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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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김지현
- 참여 작품
- 세계의 주인 (2025),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2024), 홍이 (2024), 커미션 (2023), 방관자들 (2022), 사랑의 고고학 (2022), 그대라는기억 연숙씨 (2022), 열두살 (2020), 애비규환 (2020), 3일의 휴가 (2020), 기대주 (2019), 양 (2019), 우리집 (2019), 푸르른 날에 (2018), 컨테이너 (2018), 잔상 (2018), 해피 투게더 (2018), 탈출 (2017), 해피버스데이 (2017), 살인자와의 동행 (2017), 홈 (2017), 휴머니스트 (2017), 어바웃 웨딩 (2017), 경멸 (2017), 갈 수 없는 나라 (2017), 노다지 (2017), 버닝 브라더스 (2017), 장례난민 (2017), 여배우는 오늘도 (2017), 샘 (2017), 다녀왔습니다 (2016), 그날의 거리 (2016), 그물 (2016), 우리들 (2016), 위켄즈 (2016), 하교길 (2015), 장수목욕탕의 여름 (2015), 고길동의 방주 (2015), 최고의 감독 (2015), 무임승차 (2014), 여배우는 오늘도 (2014),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2014), 민우씨 오는 날 (2014), 일대일 (2014), 호산나 (2014), 아무도 모른다 (2013), 고장 (2013), 마리아의 부적 (2013), 공두시 무지개 (2013), 괜찮아! (2013), 보라, The Dance Alone (2013), 다이너마이트맨 (2013), 밴드의 탄생 (2013), 경계 (2013), 소풍 (2013), 여름 기류 (2013), 남자들 (2013), 아무도 모른다 (2013), 꽃피는 철길 (2013),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2013)
김지현
- 참여 작품
- 여섯개의 시선 (2003), 불어라 봄바람 (2003), 역전에 산다 (2003), 스트라이커 (2000), 사의 찬미 (1991)
김지현
- 참여 작품
- 요세미티와 나 (2011), 경주여행 (2010), 앞산전 (2009), 고양이들 (2008), 신성일의 행방불명 (2005), 웜 & 콜드 (2004), 뽀삐 (2002), 황문평, 영화속에 펼쳐놓은 음악인생 (2001), 바다가 육지라면 (2001), 연애에 관하여 (2000), 웃음 (2000), 집으로 가는 길 (1997), 안개 (1995), 말미잘 (엄마와별과말미잘) (1994)
수집자료
[GV] 김지현 감독 특별전
- 매체규격
- DV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김지현 감독 특별전 (뽀삐 + 요세미티와 나) GV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한국영화아카데미 33기
- 매체규격
- DVD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더 박스
- 매체유형
- CD
- 연주시간
- —
김지현, 김기석 제1집-볼찌어다
- 매체유형
- CCT 콤팩트카세트
- 연주시간
- 42:40
<스트라이커> 예고편 사운드 원본
- 매체유형
- MOD 광자기
- 연주시간
- —
룰라 '김지현' 고품격 에로<썸머 타임>주연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김지현 [썸머 타임] 촬영 중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김지현의 <썸머타임> 키스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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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칼럼]또 다른 박종필들 3
한 달 전이었다. 겨우 한 달 전의 일이다. 마감 때문에 저녁을 못 먹고 늦게까지 일한 날이었다. 속이 쓰렸다. 늦은 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한다며 짐짓 건조한 말투였지만 떨림이 가득했다. 음색만으로 겁이 났다. “일란이 많이 아파. 위암이래.” 용산참사를 다룬 < 두 개의 문 >, 그리고 후속작인 < 공동정범 >을 만든 김일란 감독의 소식이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계속됐지만 그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화가 났다. 목구멍이 먹먹해지고 빈속이 뒤집어졌다. ‘왜?!’란 말만 되뇌었다. 어두운 길이 현실적이지 않게 캄캄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촛불이 가득 찬 광화문 거리, 집회가 매주 이어지던 어느 주말이었다. 모여 있던 미디어 활동가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집회 행진을 촬영하러 흩어졌다. 캔커피로 언 손을 녹이는 데 상황실을 맡고 있던 김일란 감독이 “한주도 안 쉬었어. 진짜 힘들다”라며 툭 진심을 꺼내 놨다. 웬만해선 힘들다는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우리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나누지 못해 미안하기만 했다. 미디어 활동가들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주류 매체가 외면했던 거리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작년 겨울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자기 ‘역할’을 다 하며 거리를 지켰다. 그 자리에 박종필 감독도 있었다. 김일란 감독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요일 오후였다. 