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적(櫃迹) - 좋은 세상
- 감독
- 정무진, 정효영, 정영돈
- 제작년도
- 2017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근·현대 한국사회를 관통한 균열과 진통의 시간을 영화에 남은 흔적으로 기억합니다. 장길수 감독의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는 안정효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이후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국내 백상예술제에서 작품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제15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언례 역을 맡았던 이혜숙 배우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장길수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1] 장길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 동기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갈등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보려 애썼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2] 이에 따르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충돌과 갈등 문제를 유엔군 병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양공주’로 전락해 가는 순박한 시골 여인의 삶을 통해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순박한 시골 여인이 양공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즉 ‘한국전쟁’과 ‘유엔군 참전’이라는 조건은 이 영화를 문화와 역사라는 두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 ‘양공주’라는 타자의 출현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작가 안정효는 작품에 형상화된 언례(이혜숙)가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던 평범한 자신의 어머니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수없이 희생되었던 여성 중에서 발견된 존재이자 이름이었다. “언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51년 여름, 지금은 부천이라고 이름(조)차 바뀌어버린 소사읍 심곡리에서였습니다. (중략) 내가 언례씨를 발견한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는 유엔군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도망을 다니던 내 어머니와 (다)른 많은 여자들 한가운데서였습니다. [3] ” (괄호 표기 필자)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아픈 부분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들에게 다양한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외국군 주둔과 전쟁으로 인한 생활난은 여성으로 하여금 몸을 팔아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게끔 강요”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부녀자들이 생활난으로 일반 ‘양공주’나 매춘 행위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4] 이러한 당대 상황과 위의 인용문 내용을 겹쳐 읽어 보면 언례는 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들을 호명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통에 남편도 없이 홀로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먹고 살기 위해 양공주의 삶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직접 증언되어야 했으나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적 배척과 배제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쟁미망인, 이산가족 여성, 불구가 된 남편, 그리고 ‘양공주’라고 불린 기지촌 여성들은 1950년대 결여된 가부장성을 홀로 지탱하며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까지 견뎌야 했던 불안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다” [5] 라는 지적은 1950년대 전후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따라서 언례와 양공주의 삶은, 잊힌 채 침묵 당해 왔던 타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귀환하는 궤적을 보여 주는 사례이자, 한국전쟁과 문화 식민의 공간이 어떻게 한국의 영토와 신체, 그리고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면서 현재에 이르도록 했는지에 대한 기원을 되짚어 보는 문화적 계기로 작용한다. 이를 잘 말해 주듯 소설과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출현한 양공주가 어떻게 전쟁을 통해 생산되고 문화적 타자로 호명되어 갔는가에 관심을 둔다. 양공주의 탄생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침식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비극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허버트 미트갱(Herbert Mitgang)이 미국에서 출판한 안정효의 소설을 두고 “반미 소설이 아닌 반전 소설”이라고 평가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6] 전쟁은 물질적 파괴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파괴 또한 초래함으로써 휴머니즘에 대한 깊은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공주로 호명되는 언례의 변화 과정은, 이를 둘러싼 전쟁과 휴머니즘의 문제를 부각하면서 ‘반전 소설’이자 ‘반전 영화’로서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장길수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극중 언례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양공주의 삶을 통해 만나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그늘 개봉 당시 이 작품은 “한국 속의 아메리카니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성 영화”로 소개됐다. [7] ‘아메리카니즘’이라는 문화적 현상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미군 주둔이 본격화되면서 1950년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영화는 양공주와 ‘양키 문화’를 시각적 흥밋거리로 재현하기보다는 한국전쟁과 함께 나타난 아메리카니즘을 전쟁과 휴머니즘, 그리고 문화 침범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함께 드러낸다. 