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ANIFEST]Addicted to 박나영, 김수영
- 제작년도
- 2011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60년을 이어온 공간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아카데미극장의 대표이자 소유주였던 정운학은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해방 전까지 해주극장을 비롯해 신주, 안악, 겸이포, 개성 등지에서 당시에는 희귀했던 영사기사로 활약한 이력이 있다. 아카데미극장의 전신인 시민극장을 운영하면서 원주시와 인연을 맺은 정운학은 과거 C도로라 불렸던 원주 평원로에 1956년 원주극장, 1962년 시공관, 1963년 아카데미극장, 1967년 문화극장을 순차적으로 열었다. 그와 별개로 한국전쟁 동안 동부전선 전투를 담당한 육군 1군 총괄사령부가 원주에 주둔하면서 1956년 1월 개관한 군인극장이 있었다. 민간인의 극장 출입도 허용된 곳이었기에 상업극장과 다르지 않게 운영됐다. 이렇게 원주시 원도심에는 5개의 단관 극장이 성업했다. 극장마다 특성이 달라 극장마다 다른 장르의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뿐 아니라 공연, 연극, 웅변대회 등 지역행사와 다양한 공연이 열려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정운학은 자신과 같은 이북 출신 이주민들을 극장에 취직시키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극장 폐관 이후에도 사무실은 이북5도민회에게 내주는 등 이주민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극장 내부의 이북5도민회 사무실 2005년 원주시에 멀티플렉스가 개관하면서 2006년 4개의 단관 극장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아카데미극장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지역사회 시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극장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 나섰다. 2016년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아카데미극장 보존방안’ 시민 포럼을 시작으로 상영회, 다큐멘터리 제작, 포럼, 타 지역 재생 사례 연구 등이 이어졌다. 2021년 2월 철거 위기에 맞서기 위해 ‘원주 아카데미극장 보존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1인당 100만원씩 기부하는 시민운동 ‘100인 100석 프로젝트’를 통해 3주 만에 1억 원의 모금을 달성하기도 했다. 전국 54개 영화문화단체 및 원주시 주민자치협의체 등에서 지지성명이 이어졌다. 이러한 활동과 노력에 2021년 5월 원주시는 사유재산인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하여 시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유산 국민신탁과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꼭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아카데미극장을 선정하며 ‘문화재청장상’을 전달했다. 전임 시장 때 극장 건물과 토지 매입에 32억 원을 집행하고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었으나 글을 쓰는 현재 민선 8기 원주시장직 인수위원회가 들어서면서 아카데미극장 복원사업 중단을 권고한 상황이다. 단관극장의 원형을 가장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는 극장 아카데미극장은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동은 우산동, 태장동 등 주변 일대와 함께 원도심 권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원도심 일대에는 상지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한국폴리텍대학 등 3개 대학교가 있으며, 원주종합운동장 등 체육시설과 원주시민문화센터, 원주역사박물관 등 주요 문화시설이 자리한 곳이다. 원주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설치, 규제 자유 특구 지정 등 도시의 변화로 인구 유입이 증가하고 있지만, 원도심의 경우 핵심 인프라의 이전과 도심 외곽의 팽창으로 40대 미만의 인구 비율이 적고 60대, 50대, 70대 순으로 전체적으로 고령화되어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단관 극장의 원형을 가장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는 극장으로 외관을 온전히 유지한 채 보존된 근대극장으로서 희소가치가 높다. 극장이 소유주의 살림집과 연결된 독특한 구조로 인해 산업화 시기의 건축적 특징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전쟁 복구기의 사회·경제 성장의 역사를 도시의 중심에서 증거하는 중요한 근대 건축 자산이기도 하다. 상영관 내부 전경 "아카데미극장은 단관극장의 원형을 가장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는 극장 중 하나다" 더불어 아카데미극장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원주 시민의 영상문화 수요를 충족해 주고 만남과 소통의 공간으로 복합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현재 상업극장으로서 활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사회 도시재생의 중심적 입지에 위치해 있다. 이에 아카데미극장을 기억하는 원주 시민들이 참여해 기억을 공유하고 문화를 나누며 기성세대의 기억과 경험을 후속세대와 함께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원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아카데미극장은 원도심의 상권, 문화예술, 복지 인프라 등의 자원과 결합이 쉽고 중앙동의 도시재생사업 등 기존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이 큰 공간이기도 하다. 아카데미극장 매입 및 활용계획을 수립할 당시 원주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아카데미극장을 원주시가 매입해 보전’하는 문제에 관해 응답자 중 435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고, 시민 문화 향유 및 추억 공간과 근현대 건축유산의 가치 보전을 그 이유로 꼽았다. 아카데미극장에 보존되어 있는 입장권 수입 장부 공간개요 ■위치: 강원도 원주시 평원로 20 ■설립일: 1963.09.23(개관일) ■규모: 1,237m²(374.4평) ■건물구조 1층 - 상영관(1관, 662석), 매표소, 매점(2006년 폐관 이후 이북5도민회 사무실로 사용됨), 사무실, 정원 2층 - 살림집(거실, 부엌, 화장실, 방 3개로 구성), 영사실, 창고 인터뷰: 변해원 센터장(원주영상미디어센터, 원주아카데미극장보존추진위원회) 변해원 센터장 김수영 _과거 원주에는 다섯 개의 단관극장이 있었습니다. 이후 원주 아카데미극장만 남기까지 간략하게 역사를 설명해주세요. 변해원 _(한국)전쟁 기간 원주는 폭격으로 초토화가 됐어요.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던 상태고, 1군 지사(지원사령부)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민군이 같이 도시를 재건하는 형태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정치, 사회가 좀 안정되면서 산업도 발전하게 되고 그런 연장선으로 극장들이 하나둘 생기게 됐고요. 원주극장,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이 순서대로 만들어졌고 전국 유일한 상설극장인 군인극장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총 다섯 개의 단관극장이 있었고 1990년대 전후가 되면서 멀티플렉스들이 만들어지면서 하나둘 극장이 팔리기도 하고 철거도 되면서 2016년에는 아카데미극장만 남게 된 거죠. 김수영 _아카데미극장의 공간은 현재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변해원 _1층, 2층 전형적인 단관 극장 형태로 662석이 갖춰져 있고요. 극장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소유주가 살았던 가정집이 있습니다. 소유주가 영사기사 출신이어서 가정집에서 영사실로 바로 갈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을 했습니다. 극장 왼편 발코니 공간에는 예전에 공연할 때 사용한 흔적이 있는데요. 배우 대기실이 무대와 연결되어 있어요. 지금은 창고로 쓰는 공간에 80년대 영화 포스터들이나 극장에 띠지 같은 것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극장 공간에 있었던 전 소유주 정운학 님의 사택 공간 내부 김수영 _이곳이 한국전쟁 후에는 이북5도민의 연락사무소로도 활용되었다고요. 변해원 _원주에는 생각 외로 이북5도민분들이 많으세요. 극장 소유주인 정운학 옹이 황해도 해주 출신입니다. 전쟁 전에는 해주에서 영사기사를 하시다가 전쟁 후에 넘어오셨고, 극장을 유지하시다 보니 재력도 좀 풍부했고 이북5도민의 초대 회장도 맡으셨어요. 그분들끼리의 단합된 활동도 하고 북한에 대한 소식들도 같이 공유하고 연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공동체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극장에 이북 분들이 취업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수영 _아카데미극장은 극장을 넘어 지역의 커뮤니티센터처럼 느껴지는데요. 원주 지역에서 이곳은 어떤 역할을 해왔나요. 변해원 _이곳에서 새마을대회도 열리고 신용협동조합의 총회도 열리고,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여기서 많이 열렸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시민들이 모이고 또 원주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 공간으로 작용해왔던 거죠. 그런데 그 역할들이 계속 분화되면서 영화관으로만 남게 되었고,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폐관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극장성이라는 게 무대와 영화만을 뜻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문화를 접하는 공간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게 지금의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수영 _극장이 다시 열린 데에는 시민들의 애정과 적극적인 응원이 크게 작용했는데요. 