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처: 오후의 정사
- 감독
- 니키하라 순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다카오 사키코, 미우라 마사키, 엔도 마사시, 시미즈 키리코
하나, 김정민의 영화를 보았다. < 감자 >(2018)가 2019년에 가장 뜨거웠던 단편영화 중 한 편이라는 거, 나는 몰랐다. 당연히 김정민이란 감독의 이름도 알 리 없었다. 그러다 < 긴 밤 >(2020)이란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2020년에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절대악몽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은근히 < 기생충 >(2019)에 딴지를 거는 듯한 영화에 매혹당하는 데는 단 몇 분이면 족했다. 너무나 예쁜 컬러 – 근래 김정민이 만드는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다 – 로 포장된 세계는 아마도 반지하나 지하로 보이는 어떤 공간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기괴한 행태, 혹은 사건은 페미니스트들이 기겁하고 입을 막을 그런 류의 것이다. 당연히 영화제마다 받아들이는 형국이 극과 극으로 다를 수밖에 없을 터, 사실 그것은 김정민이란 감독이 그간 만들어온 수십 편의 단편영화가 겪었을 수난의 한 예에 불과하다. 내가 아는 한 제일 먼저 나온 김정민의 영화는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라는 제목의 2016년 작품이다. ‘홍상수 영화’라니. 홍상수에 관한 영화인가 싶었는데 그야말로 홍상수 영화를 따라가며 흉내 낸 그런 영화다. 극 중 대사를 빌리자면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보다 똑같이 베끼는 게 영화제 취향에 맞을 것 같다’라는 논지다. 영화제 취향을 어설프게 간파한 죄인지, <홍상수 영화를 찍기로 했다>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영화제의 예심을 보는 수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며 여기저기 떠돌다 사라진, 그런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김정민이 방향을 튼 거 같지는 않다. 노골적인 베끼기는 아니어도 특정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거나 오마주를 바친 듯한 영화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전개되었다. 내가 대충 감을 잡은 감독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홍상수, 봉준호, 왕가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장 뤽 고다르, 오즈 야스지로, 기타노 다케시, 스탠리 큐브릭, 폴 토마스 앤더슨, 허준호, 이마무라 쇼헤이, 미카엘 하네케’ 등이다. 하나같이 위대한 거장의 이름이니 창피함을 무릅쓴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 참 겁도 없다 싶다. 그런 경향의 작품 가운데 피식대며 본 작품도 있고, 썩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다. 2018년 작품 <세 아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4:3 화면비에 흑백으로 찍은 카메라의 눈높이가 정확하게 오즈 야스지로의 그것과 일치하고, 제목(특히 영어 제목 - A Winter Afternoon)이나 음악도 영락없이 오즈의 그것이다. 만약 오즈가 이 영화를 본다면 네 인물이 빚는 관계의 이야기에 슬며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단, 온전히 오즈의 인장만 박힌 것도 아니다. 김정민의 감성과,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21세기 청년의 분위기가 이건 디지털영화라고 말한다. 물론 김정민이 그런 영화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시도가 별로 바뀌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색채를 갖춘 작품도 하나둘씩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감자>가 그런 작품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5년에 걸쳐 어림잡아 스물다섯 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근작인 <감자>와 <긴 밤> 외에 주목을 받은 영화는 드물다. ‘숏컷 시리즈’라 이름 붙인 영화들은 습작처럼 보이고 완결성이 아쉬운 터라 그간 영화제에서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왼다리>(2019)와 <첩첩산중>(2019)처럼 느슨하게 연결된 영화의 경우 나란히 보지 않으면 매력을 놓쳤을 수도 있다. 이렇게 이유를 따져 보면 너무나 많은 (영화제) 불합격의 사유를 꺼낼 수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 하나를 들자면 ‘이단성(異端性)’ 때문이라 하겠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의 앨범 재킷을 먼저 보았으면 한다. 그룹 ‘스틸리 댄’의 명반 시대를 연 1972년 앨범 <Can’t Buy a Thrill>의 재킷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김정민 특유의 색감이 궁금하다면 이 앨범의 재킷을 보면 된다. 노랗고 빨간 색깔에 변형을 가해 어딘지 인공적이고 조잡한 인상을 주는데, 김정민은 여기에 파스텔 톤을 좀 더 강화해 ‘이것이 김정민의 세계다’라고 주장한다. 위 재킷에서 컬러보다 더 신경 써서 보아야 할 건 소재다. ‘거리의 여성, 나체의 남자와 여자, 욕망을 은유하는 싸구려 물품’은 재킷의 컬러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포스트 히피 시대에나 어울릴 것들인 게 사실이다. 