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 감독
- 유동식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이경아, 박상훈, 박인서, 정성훈, 전유진, 김화범, 김득영, 한은지, 강정수, 조은수, 이정비, 김선화, 정영두, 박주홍, 서정택, 조민석, 이정훈, 박민정, 김슬기, 도용수, 추민주, 김득영, 이안젤라, 강병화, 정수혁, 장혜인, 윤숙, 김승연, 이상은, 임찬익, 이은하, 서나영, 송한승, 민경천, 김태훈, 김찬규, 박혜성, 양희경, 신수정
< 히스테리아 >( 장만민 , 2018)는 어두운 한국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단면을 우리는 가족 혹은 가족주의라고 부른다. 지긋지긋한 가족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 아니다. IMF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올라갔고, 가족 동반자살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가부장 가족주의가 가족을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해체하고 있고, 가족구성원인 한 개인들을 질식시키는지에 대해 영화는 주인공의 히스테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살기위해서 탈주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인 혜주( 송희준 )의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혜주가 공놀이 장면에서부터 가족들의 시선이 심상찮다. 가족들이 반려견을 부르는 소리와 아버지가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장면, 그리고 현실 병원으로 장면이 넘어간다. 집으로 귀환한 혜주. 가족들은 환영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지만, 혜주와 가족들 사이에 이내 균열이 발생하고 균열을 봉합하려는 아버지-가부장의 강요와 억압 그리고 체벌이 동시에 진행된다. 결국 혜주는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아버지의 차를 전복시키고 탈출한다. 혜주의 히스테리가 정확히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지 영화는 심플하게 보여준다. 가부장이 지배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왕국에서 개인은 존재하기 쉽지 않다. 혜주의 히스테리는 가족이다. 명령하는 자와 명령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 기묘한 연대(가족)가 숨 막힌다. 명령을 어길 시에는 그에 따른 처벌이 꼭 이뤄진다. 가부장의 질서가 어떻게 가족들의 몸과 마음에 각인되는지에 대해, 반복되는 체벌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주인공인 혜주는 아버지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잘못에 대한 벌로 자신에 볼에 키스를 강요한다. 강요되는 사랑은 학대다. 사랑이라 부르고 폭력이라고 읽게 되는 체벌을 통해 가족은 탄생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상상 장면이다. 상상 장면에서의 시간성에 주목해보고 싶다. 영화의 첫 장면이 주인공인 혜주의 머릿속 상상이다. 상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혜주가 경험했을 폭력적인 ‘장면’이다. 슬로모션이다. 현실에서 가족들의 시간과 혜주의 머릿속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가족들의 시간과 혜주가 경험하는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공간(가족이라고 상상되는 어떤 영역들)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개인은 같을 수 없다. 균질하게 만들기 위해서 체벌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이 동원된다. 가부장의 법을 준수해야 하고, 그것을 어길 시에는 처벌을 받거나, 미쳐야 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자신만의 시간으로 현재를 살 수 없다. 현대 자본주의는 철저히 시간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탈주하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미친 시간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혜주역의 송희준 영화에서 혜주 역을 맡은 배우는 송희준 이다. 이 영화가 첫 영화라고 한다. 주인공 혜주 역할은 내면 혹은 정신의 불편함을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인데, 나른하면서도 느리게 혜주만의 시간을 표현해낸다. 송희준 배우의 행보가 기대된다. 제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몇 해 전 ‘헬조선’해서, ‘탈조선’한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이명박근혜’ 시절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겠는가. 마침 장강명 작가의 책, 『한국이 싫어서』가 출판되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청년세대들의 마음을 잘 대변했다. 단편영화 < 야간 근무 >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주인공 린과 연희. 린은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 4년 차다. 한국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했고, 공장에서 친구 연희와도 친하게 잘 지낸다. 연희는 호주로 유학 또는 이주를 꿈꾸며 휴학 중이다. 이주 자금 마련을 위해 잠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둘은 처지가 다르지만, 한 공장에서 서로에게 의지한다. 야간 근무를 마친 린과 연희는 아침 퇴근길에 바다에 가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다. 린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만 주말에 근무하라는 지시와 함께 연희가 공장을 그만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흐른다. 하지만 린 혼자 고장이 난 자전거를 고치러 다니면서, 연희는 (아마도) 부족한 이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단을 돌리면서 같은 자리를 공유하게 된다. 마침내 린은 연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린과 연희. 영화 < 야간 근무 >는 비슷한 듯 다른 처지를 통해, 현재 다양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에서 린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에 왔고, 연희는 돈도 벌고 공부도 하려고 호주로 이민 갈 예정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의 공장들은 한국으로 온 이주민들로 돌아가고 호주의 농촌은 한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농사를 짓는다. 세계자본주의 이주의 계층화, 계급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결론을 내리고 드라마를 전개하지 않는다. 린이 연희에게 묻는다. “넌 나보다 (한국에서) 기회가 많고 돈 많이 벌 수 있잖아”라고. 영화에서는 바로 답을 하지 않는다. 조금 늦게 돌아온 연희의 답은 연희와 엄마의 대화 장면에서 등장한다. “엄마, 나 이렇게 애매하게 살기 싫어!” 애매하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를 뜻한다. 애매하지 않고, ‘분명한’ 청춘은 분명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젊은 세대들은 애매한 실존들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 그래도 용기를 내서, 돈이라도 있어 외국이라도 나가면 다행이지만. 그런 선택마저도 사치스러운 결정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 재미가 없고, 해도 잘 안 될 것 같은 사회 시스템. 