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 감독
- 김석영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백성주, 박명신, 박세진, 임형국, 조윤미, 방혜영, 임형국, 진달래, 김영섭, 조경현, 형영섭
나는 수집가였다. 그리고 구두쇠였다. 수집에는 돈이 드는 수집과 돈이 들지 않는 수집이 있다. 미취학 시절 금이라고 주워와서 빈 유리병에 모으던 식빵봉투용 철사심 끈은 공짜였지만, 길 건너 문방구에 새로 진열된 지우개를 손에 넣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구두쇠 수집가의 딜레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돈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옆 짝꿍이 우표를 자랑했다. 우표수집은 전염된다. 우표는 구매한 금액만큼 고스란히 우편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구두쇠로서 최고의 수집 동기이며 핑계이다. 체신부는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취미우표를 발행하고 있었다. 주변의 재력 있는 아이들을 유혹했다. “철수야, 취미우표라는 게 있어. 어떤 우표는 나중에 엄청 비싸게 되팔 수 있대.” 그렇게 여러 명을 모았다. 취미우표를 발행하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선생님 심부름으로 둘러대고 나갔다. 성내동 우체국을 부리나케 다녀오면 구매대행 수수료가 남고 그 몫으로 내 우표를 샀다. 그 고객들이 한 살 더 먹으면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거기서 또 자랑했다. ‘클럽에 대해 알리지 말라’는 파이트클럽의 규칙 같은 것도 없으니 날로 사업이 번창했다.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 못 한 채 모든 라디오방송의 채널 편성표를 수작업으로 작성하였고, 특정 작곡가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테이프에 편집하던 1993년, 나는 ‘ 정은임 의 FM 영화음악’에 도착했다. 다른 방송들과 달랐다. 매주 출연한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더 달랐다. 영화는 그저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글을 모으기 시작했다. 집에서 구독하지 않는 신문과 잡지는 도서관에 있었다. 복사비는 적은 돈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10년이 되니 복사 뭉치는 백과사전 분량이 되었다. 정성일 아카이브 인터넷이 생겼다. 대학 신입생의 필수 수강과목에 홈페이지 만들기 수업이 있었다. 네이버, 드림위즈, 하나포스, 천리안을 포함해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안전보건공단에서도 개인용 홈페이지 공간을 나눠줬다. 5~20MB씩 나눠주는 무료 공간을 긁어모아 '' 정성일 글모음 페이지''를 2000년에 만들었다.(seojae.com/critic) 스스로 자료를 찾기 위해 만들었던 목적이 컸다. 각 매체에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허락을 얻었고, 온라인 지면의 게재에 대한 계약이 따로 없었던지라 3년이 지난 출간물은 글쓴이에게 저작권이 돌아오는 것으로 암묵적 동의를 하여 업데이트하였다. 정성일 선생님의 추가 요청에 따라 복사금지기능을 추가했고, 2015년에 모바일 환경에 맞춘 개편을 하여 현재 1,926건의 글이 등록되어 있다. 월간 KINO 인덱스 페이지 1995년 창간한 영화 월간지 KINO는 예전에 봤던 내용을 다시 찾기 어려웠다. 특정 감독들의 인터뷰는 나중에 찾기 위해 따로 목록으로 정리해야 했다. KINO도 2000년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KINO의 낱개 기사들을 유료로 판매했다. 하지만 제목도 순서도 검색도 엉망인 채였다. 잘 팔리지 않았는지 그 PDF 파일들을 2002년 무료로 공개했다. 총 2,948개의 PDF 파일과 PDF로 제공되지 않은 기사까지 인쇄본과 대조하여 2005년 인덱스 페이지를 오픈했다.(seojae.com/kino) PDF 본문검색은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고(blog.naver.com/kino1995), 인덱스 검색은 이글루스 블로그를 사용했다(kino99.egloos.com). KINO의 웹 부문 사업체였던 엔키노는 2004년 CJ 계열사로 편입된 뒤 2006년 운영 중단했으며 2007년 사업 청산되었다. 운영중단으로 2기가에 달하는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다운로드해두었던 PDF 파일들을 직접 인덱스 페이지에 걸려면 돈이 필요했다. 2년 뒤 기술의 발달로 스토리지 비용이 낮아지자 거대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무료정책변경으로 skydrive, dropbox를 거쳐 지금은 archive.org를 저장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은임 의 FM영화음악 팟캐스트 슬프게도 정은임 아나운서가 2004년 사고로 사망했다.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졌고 그녀의 아버님은 딸에 대한 사랑으로 녹음한 라디오 방송 테이프들을 3년 반 동안 민연홍 님이 파일로 변환하여 추모사업회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팟캐스트를 듣던 시기가 왔고, FM 영화음악을 쉽게 다시 들을 수 있도록 추모사업회의 파일을 기반으로 팟캐스트를 2010년에 만들었다.(seojae.com/podcast) 총 832개 16기가의 파일을 호스팅하던 추모사업회 홈페이지는 2016년부터 갑자기 접속되지 않았고, 저장 받아둔 방송파일들을 KINO PDF와 마찬가지로 archive.org로 옮겨서 비용 없이 제공하고 있다. 모두 개인적인 편의로 시작하여 이젠 한 달에 5천 원 가량의 유지비도 필요하지만, 이 페이지들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배우자를 만날 수 있었고 아카이브를 만들면서 익힌 기술로 관련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육아로 여유가 없어서 다음 프로젝트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 또한 스스로의 편의에서 시작한 아카이브이겠지만 덩달아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게 될 것이다. 고마운 날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즘 화제의 드라마는 단연 <응답하라 1988>일 것이다. 