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감독
- ROYSTON TAN
- 제작년도
- 2001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에 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 SF의 변곡점 SF(Science Fiction) 영화가 ‘공상 과학 영화’로 번역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에스에프’라고 불리는 것 같다. 공상(空想)과 과학은 다른가? ‘공상 과학’의 어감은 과학이 첨예한 정치경제학의 산물임을 은폐하는 듯하다. 마치 ‘괴짜의 상상력’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상상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자의 위치를 이동시킬 때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주는 자원. 이것이 상상력이다. ‘공상 과학’은 사회적 위치성(포지션)을 공상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다. 수많은 SF 영화가 있지만 나는 우주(외계인)와 지구를 대립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불편하다(솔직히 말해, ‘분개한다’). 대개의 SF에서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외계인과 친하든, 그들을 연구하든, 전쟁을 수행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를 대표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를 ‘지킨다(지배한다)’. 그들은 세계의 경찰임을 자칭하면서 대외적 군사 개입을 “경찰 활동(police action)”이라며, ‘국내 치안’으로 생각한다. 한국전쟁 참전도 공식적으로 “경찰 활동”(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땅이라는 발상이다. 자기만 ‘지구의 1등 시민’, ‘제1의 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9․11 이전까지 국방부가 없었다. 미국 국방부(DOD, Department of Defense)는 우리나라처럼 자국 방위를 위한 부처가 아니라 전 지구를 대상으로 업무를 보는 곳이다. 9․11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기 땅이 침략당한(?) 사건이었다.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의 ‘진짜 국방부’에 해당하는 국토방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신설했다. 디스트릭트 9(District 9) 외계인과 싸우는 지구의 대표가 ‘파키스탄인’이거나 ‘에콰도르인’인 영화가 있었던가. 닐 블롬캠프 감독의 <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년) 가 걸작인 이유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섹스나 감염 문제를 다룰 때 실험 대상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유색 인종이거나 여성임을 날카롭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 실종된 미국 우주인을 그린 < 그래비티(Gravity) >는 <디스트릭트 9>과 함께 SF의 역사의 한 챕터에 등장할 만하다. 더불어, <그래비티>는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비록 중국이지만’)아시아 국가가 나온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우울증과 중력 내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첫 영화는 < 이 투 마마(Y Tu Mama Tambien, And Your Mother Too) >(2001)였다. 황홀했다. 나는 한동안 디에고 루나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나 친구들과 신나게 영화 감상을 나누지는 못했다(‘미남’ 배우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있었다). 이후 두 배우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작자로 참여한 < 비우티풀(Biutiful) >이나 <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 모두 굉장한 세계였고 <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 <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 >,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에 대한 내 의견은 사족이리라.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2014년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탔다. 나는 아직 <로마>(2018년)를 보지 못했고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그래비티>(2013년)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내게는 ‘내 인생의 영화’다. 하지만 두 번 볼 용기는 없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다. 직면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영화를 ‘호러’로 분류하면, 미친 짓인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비티>는 물리학과 실존주의를 융합하고 그 두 세계를 모두 넘어서, 제3의 지식을 만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설명이 그것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우울증은 묘사하기 매우 어려운 병이다.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보니,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다 보니, 이제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물론 우울증은 고대부터 있었다). 대개의 질병은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증상을 통해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은 반대다. 원인은 ‘하나’인데, 증상은 다양하거나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도 진단이 어렵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내 자는 사람도 있다. 폭식증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있을 때 몸은 의지로 움직인다. 죽음이란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간 이후를 말한다. ‘몸’만 남는 것이다(영어의 ‘body’는 본래 시체라는 뜻이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증은 의지-의식-의욕, 이 세 가지 상실이 혼재된 상태인 듯하다. 한마디로 무기력의 연속이다. 그래서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어 욕창으로 사망하는 이도 있고, 우울한 상태에서 극한의 자신과의 투쟁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우울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이나 공부, 글쓰기에 몰두하여 생산력이 높은 ‘고기능 우울증 환자’도 있다(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마지막의 경우 오래가지는 못한다. 대개 육십 세를 전후하여 자살한다. 