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갑의 여인
- 감독
- 심우섭
- 제작년도
- 1962
- 출연
- 최무룡, 김혜정, 황해, 박암, 장동휘, 이예춘, 이대엽, 황수연, 장민호, 백송, 독고성, 석귀녀, 강미애, 황정순, 이민자, 맹만식, 김수천, 지방열, 심민구, 조기천, 전흑천, 박기용, 김희철, 유진수, 최화자, 지계순, 조정자, 김양, 임예심, 조향숙, 김수연, 김애경
© 코리아씨네마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은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사회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1] 『꼬방동네 사람들』(이동철, 198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개봉 당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 사는 판자촌 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언론의 호평을 받았으나 [2] 실제로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존재했다. “제작 신고 때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10개월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3] 라거나 ‘신고 접수 후 <꼬방동네 사람들>의 경우는 1백 21일 만에 수리 통보를 받아 제작에 나서게 됐다’ [4] 는 기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0년대 초반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 상황 및 검열 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제작사는 시나리오와 영화 필름을 검열받아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다면 검열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신고 과정에서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 정사 장면, 외설, 비속·저속한 대사 등으로 사회적으로 말썽이 일고 있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크게 브레이크에 걸리고 있다’ [5] 는 기사는 당시 이루어지던 검열 항목을 알려 준다. 특히 에로티시즘은 주요 검열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사회적 아픔과 가난한 사람들을 재현하는 데 중심을 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에로티시즘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영화는 더욱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회성 짙은 영화’에 대해 시대는 매우 민감했고 영화는 결국 수정되어야 했다. 이는 시대가 승인하고 요청한 영화, 그리고 대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이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격동의 시대, 대중 영화가 직면한 시련 이 영화의 제작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사회적 격동의 시기와 겹친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시대가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5.18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나 문화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저항운동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것은 이러한 차원에서였다. 1984년 5차 영화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국영화와 영화산업 또한 이런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이 ‘사회 현실’을 다룬다는 게 문화 검열 주체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특히 원작인 이동철의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은 “청계천변으로 흐르는 썩은 오물, 똥물, 악취 나는 시궁창을 코앞에 둔 채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동네” [7] 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과 소매치기, 구두닦이 등의 온갖 도시 하층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산업화 시기 도시 하층민이 그 존재 자체로 불안과 오염의 가능성을 내포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정주하는 변두리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서 배제된 불안정, 궁핍, 무질서, 비도덕, 비윤리적인 타락한 성벽처럼 묘사되었다는 점 [8] 을 감안할 때,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재현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전두환 정권 수립 초기 사회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 코리아씨네마 이러한 점은 영화의 검열서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 속 ‘검은 장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 명숙을 주인공으로 삼아 주요 인물들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그러나 문화공보부 산하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도박 등 사회악을 합리화하여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민층 묘사에 있어 가급적 훈훈한 인정미를 부각시키고 착한 의지로 살아가는 모습에 역점을 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체적으로는 “비속한 대사가 많고 가정(사회) 윤리 저해 장면, 소매치기 장면, 도박 장면, 사기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다. [9] 결국 시나리오는 대폭 개작되었다. 