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산책가
시각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말조차 식상할 정도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아야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사람들을 유혹해야하는 그런 세상이다. 기술 발달과 더불어 다양한 영상매체들이 주목받고 있고, 사람들은 점점 더 시각에 의존해간다. 사람들은 세상을 ‘봄’으로써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어떠한가. 화면 가득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들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이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하지 ‘듣는다’거나, ‘만진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만큼 시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2009년에 제작된 김영근 , 김예영 감독의 < 산책가 > 이다.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청각, 촉각, 후각 등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장애인 영광이가 주인공이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비장애인인 누나의 병문안을 가는 영광이는, 선물로 누나와 함께 걷던 길을 촉지도로 만든다. 그리고 눈을 감은 누나와 함께, 촉지도 위로 조금씩 조금씩 산책을 나선다. 영광이의 청각, 촉각 등에 의해 살아난 산책길은 작품 속에서 화면 가득한 시각적 이미지로 되살아난다. 영광이가 ‘보는’ 세계는 우리가 ‘보고’ 있다고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두 감독은 영광이와 함께 걸으면서, 세상을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다시 시각적 이미지인 영상으로 관객들 앞에 내어놓았다. 작품을 보는 동안,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그동안 ‘보았다’고 믿었던 것들을 정말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시각장애인인 영광이를 통해, 오히려 잃고 있었던 다른 감각과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 어둡고 힘든 장애인에 대한 영화는 많이 있다. 그러나 < 산책가 >는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고, 거기에 영광이의 천연덕스런 대사가 즐거움을 더한다. 작품이 끝나고 나오는 감독과 영광이의 산책 장면을 보면, 장난기 가득하고, 꾸밈없는 영광이의 모습에 웃음과 부끄러움의 눈물이 함께 나온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직접 시각장애인 아이들을 만났다는 두 감독은 학교를 찾아 갔을 때의 교실에서 만났던 소란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작품에는 그 느낌이 녹아있다. 이러한 깊은 고민과 세계관, 세심한 기획과 보는 이들까지도 맑게 만드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감독이 있다는 사실은 독립애니메이션의 큰 힘이다. 그리고 둘은 이후로 두 번째 공동작품으로 < City >를 만들었고, 지금도 애니메이션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세상에 나오는 두 감독의 작업에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