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 EVOLUTION
- 감독
- 유야마 쿠니히코,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이선호, 홍시호, 김영선, 우정신, 오인성, 리커 마추모토, 오타니 이쿠에, 하야시바라 메구미, 미키 신이치로, 이누코 이누야마, 이시즈카 운쇼, 이치무라 마사치카
“영화는 비-영화적인 메시지를 위해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빌헬름 하인과 비르기트 하인(이하 W+B 하인)이 첫 영화 < S & W >(1967)를 만든 이후 약 10여 년간 이어간 영화 제작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있다면 재생산(reproductions)일 것이다. 전후 서유럽의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XSCREEN: Materialien über den Underground-Film』(1971)의 77쪽을 보면, ‘재생산에 내재한 미학 Reproduktionismmanente Ästhetik’이라는 제목아래 쓴 짧은 글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재생산 과정만으로도, 이미 필름의 미적 특질은 결정된다. 영화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재생산 과정 안에서 원본(vorlage)이 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이다. 이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원본(사진)은 16mm 카메라로, 8mm 카메라로, 비디오카메라로, 그리고 스틸 카메라(슬라이드)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공간에서 동시에 재생된다.” W+B 하인은 필름의 재생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지각 효과를 전경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영화에서 재생산 저 혼자서 발생시키는 미학적 경험을 선명히 하려 한 것이다. 재생산의 과정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의 관심사가 처음으로 드러나게 된 작업이 바로 < 생필름 Rohfilm >(1968)이라고 할 수 있다. 《Film as Film》(1977) 도록에는 비르기트 하인이 구조영화(Structural Film)에 대해 소개하고 그 역사를 서술한 글이 있는데, 그가 구조영화의 특징 중 처음으로 손꼽은 것이 ‘필름 스트립’이다. 여기에는 구조영화가 필름 스트립을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첫 번째는 시각적인 ‘과정’이다. 필름의 연속이 내러티브 영화에서 내러티브 시퀀스를 만든다면, 구조영화에서는 시각적인 리듬으로 기능하는 데 이용된다. 두 번째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필름의 화학적 현상 과정이고, 세 번째는 필름 스트립의 표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풀로 무언가를 붙이거나, 흠을 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촬영되지 않은 투명한 필름은 스크린에 흰빛만을 영사할 뿐인데, 이것 또한 ‘영화’로 인정한다. < 생필름 >을 보면 우리는 비르기트 하인이 언급한 이러한 특징을 모두 확인해볼 수 있다. < 생필름 >은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빌헬름 하인의 얼굴이나 네거티브로 드러나는 남성의 형상, 쾰른 대성당을 롱 샷으로 찍은 장면 등 이미지의 파편들이 일정한 내러티브나 목표를 가지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부유하듯 흐른다. 중간중간 남녀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나 누군가가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정도만이 형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촬영된 이미지일 뿐이다. 스프로켓 홀과 필름의 경계가 화면에 드러나고, 스크래치, 일그러진 얼룩이 추상적인 조형이 되어 점멸한다. 두 종류의 필름 스트립이 한 화면에서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검은 선으로 나뉜 분할화면의 효과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시각적 자극이 뒤죽박죽된 영화는 20여 분 동안 지속된다. W+B 하인은 <생필름>을 위한 필름 스트립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 먼지, 담뱃재, 잘게 조각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필름이미지, 종이 파편, 이어 붙인 천공 테이프 등을 비어있는 필름에 붙이고 여기저기 흠집을 냈다. 풀로 오브제를 붙여 두꺼워진 필름 때문에 회전이 때때로 멈추게 되면서 같은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매우 느린 속도로 재생되면 프로젝터의 열이 필름을 녹이고, 이미지의 형상을 변화시킨다. 이 필름은 무비올라에 올라가 다시 8mm 혹은 16mm로 촬영되고, 재촬영 본은 임의로 선택된 필름 조각이 붙여진 뒤 재촬영된다. < 생필름 >을 통해 W+B 하인이 주요하게 내세웠던 태도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필름이라는 물질 그 자체라기보다는 재생산의 전반적인 과정이다. 그들이 최초로 만든 필름 스트립은 또 다른 재생산 과정을 위해 소요될 뿐이며, 물신화되지 않고 폐기된다. 그 결과로 남는 것은 매우 강렬한 파괴의 인상을 주는 영상 이미지이다. 여기서 ‘파괴’적인 인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생필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꽤 중요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 다른 작업을 떠올려 보자. 스탠 브래키지의 < Moonlight >(1963)는 나방의 날개나 잡초, 꽃 등을 투명한 필름 위에 붙인 것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운율을 전달한다. 오웬 랜드(조지 랜도우)의 < Film in Which There Appear Edge Lettering, Sprocket Holes, Dirt Particles, Etc. >(1965-66)는 여성의 상반신 초상이 담긴 필름을 중앙에서 빗겨나게 두어 스프로켓 홀과 필름에 적힌 숫자뿐만 아니라 먼지 따위가 모두 화면에 나오도록 했는데, 여기서는 영사된 이미지가 어떤 감정을 환기시킨다기 보다는 필름의 자기-지시적인 측면이 도드라질 뿐이다. 반면 W+B 하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화의 한정적인 생산 양식 안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다시 생산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어떤 이미지의 효과, 미학적 상태가 발생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사운드의 기능 또한 중요하게 등장한다. 