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다이아몬드
- 감독
- 김병학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토끼가 부러워. 고민이 없거든. 자기라는 것이 없고 그저 토끼라는 것밖에 몰라.” - < 바보사냥 >(김기영, 1984) 중 토끼를 부러워하는 세 남녀가 토끼섬을 찾아 떠나고 있다. 이게 웬 깜찍한 발상인가 싶은데 실상은 꽤 심오하다. 세 주인공 중 두 남자 강식( 배규빈 )과 홍익( 김병학 )은 정신병동에서 이제 막 탈출한 사람들이고, 한 여자 석호( 엄심정 ) 역시 만만찮게 특이하여 통상적 대화가 잘 안 통하는 인간이다. 여하튼 세 사람이 왜 토끼섬을 찾느냐 하면 그곳이 이들의 이상적인 대안 세계인 탓이다. 강식은 공해 공포증으로 인해 인간의 손이 닿은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완연한 원시의 자연 사회를 원한다. 그 방법이라 하니 무인도에 벌과 토끼만 풀어 놓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생태계를 자생시킨단 것이다. 사회에 살면서 자살 강박에 시달리던 홍익은 강식을 따라 토끼섬을 쫓고, 탄광 마을에서 아버지를 잃은 석호도 둘을 따라나선다. 이 괴기한 여정과 인물들의 특이함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영화평론가란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영화기자로서 영화평론가란 분들을 자주 만난다.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 중에 영화평론가들과 가장 자주 이야기하고 만나는 직무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서 ‘비평, 안녕하십니까’에 연재를 청탁받았나 싶기도 하다. 청탁을 덥석 물어버리고 “영화비평가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비평, 안녕하십니까’의 기획 의도를 들은 뒤엔 꽤 놀라버렸다. 지난해 12월 무렵인가에 영화평론가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본 적 있는 탓이다. 평소 자주 만나는 영화평론가께 이 다큐멘터리의 시놉시스를 얘기하자마자 “그런 걸 왜 만들어요···”라며 아주 작은 반발을 듣긴 했으나 지금도 그 꿈엔 변함이 없다. 그들의 일상이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하다거나 그들에게 기막힌 사연이 있어 보여서는 아니다. 자고로 영화는 재밌어야 하는데 그들의 일상을 찍는다면 분명히 재밌는 무언가가 나올 것 같단 확신이 있었을 뿐이다. 영화평론가들이라 하여 모두가 항시 재밌는 사람이라는 등 완전한 공통점을 갖고 있진 않다. 모든 편의점 점주님이 똑같은 사람은 아니듯 모든 영화평론가를 하나로 묶기는 다소 어렵다. 굳이 공통점을 도출해 보자면 대개 자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정도일까. 그들이 <바보사냥>의 강식처럼 극심한 공해 공포증에 시달려서는 아닐 것이고, ‘비평, 안녕하십니까’에서 박예지 , 이광호 평론가가 먼저 밝혔듯 다소간의 현실적인 생활상에 결부한 문제일 순 있겠다. 또 굳이 찾아보자면 수상할 정도로 카톡 답장이 느리고 전화를 안 받는단 정도일까. 특히 원고 마감에 관한 연락이라면 더욱더···. 또 영화평론가들은 각자의 의견이나 취향에 꽤 강고한 편이다. 겉으론 조용조용, 다소 유순해 보이며 실제로 아주 친절하신 평론가조차도 맘속의 칼을 갈아 글 쓸 때가 많다. 놀랄 때가 잦다. 이 강고함에서 평론가 개인 간의 지극한 차이가 나타나고, 이것이 바로 진정 재밌는 지점이다. 이를테면 치킨집에서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고 칠 때 평론가 A는 절대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양배추샐러드만 우걱우걱 먹고 평론가 B는 무조건 바삭한 게 좋다며 치킨의 껍질만 뜯어 먹는다. 당황한 영화기자 한 명은 결국 닭의 맨살만 먹게 된다. 눈치를 보던 B가 “기자님 이거 맛있으니까 드셔보세요”라며 치킨 껍질을 주섬주섬 건네준다. 그래서 잘 받아먹고 맛있다고 대답하면 막상 상대가 실망해 버리는, 그런 신묘한 일을 종종 겪어본 적이 있다. “그런 걸 왜 만들어요···”라니.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퍽 과장한 우화이지만 이 우의의 골자야말로 영화평론가란 업의 중요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왼쪽부터 강식(배규빈), 석호(엄심정), 홍익(김병학) 1970~80년대를 거쳐온 유명 시네필 한 분(평론가 C)의 주위로 젊은 영화평론가 몇몇이 모인 자리에 있던 적이 있다. C 선생님은 영화평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강고한 ‘베팅’임을 역설하셨다. 특정 영화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확고히 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자신이 틀렸다면 판돈을 모두 잃을 결사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 한번 닭고기를 안 먹기로 했다면 아무리 입에 집어넣어도 안 먹어야 한다. 살면서 처음 듣는 의견이 아닌 데다가, 독립 영화잡지를 출판했을 때 영화 저널리즘의 본질은 비판과 발굴 두 개뿐이라고 말하고 다닌 전적도 있기에 아주 신선한 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의 말씀으로 들었을 땐 감상이 남달랐다. 원래 알고도 안 하는 것이 가장 나쁜 법이다. 혼자 반성하던 때와 직접 혼났을 때의 차이가 극명했고, 이 ‘베팅론’의 현재적 가능성을 속으로 남몰래 타진해 보기도 했다. 이 가능성의 타진이 혼자만의 고민은 아닌 듯싶다. 