금산리에서 평범한 시골 촌부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언례의 삶이 급격하게 훼손되는 데는 유엔군의 참전과 전쟁에 휘말린 금산리 사람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 언례가 유엔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그녀는 황훈장( 전무송 )의 말을 통해 드러나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한’ 더러운 존재가 된다. 그녀를 배척하는 금산리 사람들의 태도 이면에는 순결한 신체와 영토가 훼손당한 데 대한 문화적 충격과 유교적인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언례의 집과 신체는 전쟁으로 초래된 영토적 파괴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언례가 양공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급변 속에 끼어있는 존재, 즉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이’와 ‘경계’의 존재가 놓인 문화적 곤경을 집약해서 보여 준다. 이는 그녀가 경계 공간에 놓여 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은 전통 공간과 ‘양키 공간’으로 구분된다. 언례는 이 두 영역을 오감으로써 전쟁 전-전쟁 후, 전통-근대, 순수-오염, 선-악, 유교 문화-양키 문화 사이에 놓인 상징적 존재로 변모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에서의 언례 (사진: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문화 침범의 경계에 놓여 있는 언례에게 목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들 만식과 황훈장, 그리고 찬돌 등의 남성적 시선이 영화 곳곳에서 규율 권력으로 출현하지만 언례와 용녀( 김보연 ), 순덕( 방은희 )은 삶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존재들로 생동감을 지닌다. 게다가 이는 양공주들을 문화 침범의 ‘쓰레기들’로 분류하려는 폭력적인 권력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문화적 저항이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쓰레기를 뒤지거나 구걸하고 쓰레기 더미를 차지하기 위해 패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재현되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초래한 아메리카니즘’이 한국인의 삶에 가져온 문화적 오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이로써 양공주의 삶과 한국인의 삶은 문화적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양공주의 삶을 비판할 만한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을 경유하면서 ‘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의 주제로 접근한다. 미군의 주둔과 함께 시작된 ‘양공주의 삶’과 ‘쓰레기를 줍는 삶’은 한국전쟁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 내몰린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마주한 시대의 현실이자 곤경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신들을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과 갈등하는 언례와 용녀, 순덕의 목소리와 저항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질 때 이는 전쟁과 휴머니즘을 둘러싼 확장된 문화적 보편성과 현실성을 획득하는 길을 열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대립하는 용녀와 순덕, 쓰레기를 줍던 마을 아이들의 패싸움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러한 영화 재현 양상은 사실 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양공주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신상옥 감독의 영화 < 지옥화 >(1958)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양공주 쏘냐( 최은희 )는 육체적인 매력과 화려한 미제 사치품으로 무장한 채 남성들을 유혹하거나 미 군수품을 밀수하는 데 협력하는 ‘돈’과 ‘욕망’의 화신으로 이미지화된다. 영화 속에서 기지촌 양공주로 재현되는 줄리( 강선희 )에게 그나마 전쟁 전 순수했던 과거 이야기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순결한 동식( 조해원 )과의 결합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할 만큼 주변적이고 작위적이다. 이는 영화 <지옥화>가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당대 문화 이데올로기를 영화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양공주를 동원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영화 속 양공주의 삶은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 와서야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현실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의 단단한 문화적 결합이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그동안 침묵했던 타자들의 출현을 알리면서 해방의 길을 모색하던 때 당도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거친 파도 속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타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대표적 작품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레이스 M. 조는 책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2008)에서 ‘양공주는 단지 죽거나 감상적으로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현재에 생산적이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유령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8] 실제로 양공주로 오랫동안 침묵 당한 삶을 산 어머니를 둔 그녀에게 양공주는 잊힌 과거를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주체적 존재들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양공주에게 다시 목소리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레이스 M. 