스틸리 댄의 앨범 재킷이 종종 육감적인 소재를 다루긴 하지만, 이 앨범의 키치적 취향은 다른 앨범 재킷의 고상한 톤과 거리가 멀다. 21세기에 저런 재킷을 앨범의 커버로 사용하는 팔푼이는 없을 게다. 김정민의 영화가 저런 소재나 주제를 다루지 않지만, 시대와 주변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생산해 내는 그의 영화와, 위의 재킷이 주는 인상이 스무드하게 오버랩된다. 이상한 세계의 앨리스의 눈으로 현실의 세계를 보려는 정신 나간 시도. 심지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살짝 다룰 때에도 현실감보다 생뚱맞은 시선을 들이대곤 한다. 굳이 김정민의 영화를 독립영화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주류 독립영화의 경향과 그의 영화는 어떤 연결점이 없다. ‘똑같은 고민, 지배적인 정서, 하나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독립영화와도 거리가 먼, 김정민의 영화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발견된다. 만듦새에서 부족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개성을 찬양한다. 게다가 그는 한 해에 최소 다섯 편 정도의 영화를 쏟아낸다. 그건 열정의 다른 얼굴이다. 아무도 안 봐주는데 이렇게 미치도록 영화를 만들어내는 열정, 무기력한 영화들 사이에서 그 에너지가 어찌 각별하지 않겠나. 둘, 김정민의 집을 찾아서. 몇 개월 전, 어찌어찌 <감자>와 <긴 밤>을 본 뒤로 나는 김정민이란 감독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당시엔 그가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우연히 지인이 그를 한 영화제에 초대했다는 걸 알게 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했다. 짐작했듯이 영화와 별로 상관없는 학교를 나와 주변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찍는다고 했다. 진짜 발견은 유튜브에서 일어났다. 거기에 그는 ‘정민김’이란 집을 지어 그와 친구들이 찍어온 영화 전부를 공개해 두었다(<감자>와 <긴 밤>은 판권이 팔린 건지 제외됐다). 유튜브의 거대한 세계에서 김정민이란 이름으로 집을 지었다간 검색해도 쉬 찾기 힘들 텐데, 정민김으로 검색하면 그가 세운 영화의 집이 바로 뜬다. 동영상 항목을 누르면 스물다섯 편이 넘는 영화와 영상이 쭉 나열된다. 보통은 영화 속 이미지 하나를 따서 영화를 소개하기 마련인데, 김정민은 영화와 어울릴 만한 이미지를 따로 구해 썸네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아주 예쁜 디자인 하우스의 홈페이지 같은 인상을 준다. 듣기로, 심리학을 전공한 서른 청년이라는데, 예쁘게 세워놓은 유튜브의 집과 과감하고 와일드한 영화 중 그의 본디 모습이 어디에 가까울지 마구 궁금해진다.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김정민은 필름과 거리가 먼 세대다. 그가 열 살을 지날 즈음 세상의 영화는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러니 극장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보는 행위가 그에게 익숙하다면 거짓말이다. 당연히 그즈음 영화 매체는 디지털을 화두로 삼아 영화의 미래를 논의했다. 초기에 디지털로 찍은 초기의 박철수의 영화에 대고 비판했던 글들이 기억난다. 그 영화는 디지털의 자세로 찍지 못했다고 뭇매를 맞았다. 대상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느니, 카메라의 움직임이 필름의 그것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느니, 그 영화는 그런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금 그 평자들이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이 짧은 시선으로 예상하고 그렸던 디지털 영화가 나오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영화 산업이 디지털로 재편된 현재, 대다수의 영화는 그들이 말했던 영화와 전혀 딴판이다. 적어도 이미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디지털 시대의 영화는 밋밋하고 시시해졌다. 극장에 걸리는 대중영화 사이에서 독특한 이미지를 발견하는 건 필름 시대와 비교해 더 힘들어졌다. 필름에서 벗어나 뭔가 혁명적인 이미지가 나올 거라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가, 디지털은 그냥 ‘표준화된 컬러와 이미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시대로 발전했다. 앞서 말했듯이 김정민은 필름 시대의 영화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고전적인 필름 시대의 영화와 뮤직비디오 같은 비디오 시대의 이미지 사이에 위치한다. 필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만, 동시대의 디지털로 영화를 만드는 데 별로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같지 않다. 필름의 질감을 흉내 낸 영화도 만들고, 다수의 독립영화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디지털 질감의 영화도 만들면서 그는 어느덧 김정민스러운 디지털 영화를 하나씩 내놓는 중이다. 물론 내가 본 그것들이 최후의 완성된 형태는 아닐 것이다. 김정민스러운 컬러를 보여준다고 해서, 김정민스러운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고 해서, 김정민스러운 간략한 편집을 보여준다고 해서 이게 김정민의 디지털 영화다, 라고 말할 생각은 아직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고작 4년에서 5년 정도 영화를 만들어온 초보 작가일 따름이다. 