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집
- 감독
- 이규웅
- 제작년도
- 1963
- 출연
- 박은경, 박문수, 장인한, 김양, 라정옥, 박병기, 박원배, 김용학, 정홍조, 전예출, 박광진, 용승운, 전계현, 한유정, 안성진, 옥상미, 박성대, 최무룡, 조미령, 김지미, 이예춘, 박암, 김희갑, 구봉서, 김동원, 최삼, 변기종, 조항, 이택균, 조천금, 김칠성, 박상익, 정철, 유춘, 하룡, 박순희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 ' 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1980년대 초반의 서울은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NP)이 1천 달러를 넘어서면서 적어도 보릿고개는 면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세계도시’의 말석에 자리하게 된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1974년 최초의 지하철 개통으로부터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2, 3, 4호선이 거의 동 시기에 착공되었으며, 1979년 80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인구는 단 4년 만에 다시 100만 명이 증가하는 등, 1980년대 초반의 서울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과 팽창을 거듭하는 도시였다. 이 시기에 형성된 서울의 도시구조, 다양한 건축과 교통, 토목 인프라 시설은 2020년대의 서울에도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의 팽창을 지탱한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지방에서 상경한 노동자들이었다. 1981년에 개봉한 김수용 감독(1929-2023)의 < 도시로 간 처녀 >는 바로 이 시기, 198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실존하는 미아운수라는 시내버스 회사를 배경으로, 지방에서 상경한 버스 여차장(안내양)과 버스 기사, 그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당대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이 작품은, 영화진흥공사가 선정한 우수 영화로 대종상 작품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당대에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였다. 한편으로는, 첫 개봉 당시 운수업 종사자의 실상을 왜곡했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부터 상영 중지 요청을 받고 일단 극장에서 내려진 후, 문제 장면의 삭제와 재촬영 등을 통해 재개봉이 이뤄졌다는 특이한 일화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으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를 둘러싸고 다양한 평이 존재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당시로서는 시의적절하고, 제법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다는 총평에는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서울 시내의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답게, <도시로 간 처녀>의 카메라는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버스의 움직임을 쫓아서 1981년 상반기의 서울 구석구석을 담아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안내양들이지만, 그들의 일터이자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1981년의 서울 또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서울의 모습은 총천연색 컬러로 영화 속에 담기기 시작했으나, 1981년이라는 시점은 현재의 서울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 이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여전히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로 간 처녀> 속 서울은 ‘가까우면서도 살짝은 멀게 느껴지는’ 과거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더욱 깊이 들여다볼 가치를 지닌다. 청량리역 구 역사 영화는 주인공인 문희( 유지인 )가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1분경에 등장하는 청량리역의 모습과 지금의 청량리역 주변을 비교해 보면 과연 같은 역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영화가 촬영되던 시기엔 영동선, 중앙선의 열차가 반드시 청량리역에서 시종착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열차가 서울역까지 연장 운행을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청량리역이 가지는 의미를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지방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역까지 직통 운행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가 청량리역 광장에 내렸을 때의 느끼던 두려움과 낯섦은(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과거만큼은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 장충단 입구 교차로의 시내버스 (하) 남대문 부근의 시내버스 2분 40초경에서 3분에 걸쳐서, 카메라는 장충단 입구와 남대문 부근의 버스 행렬을 훑는다. 