사운드는 W+B 하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W+B 하인의 초기 작업에서 대부분의 사운드를 담당했던 것은 비르기트의 형제였던 크리스티안 미카엘리스(Christian Michelis)였다. W+B 하인이 이미지에, 미카엘리스가 사운드에 집중하여 비재현적이고 형식적인 영화 만들기에 헌신하면서, 그들은 사운드와 이미지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비동시적인 관계를 성취하고자 했다. 사운드에 관한 미카엘리스의 생각을 살펴보자. “사운드는 영화의 분위기나 특정한 형식적 측면을 강조 혹은 무시하며 일종의 해석을 제공한다. 음향의 영역에서는 영화의 형식적인 문제나 기술적인 문제와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들의 조직과 유사하다. 이론적 개념들의 유사성보다 중요한 것은, 필름과 사운드의 효과로서 즉각적으로 지각되는 감각의 상호작용이다.” W+B 하인과 미카엘리스는 (그들이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작품들에서 확인한 순진한(naive)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익숙한 사운드를 거부했고, 관객이 편안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의 지속 안에서 부유하며 감정적인 측면을 제공하는 음향은 스크린에서 아주 잠깐 동안만 식별 가능한 이미지의 발생과 같은 감각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 생필름 >은 1968년 11월 뮌헨에서 열린 “유럽 독립영화 감독들의 모임 European Meeting of Independent Filmmakers”에서 처음 상영되어 무척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빠른 속도로 주목을 받게 된다. 바로 뒤이어 뉴욕, 런던, 도쿄, 그리고 프랑스 감독 조합에 의해 설립된 비경쟁 프로그램인 감독주간(L Quinzaine des Realisateurs)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도 선보이게 된다. 그런데 비르기트가 이탈리아 영화감독 알프레도 레오나르디에게 쓴 편지를 보면 칸에서 <생필름>을 본 관객들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온다. “우리가 풀 사운드로 <생필름>을 보여주자, 관객들은 소리를 질렀고 마지막 십분 동안에는 상영을 중지하라는 박수를 쳤다. 그건 정말로 테러였다.” 이는 대부분 미카엘리스의 타협하지 않는 사운드 때문이었는데, 제5회 국제만하임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상영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고 소리를 질렀는데, 한 신문의 지면에서는 이에 대해 “영화의 노이즈가 주는 메시지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동료들이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에게는 이 영화가 그들의 실천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것임을 적절하게 인지했다. 그들은 W+B 하인의 초기 영화들이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작업들과는 변별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영화비평가 데이비드 커티스는 그의 저서 『Experimental Cinema: a Fifty Year Evolu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름이라는 물질에 대한 확신과 프로젝터 안의 물질이 지닌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으며, 내가 본 모든 미국 영화보다 강력하다.” 스티븐 드워스킨이 <생필름>에 대해 “시각적 폭탄”이라 표현한 것도 그렇게 과장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필름의 재생산이 낳은 “시각적 폭탄”과도 같은 강렬한 경험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사에 그치는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W+B 하인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시화하기 위한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 비르기트 하인이 1975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 Studio International』 11/12월호에 쓴 글은 영화의 영역에서 그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 그리고 영화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글은 『Film as Film』 도록 마지막 부분에 개별 작가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발췌되어 실렸다. “우리의 영화는 미학적인 창조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시작점은 어디인가?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어디인가? 재생산의 기술적 과정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미학적 변형의 기본 단계로 여겨지는가? 이미 재생산된 현실의 해석을 촬영할 때, 가장 단순한 카메라의 조작은 어느 정도인가? 조작된 추상과 실제적인 물질 이미지의 대결에서, 또 다른 문제는 명백해진다. 이는 예술을 다룰 때면 언제나 발생하는 문제인데, 실제 오브제와 그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도록의 볼 때의 괴리를 상상해보라. 바로 이것이 육체적으로는 경험할 수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시각적 형식의 ‘표현’이다. 이것이 하워드 아이헨바움이 영화의 ‘포토제닉, 자움(the zaum) -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성을 넘어선, 이성 앞에 뉘어있는 언어’이다. 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첫 시도이다. 작품의 ‘무의식적’ 요소를 의식적인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한지 살피면서 말이다. 만약 당신이 사회와 사회의 역사적 과정의 바깥에 예술과 예술가를 놓아두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즉 무의식의 창조적인 힘이라거나 천재와 같은 낭만을 넘어서고 싶다면 이 질문은 중요하다. 