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
- 감독
- 팀 버튼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조니 뎁, 위노나 라이더, 빈센트 프라이스, 다이안 위스트, 안소니 마이클 홀, 캐시 베이커, 알란 아킨
홍길동이 시골 도로에 길을 잃은 채 서 있는 장면을 보며 이것은 확실히 < 짐승의 끝 >(2008)의 상업적 연속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미래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이 낯선 사람들과 동행하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조성희의 데뷔작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은 확실히 조성희 의 영화고,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조성희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물론 단편 < 남매의 집 >(2008)에 열광했던 당신은 장편 데뷔작 < 짐승의 끝 >(2010)을 보고 길을 잃었거나, < 늑대소년 >(2012)과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에 낙담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조성희 의 영화가 점점 데뷔작의 근사한 악몽을 잃어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조성희의 영화가 데뷔작의 악몽을 더욱 본격적으로 풀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짐승의 끝>을 다시 돌이켜 볼 필요도 있다. < 짐승의 끝 >은 부조리한 SF 재난 영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만삭의 여자는 이상한 남자를 만난 뒤 쓰러진다. 일어나보니 세상은 멸망했다. 그녀는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두가 이상하다. 밤은 계속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부조리극 속에 던져 넣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나는 <짐승의 끝>을 보자마자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초창기의 스필버그 사단의 영화들이 강하게 떠올랐다. 사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한국 감독으로서 80년대 초중반 스필버그 사단과 당대 할리우드가 만들어 낸 상업영화의 영향력을 받지 않았을 도리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 B급 SF/호러영화들, 그리고 TV 시리즈 < 환상특급 >을 보고 자란 세대의 문화적 결과물에는 어떤 동일한 무의식적 인장이 찍혀있다.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당시 스필버그 사단의 장르 영화들을 다시 꺼내보는 순간 당신은 적잖게 놀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지금 할리우드가 조 단테의 < 그렘린 >처럼 화면 바깥의 피비린내가 자욱한 영화를 PG-13으로 개봉할 수 있을까? 스필버그의 몇몇 영화들(특히 <인디아나 존스 2>)은 거의 소년들의 악몽이다. < 늑대 소년 >에서 조성희 는 적극적으로 팀 버튼의 < 가위손 >, 80년대 늑대인간 장르영화 < 하울링 >과 < 런던의 늑대 인간 >, 그리고 스필버그의 < E.T. >를 끌어온다. 그가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의 비밀>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007 영화에 일종의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는 것도 거의 분명하다. 그는 이 영화 속 누아르의 관습과 스타일의 표본으로 <말타의 매>를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면에서 조성희가 누아르 전성기의 영화들이 아니라 워렌 비티의 < 딕 트레이시 >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조성희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균열이다. 그는 순진무구해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블록버스터보다 더 B급으로 음침하고 못된 구석이 있던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관습을 2010년대 충무로 상업영화의 관습과 마구잡이로 버무린다. 그것은 타협처럼 보이지만 타협이 아니다. 균열이다. 그리고 조성희는 두 개의 균열을 지나칠 정도로 매끈하게 이어붙이는 데 강박적인 공은 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 늑대소년 >과 <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의 비밀>은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2010년대의 충무로 영화도 아닌, 홀로 뚝 떨어진 영화가 됐다. 비평가들이 겨우 2편의 상업적 장편영화를 만든 그를 이야기하며 ‘조성희 월드’라는 단어를 애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다시 < 짐승의 끝 >을 돌아보는 건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당시 그는 < 남매의 집 >의 가능성을 이 첫 번째 장편영화에서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는 비평을 꽤 받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런 비평들은 조성희 를 아트하우스 영화의 결계 속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한 탓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짐승의 끝>은 가장 상업적인 대학 졸업영화를 만들어내려는 오락적 결기가 느껴지는 영화다. 이런 음침하고 즐거운 결기를 나는 아마도 극장판 < 환상특급 >(1983)에서 조 단테가 연출한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봤던 것 같다. 그 에피소드의 제목은 ‘이상한 소년’이었다.