전화가 왔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곤욕을 치룬 시네마달의 대표 김일권 피디였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부터 목포에 내려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촬영 중이던 박종필 감독의 소식을 전했다. 7월 초부터 연락이 안 돼 다들 걱정하고 있던 박종필 감독을 만났단 말과 함께 그가 간암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에게 전화 중인데 다른 이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박 감독이 원치 않는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촬영 중에 아프면 사람들이 세월호 때문에 아픈 거라 할 테니 그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고. 병세로 변해가는 자신의 낯선 몸을 마주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배려한다. 박종필 감독은 내겐 큰 선배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유난히 멋졌다. 그런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샘났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주인공을 피사체로만 여기지 않고 그들과 삶을 나눴고 그로 인해 그의 주인공이 더 멋져 보일 수 있단 것은 나중에 알았다. 20년 동안 박종필 감독은 99년 <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실직 노숙자 >를 시작으로 무수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홈리스운동과 장애인이동권운동을 함께했다. 최근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과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다. 독립다큐멘터리만을 상영하는 영화제인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같이 꾸렸다. 그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원칙주의자여서 종종 주변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원칙들에 선뜻 동의가 돼 구박하면서도 함께했다. 존재 자체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는 박종필 감독 덕분에 덜 외로웠던 사람들이 내내 함께 했다. 다행히 가는 길 외롭지 않았다. 두 감독의 일은 대부분의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자신의 일처럼 충격을 줬다. 그들 대부분이 제작비와 생활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며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만나면 건강검진은 하고 있는 지 묻게 된다. 하지만 건강검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걸 잘 안다. 7년 전 생활고에 생을 마감한 숲속 홍길동이라 불렸던 이상현 미디어 활동가가 있다. 이상현은 장기투쟁사업장을 누비며 외로운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회사의 폭력을 기록하고 경찰의 탄압을 기록했다. 그런 그가 생을 마감할 때는 단순히 생활고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떠나고 그가 지켰던 투쟁사업장들이 나섰다. 그와 그의 카메라 덕분에 경찰에게 덜 맞았고 덜 외로웠다며 마음을 모았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하 현카)이란 지원제도를 만들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10년 넘게 비정규직 투쟁을 했다. 그 현장에도 이상현 영상 활동가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박종필 ’인 김천석 미디어 활동가도 있었다. ‘현카’는 제목 그대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주기 위한 지원제도다. 여느 지원제도와는 달리 활동에 지원해주는 제도다. 지원의 성과로 영화가 나오지 않아도 된다. 생활비로 써도 되는 지원금이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으로 일 년에 한번 지원한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현물지원도 있지만 한 팀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많아야 200만원이 전부다. 지원금으로 밀린 월세를 낸 감독도 있고 새롭게 들어가는 작업의 장비를 장만한 감독도 있다. 적은 지원금이지만 그들에게는 작업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로 활동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올해는 6팀에게 지원을 했다. 개인의 마음이 모인 후원금이라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지원해야 할 곳은 많고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번 드는 생각은 개인의 선의로만 우리의 삶이 유지돼야 할까 하는 질문이다. 우리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시스템 속의 존재들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너무 멀고 혹은 우릴 외면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이 내게로 온전히 전해지면서 버거웠지만 또한 무뎌져서 흐릿했던 지난 십 년의 시간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을 그저 버티고만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스템은 영화진흥위원회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만 여기는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영화를 골방의 몇몇을 위한 영화로 치부했다.