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여자
- 감독
- 김순철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황순원 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문예영화이자 최하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또한 이 영화는 196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이자 가장 데뷔작다운 데뷔작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당시 기사에 의하면 이 영화는 “네임 밸류만을 존중하는 풍토를 박차고 단역에 이르기까지 기성 영화인들을 완전 배제” 1) 한 것에서부터 주목받았다. 또한 “처녀 연출자답지 않은 뛰어난 재능”과 “전체 연기진의 호연 가운데 그들의 개성미를 부각시킨 흑백화면의 효과” 2) 가 놀랍다는 극찬과 함께 “신인군의 의욕과 저력을 보여준 역작” 3) 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가, 2015년에 발굴되면서 소문에 값하는 영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모더니즘 영화로서의 의미, 문예영화로서의 위상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의 내면을 표현한 본격 염전(厭戰)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제작 신고 단계에서 ‘염전(厭戰), 반전(反戰)이 드러나지 않게 반공영화로 제작하라’는 권고를 받고 반려된다. 이에 영화의 오프닝에 “이 영화는 전쟁을 도발한 북괴에 대한 고발이다. ……”라는 자막을 명시하고, 역시 황순원 소설 원작인 < 카인의 후예 >와 함께 다시 신고하여 수리된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북한군은 나오지 않고 전쟁터에서 비정해져 가는 국군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내용은 그들이 제대한 이후의 정신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작에서는 전반부가 동호의 이야기로, 후반부는 현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제대한 현태를 주인공으로 하여 제대 후 그의 생활을 주로 보여주는 가운데 그의 기억을 통해 전쟁 당시 동호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전후의 풍경이 나오는 대표적인 영화는 < 오발탄 >( 유현목 , 1961)이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오발탄>은 4.19 덕분에 제작될 수 있었던 행운의 걸작이다. 5.16 이후 한국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영화에서 그리는 것은 점점 더 규제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루는 영화들이 적극적으로 제작되며 전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국영화계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거의 나타나지 못했다.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개인의 내면을 다루는 전후소설은 문예영화 전성기에도 몇 편―< 잉여인간 >, < 까치소리 > 등―만 영화화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청준 의 「병신과 머저리」를 영화화한 < 시발점 >( 김수용 , 1969)과 같은 영화에서는 한국전쟁 설정을 굳이 중일전쟁으로 치환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냉전으로 인한 분단국가로서 겪은 동족상잔의 상처를 깊이 건드리는 것이 영화의 제재 차원에서나 정치적, 산업적 측면에서나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1968년을 기점으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되며 한국영화에서 우울이나 절망을 그리는 것에 대한 규제 또한 더욱 강화된다. ‘젊은이의 절망은 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므로 용공(容共)’이라는 논리로 이만희 감독의 < 휴일 >이 상영되지 못한 것도 1968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 미워도 다시 한 번 > < 속 팔도강산 > < 춘향 > 등의 보수적 장르물이 국산영화 흥행의 수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게오르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 25시 >(앙리 베르누이, 1967)가 외국영화 흥행 1위에 오르고, 28살의 클로드 를르슈 감독에게 최연소 칸 그랑프리의 영광을 안긴 < 남과 여 >(1966) 같은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영감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 유럽 영화를 동경하며 지속적으로 갈구되었던, 참신한 형식으로 현대인의 고뇌를 구현하는 모더니즘 영화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시도된다. 김승옥 원작의 < 안개 >( 김수용 , 1967), 홍성원 원작의 < 막차로 온 손님들 >( 유현목 , 1967), 이어령 원작의 < 장군의 수염 >( 이성구 , 1968) 등이 그러한 영화들이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그러한 영화들과 동궤에 놓여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이 근대화 드라이브 속에서의 현대인의 피로를 그리면서 현실에 대해서는 은유나 우의로 에두르고 있다면,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는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인 원인과의 관계 속에서 젊은이의 비정과 고민을 묘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과 대면하는 모더니티를 구현한다. 전쟁 중 동호의 결벽성을 혐오하여 그의 순정을 파괴함으로써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현태가 제대 후 극도의 자기혐오 속에서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외상의 병리를 드러낸다. 또한 돈에 집착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윤구( 김순철 )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석기( 김성옥 )의 모습은 전후(戰後) 증상의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전후 사회의 병리를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숙( 문희 )의 결연한 의지와 현태의 속죄에 의해 증상에 대한 치유의 희망이 담보되며 멜로드라마적 비학으로 봉합된다.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숙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 원작보다 더 낙관적인 결말이다. 최하원 감독의 행보로 보건대 이러한 결말에서 나타나는 건전한 윤리와 희망에의 지향은 이후 최하원 영화세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영화보다도 염전(厭戰) 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영화가 검열을 통과하여 개봉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지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이 영화에는 참신한 면모들이 많이 들어 있다. 현태 역을 맡은 이순재 의 연기는 지금 봐도 매우 인상적이며 < 오발탄 >의 김진규 를 잇는 지적 성격배우의 계보에 놓을 만하다. 또한 감각적이면서도 고민이 드러나는 카메라워크는 흑백화면 속에서 오히려 돋보이며, 현태의 심리 묘사에서 사용되는 정묘한 몽타주는 현재의 관점으로 봐도 신선하다. 아울러 지금은 한국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배우가 된 손숙 씨가 이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1)《경향신문》, 1968.4.13. 2)《신아일보》, 1968.4.13. 3)《대한매일》, 1968.4.16.