이명세 의 < M >을 보는 도중에 묘한 데자뷔가 왔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 1993년작 < 첫사랑 >의 영화적 환기이거나, 20년을 간극으로 둔 리바이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둘 다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둘 다 이명세 감독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르게 단언하건대 <첫사랑>은 이명세의 가장 빛나는 걸작 중 하나다. 1993년 당시 이명세 는 충무로 상업영화계의 새로운 신동이었다. 데뷔작 < 개그맨 >은 그가 배창호의 (보다 뛰어난) 수제자라는 증거였다.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는 새로운 한국영화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예언 같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아니었다면 김의석 의 < 결혼 이야기 >(1992)를 비롯한 로맨틱 코미디의 물결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성공을 스스로 비웃기라도 하듯 이명세는 당대의 관객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을 < 첫사랑 >을 만들었다. 최종 관객은 겨우 5천 명이었다. < 첫사랑 >은 대학에 들어간 열아홉 살 소녀( 김혜수 )가 연극반 연출자( 송영창 )를 짝사랑하고, 몇 번의 데이트와 첫 키스를 한다는, 별것 없는 이야기다. 아니, 여기에는 사실 이야기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이명세 는 첫사랑의 기억과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그려 내는 데만 집중한다. 이명세는 송영창이 피우는 담배 연기가 바람에 실려 창밖으로 흘러나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풍기와 부채를 총동원했고, 60 테이크 이상을 찍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한낮에 반짝거리는 지붕을 표현하기 위해 기와를 모두 식용유로 칠했고, 목련을 모조리 따서 세트에 달았다. 그런 이명세의 방식은 서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던 당시의 한국 영화계에서는 가히 도착적인 방식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이명세 는 < 첫사랑 >이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기억’에 대한 영화라는 걸 분명하게 한다. 첫사랑은, 그것이 누구의 첫사랑이든 관계없이, 한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면서도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중년이 된 어느 날 신발 끈을 묶다가, 혹은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다, 불현듯 찾아와서 심장을 두들긴다. 이명세는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첫사랑의 순간들을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이 재현하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첫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풍광과 기억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혜수 가 자전거를 타고 벚꽃이 날리는 거리를 내달리다가 송영창 의 창가로 부유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여전히 뭔가 끓어오르는 감흥을 느낀다. 그것은 스타일과 이야기가 완벽하게 합일된, 혹은 오로지 스타일로서 온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마술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 첫사랑 >은 이명세 가 ‘스타일리스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 첫 번째 영화였고, 이명세는 같은 접근법으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를 만들며 상업적인 감각과 자신의 스타일을 버무리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자아내는 마법 같은 순간은 < 형사 >와 < M >에서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이명세의 영화에 대한 접근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우겨보자면, 나는 이명세 영화의 즐거움이 CG의 발전과 함께 사그라졌다고 믿는다. 여기서 내놓고 싶은 또 다른 이름은 팀 버튼이다. 팀 버튼의 몰락은 사실상 CG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의 영화는 수공예로 정성스럽게 창조한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지장 속에 있었다. < 비틀 주스 >나 < 배트맨 > 시리즈, < 가위손 >과 그 이후의 영화들을 한번 비교해 보시라. 그가 자신의 수공예적 상상력을 번들거리는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물리적인 아름다움은 처절하게 거세된다. 이명세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의 초기작들이 주는 감흥은 ‘손맛의 상상력’이라고 믿는다. 혹은 ‘손맛의 공간감’이라고 믿는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창조한 <지독한 사랑>의 세트를 한번 생각해 보라. 그 꿈처럼 가짜 같은 바닷가의 집은 CG로 재창조하는 순간 꿈이 아니라 그냥 가짜가 될 것이다. 손맛을 흉내 낸 CG 이미지가 그걸 대체하는 순간, 이명세의 스타일은 묘하게 숨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명세 의 최고작을 꼽으며 < 첫사랑 >, < 지독한 사랑 >,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사이에서 망설일 테지만, 손맛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명세의 가장 순수한 절정이 <첫사랑>이었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마디 붙이자면, 이명세 감독의 초기작들은 < 개그맨 >을 제외하면 DVD로 좀처럼 발매되지 않고 있다. 이건 거의 문화재 관리 직무 유기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영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미 군정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검열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검열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시작되는 사전검열과, 완성된 영화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자르며 필름을 훼손했던, 가위손이 횡행한 70년대의 유신과 80년대 전두환 정권시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검열사건은 김수용 감독의 1986년 작품 < 허튼소리 > 사태다. 감독 스스로 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하지만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사회성을 표방한 많은 영화들이 가위손의 희생양이 되어 언론을 오르내렸다. 