영화는 종종 ‘손가락 운동’ 이라거나 예술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이러한 반응은 느슨하고 열려 있는 영화의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고전적인 예술 작품의 닫힌 형식이나 유일성의 이데올로기에 반대되는 개념 중 일부이다. 영화의 구조는 변화와 연속에 열려 있다. ‘예술 작품’은 닫혀 있으면 안 되며 반드시 그 스스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업의 과정을 열어 두는 것이 필요하며, 영화를 교훈적인 것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회고적으로 보면 < 생필름 >은 W+B 하인이 뒤이어 제작한 개별 영화에서 추구했던 미학적 전략이 응집된 핵심적인 작품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제목에서조차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작업 <재생산 Reproductions>(1968)은 W+B 하인이 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에서 휴가를 즐기며 찍었던 흑백 슬라이드 한 종류만을 이용해 만든 영상이다. 카메라는 풍경이나 건물이 찍힌 정지한 이미지를 훑기도 하고, 초점을 또렷이 맞췄다가 흩뜨리기도 한다. W+B 하인의 초기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비르기트가 말하듯 “개인적인 이미지를 형식적인 맥락에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625>(1969)는 순수한 추상처럼 보인다. ‘625’라는 제목이 지시하는 것은 PAL(Phase Alternation by Line) TV의 프레임당 주사선의 숫자이다. 볼렉스 16mm 카메라로 TV의 화면을 찍게 되면, 아날로그 비디오와 필름 카메라의 서로 다른 초당 프레임 숫자 때문에 두꺼운 검은색 띠가 생겨나는데, 1969년 빌헬름이 쿠르트 크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1초당 8~32프레임으로 촬영 속도를 조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625>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카메라의 재촬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띠의 두께와 속도, 움직임 등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 운동에서 발생하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머테리얼필름 Materialfilme>(1976)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필름의 재생산 과정보다는 이미 주어진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로 탐구의 방향을 선회한다. 이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필름 만들기를 중단하고 1978년부터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클럽이나 바에서 직접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재생산 과정을 거친 이미지의 지각적 효과와 그 미학을 탐구한 W+B 하인의 초기 활동은 30여 개가 넘는 실험적인 작업을 뒤로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빌헬름 하인 Birgit Hein과 비르기트 하인 Wilhelm Hein (W+B 하인) 덧붙여 보자면,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 동안 W+B 하인이 영화의 영역에서 수행했던 것은 작품 제작뿐만이 아니다. 1966년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그 이듬해인 1967년은 그들이 영화에 관한 기획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한 해였다. 그중 하나가 67년 10월 로마에서 < Bliss >(1967)를 상영하던 자리에서 그레고리 마르코폴로스를 만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W+B 하인은 마르코폴로스를 쾰른으로 초대하여 상영회를 마련한다. 12월 11일 마르코폴로스의 < Eros, o Basileus >가 쾰른대학에서 상영되었는데 무려 1천 명의 관객이 왔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W+B 하인이 벨기에 크노케(Knokke)에서 열린 제4회 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 참석한 일이었다. 이 행사는 영화를 선보이고 토론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영화의 유통, 비평, 프로그래밍 등의 국제적 협력을 도모하는 곳이었는데, 67년의 행사는 유럽에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영화를 확산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W+B 하인은 쾰른으로 돌아와 1968년 국제적 아방가르드에 초점을 맞춘 정기적인 스크리닝 시리즈 《XSCREEN》을 그의 동료들과 기획하여 만든다. 이후 그들은 10여 년간 아방가르드 영화 이벤트를 꾸준히 마련하며 필름 큐레이팅에 대한 경험을 착실히 축적해 간다. 1977년에는 《도큐멘타 6》을 비롯해 《Film as Film》과 같은 대규모 전시에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뮌헨 필름뮤지엄(Filmmuseum München)에서 출판하는 DVD 시리즈 ‘Edition filmmuseum’을 통해 W+B 하인의 초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54번 에디션으로 제작된 『Materialfilme1968-76』(2012)에는 < 생필름 >을 비롯해 <재생산> <625> <초상들 Portraits>(1970), 그리고 <머테리얼필름> 등 W+B 하인의 주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DVD에 포함된 소책자에는 W+B 하인에 대한 마크 시겔의 소개가 있는데, 본 글은 마크 시겔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1. 올해 내가 꼽은 열한 편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한국영화가 1편, 아시아 영화 3편, 남미영화 1편, 유럽영화가 6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영화가 많은 반면 북미 영화는 단 한편도 포함되지 않았다. 유럽영화 중에서는 < 아페림! Aferim!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Chuck Norris vs Communism > 등 루마니아 영화가 2편이나 포함되었다. 