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ting
- 감독
- 이종한
- 제작년도
- 1997
잠시 방향을 돌려 존 포드의 무성영화 시대로 돌아가 보자. 존 포드는 거의 한 세기 전인 1917년, <토네이도 Tornado>(단편, 프린트 소실)로 데뷔한 이래 첫 토키 영화 <블랙 왓치 Black Watch>(1929) 전까지 모두 67편의 장 단편 무성영화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스트레이트 슈팅 Straight Shooting>(1917, 첫 장편)과 < 철마 The Iron Horse >(1924)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 두 편을 포함해 < 우리는 친구 Just Pals >(1920), <샴록 핸디캡 The Shamrock Handicap>(1926), < 3인의 악인 3 Bad Men >(1926), < 사형집행인의 집 Hangman’s House >(1928) 등에서 포드는 뛰어난 장인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필름들에 한정할 때, 무성영화 시대의 존 포드를 당대 최고의 감독 대열에 올리기는 망설여진다.(물론 <켄터키 프라이드 Kentucky Pride>(1925)를 사랑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나 <형사 라일리 Riley the Cop>(1928)를 절찬하는 태그 갤러거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1894년에는 존 포드를 비롯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유난히 많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도 킹 비더, 조셉 폰 스턴버그, 프랭크 보재지 등은 무성영화 시대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영화사가 추앙하는 기념비적 작품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걸작 무성영화들에 비해 존 포드의 현존하는 무성영화들은 얼마간 성기고 거칠어 보인다. 무언가 허술해 보이던 존 포드의 무성영화들이 후에 존 포드 월드라고 불리어지게 될 거대한 세계를 향한 치열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음을 우리가 알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다. 여기서 다룰 영화는 존 포드가 1928년에 내놓은 < 네 아들 Four Sons >이다. 이 영화는 많은 미국인들을 울린 성공적이고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고 당대엔 절찬을 받았지만 걸작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앤드루 새리스나 태그 갤러거, 린지 앤더슨과 같은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도 훌륭한 작품으로 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며 포드의 영화 이력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 네 아들 >이 탄생한 1928년은 기묘한 해다. 영화사상 첫 토키영화 < 재즈싱어 >가 등장한 것은 1927년이지만 이 해에는 물론이고 1928년에도 대부분의 필름들은 여전히 음성을 담지 않았으며, 토키 영화의 본격적 확산은 1929년에 가서야 이뤄진다. 대신, 마치 무성영화의 마지막 연도를 축복이라도 하려는 듯, 경이로운 무성영화들이 1928년에 쏟아져 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 스팀 보트 빌 주니어 >와 함께 그의 마지막 걸작 < 카메라맨 >을, 찰리 채플린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 서커스 >를, 킹 비더는 그들 사이의 우열을 논하기 힘든 위대한 무성영화 < 군중 >과 <쇼 피플>과 <팻시>를, 스웨덴에서 건너온 빅터 쇠스트롬은 당대의 여신 릴리언 기쉬와 함께 숨 막힐 듯 아름다운 < 바람 >을,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조셉 폰 스턴버그는 에밀 야닝스를 기용한 < 마지막 명령 >과 조지 밴크로프트를 기용한 < 뉴욕의 항구 >를, 독일 표현주의를 이끈 또 다른 맹장이지만 무르나우에 가려진 폴 레니는 자신의 할리우드 대표작 <웃는 남자>를 내놓았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 프리츠 랑의 < 스파이 >, 마르셀 레르비에의 <돈>, 장 엡스탱의 < 어셔가의 몰락 >이 태어난 것도 이 해였다. 물론 이 목록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1928년의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거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평자라도 존 포드의 < 네 아들 >을 1928년의 최고의 10편에 포함시킬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이 해의 영화들에 관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물론이고, 차라리 감독 경력 3년 차에 불과했던 하워드 혹스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항구마다 소녀가 있다>를 더 앞세우게 될지도 모른다. 당대의 쟁쟁한 작품들에 비하면 < 네 아들 >은 왜소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포드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야기는 단순하다. 독일의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머니(베르늘 여사)는 네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둘째 조셉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전쟁이 터지고 두 아들(프란츠, 요한)은 징집돼 전사한다. 어머니는 곤궁과 비탄의 시간을 보낸다. 이어 막내 안드레아스도 징집되며 미국이 독일의 적국으로 참전하자 조셉도 미군으로 징집된다. 전장에서 조셉은 안드레아스의 죽음을 목격한다. 전쟁이 끝난 뒤, 조셉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모자는 재회한다. 이야기만으로는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와 함께 존 포드의 대표적인 최루성 가족 멜로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 포드의 가장 이례적인 작품에 속한다. 그의 영화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도 < 네 아들 >에서 포드의 터치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즉각 떠오르는 이름은 F. W. 무르나우다. 카메라의 움직임, 인위적인 조명, 심지어 연기 스타일에까지 무르나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영화를 보고 알기는 힘들지만 촬영 장소가 < 선라이즈 >의 세트이기도 했다.) 한 감독의 영향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존 포드 영화는 <네 아들> 외에 찾기 힘들다. 이 점이 열렬한 존 포드 지지자들조차 이 영화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무르나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27년은 < 재즈싱어 >의 해이지만, 동시에 < 선라이즈 >의 해이기도 했다. 포드를 고용하고 있던 윌리엄 폭스는 무르나우의 < 마지막 웃음 >(1924)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독일 감독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고, 무르나우는 1927년 그의 첫 할리우드 영화 <선라이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할리우드 감독들에게는 중대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앤드루 새리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무르나우와 그의 UFA 동료들은 영화적 표현에 대한 할리우드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고 적었다. (무르나우의 UFA 동료들이란 무르나우와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니버설에서 <고양이와 카나리아> 등 세 편의 호러를 만들고 죽은 폴 레니, < 메트로폴리스 >와 <마지막 웃음>으로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떠올랐고 1929년부터 미국에서 촬영과 연출을 겸한 칼 프로인트 등을 말한다. 프리츠 랑과 오토 프레민저가 할리우드에 도착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었다.) 존 포드도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 선라이즈 >를 보고 난 뒤 포드는 “지금까지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아마 앞으로 10년 안에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포드가 이 정도의 찬사를 바친 대상은 D. W. 그리피스, 그리고 역시 1894년생인 장 르누아르 정도다.) 그런데 <선라이즈>의 어떤 점이 존 포드를 사로잡았을까. 더 중요하게는, 무르나우는 존 포드 월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물론 확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 네 아들 >에서 약간의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네 아들> #2 <마지막 웃음> < 네 아들 >이 무르나우의 노골적인 모방처럼 보이는 점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첫 장면(#1).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질러 베르늘 여사 집으로 향한다. 이 노인의 수염과 인상, 체구와 제복, 그리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의 첫 장면(#2)에 등장하는 호텔 도어맨(에밀 야닝스)을 고스란히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3 #4 #5 전사 소식을 전하러 가는 우체부의 쇼트에서 그림자의 과장된 사용(#3),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인위적 조명 기법(#4), 어머니가 떠난 네 아들의 환영을 보는 장면(#5) 등은 특정한 유사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잘 알려진 무르나우와 독일 표현주의 본산인 UFA 스튜디오의 단골 기법들이다. #6 #7 #8 #9 #10 #11 무엇보다 < 네 아들 >의 특별한 점은 카메라워크다. 존 포드는 평균 4번에 1번 정도는 이동 카메라를 썼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껴지도록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네 아들>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카메라 워크가 있다. 우체부 노인이 마을을 가로지를 때 핸드 헬드 카메라(#6, 7, 8), 그리고 기차가 도착할 때 아마도 기차의 움직임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9, 10, 11)는 자기 과시적으로 보일 만큼 부드럽게 공간을 유영한다. #12 #13 #14 <마지막 웃음> 아무래도 존 포드는 < 선라이즈 >가 아니라 < 마지막 웃음 >을 교본으로 삼은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 영향받은 사람이 존 포드만은 아니다. 촬영기술과 그에 연관된 영상기법에 관한 한 <마지막 웃음>은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페이드, 디졸브, 이중인화, 몽타주, 거울의 왜상 등 그때까지 개발되어온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여기에다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시점 쇼트를 선보였다. 수평 트래킹은 돌리를 사용했지만, 공간의 안쪽으로 이동하는 수직 트래킹을 위해 프로인트는 무거운 카메라를 가슴에 묶고 움직이며 공간의 질감 자체를 변화시켰다.(#12, 13, 14) <마지막 웃음>은 최초로 본격적인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한 영화로 기록된다. 포드는 이전까지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 마지막 웃음 >에서 사용된 카메라 워크의 거의 모든 것을 < 네 아들 >에서 시도한다. 하지만 무르나우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이 시기의 다른 영화들 < 사형집행인의 집 > <블랙 왓치> 등을 제외하면 이후의 포드 영화에는 <네 아들>의 무르나우적인 카메라워크가 더 이상 눈에 띄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 아들>은 그저 일회적인 모방의 실험에 불과한 것일까. #15 #16 #17 #18 #19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네 아들 >과 포드의 이전 영화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모방될 수 있고 유행될 수 있는 이런저런 표현주의적인 기법이라기보다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연재의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포드의 프레임에서 종종 동굴을 보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느낌을 주는 첫 영화가 바로 <네 아들>이다. 이 영화는 공간의 깊이를 극단적으로 과장한다. 인물들도 가로축이 아니라 공간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의 혹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의 수직축을 따라 혹은 사선 방향으로 이동한다.(#15, 16, 17, 18, 19) 포드의 다른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무르나우의 영화에서도 이처럼 공간의 깊이에 거의 강박적으로 몰두한 장면은 거의 없다. 칼 프로인트에게 배웠고 후에 오슨 웰스와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과시적인 딥 포커스 화면을 만들어낸 그렉 톨랜드의 작품에서도 이 정도의 심도화면을 찾긴 힘들다. 물론 심도 화면은 이미 뤼미에르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토마스 인스와 그리피스를 거치며 풍성해졌다. 포드의 이전 무성영화들에도 종종 아름다운 심도화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경 중경 후경을 모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도 화면은 < 네 아들 >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프로인트의 수직 이동 카메라가 감각케 하는 공간의 아득한 깊이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공간의 깊이 자체가 특별한 미학적 성취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풍경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된 것 같다. 