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
- 감독
- 김민철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김병수, 김수민, 원완규, 곽경임, 박재현
밤이다. 낮이 지나면 오는 밤. 자정이 지나 전화기는 멈췄고 SNS도 조용하다. 행사가 끝난 밤이면 뒤풀이를 하고 있을 시간인데 행사가 없던 어제가 감사하다. 컴퓨터에게 미안하지만 또 한 번 다시 켠다. 언제 꺼질지 모를 불씨들을 언제 까먹을지 모를 생각들을 찾고 쓰고 저장하고 다시 확인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다가, 팔자가 거 참 치사하다고 생각하다가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2010년 KT&G 상상마당에 입사하면서 시작한 독립영화와의 인연이 어느덧 만 5년이 넘었다. < 환상속의 그대 >를 시작으로 개봉을 앞둔 < 최악의 하루 >까지 15편이 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을 도왔다. 그 동안 꽤 많은 개봉영화에,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고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글을 격주로 맥스무비 온라인 뉴스에 송고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네이버 인디극장 선정위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어떻게 어떻게 해오고는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하루하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놓치는 것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려고 애쓴다. 적어두었지만 눈앞에 놓고도 보이지 않는 글자들이 있고 생각했었지만 당장 또 떠오르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 헤맨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 쉽게는 돈의 크기라고 말하겠다.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개봉 과정에서 광고 비용을 집행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개봉에 있어서의 구분점이 아닐까 싶다. 극장 광고를 비롯해 온라인 광고, 버스 광고, 잡지 광고까지 ‘독립영화로 개봉’하는 작품들의 P&A(Print & Advertisement) 규모에서 광고 비용은 들어올 틈이 없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마케팅, 포스터 및 전단 디자인, 예고편 제작 등 3가지 영역의 비용을 집행하고 인쇄 비용을 챙기는 데만 해도 허리가 휜다. 거기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VPF(디지털 영사기 사용료 Virtual Print Fee)와 배송비까지 더하면 늘어날 수 없는 예산안 문서가 백지수표였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작품들 중 P&A 규모가 가장 작았던 < 파스카 >와 < 달에 부는 바람 > 같은 경우에는 함께 일했던 파트너들의 도움 덕에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규모 안에서 작품을 개봉시킬 수 있었다. 물론 1천만 원이라는 비용으로 적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기간을 준비하는 작품들이니 사실 모두가 이 작품을 돈으로 보고 일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생일’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한마음이었을 것이다. ‘생일’을 만들어준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 파스카 >의 경우 만들어진 지 햇수로 3년 만에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 2015년 7월 이미 여러 차례 봤던 <파스카>의 극장 개봉일에 티켓을 사서 영화를 관람했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어두운 극장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파스카>의 개봉을 도왔던 안선경 감독의 제자와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브먼트의 작품들은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다시 말해 흥행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작품들로 개봉을 한다는 이야기를 외부에 할 때마다 ‘힘들겠다’란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왔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 파스카 > 역시 화면에 오롯이 드러나는 태아의 사체 장면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장면에서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도 있었다. 개봉을 준비하면서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15세 관람가 등급이 나왔고 걱정과는 다르게 관객들은 그 장면의 당위성에 대해서 공감했다. 아이가 태어나야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된다. 짐작했던 것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고 기대는 늘 배반당하고야 만다. 물론 기대하지 않았던 응원과 축복으로 아이는 세상에서 다시 자라난다. 영화라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 파스카 >는 개봉이라는 생일을 통해 <파스카>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손에서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인디스페이스에서 독립영화 돌잔치를 통해 1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난 <파스카>의 안선경 감독님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돌잔치 라니요!”라면서 들떠 있던 안선경 감독은 개봉 후 1년 동안 새 영화 < 나의 연기 워크숍 >을 촬영했고 텀블벅을 통해 후반 작업비를 모았고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지원 신청서를 작성했다. < 파스카 > 개봉을 준비할 때보다 안선경 감독은 훨씬 더 밝아졌다. 여전히 어려운 시장이지만 함깨 개봉을 준비하면서 감독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의지가 단단해졌다. <파스카>는 천 명이 조금 넘는 관객들을 극장에서 만났지만 안선경 감독은 그 숫자보다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겠다는 마음을 얻으신 것 같아 기쁘다. 다시 영화를 만들고 관객과 만나야겠다는 마음은 아마도 <파스카>의 생일 이후였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마케팅이 상업영화와 구분되는 지점이 돈의 크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숫자에서도 차이가 생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쪼개진 스태프들의 역할이 요원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할 역할들이 많아진다. < 파스카 >와 현재 준비 중인 < 다른 길이 있다 >의 경우 안선경, 조창호 감독이 직접 예고편 제작에 나서서 비용을 줄였고 < 철원기행 >의 경우 김대환 감독이 직접 만든 포스터를 첫 번째 포스터로 공개했다. < 달에 부는 바람 > 역시 이승준 감독과 김민철 프로듀서는 물론이고 제작사 독에어의 오희정 님과 예고편 작업을 했던 유태인 실장과 포스터 작업을 했던 박현규 실장까지 영화 개봉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을 페이퍼에 기록했다. 무브먼트라는 독립영화컴퍼니를 만든 이후 영화의 보도자료와 전단을 통합합 페이퍼 형식의 홍보물을 만들어오고 있다. 접지형의 8페이지 인쇄물인 이 형식은 사실, 보도자료 디자인과 인쇄 비용에 전단 디자인과 인쇄 비용을 더한 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생각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버리기 어려운 전단을 만들어 폐지가 돼버리는 극장 전단들의 안타까운 손실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 거짓말 >을 개봉했을 때는 주연배우 김꽃비 와의 지면 인터뷰가 실렸고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때는 정한석 평론가와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 실렸다. < 홀리워킹데이 >와 < 최악의 하루 >에는 이희원 , 김종관 감독의 사진들과 제작기가 실렸다. < 프랑스 영화처럼 >에서는 신인배우 김다솜 과 정준원 의 첫 영화 도전기가 그들의 문장으로 담겼다. 