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없다
- 감독
- 박노식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박노식, 원선, 여수진, 장혁, 노진아, 트위스트 김, 유예지, 김기범, 윤일주, 손전, 안경아, 김영인, 나갑성, 조영준, 안진수, 지용남, 박복남, 이강조, 조춘, 석인수, 전숙, 김지영, 조학자, 이예민, 박준규, 장정국, 김민수, 박종설, 박부양, 최형근, 김도향, 손장철, 박용팔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덕배( 안성기 )의 잽은 흡사 태양을 두들기려는 듯 보인다. 때맞춰 안빈낙도의 정서를 노래한 김도향의 동명 주제가도 터져 나오지만 사실 덕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두 절친은 각각 감옥과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은 중국집 배달 일도 그만두고 전업 권투선수의 길로 나섰음에도 스파링에서조차 내내 얻어맞기만 한다. 애먼 태양에라도 화풀이를 해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카메라는 물러서고 석양은 조롱하듯 멀어진다. 못다 한 화풀이는 1년여 후를 기약해야 했다. 긴급조치와 10월 유신 시국의 1974년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로동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이장호 감독은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라는 강렬한 타이틀을 선택했다. 실화에 대한 감독의 해석인 이 제목 문구는 중의적이다. 그들이 쏜 것은 부도난 희망을 낳은 위선의 태양이자, 또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문도석( 이영호 )과 이종배( 박일 ) 2인조에게 있어 태양의 빛이란 만물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축복이 아니었던 게다. 아울러 경찰에 포위된 이종배가 자살하기 전 손수 총을 쏴서 목숨을 끊은 어린 장남의 이름도 하필이면 ‘태양’이었다. 첫 번째 해석은 범인들의 대담성과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돌아보자고 말했던 박완서, 최인호(사건을 각색한 소설 『지구인』을 썼다) 등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고 있었던 이장호 감독은 그들을 범행으로 내몬 가난보다도, 그 가난으로 인해 좌절된 두 실존 인물의 예술적 야심에 연민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1차 범행을 마친 두 캐릭터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종배와 문도석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나오던 어느 가장을 차로 납치했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총으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도로변에 있던 아기엄마 하나도 오발된 총탄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 끝에 야산으로 도피한 범인들이건만 문도석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이종배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세심하게 변장 목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면도하고 있다. 실제 문도석 또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이종배는 미술가가 꿈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못 이룬 꿈의 상징들과 어우러져,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도석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종배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범행 속보를 들으며 “대낮에 살인강도가 설치고 다니니…”라며 남 얘기하듯 중얼거릴 만큼. 범행을 후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도석과 주범인 종배의 갈등은 장차 갈대밭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익스트림 풀 쇼트로 멀어지며 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싸움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다. 액션의 박진감과 타격의 쾌감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질질 끌리는 발길질과 힘겨운 주먹질에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고통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사회의 혜택이 닿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는 또 다른 소외된 자를 향할 뿐이며, 약자들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후 2차 범행은 이종배 단독으로 진행된다. 손을 씻고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보려 했던 문도석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탓에 경제적 곤란을 겪다 다시 종배에게 돌아온다. 2인조가 3차 범행을 모의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철 지난 해수욕장. 그들이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태양의 또 다른 반대말은 물인지라, 두 사람도 이 공간에서만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배 한 척은 모래톱에 엎어져 있을 따름이니, 애초 그들에게 자유란 막다른 배수의 진에서나 가능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죄자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감정이입은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는 호러영화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와 스포츠물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과 함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드물게 본격 장르 영화로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다만 < 엑소시스트 >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빌려왔던 <너 또한 별이 되어>와 달리 이 작품에서 갱스터 장르는 대체로 서사의 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실화의 리얼리티와 육중한 메시지가 이끌어가던 극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장르를 소환한다. 유유히 은행을 턴 후 직원들에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켜놓고 떠나는 강도들의 모습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흑백화면으로 묘사되었다. 고전 갱스터물의 패러디로 연출된 이 장면은 곧 이종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의 실패는 파멸의 출발점이 된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되지 못하고 강도가 돼야 했던 것처럼, 이 종합예술 콤비의 영화적 상상력도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신분이 탄로 난 문도석은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먼저 자살을 택한다. 유서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플래시백 화면,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변의 기억 속 도석의 머리 위에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허나 경찰에 포위된 어둠 속 종배의 집 위로는 단죄의 벼락만이 내리칠 뿐이다. 