여기서 풍경은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건에 연루되지 않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물질적 환경을 뜻한다. 말하자면 포드는 공간의 깊이를 추구하다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이미지들의 특별한 표정과 강인한 침묵을 만나면서, 사건에 연루된 환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사건을 초과하는 환경으로서의 풍경이라는 차원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예컨대 < 철마 >(1924)의 카메라는 인물과 행위에 집중하며 풍경은 사건의 장소라는 객관적인 지표로서만 등장한다. 하지만 < 네 아들 >의 카메라는 공간의 깊이에 몰두하면서 인물과 행위와 사건을 초월하는 풍경의 흔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20 <마지막 웃음> 이것은 무르나우나 UFA의 작업을 통해 직접 배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르나우와 UFA 영화에서 앞서 정의한 의미의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심지어 자연 풍경조차 모두 일종의 무대장치다. 그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객관적 장소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가 투영된 주관적 풍경, 혹은 배우의 표정 및 동작과 함께 불안과 히스테리의 정신적 상황을 구성하는 감정 이미지이다. < 마지막 웃음 >에서 남자가 자신을 향해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환상에 빠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20) #21 <애로우스미스> #22 <역마차> #23 <도망자> 독일 표현주의의 미학적 뿌리가 연극 무대였고, 무르나우와 폴 레니, 에른스트 루비치, 오토 프레민저 그리고 배우 에밀 야닝스가 표현주의 연극을 이끈 막스 라인하르트 사단에 속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풍경의 무대장치화 혹은 풍경의 심리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들의 공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물과 사건에 비해 부차적이었던 물질적 환경을 강력한 정신적 심리적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존 포드는 분명히 이것을 배웠고 이후의 영화에서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앞서 말한 장면 외에도 예컨대 <애로우스미스>(1931)의 한 장면(#21), 혹은 < 역마차 >(1939)나 < 도망자 >(1947)의 한 장면(#22, 23)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존 포드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풍경이 사건을 부차화하고 사소화하는 초월적 차원까지 밀고 갔다. 비유컨대, 그는 지평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만년의 존 포드가 영화를 찍는 방법을 묻는 어린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지평선을 프레임의 아래에 둘 건지 중간에 둘 건지 위에 둘 건지 그것만 알면 돼.”라고 대답했을 때 그가 말한 지평선이나, “내 영화의 진정한 스타는 대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대지는 바로 이 풍경의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24 그런 점에서 이 단순하고 감상적인 영화 < 네 아들 >에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꼽으라면 바로 초반의 이 장면이다.(#24) 전경에 나뭇가지가 어른거리고 있고 중경에 어머니는 빨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후경에는 돌다리 위로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 장면은 아름답다.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므로 더없이 화사하고 밝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는 말하기 힘든 비애의 기운이 있다. 그것은 단지 어머니가 혼자 빨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뭇잎이 어머니 앞에서 무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멀리 교각은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포드가 심도 화면에 매혹되어 이 장면을 찍었을지라도, 그렇게 찍힌 풍경은 불현듯 인물을 떠나고 있다. 포드의 세계가 이 장면으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계속)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염려가 먼저 들 때가 있다. 치코, 하포, 그루초 마르크스 삼형제의 난동극에 가까운 < 오페라의 밤 >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부글부글 거리더니 점점 넘쳐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넘쳐날 때 그걸 가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마치 햄릿 같은 말투로 기꺼이 찬사를 바쳤다. B급인가, 아방가르드인가, 여기서 영화의 장치들이 고스란히 창자를 내보인다. 하지만 이걸 보고 심미주의를 느끼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설 것이다. 아아, 천국이라니. 착란과도 같은 반란. 유희와도 같은 실험.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들을 너무 빨리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잉의 영화들의 계보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말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만찬의 영화. 그런데 그 만찬은 (롤링 스톤즈의 앨범 제목을 빌려 부르자면) ‘거지들의 만찬’(Beggar’s Banquet)이다. 나는 이 행복한 표현을 긍정의 의미로 사용하는 중이다. 영화의 운동에 부여한 난처하리만큼 불편한 포만감. 갑자기 화면은 일시적으로 두뇌의 활동을 정지하고 육신과 감각, 팔과 반경거리, 사방을 둘러보는 눈, 허우적거리는 동선,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발과 제한적인 공간, 그 안에서 영화의 모든 기호가 결국 주어진 세계-내-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런 다음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들이 쓰러트리는 것은 반대로 점점 더 속도를 더해간다. 여기서는 오로지 영화가 허용한 모든 것을 현실에서야 어찌되었건 잠시뿐 일지라도 법칙을 무시하고서라도 허용한다. 영화만의 선언. 말 그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면 위반을 긍정한다. 영화는 세계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진다. 종종 이 결정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래서 세계를 비현실로 만들어버릴 때 갑자기 세계 자체가 영화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는 몸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모든 희극영화들은 폭력 안에서의 웃음이다. 버스터 키튼의 필사적인 질주. 찰리 채플린의 곡예와도 같은 방어술. 웃음이 아니라면 이들의 악전고투를 차마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개의 전통으로부터 톱니바퀴처럼 갈려 나온 서로 다른 운동의 수없는 변주들. 하지만 토키영화가 시작하자 영화 안에서의 기계적인 활동들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만 같았다. 대신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안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차원의 이미지의 행성들은 안정을 얻는 것처럼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들이 나타났다. 닥치는 대로 열거하자면 그 중에는 프랭크 타쉬린(과 제리 루이스), 스즈키 세이준, 러스 메이어, 로저 코먼, 존 워터스, 그리고 (....)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은 희극의 장르 안에서도 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그 전통의 자락에 기대어 선 영화이다. 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갑자기 임권택 이 이 계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오랫동안 머문 것도 아니다. 그는 잠깐 동안, 정말 잠깐 동안 머문 다음 재빨리 빠져나갔다. 1969년을 임권택은 그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기라고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 시기에서 갑자기 임권택의 영화들이 자유로워졌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 몽녀 >의 몽환적인 산책. < 황야의 독수리 >의 무국적 풍경. < 속눈썹이 긴 여자 >의 조명이 넘쳐나는 실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에서 보여준 상실의 멜랑꼴리. 그리고 < 둘째 어머니 >의 황당무계할 정도로 긴 마지막 시퀀스. <신세 좀 지자구요>는 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사라진 칸막이들. 고정적인 문법을 따른 안정된 선을 버리고 갑자기 생겨난 쇼트의 난반사들.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새로운 습관들. 나는 여기서 임권택의 이전 장면들에선 본 적이 없는 영화적 습관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지금 그걸 이 시기의 영화를 건드릴 때마다 일일이 열거하는 중이다. 물론 그때 임권택은 주어진 상속의 전통 바깥으로 나가면서 갑자기 자신이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장에서 점점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에 가 불현듯 나타났다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구先生 미셸 시몽, 시인 천상병 처음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보았을 때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구先生은 임권택 의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이다. 어쩌면 한국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주인공이다. 구태여 다시 한 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런 인물을 미셀 시몽의 천의무봉에서나 찾을 수 있다. 장 르누아르의 < 물에서 건진 부뒤 씨 >와 장 비고의 < 라탈랑트 >에서 거의 같은 역할을 해낸 이 이상한 인물. 선과 악의 경계 바깥에서 종잡을 수 없게 살아가는 사람. 장 조레스가 암살당하고 인민해방 전선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나타난 무정부주의적인 삶을 구가했던 이상한 보헤미안들. 구태여 여기에 더해야 한다면 (자끄 타티가 만들어낸) 윌로 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다르다) 이런 주인공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난처한 주인공, 번번이 추적의 선을 끊어버리는 것만 같은 행각.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자기 법칙이 있다는 듯 이리저리 옮겨간다. 나는 자료를 뒤져야했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이제는 알겠다. <신세 좀 지자구요>의 주인공 구先生의 모델은 시인 천상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성립된다. 아마도 시인 중의 시인, 그 스스로 시인의 삶을 살아간 마치 봉황의 깃털과도 같았던 사람.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전에 처음부터 그가 시를 쓰면 읽는 사람을 움직였다. 김춘수 시인에게 발견된 재능. <신세 좀 지자구요>를 둘러싸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읽기 전에 불행했던 시인 천상병의 위대하고 가냘픈 시를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문화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보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친구들 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동가식서가숙했던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각을 보면서 소재 삼아 그의 친구 중의 한 사람이자 극작가였던 신봉승 이 대본을 썼고 1966년에 방영되어 그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의 한 편이 되었다. 