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 감독
- 안노 히데야키, 히구치 신지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박소현, 이미자, 황윤걸, 김강산, 이병식, 이선호, 성유진, 권혁수, 타카모리 요시노, 사쿠라이 토시하루, 키요카와 모토무, 오오츠카 아키오, 미즈타니 유코, 타키자와 쿠미코, 호리우치 켄유, 히다카 노리코
대중문화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아니 반사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원형을 떠올리고, 옛것이 훨씬 더 훌륭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고 꼰대가 되어가는 증거일 테다. 지금 애니메이션 칼럼을 쓰고 있지만 민망하게도, 현대 애니메이션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탓에 늘 먼지 쌓인 추억의 라이브러리만 뒤지는 자괴감의 변명이다. 내게 애니메이션, 특히 ‘일본 아니메’는 언제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나왔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이 모든 개념과 인식의 근간이다. 그 시절의 작품들을 접했던 때의 내가 이형(異形)의 이국(異國) 문화에 심취했던 10대였기 때문이겠지만,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꼈던 이유가 있다. 그 시절 아니메는 뭐랄까, 약간 미친 것 같았다. 작품이 다루는 소재와 전하는 테마 이전에 움직이는 그림 자체가 호화찬란했다. 대부분 작품들이 저마다 넋 나갈 수준의 퀄리티였다고 기억한다. < 천공의 성 라퓨타 > <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 한 번 대충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1984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에서 린 민메이가 부르는 노래로 이 리스트는 시작한다. 85년 린 타로의 <카무이의 검>이, 86년에 지브리가 설립되어 < 천공의 성 라퓨타 >가, 87년 카와지리 요시아키의 < 요수도시 > OVA와 가이낙스의 첫 작품 <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가 나왔고(데자키 오사무의 < 보물섬 > 극장판도 1987년이었다. 물론 이쪽은 1978년에 나온 TV 애니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한 것이었지만), 이어서 88년에 오토모 가츠히로의 < 아키라 > 극장판이 어떤 정점을 찍고 89년에 <파이브 스타 스토리>와 < 마녀 배달부 키키 >가 나온 다음 90년대로 진입한다. < 수병위인풍첩 > < 신세기 에반게리온 > 1990년에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91년 <사일런트 뫼비우스>, 92년 < 자이언트 로보 >, 93년 < 수병위인풍첩 >과 <기 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 94년 다카하타 이사오의 <헤이세이 폼포코 너구리 전쟁>… 이렇게 가다가 95년에 < 메모리즈 >와 오시이 마모루의 < 공각기동대 >로 또 한 번 아니메 퀄리티의 정점을 찍은 다음, 1996년 안노 히데아키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그렇게 끝나면서 내가 알던 일본 아니메의 세계는 멸망, 자폭, 리셋, 포맷되었기에 이후의 사정은 어떻게 되건 말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내 뇌에서 자동으로 전개 가능한 아니메 연대기다. (이 리스트에서 ‘건담’ 시리즈를 뺀 건 건담은 아니메의 영역과는 따로 구별하여 논의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이념 때문이다.) 나는 이 시기 아니메의 퀄리티가 굉장했던 이유를 일본이 버블 경제의 호황기를 누릴 때여서 업계에 들어오는 자본이 넘쳤고, 시장의 수요가 폭발했으며, 온갖 다양한 기회를 잡느라 애니메이터들의 재능 역시 부글부글 끓어 넘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중에 실상을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정착되기 시작한 ‘제작위원회’ 방식은 실은 애니메이터들의 육체와 영혼을 뜯어먹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인력과 노동을 엄청나게 요구하니 애초에 제작비가 높다. 점점 상승하는 제작비 부담과 흥행 실패의 손실 부담을 덜기 위해, 여러 출자사의 공동 투자를 받고 이익은 투자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 바로 제작위원회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컨소시엄을 이룬 이 임의 단체는 수익 정산이 끝나면 해산한다. 모여서 파이를 만들고, 뜯어 먹고, 헤어진다. 내가 업계의 스승으로부터 들은 말 중에 가장 무겁게, 또 무섭게 받아들인 문장은 “돈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돈은 언제나, 반드시 언젠가 그걸 받아 쓴 이에게 말을 하는 법이다. 이 세계에서 눈먼 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돈은 말을 한다. 지분을 쥔 스폰서들이 권리를 갖고 말을 하면, 제작진은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제작위원회 안에서 얼마나 그 말들이, 즉 창작에 대한 개입이 많았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배에 사공이 많으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다 안다. 이런 구조는 작품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고 사실 떨어져야 정상이다. 손실을 각오하고 투자하는 것과 달리 손실 자체를 미리 나눠놓은 것이 제작위원회다. 