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시
- 감독
- 홍원기
- 제작년도
- 2025
- 출연
- 유재명, 문채원, 서영희, 원현준, 솔라, 차선우, 배수민, 서지수, 손주연, 석현준
<질투>(한형모, 1960) 촬영 현장, 한형모 감독의 뒷모습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감독 한형모 는 1950년대 한국 영화에서 대중성과 통속성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 유명 감독들 신상옥 , 이만희 , 김기영 , 유현목 같은 자기만의 고유한 주제의식이나 미학을 가진 작가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성 인물을 매개해 대중이 쉽게 매혹될 만한 선정적인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장르적 오락성을 중점에 두면서도, 결말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순치와 처벌의 서사를 통해 보수적인 도덕성을 거스르지 않는 통속 영화들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기에 한형모의 작가성에는 늘 매혹과 순응, 현대와 전통이라는 모순된 단어들이 함께 붙게 된다. 감독 데뷔작이자 최초의 반공영화인 < 성벽을 뚫고 >(1949)와 한국전쟁 중 제작된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 1부 1951, 2부 1952)을 제외하고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여성이 주인공인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이 다수를 차지한다. 촬영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던 만큼 그의 작가성으로 기술적 유려함,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키는 능력(첩보+멜로, 로맨스+코미디, 멜로+뮤지컬 등)을 언급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 주인공에 대한 이중 의식이다. 전후 혼란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던 1950년대에 한형모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얼핏 보면 당대 가장 진취적인 여성들의 샘플처럼 보인다. (좌) <운명의 손> 중 마가렛/정애 / (우) <여사장> 중 요안나 <자유부인> 중 오선영 첩보멜로물인 < 운명의 손 >(1954)의 주인공 마가렛/정애는 북한 간첩이자 ‘양공주’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어느 쪽에도 포섭되길 거부하고 개인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 자유부인 >(1956)의 오선영은 교수 남편이 있지만 경제적 욕망과 결혼제도 바깥의 성적 욕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후에도 스튜어디스인 < 순애보 >(1957)의 인순부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출판사 사장인 < 여사장 >(1959)의 요안나, 산부인과 의사인 < 남성 대 여성 >(1959)의 윤송희, 유도 유단자인 < 언니는 말괄량이 >(1961)의 안순애까지 여자 주인공들은 경제적 독립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만한 직업과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들의 생활 묘사에서 ('남성혐오'를 포함한) 성적 욕망의 적극적인 표현, 서구문화의 소비, 자본주의 상품에 대한 갈망은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문직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개성은 당대 여성 관객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형모의 영화는 일관되게 서사적으로 이들을 결국 순치시키고 처벌하며 가부장제 안으로 복귀시키는 결말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타락하거나 병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지며, 가부장의 그늘을 거부하는 경우 살인, 강간, 사기 등에 위협적으로 노출된다. 시대적으로 앞서간 여성 인물을 스크린에 가시화한 반면, 그만큼 처벌하고 순치시키는 과정도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냈던 이중적 태도야말로 그의 작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적 여성의 매혹적 스펙터클은 길고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반면(사실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여성 주인공이 화려하게 전시되는 영화적 순간들이기 때문에), 순치의 과정은 서사적 비약이라고 느껴질 만큼 짧고 급작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이다. 매혹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는 긴 시간 동안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성들은 사회의 성차별과 가부장제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설파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거나, 남편의 물리적 힘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갑작스럽게 현모양처로 돌변하고, 자신의 욕망을 모두 헛된 꿈, 허영으로 환원한다. 