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후크 선장과 결투의 날
- 감독
- 찬드라세카란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장은숙, 안종덕, 장경희, 이민하, 마이클 돕슨, 미쉘 크리버, 최원형, 박영화, 변종필, 고성일, 한경화, 이자옥
춘사 나운규 의 28주기 추모작품 신상옥 감독의 < 벙어리 삼룡 (1964)>은 “춘사 나운규의 28주기 추모작품”이라고 홍보되었다. < 오몽녀 >를 유작으로 남기고 1937년에 영면한 나운규는 1929년에 < 벙어리 삼룡 >을 감독하고 또 그 자신 삼룡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리뷰에서는 한결같이 마지막의 화재 장면에 1,000여명의 비(非)전문배우(엑스트라)가 동원되어 공들여 촬영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출세작 < 아리랑 (나운규, 1926)>에서부터 광인, 부랑아, 떠돌이 등 방외인 연기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구축한 배우 나운규에게는 계급적 원한에 사로잡힌 벙어리 캐릭터가 꼭 맞는 옷처럼 어울렸을 것이고, 역시 <아리랑>에서부터 수백, 수천명 농민이 등장하는 몹씬 촬영을 시도했던 감독 나운규에게는 원작에 나오는 화재 장면이 탐나는 스펙터클이었을 것이다.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 프린트가 유실되어 신상옥의 <벙어리 삼룡>이 얼마나 그에 대한 오마쥬를 표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일단 위의 화재 장면에서 신상옥이 공을 들인 것은 수많은 엑스트라 촬영이 아니라 순덕아씨에 대한 삼룡의 ‘헌신’이었던 걸로 보인다. 나도향의 원작소설(1925)에는 불타는 집에 뛰어든 삼룡이 제일 먼저 오생원을 구해내고 다음으로는 자기 몸이 불에 상하는 것도 잊은 채 순덕아씨를 구하면서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씨를 구해냈다는 사실에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띄우면서 죽어가는 삼룡의 사랑과 헌신이 클라이막스가 되는 셈이다.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이 원작의 결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반면, 신상옥의 작품에서는 삼룡의 손에 구출된 순덕아씨가 삼룡에게 ‘서방님(광식)’도 구해달라고 청하자 삼룡이 마지못해 다시 불속에 뛰어들어 광식을 구해내다가 둘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그 마지막 순간 과연 삼룡이 “평화롭고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피터팬 콤플렉스 왜 원작이나 나운규의 버전과 달리 신상옥의 작품에서는 삼룡이 광식과 같이 불속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되었을까. 영화에서 내내 순덕아씨와 삼룡의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처럼 그려지기 때문에, 마지막에 삼룡에게 남편도 구해달라며 간청하던 순덕아씨는 결국 화마(火魔)에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은 셈이 된다. 원작에서 삼룡은 살려달라는 광식을 불구덩이에 남겨두고 순덕아씨만을 구한 후 숨을 거두기 때문에 삼룡과 광식 둘 다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신상옥 버전에서는 순덕아씨의 청 ‘때문에’ 삼룡이 광식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순덕아씨는 아들을 남편이 있는 사지로 몰아넣은 여자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루나무 강가를 거닐며 삼룡이 어리광부리던 모습을 회고하는 순덕아씨의 모습은 자신을 성가시게 하던 남성 가족들을 다 ‘처리’하고 홀가분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던 봉건주의자 남편과 성장을 멈춘(삼룡의 장애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피터팬 콤플렉스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아들 없이 이제 홀로 서게 된 몰락양반 가문의 딸. 당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였던 정병욱은 이 영화에서 삼룡과 순덕아씨를 학대하는 광식의 행태가 “지나치게 지루하고 참혹”하다며 이를 “악의 과장된 표현”이라 비판한 바 있다. 박노식 이 연기한 광식은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삼룡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양반의 예법을 운운하는 순덕아씨를 고까와하며 결혼 첫날부터 폭행한다. 정병욱은 “삼룡을 뭇매질을 하고 쇠스랑으로 마구 찍어대고 새댁을 걷어차고 할 적마다 곁 좌석에서 혀를 차고 비명을 올리고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며 악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전통에 어긋나는 표현이나 수법”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1) 삼룡의 지고지순함과 대비시키기 위해 광식의 악함을 부각시키는 것은 멜로드라마의 장인인 신상옥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광식의 폭력성은 삼룡처럼 피터팬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성장을 거부하는 아들이 지니는 철없음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작에는 없던 식모 범실( 도금봉 분)의 “품에서 사내가 됐”던 광식이 그녀와 맺는 육체적 관계는 삼룡이 순덕아씨와 맺는 지순한 관계와는 얼핏 대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커플의 투샷이 모두 모자(母子)처럼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향토색짙은 문예작품 2) 물론 이런 현재적 해석과 무관하게, 당시 언론과 평단의 관심은 <벙어리 삼룡>이 1964년의 “최우수 영화,” “예술성을 살린 작품”으로서 아시아영화제, 샌프란시스코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등에서 본선에 진출하거나 수상을 했다는 점, 국적불명의 “청춘영화”가 판치는 국내 극장계에서 관객 21만명을 모아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점에 쏠려 있었다. 비록 “테마와 감각에서는 낡았”지만 “스타일면에서는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3) , 무엇보다 벙어리 삼룡 역을 평소 반듯한 지식인 캐릭터에 어울리던 김진규 가 맡았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이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과 더불어 남우주연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1) 정병욱, “영화수상: 학대 속에 피어난 인간미,” <동아일보> 1964.12.17. 2) 진(振)의 <벙어리 삼룡> 리뷰(경향신문 1964.11.16.) 제목. 3) R, “베니스 영화제에서 장려상을 탄 <벙어리 삼룡>,” <영화예술> 1966.4. >> 벙어리 삼룡 고화질 VOD 보러가기 <<