사태가 대단히 복잡하지 않은가. 상징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 현전은 부재이며, 지연되지 않은 것이 지연되며, 희열은 죽음의 위협이다. 더구나 이런 체계, 대리보충의 이 이상한 경제에 추가되어야 할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미 판독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협인 대리보충은 또한 최초의 가장 확실한 보호라는 점이다. 그 위협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대리보충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말은 내가 아니라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의 제2부 두 번째 장 ‘이 위험한 대리보충...’에서 루소의 「참회록」을 설명하며 꺼내 든 것이다. 너무 유명한 문장이라 모두들 이미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구태여 대리보충(la supplement)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아주 제한적으로 이상하게도 우리를 막아서면서 환원 불가능하게 버티어선 그 흔적을 설명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결정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결정의 망설임. 그 흔적이 무언가 더해진 잉여의 덧셈에 따라 보충된 것인지(le supplement) 아니면 다른 무언가와 바꿔치기 당한 다음 대리하는 것인지(la suppleance) 그저 하염없이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 물론 루소를 경유하여 데리다가 말하려는 것은 예술과 자연 사이의 대차대조표이다. 나는 거기서 물러나서 단지 이 텍스트 안에서 활동하는 저 텍스트가 왜 항상 환대받지 못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 스스로 충만하지 못한 채 그 틈새 사이에서 출몰하는 저것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저 안의 외침. 바깥이라는 안. 안에 있는 바깥. 무엇이 부족함을 대신하고 그런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라마톨로지」 사태를 좀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임권택 의 영화들, 그중에서도 불편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참조 틀의 어딘가가 부서져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단지 1967년 그 어딘가에서 1977년 어디까지에 한정 지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 욕망의 결산 >(1963), 혹은 < 달빛 길어 올리기 >(2009), < 신궁 >(1979), 그리고 < 아다다 >(1989). 단지 그 부서져 나간 표면의 범위를 따분하게도 바깥과의 대화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한 알리바이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정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영화는 영화사에 대한 각자의 은유라고 고다르가 말했다. 그걸 단지 어디선가에서 빌려온 영향이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처음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뛰어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이 논리를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핵심은 안에서 긍정하기 위해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를 위해서 방법의 전위(轉位)와 그 수순에 따른 재평가의 결과로 나타난 영화에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요구를 순순히 따라야 한다. 여기서 왜 내가 까다로운 데리다의 전술적인 용어를 내세웠는지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불편함을 말할 때 종종 그 영화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데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 잘못된, 아주 잘못된, 그래서 임권택의 진정한 시작의 지점을 놓치는 실패를 항상 가져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이것을 최종 결과의 효과라는 데서 시작해보면 안될까. 이유들의 순서에 종속되지 않은 대리, 그사이에 재빨리 끼어드는 보충. 우리는 올바른 시작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불편한 실패들 속에서 자기원인의 동어반복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진화론적인 모델을 거부한다. 그건 그 영화들 사이에 놓인 영향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꾸만 그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목적론적인 설명의 함정에로 이끈다. 나는 영화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임권택의 영화들은 내게 그런 설명이 결국에는 왜 불가능한지를 알려주는 목록이다. 월하의 검 (1970) < 월하의 검 >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재난에 가까운 실패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임권택 에게 의미 있는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여기서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다. 그 어떤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 무언가를 해본 것도 아니다. 1970년은 임권택에게 그런 해이다. 그 해에 임권택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 애꾸눈 박 > < 이슬 맞은 백일홍 > < 비내리는 선창가 > < 그 여자를 쫓아라 > < 밤차로 온 사나이 > < 속눈썹이 긴 여자 > < 비검 > 그리고 < 월하의 검 >. 어떤 일관성도 없는 영화들. 하지만 이 실패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임권택의 무능력에로 돌리기에는 그에 앞선 영화들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 혹은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 나는 자꾸만 그의 실패한 영화들을 실패한 작품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 영화들은 실패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들의 방법으로 실존하는 중이다. 실패와 부딪쳐서 부서져 나가는 영화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지금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부서져 나가는 참조 틀 사이로 드러나고, 재생산되고, 존재하는 잉여들의 혼란스러운 모방과 마주친다. 잠깐. 모방이라고 했나요? 물론이지요. 그건 다른 무언가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때 모방은 나에게 효과라는 최종 결과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거기서 멈춰 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과정이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최종이라는 종착지. 임권택 은 공식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언제나 정창화 를 이야기한다. 그는 정창화 밑에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충무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영화는 기계군의 활동이며 조직이다. 공장과도 같은 시스템. 그 안에서 개념의 추상화와도 같았던 이미지를 세계 안에서 찍은 다음 배열해야 한다. 여기에는 규칙과 문법이 있다. 그것을 쳐부순다고 말해도 그 안에서 진행되는 부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임권택이 정창화를 말하는 것은 그 인정의 테두리 안에서이다. 그런 다음 (펠리니의) < 길 >과 네 명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존 포드와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를 언급했다. 나는 여기 세 명의 이름을 더하고 싶다. 임권택이 언급하지 않는 이름. 그의 영화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기, 실패의 상황이라고 내가 명명한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마주치는 그림자들의 이름. 셀지오 레오네와 끌로드 를루슈, 그리고 장철. 물론 그 이름들은 잠시 후에 임권택의 영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실패의 상황 속에서 남과 여를 주연으로 한 영화들과 < 남과 여 >, 그리고 쇼 브라더스 영화들은 마치 그림 안의 그림처럼 거기 그림자로 남았다. 영화가 한참을 자신의 서사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이미지들.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종종 지나치게 실패해서 그것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기조차 한다. 미처 예기치 않았던 출현. 주인공이 자기의 몰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가 놓여진 상황이 다른 영화 안의 반복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주석을 달고 싶다. 