이후 신고한 시나리오는 “공서 양속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분은 전체적으로 삭제”했다. 대신 “비록 고난과 역경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불의에 타협치 않고 밝은 내일을 향해 참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그들의 착한 의지와 인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영상으로 옮김으로써 원작 소설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를 밝게 승화시켜 사회 계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0] <꼬방동네 사람들> 심의서류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중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전체적으로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가정 윤리(순결성)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 또다시 제작사에 개작을 요구했다. 문제 장면으로 제시된 “가정윤리(순결성) 저해 장면, 청소년의 건전한 생활 태도 함양 저해 장면, 사회 비리 고발 장면이 전체 장면 126씬 중 29%인 36씬”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1] 대대적인 개작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전체적으로 재검토, 대폭 순화하여 계도적인 작품으로 개작”해야 했다. 이로써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서민 생활의 부정적인 장면 묘사를 절제하고 가정 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한편” 몇 가지 문제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제작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12] 요컨대 시나리오 개작 과정은, 비교적 소설 원작에 충실했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계몽’과 ‘사회 정화’라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1980년대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삶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개작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변화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빈민촌을 배경으로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의 삶이 대거 축소되는 대신 검은 장갑 명숙( 김보연 )과 그녀의 전남편이자 아들 준일( 이재진 )의 아버지인 주석( 안성기 ), 그리고 현 남편이자 살인자인 태섭( 김희라 )이 주축이 된 가족 이야기가 극의 중심을 차지한다. ‘배감독이 당초 원작이 지닌 강한 사회성과 패기의 메시지를 그대로 영화화하려 했으나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네 차례나 개작 지시를 받아 다소 감상적으로 굴절된 느낌’ [13] 이라고 평가한 것도 가족 이야기가 애정 관계와 얽히면서 영화 속에 두드러지게 재현된 점과 관련된다. 둘째,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는 검은 장갑 명숙이 홀로 주석의 아이와 빈민촌에 남는 걸로 끝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검은 장갑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주석이다. 영화는 주석이 과거 소매치기였던 삶을 청산하고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가령, 영화에서 ‘가족 사진’을 고이 간직한 채 명숙과 준일 주변을 맴돌고 “남자한테 가정이란 자기 몸보다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명숙에게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꼬방동네를 떠나는 명숙과 준일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 태우는 주석의 모습 등은 소설과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는 새로운 장면들이다. 이로써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당대 정권이 승인하고 요청했던 서민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코리아씨네마 실제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남성은 가족을 이끄는 권위의 상징이자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역군이었다. 주석은 그러한 현실 가부장의 문화적 판본이었다. 특히 아버지 없이 방황하는 준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주석의 윤리적 책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가부장으로서 주석에게는 준일을 훈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태섭이 살인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자수하기 위해 떠나는 것도 주석 가족의 삶이 사회적 안정과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영화는 1980년대 사회 안정과 근대화를 겨냥하는 계몽적인 가족 영화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이루어진 문화 검열 과정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영화 속 빈민촌과 아파트의 풍경이다. 