지극히 사사로운 방식으로 리스트에 올린 3편의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영화의 관계를 해석하고 풀어가는데 유독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깊은 공감을 느낀 작품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거나 친숙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무협영화에서조차 그러한 감정을 느꼈으니 거기에는 아마도 단순히 개별 감독과 작품과의 교감을 넘어선 ‘아시아’라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경험치들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있기 때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 택시 >는 20년간 일체의 영화촬영과 인터뷰, 해외출국을 금지당한, 말하자면 예술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거장의 영화적 열정과 혼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영화이다.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무릎을 꺾을 만한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쉽사리 성마른 분노와 좌절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라고 왜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내면의 분노를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향한 깊이를 측량하기 어려운 애정과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자의 분노란 이런 것이라는 것. <택시>를 보면서 이란 당국이 제아무리 거장의 입에 재갈을 채우고 예술혼을 꺾으려 해도 그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경외감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협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모조리 제거해버린 이 정적이고 불친절한 무협영화에서 관객이 따라가야 하는 것은 활극의 동적인 쾌감이 아니라 주인공 섭은낭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내적 고뇌이다. 4:3 화면은 일찌감치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감을 접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몸속에 쌓여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게 된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거장의 영화적 고집에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젖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매우 부드럽고 달콤하며 쉬운 영화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전작들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감독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깊이 전이되어 왔던 관객으로서, 한층 경쾌해진 그녀의 이번 고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 자개단추 Pearl Button >는 2010년 작품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Nostalgia for the Light >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전반부를 보면서 구즈만 감독도 늙었구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쇠꼬챙이처럼 꼿꼿한 자세로 불의에 맞서고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던 감독들이 나이가 들어 둥글둥글하고 원만해진 태도로 세상과의 화해를 설파할 때, 세상은 이런 영화들에 대해 종종 ‘노인의 지혜’ ‘현자의 깨달음’이라는 두루뭉술한 헌사를 바치곤 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의 초반부에 카메라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주를 바라보고 천체를 관측할 때, 이 감독도 우주의 법칙 운운하며 역사와 인생의 포용을 이야기하려는구나, 라고 속단했다. 그러나 완전히 틀렸다. 그의 시선이 우주와 자연을 경유해 인간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극대에서 극소로, 우주의 역사와 땅의 역사를 연결하며 결국은 훨씬 깊고 넓어진 시야로 아물지 않은 인간과 역사의 고통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영화의 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서 우주를 향하던 시선은 <자개단추>에서는 생명의 기원인 물, 바다로 향한다. 칠레의 땅과 바다, 원시 부족의 삶과 물방울 속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밟으며 우리는 다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에 비해 <자개단추>의 성취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멈추지 않는 거장의 거대한 조망의 노력과 시야의 확보, 영화적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 이번 리스트에 올린 유럽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가운데 지적인 발견의 즐거움까지 주는 영화들이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온 노부부의 신뢰와 애정이 우연한 계기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과정을 잔인하도록 섬세하고 냉랭하게 보여주는 심리극 < 45년 후 45 Years >를 제외하면 < 코베인: 몽타주 오브 헥 Cobain: Montage of Heck > <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 > < 수메 - 혁명의 사운드 Sume - The Sound of a Revolution > < 아페림! >은 매끄러운 영화적 만듦새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 미지의 영역에 접근해 다양한 층위에 대한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이었다. <수메, 혁명의 사운드>는 그린란드에 대해서라면 기껏해야 < 북극의 나누크 >가 알려준 것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나의 일천함을 비웃으며, 그린란드 최초의 록밴드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현재, 음악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알려주었고, <척 노리스 vs 공산주의>와 <아페림!