그에 걸맞게 보존추진위원회에서도 '시민 한마디'나 '영사기 조립반' 등 다양한 교육과 전시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게 된 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변해원 _단순하게는 아카데미 정원 만들기를 통해 정원을 정리해 보니까 극장 안에 연못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를 아카이브 해 가다 보면 새로운 모습들을 모르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같이 발견하고 만들어간다는 데 제일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주시에서 매입했기 때문에 극장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재생이라든지 지역의 콘텐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역의 콘텐츠와 이런 자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해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주 아카데미 극장 내부의 정원 김수영 _극장 보존과 관련된 이슈들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설명해주세요. 변해원 _저희가 보존 활동을 할 때는 극장주였던 정운학 옹 일가가 극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2년 뒤 사적 거래로 다른 분께 극장이 넘어가게 되죠. 새로운 소유주와도 만나서 재정사업에 관해 논의하고 관계를 이어왔었습니다. 철거 위기가 있었지만 시민들이 상징적인 모금 운동을 해보자고 나서주셨고, 한 사람, 한 단체에서 1백만원씩 기부를 해서 1억원을 모아보자고 했던 게 3주 만에 달성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영화문화단체 42개에서도 지지 성명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작년(2021년) 5월에 원주시가 매입을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고 올해(2022년) 1월에 행정적으로 매입이 완료된 거죠. 그러면서 안전진단도 거치고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구상이 나왔는데 민선 8기 원주시장직 인수위원회가 들어서면서 입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보전 문제를 재논의하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영관 입구와 극장 로비 김수영 _현재 보존추준위원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변해원 _보존추진위원회는 보존에 대한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면 해산됩니다. 원래 시와 시민들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만들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민관협의체에서 아카데미극장의 재생 방향을 같이 정해가는 게 애초의 계획이었고 지금도 계획 중인 부분입니다. 극장 자체의 가치도 있지만 시민들이 힘을 모아서 보존했다는 것도 아카데미극장의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요. 그렇게 극장이 보존 재생되고 난 이후 어떻게 시민들이 그 구조에 접근하고 사업의 의견을 낼 수 있는가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걸 구조적으로 만들고 싶은 거죠. 그래서 원주시와 저희가 민간협의체를 구성해서 재생의 방향을 정하자고 기본구상을 해왔던 거고요. 내년이라도 민관협의체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수영 _마지막으로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향한 관심과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해원 _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도 활발하게 소식을 전하고 있으니 SNS 계정을 팔로우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계속 소식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원주 사람들은 아카데미극장이 원주만의 것처럼 느껴져서 그 가치에 관해 가끔 잊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외부에서 찾아 주고 언급해 주는 데에서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원주 안팎의 관객들이 ‘이 극장이 이만큼 괜찮은 곳이구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교류와 연대를 많이 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신동화 시민활동가(<아카데미극장> 인터뷰집 제작) 신동화 활동가 김수영 _원주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신동화 _아카데미극장은 원주 사는 분이라면 대부분 다 아실 거예요. 여기 원도심의 제일 중앙을 거쳐 가는 버스 정류소가 바로 앞에 있어서 오며 가며 ‘저 낡은 건물은 뭘까’ ‘극장이라고 하는데 멋있네, 한번 안에 들어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계속해 왔어요. 지역에서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까 지역의 문화 자산에 관심을 좀 더 가지게 된 것도 있어요. 그렇게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안녕,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그 행사를 통해서 처음 아카데미극장에 들어와 봤거든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1960년대에 개관을 했으니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갔고, 여기서 웃기도 했었고 울기도 했었고, 그런 묘한 기운들이 이 공간에서 느껴졌고 되게 좋았어요. 그때 이 극장이 진짜 사라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멀리서 본 아카데미극장 건물 전경 김수영 _'안녕,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신동화 _‘안녕, 아카데미’는 2020년에 있었던 극장 재생 시범 사업이에요. 극장이 2006년도 이후 계속 문이 닫혀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안에 엄청난 먼지도 쌓였을 텐데 시민들이 그걸 일일이 닦고, 다시 극장을 오픈하기 위해 시민들이 처음부터 투입됐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워크숍도 하고 저 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북토크도 하고 연극도 하고 앨범도 녹음했다고 하더라고요. 극장이 열리는 날 오프닝 쇼로 ‘아폴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미디어 파사드 행사가 있었어요. 원주에서 활동하시는 미디어 아트 창작자들과 일렉트로닉 음악 하시는 분이 협업해서 극장 외관에 프로젝트 매핑 작업을 한 거였는데 무척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라이브 드로잉도 한 적 있거든요. 다양한 콘텐츠를 극장이라는 공간에 녹여냈던 기억이 많이 나요. 이걸 계기로 원주 시민들이 낡고 허름한 원도심의 어떤 건물이 아니라 이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볼 수 있겠구나 느끼게 했던 사업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요. 극장 입구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 백 투더 퓨처 > 간판 김수영 _오오극장 주변은 동성로 번화가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가 유구한 곳입니다. 신동화 _저는 원주의 토박이는 아니에요. 원주에 9년을 살면서 원주가 어떤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게 뭘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어떤 활동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던 중에 ‘안녕, 아카데미’를 접하게 된 거죠. 이런 것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원주가 이런 비전을 꿈꿀 수 있다든지 낡은 공간들을 활용해서 과거와 현재 가치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김수영 _시민 모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신동화 _우선 ‘100인 100석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100만원을 기부하면 극장 의자 뒤에 이름을 새겨주는 프로젝트였어요. 그 다음에 더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3650’ 모금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3650명이 적은 금액으로도 모금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인데요. 여기에 참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데 이렇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고요. 3650명이 다 모이기도 전에 목표로 한 금액이 다 차서 마감되었어요. 한두 명의 사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인 또 시간적인 에너지를 더해서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극장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를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상영관 출구 쪽. 오른쪽 벽에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 시민 연대기" 설명판이 있다 김수영 _어떤 마음으로 시민 활동을 계속하고 계신가요. 신동화 _저는 시장 옆에서 자랐어요. 서울에서 자라긴 했는데 굉장히 낡은 동네였어요. 그때 그 동네의 감수성이 저한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오래된 건물들이 제게는 익숙해요. 오래된 것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이 공간을 주차장 정도로밖에 안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 담긴 가치를 보는 눈을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아이가 그런 가치를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보존운동을 나름대로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하는 까닭은 제 아이까지 이 극장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극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아카데미극장이 사라지지 않도록 시민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속 지지하고 싶어요. 필자: 김수영(씨네21) 사진촬영: 손홍주(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17일