흥행에 성공해서 수익이 나더라도 실무 제작사 입장에선 인건비와 작업비를 충당하러 이미 돈을 받아 쓴 거라, 남는 건 없고 다만 망하지 않았으니 다음 일을 또 할 수 있다. 남는 건 작품뿐이다. 노동을 이어가기 위한 창작이라고 할까. 넋 나갈 수준의 퀄리티로 만들어진 그 시절 일본 아니메의 이면에는 이번 일을 끝내 작품 한 편을 만들었으니 또 다음 일로 넘어가는 애니메이터들의 고통이 가득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아니메의 퀄리티란 그림과 내용의 질이 그다지 균형적이지가 않았다. 예를 들어 작화가 압도적인 데 반하여 이야기는 별 감흥 없이 그저 그런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내가 제시한 리스트를 결코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걸작 리스트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창작 행위의 그럴듯함, 예술가의 근사함은 여기 없다. 간혹 어딘가 뜻 모른 채 도달하는 기적이 일어날 뿐, 이미 영혼이 탈곡된 채로 엄청난 공력의 그림을 집요하게 그려대는 노동자들만이 존재했다. < 비너스 전기 >(1989)를 다시 본 이유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환상적으로 움직이는 그림 뒤의 현실노동 말이다. 퍼스트 건담의 캐릭터 디자인에서부터 당시 업계 최고의 실력이었으며 가장 잘 나가는 애니메이터였던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은 본인의 원작 만화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작품 이후 애니메이터 은퇴를 선언하고 애니메이션 일에 손을 뗐다. (수십 년 후에 < 기동전사 건담 THE ORIGIN >으로 복귀하긴 하지만) 그는 살아 움직이는 만화영화를 뒤로하고 정지한 연속 그림의 세계, 만화로 돌아갔다. 그 이유로 남의 작품들을 보고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한 건 아무래도 위장 같다. 흥행 실패도 원인이 아니었을 거다. 선생의 평소 객관과 드높은 성품으로 보아 애초에 그딴 건 관심도 없었을 것 같다. 나는 그가 애니메이션을 관둔 이유를 이른바, ‘학을 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하긴 하지만 계속할 이유가 그다지 없는 노동에서 불과 40대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림이야 집에서도 그릴 수 있지 않은가? 자본에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 노동을 온전히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만화로 옮겼다. 선생은 만화 작업에 어시스턴트를 따로 두지 않았다. < 모빌 슈트 건담 디 오리진 >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아들을 보조로 썼을 뿐이다. < 비너스 전기 >는 지구의 식민지로 테라포밍된 미래 금성에서 ‘아프로디아’와 ‘이슈탈’ 두 세력이 충돌한 전란의 한가운데, 바이크 레이싱 게임 선수였던 ‘시로’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선생이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왕도의 개>나 <무지갯빛 트로츠키>같이 현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만화 쪽이 훨씬 흥미롭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시로 말고 반대 세력의 주인공이 한 명 더 있었다는 원작 만화의 내용만 궁금해진다. 감히 말하건대 이 애니메이션에서 볼 건 오직 그림밖에 없다. 그러나 그림이 환상적이다. <아키라>의 작화와 모션이야 굉장하지만 오토모 가쓰히로 특유의 그림체가 어딘가 싫었다면, 짐작해보라. <비너스 전기>는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이 그린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 아키라 > 이상으로 움직여대니까. 시로와 일당들은 전쟁이야 어찌 되건 자신들의 경기장을 점령한 거대전차 ‘타코’가 싫다. 탱크를 경기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들은 각자 한 손에 대전차 무기를 들고서 원 휠 바이크를 몰고 간다. 일본 아니메를 통틀어 베스트 시퀀스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액션이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어른들의 “힘과 거짓을 보면 부아가 치미는” 애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대의가 죽일 뿐”이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살아있으면 언젠간 좋은 일도 있단 말이다!”라며 구하러 달려가는 어른도 있다. < 비너스 전기 >가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은 딱 이 정도가 전부다. 관객의 감정을 어딘가 도달시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위대한 장인이 한때의 업을 ‘때려치울’ 명분을 제공한 작품으로써 < 비너스 전기 >는 충분히 넘치는 가치가 있다. 아직 하나도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한 나는, 최고의 대가가 때려치운 어느 노동 앞에서 부러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재능조차 없는 나는 사실 이쪽 일을 진작 때려치워야 했지만, 아직 내세울 명분을 만들지 못했기에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또 그 시간이 지리멸렬했던 이유는, 실은 진짜 고통스런 노동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도시 전설(Urban Legend)’이란 게 있다. 근거는 없지만 사실처럼 떠도는 이야기들. 얼마 전 인터넷에선 모 우유 회사의 어느 감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그의 이름이 찍힌 우유가 다른 감수자들의 우유 맛보다 조금 진하다는 것. 