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둠이 무서워요
- 감독
- 연수진
- 제작년도
- 2015
사진: Marry Ellen Mark, “ Apocalypse Now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 지옥의 묵시록 >(1979)은 당시 일본 개봉 제목 ‘地獄の黙示録’을 그대로 활용해 번역되었으나, 원제 ‘Apocalypse Now’는 사실 ‘바로 지금 이곳이 지옥’ 또는 ‘지금 이 순간이 세상의 종말’이라는 처연한 고발, 좌절, 참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개봉한 지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고(감독 확장판(Redux, 2001)을 기점으로 해도) 이후 직접적 영향을 받은 수작들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탁월한 전쟁 영화 중 하나’ 정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지옥의 묵시록>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넘어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 그리고 예술과 역사-현실의 경계를 짓이기는 정교하며 무자비한 실험이다. 이 영화는 내게 전쟁의 잔혹함을 넘어, 소리와 이미지가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고 내면의 심연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는 음악을 비롯한 창작 작업의 범위를 넘어 내 삶 전반에 깊이 스며들었다. 영화는 문명의 야만을 파헤쳤다고 평가받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1899)을 기반으로 하지만, 식민 시절 콩고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을 치환한 단순한 서술적 흐름에 기대지 않는다. 몽환적인 편집과 공간을 압도하는 사운드 디자인, 그리고 음산하게 폭발하는 음악들이 혼재하며 관객을 전장의 무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스무 살 무렵 친구의 강권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압도되는 경험을 했다. 특히 록 밴드 더 도어스(The Doors)의 <The End>(1967)가 흐르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불타는 정글 위를 비행하는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와 주인공 윌라드 대위(마틴 쉰)가 머무는 숙소 천장팬의 움직임이 하나의 악보처럼 맞물릴 때, 나는 영화 속에서 음악이 보조적 역할을 하는 배경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심리적 공간을 창조하는 도구임을 깨달았다. 불타는 정글과 헬리콥터, 천장팬, 그리고 윌라드 대위가 겹쳐지는 영화 초반부 영화 속 서사의 시작점인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은 니체적 의미에서 초인적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전체를 기준으로 무척 적은 분량인 그의 대사는 한 음절 한 음절이 묵직한 무게를 공유하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공포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그러니 공포와 친하게 지내야 해(Horror has a face... and you must make a friend of horror.)”라는 그의 읊조림은 전쟁터의 참혹한 현실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를 암시하며 질문한다. 영화에서 음악은 영상의 보조재가 아니라 핵심으로 자리하며 인물들의 심리, 이념, 광기를 대변한다. 헬리콥터 부대가 민가를 향해 무차별적 공격을 퍼붓는 유명한 장면에서 흐르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 Prelude to Act III)>은 단순한 감정 고양의 장치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하나의 장엄한 스펙터클로 완성하며 폭력에 대한 고발과 창작-예술의 경계, 동시에 오락 산업으로서의 영화라는 뒤엉킨 모순적 현실마저 깨진 거울마냥 선연하게 드러낸다. 커츠 대령, <발퀴레의 기행>이 흐르는 전투 장면 (사진: "Apocalypse Now"( 1 , 2 , 3 ), IMDb) 모임 별은 지난 25년간 소속이 없는 독립적인 밴드이자 브랜딩/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해왔다. 우리 팀은 분명 통상적인 영화음악 감독은 아니지만,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에 참여한 이후 꾸준히 학생 영화, 실험 영화, 저자본 영화 작업들에 참여해 왔다. 가능한 상업적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기 위해 애써온 우리에게,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 과정에서 감독과 출연진, 스태프가 함께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성의 미학과 실험 정신은 여전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최근 담당한 영화 < 폭설 >(윤수익, 2023)에서는 서퍼들의 몸을 때리는 차디찬 겨울 파도소리와 낡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에서 뽑아낸 극한적 소음들을,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와 랜덤 알고리즘 베이스의 VST 악기 패턴들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작은 실험들을 수행 중이다. 귀를 사로잡는 음률 보다는 반복되는 패턴 속에 미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주어, 청자가 음악을 뚜렷이 인식하지 않는 상태로 영화 속 서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폭설>과 <힘을 낼 시간>의 음악 (이미지 클릭)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업계 표준’에서 벗어난 활동 방식과 작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았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다양한 예술가들, 기관, 기업들과 함께 예술, 상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진 여러 실무 담당자의 고마운 배려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새로이 작업을 시작하는 독립적인 젊은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에게 작게나마 실질적 도움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고, 새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짐한다. 코폴라는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며 마주한 끊임없는 문제와 막대한 혼돈을 고스란히 작품 안에 담아내며 영화를 완성했다. 불확실성과 모순의 한복판에서 탄생한 작품은 단순한 작가의 종속물, 재현물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온전한 실체가 되었다. <지옥의 묵시록>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1979년의 최초 개봉 버전, 2001년 공개된 리덕스(Redux), 2019년 파이널 컷(Final Cut) 중 단연 리덕스 를 추천드린다. 조태상(모임 별 작곡가, 디자이너) l 모임 별( Byul.org )은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술자리 시낭송회에서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여전히 친한 친구들의 술모임이며,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녹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 중이다. 김경렴, 서현정, 최원겸, 황소윤, 오태경, 김수빈, 조태상, 장용석, 이선주로 구성되어 있다. 조태상은 모임 별에서 작곡과 디자인을 담당한다. 2012년 정규음반 <아편굴 처녀가 들려준 이야기>, 2017년 <밤도깨비들을 위한 선곡집>, 2019년 <주인 없는 금>, 2024년 <우리 개> 등을 발매했고,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 < 힘을 낼 시간 >(남궁선, 2024) 등의 영화에 음악 작업으로 참여했다.