셀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이 끝난 다음, 그것도 거의 끝난 다음, 그래서 펠리니가 그 방법을 버린 다음, 안토니오니가 리얼리즘을 거의 추상에로 밀고 나아간 다음, 황무지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에 대한 아이러니로 시작하였다. <길>을 자신의 거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말하는 (게다가 전형적인 한국 고전영화문법 안에서 배움을 얻어온) 이 사람은 < 석양의 무법자 >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정창화에게서 충무로의 영화문법을 배운 임권택의 영화에서 잠시 동안 <남과 여>에서 무차별하게 사용된 시네마 베리테의 촬영과 누벨바그의 데쿠파주에 대한 키치적인 활용이 홀연히 등장하는 순간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마주칠 때 나는 어떤 쇼크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남과 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의 한국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여>는 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처 < 히로시마 내 사랑 >과 < 비브르 사비 > < 어느 여름의 연대기 > <사촌형제> < 롤라 > < 활주로 > < 쥘과 짐 > <사자좌> <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 파리는 우리의 것 > <아듀, 필리핀> <산타 할아버지는 푸른 눈을 가졌다>를 보지 못했다. 그저 < 네 멋대로 해라 >와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경험은 중단되었다. 아마도 오직 김기영 만이 영화‘歷’사의 시간을 좇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영은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 그 부근 언젠가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도쿄에 방문했다. 풍문으로 누벨바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일본을 경유하여 각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기의 글 자료들을 읽은 내 독후감은 그렇다. 그들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고, <남과 여>가 굉장한 영화라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의 법칙과도 같았던 고전영화 문법을 무시하면서 그저 그렇게 떠오르는대로 찍고, 연출하고, 편집하고, 그래도 괜찮은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거기서 어떤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을 지배했던 도제제도로부터의 해방. 그때 임권택은 모던 시네마의 방법에 가까이 다가갔다. 실패한 상황. 예기치 않은 보충, 혹은 무엇이 무엇을 대리하기 시작했을까. 이 위험한 대리보충.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여기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의 영화가 모두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임권택은 재빨리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방법의 흔적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다소 기형적인 양태로 분산되고 분할되어 머물렀다. 우리는 임권택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방법을 잘 따라야 한다. 무엇이 멈추자 무엇이 활동하기 시작했을까. 거기서 우리는 영화의 어떤 역량이 표현되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역량. 때로는 실패해버린 표현. 거기에 적합한 개념. 거기서 멈춰버린 기능. (위) 정창화 와 <길>, (아래)셀지오 레오네, 끌로드 를루슈, 장철 나는 여기서 세 번째 이름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생각이다. 장철. 張徹. 1968년 5월 23일 서울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가 개봉하였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렇게 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콩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하위 장르의 하위 장르이면서 동시에 재개봉관을 중심으로 컬트영화가 되었다. 임권택 은 이 이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길게 언급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갔다. 내 질문은 왜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버렸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영화 안에서 장철을 수 없이 다시, 거듭해서 다시, 호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셀지오 레오네와 < 남과 여 >를 불러낼 것이다) 이것이 단지 불균등한 위계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장철과 셀지오 레오네, 그리고 <남과 여> 없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아니, 차라리 그것들의 대리보충 없이 참조 틀을 부술 수 없었고, 그런 다음 거의 불순물과 다름없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다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실패해버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위험한 명제. 임권택에게 그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참을 수 없는 문법이었고, 그런 다음 부서져 가는 그의 영화 안에서 셀지오 레오네와 <남과 여>, 장철은 다시 견딜 수 없는 대가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설명을 따분하게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도식화시키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쟁점이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 자기가 찾고 있는 진정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서만 견딜 수 있는 형식을 찾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철이 단지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영화들이 광동오페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판본 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안의 사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임권택과 장철이 공유하는 것은 무협활극이라는 표면적인 약속의 장르 사이에서의 트랜스 내셔널 네트워크가 아니라 피와 시체들, 복수의 정념과 의리의 도덕 뒤에 수줍게 숨어있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매혹이다. 더도 덜도 아닌 매혹. 그 속에서 그들이 즐기는 기쁨. 바로 거기서, 마치 그것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참조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대한 참조라고 할 정도로 < 월하의 검 >은 장철의 영화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 대협객(大刺客) >과 (부분적으로) < 심야의 결투(金燕子) >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몇몇 장면에서는 거의 같은 구도, 같은 활극동작을 빌려온 살진(殺陣)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기서는 단지 오마주라거나 두 영화 사이에서의 상호 텍스트성이랄까, 이런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교차가 나타난다. 나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오마주라고 말해버리면 어떨까. 이 말을 잘 음미해주기 바란다. 오마주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효과로서 나타나 버린 오류라는 실패한 오마주, 그 안에서 이행의 대리보충을 붙잡아야 한다. 무언가 저 영화가 이 영화에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단지 거기에 동의한다거나 혹은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흥의 복종과는 다른 것이다. < 대협객 >(1967) < 심야의 결투 >(1967) < 대협객 >은 쇼 브라더스에서 장철이 왕우를 주연으로 하여 1967년에 만든 홍콩영화이다. 무협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장철 영화들과 달리 긴 드라마가 장황하게 이어진 다음 아주 잠깐, 그래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하지만 몹시 인상적인 무협활극 장면이 나오는 절정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나면 서둘러 끝나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1969년 10월 4일 종로 3가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자객열전 중의 하나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백성이었던 섭정은 출중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 재능을 시기한 동문 서식의 음모로 인해 스승은 당시 제나라와 적대관계에 놓인 나라의 첩자로 몰리고 무술 도장은 쑥밭이 된다. 이에 섭정과 그의 친구 두파는 복수를 한 다음 섭정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이 되고 두파는 옆 나라인 한나라로 피신하여 거기서 한나라의 충신 엄중자의 자식 무술 사범이 된다. 