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의 명칭을 교묘히 변경하며 독립영화의 자리를 협소하게 만들고 관련 인프라를 파괴해 관객을 만날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 방향의 변화를 분석한 「무엇을 위한 진흥인가? 영화진흥사업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흐름」(김지현, 독립영화 정책연대, 중앙대학교 전임연구원)를 보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떤 환경에서 고군분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산업과 영상문화의 조화로운 발전’을 한국영화진흥종합계획의 비전으로 삼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세부사업을 보면 ‘투자자본 안정화/투자출자사업’이란 사업에 전체 예산의 30%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는 빠지고 오직 산업으로서 영화가 있는 것이다. 정작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은 8.6%가 전부다. 처음 이 글을 쓸 때는 독립다큐멘터리의 공공성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다. 독립다큐멘터리가 이 사회를 위해 하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독립다큐멘터리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그것을 진흥해야 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산업만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펼치고 있는 현실에서 또 다른 오독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새롭게 제정된 <문화기본법>을 언급하는 것이 좋겠다. “제4조(국민의 권리)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이하 ‘문화권’이라 한다)를 가진다.”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공공제로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아주 보편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권리를 행하면서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더 이상 억압받지 않아야 한다. 아프지 않고 억압받지 않으며 작업하고 싶다. P.S. 태준식 감독의 칼럼 ‘또 다른 박종필들’(한겨레 시론 8월 1일 치)와 김동령 감독의 칼럼 ‘또 다른 박종필들 2’(한겨레 칼럼 8월 7일 치)에 이어서 제목을 ‘또 다른 박종필들 3’으로 쓴다. + 상단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의 사진을 활용하였습니다. ⓒ 최윤석
[영화현장]<우리들> 제작기
2013년 여름, 급하게 써낸 트리트먼트가 운 좋게도 한국예술종합학교와 CJ E&M이 공동 주관하는 산학협력프로젝트 2기 개발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한창 상업영화 현장에서 스크립터로 일하는 중이었지만, 이창동 감독님께서 기획총괄에 시나리오 멘토로 참여하시는 과정이라 어떻게든 병행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던 순간도 문득 떠오른다. 드디어 모임 첫날, 나와 함께 뽑힌 3명의 동기들과 함께 설렘과 기쁨에 잔뜩 들떠 감독님을 기다렸고, 조금 늦게 오신 감독님은 우리가 제출했던 트리트먼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세심하고도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셨다. 그리고 마침내 내 작품에 이르러서는, 아주 짧고 굵은 한 방만을 날리셨다. “이야기가 너무 가짜 같지 않니? 핵심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써봐. 진짜를 찾아봐.” 충격이 너무 커서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그 후 한 달 넘게 글은 한 자도 쓰지도 못했고, 그저 멘붕 속에서 방황하며 그간 억지로 피해왔던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당시 내가 썼던 이야기는 서사적인 재미와 자극을 준답시고 소화도 못 하는 여러 장르와 장식들을 그저 전시하는 수준이었는데, 나 스스로도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붕 뜨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고민하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이후 다시 간신히 마음을 붙잡은 나는, 8개월의 시나리오 개발 기간 동안, 대체 내 이야기 속에 ‘진짜’가 있긴 한 건지, 정말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를 끝없이 자문하며, 새로 쓰고, 엎고, 또다시 쓰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이듬해 최종 제작지원작에 당선되고 나서도, 예상보다 훨씬 줄어든 예산에 맞추느라, 또다시 ‘진짜 중의 진짜’와 ‘핵심 중의 핵심’만 남기는 수정을 감행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나리오 작업 기간 동안, 이야기 속 사건을 확장하는 대신 인물의 감정을 깊이 파고들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쩐지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고 평이해졌다. 그래서 한편 또 다른 걱정이 들고, 불안감이 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이야기가 너무 작고, 유치하고, 사사로워 보이는 건 아닐까. 하지만 긴긴 고민 끝에, 결국 내가 그토록 영화로 드러내고 싶었던 세계가, 바로 그런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들이 오가는 평범한 아이들의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마음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솔직히 직면하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달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깐 되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달까. 