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 감독
- 김태훈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이금섭, 손영순
올해 인디포럼 영화제의 폐막작은 김태훈 감독의 < 명희 >. 심사위원 네 명은 만장일치로 이 영화를 올해 인디포럼의 히든카드로 뽑으며, “숱한 소수자 대상화 문제를 시원하게 메다꽂는 영화”라고 상찬했다. 영화제 기간, < 명희 >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단연 화제가 됐다. 관객들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감독들과 평론가들도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내며 논쟁에 참여했다. 기실 지난 몇 년간 탈북자들에 관한 독립영화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그 쏟아지는 물량에 지칠 만도 할 텐데, 무엇이 이 영화로 하여금 특별한 논쟁을 촉발시켰을까. < 명희 >는 탈북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함경북도 출신의 25세 명희, 남한 친구에게 이끌려 우연히 기체조 수련원에 간다. 그곳에서 수진 언니와 또래 미정을 만나 친해지게 된다. 명희는 수진 언니가 운영하는 옷가게서 무보수로 일을 도와주게 되는데, 바로 이 ‘무보수’가 사건의 발단이다. 다른 남한 친구들이 보기에, 수진 언니가 임금개념도 없고 착하기만 한 명희의 노동력을 무보수로 착취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시감이다. 남한 사람들에게 탈북자가 당하고 산다는 그 흔한 레퍼토리. 아마도 관객들은 탈북자가 겪어야 하는 분노와 눈물의 무게를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명희는 이 지점에서 정확히 180도 다른 행동을 보인다. 분노의 화살을 오히려 수진 언니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수군덕거리는 남한 친구들에게 겨눈다. 탈북자는 순진해서 그냥 당하기만 하고 주체적으로 ‘선의’를 베풀 수 없을 거라는 남한 사람들의 편견을 과녘 삼아 활시위를 당긴다. 친구들에게 찾아가 “이 종간나 새끼들!”이라고 일성을 토했던 명희는 역시나,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수진 언니에게도 자신이 좋아서 한 일이라고 대꾸한다. 무엇이든지 돈으로 환산하는 남한 사람들의 통념을 흠씬 조롱하는 순간이다. 바로 이 지점이 < 명희 >를 빛나게 만든다. 기존의 다른 탈북 영화들이 반복해서 재현했던, 소수자들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주류의 시선을 가볍게 전복하는 번뜩이는 쾌감을 안겨준다. 알량한 동정을 동반하느라 소수자들의 비극을 과장하는 그 지긋지긋한 태도에 관해 가장 도전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완성도에 완전히 동의는 못 하겠다. 또 다른 당위를 주장하기 위해 인물의 감정이 비약하고, 플롯의 개연성이 일정 무너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 명희 >가 내장하고 있는 윤리적 태도야말로 이 영화의 빛나는 성취다. 근래 들어, 이렇게 영화의 윤리적 태도를 강단있게 문제삼은 영화가 있었던가. 그 동안 우리는 타자의 욕망과 슬픔에 대해 너무 섣불리 아는 척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밴쿠버국제영화제에서 `젊은 영화를 위한 용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로테르담을 비롯한 국제 영화제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장건재 감독의 < 회오리바람 >을 2010년 또 하나의 독립영화계의 `사건`이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 하다. 더 나아가 최근 제대로 된 청춘영화가 없다는 영화계 항간의 볼멘 소리도 이 영화의 출연을 통해 당분간 잦아들 것이라 장담한다. < 회오리바람 >은 말 그대로, 멜랑꼴리를 끌어안고 있는 청춘영화다. `이 사랑 모두가 안 된다고만 한다`라는 영화 포스터 헤드 카피가 정확히 적시하듯 10대 청춘들의 그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얼핏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고등학교에서 제작되는 단편 영화들이 숱하게 스케치 하는 그저 그런 10대들의 무모한 사랑 이야기들의 반복일 수도 있겠고, 관객의 오감을 관통할 정도의 색다르고 새로운 소재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전형적인 이야기는 감독의 절제된 영화 언어를 통해 충분함 이상의 사실감을 성취하고 있다. 힘을 뺄 때와 힘을 줄 때를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고, 이 효율적인 에너지 배분은 상투적 소재가 어떻게 훌륭하게 영화적으로 요리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오프닝 컷은 신인 감독의 재능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뛰어난 청춘영화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되리라는 것을 마치 선언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배치된 뛰어난 씬이다. < 회오리바람 >은 내러티브의 순서를 살짝 비틀어놓은 회상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등학생인 김태훈과 박미정이 부모 몰래 바다 여행을 떠난 지 3개월부터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들 여행의 기록은 중간중간 회상을 통해 현실 속에 틈입한다. 이들의 밀월 여행이 발각되어 부모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김태훈의 시간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여자 친구 박미정은 더 이상 만나주지 않고, 방학 동안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 사고를 내고, 보충 수업을 빼먹다가 선생한테 들켜 두들겨 맞는 찌질함의 연속. 이 청춘의 찌질함은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고백처럼 읽혀지는데, 정교하게 계산된 컷과 편집의 리듬을 통해 녹록치 않은 여운을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 가령, 박미정이 이별을 통보하는 순간에 무릎을 꿇는다든지, 박미정을 위해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두 털어 선물을 산다든지 하는 십대의 어리숙한 열정의 클리셰조차 미학적 절제를 통해 전혀 상투적이지 않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고백에 대한 스스로의 연민까지도 독해하게끔 만드는 힘이 그것이다. 물론 영화에 배치된 여러 에피소드들이 사랑의 열병에 데인 십대 남자의 고난과 역경을 드러내기 위해 수동적으로 배치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또한, 토니 레인즈가 과찬한 그 두 개의 오토바이 질주씬과 사막을 홀로 거니는 판타지씬으로 과연 회오리바람같이 외상에 반응하는 청춘의 그 들끓는 내면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자 친구한테 채이고, 부모한테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학교 울타리를 넘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소심한 10대 남학생의 그 찌질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감독의 우직한 시선은 근래 보기 드문 영화적 뚝심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뚝심은 영화의 공기를 섬세하게 장악한 뛰어난 씬들로 화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건재 라는 새로운 감독의 출현을 증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사병에 걸린 자는 우울한 자다. 상사병에 걸린 자는 그가 소유했던 대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라 외려 우울하기 때문에 그 상실된 존재를 새롭게 구성하고, 자기 안으로 손짓을 하여 불러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아감벤의 `식인증적 주체`에 다름 아니다. 상사병에 걸린 자들은 잃어버린 자들이 아니라 잃어버렸다 착각하는 대상들을 자기 내면의 땅에 파종을 해놓고 물을 주며, 자장가처럼 홀로 노래를 불러주는 자들이다. 한국 청춘영화들이 너무 멜랑꼴리적이라는 비판도 더러 있지만, 되려 멜랑꼴리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회오리바람’ 같은 영화들은 대상의 상실에 따른 퇴행적 반응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실된 대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몽환적인 능력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다. 사랑의 열병이라는 성장통을 견뎌낸 소년 김태훈은 아마 다시 꿈을 꾸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