나는 원래 드라마에 천상병 시인의 삶의 향기가 얼마나 배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봉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로 매회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 후 <방 좀 빌립시다>로 준비되었던 이 영화는 <신세 좀 지자구요>로 제목이 바뀌어서 삼 년 후에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작 드라마 각본을 영화를 위해서 신본승 자신이 각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구先生이 시인이라는 설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처음부터, 그러니까 드라마 대본에서부터 없었던 것일까) 다만 고향에서 올라온 갈데없는 독신 중년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구先生은 계속해서 언젠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며 (그러므로 영화의 엔딩은 구先生이 고향에 내려가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서 잘못된 사랑을 했으니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잘못된 사랑을 했는지, 왜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다시 삶을 살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나중에는 이 모든 고백이 거짓된 핑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어쩌면 구봉서 가 연기하는 구先生의 어디에서도 시인 천상병의 그림자 자락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구봉서가 훌륭한 희극 연기의 대가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천상병의 천의무봉한 자유와 거의 사회적으로 파문당하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조차 거기서 재난에 가까운 사건 사이를 가볍게 지나쳐가면서 그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적인 사유의 행위라는 것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 그저 과장된 개그의 제스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러나 천상병 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67년 7월 14일 ( 윤이상 , 이응로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동백림 (북한 대남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세상에 돌아와 ‘그 날은 새’라는 시를 썼다. 고문 후유증으로 내내 고통을 받았고 1971년에는 행적이 묘연해지자 동료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했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행려 취급을 받고 서울시립병원 정신병동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가까스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시인 천상병은 무거운 가난을 등에 짊어지고 계속해서 자신이 새가 되고 싶다는 시를 썼다. (시집 “새”) 세상이라는 도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측법. 누군가는 그걸 그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때 누군가는 상공비행해서 내려다 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무언가 여기에는 신비로운 모험이 사라져버렸다. 구先生의 기행은 드라마 안에서 시종일관 전혀 설득되지 않으며 그러면서 점점 더 기괴해져가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구先生에게서 세속 바깥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의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른 목적을 지닌 삶, 거기서 그를 비루한 현실 속에서조차 구해내는 고귀한 목표의 겸손함, 그때 어떤 수단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게 신봉승이 (어떤 이유에서) 포기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임권택이 삭제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 남아있는 것은 구先生의 기행 뒤에 숨겨져 있는 고독함뿐이다. 어쩌면 천상병 시인의 기인과도 같은 삶은 결국 고독함이라고 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先生이 마담과 함께 한밤중에 데이트하는 장면의 우울함은 갑자기 이 희극 영화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만 같은 속도로 바뀐다. 종종 전체적인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 영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간단하게 무시하면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씬에서 무언가 사무치는 것만 같은 정서가 거의 유령처럼 출몰한 다음 수없이 부스러기처럼 잘게 쪼개져버린 이 세계의 한 순간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이재명(우)과 아내(좌) 구先生과 마담 보영 세진 먼저 KMDb 에 소개된 줄거리의 정정. “ 구봉서 와 김희갑 은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갈 곳이 없는 봉서는 희갑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히 희갑의 부부간에는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그때마다 봉서가 화해시킨다. 어느 날 봉서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된다. 그리하여 봉서는 희갑의 어려운 사정들을 해결해 주고 남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간다.” (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10 ) 구봉서와 김희갑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나오는 건 사실이고 그 집에 머무는 것도 맞지만 그런 다음은 영화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 올라온 구先生(구봉서)은 누군가의 집에서 쫓겨난 다음(영화의 첫 장면) 겨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술집에서 옛 고향 고등학교 동창 이재명(김희갑)을 만난다. 갈 데 없는 구先生은 뻔뻔하게 이재명의 집에 쳐 들어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그냥 머물면서 아침 겸상에 용돈까지 받아 챙긴다. 이재명의 아내( 도금봉 )은 어이가 없지만 체면 때문에 참고 딸 보영( 전양자 )은 재미있게 생각하고 식모( 안인숙 )은 그저 어쩌지, 어쩌지, 할 뿐이다. 이재명은 감원 대상자 명단에 매번 자기가 속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구先生은 낮에는 다방에 나가 마음에 둔 마담( 조미령 )과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이재명의 집에 다시 쳐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구先生은 시종일관 사고만 치고 이재명 부부로서는 점점 참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갑자기 여기서부터 인물관계가 뒤엉키기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를 볼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마침 딸 보영이 다니는 회사의 전무가 이재명이 다니는 회사 과장( 양훈 )의 아들( 이철 )이고 그는 이재명의 딸 보영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과장의 아내와 계장( 서영춘 )까지 나서서 결혼을 재촉하지만 보영에게는 이미 마음을 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구先生 단골 다방의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이재명 아내는 만일 청혼한 과장 집보다 혼처가 훌륭하다면 결혼을 승낙하겠다면서 부모 상견례를 하자고 제안한다. 마담은 구先生에게 하루만 성공한 남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과장집 식구들에 계장까지 모여 지켜보고 있다. 자, 여기까진 아무래도 좋다. 임권택 은 여기서 두 세계 사이에 모호하게 머문다. 하나는 세계 안에 머무는 영화이다. 모든 것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고통 받고 점점 찌그러진다. 가장에게 끊임없는 감원의 협박. 근처에서 맴도는 가난. 회사 안의 위계질서에 따른 부당한 요구의 반복. 위협받는 순수한 사랑. < 신세 좀 지자구요 >의 인물들은 대부분 여기에 머문다. 다른 하나는 세계 곁에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거기서 세상의 법칙이 금지한 바깥으로 나와 만일 영화가 허용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구先生의 탈선. 하지만 수 많은 사고를 만들어내도 그는 언제든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법칙에 의해 항상 구원받는다. 문제는 두 영화가 하나의 세계 안에 공존할 때 생겨난다. (나는 두 세계가 하나의 영화 안에 공존한다, 고 쓰지 않았다) 기괴한 예. ( 서영춘 ) 계장은 ( 양훈 ) 과장과 아들 혼사 문제를 놓고 계획을 짜다 말고 갑자기 그 유명한 만담을 한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를 잡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돈 내고 돈 먹기, 시작해야 부자 되지 어서 어서 오세요...(그리고 한참 더)” 이 만담은 서영춘 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백금녀 와 함께 이중창처럼 라임에 맞춰 노래하듯이 외우는 구절이며(그래서 이 만담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합창하듯이 따라했다) 레코드로 출반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세 좀 지자구요>에는 백금녀가 출연하지 않아 서영춘 혼자 이 만담을 하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장기자랑이 마침내 시작해서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등장해서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때 ‘사이다 송’ 만담을 하는 서영춘의 얼굴을 극단적인 왜곡 상태로 만들어(fish_eye_wide_lens)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씬은 누구라도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럽기는커녕 무언가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인형이 재롱의 동작을 취하면 취할수록 원래의 목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수명이 다해버린 음울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 같은 인상을 자아낼 때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틀림없이 이 장면은 웃기 위해서 찍은 씬이다. 서영춘은 언제나처럼 약간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만든 다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기의 차례가 돌아오자 외운 것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구절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로 인격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모델이 된 채 추상화된 자동기계 인형이 된 서영춘을 다시 한 번 굴곡 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릴 때 거기엔 우리가 개입할 코믹한 환상의 여지가 사라진다.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때 내가 보는 것은 괴로운 현실과 더 괴로운 환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방식이다. 임권택은 희극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우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통념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두 개의 고통을 전시한다. 하나는 물론 억압에 의지해서 버티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이 사라지자 통제가 불가능해져버리는 환상이다. 둘 사이를 분리하는 경계는 여기서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니다. 종종 그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인물들은 현실이 무너져 내리듯 홀연히 비현실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면 추상적인 미결정의 이미지에로까지 다가간다. 이때 이미지는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이미지가 웃는다고 썼다. 이미지가 웃기 시작할 때 일그러진 화면은 육체를 침공하듯이 뒤집어쓴 다음 그것을 통해 고통을 전시한다. 나는 그 뒤에 무언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 뒤는 그저 공허한 텅 빔이 전부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이미지는 대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자멸해버리듯이 스스로를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한다. 그때 일그러지면서까지 웃는 이미지는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환상의 불만족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또 다른 고통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히스테리가 만족을 얻게 된다면 이미지를 둘러싼 영화의 기호들은 갑자기 도착적인 기능을 시작할 것이다. 그건 임권택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바라기 시작할 것이다. < 천년학 >의 마지막 장면은 분명히 그러했다) 아직은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이때 임권택의 희극은 웃음이 고통이라는 이상한 역설에 빠진다. 언젠가 내게 말했다. “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코미디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코미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고통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화에서 웃음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련입니다. 송해 와 박시명 장소라는 쇼트의 하부구조. 이 히스테리의 경기장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은 절정은 (내가 줄거리를 정리하다말고 잠시 중단한 이후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이다. 무대는 고급 제과점. 이재명과 그의 아내, 딸 보영은 지금 다방 마담과 그 아들 세진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 지를 결정하기 위한) 서로간의 부모 상견례를 위해 여기 나와 앉아있다. 