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
- 감독
- 하몽화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적룡, 나열, 리려려, 곡봉, 태니 티엔 니, 고문종
배우 송강호는 < 넘버3 >(1997)에서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을 때 말을 더듬는 청부살인자 캐릭터 조필을 연기하였다. 그가 이 희대의 캐릭터를 창조하는 과정은 <넘버3>의 서사와 다른 등장인물 간의 상관관계에 있어 심대한 의미가 있다. <넘버3>의 진짜 주인공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표현되는 주변부 인물들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필의 동기와 등. 퇴장 방식, 출연 분량, 플롯 안에서의 배치를 분석해 보면 이 인물이 이야기의 핵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몇 개의 장면에서 이런 중요성이 확인된다. 영화의 첫 2분 동안 등장하는 몽타주 시퀀스에서 검은 옷을 입은 조필이 처음 나온다. 버드와이저 맥주 캔을 일그러뜨리고 위악적인 표정을 거울에 비추는 건달 태주(한석규), 샌드백을 두드리는 폭력적인 검사 동팔(최민식)에 이어 소개되는 조필은 주차장에서 피투성이가 된 시체 두 구를 수평으로 패닝하는 카메라 무빙의 끝 지점에서 손에 위협적인 회칼을 들고 나타난다. 첫 등장만으로 그가 사람을 도륙하는 지저분한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무자비한 암살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조필은 피에 젖은 손으로 바퀴벌레를 잡아 입 속에 넣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채 10초가 되지 않는 이 장면에서 영화의 어둡고 코믹한 톤이 확립된다. 짧고 역동적인 쇼트들의 편집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오프닝은 캐릭터 묘사를 통한 ‘초두효과’를 완성한다. 초두효과라 함은 플롯의 초기 단계에 텍스트의 의미와 맥락, 기조, 주제, 스타일을 암시할 수 있는 세팅을 통해 이후에 올 것들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스토리 설정의 전략을 말한다. <넘버3>에서 확립된 송강호의 스크린 페르소나는 이 초기 설정을 통해 영화 속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송강호는 조필 캐릭터를 통해 <넘버3>의 두 가지 성격을 확립한다. 하나는 폭력적인 킬러이다. 다른 하나는 어설프고 실없는 농담꾼 또는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을 때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미숙아이다. 조필의 등장과 첫 번째 행위는 불길함과 코믹함이 머릿속에서 계속 부딪히게 하는 궤적을 만들어낸다. ‘조필’이라는 이름에서조차 비하와 실패의 운명이 감지된다. 무엇 하나 온전히 해내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를 비하하는 말로 당대에 쓰였던 은어 ‘조삐리’로 발음하기 쉬운 이 이름에는 존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명과 연결된 그의 됨됨이는 블랙 코미디의 양면성을 첫 장면에서부터 짐작하도록 만든다. 송강호는 무시무시한 킬러의 뒤에 드러나는 미숙아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다. 이런 페르소나와 관련하여 뇌리에 남는 것은 병원에서의 청부 살인 장면이다. 병원 화장실의 조필은 인근 병실에 든 조직 보스 강도식(안석환)을 살해하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이미 표적을 잘못 설정하여 암살에 실패한 적 있으며 이 미수에 그친 시도 때문에 한층 더 비장한 마음으로 미션을 완수하려 한다. 조필의 검은색 옷은 병원의 흰색 무균 벽과 대조를 이룬다. 조필이 들고 다니는 007 가방에는 라이터, 참치 통조림, 휴지, 생라면, 각종 알약 등 잡동사니 등이 너저분하게 들어 있다. 잡다한 물건들 사이의 밑바닥에서 위협적인 사냥용 칼과 회칼을 꺼내어 든 조필은 사냥용 칼을 집어 들고 가죽 허리띠에 갈아댄다. 질병과 죽음의 기운이 지배하는 병원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 폭력적인 남자는 살인을 앞두고 있지만 그 전에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단장할 필요성을 느낀다. 거룩한 의식이라도 되는 듯 또는 만화의 한 장면처럼, 조필은 눈을 가리는 짙은 선글라스를 얼굴에 쓴다. 이어서 그는 구순포진이 난 입가, 영양부족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갈라진 귓불에 연고를 바른다.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결점을 감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킬러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 장면은 조필의 캐릭터를 캐리커쳐를 보는 것처럼 기술함으로써 오프닝의 초두효과로부터 누적되어 온 무드를 확고히 한다. 몇 차례에 걸쳐 묘사되는 청부살인의 수행, 그리고 어김없는 실패의 과정은 미숙아의 이미지를 반복, 강화한다. 미션을 수행할 때 항상 입고 있는, 신비롭게 보이는 검은 옷의 이면에는 송강호의 역사를 아는 현재의 관객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수룩함이 서려 있다. <넘버3>에서 송강호의 캐릭터 묘사는 한국영화의 스타일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었다. 한 배우의 페르소나의 출발점이자 정수로서 이 영화는 조형적인 언어구사력과 증폭된 제스처, 인물의 단면을 드러내는 신체 언어를 개발하여 이 대배우의 수많은 스크린 페르소나에 반(反) 영웅주의적인 페이소스를 심었다. 이 영화를 통해 송강호가 확립한 것은 신체 훈련, 신체 조작, 대사 애드리브를 통해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구축하는 능력이다. 무언의 신체 언어에 대한 송강호의 재능은 무성영화 형식으로 연출된 한 챕터 ‘쌈마이(들)’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과장된 슬랩스틱 액션 장면들의 몽타주로 구성된 이 신은 표정과 몸짓으로 전달되는 색다른 퍼포먼스를 시전한다. 