사실상 공간이 영화 속에서 가족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원작에서 드러나듯이 도시의 변두리 빈민촌은 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도시 서민들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소였다. 소설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변두리 빈민촌의 풍경은, 가까운 거리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대비되어 주변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화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비적 장면은 그 자체로서 이미 도시 공간의 구조와 그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냈다.’ [14] 그런데 당시 아파트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석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려질 가족에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쩌면 그들이 당도할 미래의 안락한 가족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파트’와 ‘빈민촌’의 선명한 대비는 양가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작가 황석영은 소설 『꼬방동네 사람들』의 ‘발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작가 이동철이 스스로 판자촌에서 살아오는 동안 겪고 본 자기 동네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엮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15] 당대 삶의 현장성을 획득했던 소설은 출판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영화는 달랐다. 배창호 감독의 야심에 찬 데뷔작은 사회 안정에 도움이 안 되는 문화 생산물로 여겨졌다. 영화는 집단 대중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체였던 만큼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당대 문화 계몽은 현실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드러내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공감할 만한 서민 가족의 삶을 통해 근대화의 욕망을 환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영화 속 메시지는 근대화의 긴 터널을 통과하던 대중의 욕망과도 공명하는 데가 있었다. 따라서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근대화를 위해 문화적 에너지를 공급했던 영화의 역할과 대중 욕망의 양상, 그리고 문화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코리아씨네마 *** [1] “사회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베스트셀러 현암사가 이 시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세 권의의 장편소설!”, 《경향신문》, 1981. 9. 28. [2]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3] “<꼬방동네 사람들> 제작 완료 기구한 운명 헤치는 여인 그려”, 《경향신문》, 1982. 7. 15. [4] “제작자협 당국 영진공 불황 타개 간담회 ‘영화 제작 행정 규제 융통성을...’”, 《경향신문》, 1982. 5. 3. [5] 위의 글. [6] 김동호 외, 『한국영화 정책사』, 나나출판, 2005, 258~259쪽. [7] 이동철, 『꼬방동네 사람들』, 현암사, 1981, 7쪽. [8]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 2011, 107쪽. [9]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0]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1]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2]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심의 서류 참조. [13] “새로운 메시지 담은 3편의 영화”, 《동아일보》, 1982. 7. 23. [14] 정태수, 「1980년대 한국 영화에서의 생산의 공간(1980-1987)」,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 공간Ⅰ(1980-1987)』, 박이정, 2018, 28쪽. [15] 이동철, 앞의 책, 372쪽.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박홍민 은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그는 비극적인 가족 이야기나 멜로드라마를 주로 다룬다. 신작 < 그대 너머에 >도 다르지 않다. 영화 두 편을 찍고 멈춘 상태인 감독 경호가 지연이란 이름의 젊은 여성과 만난다(박홍민의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항상 지연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이름이 인숙이라고 밝힌 뒤 경호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지 묻는다. 놀라 과거를 부정한 경호는 지연의 뒤를 몰래 따라가 인숙과 20년 만에 재회한다. 도입부의 줄거리만 들어도 <그대 너머에>에서 < 물고기 >(2011)와 < 혼자 >(2016)의 세계가 반복되고 있는 건 맞다. 영화 속에서 반복을 즐기는 스타일은 영화와 영화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박홍민은 ‘죽음, 귀신, 령, 꿈, 기억, 인연, 불안, 무의식’의 세계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는다. <그대 너머에>를 연작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전작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혼자>처럼 공간의 구성에 신경 쓰는 법이 여전한 가운데, 카메라가 훨씬 매끄러워진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경호가 지연을 따라 놀이터에 도착해 벌어지는 장면이 그러하다. 