제과점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상견례 장소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장소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트에서 찍은 것이 분명한 이 장소는 이제까지의 장면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약간 비현실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경기장을 처음 작동시키는 이미지 벡터는 주문을 받으려고 테이블을 오가는 두 명의 점원, 그런데 마치 쌍둥이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송해 와 박시명 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 서로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동작을 보완하는 개그는 물론 송해와 박시명 콤비의 발명품이다. 이때 이 둘이 주문을 받으러 가는 손님은 이재명 가족의 테이블이 아니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그녀 자신을 ‘뚱보 여성’ 코미디언 백금녀 와 구별하기 위해 지은 예명인) 오천평의 테이블이다. < 신세 좀 지자구요 >에 차례로 등장하는 코미디언들의 열거 방식은 이 영화가 종종 예능 프로그램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 대목에 돌아올 때마다 다소 무례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때 영화산업은 추락하고 있었다. 충무로의 수많은 재능들이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경험이 있는 연출자와 촬영, 조명, 편집, 혹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과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한국영화는 이중의 검열 속에 관객들에게 거리의 죽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 구경거리로서도 버림받고 있었다. 재빨리 대중들은 스크린을 버리고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969년의 이야기이다. 그때 방송국은 안정된 직장이었다. 임권택 은 <신세 좀 지자구요>를 연출하면서 종종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것만 같은 실험을 할 때가 있다. 그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 실험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로셀리니를 시작으로 (그의 교훈에 따라)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고다르, 필립 갸렐, 외스타슈,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헤어초크, 벤더스로 이어지는 수 없는 텔레비전과의 모험이 있다. 시네-텔레비전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명명했던 시기. 레지스 드 브레는 좀 더 과감한 예언을 했다. 결국 관객은 시청자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빌려서 나는 우리 시대의 관객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관객은 스마트폰 유저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하지만 임권택의 실험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의 잡종교배에 따른 방법의 탐구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방송국으로 옮겨갈 것을 염두에 둔 테스트인지는 (당연히 내가) 알 수 없다. 경기의 시작. 마치 우회를 하듯이 오천평의 테이블을 거쳐서 송해 와 박시명 은 이재명과 아내, 그리고 딸이 앉은 테이블로 간다. 물론 오천평은 경기장의 새로운 벡터를 더할 것이며 지금은 단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재명의 아내는 신랑댁이 시간에 늦는다면서 툴툴 거리고 있지만 딸은 아직도 3분이나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때 저편에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이철 ), 계장( 서영춘 )이 이미 자리를 잡고 감시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이 왜 온 것일까. 대답은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최후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영화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대답이다. 만일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이재명 테이블로부터 시선 바깥에 숨어있거나 (이 영화가 희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변장을 하고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다른 집안의 상견례에 개입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테이블에서는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일종의 양해를 받은 시선의 차단. 혹은 관객과의 약속.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해서 기형적인 배치. 말하자면 여기서는 통상적인 영화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르(Fort)-다(Da)의 원근법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혹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진행된다. 임권택 은 두 집단 사이의 시선을 다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앙상하리만큼 드러난 인물들의 노출. 붙들어 매어놓은 것처럼 한 화면 속에 앉아있는 의자 위의 인물들. 그런데도 그렇게 해도 여기서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장소는 영화의 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임권택이 이따금 비영화적인 배치에 이끌릴 때 만들어내는 블록의 구성에 대해서 난처함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 중의 하나이다. 세 개의 테이블. 이재명 가족이 기다리는 테이블과 오천평이 혼자 앉아있는 테이블과 과장 가족과 계장이 훔쳐보는 테이블.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제 소개가 끝나자 (조미령) 마담과 아들 세진이 제과점에 들어선다. 마담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도도하게 다가와 이재명 테이블의 의자에 앉고 그 기세에 눌려 ( 도금봉 ) 아내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는 듯 맞이한다.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홀의 서빙. 송해 와 박시명 점원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주문을 받는다. 잔의 주문 숫자를 영어로 세면서 거기에 자기들의 숫자까지 슬쩍 더한 다음 (그런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돌아간다. 마지막 등장인물. 말하자면 완결된 숫자. 이 장소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마담의 남편 자리에 구先生이 약간 거만한 자세로 나타난다. 모습이 가관인 것은 카이저수염을 달고 거기에 중절모를 쓰고 이 자리에 나온다. 물론 구先生도 누구를 만나러 이 자리에 자기가 불려나왔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先生은 능청맞은 얼굴로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때 이재명과 그 아내, 딸 보영은 그가 구先生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이미 이 시퀀스의 약속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변장한 모습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先生이 쓰고 나온 모자는 원래 이재명이 가장 아끼는 비싼 모자이며 눈치 없는 식모가 그만 구先生이 필요하다는 말에 냉큼 내다줬다가 아내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인데, 바로 그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좀 더 간단하게 자기 모자를 쓰고 나온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의 가족들이 구先生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 약속한 생활의 기호들에서조차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중의 장님 효과가 있다. 몹시 망설이면서 이재명의 아내는 “혹시 구先生님 아니세요?”라고 묻지만 모자를 벗고 (뒤집어쓴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머리(모양의 가발)을 보여주자 금방 실례했다고 사과한다.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는데 전개 방식은 ( 임권택 답지 않게) 전혀 납득할 수 없게 진행된다. 사실 이 장면이 드라마로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긴장은 구先生의 변장이 들키느냐 마느냐에 있다. 이중의 역할. 마담의 남편의 자리이자 구先生이라는 역할. 구봉서 라는 배우, 드라마가 불러일으키는 긴장. 여러 개의 진동판을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약한 약속.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이때 우리는 이 약속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좀 전에 한 말을 수정하고 싶다. 희극의 진정한 약속은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라고 전제를 던진 다음 그것을 기어이 들키게 만들어서 소동을 만드는 것이다. 전형적인 포르-다 게임. 이때 눈속임은 이중으로 배치된다. 이야기 안의 인물들은 속지만 이야기를 보는 우리는 절대 속지 않는다. 우리가 속는 것은 절대 속지 않는다고 가정된 약속 그 자체의 배신이다. 당신은 이 상황이 1969년에 만들어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희극 영화이며,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영향 받은 분장이라고 가볍게 지나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잘못 붙잡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구先生의 외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기호를 질문하는 중이다. 종종 어떤 기호들은 마치 침점과 같아서 이야기 안의 시간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문제가 보기와 달리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이미지의 재현이 약속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재현 자체가 대상의 뿌리와 관련지어야 한다고 믿는 연출자이다. 그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부터 그러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이 연출한 1960년대의 사극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떤 순간에는 과도할 정도로 그 뿌리의 안에서 영화가 살아가야한다는 믿음을 밀고 나가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을 때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그게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이미지의 자리에 대한 내기를 벌이곤 했다. 영화는 그에게 재현될 때 그 안에 대상의 뿌리가 체화되고 시간이 종합되는 장면을 보는 것이라는 어떤 믿음의 일관성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걸 < 길소뜸 >에서 무시무시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만들던 해에 임권택은 < 황야의 독수리 >를 연출했다. 이 시기의 임권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기 영화의 어느 부분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영화들은 임권택의 영화들 안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일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언가 재현의 이미지들은 단절되고 스스로 이야기 안의 인물들의 기호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는다. 갑작스러운 사고. 여기서 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손님 오천평의 주문을 받고 핫 케익 10장을 구운 접시와 주스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오다가 그만 송해 와 박시명 은 서로 부딪쳐서 그걸 바닥에 떨어트려 접시는 나뒹굴고 컵은 깨지고 핫케이크는 바닥에 떨어진다. 그때 갑자기 기적이 벌어진다. 놀라지 말 것. 영화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말하자면 카메라 필름을 되감으면서(rewinding_shooting), 바닥에 떨어졌던 케이크와 주스 잔과 접시가 바닥에서 위로 날아올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물론 간단한 테크닉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영화의 기계장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리듬은 산산 조각나버린다. 혹은 완전히 작동을 중단하게 된다. 차라리 어리둥절한 중단. 이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린다. 무언가 이 쇼트는 이 갑작스러운 리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마치 이 순간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기라도 하듯이 구先生은 먹을 것을 보면 식탐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양주병에 바꿔 넣은 화장품 스킨로션 한 병을 모두 마시고 화장실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드나드는 장면. 이때 임권택 은 구先生의 복통을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장면과 마치 폭격기의 폭음과도 같은 과장된 사운드를 결합시켜서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주스를 보자 구先生은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맥주를 마시기라도 하듯이 그걸 벌컥벌컥 마신다. 그때 이들과 아무 상관없는 오천평은 자신이 주문한 핫케이크를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두 개의 테이블. 