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찻잔
- 감독
- 정소영
- 제작년도
- 1979
- 출연
- 이영하, 정영숙, 윤일봉, 허진, 김지연, 정미경, 김신명, 이현미, 유송이, 이명숙, 박혜원, 윤은정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 헤어질 결심 >(2022)의 제목은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다. 제목의 주체는 이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항해 자기 의지를 다지고 필요한 전략을 실행하고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낭만적인 주체의 세계 대 자아 혹은 자율적인 이성 대 (무)의식적인 욕망 간의 투쟁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실체는 정반대다. 인간중심적인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 이 제목은 반전을 위한 ‘미끼’다. 실제로 영화가 강조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정서적이고 투쟁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 인공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 감정과 행위, 데이터와 의미, 사건과 시스템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행위자들(actors)의 복잡한 배치와 네트워크이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와 가장 닮은꼴을 찾아본다면 < 파란만장 >(2011, 33분)일 수 있다. 이정현과 오광록 주연의 <파란만장>은 KT의 제작지원을 받아 미디어아트 작가인 박찬경과 함께 작업한 단편으로 당시 신형이었던 아이폰4로만 촬영을 해서 극장 개봉을 했다. 이 영화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던 시점에 전문가적 역량을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캠페인 영화였다. 두 감독은 각종 취미 및 생활기계가 하나의 기기 안에 통합돼 있으면서도 휴대성과 편재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개별 기기들의 고성능 라인에 근접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던 스마트폰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시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영매의 역량으로 은유화 한다. 즉 비인간 기계와 초월적인 영적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이질적인 것들을 채널링하는 그들의 공통역량을 조명한다. <헤어질 결심>은 짐짓 ‘나’의 정체성을 허물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파괴적 관계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를 가장한다. 그러나 자아와 타자의 경계와 정체성의 “붕괴”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시대 행위자들의 경계는 어떤 면에서 이미 ‘나’ 아닌 것에 매개되고 ‘지금-여기’ 아닌 시공간에 연결되어 있기에 이미 붕괴되어 있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근대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감정언어로 최종적으로 번역되기 이전의 현상, 즉 다층적으로 배치되고 네트워크 되어 있는 행위자들과 그들이 모이고 교차하는 마디점들(nodes)의 감각적 민족지학에 더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의식의 의미화)와 감정(정동의 의미화)이 있기 전의 사건들을 관찰한다. 경찰인 해준이 졸음 방지를 위해 동료인 수완(고경표)과 통화를 하며 밤 운전을 하는 장면에 나온 대사는 인간주체의 의지를 먼저 앞세우는 습관에서 벗어난 인과관계의 전복을 보여준다. 주체로서의 ‘너랑 나랑’을 강조하는 수완에게 해준은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러한 경계의 무너짐과 네트워크 현상을 강조하기 위해 의인화를 탈피한 비인간 중심의 응시를 곳곳에 배치하고 이질적 시공간을 오고가며 낯설게 사건들을 연결하는 교차편집 기술을 부각시킨다. 특히 시체와 휴대폰부터 디지털 워치, 소프트웨어, 유튜브 플랫폼, 오늘날의 영화체계, 산과 바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이민 체계와 가부장제까지 무생물과 비물질의 응시가 이 영화에선 탈인칭 쇼트뿐 아니라 시점 쇼트로도 작동한다. 그래서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영화 전반적으로 매우 소란스럽다(내가 끝내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무생물 행위자들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기의 행위성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눈들은 일종의 평등함을 부여받는다. ‘인간중심의 좌표를 벗어난 주체의 해체, 비인간적 주관성은 인간도 물질적이고 창발적인 세계의 질료 중 하나가 되게 만든다.’ (스테이시 알라이모) 비인간 시점은 영화사에서 여러 감독들에 의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사용되어 왔다. 동물, 유령, 신, 사물들, 자연 풍경, 기계와 시스템은 비인간 시점을 표현해온 대표적 행위자들이다. 이 비인간-눈들은 장르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개는 친밀하고 낯선 기이함(the uncanny)의 느낌을 통해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흔들면서 불안정성을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비인간 시점의 미학적 실천은 최근 들어 한층 빈번해지고 있는데 주요하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기후위기에 대한 발본적 성찰로 인간중심성을 해체하려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화로 인한 물질적인 것의 재규정이다. <헤어질 결심>의 비인간 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랑으로 번역된 것의 네트워크에는 두 사람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동맹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종종 쇼트와 역쇼트를 하나의 쇼트 내에 보여주는 유사-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준다. 