조필은 조직의 명예와 규범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묘사하려는 신경증적인 노력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조잡한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유머를 이끌어낸다. 송강호의 조필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히스테릭하게 행동하지만, 말을 더듬는 등 과도하고 놀란 반응은 그들의 불안과 취약성을 증명할 뿐이다. 그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구현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심오한 성찰을 몸으로 표현하는 이 배우가 <넘버3>를 통해 창조한 개성은 다양한 장르에서 확장되며 생생함을 더하게 되었다. 그의 레퍼토리 전반에 걸쳐 송강호는 힘과 권위를 추구하지만 그 본성이 목표에 닿지 못하는 인물들을 거쳤다. < 반칙왕 >(2000)의 대호, < 살인의 추억 >(2003)의 박두만, < 괴물 >(2006)의 강두, < 우아한 세계 >(2007)의 강인구,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이상한 놈, < 기생충 >(2019)의 기택에 이르기까지 송강호의 말투와 신체, 분리된 행동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휘하는 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분리되어 가는 인물들을 묘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넘버3>에는 이와 같은 페르소나의 맹아가 있다. 보스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과 겸상하는 것을 거부하는 대사,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협객 최영의의 무용담을 과장하는 말과 신체의 제스처는 위계와 권위를 보호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이 필연적으로 실패로 귀결되는 캐릭터의 파토스를 구축하는데 기여한다. 송강호가 권위과 자존심, 권력이라는 아우라를 유지할 깜냥이 못 되어 조롱거리가 되는 남자들의 대표주자가 된 발단의 지점에 <넘버3>가 있다. <넘버3>의 오프닝에서 조필의 등장 방식과 함께 분석해야 할 것은 그의 퇴장인데 조필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 군화의 클로즈업 쇼트로 형상화된다. 자신들이 섬기는 보스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세 제자들은 참담한 실패 끝에 해체된 조직 ’불사파‘를 상징하는 아이콘을 내세운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고수부지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 조필이 나타났을 때 제자들은 마치 유령이라도 만난 것처럼 예전의 보스를 응시한다. 그들은 경외감 또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다. 카메라는 또 다른 청부살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필의 군화 뒤꿈치를 클로즈업한다. 주변의 속도와 달리 슬로 모션으로 움직이는 이 남자가 불사의 아이콘을 향해 팔자걸음으로 당당하게 걷는 동작에서 이미지는 얼어붙고 배우 송강호의 커리어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 괴물 >(2006)은 서울 도심의 한강에서 거대한 돌연변이 생물이 나타나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을 날뛰다가 여중생을 꼬리에 움켜쥐고 납치하는 기둥 설정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장르에 대한 성공적인 전복의 사례인 < 살인의 추억 >(2003)과 마찬가지로 장르의 꼴을 갖추고 있는 <괴물>에서 봉준호는 괴수영화의 관습을 이용하여 현대 한국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다룬다. 미군 기지를 발원지로 하는 환경 사고의 산물인 괴물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쉽게 읽히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더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납치된 소녀 현서(고아성)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 기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박씨 집안의 구성원이다. 현서의 가족은 느리지만 헌신적인 아버지 강두(송강호)와 강변 매점을 강두와 함께 운영하는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으로 구성돼 있다. 결정적인 순간 얼어붙는 버릇이 있는 양궁 선수 이모 남주(배두나)와 한때 급진주의자였으나 지금은 실직한 주정뱅이인 삼촌 남일(박해일)도 있다. 국가는 이 가족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괴물의 공격이 있은 후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숙주라며 가족을 비롯한 괴물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격리한다. 하지만 강두는 괴물에게 납치당한 뒤 한강을 따라 배치된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노숙자 소년과 함께 숨죽이고 있는 현서의 전화를 받는다. 박씨 가족 일행은 아둔한 병원의 통제 시스템을 벗어나 현서를 찾기 위한 자경단의 여정을 시작한다. <괴물>은 장르와 양가적 관계를 구현한다. 봉준호는 괴수 장르의 발전 도상위에서 자신의 영화를 할리우드와 더 밀착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괴물의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등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위기에 처한 여러 인물들의 예상치 못한 용감한 행동으로 절정에 이르는 고전 괴수영화의 시각적, 서사적 관습을 따른다. 스토리는 전국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무대, 즉 수도 서울의 상징인 한강변을 배경으로 한다. 