하나의 장소, 새로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테크닉. 영화는 그 둘을 반복해서 서로 오가면서(cross_cutting) 마치 둘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다는 듯 보여준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으며 또한 드라마도 생겨나지 않는다. 강제적인 매듭. 사회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듯한 동물적인 제스처. 오로지 그 둘의 관계는 탐식의 광란에 가까운 속도 이외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 여기까지 드라마를 쫓아왔다면 당신은 중얼거릴 것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맨 처음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반응은 이제 이 운동이 완전히 이야기 바깥으로 나갔음을 알린다. 거의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신체들. 마치 그 주인들이 통제를 상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가 대상을 건드리면 그 부위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구先生과 오천평이 각자의 테이블에서 각자의 음식에 매달리자 과장 가족과 계장이 앉은 테이블에도 진동이 온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걸 바라보던 ( 서영춘 )계장이 마치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인형이 두 사람의 탐식에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자 그게 날아가 ( 양훈 ) 과장의 입에 꽂힌다. 사라진 삶의 법칙. 그걸 (양훈) 과장이 다시 뱉어내자 그게 아내의 코에 가서 박힌다. 거의 서커스와도 같은 동작. 물론 여기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훈련받은 연기자들의 묘기가 아니라 영화의 기계적인 트릭이다. 오로지 영화라는 기계의 작동. 그걸 아내가 다시 콧바람으로 불어내자 그게 날아가 다시 (서영춘) 계장의 입에 꽂힌다. 질세라 그걸 다시 뱉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 이철 ) 아들이 받아먹는다. 이 개그는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심지어 이재명 가족과 마담 가족 간의 상견례의 어떤 내용과도 상관이 없다. 그들 사이에서의 행동은 어떤 비유도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테이블은 상징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세 개의 테이블을 어떻게 짝 지워야 하는 것일까. 세 개의 테이블은 가장 단순한 상태의 신체라는 운동의 작동만이 기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세 개의 테이블로 나뉜 기계적인 활동을 어떻게 하나로 결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첩첩산중. 이 활동에서 어떤 작동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보다 큰 범주의 새로운 운동의 경기에로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구先生은 큰 기침을 한다. 콧물을 닦으려하자 (당신도 예상했듯이) 카이저수염이 떨어져나간다. 이때 이재명과 아내는 깜짝 놀라지만 이상한 것은 그걸 보고 딸 보영이 깔깔 웃는 것이다. 사실상 구先生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상견례는 파국을 맞을 것이며 보영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반복해서 웃는다. 이 순간 구先生이 실례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대사. 임권택 은 다시 상황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파리가 구先生의 대머리 가발에 앉는다. 이번에는 (두 명의 점원 중의 한명인) 송해 가 다가가 구先生의 머리에 앉은 파리를 잡는다고 내려치다가(물론 우리는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긴장을 불러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두려운 기대이다) 그만 가발을 벗겨버린다. 그제서야 이재명과 아내는 마담의 남편(역할을 하기 위한 나온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관객 중에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기엔 어떤 게임도 없다) 맙소사. 드라마는 사실상 여기서 가장 불편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르였?이상 해야 할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새로운 동선. 그때 어디선가 크림을 잔뜩 토핑한 케이크가 날아와 구先生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다. 돌아보니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 서영춘 )계장이 일어나서 이재명의 테이블을 향해 일제히 던지기 시작한 케이크가 날아든 것이다. (할리우드 희극장르에서) 파이던지기(라고 부르는) 액션. 파이던지기는 카오스로 달려가는 입구이다. 임권택 은 전쟁영화를 찍을 때 누가 누구를 (종종 과도할 정도로) 쏘는 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자, 정반대로 여기서 임권택은 거의 고의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던지는지를 알 수 없게 동선을 무시하고 (좀 더 정확하게는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집어던진다. 혹은 누가 누구에게 던지든 상관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피한 사람은 쓰러진 책상 밑에 모습을 숨긴 이재명의 딸 보영과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그때 송해 와 박시명 은 재빨리 파이던지기의 동선에서 빠져나와 케이크를 맞고 기절한 오천평의 삼백만 원짜리 반지를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서로 관계가 없는 전체. 그저 동선의 재난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활동. 그때 인물들은 뒤집어쓴 케이크의 크림으로 무너져 내린 형상이 되어간다. 반드시 상대방을 겨냥할 의도조차 없이 사방에서 서로 던질 때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그런 다음 거의 지친 그들이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할 때 (양훈) 과장과 이재명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서영춘) 계장과 구先生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들 사이의 짝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 이철 )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빨리 바깥으로 도망친다. 당신이 좀 더 예민하다면 문득 화면의 주변을 돌아볼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들이 케이크를 집어 던지는 사이에 처음 시작할 때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마치 그들의 난동극에 조금이라도 방해라도 될 것 같아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흔적도 없이 화면에서 사라졌고, 그런 와중에도 카운터 저편의 제빵 셰프들은 그들이 만든 케이크를 사방에 집어던지는 동안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마치 그들을 보지도 못한 듯이, 계속해서 빵을 만든다. 그러다가 구先生이 두 어머니, 이재명의 아내와 다방 마담에게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그들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충고를 주고 떠나갈 때에야 비로소 돌아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는 대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임권택 이라는 설명 바깥으로 나간 영화이다. 그냥 서둘러 실패작이라고 설명한 다음 빠져나오고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부서져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가 그 사이를 메워나간다. 처음 볼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예기치 않은 골격이 나타나 영화의 윤곽을 다시 설정하기 시작할 때 임권택은 거기서 무언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을 가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이런 방식을 두 번 다시 취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언가 모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눈으로 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육체처럼 다루어지기 시작할 때 몸은 히스테리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 든다. 지나치게 빈약한 장치들.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몸. 벌거벗은 영화. 여기서 눈은 기능을 포기했고 창자가 음식에 반응하면서 영화의 장치들을 뒤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배고픈 영화. 굶주린 수사학. 나는 그 사이에서 무언가 거기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건 리비도의 퍼포먼스이다. 이제까지 임권택을 다루면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정말 누구도,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질문. 나는 이 질문의 시작을 여기서부터 해볼 생각이다. (계속) 1969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신봉승 촬영 장석준 조명 김진도 편집 장현수 음악 김기갑 구봉서 ... 구선생 김희갑 ... 이재명 도금봉 ... 이재명의 아내 전양자 ... 이재명의 딸, 보영 조미령 ... 마담 서영춘 ... 계장
< 삼국대협 > 신문광고 다소 장황하긴 하지만 먼저 약간의 회고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때 몹시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1972년 가을. < 삼국대협 >이라는 영화 앞에서 보기도 전에 마음껏 비웃고 경멸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홍콩 쇼 브라더즈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이제 막 중학생이었던 소년은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를 시작으로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 돌아온 외팔이 >,그리고 < 심야의 결투 >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삼국대협>의 신문광고를 노려보듯이 쳐다보았다. “最後의 勝者는 누구냐! 映畵史上 類例없는 殘酷! 激情! 興趣! 의 크라이막스!! 中國의 외팔이, 日本의 盲俠, 韓國의 一枝梅가 한꺼번에 나온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조건반사적으로 그해 여름에 본 < 외팔이와 맹협 >이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 나는 트랜스 내쇼널 시네마를 알지 못했고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영화적 개념 자체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그저 이건 쇼 브라더즈 ‘짝퉁’을 다시 ‘짝퉁’으로 한 번 더 버전 ‘다운(!)’시킨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를 거의 참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때 나는 막 열 살이 넘었을 뿐이다. 용돈은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기를 기다렸다. 오랜 교훈. (보기도 전에) 일단 적의가 생기면 영화는 어떤 장점에도 모두 눈이 멀어버리는 법이다. 물론 나는 이 자리에서 <삼국대협>이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고 난 다음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삼국대협>은 영화 자체가 몹시 불쾌하다는 어떤 긴장의 유지랄까,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기분, 단지 이 영화가 형편없어, 라거나 나는 이 영화가 싫어,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내팽개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그 무언가의 방해에 맞닥트린 것만 같은, 그런 기묘한 거부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그걸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장면이, 이를테면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혹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성적인 순간들이 돌발적으로 분출하는, 말하자면 그런 이미지나 쇼트, 혹은 대사가 문제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어린 소년이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적인 관계가 설정되었거나 숨겨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건 내가 미처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삼국대협>은 (그것이 부정적이었다 할지라도) 내게 하나의 에너지로 등록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나는 그것을 영화를 보면서 셈을 하는 항수(恒數)로 등록하는 데 실패했다. 대신 어떤 상처를 받았다. 잘못으로서의 세계. 속임수와 그 무언가 그 사이에 숨어버린 어떤 방법.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방법이다. 