조의 연구와 저서들은 이를 위한 후속 세대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잊힌 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증언’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당도하고 있다. 그리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야말로, 이러한 문화적 실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 [1] “방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몬트리올 영화제 2부문 수상”, 《동아일보》, 1991. 9. 3. [2] “인터뷰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예 장길수 감독 ‘방화 문제의식 세계 수준’”, 《경향신문》, 1991. 9. 4. [3]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언례에게/안정효 전쟁과 폭력의 희생양이었던 한국 여인 모습 알리려 했소”, 《동아일보》, 1996. 4. 30.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의 변화』, 1999, 41쪽. [5] 김학재 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50년대』, 창비, 2016, 71쪽. [6] “Books of The Times; Korean’s Novel Is Anti-War But Anti-American”, The New York Times , 1990. 2. 21. [7] “<개벽>, <은마는...>, <산산이부서진...>, 세계 영화 시장 ‘노크’”, 《조선일보》, 1991. 2. 22. [8] Grace M. Cho,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2008, p. 18.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사진: “ 복합 장애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혈육 또는 이웃들과 별 이질감이나 불편함 없이 살아왔다. 20대에는 몸이 불편한 학우들의 활동 보조도 해보았다. 30대 이후, 장기 입원을 하거나 중병을 앓는 가족의 간병도 해보았다. 돌이켜 보면 삐거덕거리고 비틀대고 휘청이는 다양한 몸들과의 여러 활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활동들이 돌봄이란 단어로 일원화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활동 보조를 할 때도 돌봄이나 돌봄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못했다. 그야말로 보조였고, 치료를 받는 이의 간병인이었으며, 집이 필요한 고양이와 공간을 나눠 썼을 뿐이다. 모두 돌봄으로 환원할 수 없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돌봄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 영국의 한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부터 배리어프리 상영을 제안받았다. 우리의 영상이 시각장애인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해 흔쾌히 허락했다. 상영일에 모니터를 가리고 사운드만 키운 채 영상을 청취했다. 영상의 사운드와 함께 누군가 장면 하나하나를 문장으로 읊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미 수십 번도 더 보아왔던 영상을 오직 사운드에 의존해 각 장면을 떠올리며 관람했다. 그때 함께 했던 시각장애인들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렇게 듣는 관람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이라는 관객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우리 안의 장벽(barrier) 하나가 허물어진(free) 셈이다. 그때서야 ‘배리어프리’가 장애인들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는 장치임을 알게 됐다. <복합 장애> 포스터 (사진: “ Multi-Handicapped ”, IMDb)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 복합 장애 >(1986)를 보는 내내 몇 년 전 배리어프리 상영회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의 해방감이 상기되었다. 물론 이 영화에는 감독이 의도한 인터뷰나 설명 같은 건 전혀 없다. 헬렌 켈러 학교란 곳에 재학 중인 감각 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으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신체 언어와 공간 소음이 전부다. 게다가 영화 속 복합장애인들이 주고받는 고요한 수어 이미지와 그들의 신체가 외부 자극에 의한 감각을 다스리기 위해 내는 자기 자극음은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이다. 생각해보면 수어와 점자는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이 배우지 않아 모르는 언어인데, 복합 장애를 단순히 잘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몸의 어느 기관이나 감각의 결핍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외부 자극이 과도할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소 괴성처럼 지르는 소리를 내거나(자기 자극음), 상대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하는(반향어) 등, 매우 적극적으로 신호를 내보낸다. 복합장애인들의 세계에서 비장애인들이 맞닥뜨리게 된 장벽(barrier)에 대해 감독은 굳이 해석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교감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 각자가 마주한 장벽을(barrier) 허무는(free) 것은 관객 본인의 몫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고 감독의 카메라 워킹을 따라가야 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복합장애인들의 교육 활동에 어떠한 서사도 부여하지 않는다. 가령 학생들이 수업을 받거나 선생님들이 커리큘럼을 고민하는 과정은 문학으로 치면 묘사와 대사로만 이뤄진 씬들이 교차편집되어 있을 뿐이다. 매일 매시간 학생들의 수업 내용이 달라지듯이 영화 또한 다양한 장애를 지닌 여러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교육 활동의 나열만으로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수평적으로 연쇄되는 각 씬 사이에 영상적 빈칸은 없다. 다만 비순차적으로 병치된 씬들이 축적될 때마다 마치 문단 사이의 여백 같은 것들이 생성된다. 그 빈칸을 채우지 않고서는 영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감독의 발걸음을 쫓으며 머리 속에서 자꾸 생성되는 공란을 채워나가다 보면 비로소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관람 중인 ‘나’의 눈과 귀가 어디에 붙들렸는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장애를 둘러싼 세간의 윤리와 편견에 앞서 일단 잘 모르던 세계를 영화로나마 경험하고 감각해 보는 게 우선이다. 