크레딧 타이틀 이후 나오는 첫 씬에선 서래의 남편인 기도수의 시체의 눈 안쪽으로부터의 응시를 보여준다. 시체 내부로부터의 시점으로 인해 눈동자의 실핏줄과 망막 위를 기어 다니는 클로즈업된 개미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역쇼트에 해당하는 암벽을 오르는 해준과 수완이 한 프레임에 담기게 된다. 쇼트에 해당하는 보는 주체와 역쇼트에 해당하는 보이는 대상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주관적 시점이 아니다. 시체를 ‘보고 있는 주체’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보고 기록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으로 표현할 뿐이다. 해준이 그 시체를 보지만 시체 또한 해준을 보고 있다. 그 눈은 살인의 증거를 보았던 눈이기도 하고 살아있을 적에 서래를 폭력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던 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눈이 현재 어떤 인간적인 욕망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표현은 특히 병원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서래 몸의 멍든 사진을 보며 해준이 마우스로 이미지를 확대해 픽셀이 가시화될 때, 휴대폰으로 서래와 문자를 나누거나 녹음된 음성파일을 들을 때 두드러진다. 화면 내부로부터의 시선, 즉 시스템의 시선은 해준과 기계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이포와 부산에 떨어져 있을 때, 해준은 밤에 잠이 오지 않자 서래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서로만 아는 방식으로 농담을 할 정도로 관계가 발전해 가는 상황에서 서래가 문자를 쓰고 있는 중임을 표시하는 “…”는 해준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그것은 기대와 설레임 등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 이 순간 카메라는 다시 휴대폰 내부로부터의 시선을 유지하며 스크린에 표시된 “…”와 휴대폰 스크린을 보고 있는 해준의 얼굴을 디졸브 시킨다. 해준은 “…”의 표현(농도, 깜박임, 지속시간 등)을 포함한 휴대폰의 문자 시스템과 동맹 중이다. 서래와 해준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번역기와 녹음기를 사용하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번역기 사용으로 인해 둘의 표현은 문어체에 가깝거나 직설적이게 되고, 심지어 오역을 만들어 낸다. ‘마음’은 ‘심장’으로 번역된다. 사극 드라마를 통해 배운 서래의 한국어는 고풍스럽다. 해준은 서래가 ‘꼿꼿해서’ 좋다고 고백한다. 소프트웨어와 미디어의 사용은 서래를 더 ‘꼿꼿한’ 이미지로 만들어 준다. 해준과 서래가 이포에서 재회한 후, 해준은 서래가 입은 옷의 색상에 집착한다. 그 옷은 청색인가, 녹색인가. 서래를 목격한 사람들은 동일한 드레스를 저마다 달리 증언한다. 그리고 해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 장면은 다분히 2015년 즈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드레스의 색상 논란을 염두에 둔 농담이다. 당시 같은 드레스를 놓고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과 검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로 나뉘어 뜨겁게 논쟁을 했다. 드레스의 주변 밝기가 동일한 드레스를 다르게 보이게 한 것이다. 인간은 대상만을 떼어내 색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밝기에 맞춰 원래 색을 판별하려 한다. 뇌는 환경에 맞춰 색체보정을 하고 여러 번 보다보면 학습에 의해 색은 새로운 정보에 상관없이 고정된다. 해준은 서래를 판단함에 있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조정한다. 해준은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주변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의미는 고정되지 않은 채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이상 잠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해준은 꾸준하게 정보를 잘못 읽는다(서래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운다고 착각했던 것을 생각해 봐라). 오늘날의 세상에서 정보는 쉴 틈 없이 생산되고 또한 왜곡되기 때문에 세계(사건)의 종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종결하는 법을 안다. 그는 살인자다. 그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언제 끝낼지를 주체적으로 정하려 하는 이다. 서래는 주변 환경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욕망을 응시하는 이다. 그렇다고 비인간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갖고 있는 기기들을 목적에 맞게 이용한다. 스마트폰의 위치기록 기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기능을 역으로 사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시스템에는 구멍이 있다. 해준은 ‘사랑’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지만 서래는 해준이 범행증거를 없애버리라고 한 말과 해준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사랑’으로 번역한다. 해준이 정보 수집가라면 서래는 번역하는 사람이다. 해준이 미결자라면 서래는 종결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꼿꼿한 사람이고, 스스로 소프트웨어 혹은 시스템이 될 줄 아는 사람이다. 서래는 해준이 멀리 바다에 던져버리라던 휴대폰 대신 스스로를 바다에 묻는다. 위치기록 소프트웨어에서 그의 위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네트워크에 구멍을 낸다. 이제 사건 혹은 의미화의 종결은 구멍으로서만 가능하다.