무어 그리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겠나. 그렇다면 인터넷, 유튜브에 있는 집을 찾아가면서까지 김정민이란 감독의 영화에 왜 호기심을 보이는지 나는 설명해야만 한다. 대답은 그가 영화를 생산하고 관객과 만나는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포지션을 영화감독이라는 데 두고 있으며, 그 직업에 맞게 꾸준히 영화를 찍는 게 자신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렇게 영화를 찍다 경지에 오르면 다행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감독이 영화만 찍다 죽었다고 해서 욕을 들을 일은 없다. 코로나 시대에 영화와 극장의 운명을 두고 여러 예측이 오간다. 흥미로운 말씀도 있고 별것도 아닌 걸 대단한 양 예언한 글도 읽었다. 지금은 습관이 변하는 시간이다. 그게 언제 어떻게 문화를 형성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문화가 형성되리라는 것뿐이다. 관객의 수가 줄어든 것을, 극장이 문을 닫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나는 거꾸로, 우리가 그동안 너무 많은 영화를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마을마다 극장이 들어선 것이, 골목마다 들어선 교회만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의 영화 과소비가 극장을 편의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에도 김정민은 멈추지 않고 영화를 찍는다. 아마 이런 시기를 반영한 영화를 찍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 <다큐멘터리: 일렉트릭 러브>라는 괴상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유튜브의 자기 집에 선물처럼 올려두었다. 향후 영화와 영화 문화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내겐 김정민 같은 감독이 영화를 찍는다는 것으로 족하다. 평범한 감독이 만든 아무 감흥 없는 영화 열 편보다, 내가 사랑하는 감독의 영화 한 편 한 편이 더 소중하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김정민은 그렇게 만든 영화들로 자기 집을 만든다. 그게 꼭 극장이 아닌들 무슨 상관인가.
한 해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애니메이션은 얼마나 될까? 몇몇 페스티벌들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출품작 수가 천 편을 훌쩍 넘고, 최종 상영작만 해도 수 백 편에 달한다. 물론 개중에는 중복되는 작품들도 있겠지만, 그 비율이 30%를 넘지 않는다. 이러니 어림짐작으로 세어 봐도 아마 수천 편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렇게 숫자로 풀어보면 페스티벌의 최종 상영작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경합을 뚫고 선택되어 어렵사리 관객들과 조우하게 되는 셈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수많은 페스티벌은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위에 저마다의 색을 입혀 소통과 축제의 장을 펼쳐나간다. 이곳에서는 극장 또는 TV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주는 실험과 시도들이 가득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조화 혹은 줄타기 속에서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제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험성 강한 작품들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관객들에게 색다름을 선사하기도 한다. 페스티벌이 준비한 다채로운 성찬 속에서 때때로 숨은 진주를 발견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나는 페스티벌을 찾는다. <루프 섹스 Roof Sex>(2002) https://youtu.be/1aodpb3vFU0 2002년 프랑스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쟁쟁했던 경쟁작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띈 작품이 있었다. 2분 남짓한 짧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한 편이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PES의 <루프 섹스 Roof Sex>(2002)라는 작품으로 감독의 엉뚱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나 기막힌 반전을 그려낸 단편이었다. 당시 신예였던 PES는 이 작품으로 ‘Jean-Luc Xiberras’라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게 된다. 이후 감독은 일상의 재료를 활용하여 톡톡 튀는 시각적 상상력으로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고 있으며, <신선한 구아카몰리 Fresh Guacamole>로 2013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르게 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애프터눈 클래스 Afternoon Class >(2015) https://vimeo.com/215498188 시그래프 아시아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컴퓨터 그래픽스 축제인 미국 시그래프의 아시아 버전 격이다. 2008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해마다 아시아 국가를 순회하며 개최되는 행사로서 첫 회부터 매우 가까이서 페스티벌의 성장을 지켜봐 왔다. 