이런 상황과 상태가 싫어서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 계나는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지겨운 추위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린과 연희를 통해 애매한 삶의 조건에 처한 이들에게 너의 선택을 무엇인지. 묻는다.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더라도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 영화는 끝에서 린이 캄보디아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와 출국하는 연희의 묘한 설렘을 교차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린이 처음에 한국 땅에 왔었을 때 가졌을 법한 흥분을 연희의 표정을 통해 드러낸다. 영화에서는 웃거나 쳐다보거나 하는 인물 장면들을 잘 잡아내고 있다. 묘한 설렘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생동감 있는 클로즈업. 현재를 살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을 배우와 감독이 자신의 모습처럼 연기하고 담아내고 있다. 같은 세대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의 메시지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장소는 바다다. 파도치는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연상되는 공간, 바다. 린과 연희가 함께 간 마지막 공간, 바다. 그런데 자전거로 바다를 갈 수 있는 곳. 항구도시. 바로 인천이다. 영화에서 인천임을 분명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가까이에 바다가 있을 법하게만 묘사된다. 그곳에서 바다를 건너 있을 수도 있는 기대, 설렘이 드라마를 통해 강조되고 있다. 오늘의 린과 연희를 응원한다.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가져간 영화는 이례적으로 두 편이다. 하나는 작년 11월 개봉하여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낸 < 연애담 >이고, 또 하나는 5월 말 개봉을 앞두고 있는 < 델타 보이즈 >다. <델타 보이즈>라는 제목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영화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영화 초반 주인공들의 대사에서 ‘툭’ 던져진 한 마디가 제목이 되어버린 <델타 보이즈>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들의 열병 같은 꿈과 냉정한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찰진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다. < 델타 보이즈 >는 매형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일록의 초등학교 친구, 예건이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예건은 시카고에서 살다가 한국에 일자리를 구하기위해 들어온 터라 개털 신세, 한마디로 일록에게 얹혀살게 된다. 예건은 일록에게 예전 꿈이었던 ‘노래’를 하라고 부추기며 자신이 다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고, 결국 일록은 남성 4중창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며 멤버를 모집한다. 첫 멤버는 생선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는 대영.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한 일이 그 무엇보다도 제일 우선인 사람이다. 그런 대영이 결혼해서 아내 지혜와 함께 트럭 도넛 가게를 운영하는 준세를 두 번째 멤버로 데려온다. 준세는 대영에게 흔히 말해 ‘데인’ 상태. 대영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세와 늘 함께하지만 준세는 삶 그 자체가 고달프다. 아무튼 이렇게 모인 네 남자, 일록, 예건, 대영, 준세가 큰 대회도 아닌 어느 구청에서 주최하는 남성 4중창 대회에 나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델타 보이즈>의 큰 줄거리다. 네 남자의 첫 공연은 근사한 공연장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그들에겐 꿈의 무대가 된다. 영화에서 답 없는 네 남자는 누군가에 얹혀살고 있다. 일록은 매형에게, 예건은 일록에게 대영은 형에게 준세는 지혜에게. 불완전하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다. 일록이 매형의 공장을 떠나면서 이들의 홀로서기는 시작되고 영화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대영이 일록에게 찾아왔던 그 순간 영화의 또 다른 방향, ‘꿈’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 남자에겐 꿈이라는 게 이루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서 두려운 존재이다. 그 자체로 열병을 앓게 하고 생활을 포기하게 한다. 준세가 대영에게 했던 술자리의 대화가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꿈이 있어 두려운 것. 불안과 갈등 그리고 자책. 일록의 자책 씬은 과하게도 느껴지지만, 일록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해보면 자신 때문에 꿈이라는 열병을 앓게 된 이들을 통해 증폭된, 혹은 스스로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심정 고백 같은 행위일 것이다. 결국 일록은 자책을 넘어서 당당하게 꿈을 받아드린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 < 델타 보이즈 >가 여느 성장영화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델타 보이즈>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꿈이 주는 불안과 자신이 서 있는 위치 혹은 삶에 대한 생생함, 생활이 주는 날 것의 폭력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준세와 지혜의 싸움 장면을 보면 그것이 생생하게 목격된다. 그럼에도 곧 있을 4중창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웃게 된다. 그 웃음은 과장된 코미디가 아니라 냉정한 삶에서 터져 나오는 생활형 웃음이다. 준세와 지혜의 싸움 장면에서, “거참 찰지게 잘 싸우네.” 하면서 너털웃음을 짓게 되는 것처럼. < 델타 보이즈 >는 배우들의 쫀득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감독에게 빚지는 바가 많다. 고봉수 감독은 네 남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이끌어가는 대로 놓아둔다. 일록, 예건, 대영, 준세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일반적인 한국영화의 대화 씬들보다 분명히 길게 연극의 장면처럼 프레임을 만들었다. 관객은 감독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배우의 열연에 빠지게 되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게 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고봉수 감독과 출연 배우들과의 깊은 교감을 볼 수 있다. 감독이 짜 놓은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감독이 서로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것. 자신과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꿈이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것. 대영의 마지막 대사, “음 딱 맞을 때 그 느낌”처럼. <델타 보이즈>를 통해 관객들이 불안한 꿈과 미래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 발견 아니, 하모니(교감)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