송경원 씨네21 편집장은 팟캐스트 ‘ 조용한 생활 ’을 통해 말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의 완성도에 주목하는 시네마의 시대는 지났고,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의 해석 과정이 가장 중요”해졌단 것이다. 강덕구 평론가를 필두로 모인 팟캐스트 ‘ 회랑 ’에서도 엇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제는 어떤 영화나 예술을 대하는 원본성의 경험이 자기 자신에게만 남아있다. 내가 느낀 경험만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배경에서 모든 비평가의 글은 점차 에세이로 변할 것”이란 맥락이다. 요컨대 이광호 평론가의 말처럼 “취향은 이제 가능성의 벡터를 상실”했다. 타인에게 자신의 영화적 취향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이 취향을 글과 이론으로 견고하게 정제해 특정 영화를 정전으로 수출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 시대다. 그러나 위와 같은 한계를 거꾸로 매달아 바라볼 수도 있겠다. 영화평론가들의 자아란 C 선생님의 말씀처럼 여전히, 심지어 더욱더 비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남을 설득하기가 아주 무용한 상황일 때, 본인의 생각과 세상의 여론이 서로를 너그러이 흡수할 수 없을 때야말로, 모호한 타협을 요구하기보단 외려 세상을 매질하는 비평적 태도를 견지해야 할 수도 있겠단 뜻이다. 누군가를 크게 해치는 일만 아니라면야 지나치게 그리고 그럴듯하게 자기 말만 하는 강식과 홍익과 석호들의 비평적 에세이가 읽고 싶달까. 천국과 지옥이 한꺼번에 있는 곳 이쯤에서 <바보사냥>의 두 남자를 재론할 수 있을 법한데, 두 남자의 기행이 전술한 비평적 태도와 매우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강식과 홍익은 토끼섬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벌이에 매진한다. 한 번은 포장마차를 열었는데 식자재 거래처가 병아리를 참새라고 속이며 납품한 일을 알게 된다. 거래처 사장이 “요즘 시대에 어떻게 참새를 잡냐?”라며 다들 이렇게 장사한다고 넌지시 설득하지만, 삐약거리는 병아리의 목을 차마 비틀 수 없던 둘은 “병아리를 죽일 바엔 병원에 다시 들어가자!”라며 포장마차를 부수고 만다. 이 상황이 머릿속에서 변주돼 반가운 모습으로 재생된다. 요즘은 이런 게 영화라며 속삭이는 남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을 때, 버럭 화내며 극장에나 다시 들어가자고 외치는 불통 영화평론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두 남자의 돈벌이는 더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소에게 억지로 물을 가득 먹인 뒤 한껏 매질하여 소의 살이 불게 만들어야 한다. 도축할 때 고깃값을 더 받기 위해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둘의 질문에 작업 현장의 선배가 “이게 기술이고 예술이야!”라며 일갈하고, 소의 눈망울을 보며 부모님을 떠올린 홍익은 ‘어머니 죄송합니다. 당장 저녁 먹을 돈이 없어 두들깁니다.’라며 속으로 한탄한다. 어디에선가 본 상황 같다. 영화란 늘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몸체를 불려야 하는 매체이며 필연적으로 양쪽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다. 그 간극 속의 영화평론가들은 저녁 먹을 돈을 위해서 타자를 흠씬 두들겨 성미에 맞지 않는 글을 써야 할 상황에 들어서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해하듯이 뇌까리지 않을까. ‘시네마여 죄송합니다. 전 오늘 몇만 원의 고료를 위해 싫어하는 영화를 무난하다고 썼습니다···’ 포장마차를 부수고 매질해야 하는 송아지를 바라보다가, 탄광에 다다른 강식과 홍익 강식과 홍익은 병아리의 경우와 비슷하게 결국 소의 매질을 그만둔다. 대신 소를 때리라고 시킨 사람들을 흠씬 두들겨 팬 뒤에 탄광 마을에 가서 광부 일을 시작한다. 그들이 들어간 어두운 무저갱은 흡사 극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탄광 마을의 한 아저씨가 이곳을 “천국과 지옥이 한꺼번에 있는 신비”의 공간이라 말하는데 이 선언이 신묘할 정도로 극장의 비유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비단 물리적 극장이 아닐지라도 영화광 각자가 뿌리내린 영화의 공간, 그곳이 독립예술영화관이든 골방의 컴퓨터 앞이든 멀티플렉스든 시네마테크든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이든 간에 그 어둠의 장소는 영화평론가들에겐 천국이자 지옥이 되기 마련이다. 이곳은 자신의 영화적 취향을 만끽하며 그것을 글로 재생산할 수 있는 유토피아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끊임없이 세상에 설명하며 끊임없이 거부당해야 하는 디스토피아이기도 한 것이다. “토끼가 부러워. 고민이 없거든. 자기라는 것이 없고 그저 토끼라는 것밖에 몰라”라는 석호의 귀여운 싫증엔 다음과 같은 홍익의 맞장구가 이어졌다. “그에 반해 사람은 자기의식이 있고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아니까 한없이 불행하군.” 그렇다. 영화를 향한 자기의식이 너무도 뚜렷하여 되려 불행을 마주하는 족속, 다시 비유하자면 억지로라도 닭의 살이 아니라 껍질만을 원해야 하는 사람들, 하여 자유로운 토끼를 은근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이 속성이 바로 영화평론가들의 주요 조건이자 가장 뚜렷한 공통점일 듯하다. 