두 번째 만남은 이상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 삼국대협 >이 임권택 의 영화라는 사실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시절에 보았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게다가 임권택의 영화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 잡초 >조차 찍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1987년 그해 겨울, 임권택 감독님과 인터뷰를 위해서 작품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거의 난데없이 이 영화 제목과 다시 마주쳤을 때 망연자실하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나의 심정을 한 번 상상해주기 바란다. 순서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결국 이 영화에 대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그때 임권택 감독님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다음 “내가 그런 영화도 찍었어요?” 라고 반문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정리한 줄 알고 다시 작품 목록을 찾아보았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고 일일이 신문광고를 찾아보아야만 했다. 물론 <삼국대협> 신문광고에는 ‘監督 林權澤’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확인을 하고 다시 질문을 했을 때 한참을 들어보시더니 “전혀 기억이 안 나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이 질문은 거기서 끝났다.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 건지 아니면 기억을 안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1972년 그해에 임권택은 ( 변장호 , 최인현 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 명동 잔혹사 >와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그리고 <삼국대협> 세 편을 찍었다. 한 가지 더. 다소 의미심장하게 <삼국대협>은 임권택의 마지막 무국적 무협활극영화이다. 그는 < 장군의 아들 >로 ‘다찌마와리’ 장르에 돌아온 적은 있지만 두 번 다시 무협활극을 찍지 않았다. 그런 다음 2013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임권택 전작전을 (2010년 영상자료원 회고전에 이어 두 번째로) 하면서 이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삼국대협>을 포함시켰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B무비의 열렬한 팬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었던)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감독인 샤를 테송은 뉴 커런츠 심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달려와서 이 영화를 본 다음 앉아서 해설까지 듣더니 내게 기쁘게 악수를 청했다. 샤를 테송은 올리비에 아사이야와 함께 1984년 9월호 카이에 뒤 시네마 특집호 「홍콩 시네마」의 특집호를 만들었던 비평가이다. 아마 그는 토니 레인즈와 함께 홍콩영화에 매혹된 서방세계의 첫 번째 세대일 것이다. 이때 샤를 테송은 이미 소림사 영화의 계보를 썼으며, 쇼 브라더즈 영화사의 대표 런런쇼와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이 특집호에는 호금전과 장철의 인터뷰뿐만 아니라 (< 매트릭스 >가 등장하기 20년 전에) 무술감독 류가량과의 인터뷰와 무술 동작지도의 장면 분석(shot_by_shot)도 실려 있다. 말하자면 그는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의 존재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본 ‘찬바라’ 장르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는 비평가이다. 샤를 테송은 <삼국대협>을 본 다음 약간 흥분상태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This is so funny lovely treasure!”라고 약간 외치듯이 말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을 피하거나 아니면 자리를 떠나는 비교적 예의바른 프랑스 비평가이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그냥 맞받아치거나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자기의 반대 의견을 반드시 전해서 기어이 그 자리를 망쳐놓는다.) 나는 이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삼국대협>이 내 앞에서 걸작으로 둔갑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의 견해이다. 내 관심은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 다음 불쾌라는 기분, 너무 사소하게 느껴져서 이론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대답하고 싶어졌다.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 돌아온 외팔이 > 포스터 22번째 ‘자토이치’ 연작 <신 자토이치, 물리쳐라! 당나라에서 온 검객> 다소 어색하더라도 먼저 < 삼국대협 >에 이르는 과정을 약간 추리소설처럼 생각해보자. 물론 가장 앞에 있었던 영화는 홍콩 무협활극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와 < 돌아온 외팔이 >일 것이다. 장철과 왕우. 과도할 정도로 커다란 성공.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스타일. 고전주의적 규범들을 중단시킬 만큼의 어떤 단절감. 물론 이 장르를 열어놓은 사람은 < 용문의 결투 >의 호금전이었지만 장철은 그 방향을 완전히 틀어놓았다. 뭐랄까, 장철은 마치 이 장르에서 (제한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셀지오 레오네가 서부극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장르 안에서 반칙으로서의 자기 순환의 에너지. 두 편의 ‘독비도(獨臂刀)’는 홍콩영화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 안에서 법칙은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쇼 브라더즈는 일본 영화사들의 방식을 받아들였고 소속 영화인들을 월급제로 운영하였다. 왕우는 두 영화의 성공 이후 쇼 브라더즈를 떠났다. 우연의 일치. 쇼 브라더즈에서 경력을 쌓은 제작 프로듀서 레이먼드 쵸우(鄒文懷)도 마침 떠나서 새로운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를 세웠다. 레이먼드는 영화사의 핵심은 스타라고 생각했고 재빨리 왕우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골든 하베스트는 화어권 영화 극장 체인을 장악한 싱가폴 화교출신의 소씨(邵氏) 두 형제가 세운 쇼 브라더즈의 독과점 방식의 배급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했다. 중국 본토는 문화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서방세계의 시장은 너무 멀었다. 아시아의 가장 활발한 영화시장 일본. 만일 동경을 점령할 수 있다면 홍콩영화를 들고 미국 시장을 두들겨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골든 하베스트는 왕우라는 스타를 일본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쇼 브라더즈는 초기 무협영화에서 무술 동작지도를 위해 일본에서 사무라이들의 활극장면 미장센을 연출하는 살진(殺陣) 감독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레이먼드는 비교적 일본 영화계의 인맥과 잘 알고 있었다. 골든 하베스트는 한편으로는 화어권 내에서의 새로운 ‘독비도’ 연작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에서 자토이치(座頭市) 연작과의 합작을 타진하였다. 떠돌이 장님 안마사이자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뛰어난 검술을 지닌 자토이치는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악인들을 물리치고 서민들을 돕는 정체불명의 협객이자 방랑자이다. 1962년에 시작한 ‘자토이치’ 연작은 단숨에 가츠 신타로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눈이 먼 자토이치가 흰자위를 껌뻑거리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맹인 지팡이인 줄 알았던 막대기에서 불현듯 칼을 빼내 순식간에 그를 둘러싼 사무라이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하나의 컨벤션이 되었다. 이 연작 중의 한 편도 보지 못한 분들은 기타노 다케시가 다소 패러디하듯 (그 자신의 인터뷰를 빌리면) “흉내를 내면서 리메이크한” < 자토이치 >의 활극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자토이치 연작은 너무 많이 만들어졌고 게다가 매번 귀신같은 칼 솜씨를 뽐내는 자토이치와 일대 일 막상막하의 대결 장면을 펼치기 위해서 다른 텍스트로부터 라이벌을 꺼내 들었는데 미야모토 무사시까지 등장했을 때 사실상 이 연작은 거의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 골든 하베스트의 제안은 자토이치 구미(組)에게도 흥미로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왕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단 한 편의 ‘독비도’ 영화도 동경에 개봉하지 않았지만 절정의 무술을 지닌 장님과 중국 대륙에서 온 외팔이가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색다른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시리즈 번외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영화산업으로서는 (이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영화가 수입 금지되거나 (한국도 그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극심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 영화의 배급망을 통해 대표적인 일본 대중영화의 시리즈물이 알려지는 것은 여러모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야스다 기미요시가 감독을 하고 외팔이 검객 왕강이 혈혈단신으로 (쇼 브라더즈 버전의 외팔이 검객의 이름은 방강이며 아내가 있다) “단지 조용히 살고 싶어서” 일본을 찾아왔다가 그만 왕족 행렬에 휘말려 들어 우연히 만난 중국인 부부가 죽고 거기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개된 끝에 결국 오해에 오해가 반복되면서 자토이치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자토이치’ 연작 22번째 영화 <신 자토이치, 물리쳐라! 당나라에서 온 검객(新 座頭市, 破れ!唐人劍)>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화어권 개봉을 위해서 일본판과 홍콩판을 별도로 편집했고 각 버전은 각 나라의 주인공이 최후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홍콩판은 서증굉(徐增宏)이 다시 편집했고 제목은 <獨臂刀大戰盲俠>이다. 세 개의 후일담. 그 하나. 쇼 브라더즈로서는 황당무계한 상황을 맞이한 꼴이 되었다. 아마 장철의 입장에서도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나는 1971년 홍콩의 판권분쟁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골든 하베스트의 왕우판 ‘독비도’ 제작을 막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장철은 자신의 새로운 주인공인 (그때는 ‘깡따위’로 알려진) 강대위를 주연으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오른팔을 자기 손으로 자른 다음 왼팔 검법을 익힌 주인공을 내세워 <신 독비도(新 獨臂刀)>를 연출하였다. 이 영화가 나쁘지는 않지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장관이다) 이 연작에 감돌던 그 어떤 매혹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장철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독비도’ 연작을 찍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왕우는 온갖 변주를 만들면서 ‘외팔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제작하고 종종 연출도 직접하면서 주연 영화에 출연하였다. 장르와 연출과 스타의 삼각형 중 한쪽 꼭짓점이 괄호 쳐졌을 때 도형은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에 관한 하나의 사례. 후일담 그 둘. 일본 진출은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관객들은 이 영화를 홍콩에서 온 새로운 스타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자토이치’ 연작의 외전(外傳)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오히려 전 지구적 DVD 마켓이 (말 그대로) 개방된 다음 좀 괴상한 경로를 거쳐서 (일부 서방세계 자토이치 ‘덕후’들의)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진정한 의미에서 골든 하베스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왕우의 다음 세대, 이소룡이 그들을 찾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첫 번째 영화 < 당산대형 >, 그리고 < 정무문 >, 하지만 그건 이 글과 상관없는 후일담이다. 후일담 그 셋. 그런 다음 ‘자토이치’ 연작은 네 편이 더 만들어진 다음 거기서 끝났다. 다음 세대들이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새로운 ‘자토이치’를 연출했지만 그건 오마주거나 향수로만 반복되었다. 가츠 신타로 없는 ‘자토이치’는 아마도 왕우 없는 ‘외팔이’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외팔이와 맹협 > 신문광고 이제 세 번째 이야기의 차례. 1972년 7월 30일 서울 단성사. 그때 일본영화는 아직 수입을 허락받지 못했다. 일본에 관한 대중적 상품들은 종종 적대적이거나 경멸을 담아서 (그리고 반민족적이라는 위협적인 어조로) 왜색문화로 불리었으며 영화와 대중음악은 모두 금지되었다. 금지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었고, 소문은 덧칠이 된 전설을 만들었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은 화면에 피 칠갑을 하고 시체들은 칼바람에 사지 절단되어 온 사방에 뒹굴고 대결장면들은 너무나 눈부셔서 화면을 마주 보기도 전에 끝난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홍콩영화로 둔갑한 < 외팔이와 맹협 >이 개봉을 한 것이다. 모두들 말하진 않았지만 이 영화가 일본 사무라이 활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중학생이었던 나도 알고 있었다. 