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 감독
- 손정민
- 제작년도
- 2015
<도라지 불고기> 중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획 배경 <도라지>의 주인공인 XX형과 나는 대학 동기다. 우리는 시각디자인과 축구 소모임에서 함께 뛰었다. 어느 날 형은 자기가 초·중·고교를 조선학교에서 보냈으며, 그곳은 일본에서 교포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사실에 특별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더 묻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친 뒤 나는 군대에 갔고, 형은 휴학 없이 졸업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 포수 >(2022)로 처음 영상 매체를 다루기 시작했을 무렵, 내겐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봐야만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생겼다. 그러다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어서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영화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체로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영화임에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차별 속에서도 조국과 정체성을 잊지 않고 투쟁하는 영웅’으로 그려져 있었다. 영화는 그들을 ‘우리 민족’이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들을 철저히 ‘그들’로 격리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들의 시선은 그들이 일본에서 핍박을 받더라도 조국을 잊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늦게나마 돌봐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아픈 우리 역사의 교보재’였다.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분명하게 설정된 구조를 보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라는 소재가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대상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XX형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좀처럼 겹치지 않았다. 불온한 이미지 다큐멘터리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조선인을 향한 배제는 오늘날 조선학교를 향한 행정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고교무상화 제외는 제국주의의 잔재이며 우리 민족을 향한 차별이다. 이에 맞서 학교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선학교 진학을 선택하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다거나, 일본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수만 가지의 삶을 윤리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개인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안식처가 아닌 억압의 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와 총련의 영향력이 점점 옅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북한’이라는 짐을 굳이 짊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조선학교가 북한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등 인권의 가치에서 벗어나는 교육 내용을 유지하는 한, 일본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교육은 정치를 떠나 보편적인 인권의 영역이며, 아이들의 학습권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인권’의 문제가 양쪽 모두에 공존한다. 이렇게 학생 수 감소나 고교무상화 배제의 이유를 일본인의 차별로만 단순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는 이 복잡함을 가린다. <도라지 불고기> 중 밝히자면 나 역시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에서 늘 제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곳은 다양한 정체성의 가능성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논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먼저 가려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슬픈 얼굴들을 앞세워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가리는 수법에 더 이상 진보가 있을까. 감출수록 더 미심쩍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가려졌던 것들을 드러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싶었다. 북한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남한과 일본 사회를 벌벌 떨게 할 만큼 실체적인 위협인지 되묻고 싶었다. 그래서 ‘불온한 이미지’를 원했다. 너무 당연한 모습이지만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금기처럼 여겨질 법한 것들. 그러나 너무 당연한 모습들. 촬영 과정 XX형에게 종종 나고야로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나고야에 갈 바에야 도쿄에 가겠다며 진심을 담아 거절해 왔다. 그런데 막상 ‘찍을 거리’가 생기니 촬영 장비를 꾸려서 쫄래쫄래 나고야에 갈 계획을 세우는 내 모습이 꽤 머쓱했다. 