독립영화라는 시장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 힘든 곳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냐는 걱정들도 많이 듣는다. 시장이 어려워진다는 건 말뿐만은 아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어려움이다. 개봉관 상영 회차와 개봉일 관객 수를 확인하고 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고 허탈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댄 시간도 꽤 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왜 이 일을 계속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태어난 영화의 생일들을 챙겨주고 싶어서라고 말하겠다. 그 영화가, 그 감독이, 그 배우와 함께 만든 첫 번째 생일 이후 우리는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또 같이 자라난다. 그리고 제작 현장에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개봉 현장에 함께 있었던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믿음이라는 걸 말로 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유명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상업영화 시장에 진출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서 함께 가깝고 뜨겁게 영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독립영화들의 생일 파티가 작고 반짝이는 불꽃처럼 여기저기서 치러지길 기대한다.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뛰어갈 돈과 마음을 매일 밤 준비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 사이비 >가 2013년 11월 21일 개봉하며 전국에 < 돼지의 왕 > 이후 다시 한 번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사회고발’, ‘리얼리티 잔혹 스릴러’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쎈’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그의 단편 < 지옥 > 시리즈에서부터 예고되었다. 주제에 대한 끈질긴 일관성으로 감독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기존 한국애니메이션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보다는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 색다른 느낌이랄까? 이러한 느낌은 < 돼지의 왕 > 때 아쉬웠던 작품의 미술적, 애니메이션적 완성도가 많이 보강된 점과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한 연출적 완성도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동작이 뻣뻣하고 표정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지 못하는 기법상의 문제가 눈에 거슬렸지만 저예산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돼지의 왕 >이 20개 관 내외였던 것이 비하면 < 사이비 >는 New의 투자배급으로 개봉관이 80개 관으로 늘어났으며, 그에 힘입어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관객 2만을 돌파했다. 3억 5천 정도의 제작비와 2억 정도의 마케팅비(영진위 개봉작 지원 포함)를 모두 다 합친다 해도 5억 내외로, 평균 제작비만 30억 내외의 기존 상업 작품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으로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낙관적인 평가는 아직 금물이다. 연 감독의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마니아층마저 비판적인 목소리를 서슴지 않는 적극적인 소수가 지지하는 영화이기에 초기 관객유입은 오래가지 못했고 상식적인 예상 성적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르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답답한 현실의 벽은 조금씩 무너질 수 있지 않을까. < 사이비 >는 이미 국내 개봉 전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지난해 10월 20일 폐막한 제46회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스페인에서 열린 제51회 히혼국제영화제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11편의 경쟁작과 겨루어 < 치팅 >(미국, 빌 플림튼)과 공동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제86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예비후보로 선정되는가 하면 최근엔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제17회 홀랜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해외의 반응과 평가가 오히려 더 뜨거운 것 같다. < 돼지의 왕 >이 덜 정리된 듯한 스토리와 극 구성이라면 < 사이비 >는 보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극 구성임에도 힘이 넘쳐났다.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주제의식과 주인공 캐릭터인 김민철( 양익준 )의 쎈 캐릭터가 돋보였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뼈가 사무치는 사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적 현실을 질리게 만든다. 상대역 최경석 장로( 권해효 )의 평범한 마스크 속의 전형적 죄질 나뿐 사기꾼 또한 영화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 캐릭터다. 여기에 한배를 타게 된 젊고 매력적인 성철우 목사( 오정세 )의 막판 파국은 신의 전도자 이전에 인간의 나약한 본성에 들어선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김민철의 딸 김연선( 박희본 )은 포악무도한 가부장의 전형인 아버지의 피를 뼛속까지 거부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캐릭터다. 그 밖에도 무능하기 그지없는 공권력과 무지하고 허황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은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인 인물들로 설정된 것 같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굴곡진 현대사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종교적 소재를 다루지만 종교가 아닌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파헤침을 통해 결국 도달하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고 참인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일상의 사투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를 김민철의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김민철의 토굴 속의 이율배반적인 행위은 인간적 한계와 본질에 대한 관객에게 던지는 감독의 선문답과 같은 것이리라. 이러한 연 감독의 저예산 속도전을 통한 성공전략은 일찍이 세계 어느 스튜디오에서도 시도된바 없는 독창적인 전략으로, 시장기반이 좁고 허약한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적은 예산은 스튜디오 규모의 최소화, 빠른 제작기간, 제작기술 효율성을 극대화, 지원사업의 적극 활용, 국제적 영화 무대의 공략이라는 전략 하에 산학협력을 통한 신진인력을 활용한 디지털제작시스템의 적극 활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이후 얼마 안 돼서 벌써 세 번째 장편 프리프로덕션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전해 듣고 연상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속도전에 혀를 내둘렀다. 차기 작품은 < 서울역 >이라는 장편으로 공포의 비판적 은유로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지는 야심 찬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