맹렬하게 홍콩영화를 보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이 사태를 받아들였다. 정말로 불가능한 순간이 이루어진 화면을 보고 싶었다. 꿈의 영화. 당신은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고 있어도 그보다 더 훌륭한 영화를 우리는 기적처럼 마주치곤 하지 않았던가. 각자의 비장의 목록들. 그러나 <외팔이와 맹협>은 나를 완전히 실망시켰다. 장철의 영화처럼 비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지의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로운 비밀 따위도 없었다. 액션 시퀀스는 시시했고 왕우는 홍콩 쇼 브라더스 영화에 비해서 눈에 띄게 둔해 보였다. 게다가 가츠 신타로가 연기하는 맹협은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 팔 중의 하나를 제거한 다음 던져진 제한적인 조건. 두 눈을 멀게 만든 다음 시각적인 암흑 상태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청각 기호들. 두 개의 조건을 바탕으로 마주한 세상의 상이한 재구성. 나는 아직 육체의 권리를 놓고 신체훼손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질문할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외팔이와 맹협>은 그해 여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아무 정보도 없이 <외팔이와 맹협>이 ‘독비도’ 연작의 팬들을 능멸하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이런 영화가 성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해 추석, 9월 22일에 < 삼국대협 >이 개봉하고 말았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 대중적 성공의 재생산. 이제 여기에 조선의 일지매를 더해서 ‘독비도’를 한국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황당무계한 전술적 배치. 그런데 여기에는 그나마 <외팔이와 맹협>에 출연했던 왕우도, 가츠 신타로도 없다. 물론 누구든 한쪽 팔을 숨기고 외팔이 검객 방강을 연기할 수 있으며, 흰자위를 드러내고 눈을 껌뻑거리면서 맹협 자토이치를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장르 안에 들어가 고유한 스타가 된 다음 텍스트의 주인을 자처할 때 그 자리를 훔쳐내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이미 주인의 자리에 들어선 고유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 관객들의 연애감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나타난 다음 그 사람이라고 허풍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 그건 정말이지 마치 같은 옷을 입고 나온 전혀 다른 상대와 데이트를 하라는 요구만큼이나 무례한 짓이다. 일단 연애감정이 발생하면 내가 사랑한 상대방이 왕우인지 외팔이 방강인지 그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진다. 흐릿해진 경계. 이때 경계를 두고 마술이 벌어진다. 그 둘은 서로를 교환하면서 매혹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시시각각 밀어내거나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데이트는 미묘해서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도 때로는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대부분 그냥 지나쳤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된 것들이 그 어느 것보다도 힘들의 관계 안에서 (정감으로서의) 무드를 자아내거나 (가시적인 형식으로서의) 모드를 이룬다. <삼국대협>은 어린 내게 허풍 뒤에 나타난 거짓말처럼 보였다. 여기엔 물론 어떤 종합도 없고 마찬가지로 어떤 분화도 없었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주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시 그 안에서 같은 것 안의 새로운 것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여기엔 우스꽝스러운 위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줄거리. 1598년 선조 31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 사신의 방문을 앞둔 조정은 중신들이 모여 의논하면서 “상감의 신표나 다름없는 귀중한 나라의 보물인 천하의 명검 천룡검마저도 왜놈들에게 약탈당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면 나라의 체면이 뭐가 되며 우리들은 무슨 면목으로 상감을 대할 수 있단 말이요”라며 탄식하자 다른 중신이 “그저 사생결단 하고 일본 땅으로 건너가 천룡검을 찾아오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줄 아오”라고 답한다. 그러자 “그렇다고 군사를 파병할 수는 없는 일...” 하자 “허나 지모를 겸한 고수급 검객을 한 사람 밀파한다면 일루의 희망은 있을 것 같소이다만...” 라고 덧붙인다. 구태여 길게 대사를 옮긴 것은 조정에서 중신들의 대화 장면이 녹음대본에는 남아있지만 현재 복원된 판본에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극장 상영판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고, 현재 디지털 복원판은 이 씬이 녹음대본에만 있고 상영판본에서는 편집된 것이 아닐까, 라는 추론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장면이 없기 때문에 (혹은 없다면) 일지매가 왜 일본까지 와서 악전고투 끝에 천룡검을 빼앗아 조선에 가져가야 하는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팔이 검객과 맹협의 사연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면서 일지매만 어떤 과거의 장면도 없기 때문에 마치 신비한 인물처럼 감춰진다. (현재의 복원판본의) 첫 장면은 요란한 사운드트랙과 함께 느닷없이 검은 복면을 두르고 지붕에서 나타난 일지매가 자신의 무술을 뽐내듯이 뛰어내려 일당 수십 명의 검사(劍士)들을 추풍낙엽처럼 무찌른다. 그런 다음 거만하게 칼집에 칼을 꽂으며 복면을 벗으면 곁에 ‘일지매 신영일’이라는 자막이 뜬다. 두 번째 등장인물. 한쪽 팔이 없는 무사가 건물의 실내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열댓 명이 칼을 빼 들고 달려들자 순식간에 그들을 물리치고 마찬가지로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러면 곁에 ‘외팔이 김기주’라는 자막이 오른다. 두 가지 지적. 이미 충분히 설명했지만 ‘독비도’는 왕우여야만 한다. 두 번째 불만. 아마도 임권택 은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보긴 했지만 (인터뷰에서 질문하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대답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 같다. 혹은 이 연작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독비도’는 장철의 버전이건 ‘외전편’ < 외팔이와 맹협 >이건 언제나 ‘외팔이 검객’ 방강은 절반으로 동강난 칼을 사용하였다. 그건 하나의 약속이다. 왜냐하면 팔이 잘려진 후 새로 검법을 익히는 중에 온전한 검을 사용하면 균형을 잡기에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반검(半劍)을 선택하였다. 이건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영감을 얻어 연출된 (아마도 최상의 리메이크 버전일) 서극의 < 칼 >에서도 지켜진다. 그러나 임권택 버전의 ‘외팔이’ 검객은 삼국의 협객 중 어떤 결함도 없는 가장 큰 칼을 사용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왕우 버전의 ‘외팔이’ 검객은 마치 단 한 벌의 옷을 지닌 것처럼 검은 옷만을 입었다. 임권택 버전의 ‘외팔이’는 단 한 번도 검은 옷을 입지 않는다. 장르 영화에서 옷은 기호 체계일 뿐만 아니라 신화를 구성하는 다소 복잡한 코드군(群)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어떤 의미나 상징이 개입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혹은 그 어떤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능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즐거움이라는 유혹이 당신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중이다. 무언가? 잘 설명되지 않는 쾌락. 그 안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고 있는 알 수 없는 섬세함. 어떤 비평적 시선도 거절하면서 거기서 비로소 온전하게 이 영화를 보는 관객과의 은밀한 유희가 시작된다. < 삼국대협 >은 이 유희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거나, 혹은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있)다. 세 번째 등장인물. 지팡이를 더듬거리면서 다리 위를 걸어오는 자토이치는 갑자기 나타난 사무라이들이 자기를 둘러싸자 언제 그런 걸음을 걸었나 싶게 재빨리 칼을 꺼내 순식간에 쓰러트린다. 그러면 곁에 ‘맹인 김희라’ 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포스터에도 ‘盲俠’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작 영화 자막에 ‘맹인’이라고 써 있는 것은 좀 어리둥절하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일본을 무대로 해서 (물론 모두 한국에서 찍었다)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 맹협이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사소한 오해를 반복하다가 세 명이 힘을 합쳐 모두의 원수이기도 한 구로다 시게야쓰의 적진에 쳐들어가 함께 물리치고 천룡검을 되찾은 일지매는 일본을 떠난다, 는 줄거리이다. 나는 구태여 이야기의 디테일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 삼국대협 >의 모든 장면이 ‘독비도’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임권택 이 <삼국대협>을 연출하기 위해서 < 돌아온 외팔이 >를 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장면. 장철은 이 장면을 쇼 브라더즈 세트 안에서 찍었다. 외팔이 협객 방강은 대나무 숲에 숨어있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재빨리 경공술로 날아오른 다음 대나무를 베고 쓰러진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잘려나간 대나무를 밟아가면서 위에서 아래로 공격한다. 임권택은 대나무 숲에 가서 이 장면을 찍었다. 잠입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위장을 하여 구로다의 편에 선 일지매가 (그의 돈을 훔치려다가 그만 사랑에 빠진) 은월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거닐다 그를 찾던 (기다리던?) 외팔이 검객과 맹협을 마주친다. 하지만 이건 구로다의 무사들이 파 놓은 함정이었다. 대나무 숲에서 모두들 칼을 뽑고 활극이 펼쳐진다. 임권택은 진행을 하던 영화의 물리적 리듬이 갑자기 변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 감독이다. 그래서 101편의 영화에서 슬로우 모션을 마주치는 것은 이례적인 순간이다. 나는 1980년 < 짝코 >에서 슬로우 모션을 본 다음 임권택이라는 영화의 속도 안에서 두 번 다시 슬로우 모션을 보지 못했다.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이 골목에서 학생 깡패 오찌아리를 물리칠 때의 짧은 스텝 프린팅, 그리고 <서편제>에서 동호가 누이를 떠올릴 때 이미 눈이 멀어 지팡이를 짚고 서성거리는 송화, 그런 다음 마지막 장면에서 눈 내리는 날 소녀의 손에 이끌려 떠나가는 송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옵티컬 프린팅을 제외하면 영화의 이미지들은 질서정연하게 24분의 일초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에서 활동하는 슬로우 모션은 아름답다. < 협녀 > 포스터 먼저 장소. 대나무 숲은 호금전이 < 협녀 >에서 빛과 안개, 바람으로 가득 채운 다음 동양화의 풍경으로 만든 공간이다. 무협영화 안에서 대나무 숲의 전통은 리안의 <와호장룡>과 장이모우의 <연인>에서 매너리즘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 이 <협녀>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개봉한 적이 없고, 아직 DVD는 발명되지 않았으며, 1969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 첫 상영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 삼국대협 >은 <협녀>에 지나치게 가깝게 있다. 여기서 임권택이 대나무 숲을 선택한 것은 풍경(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힘)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방향과 칼로 베어 쓰러트릴 때 만들어내는 빗변의 대각선 운동 때문이다. 그런 다음 사방으로 서 있던 대나무들이 쓰러지면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시야의 확장과 활동 반경의 접선을 더 멀리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다음 동선. 이 장면은 세 사람이 서로 대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구로다의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면서 살진(殺陣)은 세 개의 집합으로 분화된다. 여기에 일지매와 숲에 함께 온 여인 은월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녀는 무술을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집합의 어느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만일 구태여 끌어들이려면 일지매가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을 연출해야만 한다. 재빠른 무술과 전혀 대결의 리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위험한 생명의 자리 사이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긴장의 구도. 그런 다음 예정된 장르의 (따분한) 약속. 그 둘 사이에서 주인공은 희생을 무릅쓰고 자신의 리듬에 대한 제약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임권택은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녀를 세 개의 집합 바깥으로 내보내는 대신 이 삼각형의 구심점으로 활용한다.