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산책
- 감독
- 나영희
- 제작년도
- 2019
1970-80년대 한국영화는 이른바 ‘에로티시즘 영화(에로영화)’의 전성기였다. 권위주의 정권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영화에 대한 검열을 가혹하게 시행했다. 3S 정책에 따라 정치, 사회적 소재를 금지하는 대신 성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허용을 하자 에로영화가 흥행을 주도하게 되었다. 1983년에 개봉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송길한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임권택 감독이 연출했지만, 그 시대의 흔한 에로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제목에서부터 1981년에 흥행에 성공한 에로영화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의 아류작 같기도 하고(두 편 다 ‘우진필름’에서 제작했다), 여기에 에로영화의 대표적인 스타 나영희 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에로영화 같다. 현주 역의 나영희 가 보라색 가운을 걸친 채 설악산의 호텔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러나 호텔을 나온 그녀가 ‘학동’으로 가자며 택시를 잡아타면서부터 영화는 ‘로드무비’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까지 에로영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녀’ 때문이다. 영화의 뒷부분에 가서야 현주라는 이름이 알려지는 그녀는 부유해 보이지만 정체가 아주 모호하다. 그녀는 택시운전사 순호에게 “7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첫사랑 민섭을 찾으러 간다”고 말하는데, 그녀의 행동거지와 태도는 에로영화의 여주인공과 비슷하다. 그녀는 길에서 만난 부유한 남자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춤도 같이 추거나, 순호가 노상 방뇨하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특히 그녀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마주하는 풍경이나 사물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주 미묘한 미소를 지을 때, 그런 느낌은 더욱 강화된다. 그럼에도 에로영화에서 기대하는 장면이 등장하기까지 관객은 그녀가 순호의 택시를 타고 강원도에서 충청도까지 민섭의 자취를 찾아 헤매는 로드무비를 통과해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퇴락한 탄광촌과 남루한 마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순호의 택시에 동승하게 되는 촌로와 스님, 연인들 같은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택시 뒷좌석의 연인들이 서슴없이 애정행각을 벌일 때 바로 옆에 스님이 앉아 있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마치 에로영화와 로드무비 또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 사이에서 어렵게 줄타기하는 이 영화를 은유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임권택 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 만다라 >(1981)를 만든 다음, < 안개마을 >과 동시에 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영화에는 두 편의 흔적 같은 게 있다. <만다라>의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돌아다닌다면, 현주는 옛사랑을 찾아 헤맨다. <안개마을>(1983)의 수옥이 애인을 만나지 못해 낙담할 때 깨철과 섹스를 하게 되는 것처럼, 현주는 민섭의 열악한 상태를 목격하고 완전히 실망한 다음 순호와 섹스를 한다. 여기서 임권택 이 판타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현주와 민섭이 아름다운 재회를 하는 장면은 상상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이것은 순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순호는 현주에게 점점 이끌리지만 자신의 처지를 의식해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못한다. 그는 현주가 길에서 만난 부유한 남자와 춤을 추자 질투심이 폭발해 몸싸움까지 하게 되는데 일방적으로 얻어터진다. 자신의 계급을 거듭 돌아보게 만드는 순호의 첫 번째 패배. 현주가 창피해하는 순호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자, 그는 더욱더 그녀에게 이끌려간다. 사실 영화의 이야기는 현주가 민섭의 비참한 상태를 알아챈 다음 포기하고 돌아설 때 마무리되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주의 실패는 에로영화로 넘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마치 그 신호처럼 현주는 첫 장면의 보라색 가운을 다시 걸치며 등장하고, 곧이어 순호와의 정사 장면이 펼쳐진다. 순호가 그녀와 결혼을 꿈꿀 때, 관객은 비로소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혼자 강원도에 온 부유한 유부녀인데, 남편이 예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차를 타고 떠나버린다. 잠들어 있던 순호에게 “즐거웠다”며 작별을 고하는 메모 한 장을 남긴 채. 순호의 두 번째 패배. 임권택 은 주인공 모두에게 어떤 판타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순호는 미친 듯이 택시를 몰고 그녀를 뒤쫓아 가지만, 떠나가는 기차를 보게 될 뿐이다. 그는 택시에서 “요즘 너나없이 지겹게 고독을 말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이것은 관객에게 주는 정보이다. 현주는 첫사랑의 상실감을 순호와의 섹스를 통해 해소한 것이다. 혼란스러운 표정의 순호는 끝내 고독한 상류층 여자에게 일종의 농락을 당한 사실을 확연하게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농락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약간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현주는 민섭과 연애하던 시절을 회상할 때, 성관계를 완강하게 거절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녀가 먼저 순호에게 다가간 이유는 그에게 약간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민섭을 떠나보낸 것 같은 이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임권택 은 전자에 훨씬 더 마음이 기울었을 것이다. 냉혹한 흥행의 게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1980년대의 임권택은 노회한 솜씨로 암시와 모호함 속에 모든 것을 봉합해버린다. P.S.: 임권택 영화의 음악이라면 < 서편제 >와 < 춘향뎐 >이 떠오르는 관객에게, 이 영화의 음악은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특히 비 내리는 밤, 현주와 순호, 연인 사이인 젊은 여자와 남자가 민박집의 방에 함께 앉아 있을 때, 남자가 기타를 들고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을 부르는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님에게 그냥 무턱대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일 두 명의 배우가 있다면, 그러니까 한 명은 연기는 별로지만 이미지가 그 이야기 속의 인물에 딱 맞는 경우와 그 배역과 이미지가 동떨어졌지만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경우, 둘 중 감독님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는지요?” 나는 인물이란 이야기의 연출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후자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그냥 지나가듯이 드린 질문이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전자지요. 