지금도 이 일대는 버스로 넘쳐나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도 버스의 대중교통 분담률이 높았던 시대답게, 도로를 빼곡히 메우는 버스의 행렬은 가히 장관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스카라극장의 내부. 특유의 둥근 파사드가 눈에 띈다. 19분경, 영옥( 이영옥 )은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바람을 맞고 돌발적으로 극장 구경에 나선다. 이 장면이 촬영된 극장은 실존하던 스카라극장 (1935년 준공, 2005년 철거)으로, 특유의 둥근 전면 파사드가 인상적인 근대건축이었다. 이 무렵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당연히 익숙한 공간일 테지만, 이 시기를 살아보지 않았던(특히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총천연색으로 담긴 스카라극장 내부의 모습은 정말로 소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 시청 방면에서 바라본 서대문 고가차도의 시점부 (하) 지하철 공사 바리케이드 36분경에는 서대문 고가차도를 미끄러지듯 내려온 버스의 주변에 서울시의 공식 휘장과 ‘지하철’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리케이드가 화면에 잡힌다. 이 일대(지금의 아현역-충정로역 사이)가 1980년부터 시작된 지하철 2호선 공사 현장이었음을 드러내는 의도하지 않은 미장센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시내버스는 서울시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일부 구간만이 운행되던 40년 전에는 아침 출퇴근길에 있어서 시내버스의 존재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살포시 등장하는 지하철 공사 바리케이드는, 시내버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 점차 옅어지는 과도기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성수대교 49분에서 50분에 걸쳐서, 문희와 광석( 김만 )이 조각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지금의 강변(뚝섬한강공원 일대)으로, 한강 건너편의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성수대교가 배경으로 잡힌다. 이 무렵 압구정현대아파트는 이미 준공되어 입주가 완료된 때였지만, 한강종합개발사업(1983년 착공)이 이뤄지기 전 무언가 삭막한 한강변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장면에 담긴 푸른 빛깔의 성수대교는 영화 촬영으로부터 불과 13년이 지난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일으키면서 완전히 철거되어 현재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교량으로 거듭났다. (상) 고속터미널 청사와 아치 (하) 고속터미널 아치의 2011년 모습 (필자 촬영 및 제공) 66분부터 69분에 걸쳐서, 문희가 원양어선을 타고자 하는 광석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1981년 10월의 전면 개업을 코앞에 둔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하 고속터미널)의 웅장한 모습이 곳곳에 담겨있다. 특히 69분 언저리에서, 광주고속 소속의 벤츠 고속버스가 거대한 고속터미널의 청사를 배경으로 옛 랜드마크였던 거대한 출입구 아치를 통과하는 모습은, 당시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던 이들에게 서울 입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고속터미널의 아치는 이후 터미널을 본뜬 구조물로 바뀌었고, 2011년 말 2012년 초 사이에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주변의 미개발지 영화의 말미, 86분에서 88분에 걸쳐서 카메라는 다시 압구정현대아파트를 찾아가 그 옆의 빈곤층 거주지를 훑는다. 1980~81년 무렵만 해도 강남 일대는 토지구획정리만 진행되었을 뿐 주택이 들어서지 않은 땅이 지천에 존재했으며, 이들 지역에는 개발 이전부터 살아온 원주민 혹은 구 도심에서 떠밀려 온 저소득층이 곳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가난한 가정의 실상을 담아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을까, 카메라는 시종일관 판잣집을 겨우 면한 가옥과 뒷배경의 산뜻한 압구정현대아파트, 그리고 새로운 아파트 공사장을 원경으로 잡으면서 대비를 시도한다. 이렇듯 <도시로 간 처녀>는 경관과 건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서울 곳곳의 경관을 비춰주면서 빠져들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눈에 익은 곳이 등장할 때, 기뻐하지 않을 관객(특히 서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40년 전 노동자의 일상과 다면적인 서울의 모습을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총천연색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참고문헌 송아름, “ 두번의 검열과 <도시로 간 처녀>(2) : 어떻게 버스안내양들의 고난이 감추어졌는가?(1970년대)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2018. 