영화도 그들이 자진해서 죄를 고백하고 가부장제가 지정한 자리로 재귀한다는 것이 영화 내적으로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그저 감독 자신의 혹은 기성 사회의 바람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아 영화를 확인할 수 없는 < 질투 >(1960)는 이와 같은 한형모의 작가성이 순도 높게 구현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현대성은 동성애이다. 동성애는 영화의 가장 선정적이고 호기심 갖게 하는 마케팅 포인트이자 결국은 교정되고 처벌받아야할 대상이다. 당시 신문광고에 실린 영화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려 있다. “이성애의 공포가 동성애로 변한 것은 세계적인 풍조일까?” -《동아일보》 1960. 5. 25. “동성연애서 엉크러지는 일대의 질투, 국제무대에 파문을 던질 최고 이색편!” -《경향신문》 1960. 5. 7. 두 번째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터가 1960년 5월 22일자 《동아일보》에도 실려 있다. 즉 동성애를 세계적이고 국제적인 유행과 동시대성으로 연관시키며 선정적인 호기심을 부추긴다(유명한 여성 동성애 영화 두 편, 오드리 햅번과 셜리 맥클레인 주연의 < 아이들의 시간 >(윌리엄 와일러, 1961)이 1961년 할리우드에서, 로미 슈나이더 주연의 < 제복의 처녀 >(게자 본 라드바닐, 1958)가 1958년 독일에서 개봉했다). 동성애는 이 영화의 세련된 차별점이다. <질투>는 한국영화사에서 영화제작과 개봉이 확인된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형모의 다른 여성 주인공들처럼 이 영화의 재순 역시 주장이 분명하고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여성이다. 한형모는 배우 문정숙에게서 톰보이 기질 혹은 여성의 남성성을 포착하며 <질투>와 <언니는 말괄량이>에 연이어 출연시킨다. 문정숙 이 맡은 재순과 안순애는 모두 부치 레즈비언 혹은 남성성을 드러내는 여성으로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그 이유를 '남성혐오'에서 찾는다. 특히 <질투>의 재순은 한국전쟁 당시 강간을 당하고 병적으로 남성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대사 속에서 기술된다. 입양된 동생인 금이( 전계현 )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 즉 동성애는 독자적 욕망일 수 없으며 필히 이성애의 대체제로만 가능하다. 여성 동성애는 '남성혐오'의 병적 증상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모두 재순이나 금이 등 여성 인물이 아닌, 집안의 가부장인 오빠 재수와 정신과 의사의 해석일 뿐이다. 오히려 금이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표현하는 재순은 과거의 일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재순은 그저 금이를 사랑할 뿐이며, 그것이 폭력적 집착일지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이를 위할 선택을 할뿐이다. 금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이성애 결혼과 남편에 순종하는 아내의 역할을 강요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재순은 여성에게 결혼이 왜 부정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재순은 오빠의 아내인 남이( 김신재 )에게는 “난 여자가 남성의 노예가 돼서 하루 종일 그 봉사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요”라고 한다. 또한 금이의 약혼자 광호의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도 여자분이니까 그 점을 아실 겁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남성들한테 받아온 압박을 금이한테까지 당하게 할 순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하며 여성들의 동의를 구한다. 놀랍게도 서사적으로 볼 때 적대 관계에 있음에도 광호의 어머니는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이라고 답한다. 적대관계에 있는 여성들의 동의마저도 얻어내며 여성들을 규합하는 재순의 말은 여성 관객들을 머리와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또 금이의 장래와 관련해 재순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수는 “훌륭한 가정부인이 돼”야한다고 대치한다. 재순은 성폭력 트라우마의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남성과의 만남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합리성에 근거해 이성애중심주의와 가부장제를 정확하게 비판한다. <질투> 중 재순과 이금 (박승배 촬영감독 기증) 재순은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금이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으며 한 방을 쓰면서 육체적 관계도 가진 것으로 암시된다. 