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
- 감독
- 황일수
- 제작년도
- 2019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괜히 겁이 나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정말 몰라요 들어보긴 했어요 가슴이 떨려 오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지금 어려요 열아홉 살인걸요 화장도 할 줄 몰라요 사랑이랑 처음이어요 웬일인지 몰라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 떨어져 얘기해요 얼굴이 뜨거워져요 엄마가 화낼 거에요 하지만 듣고 싶네요 사랑이란 그 말이 싫지만은 않네요 -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윤시내 노래, 이장희 작곡: < 별들의 고향 >(이장호, 1974)의 주제가 한국영화의 여성상은 참으로 많은 부침을 겪었다. 감히 시대에 앞선 욕망을 추구하는 여자는 처참히 몰락해야 했으며 *주1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7-80년대의 도시에서 순진무구하나 배운 것 없는 소녀는 기필코 사창가로 전락했다. 90년대 이후, 새로운 서사로 한국전쟁을 그려낸 수작들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여성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머리에 꽃을 달고 마을을 내달리는 그녀들은 동화 같은 공동체에 폭력이 소개되는 순간, 가장 먼저 죽어야 하는 탄광의 카나리아들이다. *주2 이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여성상은 단연코, 몰락하여 사창가로 들어가는 여성들이다. < 영자의 전성시대 >(김호선, 1975), <별들의 고향>을 필두로 가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7-80년대의 “호스티스 멜로” 영화들. 한국만큼 순수한 여성의 추락 서사에 집착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비비안 리를 주인공으로 한 < 애수 >(Waterloo Bridge, 마빈 르로이, 1940)가 한국에서만 유독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애수>는 < 벤허 >(윌리엄 와일러, 1959)나 < 아라비아의 로렌스 >(데이빗 린, 1962)만큼이나 “주말의 명화”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정작 영어권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사람들 외에는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파란 눈의 동료교수들은 유독 한국에서만 주목받은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떤 내용이냐고 내게 묻는다. <별들의 고향> 중 거울 앞에서 기도하는 경아 20세기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죄목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너무 많이 알거나, 혹은 너무 모르거나. 아는 여성은 많이 아는 죄로 응징을 당하고, 모르는 여성은 배운 것 없는 무식의 죄로 몰락한다. <별들의 고향>에서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가 화낼 거예요”라고 노래하는 천진난만한 경아( 안인숙 )의 죄는 아무것도 모름, 즉 순진함이다. 너무 순진해서 신마저도 그녀를 버린다. 여관으로 끌려가 반 강제적 성관계를 하기 전, 필요한 것은 콘돔과 녹음기, 변호사였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경아는 거울 앞에 서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 모두를 대신한다. “저를 행복하게 해 주소서, (이 남자가) 저를 버리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화장실에서 기도한 그녀의 간절함은 어디에도 가 닿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 자신의 잘못이다. 세상은 그 사실을 경아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스스로에게 타락한 여자라는 굴레를 씌우고 죄의식과 수치심의 선악과를 베어 문 여자의 추락은 끝이 없고, 그런 그녀를 놓아두고 세상은 세상의 질서대로 묵묵히 발전해 나갈 뿐이다. < 가여운 것들 >(요르고스 란티모스, 2023)을 보는 내내 윤시내가 청순하고 앳된 목소리로 데뷔 전 부른 <별들의 고향>의 주제가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진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메리 셸리적인 *주3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죽은 모체의 몸에 모체의 태내에 있던 태아의 두뇌를 장착한 벨라(엠마 스톤)는, 두뇌는 아기이나 몸은 성인 여성이다. 경아의 후예로 21세기의 한국에 등장한 베이글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얼굴은 해맑은 어린이이되 몸은 글래머인 성인 여성 -- 베이비와 글래머를 합성한, 어원부터 심상치 않은 포스트휴먼 냄새를 물씬 풍기는 여성상. 걷는 것조차 서툴던 벨라는 외부의 자극에 명민하게 반응하며 구강기-항문기-성기기를 꼭꼭 다지며 (두뇌만) 알차게 성장하여 끝없는 성욕을 가진,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름다운 여성이 된다. 여기까지는 이성애자 남성의 편의대로 주물(鑄物) 할 수 있는 완벽한 대상으로 보인다. <가여운 것들> 포스터 하지만, 그녀에게는 기억과 트라우마가 없다는 반전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맞지만, 그런 무지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사고와 사건들은 그저 재미있는 삶의 경험일 뿐, 벨라에게 죄의식이나 수치심을 주입하지 않는다. 수치심과 죄의식에 태생적 면역을 가지고 있는 벨라의 모습은 유아성욕의 묘사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마치 곤충의 다리를 하나씩 절단하며 관찰하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호기심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벨라의 성욕은, 최은미의 단편소설 「라라네」(2015, 『목련정전』, 문학과 지성사)에 등장하는 긴머리의 소녀 라라를 닮았다. 