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소녀 케나디
- 감독
- 김재환
- 제작년도
- 2008
그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태극기가 망토처럼 어깨 위에 걸쳐져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태극기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결연했으며, 또 어떤 면에서 순수했다. 내 재판 일정이 매번 박근혜 공판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잡힌 까닭에 재판을 받으러 갈 때마다 그 풍경을 마주해야 했다(나는 지난 2월 모태펀드 화이트리스트 정황이 있는 영화사와 ‘가짜뉴스’ 노컷일베 그리고 관제 데모를 주도한 정황이 있는 우익 단체들이 모여있는 건물에 들어가 취재하다가 체포됐고, ‘건조물침입죄’에 따라 벌금형 100만 원으로 기소된 뒤, 9월 14일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이 끝난 뒤 법원을 나오자 그들은 눈물을 글썽인 채 태극기를 세차게 흔들며 “탄핵 무효”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이 풍경을 몇 차례 마주하면서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들은 촛불 집회 때 연단 위에 올라가 과격한 발언을 일삼고,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을 선동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조장했던 사람들과 달랐다. 다큐멘터리 < 미스 프레지던트 >( 김재환 , 2017)에도 이들과 비슷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청주에 사는 조육형 씨는 매일 아침 의관을 정제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에 절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농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이야말로 조국 근대화의 기치라고 굳게 믿고, 태극기 집회가 열릴 때마다 노구를 이끌고 서울에 올라와 태극기를 흔드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그의 표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답답해하면서도 걱정스럽다. 울산에 사는 김종효 씨 부부 또한 지갑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진을 넣고 다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생각만 하면 눈물이 고인다. 이들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난한 조국과 국민을 구제해준 ‘아버지’이자 신화다. 박정희와 육영수로부터 형성된 신화는 ‘동정의 아이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물림 되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일부 한국사회는 여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그들을 결코 풍자의 대상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떤 편견이나 프레임을 갖지 않고, 오히려 예의를 갖춘 채 애정을 가지고 이들을 담아낸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어떠한 시선이나 평가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통해 거짓말이 근거하는 (미디어와 정치권력의)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들추어냈던 전작 < MB의 추억 >(2012)과 사뭇 다른 태도다. 이 영화는 그저 교회나 성당에 가서 신을 숭배하듯 박정희 기념관을 찾아 박정희의 대형 동상 앞에서 기리는 그들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매우 숭고하면서도 평범하다. 이들을 통해 < 미스 프레지던트 >는 ‘보통’ 사람들이 박정희·박근혜를 종교처럼 숭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들이 가진 정서의 뿌리는 어디서 기인하는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영화에 나온다. 박정희에 대한 신화는 어쩌면 박정희 세대들이 가장 화려했던(혹은 젊은) 시절에 대한 판타지에서 기인하는 건지도. 그 점에서 < 미스 프레지던트 >는 윗세대들을 이해하는 작은 단초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니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러한 질문을 우리는 상시로 받거나 자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 한국의 교회에 이 질문을 똑같이 던진다면 과연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영화 < 쿼바디스 >의 화두다. 매년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나오고 또 독립영화의 그 자유로운 창작 정신으로 인해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그다지 새로운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가 현재 어떠한 상황과 위치에 있는 가를 생각한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압축한 문구인, 교회가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고, 교회가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되었고, 교회가 한국으로 가서 대기업이 되었다는 말처럼 한국의 교회는 점점 거대해져서 대기업이 되었고 여차하면 바벨탑을 쌓을 기세이다. 이는 비단 종교인이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현실일 것이다. 적어도 도심에서는 밤하늘의 별보다 붉게 반짝이는 십자가를 보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니 말이다. 정통을 표방하든 이단으로 몰리든 교회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예수의 계승자로 보기엔 너무 세속화되었고 너무 물신화 되었다. 이 지점을 김재환 감독은 되묻고 있다. 그가 만든 문제적 전작들인 < 트루맛쇼 >와 < MB의 추억 >처럼 이 영화는 강렬한 사회비판을 담고 있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는 면에서는 전작들과 동일 선상에 있다. 이미 <트루맛쇼>를 만든 다음 차기작의 소재는 한국 기독교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블랙코미디적인 영화로 < 쿼바디스 >를 완성했다. 조롱과 비판을 적절히 섞고, 마이클 모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동원해 패러디적 요소를 가미하며 한국 기독교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더욱 배가시켰고, 누가 들어도 알 만한 대형교회와 그들만의 교단과 목사들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언론인 출신답게 자신의 선배도 실명으로 동원해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도 자유분방하고 날카롭게 해낸다. 이 영화의 가장 강점이 바로 이런 점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비판하기 힘든 거대한 권력을 향해 조소와 비난을 마음껏 하는 그런 후련함 말이다. 자신이 주류 언론 출신이라 더욱 쉽지 않았을 이런 비판을 자유롭게 하는 정신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독립영화가 가져야 할 태도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빛난다. 실제로 < 트루맛쇼 >를 만들 당시에 이미 여의도에서 꽤나 알려진 외주 제작사였던 그의 회사가 이 영화를 만든 뒤에 일감이 뚝 끊겨버린 것에서도 이러한 용감한 정신의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실제 필자가 김재환 감독을 수년 전에 만났을 때, 그도 <트루맛쇼>를 만들게 되면 자신의 회사가 어려워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진실을 외쳐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후 < MB의 추억 >을 비롯해 < 쿼바디스 >에까지 이른 것을 보면 그의 일관된 사회 비판적 작가의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이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에게 찬사와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한 편으로 한국 관객들은 민감한 주제를 강한 패러디와 조소로 엮어나간 이 작품에 대해 아직은 생경함을 느끼는 것 같다. 독립다큐멘터리로서는 2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흥행이라 할 수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비해선 그리 스코어가 높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독교 관련 영화들이 대부분 헌신적인 성직자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완전히 색다른 영화이고 대부분 기독교를 미화한 측면이 적지 않았던 영화들이 당연하게 일정한 관객을 담보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소재나 전개방식에 있어 이미 이러한 위험은 감수하고 제작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기대에는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연상호 감독의 < 사이비 >와 같이 종교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은 영화들에 비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사이비>가 아주 세밀히 종교의 문제점을 파헤친 영화라면 < 쿼바디스 >는 보다 거시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한국의 기독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고 강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길을 걷지 않고 반대로 가고 있는 한국의 대형교회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눈에는 이들이 분명 예수의 가르침을 욕되게 하는 집단으로 확연히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그가 동의를 구하는 지점일 것이다. 물론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이 불합리한 현실에 우리가 눈감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