그런데 엄중자는 재상 한괴가 끊임없이 그를 음해하고 임금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몹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다 못한 엄중자가 두파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자기보다 훨씬 무술이 훌륭한 섭정을 추천한다. 제나라까지 찾아온 엄중자의 마음을 알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섭정은 다만 자기에게는 아직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누이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몇 해 후, 어머니 상을 치루고 누이가 시집을 가자 섭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엄중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하얀 백의에 백마를 타고 귀공자로 분장하여 혼자 수백 명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한괴를 찾아가 그를 처단하고 자결한다. 나는 주변에 있는 섭정과 그의 연인, 그리고 누이와의 이야기는 모두 그냥 지나쳤다. 그런 다음 < 월하의 검 >. 이 이상할 정도로 기괴한 우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임권택 이 직접 쓴 시나리오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임권택은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끊임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 그건 ( 송길한 이 시나리오를 쓴) < 만다라 >를 찍을 때도 그러했고 ( 이청준 이 시나리오를 쓴) < 서편제 >를 찍을 때도 그러했다. < 취화선 >을 찍을 때는 심지어 시나리오를 탈고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에 새로운 대사를 쓴 시나리오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시 고치는 것과 처음부터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임권택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뒤 이어 와서 그것을 닮은 다른 이야기가 이미 앞에서 포위하고 있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가 다른 하나의 대리보충이 될 때 어느 쪽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 그렇게 쉽게 분간할 수 있을까. 후렴구. 나는 지금 실패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 어떤 것도 분명한 지표가 없는 사극의 무대.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 월하의 검 >을 볼 방법이 없고 잘 정리된 줄거리도 없기 때문에 이 글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 임금은 무능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화당 최씨의 미모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권세를 포도대장 최걸에게 모두 넘겨준다. 최걸은 자신을 비방하는 충신들을 모두 척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빼어난 무술을 지닌 장무력을 고용하여 마치 연화당 최씨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것처럼 꾸민 다음 최씨를 지키는 호위무사 박필에게 붙들리는 계교를 꾸민다. 임금 앞에 잡혀간 장무력은 자신을 고용한 자들의 명단으로 충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고 곁에서 통곡을 하며 연화당 최씨는 그들을 모두 참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여기가 영화의 시작이다)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고 이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충신들은 심산유곡에 자리한 절로 피신하여 이제 남은 방법으로 연화당 최씨보다 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을 궁궐로 보내 임금의 총애를 받은 다음 진실을 알리고 간신배들을 벌할 것을 상소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다음 이들은 이미 참수당한 충신의 딸 향아가 이에 적합한 미모를 가졌으며 그녀의 효성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합의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한 향아를 찾는 것인데 우연히도 위험에 처한 그녀를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 박필이 구하게 된다. 박필은 천애 고아로 어려서부터 최걸이 돌보면서 무술을 배우고 그 아래서 최걸의 자객이자 누이인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가 된 몸이었지만 자신의 신세에 대해 처량함을 느끼며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조선팔도를 이리저리 떠돌며 그림을 그리면서 허송세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무술만은 조선 최고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박필은 향아의 정체도 모른 채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변장을 하고 궁에 잠입한 향아를 보고 모든 계획을 깨달은 박필은 부디 이 위험하고 허망한 복수를 중단하고 자신과 멀리 떠나자고 말하지만 향아는 반대로 자신을 도와 복수를 이룬 다음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향아는 임금의 처소에 들고 그의 마음에 들지만 (여기서 나는 그사이에 향아의 정체가 탄로 나고 연화당 최씨의 인두질로 얼굴이 망가져 궁궐 바깥으로 내쳐지지만 심산유곡 절의 주지스님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묘약으로 미모의 얼굴을 고친 다음 다시 궁궐에 입궐한 사연을 둘러싼 대목을 건너뛰었다) 하룻밤 정사를 치르고 나서 증거가 없으니 연화당 최씨와 그 오빠를 벌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최걸은 이제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장무력을 제거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박필에게 제안한다. 박필은 장무력을 찾아가 일대 결전을 벌이지만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지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과 대결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수를 쓰지 않는 박필의 마음속 진심을 본 장무력은 기꺼이 그를 위해 임금 앞에 가서 진실에 관한 증언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박필은 그 증언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임금의 처소를 향해 수 없이 몰려드는 병사들과 홀로 싸워야만 한다. 장무력이 모든 증언을 마쳤을 때 박필은 수백 명의 병사들의 시체 곁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중이다. 그 곁에 온 향아는 그를 비로소 여보, 라고 부르며 품에 넣어둔 극약을 먹고 그와 같은 운명의 선택을 한다. 그 시간에 연화당 최씨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자 자결을 한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임금은 홀로 남겨진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들의 명단을 보면서 당신은 포도대장 최걸을 허장강이 연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역의 컨벤션이라는 약속. 하지만 김지미 는 향아가 아니라 악독하기 짝이 없는 연화당 최씨를 연기한다. 향아는 김명진 이 연기한다. 물론 배역은 일종의 수건돌리기 게임이다. 영화 바깥의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구든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질문은 이야기 안에서 이들 사이의 오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이 영화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아마 이 말이 당신을 당황시킬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언가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결말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순간은 결말이 다가왔다기보다 무언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투명하고 선악이 분명하며 우리가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따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점 그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비웃으면서 보편적인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해버린다. 