한국사회의 오랜 병(病)은 어떤 담론과 쟁점마다 반드시 붙는 이분법의 논리다. 우파가 아니면 좌파, 보수가 아니면 진보, 갑이 아니면 을이라는 식이다. 각자의 진영과 입장을 나누는 것까진 괜찮다. 문제는 이게 피아식별로서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까지 갈라버린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무식한, 야만적인 흑백논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너는 적이고 중간은 없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중간에 서려는 사람들은 회색분자로 불린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첨예한 정치적 대립에서 중립을 지켰던 자들에게 준비되어있다는 저주가 덤으로 붙는다. 회색분자는 그렇게 매도당하는 만큼은 기회주의자이며 비겁한 게 사실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자기 자신도 모를 애매한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이 회색의 경계에서 서성인다. 그런데 어떤 회색인들은 매도당하느니 먼저 위악적으로 양쪽을 다 냉소하고 조롱한다. ‘밤섬해적단’은 베이스와 보컬 장성건과 드럼 권용만으로 이루어졌다가 해체한 인디 밴드의 이름이고 ‘서울불바다’는 그들이 2010년에 냈던 앨범의 제목이다. 나는 예전에 이 앨범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 이 사실을 떳떳이 밝힐 수 있는 건 밴드의 리더 권용만이 ‘We Are Internet Friends’라는 이름의 블로그에 자신들의 앨범을 직접, 공식적으로, 무료로 올렸기 때문이다. 52분 러닝타임동안 총 42트랙이 존재하는 이 앨범에 대하여 음악적으로 논할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다. 고전에 오를 명반인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혹시 역사에 남을까? 의외로 그럴지 모른다. 어떤 해프닝과 함께 의도치 않은 가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정치적으로 논할 의욕 역시 내게는 없다. 상식과 교양을 지닌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울불바다’를 접하고 낄낄 웃을 것이다. 이 앨범의 구호에 적극 동조하거나 혹은 분노한다면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밤섬해적단과 서울불바다는 21세기 초반의 한국을 사는 20대 청년들의 시니컬한 유희(遊戲)에 지나지 않았다. 이 놀이를 끝내 정치적 사건으로 만든 것은 국가였다. 2012년, 이들의 레이블 ‘비싼트로피’의 대표 박정근이 북한 매체의 글을 리트윗하여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자, 밴드의 음악까지 덩달아 도마에 오른다. 전작 < 논픽션 다이어리 >(2013)에서 지존파 사건이 일어난 90년대가 예견한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윤리적 균열과 사법 집행 과정을 통해 국가 권력의 모순점을 다루었던 정윤석 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2000년대 청년들의 ‘병맛’ 유희에조차 드리우는 권력의 그림자를 직시한다. 의도적인 키치 스타일로 넣은 자막대로 ‘이 영화는 대한민국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및 고무)를 윤리적으로 소비한다’. 그로울링과 샤우팅으로 일관하여 잘 들리지 않는 가사를 정윤석은 친절히 자막으로 띄워 관객이 그것을 읽게 만든다. 이 ‘위험한’ 가사들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까? 권용만의 직설적이지만 지극히 일차원적인 수준의 반어법으로 점철된 문장들은 고도의 문학적, 수사학적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걸 당연히 풍자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그러나 권력은 아이러니와 레토릭 따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섭게 물었던 것이다. 너희는 정말로 북한을 찬양하는 거 아니야? 정치권력이 규정한 경계를 널뛰며 놀다 소위 ‘시범 케이스’로 걸린 회색인들이 이제 와서 정치적 의도는 없었노라고 변명하기 어려워진 상황이 펼쳐지자 피식거리며 다큐를 보던 관객의 마음은 어느새 무거워진다. 정치적 스탠스가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웅얼거리는 권용만의 모습은 한국사회 어디서나 보는 20대 청년 너드에 지나지 않는데, 종북 좌파는 아니니? 멀쩡한 부모님 아래 좋은 학교 다니면서 왜? 네 정체가 무엇인지 밝히길 요구하는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잊히지 않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권용만의 노래 가사와 시에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지를 논하는 장면에서 인터뷰이의 뒤편 책장에 꽂혀있던 ‘김수영 육필원고 시집’이었다. 김수영 시인이 썼던 시 ‘김일성 만세’(1960)가 떠올랐다. 표현의 자유를 대하는 국가와 사회의 수준은 시인이 살았던 시절에서 과연 얼마나 발전했을까? 다른 하나는 5차 공판에 권용만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김정일 만세’ 등 자신들이 만든 노래의 의미, 작사한 문장이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한 이후에 박정근이 보였던 눈물이다. 그의 변호를 위해 예술가가 자기 예술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고, 권력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이렇다고 낱낱이 밝히게 된 것에 그는 슬퍼한다. 왜 이러고 놀았는지를 설명하고 나자, 유희는 더 이상 유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레이블 대표가 소속 아티스트에게 미안하여 우는, 어쩐지 짠한 장면이었다. 박정근은 결국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고, 밤섬해적단은 2016년 밴드를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어째 아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국가 권력이 반어법을 모르는 척 하던 시대를 지나, 표현의 자유는 이상한 방향으로 향했다. 2019년, 지금은 대중부터가 어떤 표현의 맥락이나 뉘앙스를 전혀 고심하지 않는다. 비판과 풍자의 유희는 끊임없이 미워할 대상을 찾는 혐오로 변질되었다. 유튜브에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헛소리를 내질러 ‘좋아요’를 받고 구독자를 모아 광고를 걸고 돈을 번다. 나는 밤섬해적단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알 것 같다. 그들 밴드는 이 시대에서 재결성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노래하기에 이 세상은 진짜 터무니없이 웃겨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다. 이 다큐멘터리는 좋은 음악영화로서의 요소도 충분히 가졌다. 어설픈 밴드나 아티스트가 공연을 이어가다 예술적 성취나 상업적 성공이나 이도저도 아닌 사건 어느 쪽으로든 그의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이상한 정점과 한계에 도달하는 과정이 담겼다면 훌륭한 음악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곡 하나면 완성이다. < 스쿨 오브 락 >(리차드 링클래이터, 2003)의 아마추어리즘과 < 커미트먼트 >(알란 파커, 1991)의 흥망성쇠와 견줄만한 밴드의 사연과 정신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는 기록되어 있다. 웃기고 슬프지만, 분명히 한 때의 전설이다.