4. 16.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내가 졌소. 종로 바닥을 떠나겠소.” 요즘 이렇게 대사를 썼다간 현실감각이 없는 시나리오 작가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임권택 감독의 액션활극영화 < 장군의 아들 >(1990)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급습과 뒤통수치기가 난무하는 요즘 누아르 영화 속 건달들과 달리 이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은 예를 갖춘다. 싸움을 걸 때는 “한판 붙읍시다”하며 도전장을 내민다. 대결에서 진 사람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아무리 못 돼 보이는 악당이라도 염치를 알고, 이긴 사람의 뒤를 노리지 않는다. 이긴 사람 또한 기가 꺾인 상대에게 모욕을 주지 않는다. 상대의 부하들에게 “병원에 빨리 모셔가라”고 큰 마음씨를 베풀기까지 한다. 양쪽 패거리를 포함해 구경꾼들이 싸움의 참관인이자 심판자다. 김두한( 박상민 )과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 김만목 사장( 이해룡 )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와 쌍칼( 김승우 ), 김두한과 이또우 무사시, 하야시의 사주를 받은 김동회( 이일재 )와 왕십리파 왕막 등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래서다. < 장군의 아들 >의 김두한은 싸우면서 성장한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돼 각설이 생활을 하다가 우미관패의 우두머리인 김기환의 눈에 띄어 극장 우미관에 들어갔으니 살아남기 위해 주먹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반면 영화 속 그의 친구는 책을 택했다). 그는 우미관패 조직원 둘, (우미관에 들어간 뒤 처음 상대하는)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의 김만목 사장이 김기환 하나로는 하야시패에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 유도 유단자인 마루오카 종로경찰서 경부, (하야시패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돈을 주고 영입한) 김동회 등 약한 상대부터 강한 상대까지 차례로 맞붙는다. 모든 액션신에서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은 정교하다. 관객의 눈을 속이고 타격감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숏을 연달아 배치하는 보통의 액션영화와 달리 <장군의 아들>은 롱테이크숏과 클로즈업숏 그리고 부감숏을 번갈아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다. 두 사내가 서로 노려본 채 빙빙 돌며 기 싸움을 하는 롱숏(어떤 장면에서는 부감숏)은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들이 권총을 꺼내기 직전의 그 긴장감처럼 말이다. 이 롱숏 다음 장면으로 (서로에게 주먹을 주고받는) 클로즈업숏이 이어지니 긴장감과 속도감 모두 살아난다. <장군의 아들>은 컷을 잘게 잘라야, 컷의 사이즈가 타이트해야 영화의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다(특히, 김동회가 왕십리파를 접수하는 액션시퀀스에서 김동회의 날렵함을 강조하기 위해 컷 분할 없이 담아낸 달리숏은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하다). 액션신이 생생하게 설계되는데 세트가 한몫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야 하고, 세트를 만들더라도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지금과 달리 종로 시장거리, 우미관, 혼마찌(충무로) 거리, 술집 등 < 장군의 아들 >의 주요 공간 대부분 세트로 구현돼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다(이 영화가 세트영화의 부활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속 공간과 관련해 몇 번을 봐도 울컥하는 장면이 몇 있다. 신마적( 김형일 )이 패거리들과 함께 술에 취한 채 혼마찌의 술집으로 가는 길에 <봉선화> 노래를 단체로 부르는 영화의 후반부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 화면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때만 해도 그들은 하야시패와 맞붙어 봉변을 당할 줄 몰랐을 것이다. 술집에서 하야시패와 맞붙다가 봉변을 당한 그들 중 한 명이 종로에 있는 김두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김두한이 신마적을 구하기 위해 신마적 일행이 걸어간 길의 반대 방향(그러니까 화면의 오른쪽(종로)에서 왼쪽(혼마찌))으로 달린다. 이 장면은 단 몇 컷만으로도 김두한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숨이 턱턱 막힌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이 경제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순간이다. 이밖에도 김두한이 우미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본 무성영화는 애절하고, 김두한이 화자( 방은희 )와 함께 절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쓸쓸하다. 누구는 < 장군의 아들2 >가 더 좋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이 장면들만으로도 < 장군의 아들 >이 충분히 아름다운 액션활극영화다.