최은미의 소설 속 라라는 애정결핍으로 끊임없이 자위행위를 하고, 그의 엄마는 저주에 가까운 말로 겨우 유치원생에 불과한 라라에게 수치심과 죄의식을 주입한다. 그러나 벨라에게는 그렇게 할 엄마도 없다. 그녀를 저지하는 것은 “벨라 백스터”라는 의학적 프로젝트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고용되었지만 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약혼자가 되는 맥스(라미 유세프) 뿐이다. 그는 단호하고 진지하게, 남들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은 예의바르지 못한(not polite) 행동이라고 훈육한다. 벨라에게 사회 속에서의 예의라는 개념은 이렇게 처음 뿌리를 내린다.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억압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 예의라는 개념으로 배운 셈이다. 이후 벨라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단죄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의 극한을 보여준다. 집과 실험실 밖의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뻔한 거짓말로 자신을 유혹하는 던컨(마크 러팔로)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벨라는 그의 리스본 여행 제안을 받아들인다. 지능발달로만 보면 엄연히 어린 아이인 그녀와 “성난 점핑(furious jumping)”이라고 명명되는 섹스를 질펀하게 즐기는 이 관계는 그러나 착취로 귀결되지 않는다. 한계치를 벗어나는 그녀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던컨 쪽이며, 무료해진 벨라는 휴식을 취하는 그를 혼자 놓아두고 표표히 외출을 감행한다. 식음료의 냄새와 맛, 도시의 강렬한 비주얼과 소음 등, 오감을 자극하는 세계를 하나씩 맛보며 벨라의 두뇌는 유아기와 소년기의 모든 징후를 짧은 시간 안에 축약적으로 드러내며 성장한다. 바야흐로 청년기를 맞은 그녀의 두뇌는 어느 순간, 성욕을 지식에 대한 욕구로 환원시킨다. 책 읽는 것을 “성난 점핑”보다 좋아하게 된 그녀에게 던컨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녀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이미 발사된 로케트처럼 궤도를 착실히 따르며 더 큰 우주로 나갈 뿐이다. 유람선에서 만나 벨라의 짧은 생에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 주는 정갈한 매너의 청년 해리(제러드 카마이클)는 그런 그녀의 호기심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해리의 손에 이끌려 배에서 내려 난생처음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본 그녀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역시 난생처음으로 번민을 맛본다. 유람선의 카지노에서 번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녀의 행위는 세상을 근원적으로 바꿀 수 없는 낭만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일지언정,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벨라의 철없는 자선행위는 던컨과 그녀를 파산으로 내몰고 둘은 호화 유람선에서 내쫓기고 만다. 어찌어찌 파리에 도달한 두 사람은 자산도 생산수단도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하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벨라의 “선택”은 유일한 생산수단인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것이다. 선택이란 참으로 희한한 단어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발돋움하는 젊은 여성에게 선택이란 단어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가업을 잇거나, 직장을 갖거나 하는, 동등한 비중의 장단점을 가진 옵션들 중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추어 고르는 것이다. 거리에서 굶어 죽는 것과 매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어떤 자살은 타살이듯, 이미 더러워진 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춘밖에 없다는 가스라이팅을 당한 젊은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놓아버리는 결과인 매춘 행위를 “선택”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다. 이렇게 사용된 선택이란 단어는 고장 난 시스템에 면죄부를 주고 개인에게는 가장 큰 폭력이 된다. 인권이 부재한 경제개발이라는 한국사회의 고장 난 시스템 안에서, 경아에게도 영자에게도 매춘은 결코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으며 암묵적 합의에 의해 일어나고 방관되는 사회적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벨라는 이 사회적 폭력마저도 스스로 선택한 삶의 실험으로 만들어버린다. 자발적 성매매라는 위험천만하고 논쟁적인 설정은 관객들의 반감을 사기도 하고, 그녀의 실험적 태도를 입증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정사씬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는 삶의 권태와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 성매매자가 되는 벨드쥬르, 세브린느 *주4 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벨라의 실존적 갈증이 있다. 이처럼 벨라의 실험은 극한으로 치달으며, 삶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성노동자 뚜와넷(수지 벰바)의 이끌림으로 사회주의를 접하며 자신의 고민들을 단순한 낭만적 연민 이상의 의식(意識)으로 쌓아나가는 것이다. 휴일을 이용해 사회주의 전당대회에 나가는 그녀들 앞에 런던으로 돌아간 줄 믿었던 던컨이 다시 나타난다. 