여기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정박지인 임금은 단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과도하리만큼 색욕에 빠져 있다. 그 역을 연기하는 김순철 은 다른 배우들과 전혀 달리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어색한 코미디의 연기를 한다. 김순철은 단 한 장면에서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김명진 과 침소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때조차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홀로 존재한다. 불편한 고정점. 나는 당신에게 임권택 이 영화 연출을 할 때 언제나 연기를 교정하는 것에서 그 인물의 형상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 정창화 감독은 나를 카메라 옆에 앉혀놓고 배우를 보라고 시키는 거예요, 어떤 배우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약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내가 시나리오와 인물 사이의 오차 범위를 줄이는 방법이었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임금은 만월이 뜨는 밤이면 내시 한 명을 데리고 홀로 비원에 행차해서 그 달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이건 궁중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래서 향아는 임금이 혼자가 되는 그 시간에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박필에게 애원한다. < 월하의 검 >이라는 제목은 달빛 아래서 대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에 거기에 가야만 하는 향아와 그녀를 거기에 보내야 하는 박필의 애처로운 사연의 알레고리이다. 하나의 시간. 만월의 밤. 세 개의 선. 임금과 향아와 박필. 서로 맞지 않는 정념들 사이에서 운명적으로 짜 맞춰져야 하는 매듭 사이로 벌어진 틈.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그 자신들이 짓지도 않은 죄를 짊어진 상태란 무엇일까. 말하자면 비극의 수순. 그런 다음 매듭을 자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임권택은 (장철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이 이야기가 죽음에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필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 운명 앞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녀의 간절한 소원. 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저 사람은 임금의 침소에 들어 육욕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에게 벌거벗은 살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거의 기술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1970년의 한국영화 촬영기술을 바탕으로 무리할 정도로 반복해서 몇 번이고 만월(滿月)의 밤을 찍는다. 미첼 카메라의 둔중함과 값싼 아그파 필름, 그리고 조악한 조명은 한밤중에 만월을 찍는 것이 불가능한 장비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만월의 밤은 한낮에 밤 장면을 찍었다. (day_for_night) 종종 잘못 색 보정된 다음 무성의하게 현상된 필름들은 이 만월의 밤 장면들이 낮에 촬영되었음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월하의 검>은 기술적으로 거의 재난에 가깝다. 그걸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냥 그걸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걸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의도라면 그건 나쁜 의도이다. 여기에는 처음부터 그래도 상관없다, 는 자포자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임권택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걸 설명하는 것은 전기 작가의 몫이지 내가 할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여기서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월하의 검>은 미학적 기준으로 무자비하게 설명하기를 단 한 순간도 망설일 필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려다가 실패하기는커녕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실패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다음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기묘한 실패의 정식화를 끌어낼 수 있다. 그건 실패가 외재적 조건일 때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부정에 대한 긍정이라는 역설이다. 이때 영화는 임권택에게 일종의 자기 심문과 같은 것이 되어간다. 마치 영화가 자기의 속살을 내보이듯이, 정말 부끄럽게, 필름의 한계와, 촬영의 제한적인 조건과, 제작의 무성의한 진행에 관한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끔찍할까.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수수방관해야만 할 때, 그때 거기서 할 수 있는 방어의 기술이 전혀 없을 때, 임권택은 반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바로 거기서 위험천만한 상실이라고 할까, 그 자신의 영화의 내부적인 멜랑콜리가 불연속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안의 질문. 지금 이것은 그래도 성립되고 있습니까. <월하의 검>은 거의 부서진 영화이다. 그런데도 가까스로 버티고 선 무언가가 이 영화에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것을 방어하면서 성립시키고 있다. 재앙을 피해야만 해.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해. 여기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장철의 < 대협객 >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을 쳐다보게 된다. 그때 그건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제도 바깥에서 나타난 부정성이다. 몹시 사악하고 거의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 강제적인 영화의 속도. 쇼 브라더스 영화의 처음 보는 기이한 문법. 거기서 섭정의 삶은 자유자재로 스튜디오 속을 거닐며 자기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다음 마지막 순간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오른다. 그렇게 사람이 날아가도 상관없는 것일까. 새로운 동선. 영화에서의 새로운 선, 하지만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선. 그 자신의 학습을 통해 얻어낸 경험을 앞지르는 건너편의 방법이 나타나서 부서져 가는 참조 틀 사이로 대리하고 보충하는 시간은 이 영화가 발작하는 순간들이다. 상감,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옵니다. 사실이옵니다. < 월하의 검 >을 보다가 누구라도 멈춰 서게 될 두 장면, 그런데 거의 마지막 장면, 그래서 이야기가 멈추는 두 장면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서 임권택 은 장르 안에서의 연쇄를 갑자기 끊어버린다. 그런 다음 이야기를 밀어내고 어떤 대체의 구조를 찾기라도 하듯이 인물에서 그것을 보충하려 든다. 어떤 절단. 그런 다음 그것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기라도 한 듯한 결정. 장무력이 임금의 앞에 가서 진실을 고하고 나자 포도대장 최걸과 연화당 최씨를 불러 그 말이 모두 사실이냐, 라고 묻는다. 그러자 최걸은 그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로 시작하는 사극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만나는 상투적인 대사를 시작한다. 물론 악인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기에 조금도 자비심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때 최걸 의 말을 자르면서 연화당 최씨가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표정으로 모두 사실이옵니다, 라고 대답한다. 임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생명을 구걸하는 요구를 거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동시에 권리와 정의를 일치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임금과 국가의 (상투적인) 변증법. 하지만 연화당 최씨는 이 일련의 자동적인 연쇄를 중단시킨다. 그런 다음 임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한다. 저년과 저, 둘 중에 누가 더 예쁜가요?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에 이 질문은 적절치 않은 내기이다. 