니의 일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는 수요시위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스위스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는 활동가의 삶을 바쁘게 살아낸다. 중국의 카오 할머니는 이 추위에 무슨 장작을 패냐는 딸의 타박에도, 아흔이 넘은 노구를 부지런히 움직여 땔감용 장작을 패놓는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자식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지만, 같은 마을의 위안부 피해자 모임에 나가는 용기를 낸다.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고 장작을 패고 끼니를 챙기고 춤을 추고. 할머니들의 삶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삶의 감각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문득 그들이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쉴 때 그리고 무언가를 더듬는 듯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볼 때, 주변의 소리와 흐름을 멈추고 정지하는 카메라는 그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채워져 있음을 암시한다. 새어 나오는 긴 한숨 소리와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떨리듯 내뱉는 “(고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어 (It’s still there)”라는 목소리는, 전쟁 중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들로부터 평범한 삶의 감각을 앗아갔는지 드라마틱한 장치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천둥처럼 증언한다. 영화는 유난히도 특정한 신체적 접촉에 주의를 기울인다.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는 발, 꼬옥 잡고 쓸어주는 손, 옆으로 포개져 누운 채로 함께 이야기하며 안아주는 자식과 활동가의 몸은, 할머니들의 전 인생을 지배해 온 한숨과 정적의 순간을 마치 위로하듯 이불처럼 덮어준다. 여성의 몸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감내한 육체를 쓸어주고 껴안아주는 손은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타인에게 이처럼 소탈한 방식으로 온기와 존중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마땅한 대접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의 몸은 비단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성적인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정희진 선생에 따르면, 전시에 일어나는 피점령지 여성에 대한 강간은 상대 남성 공동체를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전략의 일환으로 실행된다.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그 여성 자체가 아닌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모멸과 위협으로 의미화되기 때문에, 전쟁 시 집단 강간은 상대 집단의 재생산과 문화 및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만 명의 아시아 여성을 유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군의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한 특수한 악행이 아니며, 남성중심적인 전쟁과 정복의 인류사에서 배태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카오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일본군으로 인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아이들을 죽였다. 카오 할머니의 딸은 버려진 자신을 입양해 이날 이때까지 키워준 엄마의 놀라운 고백 앞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딸에게도 해줄 것이냐는 감독의 물음에 “해야죠. 아이가 좀 더 크면 꼭 얘기해줄 거에요” 하고 다짐한다. 아델라 할머니는 죽은 남편의 묘에서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아들에게도 뒤늦게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건 내 인생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아들의 몫”이라며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 할머니는 아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돌아온 뒤 “무거웠던 영혼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델라 할머니는 영면에 든다. 13세에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일본에 갔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는 5년간의 위안부 생활이 끝나고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탔지만, 당도한 곳이 고향인 평양이 아닌 인천임을 알게 된다. 곧이어 북한으로 가는 국경이 막히고, 낯선 남한 땅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할머니는 자신이 몸을 의탁하던 곳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받아 자신의 아들로 키워낸다. 비록 끔찍한 트라우마로 얼룩졌지만 이들이 살아낸 삶 그 자체가 바로 용기의 증명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그들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남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왜 이런 전쟁을 합니까? 무기를 사들이는 게 평화가 아닙니다.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조선인 창녀’라 조롱하며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는 일본 극우세력,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외교 부처,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맞서, ‘아직 해방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몸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저 너머 어딘가 있을 평화의 땅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나비는 날아올랐다. 폭풍우가 치게 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