그다음부터는, 그냥 그런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결심했고, 에라 모르겠다,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가장 큰 행운이 찾아왔다. 초짜 감독인 나와 이런 작은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고 큰 힘을 실어주는 영화사와 스태프들을 만난 것이다. 특히 조감독을 맡아주었던 나의 절친 슬기와 민준원 , 김지현 촬영감독님은 이후 계속된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서도 늘 아낌없이 거침없는 조언을 해주었고, 스크립터 유라와 연출부 리아는 때때로 나 자신보다 더 나를 믿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엔딩 신은 촬영 전날까지 붙들고 고민하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는데, 그런 미친 나를 대체 무슨 마음으로 다들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나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시나리오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힘을 쏟은 작업은 캐스팅과 리허설이었다. 사실은 2014년 중순에 작품을 준비하다 중단했으므로, 전체적으로 대략 8개월을 캐스팅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동안, 영화사 아토의 김순모 제작 PD님이 나와 함께 직접 발로 뛰며 아역배우들을 찾았고, 직접 프로필을 받고, 직접 연락해, 방방곡곡 아역배우들을 만나러 다녔다. 사실 나는 이런 발로 뛰는 캐스팅 과정을 굉장히 좋아해서 프리 작업 중 가장 설레고 신나는 순간들이었는데(사실 예산이 없어 이 일을 맡길 다른 스태프도 없었다), 제작 PD님은 그 바쁜 와중에 그 모든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실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오디션은 우선 배우와 1:1로 만나, 30분가량을 일상에 관한 잡담만을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차에서 추려진 배우들을 대여섯 명의 그룹으로 묶어, 2-3시간 동안 일종의 ‘연극놀이’ 오디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나와 연출부들은 ‘선생님’으로 참여해 배우들을 이끌었고, 함께 간단한 게임부터, 몸풀기, 재연극, 즉흥극, 그리고 미리 준 대본을 바탕으로 한 상황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촬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선’의 최수인 , ‘지아’의 설혜인 , ‘보라’의 이서연 , 그리고 보라의 두 친구를 맡은 김채연 , 김희준 배우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들>의 촬영 현장 이후 리허설을 진행하며 아역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텍스트에 얽매이지 않는 상황에서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생생한 연기를 펼쳐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인지, 어떤 감정을 연기할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연기경험이 없는 어린 배우들을 불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특히 연기 중에 진짜 마음이 다치는 일은 절대 없게 하는 게 제1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뭇 상반돼 보이는 두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고민이 있었고, 늘 조언을 구하던 연극놀이 선생님을 초빙해 특별 세미나부터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체 연기가 뭔지,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에서부터, 각자 일상에 겪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걱정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때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우리들만의 비밀로 남아있다!) 이렇게 나와 배우가, 또 배우와 배우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믿고, 의지하게 된 다음 최대한의 리허설 시간을 확보해 시나리오의 모든 신을 즉흥극으로 풀어보는 과정을 숨 가쁘게 진행했다. 내가 시나리오 속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필요한 대사를 알려주면, 배우들이 그 상황에 몰입해 자신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그것들을 표현해보는 연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하며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새로운 디테일들을 찾아내기도 했고, 인위적이고 불편한 부분들은 함께 고민해 수정해나갔다. 확실히 배우들과 직접 이야기하며 함께 장면을 만들어 가면서 비로소 명확히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다. 또한 콘티작업도 리허설을 관찰하며 병행했기 때문에, 그만큼 촬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대비를 해나갈 수 있었다. 단편 <손님> 때부터 함께해온 김세훈 라인 PD는 모든 면에서 훌륭했지만, 특히 로케이션계의 황금손이었다. 