시그래프 아시아는 디지털 매체 환경과 기술에 주목하며 최신 연구 성과와 솔루션을 공유하는 장으로 특히 컴퓨터 기술의 시각적 현란함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컴퓨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통해 소개된다. 그간 한국 작품들이 종종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수상과는 다소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2015년 제8회 행사에서 드디어 한국 작품이 일을 냈다. 오서로 감독의 < 애프터눈 클래스 After Class >(2015)가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의외로 심플하다. 수업 도중 졸음과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음직 한 일상적인 모습을 희극의 고전 양식인 러닝 개그 장치와 영리하게 접목시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연출한 것이 다국적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런 심사위원단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작품이 상영될 때마다 폭소로 화답했다. 개인마다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즐거움의 당위는 역시 화려한 테크닉과 기술적 우위 보다는 감성의 전이와 공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아버지의 방 My Father’s Room >(2015) 여러 영화제들 중에서도 특히 이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열정 때문에 빠져드는 영화제가 있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영화제의 가치와 철학을 위해 노력하는 열의와 도전에 동참하고 또 함께 지켜나가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9월 남산에서 열리는 인디애니페스트는 여러모로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영화제들 중 하나이다. 2005년 독립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에게 상영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장으로써 그 첫발을 내디뎠던 것이 벌써 올해로 열세 번째 여정을 맞게 되었다. 초기 영화제를 찾았던 관객들은 어느덧 창작자로 성장하여 자신의 작품을 들고 다시 영화제를 찾기도 한다. 근래에 들어와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해외 유수의 영화제들에서도 대거 수상하면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위상이 어느 때보다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바로 얼마 전 막을 내린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2017)’에서 장나리 감독의 < 아버지의 방 My Father’s Room >이 학생 경쟁 부문 특별상(Special Mention)의 영예를 안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의 방>은 한 여성이 겪은 가족 내 폭력의 깊은 상처를 그려낸 단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성장 후 연민과 뒤섞이면서 펼쳐지는 복잡한 심경의 층위를 시각적인 상상력으로 변주하고 있으며, 유려하고 절제된 드로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미 지난해 인디애니페스트2016에서 대상 ‘인디의 별’을 수상하며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찬사를 받은 바 있으며, 벨기에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도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면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유튜브 시대가 열리기 이전과 지금의 영상플랫폼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보고 싶은 작품들을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하루 종일 영화제 이곳 저곳을 바쁘게 누비며 돌아다녔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간편하게 키보드 클릭 하나로 원하는 영상을 휴대폰으로 쉽게 찾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급변하는 영상 매체 환경을 온몸으로 거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귀찮게 페스티벌을 찾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곳에 가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답하겠다. 감독을 직접 만나 알게 되는 내밀한 작품의 세계와 창작의 자극, 관객과 감독 간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감, 그리고 무엇보다 페스티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의 현존감 등이 아직은 내 휴대폰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보다 더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온다.
