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전학생
‘전학 가기 전날 수향은 학교로 갈 준비를 한다.’ 이 짧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비를 지니고 있는지 영화 < 전학생 >은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박지인 감독의 단편 <전학생>은 ‘북에서 온 소녀’가 ‘남의 학교’로 전학을 가는 이야기이다. 소녀에게 전학은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만큼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수향의 고민은 예상치 못한 고비 앞에 반복된다. 새 학교로 등교하기 위해 교복을 사러 가지만 그녀의 좀 다른 억양을 들은 가게 주인은 중국에서 왔냐며 그녀를 살피고 깜짝 놀랄만한 교복의 가격에 수향은 가게 문을 닫고 나온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의 삶 역시 일면 달콤해 보이지만 녹록할 리 만무하다. 먼저 ‘남의 학교’에 갔지만 그만두고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친구를 만나 친구가 입던 교복을 전달받으면서는 기대에 불안이 자꾸만 덧입혀진다. 과연 다시 만난 세계에서 나는 받아들여질까, 버틸 수 있을까. 가깝지만 먼 나라의 학생이 되는 일은 이렇듯 구중궁궐의 문을 여는 일과도 같다. 닫힌 교문을 여는 일, 무거운 마음의 문을 미는 일 모두 수향에게는 온몸과 맘의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학을 준비하는 그 하루의 끝, 한밤중 집으로 돌아온 수향에게 엄마는 이야기한다. “우리 딸을 믿는다”고. 그리고 수향은 천 번도 넘게 연습했을 첫인사를 또다시 주문처럼 되된다. “안녕 나는 수향이라고 해”. 다음 날, 마침내 교복을 입고, 닫힌 교문을 열고 들어선 교실 탁자 앞에서 수향은 무심한 선생님의 친절로 엉겁결에 정체가 탄로 나고 만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 준비한 문장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는 ‘북에서 온 전학생’이 된다. 로맨스 장르물에 가까운 청춘영화들과 거칠고 어두운 세계의 이면을 다룬 수많은 학원물들 사이에서 박지인 감독의 < 전학생 >은 교복과 교실을 벗어난 소녀의 세계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또렷한 변별성을 지닌 작품이다. 또한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충돌의 지점에서 생기는 파열음이 그저 성장통의 신음만이 아님을 사려 깊게 살피는 박지인 감독은 미덥게 캐릭터들의 마음속을 두루 살핀다.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태도와 서둘러 손을 내밀지 않는 조심스러움 덕에 <전학생>은 이야기의 흐름 이상으로 파고를 만들어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서두르는 법 없이 침착하고 단단하다. < 춘몽 > < 꿈의 제인 >을 통해 특유의 개성과 매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배우 이주영 은 라옥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북에서 온 소녀의 ‘언어와 심리’를 연기하는 ‘수향’ 역의 배우 박수연이 긴 잔상을 남긴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북한 소녀 수향 역을 온전히 받아들인 배우 박수연은 어떤 장치 없이도 화면과 관객을 아주 가깝게 끌어당긴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익숙하지만 새로운 말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뱉던 수향의 순간은 이 배우가 공들여 완성해낸 < 전학생 >의 결정적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