아마도 경호가 숨어서 바라볼 동안, 지연과 인숙이 대화를 나눈다. 얼핏 보기에 인숙의 시점 아래 지연이 놓인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지연의 시선이 살짝 어긋나 있어서 흡사 그녀가 사시(斜視)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참을 그러다 지연이 자리를 바꾸어 인숙 쪽으로 다가가면, 카메라는 180도로 시선을 돌려 그네에 앉은 두 인물을 포착한다. 문득 인숙이 “나무가 참 앙상하다”라고 말하면 카메라가 그 의도를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려 앙상한 겨울 나무와, 그 곁에서 해에 걸린 또 다른 마른 나무를 마저 붙든다. 그 나무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지연이 원래 앉았던 벤치 위로 인숙과 지연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은 언제 맞은편으로 옮긴 것일까. 사소하지만 복잡한 배려가 깊이 밴 이 시퀀스는, 집으로 가는 지연을 인숙의 등 뒤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인숙의 주관적 시선 아래 전개될 것 같던 시퀀스가 인숙의 시선을 가장하는 척하면서 마치는 거다. 이 시퀀스의 카메라 움직임은 사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경호와 지연이 만나는 시퀀스의 그것을 변주한 것이다. 아무리 반복을 즐기는 박홍민이라고 하더라도 왜 그가 굳이 어려운 방식으로 미장셴을 구축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매끄러우나 의미는 더 모호해지는 이러한 방식에 대한 답을 구하자면 1시간 정도 영화를 더 보아야 한다. <혼자>의 주인공 수민이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감독인 것처럼, 경호가 두 편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창작자로서 경호는 감독 박홍민과 좀 더 결부된 인물이다. 그는 의식의 물화에 매진하는 박홍민을 닮았다. 그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지하층의 어두운 방에 앉아 그는 세 번째 영화의 바탕이 될 시나리오를 쓴다. 그런데 그가 쓰는 시나리오의 내용은 지연이 전달해준 이야기 그대로다. 그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노트북에 적혀 있는 이야기가 과연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건지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의 노트북은 자동 피아노처럼 그가 할 말과 행동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문자로 연주한다. 경호는 인숙이 쓴 수천 장의 노트에 기록된 인물일까? 사정은 인숙이나 지연도 비슷하다. 지연은 자기가 글 속의 인물인지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인지 스스로 질문한다.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미치도록 써 글로 남기는 인숙은 기억이 흐릿해질 때마다 자신과 경호, 자신과 지연의 관계를 의심한다. 경호, 인숙, 지연의 사정은 기실 박홍민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게 적용된다. 박홍민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이 유령이 아닌지 반복해서 묻는다. 그 질문은 자기 실존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다. 골목에서 지연이 경호에게 하는 말은 ‘유령 선언’이다. “어차피 어딜 가더라도 아저씨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경호는 자기가 실존한다는 증거를 자기 시나리오 안에서 찾으려 한다. 그는 인숙이 지어놓은 의식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기를 문자 그대로 시도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지연이 하는 방식을 따라, 그는 자기 머리를 인숙의 머릿속으로 세게 밀어 넣는다. 머리를 쥐어 잡으며 일어난 그는 인숙의 집, 즉 인숙의 의식을 방문하고, 인숙 또한 의식의 입구에 달린 문을 열어 그를 받아들인다. 상황을 다시 정리하면 이러하다. 인숙의 의식 세계라 할 집 안에서 경호와 인숙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동안, 인숙이 종종 낯선 존재로 인식하는 지연은 문밖을 지키고 섰다. 그런 까닭에 인숙의 집에 걸린 액자에서 지연의 자리는 지워져 있다. 경호와 대화를 나누던 인숙은 어느 순간 기억이 흐릿해지자 기억을 정리해둔 수천, 수만 장의 노트의 바다 위에서 거칠게 몸부림친다. 집 곳곳에 가득 쌓인 노트 곁에서, 지연은 물론 경호와 인숙은 그들의 유령성을 재확인할 따름이다. 그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공간은 쓰라린 고통과 함께 허구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인물들이 유령성을 확인하는 순간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내 의식을 건드리는 건 어떤 비디오에 녹화된 이미지다. 경호는 인숙의 방에서 오래전에 자신이 찍어둔 비디오 테잎을 발견한다. 경호와 인숙이 비디오를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개미 한 마리가 나무 위로 기어가는 중이다. 개미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나누다 인숙이 “카메라를 움직여 봐봐, 아래로, 아래로”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카메라가 시선을 땅 쪽으로 이동해 모래 위를 걷는 또 다른 개미를 바라본다. 이건 좀 이상한 상황이다. 보통 비디오를 보다 이동을 요구할 때, 그 이동은 시간의 순서상 앞이나 뒤를 의미한다. 