타이틀이 뜨기 전의 짧은 인터뷰 컷들. 슈퍼히어로들 저마다의 고충이 이어진다. 악과 맞서 싸우며 세상을 지키고 평화를 수호하는 그들이 한번쯤 느꼈을법한 사소하고도 중요한 불만과 아쉬움들이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아이를 돌보는 가정부가 된 것 같다는 푸념부터 남성들만 히어로 대접 받는 걸 들러리로 지켜볼 수 없다는 헤로인의 항변이나 이중생활로 인해 불편한 연애관이나 결혼관까지 털어놓는 속내가 제법 진솔하게 들린다. 거기에 자신의 힘을 물려받은 2세들의 정체성 문제나 성장통까지 포함되면 사태는 조금 심각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의 줄 고소가 이어지고 정부의 제반시설 복구에 대한 재정적 부담감까지 더해져 결국 더 이상 슈퍼히어로로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일반인보다 더욱 피곤한 삶을 살게 되는데... 픽사의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 인크레더블 >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하는 유쾌하고 독특한 슈퍼히어로물이다. 그간 장난감이나 곤충, 동물에 국한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던 픽사에서 최초로 사람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으로 종전의 모든 기록을 모조리 깨부수고 제목 그대로 ‘인크레더블’한 비평적 · 흥행적 성과를 거뒀다. 슈퍼히어로 가족 < 아이언 자이언트 >로 휴머니즘 가득하고 복고 지향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인 바 있는 브래드 버드 감독은 자신이 좋아했던 60년대 스타일의 만화책들과 스파이 영화들에서 힌트를 얻어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여기에 자신의 유년시절과 애니메이터로 회사에서 근무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뒤섞어 일반적인 영웅담과는 조금 다른 재미와 감수성을 드러냈다. 슈퍼히어로의 액션과 로망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일과 가족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애초 이 작품은 워너브라더스에서 셀 애니메이션으로 준비 중이었으나, <아이언 자인언트>가 재앙급 흥행 참패를 당해 입지가 좁아지자 자리를 옮겨 칼아츠 시절 자신의 친한 동기이자 픽사의 수장이 된 존 래스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픽사에서 완성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선 보기 드물게 악당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며(극중에서 에드나가 그렇게 망토 반대를 외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픽사에선 유래 없이 사상 최초로 외부 감독이 영입돼 단독 각본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란 기록을 남겼다. 이미 다섯 편의 성공적인 CG 애니로 기술력을 쌓은 픽사의 모든 노하우가 발휘된 작품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런 인간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스피디한 추격전, 상상한 그 이상의 액션 스케일 등이 어우러져 개봉 전에 돌았던 기우를 말끔히 날려버리며 첫 주말 3일 동안에 7,047만불을 쓸어 담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상을 비롯해 제 32회 애니 어워드 7부문을 독식하며 2004년 최고 애니메이션으로 우뚝 섰다. 브래드 버드의 <인크레더블>에 대한 음악적 아이디어는 확고했다. 자신이 스토리를 떠올리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5-60년대 수사물이나 스파이 뮤직 스타일을 원했던 것. 50년대 말 헨리 맨시니의 <피터 건>을 필두로 < 핑크 팬더 > 시리즈나 6-70년대를 풍미한 존 배리의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그리고 랄로 쉬프린의 <미션 임파서블>과 제리 골드스미스의 < 0011 나폴레옹 솔로 > 같은 TV 첩보시리즈 테마가 그 대표적인 예로, 재즈 사운드의 경쾌한 스윙감과 긴장감 넘치는 그루브함이 무엇보다 이 코믹하고 신나는 활극에 잘 어울릴 거란 판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첫 선택은 당연하게도 스파이 뮤직의 대가, 007 사운드의 아버지 존 배리였는데, 그는 자신의 초기 스타일을 반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몇 곡의 데모 작업만 진행하다 결국 하차하고 만다. 만약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배리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의 경력 중 시작과 끝을 완벽하게 잇는 결과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협업은 불발되었고 그 기회는 버드와 <아이언 자이언트>로 만났던 마이클 케이먼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또한 스코어 진행 중 케이먼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게 되며 중지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신예 마이클 지아키노가 그 임무를 물려받게 된다. 그 당시 인기 TV시리즈 < 앨리어스 >로 첩보물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던 터라 그의 스타일이 눈에 띈 점도 한몫했다. 