때로는 감독보다 더 예민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해 여러 조건들을 따졌고, 직접 발로 뛰어 끝끝내 장소를 섭외하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한편 영화 속 선의 집으로 나온 연립주택은 사실 재개발 지역의 빈집이었는데, 안지혜 미술감독이 집 내부에 가벽까지 세우면서 가구와 소품들을 채워 넣어, 마치 선네 가족이 평생 살아온 집처럼 보이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가 콘티와 배우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 스탭들은 각자 초저예산과 싸우며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여러 조건들을 가능한 것으로, 더 좋은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7-8월의 무더운 한여름 동안, 1억5천의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무려 30회차의 기염을 토하며 < 우리들 >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나갔다. 촬영 내내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운 기적을 만났다. 교육청의 도움으로 학교 섭외가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 어린 배우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챙겨주는 스태프들(특히 이시현 조명감독과 강나루 동시기사, 김동위 미술팀장은 모든 배우 친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현장의 아이돌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배우들은 더위와 피로와 나의 잔소리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을 만난 것, 회차 때는 쨍하다가 휴차 때만 비가 온 것, 깊이 몰입한 배우들이 시나리오에 없던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 등, 지금 꼽으래도 3박 4일은 이야기해도 모자랄 기적들이 가득했다. 물론 기적이 일어난 만큼 충격과 공포의 순간도 많았다. 나는 촬영 5회차 만에 현장을 뛰어다니다 발가락이 부러져 내내 깁스를 하고 다녔고, 더위를 먹은 어린 배우들이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급기야 토하기도 해 촬영이 중단된 적도 있다. 또 우리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담아내기 위해 한 번에 5분가량의 롱테이크를 소화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촬영감독님들과 붐맨의 팔과 어깨는 매번 부서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촬영 말미엔 촬영감독님이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혼자 조용히 심각한 건강 검진을 받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엎고 메고 다니다 생긴 산업재해로 밝혀졌다. 게다가 30여 명의 4-6학년 초등생을 10회차 가까이 매일 상대해야 했던 연출부 친구들의 정신건강은 또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매일 자신의 인내심과 피로도의 수치를 새롭게 갱신하는 작업이다. 사실 우리 연출부들은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천사 같은 친구들이었는데, 어쩌면 바로 이번 촬영을 통해 평생 절대로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후반 작업 역시 천국과 지옥의 연속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즉흥적으로 연기한 장면이 많았고, 대사도 넘쳐났으며, 온전히 감정으로 진행되는 서사였기 때문에 더더욱 편집이 중요했다. 만약 박세영 편집감독(우리는 단편 <손님> 때도 합을 맞췄다!)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소스를 함께 세심하게 훑고, 조각내면서, 그야말로 장면을 한 땀 한 땀 직접 만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주말도 반납한 채 장장 3개월을 볕도 들지 않는 편집실에 몽땅 쏟아부었다. 특히 많은 대사를 잘라내고 압축하는 과정에서, 사운드까지 아주 미세하게 편집해야 했는데, 때론 음절 단위로 대사를 조각내서 이어 붙일 정도였다. 덕분에 진도가 느려 때론 하루에 한 신을 편집하고 탈진해 앓아눕기도 했지만, 어떻든 반쪽이라도 완성하고 나면 또 묘하게 쾌감이 일어 종일 신나하기도 했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강박적으로 편집을 하다가는, 결국 둘 다 편집증에 걸리고 말 거야!”라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종종 주고받았는데, 사실 둘 다 진짜 그렇게 되고 있는 거 아닌지 몰래 서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단편 < 콩나물 >부터 함께 했던 고아영 믹싱감독은 주인공 소녀의 깊은 감정들을 ‘호흡’을 통해 드러내려는 계획이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게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 반신반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함께했던 경험으로 믹싱감독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결국 최수인 배우는 장장 이틀에 걸쳐 영화 전체, 모든 장면의 호흡을 재연하는 녹음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전체 믹싱을 들었을 때야 비로소 그 자연스럽고도 디테일한 표현에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한편, 연리목 음악감독의 스코어는 마치 자연의 소리처럼 아이들의 호흡과 목소리, 공간의 앰비언스 안으로 녹아들었다. 애초에 나는 메인 악기로 기타를 원했는데, 연리목의 적극적인 주장에 피아노곡을 먼저 들어보기로 했다가 바로 설득당해버리고 말았다. 