< 만추 > ( 이만희 , 1966) 우리들이 함께 영화를 보는 공동체라면 영화의 역사가 상상의 시네마테크인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해보고 싶다. (적어도 한국영화에서, 우리들에게) 1966년은 이만희 의 < 만추 >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1966년 12월 3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이만희의 영화. 물론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몇 차례이고 한국영화의 대가들을 만나면서 같은 질문을 했다. 한 여름의 무더운 날 오후 수박을 사들고 가서 김기영 감독님을 만나 한참 인터뷰를 한 다음 마지막에 질문하였다. 감독님에게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어떤 작품이었습니까. 잠시 나를 보더니 별로 생각하지 않고 내뱉듯이 별다른 수식을 더하지 않고 대답했다. “<만추>” 아직 대학생이었던 시절 동서영화그룹 친구들과 유현목 감독님을 모시고 가진 술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하였다. 약간 눈을 가늘게 뜨시면서 잠시 생각을 한 다음 대답했다. “ 나운규 의 < 아리랑 >, 이규환 의 < 임자 없는 나룻배 >, 이만희의 <만추>” 라고 하신 다음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이만희 그 놈은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어” 임권택 감독님과 긴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같은 질문을 하였다. “나한테는 < 하녀 >와 <만추>요, 그건 내가 만들 수 없는 영화요” 그런 다음 그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사라졌다. 임권택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유일한 예외는 펠리니의 < 길 >뿐이다. 어쩌면 다시 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사라졌다. 하여튼 <만추>는 임권택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 영향은 예술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개념이다. 여기에는 미학적 감흥이라는 관계와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흔적이 주변을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통과하지 못하고 거기 남겨진 실패한 지연. 물론 나는 <만추>를 보지 못했다. 그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였던 것일까. 그해, 그러니까 1966년 임권택 은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 < 전쟁과 여교사 >, < 나는 왕이다 >, < 법창을 울린 옥이 >, 그리고 < 닐니리 > 그 중 <닐니리>는 필름이 분실되어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임권택과 이만희 , 혹은 < 만추 >와 1966년의 영화를 서로 과도하게 가까이 다가오게 할 생각은 없다. 여기서 내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투를 빌려) 다소 잔혹하게 해보고 싶다. 임권택은 그해 겨울 <만추>를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임권택의 영화들 사이에 세워진 선에 계속해서 칸막이 친 다음 거기서 전술적으로 빈틈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게 잠시 멈춰 세우고 그 안에서 예언되는 것에 귀 기울이면서 지금부터 전개되고 있는 것을 쳐다볼 수 있는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렇다. 기회의 도래만이 사건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형상. 각자의 정당성. 그것이 내가 노리는 것이다. 그때 어떻게 칸막이를 세울 것인가. 우리들의 삶은 예기치 않게 반복적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그때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은 자리를 바꿀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순히 이뤄지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는다. 종종 자리 바꾸기라는 잘못된 환원에 이끌려 희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이라는 자유. 자유처럼 보이는 운명. 하지만 매개 없이 우리가 어떻게 도약을 할 수 있겠는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나는 몹시 위험하게 말하고 싶다. <만추>는 어떻게 출현한 것일까. 1960년대의 남한이 겪은 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빈곤과 혼란은 영화를 찍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만추>는 오직 단 한 번, 거기서 나온 영화라고 나는 믿는다. 그때 거기 있었던 공통의 환경. 함께 주어진 조건. 매일 아침 바라보는 같은 풍경. 하여튼 임권택은 거기 있었다. 나는 약간 소설처럼 써보고 싶다. 그리고 그해 겨울 어느 날 극장에 가서 <만추>를 보았을 것이다. 고유한 현실성. 거기서 이만희는 낯선 장면을 출현시켰다. 세상의 비참함을 함께 살아내면서 <만추>는 갑자기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호의 체계를 1966년이라는 현실 안에서 창조해냈다. 가능해진 새로운 이미지의 동작들. (후렴구처럼) 다시 한 번. 극장 안의 객석에서 그걸 구경하는 임권택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거기서 결핍된 그 무엇에서 생겨난 공감의 틈. 나는 <만추>가 그때 임권택에게 무언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던 (영화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이 영화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만추>라는 경험은 그의 영화 안에서 (몹시 양보를 해서 말한다면, 수많은 영화중의 하나로서의) 증환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언제 활동을 개시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의미를 만들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그 자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와 그것을 보는 사람 사이에는 부름의 관계가 있다. 누가 누구를 부르는지 알 수 없게 서로 부르면서 그에 대해서 대답을 할 때 벌어지는 예술적 감응의 프로그램은 끝내 겹치지 않는 평행선 사이에서의 강도가 만들어내는 공명의 이접적 종합이다. 소유하려는 유혹. 맹렬한 저항. 그 사이에서의 각자의 인정투쟁. 종종 부서지는 방어선. 이때 우리는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 번 1966년 12월 3일. 그건 1954년 9월 7일 <이탈리아 여행> 다음날과 같은 의미에서이다. 가까스로 한국전쟁의 풍경이 지워져가고 있던 시간. 최인훈 이 <광장>을 썼고, 김수영이 시에게 침을 뱉었으며, 김승옥 이 무진에 여행을 다녀온 다음 1964년 서울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다른 사내들과 함께 그해 겨울 어느 날을 하릴없이 보냈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며 서있었다” 1966년, 말하자면 그 언저리의 시간. 그 해 17살 소녀 황옥순은 학교도 그만 두고 어머니와 세 동생의 학비와 생계를 위해서 공장 일에 매달리지만 반복되는 빈혈과 빚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결심한다. 함께 수면제를 먹은 두 동생은 죽고 살아남은 그녀는 법정에 선다. 임권택은 황옥순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다. 나는 다소 이상하게 이 영화를 다시 불러보고 싶다. 임권택은 <법창을 울린 옥이>를 <만추>를 보기 직전에 찍었다. 다시 첫 번째 길로 되돌아오자. 우리들은 영화에서 정감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까.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 비평은 항상 창백한 표정을 짓곤 했다. 혹은 이론은 자신의 영역 바깥에 내버려두곤 했다. 하지만 정감은 감각과 함께 영화와 세계가 서로 접촉할 때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경이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석에 앞서 거기에 있는 것. 그것 그대로의 체험을 말하는 중이다. 이때 우리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오류. 할리우드에서 작성된 시나리오 기계들은 그것을 여러 가지 규칙에 따라 조직한 다음 눈물의 형태로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가장 이상한 것은 아직 영화의 촬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정감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전제이다. 그렇다면 촬영 ‘이후’의 영화의 ‘제작’ 과정은 정감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일까. 반대로 정감은 자율적으로 활동한다고 철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때 두뇌는 어떻게 활동하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여기서 실험해보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면 < 법창을 울린 옥이 >는 줄거리를 먼저 읽은 사람들에게 다소 당혹스러울 만큼 슬프지 않다. 아니, 차라리 이 가련한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보는 사람을 거의 울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영화는 비극이지만 슬픔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이 말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러일으킬 생각이 없(는 것처럼 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이러니를 동원한 희극으로 슬픔을 조롱하거나 역설적으로 고양시키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그냥 하나의 세계가 있다. 1966년의 남한. 그런 다음 거기서 긴장상태를 내내 유지하면서 영화가 그것을 견딘다. 만일 슬프다면 그건 이 영화가 그것을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도 하여튼 무시무시한 무게로 짓누르는 세계의 비참한 중력 아래서 간신히 자신의 시청각적 기호들을 동원해서 자기가 품은 생명을 유지시켜나가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실내장면을 찍은 세트 안에서의 몇 개의 씬을 제외하면 이례적일 만큼 대부분의 장면을 길거리나 공장, 이리저리 이어진 골목길, 그 주변의 가게들, 때로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명백히 알 수 있었던 장소인)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진행되는 <법창을 울린 옥이>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놓여있으면서도 그걸 스스로 알지 못한 채 다소 멀리 놓여있는 영화이다. 