왜냐하면 임금의 대답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녀의 목숨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생명에 무관심한 듯한 질문. 하지만 이때 임금은 여기서 그 자신의 대답이 결정의 이해관계로부터 바깥에 놓이기 때문에 연화당 최씨의 질문은 임금의 자리로부터 그녀의 침소에서 몸을 탐했던 한 남자에로 임금을 추락시켜버린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는 임금으로부터 그건 물론 네가 더 예쁘긴 하지만, 이라는 대답을 듣자 거기서, 바로 그 대답의 거기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옆에 서 있던 신하의 칼을 빼 들어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대답이라는 패배. 대답을 통한 권리의 상실. 정의의 연쇄적인 추락. 자기 목숨에 대한 연화당 최씨의 스스로의 결정. 임금은 순식간에 결정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빼앗긴다. 그러므로 거기서 임금의 명령이 대상을 놓칠 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얻어낸 진실은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월하의 검>에는 표면적인 결론과 달리 드라마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사필귀정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주인은 자기의 권리를 빼앗기고 주인의 주인은 그 권리를 죽음으로 돌려준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할 때 향아는 임금께 고하는 장무력의 고백을 위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을 상대로 희망 없는 칼부림 끝에 죽어가는 박필에게 달려온다. 물론 이 장면은 장철의 < 대협객 >의 마지막 장면의 변주이다. 혹은 < 심야의 결투 >의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대결을 끝낸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서 피를 흘려가며 끝없이 밀려드는 무사들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필사적인 결투를 계속하는 은봉황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박필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가 입은 옷은 피로 범벅이 되어 계단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달려온 향아는 그를 껴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박필은 향아에게 이제는 만족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반복해서 향아의 복수를 말렸고 그녀의 희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설득했으며 단 한 번도 그녀의 결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도와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향아는 복수에 성공했고 그녀는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때 향아는 박필의 질문에 대답한다. 저 탐욕한 무리들을 떠나 당신과 함께 떠나겠어요. 연화당 최씨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향아의 동선을 쫓아온 당신은 갑자기 멈춰 설 것이다. 탐욕한 무리들. 그 대답에서 가리키는 탐욕한 무리들은 최걸과 연화당 최씨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당한 충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아를 궁궐에 보내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원해달라는 명령을 내렸던 아버지의 친구들. 대의를 위한 희생. 향아는 그 충신들을 최걸과 연화당 최씨 남매와 별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그들은 서로 권력을 잡은 자와 잃은 자의 반대의 자리에 놓여있을 뿐이다. 향아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었고,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한 그 빈자리, 임금의 옆자리에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한 다음 품에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만일의 경우를 준비한 독약을 아낌없이 자기 입에 털어 넣는다. 두 개의 자살. 즐비한 시체. 여기서 자살은 어느 쪽도 자포자기가 아니다.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살을 선택하면서 무언가를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길고 긴 영화의 목록 끝에 자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정식화가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말한 이 사람의 영화에서 끈질기게 자살이 반복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부를만한 < 취화선 >에서조차 마지막 장면에서 오원 장승업은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결론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장승업에 관한 전기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그저 실종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살고 있는 각자의 주인공들이 살아온 삶의 결론에 이르러 각자의 죽음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디서 시작했건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어떤 (텅 빈 상태의 공허한) 중심에로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역사 그 자체. 나는 <취화선>에서 바로 이어지는 또 한편의 전기인 < 하류인생 >의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여기서 자기의 자리를 텅 빈 구멍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나는 임권택에 관한 논의를 더 멀리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한 선택으로서의 장철의 쇼 브라더스 영화를 경유할 필요를 느낀다. 거기서 시작했고, 거기 머물지 않기 위해서 비극적인 것에서 진정한 비극에로 점핑하면서 도약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과정이, 임권택의 목록을 쫓아가는 내게 감동을 준다. 방법론으로서의 소용돌이의 심연. 무한정한 회의. 그 안에서 탄식하는 부자연스러운 매혹. 먼저 덧셈을 한 다음, 보충한 다음, 그다음은 빼내는 것이다. 거기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대리를 다시 바꿔야한다. 대리보충에 대한 대리. (데리다의 표현을 빌려) 이중의 세션. 물론 모든 문제 안에는 대답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얼마나 주어져 있는가. 이제까지 나는 < 월하의 검 >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모든 장면들이 보고 난 다음 내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권택 은 내가 보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 어떤 장면을 종종 바늘처럼 찌르듯이 불쑥 내밀 때가 있다. 이건 바르뜨가 말하는 푼크툼과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 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따로 이야기에서 때어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을뿐더러 이미지 자체가 훌륭한 것도 아닌데 정말 갑자기 그 장면이 이야기 앞으로 나올 때가 있다. 그때 이 장면을 이야기에 놀랍도록 적절하게 조응한다거나 혹은 이야기를 압도하면서, 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면은 이야기에 대해 몹시 불길하고 축축한 외설성을 갑자기 드러내듯이 출현한다. 여기서 방점은 갑자기, 에 놓여있다. 그건 무언가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만 같은 불만에 빠졌을 때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장면이 앞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나는 상연, 이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의도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누구에게? 우리에게. 왜 그런 상연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건 이야기의 표면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필과 향아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제 자리를 맴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박필은 향아를 그녀의 원대로 한밤중에 비원으로 데려다준다. 