이 모순 속의 긴장에서 번지는 찌릿함을 다들 끊기 어려워한단 것 역시 비슷할 테다. <바보사냥>의 결말, 잦은 고초에도 홍익은 결국 토끼섬을 찾아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이 항해는 과연 타의 없이 자아와 자생만이 존재하는 곳을 향해 간 구원의 발로일까, 혹은 그저 타의에 떠밀려 도망치는 자의 흔들흔들 피난길일까. 둘 중 무엇이 됐든 우리도 결국은 섬으로 가야 하는 것일까. 토끼가 부럽다. 이우빈(영화기자) l 친구가 없어서 영화 보러 다닌 1997년생. 《 씨네21 》 기자. 2023년 《 쿨투라 》 영화평론 신인상. 독립 영화잡지 《 섭씨 233 》 편집장. 비평 웹진 《 코아르 》 필진 등.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쟁투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개성이 뚜렷한 영화작가,”1) “화면이 수술대와 다름없는, 외과의사가 집도하는 것과 같은 연출,”2) “한국영화의 반역정신,”3)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4) 이는 모두 김기영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논평들이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김기영 감독은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1970년대 영화 불황기에 들어서며 그는 < 파계 > < 이어도 > < 흙 > 등 소설 원작의 문예영화를 몇 편 만든다. 그는 문학을 원작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완전히 각색했다. 따라서 그의 문예영화에서 원작에의 충실성 문제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의 영화는 문학을 저본으로 삼았을 뿐 당시 문예영화의 관습으로 포획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관습을 깨뜨리는 새로운 시도로서 근본적인 예술성 개념에 부합하며 예술영화로서의 문예영화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파격과 확장이 불가(佛家)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계>는 < 마음의 고향 >( 윤용규 , 1949) 이후 불교 문예영화의 맥을 잇는 영화이자 본격적인 불교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 만다라 >( 임권택 , 1981) 앞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5) < 파계 >는 1973년 「사상계」에 연재된 고은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선승 법연당과 그의 제자 침해의 관계, 그리고 침해와 묘혼의 사랑을 플롯의 중심에 둔다. 여기에 서산암의 비구와 소원암의 비구니들을 통해 선승(禪僧)과 율사(律師)의 차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제자들의 수련방식 등 불가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이 직조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원작의 내용을 철저하게 김기영 식 주제와 화법으로 끌어들여, 법통을 둘러싼 승(僧)들 간의 정치적 쟁투와 인간의 원초적 본능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선승을 가장하고 선사에 들어간 대학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는 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 영화의 중심 서사는 열반을 눈앞에 둔 고승 조실스님( 최불암 )이 법통을 물려줄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조실스님의 시자로 자란 침해 수좌( 김병학 )이고, 그의 경쟁자로는 “절이란 권위와 인격과 위대한 것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경원 수좌( 조재성 )가 있다. 이 두 인물의 대립에는 어릴 때 절에 들어와 동승으로 자란 ‘올깨끼’와 나중에 철이 나서 스스로 불도를 선택한 ‘늦깨끼’, 그리고 선승과 법승 간의 갈등이 들어있다. 조실스님은 인자하고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냉혹하고 교활하게 후보자들을 시험하고 경쟁시킨다. 그는 화두를 던지는 것은 물론 돌연한 선문답과 죽비 세례로 후보자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또한 식욕, 색욕의 시험에 들게 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부추긴다. 침해가 묘혼( 임예진 )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조실스님이 기획한 시험 중의 하나다. “내 법통이야. 그냥은 못 줘.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나중에는 시험으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준다. 싸워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줘.”라는 그의 외침은 김기영 표 고승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조실스님이 주도하는 시험들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며 현실과 접목된다. 스님( 신구 )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쟁고아들을 구해 목숨을 걸고 피난시켰고, 절에 온 고아들은 배가 고파 가마솥에서 밥을 훔쳐 먹곤 했다. 