시각효과 스튜디오 오퍼니지와 협력한 할리우드 수준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퀄리티 이면에 놓인 봉준호의 야심은 괴수영화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관습이 충돌하는 장르의 미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이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강두에게 총알이 한 발 남았다는 말을 들은 희봉이 아들이 총알의 수를 잘못 세었다는 것을 깨닫고 괴물에게 최후를 맞는 장면 등에서 이런 충돌이 가시화된다. 봉준호는 괴물의 실체를 초반에 드러내거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괴물의 입에서 빠져나온 현서가 가족의 간청에 화답하지 않고 비극을 맞이하는 가슴 아픈 장면 등에서 할리우드 주류 장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장르의 관습을 전복한다. 봉준호는 장르 관습의 조각들을 한국적 문맥에 맞게 배열하는, <살인의 추억>에서 시작한 연출 전략을 이어간다.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는 클라이맥스, 거리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강두의 가족들이 한강변의 노숙자(윤제문)와 함께 괴물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는 신이다. 정치적인 함의가 강력하게 폭발하는 이 장면에서 노숙자는 남일이 배낭을 벗어 던지고 불타는 화염병을 던질 준비를 하는 동안 괴물의 목구멍에 휘발유를 붓고 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발밑에 부딪히자 놀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때 남주가 활을 들고 나타나 절묘한 타이밍에 화염이 이는 화살을 괴물의 입을 향해 발사하고 강두는 쇠파이프로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할리우드의 장르 관습과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불덩어리가 되어 쓰러지는 괴물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괴수 영화의 전형적인 관습 아래 있다. 괴물을 처단하는 공격의 수단은 너무나 한국적이다. 배낭을 멘 청년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은 민주화시대를 통과한 한국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선명한 도상은 1980년대 민주화 시위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세계화 및 자유무역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던 20여 년간의 거리 시위를 환기한다. 이러한 시위 중 상당수가 억압적인 군사정권을 지지하거나 점령군의 부당한 지위를 남용하고, 신(新) 자유주의 경제 의제를 추진한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저류에는 뚜렷한 반미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활과 화살을 든 남주의 이미지에는 한국의 여성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해 온 국가적 색채도 담겨 있다. 괴물과 미국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이 장면들은 글로벌한 미국인-타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치적 주장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자, 실직자, 정치적 액티비스트, 삼류 운동선수 등 사회적, 경제적 주변성과 실패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봉준호는 국가의 대리인이 아닌 이들을 도덕적으로 정당한 한국성의 구현으로 지지한다. 범죄 드라마가 아닌 괴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표면적 범죄와 심층적 범죄라는 <살인의 추억>의 구조를 이어받는다. 납치와 실종의 상황은 <괴물>에서 반복되는데 괴물은 내러티브에 구조를 부여하는 장치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초점은 아니며 실제로 괴물은 플롯이 전개되는 동안 점차적으로 중요성을 상실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의 표면 아래 숨겨진 현서를 찾는 가족의 여정이 현대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범죄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박씨 일가가 관료 조직과 자본에 얼키고 설키면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물인 한강 다리 아래를 전전할 때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고 그저 경멸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경찰은 현서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병원은 현서를 찾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지 않으며, 강변을 소독하는 방역 요원들은 쉽게 뇌물에 굴복한다. 남일은 급진주의 액티비스트 시절의 정치적 이상을 고액 연봉과 교환한 친구 뚱게바라(임필성)에게 배신을 당한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공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있는 통신회사 사무실에서 뚱게바라는 휴대폰 추적을 통해 현서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카드빚을 갚기 위한 신고 포상금을 노리고 경찰에 남일을 신고한다. 