때로는 그게 너무 희미해서 종종 끈을 놓쳐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주면서 상투적인 드라마에 빠지려들다가도 현실이 부여하는 실재의 어떤 순간에로 재빨리 돌아오곤 한다. 이때 영화는 기괴한 모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더도 덜도 없이 여기서 비참한 세계의 조건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황옥순과 그녀의 가족을 그저 마주본다. 물론이다. <법창을 울린 옥이>를 보고 있으면 다른 목표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 가족은 1966년의 남한에서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서지고 있는 가족. 수 없는 자살. 그런데 거기서 단순하게 그저 하나의 사례라는 차원에로 환원될 수 없는 황옥순의 사건 앞에서 임권택은 이 이야기 안의 무언가가 잘 진행되지 않는 순간들과 반복적으로 마주친다. (나는 다소 바쟁같은 말투로 다시 말하고 싶다) 영화로 잘 옮겨지지 않는 현실의 표면. 그때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생겨난 곡선 사이를 영화는 자기의 점근선으로 계산해야 한다. 위치의 함수. 체자레 자바티니의 경고. 여기서 영화는 세계를 은유의 방법으로 다루면 안 된다. 쳐다볼 때는 아무 모순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서 질문을 시작하자마자 이 세계는 표면 아래 있었던 종종 기괴하고 음산하며 때로는 도착적인 대답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단순하게 보이는 이 사건은 거기서 단지 가난 때문에 생겨난 자살이라는 원인을 초과하는 대상의 과잉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자살은 영화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허구적 결과가 아니라 반대로 (실패한) 자살이라는 현실 안의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라는 드라마가 동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 저편에서 나타난 정감과 감각의 위기. 이때 임권택은 이 과잉을 어떻게 견뎌야 할 것인가,라는 힘겨운 문제를 만난다. 사건의 개요, 혹은 재빠르게 요약된 줄거리. 옥이는 어머니와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는 남동생과 여동생을 거의 먹여 살리다시피 한다. 어머니는 식당이 팔리면서 일을 잃었고 집세를 내지 못해 그나마 있던 판잣집에서 쫓겨난다. 직장에서도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빈혈로 종종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게다가 매달 빌린 돈을 받으러 아줌마들이 찾아와 아귀처럼 괴롭힌다. 그녀는 남자친구 철이를 군대에 보낸 다음 날 수면제를 사서 음독자살한다. 하지만 그녀가 먹는 걸 보고 맛있는 군것질 거리라고 생각한 동생들이 함께 먹은 다음 어린 두 명의 동생이 죽고 그녀는 살아남아서 법정에 선다. 황옥순 이야기의 시작은 맨 뒤에서, 그러니까 법정에 선 옥이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 구조가 단지 플래시백으로 이루어졌다는 데서 멈추는 것보다 더 멀리 밀고 나아가고 싶다. 여기서 시간은 단지 이야기의 경제성 안에 머물지 않고 반대로 우리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처음은 어디인가요? 그런 다음 중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리고 마지막 결정의 순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요? 옥이는 오로지 자신의 행동으로 그것을 차례로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매 단락마다 생명은 질문할 것이다. 그때마다 생명의 정감. 그리고 삶의 감각.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가 찍을 수 없는 것들. 비가시적인 선들의 매듭. 그러나 임권택 은 그것을 다루어야만 한다.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해보자. 신문에서 이 사건의 기사를 읽었을 때 그녀가 어떤 법정형을 언도받을 것인가 보다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런 결심을 한 다음 행동에 옮겼을까, 를 먼저 질문할 것이다. 황옥순은 어린 두 동생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법의) 판단이 아니라 (행동의) 과정이 궁금해진다. 말하자면 삶과 자살 사이의 틈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때 우리들의 귀납적 호기심은 영화의 구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처음에는 법정에서 사건의 개요를 알려준 다음 플래시백으로 맨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원래의 자리까지 진행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 과정의 반복이다. 이때 핵심은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반대의 입장에서 그녀의 죄를 기술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가 궁금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황옥순의 변론이다. 그러나 영리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설명하는 대신 플래시백을 이용해서 그녀의 기억의 연대기 안으로 들어간다. 법정에서 황옥순을 지켜보던 이들은 사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물론 결론은 나쁜 효과일 것이다. 자살이라는 행동. 그때 그녀에게 무엇이 명령을 내렸을까. 여기서 임권택에게 남은 것을 별로 없다. 단 하나로 귀결되는 행동. 피하고 싶지만 무슨 수를 써도 피할 수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시청각 기호들. < 법창을 울린 옥이 >는 과정의 방법을 보는 영화이다. 플래시백의 첫 장면. 법정에 선 옥이를 위해 변호사가 재판장과 검사에게 선처를 호소할 때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 본다. 그때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함께 수면제를 먹고 죽은 두 명의 동생이 아니라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름을 잔뜩 친 콘베어 벨트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톱니바퀴이다. 다소 기괴하게도 그런 다음 영화는 옥이의 슬픈 감정을 지은 표정을 보여주는 대신 종종 소스라치는 듯한 두려움에 질린 그녀의 이 표정(close_up)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녀의 놀란 표정은 다시 한 번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짓는 두려움처럼 보인다. 두 번의 자살. 혹은 자살의 반복. 임권택 은 지금 그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나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임권택의 영화, 아니 < 잡초 > ‘이전’이라고 말해도 괜찮은데, 이상할 정도로 볼 때마다 그 세계가 어두침침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 ‘이후’의 영화가 환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인상이라는 부정확한 말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그런 ‘다음’에는 점점 임권택의 영화는 그 어둠 속에서 빛의 모델을 찾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어두침침하고 게다가 그 빛은 가냘프고 종종 거의 꺼져가는 것 같거나 희미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비로소 시간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역사가 이미지로 떠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 빛을 임권택이 움켜쥐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빛들이 두 개, 혹은 세 개, 그렇게 점점 많아질수록 임권택의 영화 안의 어둠은 점점 중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 법창을 울린 옥이 >는 임권택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세계에 잠겨있는 밤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밤,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 이보다 더 두려운 밤이 있을까. 그때 임권택 이 이 어둠 속에서 견디는 방법은 옥이를 동정하는 대신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렇게 한다) 이 상황에서 느껴보는 옥이의 정감을 약간 기괴하게 쳐다본다. 이 참담한 상황의 수면 아래 옥이가 느껴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를 물어볼 때 현실은 이상하게 비틀려 보인다. 이야기는 진행되다 말고 플래시백 속에서 다시 플래시백이 한 번 더 나온다. 공장에서 일을 하던 옥이는 화창한 점심 휴식 시간에 운동장에서 다른 직공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벽에 기대어 서서 드럼통에 담긴 물에 작은 돌을 던진다. 수면에 파문이 일어나면 좋은 시절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시간의 입구. 옥이가 아버지와 함께 부유한 집에서 보냈던 행복했던 시간. 여기서 의미의 흐름에 주목을 해주기 바란다. 이때 이 장면은 단지 기억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한 배열을 보여준다. 