비원에 깊은 밤이 오면 임금이 내시 한 명만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며 이 시간을 홀로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향아는 그 밤이 만월의 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한밤중의 비원에 홀로 앉아 오지 않을 임금을 기다리며,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장소에서, 그 누구도 들을 리 없는 피리를 거기 없는 임금을 향해 불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이야기 안에서 오인의 청각 기호가 작동하는 중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밤은 깊어가고 아무리 기다려도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향아는 피리 불기를 중단한다. 이때 화면에서 향아가 중단을 했는데도 영화는 계속해서 피리를 분다. 그때 이 피리는 향아의 몸과 분리되어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다음 마치 장면의 사운드 트랙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 홀로 남은 향아를 위해서 영화가 불어주는 풍경으로서의 청각 기호가 된다. 이 이행의 순간은 순식간에 벌어져서 단지 실수가 아니라 마치 이야기 전체가 어떤 오작동을 일으킨 것만 같은 인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임권택은 텍스트라고 정의 내려진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거기에 마치 어떤 맹점(blind_spot)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의 가시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가장 가까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이걸 단지 속임수라고 지나쳐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갑자기 이야기 바깥에서 운명이 찾아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이야기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이야기를 조정하는 끈. 이때 운명은 비극을 상연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해진 것일까. 임권택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에서 역사를 삭제하는 대신 역사 안의 실재적인 질서가 작동시키는 운명이 비극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남겨놓는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니 차라리 그런 임금의 존재를 역대 왕조에서 누구로부터도 유추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가 아니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대리된 가상의 임금. 그 안에서의 광동 멜로드라마의 보충. 이때 임권택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서 다시 이야기의 현실 안으로 되돌아올 때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을 준비해놓고 있다. 향아는 아무리 기다려도 비원에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이때 향아가 방에 앉는 장면은 무언가 이상한 구도로 잡혀있다. 지나치게 멀리 물러난 카메라와 향아의 거리. 그녀를 둘러싼 어둠. 그런 다음 호롱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면서 이제까지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화당 최씨와 그녀의 궁녀들, 그리고 야경을 돌며 궁궐 안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마치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병풍처럼 향아를 둘러싸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 우리를 경악(驚愕)이라는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여기가 궁궐 안에서의 향아의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자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것처럼 여겨진 그녀의 방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방을 마치 향아에게만 개인적으로 허락된 장소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기를 향아의 안전한 피난처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화당 최씨가 여기에 나타났을 때는 습격을 당했다기보다 갑자기 피난처의 베일이 찢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이를 때까지 연화당 최씨는 향아의 행동반경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거나 마치 그 둘 사이에 교집합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원. 각자의 운동. 그런데 가장 이상한 세 번째 이유가 남아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이 향아와 연화당 최씨 두 인물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진지함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나태했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의 동선 안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이후의 진행을 생각하면 거의 희박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란 우리들은 그만 이 순간에 불쑥 찾아온 예기치 않은 방문객을 맞이한 심정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임권택은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이 시기의 임권택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는 다시 참혹한 기술적 수준의 장면들과 진부한 이야기에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개의 자살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둘이 자살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 월하의 검 >에서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 속의 요지부동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죽음 끝에 정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무대가 된 존재한 적이 없는 조선 시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임금은 새로운 여자를 찾을 것이며, 그는 정사에 관심이 없으며, 충신들의 무리는 자신들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임권택 은 그의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하여 사극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왕조와 역사적인 실록은 이야기에 개입하였으며, 실존했던 인물들은 자기의 자리를 버티고 앉았으며, 외세는 이 시대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역사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때 그는 우아한 화면과 그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연출하였다. 우리는 임권택이 1934년에 전라남도 끝자락 아직 조선 시대의 향취가 남아있던 시대에 자라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1965년에 만든 < 왕과 상노 > 혹은 그 무렵부터 실록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임권택의 영화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시대의 조건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부여한 최소의 이치였다. 제도와 계급. 의상과 호칭.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역사의 매트릭스. 역사는 형식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임권택이 누린 것은 자유가 아니라 절망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공허한 유교에 바탕을 둔 감상적인 남녀 사이의 희생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전근대적 향수의 눈물이었다. “그때 그 영화들을 만들면서 내 영혼이 다 부서지고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본 시대는 아니지만 이게 무어가 진짜고 무어가 가짜인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다 들어본 세상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서 법도와 예절을 배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내가 내 손으로 좋았던 유산을 다 부수고 있으니 만들면서 내내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 월하의 검 >은 정확하게 그 말에 대한 대답이다. 임권택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으며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자기에게 강요된 조건을 수락해야만 했다. 그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참으로 참혹하게도 임권택이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 증언 >을 경유하여 그해 여름 한국전쟁을 마주 보면서, 다 부서져 버린 고향을 바라보면서, 흩어진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총을 쏘고, 고발하고 신고하고, 죽고 죽이는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돌아왔다. 하지만 잠시만, 아직은, 아직은 좀 더, 나는 임권택의 그 시간에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므로... (계속) 1970년 10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임권택 촬영 최호진 조명 윤창화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지미 윤양하 김명진