감정을 억지로 과장하거나 일부러 고양시키지 않으면서도, 다만 그 자체로 감정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키는 놀라운 음악이었다. 나의 애매한 주문에도 이렇듯 멋진 음악을 만들어준 연리목에 아직까지도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영화를 쓰고, 찍고, 완성해 어느덧 개봉을 앞두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동안 그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는 것에만 무식하게 덤벼들었지, 정작 ‘개봉’이란 과정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또 이렇게 닥쳐서 헐레벌떡 개봉준비를 하면서야, 영화산업에 대해 간신히 하나둘 배우고 있다. 결국 관객을 만나야지만, 그 긴긴 시간 멋진 사람들과 꽃 같은 시간을 바쳐 만든 이 무언가가 비로소 ‘영화’가 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매일매일 새롭게 깨닫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제 개봉까지 나흘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까지도 내가 정말 진짜를 쓴 건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을 잘 담아 찍어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여러 가지 착각과 잘못된 판단, 실수로 인해 빚어진 오류만 눈에 보이는데,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갖은 부끄러움과 후회가 치고 올라 매일 밤 몰래 훌쩍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나 혼자라면 절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모든 여정에 진심을 담아 함께 달려와 준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 어떻든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벌써 이 영화가 완전히 내 손을 떠났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남은 건, 오로지 관객분들의 평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결과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두렵고 또 두렵지만, 그래도 뭔가 배우는 과정은 되겠지. 그래 뭐, 잘 배워서 다음 영화 때 잘 하면 되지 뭐! 하면서, 다시 출발선에 서있는 나를 매일 매일 달래는 중이다.
[초이스]송한나
단편영화 < 송한나 >를 얼마 전에야 보았다.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았다. 내용은 이렇다. 송한나는 가난한 연인들에게 돈을 받고 자기 옥탑방을 빌려주고 정작 자기는 다른 건물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 그런 송한나를 따라다니는 남자애는 송한나가 걱정되어 밤새 텐트 앞에서 왈츠를 춘다. 송한나는 얼마 전 어떤 애를 좋아하게 되었다. 향기만으로도 그를 알아챌 수 있지만 마주치면 부끄럽다. 송한나는 그의 사물함에 엉뚱한 사진들을 몰래 넣어놓곤 하지만, 그 애가 다른 애와 자기 방을 빌리려 하자 절망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송한나의 사랑이 첫사랑인지 아니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사랑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송한나는 서로 함께 좋아하는 사랑은 아직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게 된 그 애의 향기에 무척 설레고 그 애와 마주치는 눈길이 부끄럽고 그 애가 다른 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깊이 절망한다. 송한나의 곁에는 송한나를 걱정하고, 송한나를 절망하게 한 자를 소심하게 응징하고 송한나를 위해 몸을 숙여 발판이 되어 주는 애가 있다. 그는 송한나가 나오는 많은 장면에 함께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인물도 송한나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송한나가 바라보는 사랑과 송한나를 향한 사랑. 송한나가 좋아하는 애와 송한나를 좋아하는 애.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영화 < 송한나 >에서 이름을 가진 인물은 송한나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송한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인인지 청소년인지 모호하게 묘사된 송한나의 서툰 사랑들. 서툰 사랑이 끝나면 아마도 이것이 이대로 잊혀져버리는 건 아닌지, 조금은 떨리는 모양이다. 영화 마지막 “송.한.나” 삼행시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 송한나 >는 < 개를 키워 봐서 알아요 >(2009)와 < 애드벌룬 >(2011) 등을 연출한 이우정 감독의 2008년 작품인데, 그 이전까지 여러 독립영화에 스태프로 함께하고 몇몇 영화에는 출연하기도 했던 ‘이우정’이라는 사람을 재능있는 ‘감독’으로 인식시킨 어쩌면 첫 번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우정 감독은 윤성호 감독의 여러 작품들을 비롯해 < 나를 떠나지 말아요 >(2006, 신이수) , < 경주여행 >(2010, 김지현 ) 등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가 함께 기획한 “감독과 배우 사이: 독립영화 감독-배우 열전”에서 <송한나>와 <경주여행>이 상영될 예정이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기획전은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인디플러스에서, 11월 1일부터 4일까지는 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