이에 한 매체가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전혀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졌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언제든지 주변을 떠돈다. 그게 조금 무서운 이야기라면 더더욱 흥미를 자아내고 인기를 얻는다. 한국 폐가로서는 이례적으로 CNN 뉴스까지 탔던 곤지암 정신병원을 비롯해,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만날 수 있다는 소복 입은 여자 괴담이라든지, 엘리베이터 한층 밑에서 내려 칼을 들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아저씨에 대한 괴소문 등과 같은. 진위나 타당성 따윈 상관없이 오로지 관심과 재미로만 소비되는 이 구전 신화는 대중의 호기심과 확증적 편향에 따른 결과물로 알게 모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 캔디맨 > 역시 이런 야담과 실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고 이를 굉장히 잘 활용한 호러영화다. 유명한 호러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The Forbidden」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도시 전설을 다룬 영화답게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도 제법 성공했다. 캔디맨 도시 전설을 연구하는 헬렌. 그녀가 관심을 가진 건 거울 앞에서 ‘캔디맨’을 소리 내 다섯 번 부르면 등 뒤에서 갈고리를 찬 흑인이 나타나 배를 갈라 죽인다는 소문이었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는 장소를 찾아 탐문하던 그녀는 이 이야기가 1890년 남북전쟁 후 부를 축적한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난 남자의 죽음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노예 출신이었지만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상류사회에서 성장한 다니엘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따랐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부유층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어느 부유한 지주의 부탁을 받아 딸의 초상화를 그리다 그녀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 임신시키고 만다. 이에 격분한 지주는 그의 죽음을 사주했고, 다니엘은 곧 붙잡혀 오른손을 잘리고 온몸에 꿀이 발린 채 벌에 쏘여 죽게 된다. 그 시체는 불태워져 카브리나 그린 지역에 뿌려졌는데, 지금까지도 그 원한을 잊지 못한 그가 나타나 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 헬렌 역시 그런 캔디맨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그녀 주변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현대인의 소외와 도시의 공허함, 사랑과 운명을 잿빛 톤으로 담아낸 버나드 로즈의 연출은 현대음악의 거장인 필립 글래스의 스코어와 만나며 더욱 명징하고 강렬하게 꾸며졌다. 스티브 라이히와 라 몬트 영, 테리 라일리 등과 함께 미니멀리즘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필립 글래스는 1937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현대음악가로,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였으나 무조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며 뉴욕의 줄리어드 음대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했다. 그러나 조각나고 무질서한 우연의 음악과 복잡한 불협화음의 모더니즘에 싫증을 느낀 그는 유럽에서 ‘음악가의 음악가’라 불리는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화성학과 대위법을 배우고,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인 라비 샹카르와 타악기 연주자 알라 라카 등을 만나면서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깨우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멜로디와 화음, 리듬에 있어서 놀랄 만치 진보적이라 말할 수 있는 단순함(minimal)이었다.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말부터. 20세기 중엽 고전음악의 화성과 음조의 특징적인 복잡성을 배제하고, 하나의 코드, 짧은 모티프 등 최소한의 소재에 집착하며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조금씩 변주되는 형태의 협주곡들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작고 단순한 리듬과 멜로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변화를 수없이 거듭해 급기야 트랜스 상태까지 이끌어내는 이 일련의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의 조화로운 소리들은 전후 예술사조 전반에 불었던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과 맞아떨어지며 각광받기 시작한다. 글래스는 이에 멈추지 않고 행위예술과 발레, 오페라 그리고 영화와 영상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 손대며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필립 글래스 필립 글라스는 이 영화를 위해 파이프 오르간과 합창단을 대동한 고딕 스코어를 완성해냈다. 