오래도록 꼭 기억해야 할 우리 애니메이션 수작(秀作) ‘ 오세암 ’ 한참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는 연령의 자녀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면 어떤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로 디즈니의 명작들이 떠오릅니다. 90대를 장식한 < 인어공주 >나 < 라이언 킹 >, < 미녀와 야수 > 등은 물론이거니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 피터팬 >이나 < 신데렐라 > 등 고전들도 있겠죠. 헌데 이런 디즈니 작품이 아닌 우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불행히도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 기억해내야 하는 수준입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이 숫자도 적고, 또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죠. 하지만 2003년에 개봉한 < 오세암 > 만큼은 절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감성을 위해 DVD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길 바랍니다. < 오세암 >은 2003년 개봉 당시 관람한 관객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마케팅과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한 극장측의 몰이해로 인해 소규모 개봉관과 짧은 상영기간 동안 관객들을 맞이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시점에선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는 성적으로요. 특히 지난 수년간 여러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나름의 성적을 거두면서 극장가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인한 가족관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에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오세암>은 국내 흥행 실패 이후 이듬해 제28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는 잊혀져가고 있었죠. 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원작으로 만든 < 오세암 >은 내용 면에서 일반적인 흥행성을 갖춘 작품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 슈렉 >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인들까지 환호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슬픈 동화 애니메이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고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입니다. <오세암>에는 남매 간의 애틋한 정, 부모가 없지만 꿋꿋한 아이들의 의지,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그리고 너무나 눈물나는 죽음까지 많은 드라마 요소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을 가족이 함께 봤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고, 부모 또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연의 모습을 정말 맛깔스러운 색감으로 표현하여 외국의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된 영상을 보여주는 것 또한 매우 가치가 있죠. 작품의 배경은 설악산 백담사와 관음암인데 작품을 감상하고 가족여행을 통해 실제 배경을 방문하는 것은 그야말로 산교육이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애니메이션’ 만이 할 수 있는 힘이겠죠. 인터넷서점을 뒤져보니 아직 < 오세암 > DVD가 판매 중입니다. 어지간한 책 한권 가격보다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더군요. 자녀들에게 권할 동화책을 주문할 때 <오세암>도 같이 장바구니에 넣으시는 센스 있는 부모님이 되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6.25 동란이 지나고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든 196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서구 문명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극장이었다.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필름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종로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대형 극장가로 옮겨오게 되었고 이것은 당시 국내 대중 문화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곧이어 한국에서 최초로 상업 애니메이션이 공개된 것도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었다. < 피터팬 >의 성공 이후, 국내 극장가에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대작 애니메이션들이 속속 개봉된다. 특히 국내 최대의 흥행관으로 군림해온 대한극장은 초창기 애니메이션의 덕을 가장 많이 봤던 극장 중 하나로서 화제의 해외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연속 유치하게 되는데, 1961년에 개봉된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걸리버 여행기>와 이듬해 여름 개봉된 월트 디즈니사의 < 신데렐라 > 등은 초유의 흥행 기록들을 수립하며 오랜 기간 동안 장기 상영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외 수입 애니메이션들이 가져온 영향은 문화계뿐만이 아닌 사회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어 나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 볼 만한 사실은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기법을 이용한 영상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했다는 것이었다. HLKZ(1956년 10월 개국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그러나 1961년 화재가 발생해 방송을 중단했고 이후 KBS에 권리를 넘기게 된다)의 전파를 타고 송출되기 시작한 < 럭키 치약 >의 CF 시리즈는, 당시 HLKZ 방송의 미술을 담당하고 있었던 문달부 선생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용 광고였지만 동화와 원화, 그리고 촬영 과정을 거쳐 완성된 콤마 촬영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정의되고 있다. 럭키 치약 CF 문달부 선생에 의해서 최초로 시도된 애니메이션 기법의 상업용 광고들은 초창기 제약 회사와 식품 회사를 중심으로 상당량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일반 실사 광고들과 달리 그림에 의해 표현되는 과장과 함축의 묘미 때문인지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된다. 박카스 CF 이후 상업용 광고 애니메이션들은 초창기 한국 영상 제작 분야에 뚜렷한 한 줄기를 형성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되는데, 색깔이 들어간 컬러 애니메이션을 비롯하여 극장 상영용 시네마스코프판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심지어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합성된 한국 최초의 특수 촬영 애니메이션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상업용 광고 제작물의 편수가 늘어나게 되자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애니메이터들이 출현하기에 이른다. 국립영화제작소 출신의 한성학 , 박영일 , 정도빈 트리오와 < 활명수 >의 CF로 유명한 엄도식 , 그리고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출로 각광을 받았던 신동헌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신동헌 이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 진로 소주 >의 광고 애니메이션은 사전에 음악을 녹음하고 그림을 그리는 디즈니 방식의 선녹음, 후작화에 의한 24 프레임의 풀 애니메이션으로서 신동헌 감독 특유의 리듬 감각이 등장인물들의 경쾌한 움직임과 함께 앙상블을 이룬 수작으로 당시 상품의 시장 점유 판도를 바꾸어 놓았을 만큼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진로 소주 결국 이 광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신동헌은 마침내 지금까지 국내에서 그 누구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대형 프로젝트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된다. 바로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 홍길동 1967 >이 만들어 질 수 있는 토양을 닦아 놓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