더는 그럴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모든 곳에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萬有引力, universal gravitation)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중력(重力)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리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따르는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는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중력의 법칙에서 배제된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憂鬱)’이라는 표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현실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지표에 끌려다니며, 먹고 사느라 세속을 헤매게 된다. 우울증은 반대로, 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중력 상태의 삶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우울증은 살기 싫은 병이기 때문에, 몸과 땅이 붙지 않고 서로 싸운다. 누가 이기겠는가. 중력이 버린 몸. 자살은 이 증상으로 인한 질병사일 뿐이다. 마흔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삶을 지속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한다. “난 그때 죽었는데, 왜 살아 있는 거야? 그때 죽었는데,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듯한 느낌 알아? 매일 내 장례식에 다녀온 기분 알아?” 우울증 환자가 24시간 아픈 것은 아니지만, 불행한 감정 상태에 ‘몰빵’되어 다른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다. 우울증에 걸린 그 순간 이후의 삶은 잉여,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 시간, 비참하고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약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인생이라는 배가 돌아다니기(움직임) 위해서는, 일단 정박(碇泊)할 곳이 있어야 한다. 정박할 곳이 없으면 이동하지도 못한다. 정박하지 않은 배는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배는 서서히 부서지고 부식된다. 살려는 의지와 죽음의 욕망(‘충동’이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것이다) 사이에서의 투병 생활은 매 순간 ‘선택’의 압력에 시달리는 상태다. 이때, 선택은 자유 의지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기분이 날뛰며(업앤 다운이 반복) 기진맥진해지는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상황이다. 내가 아는 우울증 환자는 이 병으로 인해 그녀가 평생 노력해서 얻은 ‘좋은 직장’을 잃었다. ‘성취’가 끝나자마자 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행복한 기억이 없다.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지, 한국을 떠날지, 지구를 떠날지. 지구를 떠난다면 갈 곳은, 단 한 곳 우주이다. 그녀는 매번 ‘선택’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만, “조언해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한없이 응대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중력이 없어서 생존 가능한 공간, 우주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가 끊어진 중력과 자신을 연결해주니 발버둥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우주의 무중력은 지구의 중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은 같지 않다.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하는데, 나누지 않아서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고 들떠 있다. 다양한 기분 상대를 산다. 그리고 누구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약간 우울한 사회, 고뇌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反사회적 인간의 조증(躁症)이 판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대로, 안정된 삶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짐’을 진 채 사는 것이다. 우울, 걱정, 슬픔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타인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우울한 상태는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이와 크게 다르다. 정신 질환(mental disease)과 신체적 질병(physical disease)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사회는 유독 ‘정신병자’와 ‘암’ 환자를 다르게 생각한다. 둘 다, 고통받는 몸(body in pain)인데도 말이다. 정신 질환은 가볍게 취급되거나(“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반대로 통제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정신병자가 탈출했다!”)이라는 식의 극단적 인식을 오간다.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은 아이를 잃은 전문직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 누가 우울하지 않겠는가. 비통하지 않겠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애도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이다. 반면,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일견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이 영화에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구에서는 땅을 디딜 수 없었던 그녀가 땅을 밟을 필요가 없는 우주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여행(journey)하는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두 경우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주, 가장 먼 이동이다. ‘우울과 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만한 통찰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시리아나(Syriana) 이 영화에서 어떻게 조지 클루니를 빼놓을 수 있을까. < 시리아나(Syriana) >, <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 >,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를 보길 권한다. 특히 <시리아나>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반미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이며, 인생의 바닥을 수십 번 치고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매력적인 루저이며, 패배를 반복하고도 변화할 줄 아는 인간을 연기한다.