마치 옥이의 작은 돌을 집어 던지는 행동에 감응이라도 한 것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홍난파가 작곡한 ‘퐁당퐁당’을 부른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펴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나는 약간 좀 전의 말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옥이의 세 명의 동생들이다. 물론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 명의 동생들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서 옥이를 향해서 마치 그녀에게 그 노래를 바치듯이 부른다. 아버지는 그녀 곁에 서서 그 노래를 아코디온으로 반주하고 있다. 온 가족의 중심. 그때 옥이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자수를 놓으면서 그 노래를 음미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환기시키고 싶다. 옥이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를 생각이 없다. 그저 그들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때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옥이는 마치 그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라도 한 양, 마치 곁에 선 남자의 아내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습에는 어떤 결핍도 없이 그 자체로 완성된 가족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나올 때 만일 동생들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만 옥이가 결혼해서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정도이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부엌에서 어머니는 과일을 모두 깎은 다음 접시에 받쳐 들고 나온다. 사과는 구태여 부엌에서 깎아야 할 이유가 없는 과일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한 것은 이 장면에서 노래를 부를 때 어머니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 그런 동선이 필요해진 것일까. 영화는 두 번 다시 이 행복한 시간에로 돌아오지 않는다. 약간의 해석. 물론 이 플래시백은 옥이의 주관적 기억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동시에 행복한 기억 속으로 침범한 현실을 본다. 이때 이 현실은 일종의 의무라는 명령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약간만 앞으로 되돌아가보자. 우리는 여기까지 보다말고 갑자기 옥이가 왜 이다지도 열심히 가족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일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여기서는 단지 가난을 넘어서서 아직 미성년자인 그녀가 거의 죽음을 무릅쓰고 일을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일을 하다 말고 쓰러지고 의사가 더 이상 일을 하는 것은 생명에 위험이 올 수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는데도 제발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그런데 이 생명을 건 하소연은 그녀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이었을까. 그녀에게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아무도 명령하지 않는다. 누가 그녀에게 그런 의무의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나는 옥이의 플래시백에서 그녀가 가족 안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은 행복한 시간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황옥순에게 내리는 (유교라는 이름의) 장남(長男)의식의 명령에 다름 아니다. 마치 이 플래시백 장면에 맞대응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 현실의 장면이 나온다. (둘째이지만 장남인) 중학생 남동생이 나쁜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소매치기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경찰서로 간 옥이는 남동생이 훈방 조치된 것을 보고 다시 공장에 돌아갔다가 (남자친구와 짧은 데이트를 한 다음)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남동생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냐고 묻자 어머니는 어쩐 일이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옥이는 그날 낮의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그녀를 꾸짖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대사) “아니, 그 지경이 된 아이를 혼자 보냈단 말이냐, 네가 데리고 오면 다리가 썩는다더냐, 허리가 휜다더냐” “공장 시간에 늦는데 제가 어떻게 데리고 와요” “하루 좀 쉰다고 떼돈을 놓치겠니, 실직을 당하겠니,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인데 그렇게 소홀히 한단 말이냐,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런 꼴 못 본다, 못 봐” “소홀히 하긴 누가 소홀히 한다고 그러세요” “경찰서까지 갔다 온 아이를 홀홀히 보내고, 어쩌니 저쩌니 해도 조상 제사 볼 놈은 그 놈뿐이다. 늘그막에 의탁할 놈은 그 놈 뿐이란 말이다” 사실상 이 집은 이미 거의 부서진 가족의 모습으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 영화에는 단 한 번도 조상 제사를 치르는 장면이 나오지 않으며 어머니의 친정과 시댁 식구들, 혹은 친척들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들도 가난으로 남을 돌볼 겨를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때 어머니가 옥이를 야단치는 말 속에서 지금 집안을 간신히 버티게 일을 하는 옥이는 갑자기 미래의 시간 속에서 괄호 쳐진다. 이 두 개의 장면 사이의 차이에는 명령을 수행하는 옥이의 행복한 시간을 기억하는 플래시백과 현실의 네트워크 안에서 호명하는 어머니의 진술 사이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의 심연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구태여 그 호명을 플래시백에서 이미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 과잉의 잉여처럼 나타난 어머니가 한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명령 속에서 기다리는 최후의 구원을 약속하는 시간은 결국 오지 않을 것이다. < 법창을 울린 옥이 >는 몇 차례를 반복해서 보아도 언제 옥이가 자살을 결심했는지가 분명치 않다. 단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장면만이 있다. 임권택 은 그 결심의 장면을 찍지 않았다. 물론 상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옥이는 무심결에 13일에 밀린 빚을 갚겠다고 매일처럼 집이고 공장이고 찾아와서 괴롭히는 이웃 아줌마들에게 약속을 했고 그날이 다가왔을 때 약속을 이행할 수 없자 자포자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자살을 해서 이 빚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 몫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넘겨진다. 그런데 지금 그걸 누가 갚을 수 있을까. 결국 결론은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에는 이제까지 옥이가 짊어져야한다고 믿었던 책임에 대한 포기가 있다. 이제 그 자리는 빈자리에요. 텅 빈 장남의 자리. 서로 다른 두 개의 층위의 네트워크의 교차. 물론 그 장면에서도 자살의 결심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찍지 않았다 할지라도 옥이는 어느 순간에 결심했을 것이다. 나는 그 결심의 순간이 어머니가 옥이에게서 갑자기 의무를 빼앗아가는 이 장면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희생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할 때 그것은 그녀에게서 의무의 명령이 철수한다는 것을 뜻한다. 옥이는 그 순간 자신을 세상 안에서 버티게 만들어주었던 유일한 초자아의 버팀목이 사라져버리고 갑자기 어둠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혹은 어둠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S#1 S#2 이제 남은 것은 옥이의 자살이라는 행위뿐이다. 이때 자살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여기서 비로소 자기에게 내려진 명령에서 벗어나 자기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행동이 옥이의 동선을 작동시키고 있다. 모든 인연과 결별하는 행위. < 법창을 울린 옥이 >의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작은 빛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어둡지만 (몹시 기괴하게도) 동시에 거의 유일하게 기독교적인 구원에 귀 기울이고 있다. 군대로 떠나는 철이와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난 다음 새벽에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으로 함께 천천히 거의 멈출 듯이 걸어온다. 아, 제발 멈춰 주세요. 당신은 지금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약간 높은 데서 내려다보듯이 멀리서 보이는 두 사람. (high_angle_long_shot) 그때 멀리서 난데없이 교회에서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자살은 하느님 앞에서 하는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나쁜 행위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옥이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다. 