사진: “ 복합 장애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물론 이 영화를 통한 경험이 VR을 쓰고 여러 감각 장애를 체험해 보거나 복합장애인이 되어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은 시각과 청각이 어느 정도 온전하게 기능하는 자들이다. 프레더릭 와이즈먼처럼, 그의 카메라와 녹음기기처럼 관람객들은 오직 두 눈과 귀에 의지해 복합장애인들의 하루를 지켜봐야만 한다. 영화에서는 때때로 이 부분이 충돌을 일으킨다. 이 충돌이 윤리적인 문제로 확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감각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와이즈먼의 다소 차갑고 거침없는 카메라 워킹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뇌경화증을 앓고 있는 사촌동생을 만날 때마다 그가 내는 괴성과 자해에 가까울 만큼 세게 몸을 치는 행위가 어릴 땐 좀 무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와 급변하는 온도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우발적이라며 그를 제지하는데 급급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거나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때 그의 몸은 더욱 크게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요동치는 감정이 그의 몸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감각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아니면 평생 그를 무섭고 괴팍한 장애인으로만 여기며 기피했을 거다. 그를 마주할 때 교육받은 윤리의식과 사전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끊임없이 소통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좀 느리고, 광범위하며, 때때로 막막해 다소 시간이 걸릴 뿐이다. 헬렌 켈러 학교 학생들을 보며 사촌동생과의 소통의(혹은 소통불능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배움은 깜깜한 눈, 적막한 귀, 무성의 입 중 2개 이상이 교집합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가만히 있으려 해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이상한 소리가 삐져나오는 몸으로는 수건 하나 접는 일조차 쉽지 않다. 비장애인들이 너무도 익숙하고 쉽게 해내는 모든 일들을 이들은 매우 느린 속도로 배우고 익히며 각자의 고비를 꾸역꾸역 넘어서야 그나마(학교와 선생님들의 교육이 지향하는) 사회화가 가능하다. 그 배움에 나이와 단계에 따라 자동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일관된 커리큘럼은 없다. 시계를 읽지 못하는 학생, 이름과 주소를 겨우 읽어내는 학생, 상대의 수어를 직접 만져야 대화가 되는 학생 등. 헬렌 켈러 학교라는 하나의 교육기관 안에서 작동되는 교육 과정은 온전히 학생들의 신체 상태에 맞춰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수어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혼자서 몸을 일으켜 밥을 먹는 것조차 쉽지 않다. 때문에 학생들 각자의 배움과 앎의 과정에 학년, 과목 등 시스템에서 정한 용어를 붙이기가 어려워 보인다. 어느 정도의 사회화와 점자, 수어 등 기본 언어도구를 익힌 뒤 그들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한 교육을 받지만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복합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에 진학 후 사회 운동가가 되었던 기적의 헬렌 켈러는 영화 속 복합장애인들이 재학 중인 학교 기관으로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영화 속 선생님들은 수돗가에서 짐승처럼 날뛰던 7세의 헬렌 켈러를 헌신적으로 붙잡고 그녀의 손에 끝내 “WATER”란 글자를 새겨 무지를 깨우쳐준 설리번 선생처럼 할 수 없다. 그들은 헬렌 켈러 학교에 재직 중인 피고용인이다. 교육 제도와 학교의 교육 시스템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받는 수업과 생활지도 또한 학교의 예산안과 지침 하에 시행된다. 그들이 소속된 교육기관의 목적은 헬렌 켈러의 기적이 아니다. 복합 장애 학생들은 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장차 직업을 구해 사회인으로서 기능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교육 시스템의 고리가 느슨해질 때가 있다. 식사 후 휴식 시간이다. 휴게 공간의 티브이가 켜지고 아이들과 선생님들 각자 편한 자세로 앉아 쉰다. 교육의 공백 속에서 아이들은 몸을 뱅글뱅글 돌리거나 반복적 입소리를 내고, 목적 없이 뛰어다닌다. 신기한 건 앞이 잘 안보이고 몸의 제어가 힘든 상황에서도 부딪치지 않게 서로의 간극을 조율해 나가기도 한다. 이때 허밍음 혹은 가스펠 같은 나지막한 한 선생님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One more river to go”로 시작되는 노래다. 가사는 ‘건너야 할 강’의 반복이다. 우선 ‘내’가 건너야 하고, ‘그녀’가 건너야 한다. 마치 선생님 자신과 그녀의 학생들을 위한 노래 같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느리고 더뎌 힘든 교육 활동이 일단락된 순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눈앞의 강이었던 배움 하나가 또 그렇게 실현된 셈이다. 영화는 헬렌 켈러 학교의 하루를 넘어 또 다른 하루인 주일로 넘어간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 하에 교회에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아름다움이란 말이 오직 신으로 일원화된 곳에 놓여 있다. 아이들의 수어는 설교와 찬송가의 내용을 번역하는 수단이 되고 성경과 신에 대한 의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잘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몸이 흔들리며 반향어를 내뱉어도 돌아오는 건 신을 향한 찬양과 성경구절뿐이다. 교회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던 무수한 몸짓, 소리, 그들의 언어가 모두 무력화 되어버린 것 같다. 설교자는 아이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내용만 전달한다. 모든 것들이 교회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 같다. 무진형제(미디어 작가 그룹) l 무진형제는 3명으로 구성된 작가 그룹이다. 세간의 지배적인 가치와 믿음체계로 굳어져버린 것들을(眞) 의심하고 해체시켜(無) 동시대의 ‘인간-환경 시스템’을 재구성한다. <삼속(三俗)의 담(談)>, <궤적(櫃迹)-기술된 선인(善人)들> 등을 작업했다.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