브이로그 형식을 택한 현실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은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대뜸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그러니 비교적 작은 카메라가 서로에게 덜 민망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작업에서 나는 사명감 넘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니라 재치 있는 브이로거여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 실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우고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만 불러내는 방식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별다른 사건 없는 일상을 담기로 했다. <도라지 불고기> 중 / 편집된 장면 중 다행히 형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사히 나를 소개해 주었고, 다들 내 카메라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나 역시 촬영을 위해 웃기고 귀여운 동생처럼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의 부모님에게는 늘 호감을 샀다는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도 있었다. 서울과 나고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많이 가까워졌다. 물론 내겐 꿍꿍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된 것 같았다. 덕분에 <불고기>를 촬영할 때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카메라를 들이밀 수 있었다. 나고야를 방문할 때마다 약과와 참기름, 고춧가루, 안동소주, 도라지즙, 쫀드기 같은 것들을 챙겨갔다. 누나들과 형들의 어머니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도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됐다. 비록 나의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어느새 그들은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고야보다 도쿄에 가고 싶다. (상) 편집된 장면 중 (하) <도라지 불고기> 중 / 서울에 놀러온, 나고야에서 만난 친구들 (사진: 양지훈) 지워낸 얼굴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은 예상보다 많은 말을 낳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이를 두고 “존재를 부정당한 저들의 실체가 없는 아이덴티티의 시각화”라고 리뷰했지만, 그렇게 정의하면 내 의도와는 반대가 된다. 아마도 그 문장은 내 작업을 보호하기 위해 덧붙여진 수사였을 것이다. 보편의 윤리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익숙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편이 모두에게 안전했을 테니까. 블러 처리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나는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특정한 범주로서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면, 아마 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가렸다. < 도라지 불고기 >(2025)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고 정당한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에 기록되어 특정 범주 안에 위치 지어질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게 꼭 의미 있거나 유익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늘 미안함은 욕망에게 지곤 한다. 그들의 삶에 기대지만, 얼굴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맨얼굴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대상이라는 매개가 있고,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날 것의 얼굴’은 관객에게 가장 좋은 구경거리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마주 볼 수 없다. 일방적으로 응시할 뿐, 타인에게 얼굴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가려진 얼굴을 보며 관객들이 이 불균형한 관계를 자각하기를 바랐다. 이미지(를 보는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얼굴을 탐닉하고 점유해 왔다. 그것을 윤리라고 믿는 방식으로. 편집된 장면 중 드러낸 주체성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 때문에 많은 비판을 전해 들었다. 비판은 대체로 한 곳으로 향한다. “감독이 대상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소거했다”라는 의견이다. ‘개별성’을 소거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얼굴은 그 사람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그 얼굴들을 모두 같게 만듦으로써,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화된 이미지를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생산한 모양새가 되었다. 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형식이 정작 작업이 문제 삼으려 했던 것을 스스로 앞장서 재현하고 말았다. 내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주체성’의 문제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창작자가 누군가에게 주체성을 주거나 뺏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도라지 불고기> 밖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다. 하지만 작업(영화)의 주체는 작가(감독)이다. 프레임 안에 가둔 대상의 주체성을 드러내 보겠다는 고민은, 어쩌면 감독이 자기 윤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대상의 주체성을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시혜적이다. 