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해피니스 다이어리 : 마이 디어, 레베럽 인 시네마
- 감독
- 김선형, 오윤동
- 제작년도
- 2024
- 출연
- 슬기, 웬디, 조이, 아이린, 예리
영화 촬영 감독. 써놓고 보니 그야말로 멋진 단어가 아닌가. 아마도 그 멋의 대부분은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 보통은, 이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액션”이라든가 “컷”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외치면서 배우를 감독하는 사람이 아마도 감독일 터인데, 촬영 감독이란 사람은 무엇을 감독한단 말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뭐라도 감독한다니 멋이 나는구나! ...그러니까 촬영 감독이란, 말하자면... 카메라를 감독하는 사람이리라. 영화란 매우 당연하게도,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작가가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쓰고 명감독이 액션과 컷을 멋들어지게 외치고 명배우가 울고 웃어도, 그 촬영장 어딘가에 카메라가 서 있지 않으면, 좀 더 생색을 내자면 촬영 감독이(엣헴) 카메라의 REC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순간들이 영화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촬영 감독이란 인간은 고작 버튼 정도를 감독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카메라가 그냥 서 있을 것인지, 움직일 것인지, 혹은 움직이기로 사전에 결정을 해 두었는데 막상 움직여보니 그냥 서 있는 편이 나은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해는 져 가는데 접고 내일 다시 찍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이 꼭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누군가는 그것들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려서 어느 순간에는 계속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촬영 감독이란, 촬영장에서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를 감독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촬영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게 되는가. 소싯적부터 카메라에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보여 빨간 버튼만 보면 누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든지 왠지 모르게 팀 버튼 영화가 취향이라든지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본인의 경우는 아닌 듯하고, 무언가 영화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 어찌어찌 영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건 어째 내 길이 아닌 듯한 와중에, 이것 봐라 카메라맨이란 직업이 꽤 나쁘지 않은 것이다. 촬영장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도 척척 나르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무언가 척척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졸업 작품으로 촬영한 단편 영화가 프랑스의 썩 유명한 영화제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을 받는 바람에, 또 그런 마음이 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어쩌다 보니, 덜컥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가 촬영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빼도 박도 못하게 카메라맨의 삶을 선택한 거지. 카메라 뒤에 계속 있기로 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졸업 후 통장의 잔고를 돌아보니 매우 슬퍼져서 이런저런 촬영 일들을 하면서 버티던 차에, 손태겸 감독이 영화 아카데미 장편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친구와는 영화학교 동기이자 문제의 그 졸업 영화를 함께 만드는 바람에 영화 아카데미에서까지 동기가 되고 마는 불행한 인연을 계속 이어온 사이었으며, 언젠가는 장편 영화라는 걸 한 번쯤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꿈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자 무엇보다 개그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 아기와 나 >는 그가 예전부터 장편으로 해보고 싶다 말하던 이야기로, 큰 파고의 감정을 다루는 걸 피해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때는 2015년 여름, 본격적인 < 아기와 나 >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이어서, 홍대 모처의 냉방이 좀처럼 되지 않는 사무실에 스태프들과 모여앉아 여러 가지 촬영 계획을 짜야 했다.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촬영을 맡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제작비 통장을 볼 때마다 문득 슬퍼지곤 해서, 이런 돈으로 사람을 쓰려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신 미술 감독님도 계셨고, 미팅을 하러 왔다가 페이를 듣고 허허 웃으면서 사라져 가신 녹음 감독님도 계셨더랬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연출부는 손태겸 감독의 지인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처참한 상황에도 쉽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쉽지 않은 일들을 함께해 주었다. 보통은 영화 준비 기간에 본 촬영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동선과 화면으로 이래이래 찍자 하고 계획을 짤 때면 콘티 작가가 붙어 그림을 그려서 계획을 세우고는 하는데, 우리는 대신 감독과 연출부들이 사무실 근처 공간들을 오가며 촬영 현장을 가정하고 연기하면서 실제 사진을 찍어 콘티 작업을 대신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아픔이 많은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영화에 관한 열정이 있었으니까...!! 라고 말한다면 적잖이 간지러운 이야기이고, 사실은 우리 모두 이 과정이 꽤 즐거웠었으니까. 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실은 그런 종류의 일들이 연속되는 나날들이다. 어쨌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우리가 만들 영화는 이런 모습이 될 거야, 라고, 준비하는 시간이나마 낙관하는 일. 