샌프란시코 강력반 형사 하나가 단골 식당에 들른다. 언제나처럼 커피를 시키며 신문에 정신 팔린 형사. 그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사실 식당은 4인조 무장 강도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음에도 신문 삼매경에 빠진 형사는 종업원이 타준 커피를 받아 계산을 치르고 유유히 밖으로 나선다. 한 모금 커피를 맛보고서야 고개를 들고 식당을 쳐다보는 형사. 문에는 어느새 영업종료 간판이 걸려있다. 그가 나가자마자 작업을 개시하는 4인조 강도들. 손님과 주인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데, 식당 안쪽 문에 형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우뚝 서 있다. 그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강도들. 그들과 상관없이 형사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10년간 이곳에서 단골로 블랙커피를 마셔왔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너무도 단 커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형사의 협박에 영문을 모른 채 되묻는 강도들. 분명 그 혼자 서 있는데 ‘우리’라니? 그러자 스미스와 웨슨과 나라고 대답하는 형사. 그의 ‘스미스 앤 웨슨’ 총에서 불꽃이 튄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3명의 강도. 그리고 인질을 잡은 한 명의 강도에게 총을 겨누며 AFI에서 선정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대사 6위 에 오른 바로 그 말을 건넨다. “Go ahead, Make my day!” (덤벼봐, 오늘 다 죽었어!) “Go ahead, Make my day!” 7~80년대 가장 파급적이고 논쟁적인 경찰영화였던 <더티 해리> 시리즈는 그간 도덕 교과서에 나올법한 모범적인 경찰 이미지를 걷어차고 악을 악으로 제압하는 이이제이식의, 다소 불경한 태도를 보이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성능의 매그넘 44를 들고 언제나 인상 쓴 얼굴로 당당하게 등장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렇다고 공권력에 대해 불신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나름의 소신과 임계치를 갖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가 이전에 연기했던 마카로니 웨스턴 속 ‘반영웅’ 총잡이들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만 현재로 바뀌었을 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세력과 매스미디어의 탐욕 그리고 70년대 당시 인권 신장과 부흥으로 교묘히 법망을 악용해 피해가는 범죄자들과의 싸움은 과거 황무지 속 무법자들과의 결투와 다를 바 없다고 빗대는 듯하다. 히피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정치 못한 시선이나 보수·우경화된 내러티브가 종종 엿보이지만, 그런 동시에 사회적 입지가 약한 히스패닉과 흑인, 여성과 동양인을 각 시리즈마다 파트너로 택할 만큼 공정하고 진보적인 측면도 갖고 있었다. 그중 시리즈 사상 가장 흥행했던 < 서든 임팩트 >는 여러모로 더티 해리 영화들 중에서 인상적인 특징들을 보이는데, 우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일하게 직접 감독한 작품이자 영화 내 그의 파트너가 등장하지 않으며, 시리즈의 배경인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 센폴로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유일하게 범인을 처단하지 않고 묵과해주는 파격적인 엔딩을 취하고 있다. 그나마 변함이 없는 게 있다면 시리즈 내내(는 아니다. 3편만 제리 필딩이 맡았다) 음악을 맡아주던 랄로 쉬프린 정도랄까. < 미션 임파서블 > 테마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그는 재즈를 차용한 리드미컬한 악곡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창출해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미 오랜 기간 방영된 TV 형사극 <매닉스>나 피터 예이츠 감독의 <불리트>를 통해 이런 장르에 최적화된 바 있는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도 그루브한 리듬에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시니컬한 영화에 더욱 쿨한 감성을 채워 넣는데, 때론 멜랑꼴리한 라운지 음악으로 우수에 젖다가도, 재즈가 가진 즉흥성과 불협화음으로 혼돈의 시대상과 흉포한 야수성을 드러내고,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고유의 테마를 부여하며 최신 유행 스타일과 접목하는 등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물론 1편부터 5편까지 반복되는 더티 해리의 고유 선율은 존재하지만 이에 특별히 집착하기보단 더 확장되고 펑키한 사운드를 덧입히며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같은 형사의 단죄와 고독한 질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티 해리>에서 락킹한 일렉 기타와 도시감각 넘치는 재즈로 기본 베이스를 잡았다면 2편 < 이것이 법이다 >에선 으스스하고 사이키델릭한 여성 보이스를 극대화시켜 역동적이고 폭력적인 색채를 더했다. 3편 < 집행자 >를 건너뛰고 10년 만에 시리즈에 복귀한 4편 <서든 임팩트>에선 시대적 유행을 받아들여 기본 그루브한 재즈 사운드는 유지한 채 DJ 스크래칭과 무선 경찰 주파수를 믹스시킨 그루브하고 박력 넘치는 메인 테마를 완성해냈다. 