저항을 포기한 그는 실제 이종배가 유서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살해한 이들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게 상세히 고백한 후 동반자살을 원하는 아내를 먼저 쏜다. 그리고 드디어 총구는 어린 맏아들 태양을 향한다. 겁이 난다는 아들에게 종배는 아빠의 이름을 크게 외치라고 시킨다. “이종배!”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더 크게!”를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이 대목은 이전에 등장한 바 있는 놀이터 장면의 반복이다. 술래가 된 아들 태양이 아빠가 탄 회전무대를 돌려줄 때도 부자는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돌려봤자 회전무대는 제자리로 돌아올 뿐, 결국 지친 태양이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랐던 후손 또한 쳇바퀴의 현실에 좌절할 것을 직감했던 종배.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죽음의 이름이 되고,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은 끝내 태양을 쏘고 만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흔히 리얼리즘 시대라 불리는 2기 필모그래피를 열어젖혔던 이장호 감독은 후속작으로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동시에 착수했다. 두 영화 모두에 온전한 역량을 투여할 수 없었던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에 힘을 싣는 것을 선택했고, 이 작품은 상대적인 저평가의 불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힘을 뺀 덕분에 오히려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연출의 미덕은 물론, 이후 감독이 선보일 작가적 탐구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먼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살아남은 도석의 아내( 이경실 )는 성당 신부로부터 자신이 살인자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이 결말은 시력(빛/태양)을 잃은 후 신에게 의탁한 안요한 목사의 실화극이자 후속작인 <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2)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당대 불평등 구조의 근원을 좇아 유신 시대의 과거로 떠났던 감독은 이종배의 이력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얻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난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별의별 끔찍한 죽음을 한꺼번에 봤어. 추운 겨울 들판에다가 갓난애를 버리고 가는 지독한 여자도 있었지. 굶주림은 밥 먹는 것보다 많았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놈 봤니?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강도질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어쩌면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전쟁과 분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훗날 감독의 역작인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를 통해 완성되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이 크게 위축되어 작품을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다.(그나마 지난 겨울 ‘오디션’이 어렵게 완성되어 2년 만에 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한편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지금 기준에서는 1년에 한편도 만들어지기 힘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무려 10편이나 만들어졌던 해가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실제로 국내에서 그런 해가 있었다. 1979년의 일로 이 한해 동안에만 < 똘이 장군 >, < 별나라 삼총사 >, < 은하함대 지구호 >, < 우주 흑기사 >, < 우주소년 캐시 >, <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 < 태극소년 흰독수리 >, < 검은별과 황금박쥐 >, < 고우영의 삼국지 > 까지 모두 10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것이다. 특히 1979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아동의 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애니메이션의 열기가 최고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호황 속에 제작된 10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평점을 부여해 보고 싶은 작품은 < 별나라 삼총사 >이다. 본래 이 작품은 광고 제작사인 선우광고가 해태제과와 함께 기획한 ‘해태 만화극장’ 시리즈 제1탄으로 당시 < 별들의 고향 >으로 한국 영화계 최고의 흥행사였던 이장호 감독이 기획하고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의 임정규 감독이 연출을 맡아 근대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기획과 제작의 전문성이 시도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선우 엔터테인먼트 강한영 회장이 젊은 시절 가장 의욕적으로 제작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 로보트 태권 V >의 촬영감독이었던 조민철 이 촬영을 하고, 1980년대 가장 주목할 만한 국내 애니메이션 감독중 한명으로 부상하는 정수용 이 키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등 참여한 스탭들의 면면을 보았을 때 역대 가장 탄탄한 조합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훗날 <호랑이 선생님>의 주제가를 비롯해 많은 어린이 드라마의 주제곡과 각종 CM SONG, 가요곡을 만드는 김도향 이 작곡하고 직접 부른 < 별나라 삼총사 >의 힘찬 주제가는 당시 큰 잔상을 남겨 놓기도 했다. 이처럼 명스탭들이 집결해 만들어낸 이 작품은 알렉산더 뒤마 원작의 <삼총사>의 캐릭터 설정을 어린이 삼총사로 옮겨와 다시 이것을 SF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참신함이 돋보였고, 특히 동시대에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가장 개성이 살아있는 독창적 캐릭터 디자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남긴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 별나라 삼총사 >를 성공 시킨 선우광고의 ‘해태 만화극장’ 시리즈는 이후 타이틀을 ‘꿈나라 만화극장’으로 바꾸고 여세를 이어가게 되는데, 1980년 < 삼총사 - 타임머신 001 >, < 15소년 우주표류기 >, 1981년 < 엄마찾아 삼만리 >가 제작되며 한국 극장 애니메이션의 최전성기를 수놓게 된다. 문화계 여러 분야에서 고전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은 소중한 고전 한국 애니메이션 중 한편이라고 생각된다. / 글 : 송락현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http://blog.naver.com/k2ze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