이미례 는 1957년 8월 20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하면서 스승 유현목 감독의 스크립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한국영화사의 거장 유현목의 조감독으로 여성이 등장하자 여성 감독이 드문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졸업 후 김호선의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경험을 더 쌓은 이미례는 1984년에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로 데뷔했다. 수령에서 건진 내딸 관련 인터뷰 중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비행청소년 문제를 다룬 가족영화이다. 모범생이었던 유리는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부모의 불화를 겪으면서 방황하기 시작하는데, 딸을 수렁에서 구해내려는 부모의 악전고투가 눈물겹다. 특히 심리치료와 상담 개념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청소년 문제 담당자가 부모에게 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들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개봉한 해에 한국영화 흥행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에서 유리 역을 맡은 김진아 (한국영화사의 대 스타 김진규 와 배우 김보애 의 딸이다. 김보애는 유리의 엄마 역을 연기했다)는 스타로 자리매김 했다. 이미례는 성공적인 데뷔작을 통해 박남옥 , 홍은원 , 최은희 , 황혜미 이후, 한국 영화계가 처음으로 건져낸 여성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여성 감독 자체가 별종으로 취급 받기에 충분한 시대에 ‘파마머리’에 담배를 물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28살의 여성감독 이미례는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고추밭의 양배추 촬영 현장 이미례의 두 번째 영화는 1985년의 < 고추밭의 양배추 >. 에로티시즘 영화가 한국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시절이었기에 이 영화 역시 제목만으로는 그런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7년 동안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수환이 오지랖이 넓어 사사건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다. 수환은 학교 안에서 노숙하기 일쑤고, 재벌의 딸을 경호하는 보디가드들이 캠퍼스에 들어왔다고 결투를 벌이고, 소매치기를 쫓다 교통사고를 당해 만신창이가 되거나, 불쌍한 사람을 위해 등록금을 쓰고는 공사판에 가서 일을 하기도 한다. 수환 같은 늙은 괴짜 대학생은 1970-80년대의 대학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타입이다. 이미례의 세 번째 영화는 1987년의 < 물망초 >. 감독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손꼽는 이 멜로드라마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부유하고 철없는 남학생 철수와 예쁘고 생활력 강한 여학생 영희가 오로지 사랑의 힘만을 믿고 대학생 부부가 되는 사건을 저지른다. 그들은 ‘철없는 애송이 부부’라는 사회의 편견을 깨고 꿋꿋하게 자립하려고 분투한다. 그들은 아이까지 낳아 키우며 악전고투 하지만, 철수가 불치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젊은이들의 발랄한 분투기가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리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희는 한국영화의 여주인공 대부분이 매춘부와 호스티스였던 시기에 씩씩하고 활달한 캐릭터로서 주목할 만하다. 철수 역은 당시 스타로 발 돋음 하던 최재성 이 맡아 눈길을 끈다. 이 영화를 찍은 다음 해인 1988년, 이미례는 2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이미례는 1987년에 < 학창보고서 >, 1990년에 < 영심이 >, 1991년에 <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를 연출했다. 모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하이틴 영화이다. 이 시기 한국영화에서 하이틴 영화가 유행한 데다 여성감독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세 편 가운데 특히 배금택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심이>는 평범한 여고생 영심이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을 코믹하게 그려내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가요계의 최고 스타였던 댄스가수 박남정 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이재은 , 김민종 , 이경영 , 노사연 등 화려한 출연진들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박남정과 백댄서들이 출연, 박진감 넘치는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인다. 가수 노사연의 코믹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1990년 ‘한국영화 베스트10’에 선정되었다. 이밖에 <학창보고서>는 열등학급으로 전학 온 주인공 창하가 스터디그룹을 결성하고 학우들을 다독여 학급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야기이다. 이상아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무용수의 꿈이 좌절되자 방황하는 해리 역을 맡았다.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는 새로 부임한 젊은 남자 교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학생들을 변호하다 교장과 마찰을 빚기 일쑤인데, 결국 문제 학생을 위기에서 구해주려다 희생하게 된다. 학생들은 비로소 스승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오열한다. 