감독이 ‘드러낸’ ‘주체성’이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며, 편집자의 손끝에서 빚어진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가장 앞에 두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욕망을 명분 뒤에 숨길수록, 영화를 향한 비평은 도덕의 문제로 치환되고 만다. 작품이 아닌 ‘의제’를 방패 삼아, 비판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나쁜 위치에 세워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창작자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다. 누군가를 위해 카메라를 든다는 사람의 말은 아직까지 믿지 못하겠다. 그 말은 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타인에게 전가하며, 자신을 선한 주체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타인의 삶을 연료 삼아 예술가로 살아가려는 창작자의 야심과, 타인을 안전하게 관음하려는 관객의 시선이 만나는 지독히 탐욕적인 장소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비대칭적이고 폭력적인 구조를 ‘대상의 주체성’이나 ‘재현의 당위’라는 말로 포장하는 순간, 예술은 비겁해진다. 감독이 ‘구원자’의 탈을 쓸 때 대상은 ‘수혜자’로 전락하지만, 감독이 ‘욕망하는 창작자’로 설 때 대상은 비로소 그 욕망과 거래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된다. 물론 당장 이 기울어진 무게추를 평평하게 맞추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대상의 주체성이 생겨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불고기> 촬영 현장 (사진: XX형) 양지훈(시각예술가) l 다큐멘터리 제작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폭력에 주목하며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만든다. <포수>(2022), < 테이큰 >(2023), <도라지 불고기>(2025)를 만들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 오! 수정 >(2000)에는 의미와 맥락을 추정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다. 소(小) 제목이 부여된 5개의 장으로 구성된 플롯에서 2장 ‘어쩌면 우연’과 4장 ‘어쩌면 의도’의 3일째(번호 ‘3’이 붙어있다)에 해당하는 삽화에 등장하는 바바리 코트를 입은 여인이 대표적이다. 그저 지나가는 여인에 불과하여 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 여인은 2장과 4장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난다. 2장에서 재훈(정보석)과 수정(이은주)이 호프집에 있는 시간, 영수는 유니콤 서울 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박 기사와 출근 문제를 두고 크게 언쟁을 벌인다. 이어서 재훈과 수정의 술자리에 합류하기 위해 영수가 호프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직후, 이 여인은 영수의 뒤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간다. 4장에서는 수정이 호프집을 나와 머플러를 매고 유니콤 서울 프로덕션 사무실로 이동한 직후 바바리 코트 여인이 나타나 호프집 안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영수가 호프집으로 들어가고(2장), 수정이 호프집에서 나와 시야에서 사라진 뒤(4장)에도 이 여인이 호프집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우직하게 기다려준다. 시간과 기억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유희하는 <오! 수정>의 플롯에서 이 성명불상의 여인은 시간을 나타내는 기호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영수와 수정의 시간이 교차하는 좌표 위에 이 여여인이 서 있다. 바바리 코트를 입은 여인 보다 더욱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은 요리사이다. 이 인물은 1장 ‘온종일 기다리다’와 5장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에 등장한다. 1장에서 우이동의 호텔방에 있는 재훈이 침대 위에서 잠이 든 쇼트에 이어 누군가의 시점을 암시하는 듯한 부감 쇼트가 뒤따른다. 호텔의 노상 주차장을 찍은 이 기울어진 구도의 쇼트에서 요리사는 프레임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을 향해 사선으로 난 길을 따라 이동한다. 그의 이동 경로와 속도에 맞춰 카메라는 틸트-업하면서 요리사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야기가 종결되는 5장에서 요리사는 다시 나타난다. 1장에서와 동일한 구도의 쇼트에서 이번에는 프레임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걸어 내려온다. 즉, 요리사가 이동하는 형상은 두 장안에서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어떤 중요성도 부여되지 않은 것 같은 이 남자는 왜 두 번씩이나 등장하는가. 스토리나 인물, 사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비 서사적인 존재로, 어떤 극적 기능도 담당하지 못하는 잔여로 그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시간과 기억을 조각내고 나란히 그것을 대조하도록 디자인한 <오! 수정>의 내레이션 전략에 의해 기능을 부여받은 에이전트이다. 요리사가 프레임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향하는 이미지와 걸어간 길을 다시 되밟아 오는 이미지는 1장과 5장에 나란히 놓여 두 개의 시간을 종합하도록 한다. 여기서 요리사는 1장의 표제를 장식하고 있는 ‘온종일’이라는 시간의 층위를 함축한 정보-기호가 된다. 1장에서는 재훈이 택시를 타고 우이동 호텔방에 들어가 수정에게 전화를 거는 행위가 묘사되는데, 이 시간은 하루 중 이른 아침에 해당한다. 전날 재훈은 수정과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짝을 이루기’ 위한 충동에 사로잡혀 너무 일찍 호텔에 도착했다. 