그러나 호러영화에서 자주 들리는 음향과도 같은 전위적인 사운드나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던지는 스케일의 압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단출하지만 아름다운 피아노와 영혼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코러스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 우중충하고 몰개성적인 도시의 획일적인 풍광에 그의 장중하고 거룩한 선율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미니멀리즘의 반복되는 단순한 멜로디 라인은 도심의 비슷한 외형에서 오는 고독과 공허, 소외감에 밀접하게 맞닿아있고, 그 속에서 조금씩 섬세하게 변주되는 과정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상징한다. 점층적이고 고조되는 리듬의 진행은 드라마를 야기하고 서사를 부여하며 새로운 도시의 신화를 창조해간다. 글래스는 이미 이전의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의 < 코야니스카시 >와 < 포와카시 >를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초상과 사회에 대해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경이와 감동을 표현한 바 있기에, 이 기시감을 통해 전혀 다른 전율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현재의 헬렌은 거울을 통해 과거의 다니엘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는데, 그들의 대칭적인 위치와 배경(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 글을 쓰는 대학원생과 그림 그리는 화가, 배우자의 불륜과 강제로 헤어진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균형감을 잡는데 글래스의 반복과 변형은 커다란 중추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영화음악처럼 미키마우징이나 언더스코어 역할에 그치지 않고, 미니멀리즘이란 형식 자체가 영화의 주제에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완성본을 처음 본 필립 글래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애초 버나드 로즈가 음악을 부탁하며 건넸던 창조적인 함의의 스크립트와 달리, 예산의 한계로 인해 엉성하게 만들어진 뻔하디뻔한 할리우드 호러/슬래셔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편에 실망했음에도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속편을 위해 그는 4개의 큐들을 새로 작업했고, 원 스코어를 편곡해 전편과 이어지면서도 독자적인 매력을 갖춘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그의 스코어는 속편에서도 여전히 고딕적이고 장엄하며, 아름다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선율을 들려주었다. 1편의 ‘헬렌의 테마’에서 피아노와 합창을 통해 숭고하면서 비장한 슬픔이 묻어났다면, 2편의 ‘애니의 테마’에선 피아노와 솔로 소프라노로 처연한 아름다움과 운명론적인 굴레를 보여주었다. 글래스의 스코어는 단순히 싸구려 호러로 전락할 수 있는 영상에 진중한 주제의식과 무게감을 부여했고, 굴곡진 역사의 아픔 속에서 산화되었다가 20세기말 핏속에서 부활한 캔디맨에게 어울리는 오라토리오를 선사했다. 그의 <캔디맨> 스코어는 < 싸이코 >의 ‘The Murder’나 < 오멘 >의 ‘Ave Satani’, < 엑소시스트 >의 ‘Tubular Bells’이 가진 전위와 공포감과 또 다른 무시무시한 마력을 전달한 스코어로 기억될 것이다. 이후 글래스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의뢰를 받아 토드 브라우닝의 1931년 걸작 공포영화 <드라큘라>의 새로운 스코어를 작곡하며 자신의 호러적인(?) 역량을 다시 한 번 과시했고, 영화음악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와 요청에 못 이겨 2001년 그간 미발매 상태였던 <캔디맨> 1, 2편의 음악을 함께 담은 사운드트랙을 발매했다. 사실 필립 글래스의 우려와 달리 <캔디맨>은 평범한 할리우드 슬래셔 호러로 전락하지 않았다. 비디오용으로 출시된 3편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버나드 로즈의 뒤를 이어 속편을 완성한 빌 콘돈의 2편 역시 캔디맨의 근원에 대해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를 가진 호러가 되었다. 원작이 가진 캐릭터의 힘이나 감독들의 연출력보다는 필립 글래스가 걸어놓은 압도적인 주술의, 완벽한 저주와도 같은 음악 덕분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본다. 미묘하게 변해가는 단순한 선율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가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부단한 노력은 캔디맨처럼 영생을 얻었다. 그 사랑과 고통의 찬가는 달콤하고 짜릿하다.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F-0751)에서도 접할 수 있다.) ‘The Murder’ by Bernard Herrmann Track List 1. Music Box CANDYMAN SUITE 2. Cabrini Green 3. Helen's Theme 4. Face to Razor 5. Floating Candyman 6. Return to Cabrini 7. It Was Always You, Helen FROM CANDYMAN II 8. Daniel's Flashback 9. The Slave Quarters 10. Annie's Theme 11. All Falls Apart 12. The Demise of Candyman 13. Reverend's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