벨라에게 청혼을 거부당한 던컨이 창녀라고 소리 지르자 뚜와넷은 자신들은 “자립적인 생산수단을 가진 자”라고 친절히 정정해준다. 사실 이 모든 모험의 연대기와 별도로, 벨라는 이미 맥스와 약혼한 사이며 그 사실에 나름 놀랍도록 충실하다. 이미 알고 있는 던컨과의 관계는 물론, 매춘 경험에 대해 담담하고 정직하게 약혼자에게 이야기 하는 벨라를 맥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용을 가진 벨라가 동등한 관용으로 보답 받는 셈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은 영화의 다른 장면들에 비해 덜 선정적이지만, 주체적 선택권을 가진 여성이라는 벨라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름다운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아버지 갓윈(윌렘 데포)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간 벨라는, 던컨이 데리고 온 처음 보는 남자에게 결혼을 저지당한다. 자신의 육체에 다른 사람(어머니)의 두뇌가 들어있을 때 함께 살던, 일종의 전남편, 알피(크리스토퍼 애봇)다. 솟구치는 호기심 반, 모호한 책임감 반으로, 벨라는 아버지와 약혼자의 만류를 무릅쓰고 알피를 따라간다. <별들의 고향>에서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잃고 상품성을 잃어버린 경아의 존재는 두 남자 사이에서 물건처럼 떠넘겨 지지만(버거우니 당신이 대신 좀 맡아주시오), 벨라는 자신을 추종하는 남성들 사이를 스스로 선택하며 자유롭게 횡단하는 것이다. 더 이상 매춘조차 할 수 없는 경아가 수면제를 먹고 눈밭에서 동사한다는 설정으로, 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의 완전한 파괴로 마감되는 근현대 여성잔혹사 <별들의 고향>과 달리, <가여운 것들>에서 파괴되는 것은 벨라를 착취하려 했던 남성들뿐이다. 희대의 카사노바 던컨은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려 했지만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 파괴되고, 할례수술을 통해 벨라를 자신의 자손을 생산하는 자궁으로 축소하려 했던 알피는 염소의 두뇌를 갖게 된다. 인류의 역사 속 너무나 오랫동안 여성상의 두 축을 이루었던 창녀와 어머니라는 전형성은 이렇게 산산조각 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잘못”이라는 가스라이팅에서 살아남은 벨라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즐기고, 도전하고, 성취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자신을 착취하려는 주변인물들을 가뿐히 넘어서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그녀의 비밀은 무엇일까? 죄의식과 수치심이 없는 그녀에게는 맥스에게 교육받은 “예의”와, 해리를 통해 깨닫게 된 세상의 불행에 대한 “연민”이 있다. 맥스는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경계를 넘어선 세상을 꿈꾸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해리는 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는 일관되고 세련된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세상을 두려워하는 소년”일 뿐이다. 반면 벨라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무모하고 무조건적인 관용을 지닌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과학실험의 대상으로 자신을 탄생시킨 아버지를 용서하게 만들고,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그녀를 성장시킨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이지만, 자아와 타자를 아우르는 자유에 이르는 길은 어쩌면 벨라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이라는 두 대의 등대를 따라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느긋한 오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칵테일을 마시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해부학 공부를 하는 벨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의 노래를 다시 부른다면 이런 가사가 나올 것이다.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괜히 신이 나네요 그런 말 더 해 주세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더 배우고 싶어요 심장이 세게 뛰네요 그런 말 더 해 주세요 난 지금 어려요 열아홉 살인걸요 화장은 필요 없어요 이 모든 게 처음이예요 웬일인지 몰라요 가까이 와 주세요 더 만지며 얘기해요 온몸이 뜨거워져요 엄마는 죽고 없어요 뭐든지 알고 싶어요 사랑이란 그 말도 가끔은 재미지네요 <별들의 고향> 중 경아와 <가여운 것들> 중 벨라 다시 경아의 세상으로 돌아가보자. 벨라가 경아처럼 대한민국의 70년대를 살아갔다면 어떨까? 일찌감치 데이트 살해를 당해 세상에서 사라지는 위험만 넘어설 수 있다면 경계가 없는 꿈을 꾸는 큰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 아니다. 정신병동에 감금되거나 감옥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경우의 수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잘못이라고 끝없이 세뇌했을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벨라를 산산이 부수어 뜨리는 것으로 응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벨라의 존재는 그레이의 소설과 란티모스의 영화 속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터무니없는 꿈이고 동화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이미지는, 언어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현상(現象 phenomonon)일 뿐이다. 