이미례의 하이틴 영화는 모범학생이 아니라 평범하거나 다소 불량한 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이 즐기는 하위문화를 다채롭고 코믹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이미례는 작품으로 인정받거나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고, 당시까지는 유일하게 6편의 영화를 찍은 여성감독이자 영화계의 홍일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계속 주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제작자들이 깊이도 없는 청소년 영화만 맡기는 바람에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계속 청소년 영화만 하라고 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쿼터 맞추려고 아니면 장사하려고 한국영화 찍는 분위기도 싫고, 청소년 영화감독으로 꼬리표가 붙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이래저래 탈진해서 영화를 놓아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미례는 영화 대신 공중파의 방송 다큐멘터리, EBS의 <육아일기> 등을 연출했다. 유아프로그램은 미래의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프로덕션 ‘미례비전’을 설립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우석대학교 영상학부에서 겸임 교수로 재직했다. 여행을 다니고 벗들과 어울리며 한가하게 쉬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례는 1996년, 독신생활의 노하우를 집약한 책 『모르면 큰 일 나는 혼자 살기 테크닉』을 출판했다. 이 책을 내면서 그녀는 ‘혼자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해 요리를 만들고 청소를 했다. 그런 노력이 독신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관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나날이 늘어가는 독신 여성을 위해 책을 썼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편으로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7년 5월, 그녀는 등산전문잡지 「사람과 산」의 편집부장이자 산악인인 박기성과 결혼하면서, 오랜 독신생활을 청산했다. 임순례 감독과 함께 이미례는 애초에 영화계를 완전히 떠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동안 쉬려고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사이 10년이 훌쩍 흘러가고 말았다. 2001년, 그녀는 산악영화 <화이트 케어>를 들고 컴백하려고 했다. 백두대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여성이 산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여성 버디무비가 될 예정이었다. 시나리오 작업도 잘 끝냈고 제작자도 나선 상태였기에 바로 제작에 들어갈 듯 했지만, 이미례가 10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다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끝내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7년, 이미례가 쓴 시나리오를 원작으로 <안나푸르나>라는 연극이 개막을 했다. 1999년,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등반하고, 하산 길에 실종된 여성 산악인 지현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여성 산악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견고하고 끈끈한 우정을 담아내려고 했다. 이미례는 <안나푸르나>가 반드시 만들고 싶은 꿈같은 영화이기에, 저예산 독립영화로 직접 제작하려고까지 했으나 결국 영화화하지는 못했다. 2008년, 이미례는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하는 ‘2008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올해의 여성 영화인 공로상’을 받았다. 여성 영화인이 없는 환경에서 후배 여성들을 위해 길을 터 준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미례는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다짐해왔지만, 현재는 2005년에 문을 연 음식점 ‘여자만’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남편의 고향이 전남 고흥인데다 시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아 비법을 전수받다보니 음식솜씨가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영화제작이 계속 무산되자 먹고 살기 위해 음식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인사동 맛 집으로 대박이 나면서 분점까지 여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전히 이미례는 한국영화사에서 여섯 편의 영화를 연출한 몇 안 되는 여성감독으로 기록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영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일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던 그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새로운 신화를 쓰게 될지 기대해본다.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철(이하‘ 이 ’) 일단 원전 이야기부터 진행하기로 하자. <심청전>의 심봉사와 마찬가지로, < 마담 뺑덕 >의 학규( 정우성 )는 아내나 딸 청이( 박소영 ), 덕이( 이솜 )에게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비극은 학규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임필성 (이하‘ 임 ’) 내가 각색을 많이하긴 했지만, 장윤미 작가의 원작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 한국고전 설화는 대부분 그 시대와 전통적 남성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심청전>을 다시 찾아보니 무척 서늘한 이야기더라. 딸이 팔려가는 것을 방조하면서 뺑덕어멈과 어울리는 상황이 무책임한 한국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 심봉사는 곽씨 부인과 20년을 지냈지만 아이가 없다. 