옛 영화는 자주, 영화 자체의 재미라기보다는 그 영화가 지니는 문화사적 맥락의 정보들 때문에 보게 된다. 특히 타 장르와의 교섭이 활발한 작품들, 대중영화로서 당대 유행하고 있던 주류적 흐름에 충실한 작품들은 더 그러하다. 1967년 이규웅 감독의 < 치맛바람 >도 그런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는 수작이 아니다. 사극을 주로 연출해왔던 이규웅 감독이 만든, 정말 몇 편 안 되는 현대물 코미디이다. 그래서인지 코미디 연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리듬감과 속도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고, 연기로부터 소품, 카메라 워크에 이르기까지 희극적 과장이 들쭉날쭉하여 균형이 어그러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당시 드라마와 쇼에 사운을 걸고 있던 상업적 민방 동양방송(TBC)의 인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이고, 1960년대 후반의 수많은 코미디영화들의 흐름 속에 놓여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다양한 문화사적 맥락을 읽어낼 흥미로운 작품임을 깨닫게 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방송드라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원작 공급처였다. 일찍이 해방 직후 연속극의 시작점에 놓인 < 똘똘이의 모험 >(1946)이 영화화된 것부터 시작하여, 연속극의 안정적 편성의 시작인 < 청실홍실 >(1956)부터는 인기 연속극은 으레 영화화되는 수순을 밟았고, < 로맨스 빠빠 >, < 박서방 >, < 빨간 마후라 >, < 남과 북 > 등 1960년대의 수작 영화 중 적지 않은 작품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라디오드라마였다. 1964년 동양방송의 개국과 함께 녹화가 가능해져 텔레비전 연속극이 발전하고 있었고, 따라서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텔레비전드라마의 영화 리메이크가 간간이 나타나는데, 텔레비전드라마의 리메이크영화는 그리 성공적인 작품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영상물을 또 다른 영상물로 옮기는 이러한 리메이크는,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했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 치맛바람 >은 1967년 동양방송 주말연속극의 또 다른 이름인 ‘유호극장’의 작품이다. 극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같은 시간대에 한 작가가 계속 집필한 사례는 한국방송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그 정도로 당시 유호는 매우 인기 있는 작가였고, <치맛바람>은 1965년부터 시작된 유호극장의 한창 시절 작품이다. 유호는 희극에 능한 작가이며, 특히 도시 중간계층에 속하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벌이는 희극적 사건을 삽화적으로 펼쳐놓는 것을 좋아한다. < 치맛바람 > 역시 그러하다. 가난한 월급쟁이 ‘장’은, 아내, 아버지, 대졸 실업자와 여대생 동생, 중학생 아들까지 먹여 살리느라 취미는커녕 담배마저 끊는다. 견디다 못한 아내 ‘진’이 계를 들어 돈을 벌고자 하는 데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돈 주무르는 수완이 능란한 계주 ‘풍’을 비롯한 계꾼 여자들은 한복 치마를 펄럭이며 몰려다닌다. 집단화된 여자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집단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남자들은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쩔쩔 맨다. 바깥으로 나돌며 돈을 만지는 드센 여자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는 이미 1950년대부터 흔했다. 이 겉멋 든 여자들은 남자 머리꼭지에 올라선 것처럼 굴지만, 결국 이들에게 몰려드는 남자들과의 관계, 혹은 금전 관계의 실패로 극적 처벌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런 보수적 시각은 오래 유지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놓인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작품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치맛바람 일으키는 계군들은, 1950년대의 < 자유부인 >이나 < 여사장 >처럼 미국 여배우처럼 차려입은 멋진 여자들이 아니라, 그냥 한복 입은 중산층 아줌마들이다. 또한 이 여자들에게 ‘껄떡대는’ 남자들 또한 돈 많은 사장님만이 아니라, ‘진’의 시아버지나 룸펜 시동생처럼 장삼이사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1950년대에 눈 뜨기 시작한 물욕과 성욕의 적극적 구현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대도시의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한편, 치맛바람이 극적 처벌을 받긴 하지만, 아내가 나서서 계라도 하며 살아나가는 도시 서민의 생활방식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60년대에 가정의 경영권은 이미 주부에게 넘어왔고, 주부는 시아버지부터 시동생의 소소한 지출까지 간섭하면서 재태크에 눈을 돌리는 경제적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드라마 동영상이나 대본이 남아있지 않아 영화와의 차이를 정교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나, 원작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오리지널 대본과 비교해 보면 영화화 개작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삽화의 수를 줄이고, 성적 농담과 노출, 슬랩스틱코미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크게 강화했다. 즉 당시에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서영춘 등 코미디언의 개인기를 중심으로 젠더 선입견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영화의 관행을 받아들인 것이다. 가정과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희극적 상황을 그려내는 데에 치중한 유호 의 텔레비전드라마의 경향이, < 남자 식모 > 같은 영화가 주를 이룬 코미디 영화의 경향으로 흡수되어 조정된 양상인 것이다. 비교적 원작에 가까웠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 ‘진’이 사업상 만난 무 사장과 요정에서 춤추는 장면이 삽입되고, 뚝섬유원지에서 수영복 바람으로 춤추는 장면이 반복되며, 특히 뚱뚱한 여자 코미디언 오천평 과 서영춘과의 엎치락뒤치락 장면을 길게 배치하는 등, 내용이 많이 추가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렇게 자극의 수위를 놓여놓았으니, 결말 역시 좀 더 과격하거나 억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데, ‘장’의 계몽적인 일장연설로 계꾼들이 개심하는 결말도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없다. 이규웅 이 낯선 장르 코미디를 만나 이 작품은 다소 어설펐지만, 이후 그가 코믹한 사극인 < 공주 며느리 >, < 꼬마 신랑 > 등을 연출하는 데에 이 작품은 중요한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희극적 캐릭터를 귀엽게 잘 소화해낸 남정임 은, 이후 이규웅의 코믹한 사극의 주인공을 도맡았다. 소심한 남편 ‘장’을 맡은 허장강 의 계산된 정교한 연기, 고령에도 불구하고 뚝섬유원지의 록밴드 앞에서 엉터리 영어로 팝송을 부르며 판을 제압하는 아버지 김희갑 의 놀라운 감각, 남정임 과 1950년대 아프레걸을 도맡았던 이빈화 의 과감한 비키니, 그리고 유호 작품에서 허랑방탕한 삼촌(시동생) 역을 단골로 맡았던 김순철 의 대체 불가능한 시동생 연기 등은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