그런데 인숙이 비디오에 찍힌 공간 내에서 아래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자,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카메라는 그 요구를 따른다. 비디오에 찍힌 이미지는 고정되기 마련인데, 인숙의 기억 속 주문에 맞춰 경호가 과거에 찍어놓은 이미지가 자유자재로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한다. 고정되었던 이미지 내부에서 인숙의 기억이 요구하는 대로 새 이미지를 꾸미게 되고, 기억을 더듬던 인숙의 손으로 옮겨 간 카메라는 20년 전의 경호의 모습을 되살려낸다. 시간을 당기고 늘여서 그 사이로 무언가를 삽입이라도 하겠다는 투다. 게다가 카메라를 인숙에게 넘겨주는 건 경호의 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게 기억의 손이란 말인가. 이어 인숙의 기억이 사라질수록 경호의 이미지도 흐릿해진다. 남은 건 이미지뿐인 이 세계에서, 인물의 부유하는 의식 속에서 유일하게 실존하는(혹은 실존을 돕는) 건 카메라다. <혼자>와 비교해 더욱 풍성해진 박홍민의 ‘골목 오디세이’는 ‘98분 44초부터 102분 25초’에서 폭발한다. 이 장면은 <혼자>의 ‘47분 56초부터 56분 28초’ 사이에 전개되는 지옥의 골목 신과 하나의 세트를 구성한다. <혼자>에서 아무리 걸어도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민을 카메라가 어김없이 잡아내던 것처럼, <그대 너머에>의 카메라는 골목 사이로 잠긴 인숙을 기어이 끄집어낸다. 박홍민의 세계가 구저분해 보이는 건 주요 공간이 가난한 동네의 골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홍민은 골목과 집의 집합이 꾸며낸 이미지가 중세 도시의 그것이라도 되는 양 다룬다. 골목은 중세의 여명이 깃든 전근대의 공간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카메라는 앞서 인숙과 지연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 두었다 하나의 이미지 - 골목으로 재현한다. 놀이터에서 인숙은 옆에 앉은 지연이 낯선 인물인 것처럼 예전 기억을 전했다. “꿈이랑 똑같이 딸을 잃어버린 날, 온 동네를 찾아 헤매다가 내가 혹시나 하고 집에 가봤는데 지연이가 울면서 마루에 앉아 있더라고요” 221초에 걸쳐 인숙은 지연의 이름을 부르며 골목 사이를 돌아다닌다. 골목은 공간 전체를 미로처럼 연결하지만, 정작 그것을 잇는 자기 모습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길이다. <혼자>에서 수민이 지연에게 말하기를, 골목은 머릿속, 뇌 안에 있는 주름 같다고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고요한 마을의 서쪽 모퉁이 집에서 나온 인숙은 골목 사이를 돌고 돌아 동쪽 아래 어귀로 불쑥 등장한다. 경호의 비디오가 인숙의 기억을 물질로 바꿔놓은 것처럼, 221초의 여정은 인숙이 딸에게 해줬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물화한다. 나는 그 221초의 이미지를 올해의 장면이라 부를 것이다. 90년대 이후 대중영화에서 골목은 주요한 공간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미로로서의 골목과 가난한 멜로드라마라는 점에서 나는 배창호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도입부를 기억했다. 택시 기사가 된 주석(안성기 분)이 오래전 헤어진 검은 장갑(김보연 분)을 알아보고 뒤를 쫓는다. 그런데 검은 장갑을 뒤따르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 철거민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에 불과한데,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은 좁으면서 끝이 안 날 것 같은 미로에 다름이 없다. 갖가지 짐을 이고 든 검은 장갑은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카메라는 신비하고 매력적인 물체에 매혹된 듯이 그녀의 뒤를 따른다. 영화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나는 박홍민의 골목 멜로드라마가 <꼬방동네 사람들>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인다. 하층민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골목에서 건져낸 멜로드라마. 범죄의 일기였던 전편에 비해 다소 따뜻해지긴 했으나, 박홍민의 멜로드라마는 우울하다. 노스탤지어를 제거했을 때 장르 영화는 얼마나 잔혹해지는가, 그게 박홍민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무릇 현실은 실존을 넘어선다. 영화를 완성하고 죽은 감독은 다시 유령이 되어 인적이 드문 충무로의 극장 주변을 맴돈다.
< 꼬방동네 사람들 >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 1) ,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에서 시작하여 < 우묵배미의 사랑 >( 장선우 ,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2) 그리고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원세 , 1981), < 어둠의 자식들 >(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 과부춤 >(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 김보연 )은 십대에 김주석( 안성기 )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 김희라 )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 송재호 )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 김형자 )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 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 상계동 올림픽 >( 김동원 , 1988)부터 < 공동정범 >( 김일란 · 이혁상 ,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 꼬방동네 사람들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