이와 같이 속세의 극단적 참화인 전쟁과 그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인간의 밑바닥이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불가의 정진 과정과 연계된다. 이 과정에서 진정으로 배고파 보지 않거나 치열하게 색욕의 번뇌에 부딪혀 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겠느냐는 주제가 표출된다. 그러면서 ‘법통’은 생존의 문제가 되고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 또한 정치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맨 나중에 법통을 이을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는 것은 ‘도심행자’(정한원)라는 의외의 인물이다. 이 부분은 원작과 완전히 다른 것이기도 하다. 도심은 침해의 친구로 침해와 함께 전쟁고아가 되어 절에 들어온 올깨끼이다. 그는 유난히 식욕이 강해서 진작 공부를 포기하고 침해가 법통을 잇게 하려고 뒷바라지를 한다. “먹지 않으면 승이 된다? 관두겠어? 먹지 않는 건 질색이야.”라는 대사는 본능에 충실한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빈 그릇을 깨라”는 화두를 “내 배고픈 것을 지독히 알아라! 그러면 남의 배고픈 것도 몸 저리게 알리라!”라는 깨달음으로 풀어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처절한 배고픔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겪을 때 진심으로 공감하고 돌아볼 줄 아는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절의 양식을 훔쳐다가 병든 중생을 구한 사건은 그의 언행일치를 증명한다. 한편 법통에 매달렸던 침해는 조실스님의 공격적 시험에 맞대응하며 시험을 넘었음에도 법통을 받지 못한다. 조실스님은 침해가 사랑하는 묘혼을 데려다 침해 앞에서 옷을 벗긴다. 원작에서는 그러고 나서 큰스님은 곧바로 죽음에 이른다.6) 영화에서는 묘혼이 옷을 벗자 그녀가 황금 부처로 보이는 숏이 인서트 된다. 그리고 침해는 “여자를 이상하게, 여자를 타락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건 낡은 편견이다. 우리 젊은 사람은 여자를 그냥 건강하게 살려는 한 인간 그대로를 느낀다. 남자와 여잔 같은 거다. 옷을 벗으면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때 법통을 따기 위해서는 큰스님을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묘혼의 만류를 물리치고 침해는 묘혼과 나란히 알몸이 된다. 이 과감한 행동 앞에서 조실스님은 “넌 젊다. 그리고 천재다.”라고 침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법통은 네 것이 아니야.”라고 결론짓고 쓰러진다. 죽어가는 조실스님을 붙들고 침해와 묘혼이 법통을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 장면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욕망의 표출로 인해 이 영화는 새로운 문예영화이자 파격적인 불교 영화로서의 힘을 얻는다. 동승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 마음의 고향 > 이후에 나온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예술영화로 대접받은 예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파계 > 이전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이광수 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내세운 < 꿈 >( 신상옥 , 1955/1967)이 있다. 그러나 <꿈>은 개봉 당시에 문예영화로 수용되지 않았다. 우선 원작이 이광수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토대가 된 조신몽 설화가 워낙 잘 알려진 옛이야기였기 때문에 ‘문예’로 인식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불교 관련 영화의 경우 기독교를 다룬 영화보다 예술영화로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종교의 금기가 일반의 도덕률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개화’와 ‘서구 문명’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레 ‘근대문예’와도 겹쳐진다. 게다가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반공주의와 결합해왔기 때문에 1960~70년대 국가가 장려했던 ‘반공’과 ‘문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제재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데다 승려에게 요구되는 계율이 엄격하고 금기가 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는―갈등을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의 본질상― 금기의 위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는 시각적 매혹을 생명으로 삼는 매체이다. 상상에서만 가능했던 금기의 파괴가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시각적 매혹일 것이다. 