명백히 이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영화는 교회 종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지금 옥이라고 써야 할 자리에 영화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이때 간절하게 교회는 종을 치면서 옥이의 죽음에 간섭하려고 한다. 아직 이른 길거리는 한산하고 그들이 걸어온 길은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있다. 두 사람의 발걸음. (close_up) 이상하게 두 사람은 약속한 것이 아닌데도 서로 발을 맞춰 걷는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마음의 쇼트. 어떤 투명성. 하지만 그들은 지금 헤어지기 위해 걸어가는 중이다. 그런 다음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쇼트가 나온다. 갑자기 남자들이 얼어붙은 듯이 거리에 서 있다. 그래서 옥이와 철이가 그들 사이에 들어가서 함께 설 때 마치 정지된 화면 사이로 들어서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다시 한 번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 멈춰 서버릴 것만 같은 세상.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영화는 그녀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 무언가 필사적이 된다. 나는 임권택이 생명을 소홀히 다루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그저 소멸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반복적으로 보았다. 꺼져가는 빛. 사라져가는 세상. 그때 화면 안으로 침범하는 버스 때문에 서 있는 그들이 출근하기 위해 거기 기다리고 서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올라타지만 철이는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마치 출근하는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아니 차라리 그들이 곁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듯이 옥이와 철이는 서로 마주본다. (shot_reverse shot) 그때 철이는 (다소 뜬금없이) 옥이에게 마지막 인사처럼 간곡하게 말한다. “마지막 부탁이 있는데, 건강해줘” 우리는 이제부터 옥이가 할 일을 알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철이의 작별인사이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 종소리에 이어서 옥이의 자살을 말리는 두 번째 시도이다. 이때 이 말은 동시에 여기서 정반대로 기능한다. 이제까지 완전히 잊고 있던 사실, 옥이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이제 문득 그 시간이 왔음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버스가 도착하고 철이가 떠나갈 때 두 개의 쇼트를 교환한다. 하나는 버스에 올라타서 철이가 바라보는(point_of_view) 옥이의 멀어져가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옥이가 바라보는 멀어져가는 버스의 모습이다. 멀어져가는 옥이와 멀어져가는 버스의 비대칭. 하지만 이 설명에는 놓친 것이 있다. 이때 단순하게 멀어져가는 옥이와 멀어져가는 버스로 교차시키지 않고 갑자기 카메라가 옥이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 다음 옥이가 버스를 쳐다보았을 때 이미 그 버스는 사라지고 난 다음이다. 이 쇼트의 교환은 매우 기괴하게 보인다. 철이는 멀어져가는 옥이를 보았지만 옥이는 멀어져가는 철이를 보지 못했다. 이때 그 둘 사이에 개입해서 다가가는 카메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이에 낀 자율적인 운동. 그녀를 본다기보다는 다가간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동작. 하지만 이때 철이는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마치 반작용처럼 다가간 카메라. 마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는 듯한 이 운동이 일깨우는 것은 정반대로 둘 사이의 텅 빈 공집합의 효과이다. 여기에는 어떤 교환도 없으며 그래서 이 운동은 다가간다기보다는 차라리 밀쳐내는 듯한 반작용의 힘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부터 옥이가 자살로 향하는 짧은 발걸음을 함께 한다. 옥이는 이 영화에서 몇 번이고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매번 멀리서 지켜보거나 그 앞을 지나쳐가거나 이미 지나친 옥이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으로 옥이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걷는다. 그 발걸음이 멈추는 것은 그녀가 약국으로 들어섰을 때이다. 이때 영화는 자기의 무능력에 대해서 앙상해진다. 교회의 종소리. 철이의 마지막 작별인사. 그저 카메라는 그녀와 동행할 뿐 그녀를 막을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마지막 침묵을 지킨다. 영화는 옥이가 수면제를 사는 장면을 찍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약국 앞에서 서성거리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 시간에 집에 어린 두 남매를 남겨놓고 무언가 저녁 찬거리를 위해 채소라도 얻으려 시부모 댁으로 나서는 어머니에로 옮겨간다. 어머니가 막 집 문을 나설 때 옥이는 반대편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으로 들어온다. 그때 옥이는 집을 나서는 어머니를 구태여 부를 필요가 없는데도 그녀를 부른다. 여기서 예기치 않게 어머니를 향해서 다시 한 번 가볍게 카메라가 다가간다. 아니 차라리 옥이의 목소리에 실려서 어머니에게 다가가 그녀를 잡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마치 그 순간 어머니가 무언가 낌새를 알아채고 옥이를 말렸다면, 아니 최소한의 위로를 했다면, 혹시나 완전히 버렸을 자기에게 주어진 명령을 일깨워주기만 했더라면 지금 하려는 행위를 멈추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무심하게 오늘 공장에는 왜 나가지 않았냐고 물어본 다음, 하루 쉬어야겠다고 대답하자,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그래, 라고만 말하고 힘없이 돌아서서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녀가 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 혹은 자살을 포기할 수 있는 기회. 여기서 걸어가는 어머니를 보는 옥이를 보는 카메라는 두 여자의 등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등으로 바라보는 이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덧없어 보인다. 어머니는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려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옥이 쪽을 돌아본다. 그게 어떤 제스처인지는 분명치 않다. 옥이가 한 대답에서 어떤 낌새를 느낀 때문인지, 아니면 공장도 쉬겠다고 말한 딸이 가엽고 미안한 마음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멀리서 자기를 지켜보는 딸을 문득 쳐다본 것인지를 달리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멈칫 거리는 동작은 이상할 정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의 파문을 일으킨다. 어머니가 골목을 돌아서서 사라지자 옥이는 이 불효막심한 딸을 용서하세요, 라는 마지막 작별인사를(voice-over_narration) 한다. 이때 이 인사는 몹시 이상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어머니는 골목으로 사라진 다음이다. 그러므로 이 인사는 텅 빈 골목을 향해 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아직도 남아있을 어머니의 발걸음의 흔적을 향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자 마치 어머니가 돌아보기라도 하듯이 골목에서 옥이를 쳐다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니, 마치 골목이 옥이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상한 비인칭의 시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인칭으로 느껴보는 정감, 그리고 비인칭으로 건드릴 듯이 다가가는 운동의 감각. 우리는 이미 철이를 태운 버스가 떠나버린 텅 빈 거리가 옥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보았다. 옥이는 누군가를 보는데 그녀가 보는 상대방은 그녀를 보지 않은 대신 길거리, 혹은 골목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황. 그때 영화는 옥이의 동선을 따라가는 대신 몇 번이고 다시 영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시작, 혹은 중단된 동선. 여기서 쇼트가 바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옥이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대신 다음 장면은 두 마리의 병아리를 데리고 놀고 있는 두 어린 남매를 보여준다. 혹은 좀 더 정확하게 병아리를 보여준다. 옥이에서 병아리로 그냥 넘어온 두 개의 연속된 쇼트는(S# 1_S# 2) 옥이를 가여운 병아리처럼 보이게 한다. 어린 남동생은 병아리를 잡으려다가 그만 죽여 버리고 만다. 어이없는 죽음. 그때 옥이는 죽은 병아리를 보면서 마치 자기의 시체를 미리 보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옥이는 자기 시신을 거두듯이 그 병아리를 집 앞 멀리 모래사장에 작은 구덩이를 파서 묻어준다. 