또한 재순의 문제가 “동성연애”냐고 재수가 묻자 금이는 긍정을 표하며, 금이의 옛 이웃 광호가 등장하며 단순한 S 언니-동생 사이에서 “동성연애”로 관계 혹은 욕망이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금이와 재수 사이에 이어지는 대사는 재순을 병리적 인물로 보고 있지만, 동시에 재순과 금이의 관계가 단순한 자매애나 여성적 친밀감을 넘어섰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재차 확인한다는 점에서 통쾌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금이는 “사랑은 역시 이성에게서 느끼는 애정만이 인생을 즐겁게” 한다며 재순과의 동성애 관계와 광호와의 이성애 관계를 비교적 대등하게 놓고 비교한다. 한형모가 견지하는 선정성과 현대성, 서구의 유행에 대한 호기심과 물신화, 그리고 언제든지 순치시킬 수 있다는 가부장제적 자신감은 동성애라는 욕망을 매우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재순의 (이해 불가능한) 동성애를 설명하려는 의도는 곧장 가부장제와 결혼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관객들은 재순의 사랑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서, 혹은 그에 앞서 그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는 것이다. 재순의 질투와 집착은 지나치게 커지고 금이와 광호의 결혼을 막기 위해 살해 시도까지 간다. 재순의 폭력성은 그의 남성성의 표현이 된다. 재수와 금이는 재순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약물치료를 통한 동성애전환치료를 받게 한다. 명목상으로는 성폭력 트라우마와 '남성혐오'를 고치는 것이라고 나오지만 결국은 동성애를 이성애로 교정하고 순치시키는 폭력이 된다. 재순의 사랑의 원인은 재순 스스로 말하듯 그저 사랑에 기인할 뿐이다. 그것이 파괴적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폭력적 교정은 매우 짧은 하나의 결말 장면으로 묘사된다. 시간을 건너뛰어 급하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동성애전환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재순은 금이와 재수, 재순을 좋아하던 영기와 의사가 모인 앞에서 “꿈에서 깬 것 같다”라고 말한다. 공격적으로 보일 정도로 말 많고 논리적이던 재순의 저 응축된 한 마디 대사는 문자로만 표현되어 있지만 공허한 눈을 목격한 것처럼 느껴진다. 병원장면은 논리와 설득력이 부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며 아이러니한 연극이며 그로테스크한 악몽이다. 재순은 앞의 긴 시간이 꿈이라고 했지만, 실은 병원장면이야말로 허상이자 꿈처럼 느껴진다. 한형모가 반복적으로 결말에서 여성들을 처벌하고 순치시키며 가부장제와 강제된 이성애로의 자리로 보내려는 시도는 실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결말의 보수적 안전함 속에서 주목하고 환호했던 것은 바로 ‘꿈’과 '병증'으로 취급된 동성애 욕망이기 때문이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자신의 제작사(Argosy)에서 만든 가장 개인적인 프로젝트 중의 하나였던 < 도망자 >(1947)의 흥행 실패로 큰 빚을 떠안게 되자(12회 참조), 존 포드는 서부극으로 돌아와 < 아파치 요새 Fort Apache >(1948)를 만든다. 포드는 자신의 전후 서부극을 돈벌이용(potboiler)이라고 스스로 폄하했지만, 그중에서 < 황색 리본의 여인 She Wore a Yellow Ribbon >(1949)에 대해선 종종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파치 요새>에 대한 자평은 엇갈린다. “돈벌이 목적에는 잘 맞았지. 하지만 날조된 이야기야.”(1950년, 린지 앤더슨과의 인터뷰).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야. 거기엔 액션도 있고 유머도 있고, 내 인디언 형제들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첫 작품이지.”(1965년, 에릭 르게브와의 인터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존 포드의 변덕스럽고 짓궂은 자평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후자의 발언에서 ‘내 인디언 형제들’, 그리고 그들이 ‘영웅으로 등장한다’는 말은 흥미롭게 들린다. 이 말은 < 아파치 요새 >의 어떤 면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아파치 요새>를 오래전에 보고 개인적으로 받은 첫 충격은 이 영화가 포드 자신의 < 수색자 >(1956)를 포함한 후대의 소위 수정주의 서부극들보다 더 수정주의적이며, 서부극의 만사(輓詞)로 알려진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1962)보다 더 급진적인 탈신화와 서사를 이미 1948년에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반복건대, 서부극의 진화론 그리고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개념은 이런 영화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물론 포드의 말이 흥미로운 건 그 때문만은 아니다. 줄거리는 이렇다. 오웬 써스데이 중령(헨리 폰다)은 아파치 요새 신임 부대장에 임명된다. 딸 필라델피아(셜리 템플)와 함께 요새에 도착한 이 성마른 인물은 외딴 서부로 밀려난 것에 대한 불만과 승진 및 동부 귀환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요새에는 백전노장 요크 대위(존 웨인), 써스데이의 육사 동기생 콜링우드 대위, 그리고 이들과 오랫동안 전장을 누빈 특무 상사 오로키(워드 본드)를 비롯한 노련한 하사관들이 있다. 