> < 의미의 창조 The Creation of Meaning > 역시 유사한 체험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기도 해서 기회가 된다면 일견을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이 글에서는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라드 주드 감독의 <아페림!>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2. < 아페림! >은 루마니아 지방 귀족의 아내와 정사를 벌이고 도망간 집시 노예를 잡아오라는 영주의 명령을 받고 노예를 찾아 나선 순사 코스탄틴과 그의 아들 이오니타의 여정을 다룬 로드무비이자 루마니아 판 수정주의 웨스턴이다.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집시 노예제도는 14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 중엽 폐지된 제도라 하는데, 공산당 집권 시기에 이 제도에 관한 기록은 루마니아의 공식 역사에서 삭제된다. 수백 년 지속된 인종차별제도의 유산이 현재에도 루마니아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 공식 역사에서 사라짐으로써 현대 루마니아인들은 대안적인 역사 연구나 아카이브 등의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만 근근이 사라진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은 시끌벅적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외피를 빌어 사라진 과거의 이미지를 희미하게나마 복원하고자 한다. 엔딩 자막에 나와 있듯이 이 영화의 몇몇 내레이션과 대사는 역사적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 사라진 역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독 자신이 19세기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감독은 영화 내내 수없이 인용되는 민간전승 문화와 루마니아, 외국 작가들의 문학을 선택한다.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멘탈리티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최대한 그 시대의 언어에 가깝게 다가가 익숙해지고자 했고 그 결과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그러나 감독은 과거를 재현하는 어떠한 시도도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35mm 흑백 와이드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주관적이고 인공적인 재연물(re-enactment)”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그가 재연(re-enactment)한 역사 역시 그의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순사 코스탄틴은 감독의 비전을 대행하는 페르소나이자 관찰자이다. 1835년 루마니아 남부 지역 왈라키아를 출발해서 중부 유럽 카르파티아 산맥 등 루마니아의 수려한 자연을 통과하면서 코스탄틴 부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인종차별주의, 노예제, 계급차별, 여성의 열악한 지위 등 당대 루마니아의 여러 문제들과 조우한다. 코스탄틴은 구시대와 근대 사회의 문지방에 위치한 인물이다. 한편으로 그는 스스로 구시대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자신 역시 한 발을 구시대에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격적인 슬랭들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편견을 드러낸다. 한편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낡은 지식을 비웃고, ‘법의 준수’를 강조하며 잡혀 온 노예에 대해 잘못한 만큼만 처벌해달라고 영주에게 부탁할 만큼 근대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패트릭 갬블러는 이러한 코스탄틴 캐릭터에 대해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와 돈키호테 사이”의 인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코스탄틴 부자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는 루마니아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의 기원을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탐구해 나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모든 민족, 인종을 하나씩 열거하면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쉼 없이 나열하는 신부의 모습일 것이다. 각 민족에 대한 그의 장광설은 집시에서 유대인까지 모든 민족과 종교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 편견의 보고라 할 만하다.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유럽의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결과적으로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시대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코스탄틴의 정체성의 위기를 야기한다. 코스탄틴은 몸의 절반을 구시대에 담가온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죄 없는 노예를 풀어주자는 아들의 부탁에 영주에게 죽음 아닌 다른 적절한 처벌을 부탁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귀족의 복수는 경악스러울 만큼 살벌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다. 그의 폭정은 노예뿐 아니라 마을의 주민들,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잔인한 처벌 후에 영주의 성을 나서는 코스탄틴의 풀 죽은 모습은 어딘가 측은하다. 변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내. 신은 벌레 하나도 돌보시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사는 거야.” 그것은 변명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선인장이 흔들리는 루마니아의 광활하고 텅 빈 평원으로 들어왔던 처음 모습처럼, 이제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 공동체를 떠나는 황야의 사나이처럼 석양을 향해 사라져 간다. 