그게 일종의 성적인 느낌을 주더라. 눈을 잃는다는 게 남성성의 상실처럼 읽힌다. 학규도 눈이 먼 후 무기력하고 쇠락해 보인다. 반대로 눈을 되찾기 전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듯 말한다. 임 동의한다. 종이에 손을 베어 피가 나도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눈이 안 보인다면 오죽하겠나. 더군다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탐미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이자 교수에게 실명이란 치명적이다. 폭주하며 달리던 사람이 시력을 잃었을 때 어디까지 퇴락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수컷의 본질적인 어리석음이랄까.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결국 욕망을 끝까지 좇으면 이런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우화적인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이 덕이 캐릭터로 넘어가보자. 원작의 뺑덕은 못된 여자다. 그런 그녀를 왜 주인공으로 삼았나. 임 <심청전>의 현대적인 각색이라는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뺑덕에 큰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뺑덕이란 캐릭터를 잘 모르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해를 입히는 상징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영화는 ‘뺑덕이 악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 이야기를 단순히 19금이 강조된 막장 드라마가 아닌 멜로로 만들고 싶었고, 덕이를 생각하면서 로만 폴란스키의 < 테스 >(1979)를 많이 떠올렸다. 자연주의적인 배경에서 시작해 관객 모두가 아는 원형적인 내용을 따라가다 파격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이는 가난한 여성이다. 그녀가 여대생들 사이에 초라하게 서 있던 장면이 슬펐다. 한창 대학에 다닐 나이지 않은가. 원전의 심청은 착한 심성으로 가난을 극복하는데, 영화의 덕은 가난으로 인해 죄를 짓는다. 임 놀이동산에서 덕이는 학규에게 “교수님이세요?”라고 물어본다. 그녀는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다시 말해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는 존재다. 그런 상황에서 미남인 동시에 야성미도 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학규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그는 미지의 남자다. 젊음과 미모라는 무기를 지닌 덕이는 그것을 일종의 돌파구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한다.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욕망과 욕정,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원전은 전국적인 축제로 끝난다. 전국의 봉사들이 눈을 뜨는(웃음). < 마담 뺑덕 >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임 그렇진 않다. 어떤 평론가가 “안구 이식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어떤 분은 이 영화는 SF영화라고도 했다.(웃음) 감독으로서 판타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책임해 보일 수 있겠지만, 고전설화를 바탕으로 미친 사랑에 대한 우화를 만들려 한 영화에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할까 생각한다. 결론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결말을 여러 가지로 준비했다. 예컨대, 학규가 눈을 뜬 후 덕이를 찾아갔는데 평범한 남자와 아이를 낳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쓸쓸히 돌아가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비극 아닌가? 그럼에도 결론적으로는 관객들이 복잡하고 심난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오길 바랐다. 이 <심청전>은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작들을 봐도 관객들이 웃으며 볼 여지를 잘 안주는 것 같다. 감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나? 임 그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편인 <슈퍼 덕후>나 옴니버스 장편인 < 인류멸망보고서 >의 에피소드들에도 코미디적인 요소가 상당했다. 사실 < 마담 뺑덕 > 전에 코미디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유명 배우도 캐스팅됐고, 이제는 < 국제시장 >으로 흥행 작가가 된 박수진 작가도 합류해 있었다. 가벼운 미국식 코미디였다. 하지만 내가 만든다고 하니 투자사에서 아무도 안 믿더라. 모두들 이렇게 진행해 투자를 받고 분명 작가영화적인 코미디를 만들 것이라고 의심했다.(웃음) 요즘 한국 사회가 너무 피폐하고, 호러 수준의 사회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나 역시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진행되지 못했다. <마담 뺑덕>은 지금까지 작업한 장편영화 중 가장 예산이 적게 들었지만 가장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다. 현장에서 분란도 전혀 없었고,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합도 잘 맞았다. 분명 감독의 고유한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 같다.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유연해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론 어떤 장르라도 더욱 더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심청전>을 해석한 현대 작가는 최만식, 최인훈 , 오태석 , 이청준 , 황석영 등 한두 명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대체로 유사한 부분이 있다. 