아홉 살 마사오에게 여름방학이 찾아온다. 그러나 마사오는 즐겁지 않다. 친구들은 저마다 산으로 바다로 가족들과 떠나는데, 부모 없이 일하는 할머니와 사는 마사오에겐 함께 떠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공놀이할 친구도, 학원에 갈 급우도 없고, 심지어 선생님마저 일찍 퇴근하는 여름방학이 마사오에겐 못내 섭섭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같이 떠날 수 없다면 혼자 가면 된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빠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날아든 엄마의 택배에 적힌 주소 덕분이었다. 여름방학 숙제와 그림일기를 넣은 가방을 챙겨 든 마사오는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으니 얼마 못 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돈을 빼앗기고 만다. 이를 해결해준 건 이웃집에 살던 씩씩한 아줌마. 혼자 엄마를 찾으러 가는 마사오를 걱정하던 그녀는 자신의 전직 야쿠자 백수 남편 기쿠지로를 보호자로 붙여준다. 그러나 그는 마사오의 엄마를 찾아주기는커녕, 모처럼 자신이 얻은 여름방학을 만끽하기 위해 더 열을 올린다. 경마장과 술집에서 돈과 시간을 탕진하고 마사오를 한번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대책 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데, 윽박지르고 욕과 손부터 먼저 나오는 그의 성질 때문에 잠시도 편안할 순간이 없다. 이에 대한 뒤치다꺼리는 오롯이 어른스런 아이 마사오의 차지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 길 위에서 더위를 뒤로 한 채 추억과 여정을 공유한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폭력과 피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공세가 지겨워 기타노 다케시가 차기작으로 폭력이 전무한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이를 솔직히 받아들인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는 <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와 < 키즈 리턴 >에 이어 필모에서 가장 잔잔하고 따뜻한 로드무비 < 기쿠지로의 여름 >을 8번째 작품으로 들고 나왔고, 이 영화는 제52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을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대척점의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떠나며 성장하고 교류해간다는 이야기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이 평범한 이야기에 기타노 다케시의 색채가 덧칠돼 독자적인 매력을 갖췄다. 영화는 기존의 관습적인 문법과 틀을 거부한 채 투박하고 거칠게 붙어있지만, 특유의 만화적이고 생뚱맞은 점프와 관조적인 시선을 통해 독특한 리듬과 유머를 부여하며 천진난만하면서도 감동적인 삶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포착해냈다. 물론 이전의 < 그 남자 흉폭하다 >나 < 소나티네 >, < 하나비 >에서 보였던 단초들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며 여전히 불완전하게 연소한 채 남아 그 근간을 살짝 비추는데, 그런 지점들이 단선적일 수 있는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대오각성을 가져다준 일생일대의 획기적인 여행은 아니지만, 적어도 삶에 있어 이런 방학과도 같은 휴식이 만들어준 치유와 관계의 소중함만큼은 오래 남아 두고두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여기에 그럴듯한 악센트를 남겨주는 건 (지금은 비록 깨졌지만) 기타노의 뛰어난 음악적 파트너 히사이시 조의 존재감이다. 기타노 다케시와 지브리의 영화음악 1950년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난 히사이시 조는 국립음악대학의 학생이던 시절부터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 음악에 심취했다. 본명은 ‘후지사와 마모루’지만 무대에서 쓰기 위한 예명을 위해 ‘퀸시 존스’의 일본어식 발음에서 따와 ‘히사이시 조’란 이름을 만들어냈다(퀸시의 일본어식 발음인 ‘쿠이시’를 히사이시(久石)라고 읽은 것에 존스의 애칭인 조 역시 한자어 음독(讓)을 붙여 완성했다). 졸업 후 일본 필하모니 교향악단과 뉴 사운드 인 브라스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는 한편 틈틈이 원더 시티란 회사를 세워 다양한 앙상블과 솔로 작업을 병행하며 독자적인 사운드를 완성해갔다. 그의 지명도가 높아지게 된 건 1983년 음반사로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의 이미지 앨범의 작곡을 제안 받았을 때부터다. 원래는 YMO출신의 호소노 하루오미가 음악을 맡기로 했지만, 작업한 곡이 영상과 어울리지 않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과감히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히사이시 조를 선택한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그가 작곡한 이미지 앨범을 듣고 감명을 받았기 때문인데, 그 후로도 콤비를 이루며 < 천공의 성 라퓨타 >, < 이웃집의 토토로 >, < 마녀 배달부 키키 >, < 붉은 돼지 >, < 모노노케 히메 >,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등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음악을 도맡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 반열에 올라선다. 1992년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진 