벨라의 말처럼,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까지 지구는 평평했고, 전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상은 어두웠다. “그것이 다다르기 전까지 세상은 그 이전의 상태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녀의 언어는 도발이 아닌 혁명이다. 주1. < 하녀 >(김기영, 1960), < 자유부인 >(한형모, 1956)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주2. < 그 섬에 가고싶다 >(박광수, 1993), <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2005)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주3. 최초의 SF작가로 인정받는 영국의 여성 작가. <가여운 것들>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여성주의적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설정과 제재는 물론, 작가인 메리 셸리의 삶의 궤적까지도 <가여운 것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메리 셸리의 결혼 전 성(姓)은 메리 갓윈 Godwin이다. 갓윈은 영화 속에서 벨라 아버지의 이름(first name)으로 차용 되고, 벨라는 그를 갓(God)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실제로 당대의 진보적 정치사상가였던 메리의 아버지 윌리암 갓윈은 일찌감치 어머니를 여읜 딸에게 당시 여성으로 받기 힘든 양질의 교육을 선사했다. 교육을 위해 딸을 급진주의 사상가 친구 집에 보내기도 하는데, 그 친구의 성(姓)이 영화 속 벨라의 성(姓)인 백스터(Baxter)이다. 메리는 백스터의 집에서 그의 네 딸들과 자매처럼 지내며 작가로서의 감수성을 발전시킨다. 메리 갓윈은 이후 아버지의 사상을 추종하는 유부남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진다. 벨라처럼 도주하여 퍼시와의 유럽여행을 감행하는 메리 갓윈은 퍼시의 아내가 죽은 후 그와 결혼하여 마침내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메리 셸리가 된다.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메리 셸리의 삶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가여운 것들>을 보는 큰 재미다. 주4. < 벨드쥬르(세브린느) >(Belle de Jour, 루이스 부뉴엘, 1967). 사랑하는 의사남편과 유복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세브린느는 완벽해 보이는 삶에도 불구하고 공허감을 이기지 못한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고급 요정에서 남편의 근무시간인 낮에만 성매매를 하는 세브린느에게 마담은 벨드쥬르라는 애칭을 부여한다. 조세프 케셀의 동명 소설(Belle de Jour)을 원작으로 한, 논쟁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여성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몽환적 서사와 부뉴엘 감독 특유의 아이러니와 검은 유머가 가득한 역작이다. 김진아 (UCLA 영화과 교수, 감독) l < 그 집앞 >(2003), < 두번째 사랑 >(2007), < 파이널 레시피 >(2013) 등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미군위안부3부작 < 동두천 >(2017), < 소요산 >(2021), < 아메리칸 타운 >(2023) 등을 연출. 미국 UCLA대학 교수로 시각예술의 재현 윤리, 초국가적 영화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와 영화계 한국 사회가 언제 평탄한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1990년대 중후반 역시 엄청난 시련과 문화적 역동이 함께한 시기였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개혁 행보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권의 부패에 1997년 국가 부도 사태까지 직면하며 국민을 궁지로 내몰았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린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서야 간신히 넘길 수 있었고, 바로 그때 1971년부터 대통령에 도전했던 김대중이 당선되며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서막을 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기에는 국민의 삶이 너무 고단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과 ‘IMF 생계형 범죄’가 속출하는 가운데, 보험금을 받으려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끔찍한 사건이 그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로 영화적?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신파·멜로드라마 장르가 약화되고, 잔혹한 폭력이 전시되는 ‘조폭영화’ 그리고 범죄스릴러 장르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9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1990년대 중후반은 ‘문화의 시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찾아온 ‘문화의 세기’, 그 전조였을 수도 있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이 문화라는 프리즘으로 매개되었고,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예속되지 않는 문화 영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5년 1월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국 정치사와 멜로, 액션 장르를 결합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온 국민의 뇌리에 ‘조폭’ 이미지를 각인하기도 했다. 그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대유감’의 노래 가사 심의로 공연윤리위원회와 맞서는 사건이 있었고, 1996년 1월 그들의 은퇴 기자회견은 10대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96년 6월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되었다. 