그때 오늘 새벽에 떠나간 철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voice_over) 이 병아리를 키워서 닭이 되면 다시 병아리를 낳게 될 것이며 금방 오백 마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그 병아리는 옥이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줄 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옥이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는 그 병아리를 모래 무덤에 덮어주는 것이다. 혹은 지금 꿈을 모래 무덤에 묻고 있는 중이다. 그런 다음 방에 앉아 옥이는 어머니에게 남기는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여기서도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유서를 쓰는 옥이를 바라보는 대신 재빨리 그 시간에 군것질을 하러 나간 어린 남매를 따라간다. 이때 우리는 매우 잔인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 남매는 군것질을 하라고 준 동전으로 무엇을 사먹어야 할 지 망설이는 중이다. 이 아이들은 지금 거의 먹은 것이 없어서 몹시 허기진 상태일 뿐만 아니라 거의 군것질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오빠는 동전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하마터면 그 귀한 동전을 하수도 맨홀에 빠트릴 뻔 한다. 깜짝 놀란 오빠는 동전을 집어 들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여동생에게 무얼 먹고 싶은지 묻자 번데기라고 대답한다. 오빠는 그러면 번데기를 산 다음 남은 돈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만나를 사겠다고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한묍영오活?떨어트려 이번에는 하수구를 덮어 놓은 맨홀의 구멍 속으로 정확하게 떨어진다. 거의 잃어버릴 뻔한 것을 되돌려준 다음 다시 그것을 빼앗아 갈 때 어린 남매는 잃어버릴 뻔 했던 것을 되찾은 기쁨 자체를 잃어버린다. 이제 어린 남매는 집에 돌아오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 손에 쥐어주었던 동전은 맨홀이 집어삼켰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어쩌면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옥이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막 옥이는 수면제를 먹는 중이었다. 어린 두 동생은 제 시간에 도착했다. 왜 그 어린 두 동생은 그보다 좀 더 일찍, 아니면 차라리 (끔찍하게도 자살한 옥이의 모습을 보아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살아서 볼 수 있는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게) 늦게 도착하지 않은 것일까. 같은 말의 다른 질문, 어떻게 주인공 옥이의 죽음을 가로 막고 그들은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비극적 상황 속에서의 비극적 도착. 그런 다음 두 개의 자리를 바꿔치운다. 죽음과 삶. 이때 이 신비로운 도착은 반대의 방향에서 다시 질문해보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두 동생의 도착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옥이는 병아리의 죽음을 본 다음 그 시체를 매장하면서 이미 자기의 죽음을 경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이 죽음의 과정 자체가 필요 없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 이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얼룩은 그녀의 어린 두 동생들뿐이다. 순결한 얼룩. 그들은 여전히 세상의 비참함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어린 두 동생만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차이가 주는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이 비참한 조화를 어지럽히는 순결한 존재의 소멸을 목표로 했다면 이보다 더 정확하게 의도하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의 메시지를 과도하게 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예기치 않은 외설적 지식의 이면과 힘겹게 다투어야 할 것이다. 원래의 광경. 그 모습을 본 막내 여동생이 방안으로 뛰어들면서 “언니 뭐 먹어”라고 묻는다. 이미 약을 먹은 옥이는 수면제에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저 비몽사몽간에 “아무 것도 안 먹어”라고 대답하지만 그 말은 배고픈데다가 이미 군것질 할 동전을 잃어버린 어린 두 남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맛있는 거 있으니까 혼자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라며 두 남매는 옥이의 손에 한 움큼 쥔 수면제를 빼앗기 위해서 함께 달려들어 손아귀를 벌린다. 이미 약에 취한 옥이는 허기진 두 남매로부터 수면제를 지킬 만한 힘을 빼앗긴 다음이다. 이때 거의 잠들어가는 옥이는 정반대로 마치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듯이 눈을 커다랗게 뜬다. 그녀가 바라보는 두 명의 어린 동생들은 마치 아귀처럼 달려들어서 그녀의 손에서 수면제를 뺏으려고 한다. 죽어가는 옥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모습은 이미지 전체가 기형적으로 휘어서(mirror_focus) 마치 영화 전체의 얼룩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걸 바라보는 옥이는 두 동생을 가련하게 보는 대신 우리가 영화 맨 첫 장면에서 보았던 바로 그 표정, 그 커다랗게 떠진 눈, 두려움에 가득차서 바라보는 얼굴이 된다. 그때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들의 침입. 그런 다음 똑같은 기형적인 이미지로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모두들 옥이에 대한 원망으로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는 환각이라기보다는, 환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투적인 이미지 뒤에 차라리 어떤 각성의 시선이 있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조차 갑자기 현실이라고 불리는 환상의 장막을 찢고 그 틈새 사이로 얼핏 모습을 드러낸 진실이라는 외설. 가여운 옥이에게 자살은 거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산산조각 나고 난 다음 무의미해진 세상에서 그녀는 의무의 네트워크와 관계를 끊으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예기치 않게 대신 두 명의 동생을 죽인 다음 죄의식을 안겨주고 다시 되돌려 보낸다. 그러므로 옥이는 두 번째 삶을 의무보다 더 무거운 죄의식으로 이제부터 살아가야 한다. (의무의) 감옥에서 출소하는 옥이는 지금 (죄의식의) 감옥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현실은 저 바깥에 동일한 것으로 머물러 있는 중이다. 옥이는 하여튼 그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옥이의 삶을 다루는 대신 자살이라는 행위의 과정을 통해서 거기서 말하여지는 네트워크를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그때 무언가 완강하게 그걸 거절하는 것과 마주치고 있다. 그건 직접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 자리에 불려나온 황옥순의 자리이다. < 법창을 울린 옥이 >는 무언가를 계속 보여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무언가 절반만을 본 것만 같은 결여에 시달리고 있다. 그때 똑같은 무게로 임권택은 이 이야기가 주는 과잉과 마주쳐서 시달린다. 네오리얼리즘이 부여한 현실과 영화 사이의 부등가 교환의 법칙. 그때 중심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대답은 황옥순이라는 간편한 대답을 취하는 대신 그 중심의 안이 사실은 텅 빈 공집합이며 단지 그것이 부서지지 않게 가까스로 유지시키는 힘들의 상태 속에서 정감과 감각이 번갈아 나타난다는 사실만을 영화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불안정한 균형. 아니, 어쩌면 이건 균형이 아닐 지도 모른다. 중심이 검은 구멍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중심인 줄 알았던 얼룩을 지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임권택에게 정감이라는 구멍과 그것을 느껴보기 위해 얼룩을 둘러싸는 감각의 활동은 점점 까다로운 질문이 될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간극. 그 사이의 공백 속에서 임권택은 느닷없이 맹렬하게 주체를 세워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어렴풋이 어느 순간, 아마도 내 생각에는 자살을 행동으로 옮겨가는 그 마지막 장면 전체에서, 사건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가 도래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임권택은 느껴본다. 나는 거의 지워질 듯한 어둠 속에서 오로지 이 장면 안에서만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을 보았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적인 감흥을 느끼면서 영화의 기호들은 황옥순의 행위에서 분명하게 주체가 자기의 정감을 드러내 보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영화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힘을 따라 활동하기 시작한다. 몇 번이고 이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 분명히 임권택도 몇 차례이고 이 순간에로 되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계속) 1966년 100분 흑백 2.35 감독 임권택 아성영화사 각본 이종택 각색 이연진 촬영 김연욱 조명 이한찬 편집 김희수 음악 전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