마이클 지아키노 60년대의 강렬한 빅밴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원했던 브래드 버드 감독을 위해 마이클 지아키노는 멀티 채널의 최신 디지털 레코딩을 포기하고, 그 당시 녹음하던 방식 그대로 아날로그 레코딩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그 시절의 분위기를 담아보고자 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덕분인지 <인크레더블>의 레트로한 사운드는 놀랍기 그지없다. 브라스 섹션의 힘찬 팡파르와 울부짖는 와와 사운드는 물론, 리드미컬하고 이국적인 퍼쿠션과 비브라폰의 명징한 긴장감, 그리고 스케일의 위용을 드러내는 압도적인 스트링이 한데 어우러진 스코어는 가히 존 배리의 재림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이미 < 쥬라기 공원 >의 게임과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의 게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메달 오브 아너>를 통해 존 윌리엄스 사운드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바 있는 지아키노였기에 <인크레더블>에서 존 배리식의 변주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게임계의 존 윌리엄스라는 평가를 들었던 지아키노지만 사실 이 작업이 당시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였기에 긴장했을 법도 한데, 그는 50년 경력의 노련한 베테랑 작곡가처럼 숙성된 재즈 사운드로 감독과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인크레더블>의 음악은 닐 헤프티의 <배트맨> 테마처럼 날렵하고, 존 배리의 < 007 여왕폐하 대작전 >처럼 우아하다. 노골적인 클리셰와 컨벤션 덩어리지만, 그 유희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기에 즐겁게 다가온다. 존 모리스가 멜 브룩스 영화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재기발랄함보다 더 세련되고 영리하다. 포문을 여는 ‘The Glory Days’부터 그 명확한 색채를 드러낸다. 웅장한 팡파르 뒤로 펼쳐지는 올드 패션의 스파이 뮤직은 익숙하면서도 능청스럽다. 과잉의 빅밴드 사운드로 애니메이션 특유의 위트와 과장된 미키마우징을 소화하며 자칫 존 배리 스타일에 함몰될 수 있는 요소들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Mr. Huph will see you now’와 ‘New and Improved’, ‘Kronos Unveiled’, ‘Lithe or Death’ 등은 제임스 본드 음악에 대한 훌륭한 지아키노식의 번안으로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테마를 덧입혀 솜씨 좋게 변형 가공하고 있으며, ‘Road Trip’과 ‘Marital Rescue’에서는 존 배리의 < 007 위기일발 >에서 흐르던 ‘007 Takes the Lektor’란 곡의 컨셉을 의도적으로 차용해 장르에 대해, 스타일에 대해 오마쥬하고 있다. 다시 슈퍼히어로로서 일을 하며 활기를 찾는 몽타주 씬에 흐르던 ‘Life’s Incredible Again’이나 ‘Lava in the Afternoon’, ‘Off to Work’는 부드러운 라운지 사운드로 낭만적인 모험담의 여유와 극적인 이완감을 선사하고 있으며, ‘Bob vs. the Omnidroid’나 ‘Saving Metroville’은 강력한 파워와 묵직한 긴장감을 오롯이 간직한 액션 스코어로 손색이 없다. 찬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찔한 질주감을 던져주는 ‘100 Mile Dash’에선 비브라폰과 뮤트 트럼펫의 현란한 대쉬와 스트링의 숨 막힐 듯한 보잉을 맛볼 수 있으며, 대망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The Incredits’는 그간 등장한 모든 테마의 총합이자 스타일의 과시로 지아키노가 들려줄 수 있는 최상급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인크레더블> 이후의 영화음악들 이후 그는 이 아이디어를 공유한 실사판 슈퍼히어로 영화 < 스카이 하이 >의 음악을 담당하며 본격적인 영웅담 팡파르에 도전했고, 60년대 첩보 시리즈를 블록버스터로 바꾼 < 미션 임파서블> 3 , 4편의 음악을 내리 맡으며 랄로 쉬프린의 테마를 재해석한 첩보물 사운드를 완성했다. 어디 그뿐인가. 브래드 버드와 다시 함께 손을 잡은 < 라따뚜이 >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첫 지명됐으며, <업!>으로 대망의 아카데미를 비롯해 십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존 카터> 와 <슈퍼 에이트> 는 그에게 드디어 (‘게임계의’라는 한계를 떼고) 차세대 존 윌리엄스가 될 것이란 찬사를 붙여주었다. 그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음악가다. 이 모든 게 바로 <인크레더블>의 사운드트랙에서 시작되었단 사실. Track List 1. The Glory Days 2. Mr. Huph Will See You Now 3. Adventure Calling 4. Bob vs. The Omnidroid 5. Lava in the Afternoon 6. Life's Incredible Again 7. Off to Work 8. New and Improved 9. Kronos Unveiled 10. Marital Rescue 11. Missile Lock 12. Lithe or Death 13. 100 Mile Dash 14. A Whole Family of Supers 15. Escaping Nomanisan 16. Road Trip! 17. Saving Metroville 18. The New Babysitter 19. The Incred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