이러저러한 삽화들을 통해 봉준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환상을 야유하고 경제적 기적을 돌연변이 괴물로 재탄생시켜 근대화를 얻기 위해 지불한 사회적, 도덕적 비용의 크기를 가늠하고자 한다. <괴물>이 폭로하고자 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범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롤로그는 돌연변이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장면은 주한미군 사령부이자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이곳 근처에 현재 한국 정부가 터를 잡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반향을 불러온다)의 영안실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한국인 부하 직원에게 포름알데히드 병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명령하고, 소극적으로 항의하던 부하는 이내 순순히 복종하여 수백 병의 독극물을 싱크대에 쏟아 붓는다. 이 장면은 고전 공포영화의 클리셰인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더 미묘한 공포는 부하가 미친 과학자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자국민에 극도로 해로울 수 있는 범죄를 종용하는 미국의 명령에 순응하는 한국 정부의 종속성을 재현한다. 한 병원 장면에서 기괴한 방호복을 입은 미국 관리가 한국인 의사에게 강두의 뇌를 뚫으라고 명령하는데 이 가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를 한국인 의사는 묵묵히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괴물이 자연이나 과학, 심지어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정치적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한다. 괴물을 만드는 것은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아니라 한국인 조수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숙주’는 미국에 기생하는 한국의 지위를 가리키면서 심오한 범죄의 본질을 암시하는 셈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본 게재 원고는,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누가 작년 최고의 작품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는가. <기생충>은 역대 한국 영화 매출액 1위를 달성함은 물론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을 받아내며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기생충>은 개봉 이후 흑백판으로도 다시 상영하며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코로나로 영화관을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흑백판을 올레TV나 LG 유플러스 TV에서 상영하여 집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생충>은 ‘계급투쟁’을 다룬 영화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잘 바라본다면 모든 인물에게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계급이 나눠져 있는 탓에 여러 사건이 나타난다. 사업에 도전했지만 계속해서 실패를 경험한 아버지 김기택(송강호),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어머니 박충숙(장혜진), 명문대에 지망했지만 합격하지 못한 장남 김기우(최우식), 미대 지망생인 장녀 김기정(박소담). 이 가족은 모두 백수이기에 윗집, 카페의 무료 와이파이를 빌려 쓰고 피자 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저택에 살던 박 사장(이선균)의 집으로 네 명의 가족들이 모두 취직하게 된다.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집에서 일하면서 팬티 사건을 꾸며내거나 자잘한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사장 가족은 아들인 다송의 생일을 기념하여 캠핑을 떠나게 된다.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에 기택 가족은 박 사장의 집을 자신의 집인 마냥 들어앉고 쓰게 된다. 그렇게 여유롭게 행복한 분위기를 만끽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뜬금 없이 초인종이 울리게 된다. 충숙은 인터폰으로 예전에 쫓겨났던 가정부 문광이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문광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 준 충숙은 집 지하실로 내려가 나오지 않는 문광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광과 그의 남편이 몰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기택 가족은 문광에 의해서 자신들이 박 사장의 집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박 사장에게 알려질 위기에 처한다. 서로 협박을 계속해가며 심각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위기는 두 가족이 일자리를 걸고 싸우는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박 사장이 기택에게 죽게 됨으로써 끝이 난다. 누가 이러한 뜻밖의 전개를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박 사장의 죽음은 여러 사람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도대체 왜 박 사장이 죽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기택이 박 사장을 갑자기 죽인 전개는 모든 관객들에게 이들에게 충격적인 전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전개도 쓸데없이 나온 전개는 아닐 것이다.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인 것은 자살 행위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택의 행동은 민감하던 기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고 그 방아쇠가 당겨져 박 사장에게 향했다는 추측들이 많다. 