영웅의 소명을 마치고 퇴장하는 웨스턴의 주인공들처럼 그들 역시 무대를 떠나지만 무대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인 ‘아페림’은 ‘브라보’라는 뜻의 루마니아어이다. 코스탄틴이 노예를 잡아왔을 때 영주는 ‘아페림!’이라고 외친다. 코스탄틴 부자의 여행은 구체제의 질서가 얼마나 완고하게 지속되는지, 진보와 변화는 얼마나 느리게 진행되는지 보여주었다. ‘아페림’이라는 감탄사는 과거를 향한 아이러니한 수사일 뿐 아니라 그 과거의 영향 아래 있는 현재 루마니아 사회에 대한 역설적 논평이기도 할 것이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이 영화가 미래를 향해 어느 정도 문을 열어놓았는지, 코스탄틴 부자는 어디를 향해 떠나갔는지는 관객이 직접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존 포드가 1939년에 만든 또 한 편의 영화 < 역마차 >에 오를 차례다. 이 영화를 말하려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서부극의 새로운 시작이자 영원한 고향, 모뉴먼트 밸리와 존 웨인을 서부극의 시원적 아이콘으로 등재시킨 기념비, 꿈결과도 같은 아름다움과 바로크적인 잔혹미와 냉정한 리얼리즘의 기묘한 동거 혹은 감상적 낭만주의와 신화적 숭고미의 우아한 공존, 서사의 논리로 정제되지 않는 모호하고 풍요로운 쇼트들. 반복컨대, 한 해에 한 감독이 < 젊은 날의 링컨 >과 <역마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 회에는 < 역마차 >를 직접 말하기에 앞서 서부극에 대한 통념의 문제를 짚고 가려 한다. 그 통념은 존 포드의 영화는 물론 서부극 일반을 감상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십상이지만, 의외로 광범하게 퍼져 있다. 좀 딱딱하고 다소 상식적인 내용이라도 그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정리 과정에서 이 연재의 3회, 그리고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의 서문에서 밝힌 견해를 중복을 무릅쓰고 재론할 생각이다. 나는 이전의 글에서 존 포드의 비서부극도 서부극처럼 보인다고 썼다. 이 말은 거꾸로 써도 성립한다. 존 포드는 서부극도 비서부극처럼 찍었다. 서부극과 <역마차>에 관한 논의를 통해, 나는 이 수사적 표현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역마차>의 마지막 먼저 개인적 경험담 하나를 말하고 싶다. 내가 역자로 참여했으며 최근에 재출간된 토마스 샤츠의 저명한 장르 연구서 「할리우드 장르」(컬처룩)를 번역할 때,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샤츠는 여기서 존 포드를 서부극의 완성과 진화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감독으로 간주하고, < 역마차 >를 고전적 서부극의 한 전범으로 제시한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고전적 서부극은 선형적인 플롯, 안정된 심리의 주인공, 투명한 형식, 낙관적이고 친 사회적 주제의 영화다. 샤츠는 무법자 링고 키드(존 웨인)와 매춘부 댈러스가 국경 너머로 떠나는 <역마차>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면서, “냉소 뒤에 낙관적 전망이 숨어 있다... 약속의 땅인 미국의 서부 즉 신세계로 함께 떠났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 역마차 >에서 친 사회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기어코 사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탈옥수인 무법자와 위선적인 공동체에서 추방된 매춘부가 국경 너머로 도피하는 결말을 어떻게 친 사회적이고 낙관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을 떠나보내며 주정뱅이 의사 닥 분은 “저들은 이제 문명의 축복에서 벗어나게 됐군”이라고 중얼거린다. 이 대사의 신기한 점은 ‘문명의 축복’을 ‘문명의 저주’로 바꿔도 아무런 의미의 손상 없이 성립한다는 것이다(나는 이 대사를 오랫동안 후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역마차가 마침내 도착한 마을 로즈버그는 불안과 살의와 혼돈의 어둠으로 가득하다. 포드는 이 마을이 무대인 마지막 20분 동안을 밤 장면으로만 채웠다. <역마차>는 근본적으로 모호하고 불투명하며 굳이 따진다면 차라리 반사회적이고 비관적인 쪽에 가깝다. 샤츠도 이 결말의 모호성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대목에서 그는 “포드 영화의 대체적으로 모호한 종결은 웨스턴의 전성기 시절의 다른 영화보다 그의 영화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썼다. ‘낙관적 전망’을 ‘모호한 종결’로 슬쩍 바꾼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건 그 자체로 이상한 말이다. 모호함은 그의 논의를 따른다면 장르 진화의 후기에 드러나는 특징이다. 그런데 고전적 서부극의 전범인 영화가 이미 모호함으로 가득하고, 그것으로 인해 결정적 영향을 발휘했다면 서부극의 진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했던 것일까. 내가 받은 인상은 샤츠가 존 포드의 영화 앞에서 난처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종종 서부극 자체와 동일시되는 존 포드의 장르영화가 한 연구가의 장르론을 예시하지 못한다면 그 장르론이라는 건 도대체 무용할 것이다. 그런데 존 포드의 서부극을 통해 자신의 장르론을 펼치려는 순간, 무언가 자꾸 어긋나기 시작한다. 샤츠는 이 어긋남을 파고들지는 않지만 숨기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숨기지 못하고 그 어긋남은 은연중에 드러낸다. 뒤집어 생각하면, 최고의 정전 서부극들을 예외적 서부극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존 포드의 위대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형적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실은 예외적이라는 사실 앞에서, 전형성과 예외성을 구분하려던 이론은 난처해지고, 샤츠는 그것을 숨기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이 점이 그의 저서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어긋남이 그의 장르론의 결함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기서 서부극 장르연구 전반을 개괄할 생각은 없다. 서부극은 할리우드 장르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연구 성과가 집중된 분야이며, 그 모두를 개괄할 능력이 내겐 없다. 