< 갯마을 >(1965)과 < 안개 >(1967), 그리고 <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와 < 사격장의 아이들 >(1967), 김수용 감독은 문예영화와 아동영화에 장기를 가진 1960년대가 전성기인 감독으로 기억된다. 그는 < 공처가 >(1958)를 시작으로 코미디, 멜로드라마, 문예영화, 청춘영화, 아동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109편의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1967년에만 10편의 작품을 연출했는데, 여러 편을 한 해에 만들었다고 하여 전체적으로 작품성이 하향 평준화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완전히 기우일 뿐이다. 그는 그 해에 <안개> <사격장의 아이들> < 산불 > < 어느 여배우의 고백 > 등 자신의 영화 세계의 대표작들이 내놓았다. 그러나 1970년까지도 왕성했던 연출 활동은 점차 뜸해지게 된다. 바야흐로 새로운 영화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장호 , 하길종 , 김호선 3인방은 자유로움과 신선함을 무기로 1970년대 영화계에 청년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1978년이면 균형추는 이미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뉴시네마의 기치를 내건 ‘영상시대’는 < 겨울여자 >(김호선, 1977)를 통해 최고흥행을 기록하며 관객들로부터 확증을 받았다. < 웃음소리 >는 ‘영상언어의 진화’라는 이전과 달라진 시대에, 이미 전성기를 지나친 감독이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발하는 영화다. 김수용 에게 있어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의 대표 감독이라는 칭호 속에서도 늘 따라오던 말이 “문학 번역보다는 고유한 영화언어”를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 안개 > < 화려한 외출 >(1977)< 야행 >(1977) 등은 뉴시네마의 흐름을 반영하는 모던한 영화형식을 도입하는데, 마음속에 잠재한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나서는 환상여행이라는 점에서 일관되어 있다. < 웃음소리 >는 단지 이미지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행하는 작품이다. 현실의 연상 작용을 통한 교차편집으로 플래시백으로 진입하는 방식, 현실과 과거가 난데없이 포개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 대사를 절제하고 인물 클로즈업의 주된 사용을 통해 심리를 전달하기, 일상적 사물 포착을 통한 상징적 의미 작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전에 비해 한발 앞서 나간다. 이러한 영화적 표현 방식은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프랑스의 루이 말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는 김수용 감독이 유럽풍의 뉴웨이브 언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영화 언어적 세계를 끝까지 한층 격상시키고자 노력했다는 징표가 된다. < 웃음소리 >는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진부하다. 한 여성( 남정임 )이 수면제를 사서 모은다. 그녀는 혼자 기차여행을 떠나고 산속의 호텔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녀의 회상으로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인기 좋은 호스티스인데, 하숙집에서 대학생( 이영하 )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의 학업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한 후 그 남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여자는 인맥을 발휘하여 그의 해외발령을 도와준다. 그러나 남자는 사랑의 맹세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좌절한 그녀는 자살 여행을 떠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산에서 또 다른 한 남자( 김만 )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산속에서 끌어안은 채 죽은 젊은 커플을 목격한 후, 여자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 호스티스 생활로 복귀한다. 또 다른 남자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녀는 그저 웃음소리로 응답할 뿐이다. 이야기는 ‘너무도 70년대스러운’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호스티스일망정 순정을 간직한 여자가 사랑을 위해 희생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배신이고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것. 하지만 뻔한 틀에도 불구하고 < 웃음소리 >는 이야기를 담는 형식 실험이 매우 독창적이어서 뻔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학처럼 고고한 여주인공 학자의 대사가 엔딩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성적으로 대상화되어버린 윤락가 여성의 목소리를 거세함으로써 영화는 소통의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거세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남성들의 서사에 균열을 내는 묘한 저항적인 위치에 선다. 그녀는 끊임없이 손톱을 다듬는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관되게 하는 행위가 바로 손톱 다듬기이다. 진지한 순간에 그녀가 손톱 다듬기를 내놓으면 분위기가 갑자기 웃기게 되어 버린다. 이러한 돌발적인 아이러니한 습관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루한 일상에 대한 조롱의 반항적 언어로 보인다. 호텔 지배인의 귀를 만지는 습관, 미용사의 껌을 소리 내어 씹는 습관 역시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이 주는 짜증스러움을 나타낸다. 주인공 학자 역할은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일원인 남정임 이 맡았다. 그녀는 도시적 세련된 감각을 가진 미모로 부각되었지만, 문희 나 윤정희 에 비해 비중 있는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는 영상시대 감독들의 등장과 함께 장미희 , 정윤희 , 유지인 으로 구성된 제2기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웃음소리 >는 새로운 시대에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60년대 대표 감독과 1기 트로이카 배우의 합작품이다. 그들이 협업하여 완성한 실험적 시도에는 젊음의 활력이 아닌 권태로움이 묻어나는데, 이 권태로움에는 기묘한 매혹이 잠재되어 있다. 남정임 은 결혼과 이혼 후 컴백했지만 재혼과 동시에 연애과정이 지면에 오르내리며 스캔틀 메이커라는 이유로 대중의 비난에 직면하였다. 결국 그녀는 < 웃음소리 >를 끝으로 은퇴한다. 그러나 그녀의 은퇴작은 바로 대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