하지만 기생충이던 기택이 숙주인 박 사장을 죽인 행위는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 기생충은 숙주와 공생관계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자살 행위가 된 것이다. 숙주가 죽었으므로 기생충인 기택이 이제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또 다른 숙주를 찾아서 기생하는 것이다. 결국에 결말에서의 기택은 독일인이라는 숙주에 기생한다. <기생충>의 결말은 배드 엔딩? <기생충>에서는 기택 가족이 문광을 몰아내고 취직하는 듯이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이야기나 박 사장 가족이라는 숙주 하나에 여러 기생충끼리 다투면서 자신의 숙주를 차지하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3막 구조를 취하는 영화로 이야기의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구분이 용이하다. 부정과 긍정이 변하는 장면을 쉽게 나타내어 상황이 변화함을 쉽게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이 관객들의 몰입도를 더욱 더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러한 <기생충>의 결말은 어떠한 영화보다도 더 절망적이었다. 봉준호의 이전 작품들인 <괴물>이나 <설국열차>도 절망적인 결말로 끝난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생충>은 그러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엔딩을 보여줬다. <괴물>에서는 박강두가 딸 현서를 잃었지만 덕분에 살아남은 세주를 양아들로 입양하고 다시 매점을 운영하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설국열차>에서는 비록 거의 모든 인물들이 죽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열린 결말로 해피 엔딩이라고 말했고 요나와 티미는 열차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러한 것 하나 없이 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이다. <설국열차>나 <괴물>의 주인공들은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생충>은 주인공들이 가해자라는 점에서 <괴물>이나 <설국열차>보다 더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두 가족을 너그럽게 받아줘 취직 시켜주고 아무 잘못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박 사장 가족은 믿었던 두 가족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렸다. 이렇게 거의 모든 인물이 피해를 봤고 모두 행복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불행하게 끝나버렸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절망적인 영화는 잘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생충> 속 계급투쟁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간에 심각하게 벌어진 차이뿐만이 아닌 두 가족, 두 기생충 사이의 계급투쟁도 담겨 있다. 결국에는 한 기생충이 다른 기생충을 몰아내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문광 가족은 전멸했고 다른 기생충인 기택 가족은 세 명이서 살아남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가난한 자들은 의외로 똑같은 가난한 자들을 적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생충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숙주처럼 부유한 사람은 매우 쿨하게 그들을 잘 받아주지만 가난한 기생충들은 항상 자신의 숙주를 차지하려는 다른 기생충들을 적대하는 것을 보아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기생충> 냄새의 의미 기생충 속 냄새의 의미에 대해선 봉준호 감독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냄새는 빈부격차를 확실히 보여주는 장치로 사람의 현실과 처지를 잘 보여주고 지켜야 할 인간의 예의가 붕괴되는 순간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도 부유한 박 사장의 냄새와 기택의 냄새의 차이는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냄새가 언급되는 많은 장면 속에서 모든 이들의 빈부격차를 알려준다. 봉준호의 <기생충>, 영화계를 뒤흔들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달한 봉준호의 작품 <기생충>은 황금종려상 이외에도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초로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영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을 수상하고 한국 최초 세자르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수상의 위업을 달성하여 한류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기생충은 스토리나 연출만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것이 아니다. ‘제시카 외동딸’ 버전 독도는 우리 땅, 기택의 명대사들을 수도 없이 뽑아내어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이러한 <기생충>은 여전히 전세계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처음 상영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봉준호와 <기생충>은 더욱 더 언급되며 계속해서 영화계를 상징하는 영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는 작품을 쓰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닌 것만큼 앞으로도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도를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