존 포드의 서부극을 여행하려는 우리에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부극에 관한 치밀한 실증적 일반론을 개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건 전문적인 장르연구가들조차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일인데, 토키 시절에만 3,500여 편, 무성영화 시절까지 합치면 수만 편의 서부극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서부극을 토대로 서부극에 관한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 정도다. 토마스 샤츠의 논의에도 반영되어 있는 그 통념은 대략 두 가지 이론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장르 진화론이며, 다른 하나는 신화론 혹은 건국 신화론이다. 이것이 영화학자들만의 관심사라면 굳이 여기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이론은 어느 정도 상식에 호소함으로써 영화를 보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통념에 스며들어 오인을 재생산한다. 서부극 진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례의 영화들 토마스 샤츠의 장르 진화론은 크리스티앙 메츠와 헨리 포실론의 가설에 기대고 있다. 그 가설은 이렇게 요약된다. “하나의 형식은 관습들이 떨어져나와 확립되는 실험적 단계, 관습들이 균형에 도달해 예술가와 관객에 의해 상호 이해되는 고전적 단계, 형식과 스타일의 특정 요소가 형식을 장식해가는 세련화 단계, 마지막으로 형식과 형식의 장식 그 자체가 실체이며 내용이 될 정도로 중요해지는 바로크(매너리스트, 혹은 자기반영적) 단계를 거쳐 간다.” 요컨대 장르 진화는 주제의 복합성과 모호성, 아이러니,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확장 과정으로 설명된다. 샤츠는 이 진화론에 근거해 존 포드의 < 역마차 >(1939), < 황야의 결투 >(1946), < 수색자 >(1956),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를 서부극 진화의 가장 중요한 사례로 제시한다. 서부극 진화론의 가장 단순하고 통념화된 버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전적 서부극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착한 백인과 나쁜 인디언이 싸워 착한 백인이 승리하는 영화이고,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불리는 후기 서부극은 인디언의 고난과 백인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통념은 의외로 광범하게 퍼져있다. 예컨대 < 아바타 >를 관한 일부 글들은 이 영화를 수정주의 서부극의 변주라고 소개하고,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으로 < 작은 거인 >(1970), < 늑대와 춤을 >(1990)을 들면서, 이전의 서부극들을 백인의 인종주의적 편견의 산물로 뭉뚱그리는 것이다. 이런 어법은 2000년 전후, 젊은 감독들의 분단 소재 영화를 소개하면서 종종 등장한 ‘선악 이분법에 사로잡힌 전 시대의 냉전적 영화를 뛰어넘어’라는 저널리즘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이런 표현은 임권택 과 > 이만희 의 분단 소재 영화를 한 편이라도 유심히 보았다면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임권택의 < 짝코 >(1980), 이만희의 < 1950년 4시 >(1972)을 뛰어넘는 이후 세대의 분단 소재영화는 아직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마> <닷지 시티> <평원의 사나이> 위에서 말한 서부극의 통념 역시 존 포드의 영화뿐만 아니라, 1940, 50년대의 하워드 혹스, 윌리엄 웰만, 안소니 만의 서부극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만들어진 포드의 무성영화 < 철마 >(1924) 혹은 < 역마차 >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마이클 커티스의 <닷지 시티 Dodge City>, 혹은 그보다 3년 전에 만들어진 세실 드밀의 < 평원의 사나이 The Plainsman >(1936)만 봐도 그런 통념은 간단히 무너진다. 물론 이 영화들에서 인디언이 미국 개척민들의 위협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진정한 악인은 인디언에게 무기를 파는 백악관의 고위 관료(<평원의 사나이>), 혹은 토지 투기꾼 및 그와 결탁해 인디언을 배후 조종하는 백인 기업가(<철마>) 혹은 악랄하고 탐욕적인 카우보이들(<닷지 시티>)이다. 존 포드의 또 다른 1939년 작 < 모호크족의 북소리 >에서는 희귀하게도 영국군이 인디언과 결탁한다. 적어도 거장들의 서부극은 초기부터 인디언의 잔인성이 아니라 타락한 문명과 자본주의적 탐욕을 주제로 삼았다. ‘진화’라는 표현은 영화를 말할 때, 극히 조심스럽게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연재의 3회에서 말한, 시대 구분론로서의 고전영화-모던영화 이분법에도 진화론적 발상이 개입되어 있다. 진화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사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밀한 가치판단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영화에서 진화를 말하는 순간, 생물학적 진화론의 관념에 은연중에 영향받아,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드시 발생하고, 더 진화된 것이 덜 진화된 것보다 복합적이고 우월하다는 전제가 이면에서 작동한다. 이 전제들은 3회에서 말했듯이 영화사의 진실과 거리가 멀다. 역사학에서 빌려온 ‘수정주의’라는 표현도, 소위 정치적 올바름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별 영화가 지닌 생명력에 둔감하게 만든다. 나중에 다시 말하게 되겠지만,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종종 언급되는 < 늑대와 춤을 >은 서부극의 위대한 전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다. 토마스 샤츠의 논의로 다시 돌아와 보자. 그의 저술에서 내가 느꼈던 의문에 답해준 것은 태그 갤러거가 1995년에 쓴 별도의 논문 ‘Shoot-Out at Genre Corral : Problems in the “Evolution” of Western’(「Film Genre Reader」, ed. Barry Keith Grant)이었다. 이 글에서 나는 큰 배움을 얻었고 서부극과 존 포드에 관한 생각을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갤러거는 이 글에서 토마스 샤츠를 비롯한 8명의 장르 연구가들(Robert Warshow, John G. Cawelty, Philip French, Jack Nachbar, Will Wright, Frank D. McConnell, Leo Braudy)이 공유한 진화론의 관점을 단호하게 비판한다. 