마침 아파치 족이 보호구역을 넘어 멕시코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요크 대위는 평화적으로 그들을 복귀시키려 하지만, 써스데이는 보호구역 탈출을 핑계 삼아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써스데이와 그의 부대는 몰살당한다. < 젊은 날의 링컨 >(1939) < 분노의 포도 >(1940) < 황야의 결투 >(1946) < 도망자 >(1946)을 보고 헨리 폰다라는 배우에게 매혹된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당혹스러울 수 있다. 허공을 휘젓는듯한 긴 팔과 다리, 느린 걸음으로 등장해 어느 순간 프레임을 우아하게 장악하던 이 배우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여기선 전혀 볼 수 없다. 존 포드는 헨리 폰다의 특별한 자질을 < 아파치 요새 >에선 정반대의 방식으로 사용했다. 전작들에서 헨리 폰다는 망설이듯 프레임에 진입한다. 그는 어떤 프레임에서도 앤의 묘비 앞에서 중얼거리던 젊은 링컨의 자문, 혹은 폐허가 된 자신의 성당을 다시 찾은 떠돌이 신부의 자문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에 내 의지로 온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이끈 것일까?’ 의지와 운명의 영원한 내적 교전. 그의 낮은 음성과 느린 동작에는 혹독한 교전의 흔적이 새겨져 있어 침묵조차 치열했다. < 아파치 요새 >의 써스데이 중령은 전적으로 의지의 인간이다. 자신의 권위와 지위 외엔 어떤 것에도 무관심한 이 과도하게 각 잡힌 군인은 포드 영화에선 보기 드문 범속한 속인이다. 그는 아무래도 포드의 영화 세상에 잘못 찾아온 손님 같다. 누구도(물론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군사령부를 제외하고) 그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는 단호한 걸음으로 진입해 엄격한 말투로 프레임 내부의 모두에게 명령한다. 그의 등장은 프레임을 불편하게 만든다. 대화는 침묵에 빠지고 술자리는 어색해지며 무도회는 중단되고 저녁 식탁은 엉망이 된다. 그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곳에 체념의 몸짓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오던 헨리 폰다는 이제 그를 전혀 원치 않는 곳에 난입해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가 된 것이다. #1 #2 #3 이것이 중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존 포드는 그렇게 보이도록 찍었다.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 중 반 이상은 요새 내부의 일상을 담고 있다. 4년 만에 돌아온 아들을 맞는 가족, 평화로운 저녁 식사, 젊은 남녀의 로맨스, 무도회, 신병훈련... 요약된 줄거리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을 사소한 사건과 표정이 곳곳에 흘러넘친다. < 아파치 요새 >는 미군과 아파치의 충돌을 그린 서부극이라기보다 아파치 요새라는 공동체의 풍속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헨리 폰다의 경직된 몸짓과 강압적 말투는 이 풍속도의 오점으로 드러난다. 써스데이 중령의 죄는 무엇인가. 협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쟁을 벌여 자신과 자신의 병사들을 몰살시킨 것이다. 그에겐 그만큼 중대한 죄가 또 있다. 공동체를 부인한 것이다. 아파치 요새라는 공동체가 지닌 고유한 규칙과 지혜, 생기와 소란의 활동을 부정하고 억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지휘관으로서의 전술적 오류와 공동체 수장으로서의 인간적 결함 사이엔 논리적 연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 아파치 요새 >에서 그 오류와 결함은 한몸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자는 다른 공동체의 능력과 아름다움도 볼 수 없다. 써스데이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곳은 존 포드의 세상, 그러니까 소란과 도취, 왈츠와 세레나데의 난장이다. 결국 세속의 질서가 개입해 중단되지만, 어쩌면 중단의 운명으로 인해 덧없는 난장의 순간이 더욱 반짝이는 공동체다. 써스데이가 요새 공동체를 부인했을 때, 아파치 공동체를 오인한 전술가로서의 실패도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이건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포드가 이 영화를 ‘날조된 이야기’라고 말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리틀 빅혼 전투’ 혹은 ‘커스터의 옥쇄(Custer’s Last Stand)’라고 불리는 실제 사건(1876년 6월, 커스터 장군이 이끌던 제7기병대가 인디언 수족에게 패배해 미군 268명이 몰살당한 전투)을 소재로 삼긴 했지만, 존 포드는 인명과 지명을 전부 바꾸면서 실제 사건과는 사실상 절연했다. 이것이 ‘날조’가 뜻하는 바다. 포드의 관심사는 실제 전투라는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다수의 비서부극도 포함해 포드 서부극의 숨은 주제는 공동체의 몰락이다. < 아파치 요새 >는 영웅이 없는 거의 유일한 포드 서부극이며, 따라서 공동체의 문제가 전경화된다. 요크 대위는 영웅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그의 자질은 공동체의 몰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써스데이는 요새 공동체의 오점이며 공동체를 몰락시키는 반영웅이다. 