이는 당시(1983년) 가장 화두를 이끈 허비 행콕의 ‘Rock it‘을 연상케 만드는 파격적인 힙합 비트로 최첨단 유행을 지나치지 않고 접목시킨 랄로 쉬프린의 노련한 감각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거기에 그루브한 베이스와 열정적인 브라스 섹션이 어우러져 쉽게 잊혀지지 않을 더티 해리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물론 메인 테마 외 다른 큐들도 언더스코어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전의 <더티 해리>와 <이것이 법이다> 때보다 원숙해지고 절정에 오른 쉬프린은 더 크고 풍부해진 스트링 편성에 목관부와 혼의 강조, 그리고 신디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다양하고 깊어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다 개인적이고 어두우며 침울해진 영화의 내용처럼 분열적이고 실험적인 큐들도 종종 눈에 띄는데, 트라우마로 가득한 놀이동산을 상징하는 카니발 사운드 (‘Remembering Terror’나 ‘Unicorn’s Head’)의 기괴한 변조와 인용은 여성 유린을 담은 남성 유희에 대한 음악적인 기믹이며, 악당들과 더티 해리와의 최종 대결에서 등장하는 ‘A ray of Light’같은 곡조는 얼핏 그가 주연하고 랄로 쉬프린이 음악을 맡았던 일련 서부극(<일망타진>이나 < 조 키드 >같은)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연상케 한다. 또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차 안에서 흐른 ‘Muder by the sea’의 초반부나 제니퍼와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You’ve come a long way’의 초반부는 라운지 스타일의 무드 곡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엔 더티 해리의 주된 테마 선율로 만든 엔딩 크레딧 때 흐른 로베타 플랙의 주제곡 ‘This side of forever’가 실려 있지 않은데, 그 연주 버전인 ‘San Francisco after dark’로 조금은 해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든 임팩트>는 랄로 쉬프린의 가장 황홀했던 전성기의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브렛 레트너 감독과 < 러시아워 >를 함께 하기 전까지 주로 TV물이나 마이너급 영화들의 음악을 담당하거나 재즈 콘서트 작업에 매진했다. 점점 거장이 되어간 액션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달리 인상적인 필모를 쌓지 못한 랄로 쉬프린은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을 런칭하며 여전히 현역으로 최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비록 상복도 작품복도 유난히 없던 그이지만, 누구나 들으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전설적인 음악을 만든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 중 하나다. 이견이 많았던 <더티 해리> 시리즈와 달리 전혀 이견 없는 스코어를 완성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빛나는 노력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랄로 쉬프린의 이 강력하고 매력적인 사운드트랙은 영상도서관(F-0444)에서도 만날 수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Murder by the Sea 3. Too Much Sugar 4. Frisco Night 5. Target Practice 6. The Road to San Paolo 7. Remembering Terror 8. Cocktails of Fire 9. Robbery Suspect 10. Ginley’s Bar 11. Another Victim 12. You’ve Come a Long Way 13. Darkness 14. Crazy 15. Hot Shot Cop 16. Alby and Lester Boy 17. The Automag 18. Unicorn’s Head 19. A Ray of Light 20. Stairway to Hell 21. San Francisco After Dark (End Titles) Bonus track: 22. Main Title (Alter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