조급한 마음에 잠을 많이 자지 못한 재훈은 호텔방 침대 위에서 잠이 들었고 그 시간 요리사는 노상 주차장을 걷고 있다.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요리사의 쇼트는 따라서 이른 아침 자신의 일터인 호텔 식당을 향해 출근하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5장에서는 마침내 수정이 호텔에 당도하여 재훈과 ‘짝을 이루고’, 두 사람이 미래를 기약하는 듯한 삽화가 기술된다. 한 번도 섹스를 한 적이 없다는 수정의 고백에 환희에 젖는 재훈의 이전 반응에 비추어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5장의 메시지는 남자의 아둔한 믿음을 희화화한다. 섹스를 한 후 침대 시트 위에 묻은 수정의 피를 욕실 안에서 씻어내면서 재훈과 수정이 나누는 미신을 주제로 한 대화에 이어 요리사의 쇼트가 삽입되어 있다. 1장에서의 묘사와 차이는, 요리사가 향했던 식당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5장에는 없으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요리사의 쇼트 뒤에 수정이 호텔방 창문 앞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처리된 쇼트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1장에서는 시선의 주체가 모호하지만 5장에서는 시선의 주체가 암시된다. 요리사가 근무하는 식당은 1장에서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가 어디서 출발하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것인지를 추론할 수 있다. 요리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것이다. 환언하면, 1장과 5장에서의 두 쇼트를 종합하면 재훈은 ‘출근에서 퇴근까지’ 수정을 기다린 셈이 되고, 비로소 ‘온종일’이라는 지속된 시간의 형상이 완결된다. 재훈이 호텔에서 온종일 수정을 기다렸다는 명시적 증거가 이 요리사인 것이다. 서사 정보를 제시하는 홍상수의 방식에는 특별함이 있다. 홍상수는 구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긴요한 정보-기호들을 은폐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어떤 기능도 부여받지 못한 행인이나 아낙네, 사물들이 인상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 요리사와 바바리 코트를 입은 여인, 오프닝에 프레임의 앞을 가로질러 가는 약수 물통을 끄는 여인, 한식당 ‘큰기와집’의 주방 아주머니, 재훈과 수정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의 주인, 재훈의 벤츠를 모는 김 기사 등이 이런 존재들이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프레임의 앞과 뒤를 서성이면서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의 시대에 이들은 발견을 기다리는 보물과 같은 존재들이다. <오! 수정>의 흑백 이미지는 이들을 위한 조력의 형식이다. 흑백은 동일한 세팅 위에서 차이를 감지하는데 요긴한 스타일 상의 전략이다. 요리사와 바바리 코트 여인은 그 차이를 선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이미지 특성에 따라 구분된다. <오! 수정>은 버려지는 디테일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내러티브의 꼴을 보여준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의 유습화된 권력 관계로부터 떠밀려 있던 사소한 것들의 위력, 그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성립되는 대안 서사의 한 유형이다. 홍상수는 쇼트의 형태를 결정하는 구도와 앵글, 프레이밍, 거리, 크기 등의 조형적 요소들이 어떻게 서사 정보에 대한 관객의 인지작용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구조를 활용한다. 여기서 홍상수는 조각난 쇼트를 조립하여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관객들에게 엄청나게 큰 책임을 지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의 < 기차의 도착 >(1895)은 활동사진이라는 신(新) 예술의 도착을 알렸다. 시오타 역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기차의 현실감에 압도당한 관객들이 겁에 질려 소란이 일었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도 전해진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하나의 ‘기차 영화’가 이목을 끌었다.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한 < 박하사탕 >(1999)에 기차가 도착한 순간 한국영화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시대로 진입한다. 이창동 의 기차는 거꾸로 간다. <박하사탕>에서 기차 장면들은 서사의 가장 중요한 마디들에 배치되었다. 회색 양복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김영호(설경구)는 원근법적 구도로 찍힌 선로에 위태롭게 서 있다. 곧이어 영호의 몸은 이미지의 소실점으로 이끌리듯 뒤로 기울어진다. 뒤에서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다가오자 영호는 휙 돌아서 기차의 정면으로 향하고 금속 기계로 빨려 들어간 관객의 눈은 카메라의 시점에 동기화된다. 팔을 위로 뻗은 채 영호는 비명을 지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회전과 동시에 시간도 회전하고, 절규하는 영호의 얼굴 위에서 이미지는 얼어붙는다. <박하사탕>의 내러티브 궤적 내에서 이 얼어붙은 이미지는 형식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박하사탕>은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에 의해 전달되는 파괴적인 드라마였다. 이창동의 거꾸로 가는 기차는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관한 은유이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 점점 확대되는 햇살 속으로 기차가 빠져나가면서 영호의 여행도 시작된다. <박하사탕>의 시간여행은 통상적인 플래시백과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누군가의 시점(point of view)을 경유한 회상으로 정의되는 데 반해 <박하사탕>에서는 시점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 안에는 시간의 고정점이 부재하며 따라서 후진하는 기차를 따라 기술되는 과거 스토리는 영호의 회상이 아니다. 