그의 뒤에 국가의 명령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한편에 아파치 공동체가 있고 그곳엔 탐욕스러운 상인인 미첨이라는 반영웅이 있다. 그의 뒤에도 국가의 위탁이 받쳐주고 있으며 아파치에게 저질 위스키를 팔아 그들을 병들게 한다. 아파치 요새가 주 무대라고 해도 여기엔 두 공동체와 각 공동체를 파열시키는 두 반영웅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다. < 아파치 요새 >의 주인공은 두 공동체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아파치와의 협상을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요크 대위가 추장 코치스에게 예의를 갖출 때이다.(#4) 코치스는 요크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한다. 국가의 명령과 위탁이라는 완장을 두른 써스데이와 미첨은 두 공동체의 존중과 신뢰를 파괴한다. <아파치 요새>는 그렇게 몰락해가는 공동체를 위한 만가이다. “내 인디언 형제들이 영웅으로 등장한다”는 존 포드의 말은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4 에필로그는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 부대장 요크와 기자들의 대화를 담고 있다. 써스데이의 대형 초상화를 보며 기자가 묻는다. “위대한 분이었겠죠? 위대한 군인이었고요. 아이들한테는 영웅이 됐어요.” 요크가 대답한다. “그래요.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죠. 부대를 승리를 이끌었고요.” 이어지는 대화. “그런데 같이 죽은 사람들은 누구죠? 써스데이는 기억하는 데 다른 사람들은 다 잊혀졌군요.” “잊혀지지 않았어요. 저기 그대로 살아있어요... 얼굴과 이름은 달라져도 그들은 지금이나 50년 뒤에나 여전히 이 요새의 훌륭한 대원들로 남을 거요. 써스데이가 해냈죠.” 이 대목은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 “전설이 사실이 될 때, 그 전설을 보도합니다”를 고스란히 상기시킨다. 하지만 < 아파치 요새 > 쪽이 훨씬 신랄하고 비관적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는 이미 사건이 해결되었고, 다만 해결의 영웅이 누구인가가 문제였다. 그러나 <아파치 요새>에서는 국가 권력의 대리자들로 인해 사건 해결이 실패했고 공동체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은 조작을 통해서라도 영웅의 전설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영웅적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서글프게도 지금 그 조작의 조력자 노릇을 하고 있다. 존 포드의 ‘날조’는 정확히 그 조작을 겨냥하며, 그리하여 잊혀진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한 저녁 식사 장면이다. < 아파치 요새 >의 단란한 시간들은 모두 써스데이에 의해 중단되지만 이 장면만은 예외다. 콜링우드의 집에 요크, 오로키 상사의 아들이자 신참 소위 마이클, 그리고 마이클과 사랑에 빠진 필라델피아가 모였다. 이때 문밖에서 세레나데가 들려온다. “제네비브, 그대에게 세상을 드리죠....” 영창 신세를 지고 있는 그러나 부대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퀸캐넌을 닥터 윌킨스가 빼내 노래를 시키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가 끝나자 닥터는 위스키 한 병을 주머니에 꽂아주며 퀸캐넌을 영창으로 돌려보낸다. 노래와 춤이 없는 존 포드의 영화를 이젠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 장면은 그 예외성과 넘치는 유머로 인해 유독 깊은 정감을 남긴다. #5 #6 또 다른 장면 하나를 빼놓을 수 없다. 오로키 상사의 집에 그의 아들이 마이클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4년 만에 돌아오는 장면이다. 성경을 읽고 있던 오로키 상사가 문을 열고 등장한 아들을 쳐다본다. 그리고 잠시 성경으로 눈을 다시 돌린 뒤 일어나서 아들과 포옹한다. 그리고 잠시 돌아서 눈물을 훔친 뒤에 조용한 목소리로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여보, 아들이 왔어”라고 말한다. #7 #8 #9 #10 #11 #12 #13 이 장면이 왜 그토록 감동적인지에 대해선 잘 설명하진 못하겠다. 다만 오로키가 아들을 보고 바로 일어나지 않고 다시 성경을 보는 그 짧고 단순한 행위에 기쁨과 감사의 어떤 표현보다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건 알겠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애로운 마음이 그렇게 짧은 지체와 작은 동작에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진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태그 갤러거도 이 장면을 < 조용한 사나이 >에서 존 웨인이 모린 오하라에게 들꽃을 건네주는 장면과 함께 포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았다. 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선사한 오로키도 콜링우드 부부도 그리고 다정했던 주정뱅이 하사관들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며 그들의 소란스러운 공동체도 몰락할 것이다. < 아파치 요새 >는 아름답지만 더없이 스산하다.
