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다만 나의.
- 감독
- 문종호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안태주, 이정철
9월의 < 박서방 >( 강대진 , 1960), 10월의 < 마부 >(강대진, 1961)에 이어 11월에도 또 한 편의 ‘ 김승호 영화’를 소개한다. 김승호는 < 로맨스 빠빠 >( 신상옥 , 1960), < 서울의 지붕 밑 >( 이형표 , 1961), < 삼등과장 >( 이봉래 , 1961), < 월급쟁이 >(이봉래, 1962) 등 60년대 초에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들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다했다고는 할 수 없을 소시민 가장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가 연기한 아버지들은 한 집안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가 담당하는 경제 활동의 토대가 흔들리는가 하면, 자식 세대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며 불화를 일으킨다. 대체로 사람만 좋을 뿐 기민함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 김승호는 이런 변화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김승호 영화에서 이런 시대의 변화와 세대 갈등이 치명적인 지경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의 곤경은 곧잘 웃음기 어린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며, 가장 절망적인 경우라도 아랫세대에서 구원자가 등장한다. 구원자의 역할을 맡는 이는 주로 장남이나 맏사위 등 아랫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인데, 그는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써 아버지의 곤경을 해소하며 분열될 것처럼 보였던 가족은 다시 하나로 뭉친다. 이러한 봉합은 주로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바탕으로 스타들을 내세운 상업 영화로서 피할 수 없었던 보수성에서 기인하기도 할 테고, 한국전쟁 이후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며 끝없이 질서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한편 그 과정이 폭력적인 뒤엎기가 아니라 성실하고 화목한 승계의 형태를 취하기를 열망했던 대중의 절충적 무의식이 발현한 사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 해바라기 가족 >( 박성복 , 1961)은 다소 색다른 빛을 띤다. 우선 김승호가 연기한 정진구는 소시민이 아니라 잘 나가는 기업의 회장이다. 영화 말미에는 그가 경영하는 회사가 브라운 상사와 8천만 원 규모의 계약을 진행 중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요즘 화폐 가치로 따지면 약 30억 원에 해당한다. 거기서 추측할 수 있는 부유함에 걸맞게 그의 가족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의심할 정도로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으며 도로에 면한 대문에서 집이 보이지 않고 정원에서는 공작새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고 있다. 정진구의 사업에는 어떤 문제도 없으며, 부가 위협받는 일도 없다. 소시민이 아닌 상류층의 대부호인 그는 사회 및 노동 환경의 변화에 아무런 위기도 느끼지 않는다. 영화는 정진구의 집에 새 입주 가정교사로 여대생 미원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미원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집안 전체에 감도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비극적인 분위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정진구의 가족들이다. 첫째 아들 창식은 6.25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친 뒤 술과 염세 철학에 빠진 채 방에서 두문불출 중. 첫째 딸 영애는 전후의 자유주의적 향락에 몰두하는 아프레 걸. 둘째 아들 정식은 신경이 날카로운 권투선수. 셋째 아들 인식은 학업보다 트럼펫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그리고 둘째 딸인 윤애와 윤애의 어머니까지. 정진구가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이 여섯 가족은 매일 같이 서로를 비방하거나 무시하며 살아간다. 이 가정불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가난이 야기한 조급함일 리는 없다. 그렇다고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을 둘러싼 세대 간의 불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영애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금년에 졸업을 하면 도미 유학을 할 예정인데 봉건적인 가정의 인습 때문에 아까운 재능을 썩힐지도 모르는 숨은 천재”라는 농담을 던지기는 하지만, 사실 부모 세대가 자녀들의 삶을 좌우하면서 삶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식들의 남다른 가치관 앞에 쩔쩔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족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나 성격 차이가 가정불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은 매번 특별한 명분이나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에 익은 생활 습관처럼 보이며, 한두 장면 앞에 다투었던 이들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남는 것은 정진구, 더 정확히는 그의 엽색 행각뿐이다. 그는 창식과 영애를 낳은 첫째 부인을 평양에 버려두고 왔다. 중식을 낳은 둘째 부인은 기생이었는데 정진구의 비서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 인식을 낳은 셋째 부인은 가정부였고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넷째 부인은 윤애의 어머니는 창식, 영애와 같은 연배인 스물아홉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넷째 부인이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별장에 휴양하러 가겠다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정진구는 요즘 또 낙원동에 새 애인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가족 구성의 결과 창식은 6.25 당시 평양에서 아버지가 버린 어머니를 찾으려다 다리를 다친 뒤 방에 틀어박히고, 중식과 인식은 서로의 어머니를 들먹이며 서로 신경을 긁고, 영애는 고작 다섯 살 연상인 넷째 부인을 비웃는다. 