추억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음악도 좋지만 <응답하라 1988>의 인기 비결엔 그동안 드라마에서 익히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류준열 , 류혜영 , 안재홍 , 김선영 , 이민지 등 독립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배우들이 이 드라마에서 각자의 매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독립영화를 열심히 챙겨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배우들이 비로소 대중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류준열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 소셜포비아 >에 이어 올해 < 글로리데이 >라는 영화를 들고 다시 부산을 찾았다. 류혜영 은 < 잉투기 > < 나의 독재자 > < 그놈이다 >로 낯이 익은데 몇 년 전부터 독립영화에서 인정받던 배우다. 안재홍은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 족구왕 >의 주연배우로 찾아와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민지는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의 단편 < 세이프 >로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이밖에 선우의 어머니로 출연 중인 김선영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은 < 소통과 거짓말 >에 나왔던 배우다. <소통과 거짓말>의 초반 10분 동안 이어지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김선영이 보여주는 연기는 압도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문소리 씨는 “주연이 아니라 김선영에게 상을 주지 못했지만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을 꼭 언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의 사례는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보람을 갖게 한다. 다들 재능 있는 배우들이라 언제가 어떤 식으로든 두각을 나타냈겠지만 영화제가 그들의 재능을 보여주는 좋은 장소가 됐을 거라 믿는다. 관객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영화제 상영 덕에 조금씩 연기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기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가 되고 올해의 배우상을 새로 만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 거인 >의 최우식 이 올해 연말 다른 영화상 시상식에서도 신인배우상을 많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 자식의 성공을 보는 듯 뿌듯하다. 물론 프로그래머의 가장 중요한 선정기준이 배우의 연기는 아니다. 배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배우의 매력을 제대로 포착하는 감독의 재능, 그리고 무엇보다 연출력이 우선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일 한국영화를 선정하는 경우는 해마다 6월 말 단편, 7월 말 장편 마감을 한다. 8월 중순까지 모든 선정을 완료하는 일정에 맞추자면 독립영화, 단편영화 신작을 모두 봐야 하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이 피 말리는 시간이다. 3개월간이 아닌 다른 기간에도 꾸준히 영화를 보고 선정 작업을 하지만 이 3개월은 주로 어디서도 선보인 적 없는 독립영화에 할애되는 시간이다. 한눈에 좋은 배우를 알아보는 것만큼 한눈에 좋은 감독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작품 선정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영화제가 시작되고 관객과 영화가 만나는 순간부터 비로소 알 수 있다. 영화감독이 시사회를 통해 처음 영화를 선보일 때 긴장하는 것만큼은 아니라도 프로그래머가 영화제를 긴장하며 기다리는 이유이다. 자기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거듭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감독, 배우들을 보면 기쁘다. 한 발 더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발판으로 유수 해외영화제에 나가 상을 받거나 개봉을 해서 대중적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벅차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가끔 영화제에 선정되지 못한 이유를 묻는 감독을 만난다. 영화의 장단점을 설명하지만 납득을 못하는 표정일 때도 있다. 그럴 땐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다른 영화제에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실제로 그런 일은 많다. 프로그래머는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영화를 남보다 먼저 보는 관객일 따름이다. 나름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안목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려서 내가 선정하지 않은 영화들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중 단편영화 한 편을 꼭 언급하고 싶은데, 영상원 예술사 과정 김석영 감독의 <연애>라는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으나 선정하지 못한 이 영화를 최근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왜 선정하지 않은 건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에 볼 때 작위적이라 느꼈던 대목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고 재능 있는 감독을 못 알아봤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제 선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연애>라는 단편영화를 추천하는 일일 뿐이다. 다른 영화제에서라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먼저 이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간절히 소망한다. 프로그래머란 내 안목이 틀려 누군가에게 실망을 줬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동거하는 직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