한국영화의 지난 2년간 관객 2억 명을 돌파하고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어서며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은 영화시장, 불과 30여 년을 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상황은 한강의 기적에 비견된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이면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은 심각한 시장 불균형에 놓여있다. 수직계열화와 독과점에 따른 병폐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 영화계는 최근 또 다른 난처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료적 개입이다. 이러한 징후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정부 독립영화를 둘러싼 퇴행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들은 자립성을 세우며 이를 돌파해 왔다. 이러한 자율적 흐름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독립영화의 저변 확대로 이어져 갔다. 민간과 정부는 다시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며 영화문화의 로드맵을 그려 나갈 때였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가두고 있는가.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몇몇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 천안함 프로젝트 > < 다이빙 벨 > <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 등등, 유령처럼 배회하던 어떤 힘들이 몇몇 영화에 대한 구체적으로 노골적인 탄압을 통해 실체화되는 듯하다. 지극히 합당하고 상식적인 제도와 규칙 속에 충분히 가능했던 것들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보편타당했던 시스템이 관료 체계 속에서 일그러지는 순간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 듯하다. 2015년 접어들면서 영화계가 겪는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빈곤을 반영하고 있다. ‘지원하니, 간섭하겠다’는 낡은 논리와 으름장의 향연!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운영 개입, 영화진흥위원회 심의면제추천 개선 의지에 따른 일부 영화들의 상영보류, 예술영화전용관과 다양성영화개봉지원 사업에 대한 석연찮은 움직임. 각각 개별적인 로드맵에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너무도 간명하게 하나의 주제를 향하고 있다. 영화 표현의 자유! 영화단체들은 일련의 사태를 근심하며 즉각적인 입장을 밝히고 연대하고 있다. 50여 개 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였다. 존경받는 원로영화인에서부터 현장의 젊은 영화인까지, 영화제작사와 영화단체, 영화제를 포괄하는 대책위는 영화에 있어 표현의 자유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불어 한편으론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영화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귀한 에너지가 길바닥에 뿌려지는 것이 못내 울화통이 들지만, 한결같은 영화인들의 단호한 태도는 표현의 자유 없는 영화의 신체를 부여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네마로써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는 유기체이다. 한국영화 역시 영혼이 표류하던 보잘것없는 신체를 가졌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오늘 우리 영화의 정신과 신체는 어떠할까?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 미래 쇄신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에 임권택 감독이 참석했다. 딱딱한 공간에 선뜻 어울리지 않는 노장은 자신이 무슨 정책을 얘기 하겠냐며, 그저 거들러 나왔다고 말을 시작했다. 과거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해외에 갔을 때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나라의 영화 예술가로서 꽤나 주눅 들어 내내 구석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도 80년대를 기억하시는 듯했다. 이어 그는 현재와 같은 한국영화의 위상은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비롯되었다며 후배들을 옹호하고 지지하였다. 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거장의 소박한 말씀에 인간적인 존경의 마음이 먼저 일었다. 그 자신은 더 혹독한 예술의 시대를 통과했을 터인데, 시대를 온몸으로 체현한 그의 말에 무게를 두고두고 생각했다. 지난 1월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는 <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 >을 상영했다. 시네마테크 운동의 대부 앙리 랑글루아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관한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210분간의 시간 동안 나치의 눈을 피해 지켜낸 영화들, 누벨바그의 친구들, 시네마테크 관장 해임 파문과 이에 맞섰던 거대한 저항들, 이후 죽기까지 그의 영화적 행보가 펼쳐졌다. 랑글루아 해임 건은 결국 유럽 전역을 흔든 68혁명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 영화인들의 지지와 연대 가운데 앙리 랑글루와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로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나,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 앙리 말로에 의해 주도되었던 랑글루아의 해임은 영화 수집가와 프로그래머로서의 그의 자질을 애써 무시하고 정부 지원금의 사용과 행정의 서투름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는 것. 기세에 눌려 그를 복귀시킨 대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였다는 것. 그로 인해 시네마테크는 어려움에 처했고 랑글루아는 강의와 번외 활동을 통해 힘겹게 공간을 지켰다는 것. 세계적인 영화문화의 자산을 가진 나라치곤 유치한 과거사이다. 문화선진국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 역시 꾸준히 영화의 역사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한국영화의 오늘도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지금의 과정이 미래에 부디 뼈아픈 과오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어서 빨리 현장으로 새로운 작품과 사투를 벌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자유의 스크린을 통해 투사되어야만 한다. 누가 이것을 가로막으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