이는 가수 정태춘·박은옥이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방식으로 1990년부터 투쟁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한국 대중예술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한류(韓流)’라는 용어가 중국의 한 매체를 통해 처음 등장한 것도 1997년이다. 할리우드 외화 직배로 위기를 맞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1997년부터 25% 선을 회복한 한국영화 점유율은 1999년 39.7%까지 올랐다. 서울 관객 기준으로 1995년 < 닥터 봉 >(이광훈)이 37만, 1996년 < 투캅스 2 >(강우석)가 63만, < 은행나무침대 >(강제규)가 45만, 1997년 < 접속 >(장윤현)이 67만, 1998년 < 편지 >(이정국)가 72만, < 약속 >(김유진)이 66만, 1999년 < 쉬리 >(강제규)가 244만, <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이 96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쉬리>는 전국 스크린 수가 600개도 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전국 58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한국영화의 ‘1천만 관객 시대’를 예고했다. 1990년대 중후반의 산업적 활력이 작가주의 감독의 시대를 만들어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젊은 감각의 영화사들은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고려할 패기가 있었고, 작가라 불리는 신인 감독들 역시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며, 이를 고대하는 젊은 관객들이 한국의 영화문화 지형을 새롭게 짜고 있었다. 특히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로 데뷔한 홍상수가 < 강원도의 힘 >(1998)을 이어가며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었고, < 악어 >(1996)로 데뷔한 김기덕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남근 중심적인 폭력성이 찬반의 평가를 낳는 가운데 국내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2004년 베를린(< 사마리아 >)과 베니스(< 빈집 >)의 감독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원고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 이창동 감독은 < 초록물고기 >(1997)에 이은 < 박하사탕 >(2000)으로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영화광으로서의 취향을 앞세운 데뷔작 < 달은 해가 꾸는 꿈 >(1992)과 < 3인조 >(1997)를 내놓으며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데 더딘 행보를 보였지만, < 공동경비구역 JSA >(2000)로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키며 2000년대 ‘웰메이드(well-made)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단편영화, 시네마테크, 국제영화제, 영화저널 등 한국의 영화문화가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점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단편영화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점치는 통로가 된 것도 바로 이때다. 특히 1994년부터 4년간 대기업(삼성나이세스)이 주관한 서울단편영화제를 통해 임순례 , 김태용 , 민규동 , 곽경택 , 정지우 , 정윤철 , 윤종찬 등 주요 감독이 배출되었는데, 국립영화학교라 할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졸업생과 유학파 출신이 많았다. 1995년 한국 최초의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에 이어 마니아층을 겨냥한 「키노」가 창간되었고,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을 위시로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이어진 것도 한국 영화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소설가 출신 감독의 치열한 행보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창동 은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가 당선되어 소설가로서의 삶도 시작했는데, 1992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소설을 썼다. 영화계 입문은 박광수 감독이 권유했다고 한다. 마흔이던 1993년 < 그 섬에 가고 싶다 >(박광수)의 각본과 조감독으로 첫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충무로의 전통적인 도제식 연출부를 거친 게 아니라 문학적 자산과 치열한 창작 정신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입한 경우다. 1995년에는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박광수)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 세계가 형성되는 데 1980년대 후반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과의 영향 관계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감독 데뷔는 명계남, 문성근, 여균동이 만든 이스트필름의 창립작 <초록물고기>에서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 만들기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해 주요 영화제의 각본상, 신인감독상, 감독상을 휩쓸었다.