청이 결국 밑바닥 여성으로 살게 되는, 즉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요원한 듯이. < 마담 뺑덕 >은 다르다. 덕이는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임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와 편집할 때 논쟁이 많았다. 나는 청이가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이와 학규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자신의 자아를 어렵게 찾은 청이가 일종의 비공식적인 심판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청이가 모든 사람을 망가뜨리는 결말을 짓고 싶지 않았다. 원래 시나리오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청이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짠한 표정으로 차 타고 가버리는 것이 결말이었다. 일방적인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본인들이 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붙잡는다는 쪽이었다. 이 사실 덕이는 악녀라기보다 실수를 저지른 것에 가깝다. 청이의 행동은, 덕이가 저지른 실수에 윤리적인 균형을 잡아준다는 느낌이 든다. 임 동의한다. 그런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국의 일반적 서사에서 여자에게 취하는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려 했다. 덕이는 학규의 눈이 급속도로 멀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학규가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덕이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을 멀게 한다. 이 남자가 눈이 멀면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것은 일종의 애증관계이고, 그것이 사랑에 대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둘의 사랑의 관계, 그 파괴성이었다. 이 이제 영화로 돌아가보자. 정사신은 처음인가? 임 장편영화에서는 처음이다. 1999년 < 베이비 >라는 34분 짜리 단편 성장영화에 정사 신이 있었다. 찍기가 힘들었는 데, 공교롭게도 그 부분만 필름의 현상 사고가 나서 다시 촬영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했다. 이 요즘 영화들의 정사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영화의 정사 신에 길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일단 몸매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너무 기교적이고 매끈해 감정이입이 잘 안되더라. 임 영화 개봉 후 ‘19금 영화의 전문가’라 불리는 김형석 전 <스크린> 편집장으로부터 정사 신에 대해 극찬을 받았다.(일동 웃음) 오히려 여자 관객들이 신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정우성 이라는 배우 덕분이라고 본다. 그런 외모, 몸매를 가진 남자가 드물지 않나.(웃음) 하지만 나는 감독으로서 정우성을 실제 학규로 믿어야 했고, 굳이 교수 정우성을 전형적인 보통의 평범한 교수 이미지로 낮출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관객이 이 장면을 더 야하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시사 후 반응을 보니 30대 이상의 관객들이 더 야하게 느끼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관능적인 신이 펼쳐지다 여주인공 덕이가 돌변하는 것, 정사 신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 묘사들이었다.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두려운 존재가 될수도 있다는 것만큼 남자가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묘사 자체가 노출의 강도에서 지나치진 않았나 생각하긴 했다. 영화 중후반에 학규의 애인과의 정사 신은 짧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에서 덕이와 청이 모두 복수를 하고 있다. 덕이의 복수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청이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청이의 복수는 동기가 약하다. (극장판에서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청이가 덕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복수한다고 봐야 하나. 임 원래는 그 구조가 강했다. 덕이와 청이도 정신적인 동성애 관계로 설정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많이 삭제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배우와 연관 지어 답변해야겠다. 배우를 억지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더라. 덕이 역을 맡은 배우 이솜 은 감성적인 천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감성이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캐릭터는 아니고 실제로 나이도 어리다. 청이 역을 맡은 박소영 역시 연기력도 좋고 매력적인 외모지만 현재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이 친구가 영화를 모두 이해했을지언정 이 친구에게서 관능성을 끌어내기엔 죄책감이 들더라. 실제로 굉장히 모범생이고, 미래에는 야성적 이미지도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겠지만 현재 나이에 이 영화를 위해 간접경험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더라.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이것을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꿨다. 이 덕이의 대사 중 “쓸쓸한 사람은 회전목마를 탄다”는 게 있다. 덕이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마지막으로 볼 때 떠올리는 것은 회전목마를 탄 자기의 모습이다. 임 일종의 꿈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을 찍으려고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전체를 함축한 장면이다. 