기존 학자들이 거의 무시해온 1910년대의 무성 서부극들을 검토한 뒤 갤러거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이 후기 서부극의 특징적 기법이라고 주장해온 특징들, 즉 회화적 풍경, 변증법적 스토리 구축, 롱숏, 클로즈업, 평행 편집, 크로스커팅 등은 이미 초기 웨스턴에 구현되고 있다. 또한 클리셰의 자기반영적 패러디, 액자구조화 등은 이미 1910년대의 서부극에서 넘쳐났다. 영웅의 양면성, 해결되지 않는 갈등, 비극적 엔딩 역시 이미 토마스 인스와 프랜시스 포드(존 포드의 형)가 주도한 초기 웨스턴에 유행했다. 요컨대 표준적 진화론이 순전히 전후 서부극의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복합성 및 아이러니와의 노골적 비교를 위해, 거대하나 보이지 않는 일단의 전전 영화들을 순진하게 원시적인 것으로서 수사적으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진화라는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에 부합하는 소수의 정전들만 끌어들여 입증한 뒤, 압도적 다수의 ‘예외’들에 눈감는 것이다. 서부극은 일직선의 진화를 단계적으로 밟아온 게 아니라, 당대의 산업적 요구, 시대적 상황, 창작자의 성향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주기적 변화를 거쳐왔다. 갤러거의 결론은 이렇다. 서부극의 역사에서 일어난 일은 진화가 아니라 ‘순환’(cycling)이다. 여기서 서부극의 진화론에 대해 더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990년대 이후부터 태그 갤러거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스티브 닐, 피터 스탠필드 등)의 주도로 무성 서부극과 1930년대의 시리즈 서부극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들을 도외시했던 기존의 표준적 진화론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미지의 서부극들이 아닌 존 포드의 정전만으로도 표준적 진화론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 이 연재의 3장에서 나는 “존 포드는 ‘고전적’ 감독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이렇게도 바꿔 쓸 수 있다. 존 포드는 고전적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다. 약간 까다로운 의제는 서부극의 신화론적 해석이다. 서부극 연구에서 진화론은 최근의 실증적 연구에 의해 도전받아왔지만 신화론은 여전히 의미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서부극에 관한 가장 일반적이고 오래된 통념 가운데 하나는 건국신화론의 관점이다.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에서 직접 도출된 프론티어 경험의 신화적 변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연구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짐 키츠의 논의(「Horizons West」)다. 키츠 자신은 신화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지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론을 일부 차용해 서부극을 일련의 대립항들의 다발로 해석한다. 황야/문명, 자연/문화, 개인/공동체, 자유/구속, 명예/제도, 고결함/타협, 전통/변화, 과거/미래 등이 여러 층위에서 대립하며, 이들은 적대와 상호의존의 이율배반적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샤츠 역시 이 분석 틀을 차용한다. 주창자들이 노골적으로 주장하진 않지만, 이 분석틀은 전자의 계열과 후자의 계열이 각각 한편이 되어 두 진영이 대립하는 장르가 서부극이라는 통념을 낳는다. 나는 이런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포괄적이고 느슨한 이 분석틀은, 누구나 쉽게 지적할 수 있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이 분석의 대상은 서사다. 하지만 우리의 탐구 대상은 영화다. 아무리 하찮은 영화라도 그것을 정리한 서사를 넘어선다. 보통의 극영화조차 정태(靜態)의 구조가 아니며 이미지들이 시간적으로 배열되는 동태(動態)의 역학이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라면 이 결함은 심각해진다. 위대한 영화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그것고 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써만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서부극을 ‘읽는’ 표준적 신화론이 놓칠 수밖에 없는 것은 랜드스케이프다. 모든 서부극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랜드스케이프는 서사 외부에 있다. 신화론은 랜드스케이프를 황야 혹은 자연이라는 기호로 환원해 문명 혹은 문화의 대립항이라는 서사적 요소로 둔갑시킨다. 이 해석적 조작의 결과는 기이하다. 이 환원으로 서부극의 서사조차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화론자들이 예시하는 서부극을 포함해 내가 본 어떤 서부극도 가혹한 자연환경과의 투쟁을 부차적 모티브가 아닌 중심 주제로 삼은 영화는 거의 없었다. 서부사나이가 맞섰던 건 주로 탐욕스런 기업가, 사악한 카우보이, 잔인한 인디언이다.(표준적 신화론자들이 황야/문명의 도식에 그나마 들어맞는 쇠스트룀의 < 바람 >(1928)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신화론자들이 황야, 자연으로 환원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야만적’ 인디언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서부극들은 혼돈한 적이 없는 타민족의 영토 정벌과 자연 개척을 오히려 그것의 해석자들이 혼돈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서부극의 통념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다. 비평이 수정주의 서부극의 가치를 과장하는 경향도 고전기 서부극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이 오인된 해석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오인에 가깝다. 나는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신화론도 서부극 세상을 여행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숙고해야 할 서부극의 진정한 의제가 있다면 그것은 랜드스케이프다. 혹은 존 포드의 모뉴먼트 벨리이다. < 역마차 >의 이야기는 그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같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