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스무 살의 순수한 청년 영호가 1980년 광주의 경험으로 점차 영혼이 파멸되어가는 것을, 1999년에서 1979년으로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했는데 21세기라는 막연한 희망에 들뜬 한국 사람들에게 비극적 현대사를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다. 세 번째 영화 < 오아시스 >(2002)에서는 장애인 여성과 하류계층 청년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저를 형성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민낯을 드러냈고, 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수상했다. 네 번째 영화 < 밀양 >(2007)과 다섯 번째 영화 < 시 >(2010)는 아들을 잃은 여성과 성폭행을 저지른 외손자를 키우는 여성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치유에 대해 질문했고, 칸영화제에 진출해 각각 여주우연상(전도연)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8년 만의 연출작 < 버닝 >(2018) 역시 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 속 종두와 벤의 세계는 <초록물고기>에서 막동이와 배태곤이 그려낸 한국 사회가 20년의 시간이 흐른 모습처럼 보이고, 좀처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종두는 이창동 자신으로 읽히기도 하는 작품이다. 한편 그는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현역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어 1년 4개월간 관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스트필름 사람들. 왼쪽부터 명계남, 이창동, 문성근, 여균동 순수한 청년 막동이의 꿈과 비극 영화는 군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열차의 난간에 매달려 밖을 바라보던 청년은 앞 칸에서 똑같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하는데, 그녀에게서 날아온 장밋빛 스카프가 그의 얼굴을 감싼다. 남자는 전역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막동이( 한석규 )이고 여자는 밤무대 가수인 미애( 심혜진 )다. 스카프를 돌려주려고 미애를 찾던 막동이는 그녀를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폭력적인 공간을 막 벗어난 그가 또다시 폭력과 맞닥뜨린 것이다. 분을 삭일 수 없는 막동이는 복수하기 위해 불량배들을 따라 내리지만 결국 기차를 놓치고 짐까지 잃어버린다. 밤늦게 일산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막동이는 어머니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첫째 형을 만나지만 다른 형제들은 이미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진 후였다. 이어 영화는 막동이가 계란 장사를 하는 셋째 형과 다방 레지로 일하는 여동생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도시로 급변한 일산의 풍경을 담아낸다. 막동이는 미애가 남긴 전화번호를 들고 서울로 가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사실 미애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조직 보스 배태곤( 문성근 )의 연인이었다. 그녀의 부탁으로 태곤은 막동이에게 주차장 관리 일을 소개해주고, 그는 자신의 손가락까지 부러뜨려가며 배태곤의 재건축 개발 건을 해결해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미애는 막동이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배태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배태곤의 옛 보스이던 김양길이 출소해 인근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구역을 침범해오자, 태곤은 막동이에게 양길을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그는 간직해오던 미애의 스카프를 태운 후 김양길을 살해하고, 큰형에게 전화해 어린 시절 초록물고기를 잡던 이야기를 하며 두려움과 눈물을 삼킨다. 왜 한석규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일 것이다. 배태곤은 재개발을 앞둔 건물로 막동이를 불러내 칼로 찌르고, 그는 태곤의 차 앞 유리에 쓰러져 미애를 쳐다보며 죽어간다. 시간이 흐른 후 막동이의 꿈대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당을 한다. 태곤과 임신한 미애가 우연히 식당에 들르고, 그녀는 생전의 막동이가 준 사진 속 고향집이 이 식당임을 알고 오열한다. 장르적 공감대와 리얼리즘의 양식 <초록물고기>가 보여주는 사실주의 영화 스타일은, 국내외 영화평론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허우 샤오시엔 등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19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창동만의 화법과 작가적 인장이 이 영화에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곳에서 파멸해가는 순수한 주인공을 통해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구축해간다. 이창동의 영화 역시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방법론으로 리얼리즘적 태도를 견지하는 동시에, 동시대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필름 누아르 혹은 갱스터 장르에 기대면서 그 장르적 언어를 예술영화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순간, 지극히 양식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리얼리즘적 접근과 관객의 영화적 몰입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완수해낼 때, 환상은 현실과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그의 세계관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서울 영등포의 유흥가와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의 면면을 그린 누아르 장르이면서도, 영화적 세계(디제시스)와 현실 세계(리얼리즘)를 밀착시킨다. 