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에는 지금 하나의 극(劇)을 바탕으로 한 기승전결이 없었을뿐더러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 맹협은 각자 싸우고 있기 때문에 장소의 공집합 이외에 어떤 이접적 접합의 이음새도 갖지 못하고 마치 다 각자의 활동영역 안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하나의 씬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들은 검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야 앞의 대나무를 계속 베어나간다. 그때 대나무는 어느 각도에서 베어도 은월을 향해서 쓰러져 내린다. 말하자면 은월은 이 씬에서 대나무들이 쓰러져 내리는 방향을 유도하면서 움직이는 자석의 미장센이다. 그래서 세 개의 집합의 쇼트들은 매번 은월을 중심으로 오가면서 왕복운동을 계속한다. 세 번째 문제. 이접적 종합을 위한 모멘트. 검의 활동. 대나무 숲 장면이 무심코 볼 때는 그저 살진(殺陣)의 교집합을 단순하게 변주시키면서 숲 안에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서 동선의 모멘트는 접촉의 괴상한 무효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히 이 장면은 그것이 일대 일이건, 일대 이건, 일대 다수이건 서로 검을 겨루면서 진행되는데 정작 검과 검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이 거의 없다. 끊임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휘두르는 장면만이 서로의 검의 곡선을 그은 다음 그 반경 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쓰러지거나 바깥에서 마주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된다. 무심결에 볼 때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과도하게 사운드 효과를 사용하고 있어서 마치 검에서 어떤 힘(劍氣)이 반경거리를 확장한 것 같은 착시를 이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단지 쇼트가 짧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연결 지점 없이(match_cut) 어떤 생략의 순간들만으로 (jump_cut)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칼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이 없는데도 그걸 생략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이유가 좀 기괴하게 보인다. 이 씬에서 검술 장면을 전개하면서 동작을 연출한다기보다는 마치 그 동작의 어떤 순간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켜서 찍은 것만 같은 순간들의 쇼트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슬로우 모션은 하나의 장치이다. 샘 페킨파는 액션의 방점을 찍기 위해서 갑자기 어느 순간을 멈추듯이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 와일드 번치 >. 몹시 인상적인 < 가르샤 (의 목을 가져와라)>. 장철은 할 수 있는 한 늦추기 위해서 시간의 확장으로 이용한다. 막상막하의 < 심야의 결투 >와 < 복수 >. 그리고 리듬의 인상주의라고 할 만한 왕가위의 < 화양연화 >. 임권택은 단락(短絡)의 순간에 갑자기 사용한다. 거의 카오스에 가까운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들은 쇼트가 제각각일 뿐 아니라 사실상 검술 대결의 순간이 없기 때문에 쇼트들의 콜라주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되면 고전적 영화의 규칙 안에서 유기적 구성의 윤곽이 부서질 수 있는 순간을 서로 다른 리듬의 교차라는 불협화음의 몽타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몽타주의 프로그램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르의 대가들이 만들어낸 계보를 경유하여 만들어진 이 장면은 활극장면이기 때문에 우리와의 약속안에서 허용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 씬 전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건 열세 살의 나이에 볼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단지 지금은 그걸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장면의 디테일이 미학적으로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곤궁에 처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설명하려는 장면은 거기가 아니다. 알 수 없는 불쾌감.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기분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을 때 나는 (여기서 서로 다르게 사용한 두 개의) 무언가에 대해서 대답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 삼국대협 >을 간절할 정도로 다시 보고 싶게 만들었다. 여기엔 내가 미처 듣지 못한 소음과 같은 영화적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마저 세우고 싶게 만들었다. 명백히 실패했는데 단지 그것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게 만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떤 메아리랄까, 말하자면 내가 이제까지 다루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어둡고 축축한 불길함이 거기 버티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단지 그게 기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시퀀스가 되었을 때 어떤 대답을 거기서 보았다. 구로다의 성에 붙잡혀 온 외팔이 검객과 맹협, 그리고 정체가 탄로 난 일지매는 감옥에 갇힌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일지매와 사랑에 빠진) 은월이 구하러 온다. 그들은 이제 힘을 합쳐 구로다의 사무라이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구로다와 대결을 한다. 구로다는 명검 천룡검을 뽑아든다. 말하자면 <삼국대협>의 클라이맥스. 이때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구로다가 천룡검을 휘두르자 이 세 사람의 칼이 모두 잘려나간다. 무시무시한 검. 게다가 구로다는 (영화 속의 설명에 따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에 오른 장군 중의 한 명이다.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칼이 모두 잘려나간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부터 미로처럼 이어진 일본식 다다미방의 방문 사이로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게 전부이다. <삼국대협>은 유머가 있긴 하지만 희극이 아니다. 이들이 구로다를 피해 도망 다닐 때 천룡검에 그만 바지가 찢겨져 나가 속옷 바람이 되고, 그나마 흘러내려 엉덩이를 보일까봐 두 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겅중겅중 뛰면서 칼을 피해 도망 다닌다. 구로다는 이들을 뒤따라 천룡검을 움켜쥐고 이 방 저 방 뛰어다닌다. 헛 칼질. 전혀 위험해 보이지도 않은 채 절대로 천룡검에 베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 다니는 세 사람. 이때 약간 프레임의 속도를 빨리해서(slow_speed_shooting)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왜곡되고 깨어진 표면.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장르의 장치들. 나는 중얼거렸다. 아아, 이 노골적으로 잔인한 장면이여. <삼국대협>은 안티 클라이맥스의 영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임권택 은 이 장면을 장르에 충실하게 묘사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부분적으로나마 만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자해하는 심정으로 스스로 장면 전체를 부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 그건 소설의 영역이다. 그 대신 여기서는 어떻게, 에 대해서만 쳐다볼 생각이다. 임권택은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과 맹협의 검술을 여기서 보여줄 생각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시작하자마자 그들의 검을 모두 잘라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구로다의 검술이 가히 절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어도 이미 잘려나간 상대방의 검 앞에서 달리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의 장면이 없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의도적으로 보여줄 게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이 말을 비틀고 싶다. 정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이 씬의 중요한 특징은 갑자기 장르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왜곡되고 부풀려진 방식의 긴장을 갑자기 망쳐 버리면서 재빨리 지금까지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혹은 금지되었던) 상황으로 몰아넣은 다음 무언가를 교란시킨다. 무언가? 여기에서 저기에로, 혹은 저기에서 여기에로. 말하자면 도약. 아니, 그 말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면 단지 추락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건 도약이자 추락이다. 내 대답은 의미 안에서 갑자기 그 자체의 효과를 무의미하게 만덫였模?어리둥절한 횡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수평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마지막 장면 전체를 기괴하게 만들어버린다. 여기에는 유머도 없고, 역설도 없고, 패러디도 없고, 어떤 냉소도 없다. 게다가 여기서 무언가를 하려다가 실패했다기보다 오히려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걸 해버렸다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엔옙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무의미.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달리 말하기 힘든 우울증이다. 무언가를 없애버리고 싶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증오하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영화 자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 내려 버리고 마는 이 이상한 감정 상태 앞에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임권택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다. 그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영화의 규칙 안에서 자기가 펼쳐놓은 상황에 대해 쓸모없음을 탄식하는듯한 슬픈 웃음이다. 여기에는 자기 안에 들어온 나쁜 것과 저항하며 싸우는 대신, 혹은 달래며 자기편을 만드는 대신, 거기에 편승하는 대신, 거기에 의지하는 대신, 그저 상처받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미 벌어진 상황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치 남의 일이기라도 한 듯, 그냥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채, 결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고통받고 있는 듯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쇼 브라더즈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내가 즐긴 것은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매번 비극의 영웅적 승화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삼국대협>은 그 순간을 무의미와의 만남이라고 선언해버리듯이 만든 다음 어떤 불연속성의 자리에로 데려가 망쳐놓았다. 우울한 목소리. 거기엔 볼 것이 없어. 만일 멜라니 클라인이라면 훨씬 정교하면서 시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설명했을 것이다. 거기서 내 즐거움은 토막 난 상태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그때라면) 미처 반격도 하기 전에, (지금은) 더 설명을 할 수 있기 전에 재빨리 끝난다. 나는 <삼국대협>을 다시 보면서 하여튼 대답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나를 우울한 슬픔에 젖게 만들었다. 거기엔 임권택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시행착오의 힘도, 무언가를 참고 견디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의지도, 아니 최소한의 영화에 대한 긍정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 마지막 장면의 순간에서 내가 본 것은 고통받는 시간뿐이었다. 하여튼 이 이야기를 마치기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장면 없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장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고통을 거기에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어떤 비장감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통속적인 상황 안에서, 그저 거기서 덧없다는 듯, 거기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가 끝난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또 다른 의미에서 과정의 예술이라는 것을 배운다. 악순환은 중단되어야 하고 주사위는 다시 던져져야 한다. 임권택은 이듬해 < 잡초 >를 찍었다. (계속) 1972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진필름 각본 권용 촬영 최호진 조명 최입춘 편집 김희수 음악 황문평 신영일 ... 일지매 김기주 ... 외팔이 김희라 ... 맹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