이봉원 감독의 1987년 개봉작 < 내일은 뭐 할거니 > 역시 이즈음 검열로 인해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영화 중의 한편이다. 사회를 풍자하는 대사가 몇 군데 잘려나간 이 영화는 몇 달 후에 재심을 통해 원본으로 상영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미 흥행에 크게 실패한 이후였던 터라 더 이상의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더불어 기술적으로도 매끈함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내일은 뭐 할거니>는 당시의 일반적인 영화와 비교해 새로운 면이 눈에 띄는 영화다. 충무로라 불리던 제도권의 많은 영화들이 여전히 순결과 전근대적인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의 육체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흥행의 제1조건이라 착각하며 진부한 드라마를 반복하고 있을 때, 지하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게 된 남녀 대학생의 한나절만으로 영화를 완성한다. 이봉원 감독은 과장된 기승전결로 관객의 감정을 억지로 증폭시키는 대신, 단순한 공간의 활용과 남녀 대학생의 일상적인 대사 그리고 회상만으로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나름대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미니멀리즘적인 시도를 통해 스타일 적으로도 차별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 같다.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낡은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이리저리 걷고 있는 다리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청바지와 운동화가 청춘의 상징이라면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단지 남자애( 강석현 ), 여자애( 정다희 )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일반적인 대학생들을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남자애의 방황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를 찾아가는 영화다. 아버지가 부재한 남자애는 청소년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와 아들의 나이가 비슷해졌을 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시절 어머니는 창녀였고, 4.19에 참여하고 쫓기고 있던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낸 후 자신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는 “더러운 반쪽은 잊고 고결한 반쪽을 찾으라”고 한다. 그 반쪽은 바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4.19에 참여했던 세대. 그러므로 남자애의 방황은 80년대 당시 복권되지 못하고 있던 4.19라는 잃어버린 역사를 환기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호감을 사랑의 관계로 연결하지 못한 채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신과 전두환 정권에 의해 4.19 민주화 운동이 여전히 훼손당한 채 폭동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 땅은 젊은이의 사랑이 꽃피기에는 너무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자애는 여자애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만 둘은 엇갈리고 만다. 여자애는 그 남자애가 타고 떠나는 전철을 바라보며 “바보”, “멍청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내일은 뭐 할 거니?”라고 외치며 영화는 끝난다. 그 외침을 남자애는 듣지 못할 것이다. 남자애가 내일도 여전히 거리를 방황할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꿀지는 아무도 모른다. 애매모호한 결말의 괴로움.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굵직한 주제의 진중함이 느껴지지만, 관객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것에는 실패한 영화다. 어쩌면 이봉원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극 중 영화촬영 시퀀스는 감독의 초조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장면이 극의 흐름이나 주제와 어울리지 않게 삽입되어 있는 것은 바로 즉 영화 속 영화의 여배우가 하는 말,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 그 뜻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영화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영화 곳곳에 흔적이 남는다. 남자애에게 할당된 무거운 주제가 관객을 지루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여자애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활용함으로써 인형 이상이 되지 못했다. 여자애가 남자애의 방황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만약 여자애가 남자애의 방황을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되었을 것이고, 감독의 의도는 좀 더 쉽게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더불어 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4.19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지독한 검열로 감독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던 그 시절. 감독들은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은 스스로 피해간다는 자조적인 소리를 내뱉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상징적으로 처리한 4.19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그저 할 일 없는 청춘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봉원 감독은 너무 생각을 많이 했거나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의 하나였던 청춘영화를 경유해 사회의 모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시도가 좋은 영화다. 또한 그 시절의 그렇고 그런 지난한 영화들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고민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모호함 속에서도 내일은 멋진 일을 하겠다는 남자애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강석현 정다희 감독 이봉원 각본 이현화 촬영 서웅 1987년 90분 칼라 판매원 (주)동양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