나가노 동계 패럴림픽을 위한 테마송을 작곡하며 총책임자로의 역할도 수행했고, 야마다 요지 감독을 비롯한 여러 편의 실사 영화에서 탁월한 멜로디를 선사했다. 2001년에는 직접 음악영화 < 콰르텟 >의 연출을 맡기도 했고, 프랑스 판타지 <엄지 동자>의 음악을 담당하며 세계로 활동반경을 넓혀 박광현 감독의 < 웰컴 투 동막골 >과 김종학 피디의 < 태왕사신기 > 그리고 중국영화 <이모의 포스터모던 라이프>와 <해양천국>, <삼장법사의 모험>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히사이시 조가 기타노 다케시와 다섯 번째로 작업한 <기쿠지로의 여름>은 그들의 파트너쉽 중 가장 큰 변화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전까지의 영화들이 미니멀한 색채를 짙게 품고 절제된 테마를 반복, 변주해가며 미묘한 변화를 통해 캐릭터의 심리와 극적인 전개를 다루고 있다면, 이 영화에선 아예 그런 방식을 포기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에서 나올 법한 아름다운 선율의 테마를 정면에 배치해 분위기를 일신한 것이다. 대사와 음악이 없을수록 순수한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하던 기타노 다케시였기에 <그 남자 흉폭하다>나 < 3-4x 10월 >같은 초기작들에선 영화음악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히사이시 조를 만나 작업하며 영상이 가진 매력을 200% 끌어올려주는 음악의 효과를 체험하고 나서 그는 점점 변해갔다. 음악을 의뢰할 때 항상 “자신의 작업이 아니다”라며 히사이시 조에게 전적으로 맡기던 기타노도 이번 <기쿠지로의 여름>만큼은 제작 전에 “피아노 위주의 부드러운 곡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가 있었다. 히사이시 조와 첫 만남 자리에서 “영화에는 반드시 음악이 들어갈 자리가 있죠? 그런 곳의 음악은 일체 뺍시다”라고 대놓고 밝혔던 그였기에, <기쿠지로의 여름> 음악 쓰임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모한 셈이다. 음악적 사용에 대한 혜안과 자유를 얻은 지금의 기타노 다케시는 더 이상 히사이시 조가 없어도 이케베 신이치로나 스즈키 케이지, 카지우라 유키, 후지카와 쇼고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작업을 진행할 만큼 개안했다. 히사이시 조 로드무비답게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 영화답게 음악은 에피소드보다 주로 길 위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된 테마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Summer’라는 곡인데, 영롱한 피아노는 도로에 갓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경쾌하고 시원한 스트링은 한 줄기 바람처럼 산들산들 영혼을 간질이며 이들의 여정에 부담 없는 미소와 흐뭇함을 안겨준다. 히사이시 조의 마력이라면 절제됐지만 명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있는데, ‘Summer’는 그 효과가 가장 극대화돼 발휘된 곡이기도 하다. ‘Going Out’과 ‘Mad Summer’, ‘Angel Bell’, ‘River Side’와 ‘Summer Road’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영화 내내 활용되었다.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라면 마사오와 기쿠지로가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흐르는 ‘Real Eyes’를 꼽을 수 있는데, 잔혹할 수도 있는 현실에 대해 서늘한 스트링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선율이 만만치 않은 삶의 벽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런 풍부한 서정 속에 가려진 외로움과 허무함을 담아낸 감성은 이전 작품들 속에서 언뜻언뜻 등장했던 부분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쉽게 함몰되지 않는 건 평화롭고 여유로운 사운드로 이를 치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전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비슷하면서 다른 부분이기도 한데, 관조와 냉소의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Two Hearts’와 ‘Mother’가 그런 정서적인 분위기의 큐들이다. 그 외 영화에서 마사오가 꾸는 악몽에 등장하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Nightmare’와 또 다른 아름다운 테마 ‘Kindness’나 ‘The Rain’도 잊을 수 없는 트랙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올해 < 바람이 분다 >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은퇴만 벌써 5번째지만). 기타노 다케시 또한 이제 다른 작곡가들과 호흡을 맞추는데 어색하지 않다. < 동경가족 >과 < 작은 집 >을 함께 한 야마다 요지 감독은 여든을 훌쩍 넘겼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듣게 될 기회는 점차 줄어드는데 반해 그의 새로운 영화음악을 기다리게 되는 심정은 늘어만 간다.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 멤버로 선출되고, 2015년 완공 예정인 새로운 나가노 시민 회관의 예술 감독으로도 뽑혀 더욱 바빠질, 일본의 현존하는 최고 마에스트로 중 하나인 그의 신작을 고대해본다. ‘Summer’ Track List 1. Summer 2. Going Out 3. Mad Summer 4. Night Mare 5. Kindness 6. The Rain 7. Real Eyes 8. Angel Bell 9. Two Hearts 10. Mother 11. River Side 12. Summer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