당시 관객들로부터 진짜 깡패를 섭외한 것인지 기함하게 만든 배우 송강호의 연기도 오랫동안 회자된 바 있다. 막동이가 초록물고기의 사연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공중전화 박스 신도, < 열혈남아 >(왕가위, 1988) 같은 홍콩영화와 < 게임의 법칙 >(장현수, 1994)을 경유해 이창동만의 것으로 수용되었다. 고향집에 돌아온 막동이가 군복 상의를 던질 때의 슬로모션 처리 역시 홍콩 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이 작가영화의 예민한 언어로 승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사실주의 화법은 카메라의 움직임과도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중요한 순간마다,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과 주인공인 막동이의 시점을 합치면서 리얼리즘을 배가한다. 자신을 구타한 불량배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트로피를 들고 그들을 따라갈 때, 막동이의 시점처럼 보인 주관적 숏은 그가 프레임 인(frame in)하며 다시 제3자의 객관성을 확보한다. 막동이가 처음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갈 때 또 배태곤 일파가 자리한 룸으로 들어갈 때도 그와 카메라의 시점 숏은 합쳐진다. 카메라는 막동이의 시선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그가 옛날 아카시아 천지였던 들판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고 얘기할 때, 막동이를 비추던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팬(수평 이동)하고 점차 그의 얼굴을 가깝게 잡아낸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마련한 모처럼의 야유회가 아수라장이 될 때도 자동차로 빙빙 돌며 그 난장판을 지켜보는 시점은 카메라의 것이기도 하고 막동이의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용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스타일이 이창동의 영화 세계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대목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동이의 시점이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으로 합일되는 연출은 이 영화가 줄곧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곧잘 거울 프레임 속 막동이를 잡으며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정박시키고 현실 너머의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기차의 화장실에서, 고향집의 방에 돌아왔을 때 또 자신의 손가락을 자해하는 화장실 신에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카메라가 먼저 포착하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는 20대 청년 막동이가 꿈(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고뇌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막동이가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막동이와 어머니를 비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오랜만에 돌아온 막동이의 말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어머니의 대사는 막동이의 옛날 사진을 보여주는 인서트 이미지에서 들릴 뿐이다. 즉 둘의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큰형이 동네 어귀에 나와 그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도, 막동이는 커트되지 않는 숏을 통해 마치 귀신처럼 나타난다. 어쩌면 영화는 막동이가 이미 죽은 존재와 다를 바 없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한국영화, ‘웰메이드’라는 브랜드 1990년대 후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신인 감독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역동성은 2000년대 한국영화가 산업적 활기와 장르적 완성도를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은 ‘충무로’라는 상업영화 시스템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면서 본인만의 개성을 새기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2003년 흥행성과 작가주의적 완성도를 겸비한 < 살인의 추억 >(봉준호), < 장화, 홍련 >(김지운),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재용), < 올드보이 >(박찬욱) 등이 선보이며 ‘잘 만든’ 상업영화를 뜻하는 ‘웰메이드 영화’가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장르영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미학적, 기술적 완성도의 최고점에 도달한 영화들은 2004년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2005년 < 혈의 누 >(김대승), < 달콤한 인생 >(김지운)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예민한 주제들을 장르적으로 해석하며 예술성까지 확보한 2000년대의 한국 상업영화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이는 < 복수는 나의 것 >(2002), < 올드보이 >, < 친절한 금자씨 >(2005) 등 복수 연작에서 작가주의적 미장센의 향연을 보여준 박찬욱이 주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