그러니 불가를 배경으로 영화는 자연히 ‘파계’를 향하게 된다. < 마음의 고향 >부터 < 꿈 >과 < 파계 >는 물론, < 만다라 > < 우담바라 >( 김양득 , 1989)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임권택 , 1989)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정지영 , 1991)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율의 위반을 보여주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그러한 특질 때문에 불가 배경 영화에 대해서는 1970년대까지 외설적인 영화라는 기대 내지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었다. <파계>의 경우에도 지방 흥행업자들이 제목만 보고 “중들이 나오는 외설적인 영화”라 생각하여 제작비를 투자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다.7) 또한 그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행정적 검열 이외에도 사회적 검열이 작동하게 된다. 실제로 1967년 <꿈>이 개봉될 때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나서서 상영을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검열은 비구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한층 더하여 외설 논란이 불거지고 불교계의 반발도 거세지곤 했다. 이미 <만다라>가 나온 지 3년 후인 1984년에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고 김지미 가 주연을 맡았던 < 비구니 >가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작이 포기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불교 영화를 둘러싼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 파계 >에 대한 불교계의 인정 및 정부의 보상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선 ‘마성(魔性)’의 작가주의로 성 문제를 다루어 흥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작품성을 성취해온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김기영 감독이 동아수출공사로부터 국내 최고의 개런티를 받고 <파계>를 연출했다는 것8)은 그것을 입증한다. 한편 불교계에서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마뜩해하지 않았으나 ‘파계’라는 제목과 달리 ‘성불(成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는 당시 한국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 1974년 4월에 개봉한 < 별들의 고향 >이 크게 성공하자 “참신한 방화 만들면 관객들은 몰려든다”9)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편 1960년대 말 이후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아젠다 아래 정책적으로 전근대 전통문화가 소환되었다. 이때 무속이나 민속 등 근대 이후 비판받고 폄훼되어왔던 전근대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 와중에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파계>가 외설 논란을 잠재우며 문공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것은 이와 같이 복합적인 상황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성장담 내지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작을 김기영 식의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본능과 정치’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비화시킨 영화 자체에 있었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불가와 승려의 생활에 대한 사실적 재현과 과감한 장면 구성, 그리고 전두엽을 자극하는 기발한 대사와 지금 봐도 충격적인 서사 전개는 이 영화의 파격을 구성하며 ‘외설’이니 ‘종교 모독’이니 하던 당시의 법적·사회적 논란을 넘어서는 에너지가 된다. 이로써 < 파계 >는 금기의 위반을 과감하게 재현하는 것은 물론 현실 문제와 종교적 질문을 접목시키면서도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최초의 불교 영화가 된다. 이는 < 만다라 >에 앞서는 것으로, 1970년대에 이루어진 전위적인 영화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1)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도서출판 소도, 2004, 402~403쪽. 2)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100년」, 현암사, 2000, 290~291쪽. 3) 김수남, 「한국영화감독론 2」, 지식산업사, 2003, 182쪽. 4) 이효인 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 열린책들, 1994, 360쪽 5) 나중에 <만다라>의 촬영을 담당하는 정일성 감독이 이 영화의 촬영을 맡았으며, 그는 이 영화로 영평상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 소설에서는 큰스님이 죽기 전에 묘혼을 벗겨 보신 것을 두고 노승의 평생소원을 푼 것( “……하긴, 여섯 살부터 입산해서 주욱 중노릇만 했으니, 평생 소원이셨던가 보지요.”)