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TV]최군의 리얼습격2 (27화[김지수편])
- 제작년도
- 2011
우주와 크리스마스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면 이 영화를 감상하기가 어려워진다. 논리적 연관성으로 출발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 8월의 크리스마스 >를 떠올린다면 조금 가까이 온 셈이다. 수수께끼 같은 제목의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영화이다. 그 과정에서 이름이 같은 세 명의 ‘우주’가 등장하고 같은 시공간에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판타지 영화라고 부르기도 모호하다. 되려 < 건축학 개론 >이나 < 번지점프를 하다 >가 연상되는 이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 우정, 꿈과 미래 등을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를 연출했던 김경형 감독은 남편과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사는 38살의 성우주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다. 성우주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동해의 골동품 가게를 인수하게 되는데, 어릴 적부터 미술에 대한 동경을 품어왔던 그녀는 그곳을 카페로 만들기 위해 직접 인테리어 하기 시작한다. 인테리어 작업 초반, 골동품 가게 주인의 손자 승현을 만나고, 그 후 그의 친구인 19살의 또 다른 성우주를 만난다. 그리고 골동품 가게에 자신이 팔았던 인형을 찾으러 온 26살의 두 번째 성우주와도 조우한다. 벌써 이름이 같은 성우주가 세 명이나 등장하고 있으니 당연히 현실적인 영화는 아니다. 또한 38살 성우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살한 날, 골동품 가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모두 같은 날이다. 이쯤 되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무엇을 말하려는 영화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우연적 아니 필연적 사건보다는, 이 세 ‘우주’의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현실 감각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38살의 성우주는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복제한 것 같이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두 명의 우주를 보며 혼란에 빠지게 되고, 다른 두 명의 성우주는 38살의 성우주가 겪었던 바로 그 일로 현재 혼돈에 빠져 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19살과 26살의 성우주는 “당신이 나의 미래를 알 것 같으니 내가 어떤 길로 가면 좋을까요”라는 세속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토로하고 고뇌할 뿐이다. 어찌 보면 아주 인간적인 셈인데 이에 38살의 성우주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당신들이 미래가 아니야. 당신들은 당신들의 힘으로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야 해” 라고. 극히 상식적이지만 현명한 대답이다. 이 영화의 중심 주제도 바로 그러한 것 같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삶만이 오직 진실이고 행복이라는 것. 38살의 성우주가 만든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19살의 성우주나 26살의 성우주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동해안의 시원한 경치와 고흐의 그림, 김지수 의 깊은 눈빛과 그윽한 목소리가 판타지적 요소를 더하는 < 우주의 크리스마스 >는 분명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다. 마치 여행을 와서 경치를 보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인생을 생각하는 여행자의 마음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심은진 에게서 아이돌이 아닌 그녀의 다른 인생이 보이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일 듯싶다. 아쉬운 것은 현재의 영화시장이 이런 잔잔하고 사색할만한 영화에 문을 잘 열어주지 않을 만큼 냉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목을 ‘우주의 광복절’이라고 할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남은 것은 관객의 힘뿐 아닐까?
우리는 올 한해 동안 국내에서 개최된 여러 영화제를 통해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두드러진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다. 즉, 창작자가 허구를 실제처럼 구성하여 이야기를 표현하는 극영화(Fiction film)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허구가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나 인물을 직접 시각화 하면서 주제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로서의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먼저 4월에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최근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이였다>(감독: 앤 마리 플레밍), <사랑하는 이들>(감독: 사만다 무어) <100개의 다른 코>(감독: 안드레아 도르프만), <예술가와의 인터뷰>(감독: 쉬라 아브니), < 템비의 일기 >(감독: 김지수 ) 등 다수의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특별전을 통해 소개했다. 이들 영화들은 에이즈와 여성의 문제, 신체적 결함과 성형 혹은 예술, 이혼과 이주, 정치적 망명, 전쟁과 아동, 고문의 피해 등과 같은 현실 속의 문제들을 사적(私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에 사용된 각종 애니메이션 기법들은 사실의 단순한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진실’ 속으로 들어가서 이를 새롭게 시각화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5월에 개최된 서울환경영화제는 지난해 제63회 칸영화제에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울부짖는 섬 Barking Island>(감독: 세르쥬 아베디키안)을 상영하면서 감독과 함께 특별한 대화시간을 마련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와 디아스포라(Diaspora 집단이산 혹은 집단이주)로 인한 아픈 역사를 경험한 세대의 아르메니아인을 부모로 두고 있는 감독은 20세기 초반 터키 이스탄블 앞바다의 작은 섬에 강제로 버려진 채 갈증과 굶주림으로 비참하게 죽어간 3만여 마리의 유기견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독특한 ‘움직이는 회화’ 기법의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세르쥬 아베디키안 감독이 애니메이션 <울부짖는 섬>을 통해 그려낸 역사적 사건은 제노사이드와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겪은 자신의 ‘조국’ 아르메니아에 대한 메타포이자, 국가권력의 부당한 횡포와 범죄 그리고 은폐와 망각의 역사에 경종을 울리는 정치적 우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연극연출가이자 영화배우이기도 한 세르주 아베디키안 감독은 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자신의 다른 단편영화 특별상영과 함께 마스터클래스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레니나칸의 대지진을 기록한 그의 또 다른 실험적인 단편 다큐멘터리 <영원한 빛>은 올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 가운데 하나로 상영되기도 했다. 콜럼비아 내전 속에서 혼돈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리틀 보이스 Little Voices>(감독: 오스카르 안드라데, 하이로 카리요)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동시에 상영되었다. 특히 <리틀 보이스>는 전쟁의 비극을 겪은 네 명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디지털로 전환되어 직접 3D 그래픽 속의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고, 나레이션 또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가 영화에 직접 사용되어 전쟁의 끔찍한 상황과 순수한 아이들의 희망과 동심을 역설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일반적인 기록영상이나 픽션영화와는 또 다른 진실과 감동을 제시한다. 또한 EBS국제다큐영화제는 2009년 이란 대통령 선거 시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거세게 타올랐던 ‘녹색혁명’의 현장을 담은 <그린 웨이브 The Green Wave>(감독: 알리 사마디 아하디>를 소개했는데,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기법 이외에도 블로그, 트위터, 휴대폰 촬영영상, 디지털 카메라 등 미디어 혁명을 반영한 다양한 클립들로 영화를 구성하여 민주주의를 향해 거리로 나섰던 이란 민중들의 투쟁을 역동적으로 포착하였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와이드앵글 부문을 통해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 나의 저승길 이야기 Crulic - The Path to Beyond>(감독: 안카 다미안)를 선보였다. 루마니아 국립영화연극예술대학 교수이기도 한 여성 감독 안카 다미안은 절도죄에 대한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며 폴란드 감옥에서 장기간 단식 투쟁을 벌이다 33세의 나이에 사망한 루마니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클라우디우 크룰릭의 실제 이야기를 주인공 1인칭 화법의 나레이션과 함께 포토 꼴라주, 수채화, 오일 페인팅, 오브제, 모션 그래픽, 스톱 모션, 컷-아웃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인상적으로 시각화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는 서로 화합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현실의 단순한 기록이나 재현이 아니라, 사유의 확장과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은 보다 폭넓게 다가온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지나치게 다큐멘터리를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은 곧 ‘픽션과 판타지’라는 편향과 오해가 오랫동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실 영화 창작자에게 현실 혹은 실제는 영화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도착점이며, 그 여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들은 바로 진실의 문에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