화이트보드 언제나 실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주연으로 결정된 이이경 배우는 한창 떠오르는 스타로 TV 프로그램과 드라마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정연주 배우는 실제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음에도 TV 쇼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어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의 수없이 많은 변수들 덕분에 프로덕션을 앞둔 우리는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을 작성해놓고는 가안과 수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끼리는 ‘강 건너기 게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왜 있잖는가, 양치기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강 건너까지 보내야 하는데 늑대와 양을 두고 가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두고 가면 양이 양배추를 먹어치우고 하는 문제들. 이날은 10씬을 찍고 20씬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아뇨 그때 이경씨가 스케줄 때문에 이 시간 이후만 가능한데요? 그러면 10씬 대신 9씬을 집어넣으면? 그때는 그 장소가 몇 시부터만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아예 8씬과 21씬을 이날 찍으면? 그러면 7, 8씬에 나오기로 한 선배님께서 일정이 어긋나는데? ...그럼 그냥 20씬만 찍는 걸로 합시다. 감독님 연락이 왔는데 그날 20씬 찍기로 한 데가 다른 날밖에 안 될 것 같대요!! ...말을 말자. 그렇다고 한들 허허 알아서들 하시고 저는 촬영장 가서 REC 버튼만 누르겠습니다. 라고 할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만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좋은 공간에서, 좋은 빛을 받게 하고 싶으니까. 어찌어찌 그 생지옥 속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감정이, 감독이 시나리오에 묘사한 이야기가, 카메라를 통해 영화로 제대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개와 애와는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가 어어어어어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영아치고는 몹시 수더분한 성격의 피디의 조카 예준이가 캐스팅되기는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 촬영장에서 낯선 배우의 품에 안긴 예준 배우는 얌전하다가도 액션을 외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배우들은 젊은 나이에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을 때로 카메라 뒤의 본인마저 찡해질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주곤 했다. 그런 감정들을 거칠더라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독과의 의논 하에 < 아기와 나 >의 촬영은 90퍼센트 이상 들고 찍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달이 넘는 촬영 기간 동안 몇십 킬로그램쯤 될 카메라는 촬영의 어깨 위에 대부분 올려져 있었다. 꽤나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아기와 나> 촬영 현장 그래서 영화 촬영이란 결국,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는 일이다. 영화 아카데미에는 어지간한 상업 영화들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촬영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좋은 장비가 좋은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만 그러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사용해 화면을 어떻게 구현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좀 더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 소셜포비아 >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 연애담 >과 같은 아카데미 장편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뒤에서 뛰어난 촬영감독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비의 전문성이란 장비의 무게이기도 해서, 그것을 운용하는 데는 그 쇳덩이들이 손에 익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영화 촬영팀은 고가의 장비들이 담긴 무거운 박스들을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보통 12인승 스타렉스를 빌려 트렁크 쪽의 의자를 두 줄쯤 떼어내고 차곡차곡 장비를 테트리스해서 다니곤 한다. 짧지 않은 프로덕션 기간 동안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노라면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집보다 여기가 진짜 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매일 만나는 촬영부 친구들은 어떻겠는가. 이 이상한 유대감의 정체는, 마찬가지로 스타렉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것 말고는 도통 재미가 없어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우는 것. 앵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글을 빌어 ‘아기와 나’의 촬영부인 이승현, 박찬희, 김선형과 데이터 매니저 오혜주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프로덕션 시간표는 흘러가고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 아기와 나 >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조만간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었다만, 뭐 그런 거지. 마틴 스콜세지쯤 되는 거장도 영화를 찍어 놓으면 칭찬도 받고 욕도 먹고 하는데 우리 같은 쪼렙들이 좋은 소리만 듣겠냐. 우리는 꿈꿔오던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의도하던 대로 어찌어찌 완성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장편 영화를 한 편 완성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통장 잔고는 계속해서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 부분은 썩 기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 아기와 나 > 이후에도 어떻게 REC 버튼을 꾸준히 계속 눌러 보려고 한다. 장편을 하나 찍고 나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서, 지금은 학교에서 막 카메라에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 친구들을 돌이킬 수 없게 부추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영화 만드는 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친구들은 놔둬도 불구덩이로 뛰어들기 때문에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진심으로, 카메라를 책임진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부족하게나마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해주고 싶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