기차는 시간을 거슬러 여행한다기보다 시간을 이동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창동은 앞으로 진행하는 시간과 매몰된 시간들을 소환하는 시각적인 은유로 기차를 활용해 역사의 닫힌 경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인간의 비극을 다룬다. 한편으로 기차는 당시까지 이창동의 영화 세계를 표상하는 시간-장치였다. 그의 데뷔작 < 초록물고기 >(1997)는 덜컹거리는 기차의 외경 쇼트로 열린다. 군에서 막 전역한 막동(한석규)은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미애(심혜진)와 우연히 교차한다. 기차 문에 걸터 선 막동에게 미애의 자줏빛 실크 스카프의 날아드는 장면은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에서 로맨스가 피어나는 순간을 재연하는 것 같다. <박하사탕>의 기차 장면들은 1979년부터 1999년까지 영호의 삶을 망가뜨린 7개의 삽화들 사이에 배치되어 시간 이동을 위한 프레이밍 장치로 사용된다. 각각의 삽화는 기차의 마지막 칸에 배치된 카메라 앵글로, 철도 선로 위의 움직임을 찍은 짧은 막간 쇼트들과 연결된다. 이 막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제시스를 뒤로 당기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영화의 스토리는 앞으로 전진한다’는 관객들의 경험을 따라간다. 스토리 시간은 뒤로 가지만 스토리는 앞으로 가는 플롯의 효과가 창조되는 것이다. 기차는 영호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등장하여 그의 삶을 치욕과 악행, 파멸로 몰아간 궁극적인 원인을 찾도록 한다.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과관계는 사실상의 테마가 된다. 중요한 삽화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관객은 행동과 동기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기 위해 애쓴다. 각각은 이미 발생한 최종 결과, 즉 영호의 자살을 설명할 이유를 찾도록 주문한다. 통념상 전진하는 스토리 안에서 목표 달성은 가장 중요하며 이를 달성하는 수단은 부차적이지만, <박하사탕>과 같은 형식은 클라이맥스에서 시작하여 인과론적 미스터리를 탐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내러티브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미 공개된 현재 상황을 설명할 과거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순수와 완전성에 대한 상실감과 애통이 스토리의 해결책을 제공하므로 영호의 개인사는 한국 현대사와 연결되어야 한다. 가장 가혹한 장면은 기차 뒤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아름다운 전원의 풍광을 배경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부 장면에서 시간은 우울한 현악 4중주 음악과 함께 잔혹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위주의 정부와 학살, 고문, 물신주의가 어떻게 순수를 독살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후진하는 내러티브는 순수하고 도덕적인 청년이 어떻게 회복할 수 없이 망가졌는가를 강조한다. <박하사탕>의 스토리는 혁신적 구조와 다층적인 플롯, 여러 가지 의제를 제공하는 효율성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는다. 관객은 장면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이 영호를 어떻게 타락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창동은 한국 현대사의 요점들을 훑어가면서 공동체의 관습이 도덕성과 대립하는 방식,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는 방식을 서사화한다.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춘 이창동의 영화 세계에서 영호는 한국 사회가 잊고 싶은 모든 것, 존재하지만 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대표한다. 무구했던 삶에 가해진 악의적 영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왔으나, 실패에 실망이 더해지고 절망에 낙담이 더해지면서 비극과 재앙은 잔해더미처럼 쌓였다. 시작점에서 끝나는 이 순환 구조는 대비를 분명하게 한다. 생애 초기 순진한 영호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임박한 죽음은 스토리의 시작부터 이 남자를 지켜보던 관객들을 놀라게 하면서 평범한 세계의 경험을 초월적인 높이로 끌어올린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 서술법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의 서사구조는 영화의 테마를 존재론적인 단계로 밀어 올리고, 그것들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시간성과 연결함으로써 창의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마지막 장면은 청년 시절 영호의 사랑이 피어나는 고요하고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영호는 20년 후 목숨을 앗아갈 철로 아래에 눕는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내는 영호의 머리 위로 기차 소리가 웅웅댄다. 에필로그에서도 기차는 변함없이 서사의 전진 움직임을 비유한다. 프롤로그의 얼어붙은 이미지와 반향하면서 재등장한 영호의 뺨 위에서는 관객들이 이미 목격한 그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듯이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흡사 그는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여 우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과거 -현재 - 미래의 시간성은 영화적인 시간 조작술의 마법에 홀린 것 같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