이 부분이 아름답게 잘 찍혔기 때문에 뿌듯했다. 찍기 어려운 장면인데 6시간 만에 찍었다. < 황해 > < 추격자 > 등에 참여한 이성제 촬영감독이 찍었는데,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적인 분이더라. 그런 정서적 방점을 찍는 장면에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마침내 학규는 덕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덕이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 들어간 거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본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임 어떤 관점에서는 충격적인 면도 있다. 학규는 기본적으로 탐미주의자다. 작가로 설정되어 있고, 학규가 시력을 잃은 후 쓴 소설을 보며 최고라고 덕이가 말하는 장면에서 보듯, 그는 극단으로 가야 저력이 나오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신에서 우성 씨에게 요구하기를, 연민도 있지만 눈으로 직접 상대방을 보는 것에 대한 설렘도 함께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학규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참혹한 과정을 거쳐 죗값을 치렀지만, 결국 덕이 앞에 섰을 때의 학규의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 여자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을 때의 복잡한 심정은? 두배우가 깊은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이 평론가들이 뽑은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 마담 뺑덕 >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흥행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거나, 관객이 이해를 못하거나, 애초부터 저주받은 감독. 스스로 어떤 감독이라 생각하가? 임 세 개 모두 해당된다.(일동 웃음) 하지만 난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 남극일기 >는 매우 어두운 영화고, 최근엔 판타지 장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만 < 헨젤과 그레텔 >도 어렵게 촬영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도전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개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비평과 흥행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쳐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후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여러 차례 받고 권위 있는 매체에서 높은 별점도 받았으나 기분이 풀리지 않더라. 지금은 그렇다. 흥행이 잘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내 영화를 이해해주는 소수의 비평가, 관객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친한 동료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솔직히 질투도 느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 마담 뺑덕 >은 개인적으로 상업영화의 접점에서 최선을 다한 작품이다.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 경험들이 소중하고 제작 과정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송강호, 정우성 등 당대의 훌륭한 배우들과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감독으로서 일부 메이저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한국영화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임 작가영화, 혹은 예술영화 감독들에게는 고난의 시대일 수 있다.(웃음) 하지만 독특한 개성과 창의력이 있다면 영화는 만들어지고 개봉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후배들이지만 연상호 감독, 나홍진 감독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소위 ‘미친’ 감독들이 있지 않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창작자 고유의 개성이 점차 중요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 감독과 주연배우 크레디트에 앞서 모든 부분투자자의 이름까지 나온다. 물론 그들이 없다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산업이 너무 자본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영화의 산업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 살인의 추억 > < 올드보이 > < 지구를 지켜라 > < 장화홍련 >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과연 이러한 영화들을 데뷔작 혹은 후속작으로 찍는다고 했을 때 투자가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이 올해 감독 데뷔 10년차가 되었다. 차기작은? 임 오랫동안 <악의 꽃>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정우성 씨와 함께 기획 중인 영화도 있고, <적赤>이라는 국립무용단의 한국무용 공연도 6월에 무대에 올린다. 확실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감독으로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거나 타협하는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것이 장편 데뷔10년차를 맞으며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다. 관객들의 전반적인 사랑을 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영화의 밀도를 높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