이라는 추측과 아랫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 놈아! 너는 몰라! 침해란 놈 가르치기 위해서야! 일체 중생 가르친 게야!”)이라는 주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결에 묘혼이 달아났는지 침해는 몰랐다. 침해는 여자보다 노승의 열반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 탄운 곡간의 가느다란 연기 끝이 더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침해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다(고은 전집 제31권 「밤주막」(1977) 중 「파계」, 527~528쪽 참조). 7) <김기영 전작전: <파계> 이화시 GV VOD>, 2008.06.23. http://flash.koreafilm.or.kr/kofa2/play_trailer.html?file=trailer/MK004966_P03.mp4 8) 「<破戒>, 촬영 끝내 곧 開封」, 『매일경제』, 1974.6.28., 8면. 9) 「참신한 邦? 만들면 觀客들은 몰려든다」, 『동아일보』, 1974.6.7., 8면.
아직 노동자뉴스제작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태준식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첫 다큐멘터리 < 인간의 시간 >은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1998년, 민간기업 퇴출발표 명단에 있었던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의 450여 일의 투쟁을 기록한 작품이다. 태준식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꼭 보아야 할 작품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본 작품은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 인터뷰와 투쟁현장의 적절한 분배, 적재적소에 배치된 설명적 내레이션의 활용으로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의 시간>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준 것은 감독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듯, “나이 든 노동자”들이 보여준 노동자로서의 자기인식과 정당성, 세상에 대한 혜안과 이를 믿고 따른 태준식 감독의 연출에서 기인한다. 퇴출이 발표된 후,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이 내건 슬로건은 부당 퇴출 철폐가 아닌 ‘현대건설로의 고용승계’였다. 이전까지 ‘현대건설 중기사업소’였던 것이 89년, 현대중기산업으로 분리되어 나온 후 노동자들 측에서 지속적으로 현대건설로의 합병을 희망해오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IMF 특단의 조치로 55개의 민간기업 퇴출이 발표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슬로건은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대처였다. 이러한 요구를 내걸 수 있었던 까닭은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이 가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어느 집회에서 한 현대중기산업 노동자가 부르는 “한국에서 소련으로, 사우디에서 이라크로, 전 세계를 누비면서, 현대그룹 만들었네, 현대그룹 일등공신”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이 국내의 토목건설을 담당하며 근대화를 이끈 것은 물론 중동의 건설신화를 만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당당하게 여기고 있음을, 그것이 이들의 투쟁에 가장 큰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영화 전체를 이끄는 김병학 조합원의 인터뷰는 현대중기산업과 함께 나이 들어온 자신의 삶과 그에 대한 애정, 투쟁해온 동지들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IMF라는 게 돈 있는 사람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려다가 자기 사업을 확장하느라 빚져놓고 책임을 노동자들한테 다 돌리니 그게 제일 억울하지.”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노동자들이 IMF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노숙 투쟁 중에 알게 된 식도암 발병 사실과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동지들과 투쟁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쑥스러운 듯 건네는 김병학 조합원의 이야기는 인터뷰 내내 무심한 듯 겸손한 태도로 차분히 말을 이어갔던 그의 모습과 더해져, 더욱 숙연한 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태준식 감독의 카메라는 투쟁이 마무리되고 노동조합 해산식도 끝난 1999년 11월, 관악산으로 등반을 간 현대중기산업 노조 조합원 두 명을 따라 나선다. 과천역에서부터 조합원들의 뒤를 비추거나 나란히 섰던 카메라는 등반 내내 같은 위치에서 묵묵히 그들의 여정을 쫓고 대화를 듣는다. 이 장면은 < 인간의 시간 >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꾸준하고 끈기 있게 ‘노동’이라는 소재를 놓지 않는 태준식 감독의 여정을 예감하고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