결국 가족들의 다툼은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은 채로 부재하는 정진구를 향한 분노가 변형된 결과인 셈이다. 김승호는 이런 인물을 평소의 김승호처럼 연기한다. 그는 가족들의 비난에 인상을 쓰거나 큰소리를 내는 법 없이 늘 조곤조곤하게 말한다. 그렇잖아도 이제 가정에 충실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함께 잘 해보자고.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없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위선적으로까지 보이는 김승호를 본 적이 있던가? 영화는 그런 그를 꿈속에서나마 기어이 지옥으로 끌고 가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전 부인들과 대면하도록 하는데, 거기에는 이자에게 말뿐인 속죄와 봉합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결국 정진구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는 새로운 관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언급을 삼가겠지만, 대중적인 홈드라마로 나아가기 위한 각종 타협적인 장치에도 불구하고 그 결기가 완전히 꺾이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안정적인 서사를 훼손해서라도 불편함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서슬이 남아 있다는 점만은 말해두기로 한다. 가부장의 지위는 만장일치로 복권되거나 승계되지 않으며, 가족에 불완전하나마 화합의 가능성을 가져오는 것은 전적으로 다음 세대의 의지 덕분이다. 때로는 끌어안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가족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돈 많고 사람만 좋아 보일 뿐 다음 세대에게 원죄와도 같은 고통을 남긴 채로 자신의 죄과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가부장이라면 특히 그렇다. >> 해바라기 가족 VOD 보러가기 <<
< 쿵푸팬더2 >의 누적관객수가 500만을 넘겼다. 2008년 글로벌배급으로 6억 3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 쿵푸팬더 >는 속편으로 다시 흥행몰이를 시작, 1편의 기록을 경신하며 포효하고 있다. 월트디즈니 픽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드림웍스PDI의 애니메이션들은 차별적인 캐릭터성을 자랑한다. <쿵푸팬더2>의 감독을 맡은 최초 여성감독이자 한국인인 여인영 감독도 역시 캐릭터 일러스트가 전공이다.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은 애니메이션 작품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을 주도한다. ` 슈렉 ` 시리즈, < 몬스터 vs. 에어리언 >, < 드래곤 길들이기 > 등 시리즈 였거나, 이후 시리즈로 확대될 전망을 보여주는 드림웍스PDI의 작품들은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각 캐릭터들의 스타일과 성격, 진한 이야기성으로 잠재적인 플롯을 형성해낸다. 보여지는 캐릭터만으로도 이미 절반이상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러한 캐릭터의 외관상 반전이 전체 스토리 흐름을 스펙터클하게 구성해낸다. 실제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팬더곰의 움직임을 쿵푸의 달인으로 묘사하면서 쿵푸팬더는 관객에게 상상력을 뛰어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상대방의 움직임 소리보다 자신의 배고픈 뱃속소리에 더 민감한 팬더곰 포는 한없이 착하지만 늘 불의에 참지 못하는 격한 감정의 전환으로 관객에게 동화된 자기최면과 대리만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의 스승으로 묘사되는 시푸사부는 능청스러운 너구리에서 출발하지만, 심오한 이성과 날카로운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그마한 외모로 관객을 긴장시키면서도 몇마디의 대사와 동작으로 보여주는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쿵푸라는 무술이 가진 다양하고 복합적인 이미지를 단번에 설명해낸다. 무적의 5인방으로 등장하는 타이그리스(호랑이), 크레인(학), 바이퍼(뱀), 몽키(원숭이), 멘티스(사마귀) 등의 캐릭터는 다양한 동물들의 각 특징들을 조연의 성격과 무술의 특기와 융합시켜 스토리를 주도해간다. 마치 중국의 쿵푸가 동물들의 움직임을 전제로 만들어 낸 다양한 무술권법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환타지에 그대로 접목시켜, 관객들이 이미 자생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던 상상속의 무술세계를 현란한 서비스로 구현한다. 1편에서는 교활한 시장 캐릭터였으나 제작단계에서 제외되었던 공작새 로드 셴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무서운 악당캐릭터의 외모보다는 정교하고 첨예한 악의 이미지를 화려한 공작새의 깃털로 기호화한다. 그를 둘러싼 악당그룹들, 수스세이어(산양), 울프보스(늑대), 고릴라(고릴라), 마스터크록(악어), 마스터 스트롱(물소), 마스터 선더링 리노(코뿔소) 등도 힘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을 동물 캐릭터로 디자인되었고, 목소리 캐릭터를 맡은 배우 또한 육체파 액션배우들로 채워졌다. 잔잔하고 섬세한 표정연기와 부분적인 대사표현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캐릭터보다, 강인하고 변함없는 스테레오타입의 인상과 근육질의 육체담론으로 표현되는 악당그룹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이미 규정되어버린 악의 강력함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이렇게 상호간 대치되는 캐릭터성의 그룹이미지는 쿵푸라는 무술이 보여주는 정중동의 이미지,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부드러움의 외유내강이 정교하게 표현된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재하지 않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상표현의 기교적 방식이다. 그래서 움직임 또한 실재하는 움직임보다 더 과장되고 왜곡되게 표현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적인 타이밍으로 관객들에게 인식된다. 그래서 보여지는 캐릭터들의 디자인과 성격부여, 움직임의 스타일은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적인 환타지를 전제하게 된다. 신선한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은 실사영화와 차별적인 애니메이션만의 환타지를 재생시키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된다. 결국, 최근 애니메이션의 흥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독창적인 캐릭터디자인이 보여주는 잠재된 스토리텔링임을 < 쿵푸팬더2 >의 성공은 증명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