왜냐하면 영화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만일 인물이 화면에 나왔는데 그게 한눈에 보고 믿어지지 않으면 그걸 설득하느라고 내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요, 그러다가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할 시간을 쫓기게 된단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 거예요” 나는 이 말이 기묘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영화를 촬영하는 현장에서 임권택 감독님이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수십 테이크를 반복해서 부르는 것을 이미 목격한 다음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저 간단하게 돌담길을 걸어가는 장면을 초저녁에 시작해서 한여름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반복해서 다시 찍은 다음 결국 오케이 없이 끝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보는 쪽에서조차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그는 미세한 실수조차 놓치는 법이 없다. 이따금 혹시 그가 연기하는 배우를 슬로우 모션으로 관찰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도 망설이지 않고 임권택은 배우란 연기가 아니라 그 인물이 주는 인상이 먼저라고 대답했다. 이때 인상이라는 말은 무언가 설명을 빠져나가는 불안한 느낌을 준다. 영화배우는 영화 안에서 가장 까다로운 존재이다. 그건 영화 이론에서 배우에 관한 개념이 가장 빈곤하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스타라는 이미지의 기호와 그 활용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배우라는 존재. 연기라는 장치. 인물이라는 기계. 영화에서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항상 최선의 찬사가 아니다. 감독들은 영화배우에 대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원칙을 갖고 접근하였다. 장 르누아르는 오로지 배우들과 일하는 기쁨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모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로베르 브레송은 < 블루뉴 숲의 귀부인들 >을 찍은 다음 마리아 카자레스 때문에 이 영화를 완전히 망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브레송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마리아 카자레스 때문에 보고 또 본다. 브레송은 그런 다음 훈련된 연기자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배우들을 모델이라고 부르면서 끔찍한 연극적 습관, 이라고 선언한 다음 모델들은 밖으로부터 내부로 요구되는 움직임에 충실하고, 배우들은 내부의 감정적 동요를 외부로 드러내는 움직임에 충실하다, 라고 덧붙였다. 종종 세잔을 인용한 브레송은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선 배우를 (세잔의 탁자 위에 올려진 바구니 속의) 사과들처럼 대하기도 하였다. 파졸리니는 < 마태복음 >을 준비하면서 어떤 오디션도 보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들의 사진을 본 다음 배역을 결정하였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보자 관객들은 무대를 보지 않고 결국 스크린을 볼 텐데 왜 그들의 실물을 보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영화배우의 관상이라는 관점을 미학적으로 발전시켰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배우란 일종의 실내장식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 서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미장센이라는 정도이다. 나는 약간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배우는 어떤 성질을 지닌 영화 안의 코나투스이다. 그레타 가르보, 루돌프 발렌티노, 루이즈 브룩스, 릴리안 기쉬, 누구보다도 (배우로서의) 찰리 채플린. 이들은 각자가 각자의 원인으로 정당화되며, 그러면서 동시에 이야기 안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개체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영화를 예로 들 수도 있다. 결정적인 두 명의 이름. 김승호 와 허장강 . 언제든지 나를 멈춰 세우는 최은희 , 그리고 문희 . 누군가는 이들의 활동을 요구하는 쇼트 안의 기계적 관계에 의해서 영화 안의 구조의 내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건 영화의 효과이며 그들의 활동 자체와 다른 것이다. 오즈와 나루세의 절반씩의 하라 세츠코. 더할 나위 없이 이 흥미로운 존재. 영화를 아무리 제로로 환원해도 배우라는 존재가 그것을 마지막 순간에 거절할 것이다. 때로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자명하게 여겨진 것이 이 존재들 앞에서 불투명해지는 수많은 순간을 만났다. 이를테면 < 빅 슬립 >의 험프리 보가트. 종종 하워드 혹스의 바깥에 놓여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순간들. 그들은 자신을 그 안에서 연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 그 자체의 속성을 이루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게 어떤 영화라 할지라도, 결국 영화는 배우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한다. (물론 나는 지금 극영화에 한정 지어 말하는 중이다) 왜냐하면 가장 단순하게 영화는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존재가 영화 안에서 조건으로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조차 끊임없이 연장하는 실존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다소 과도하게 도식적으로 말하고 싶다. 배우는 영화 안에서 존재하기 위해 실존적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 혹은 그녀가 주연이건 혹은 조연이건 둘이건 셋이건 그 자신의 영원한 실존의 힘이 그 안에서 지속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배우를 본다는 것은 그 힘의 지속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안성기 에게 돌아오고 싶다. 이 이름 앞에 서면 무언가 긴 서문을 쓰고 싶어진다. 단지 그건 안성기가 차지하는 자리 때문이 아니다. 큰 자리. 물론 안성기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한국영화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임권택 의 영화에 한정 지어서만 말할 것이며, 단지 이따금 필요할 때에만 다른 영화를 참고할 것이다. 일종의 연대기적 서술. 그냥 산술적으로만 말하면 안성기는 (2013년 5월까지 개봉작을 기준으로) 출연작이 122편이다. 의미 없는 비교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은 배우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감독이다. 그 둘은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그저 양적으로만 말하면 임권택이 만든 101편의 영화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또한 임권택의 영화에서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가 고작 6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인터뷰가 이상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성기가 임권택의 영화 중에 < 만다라 >에 처음 출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임권택이 1964년에 찍은 희극영화 < 십자매 선생 >에 아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현재로서) 볼 수 없는 임권택의 (사라진) 영화 중의 한편이다. <십자매 선생>는 김승호 , 주증녀 , 황정순 , 김지미 , 도금봉 , 최지희 , 태현실 , 노경희 , 전계현 , 나애심 , 김진규 , 장동휘 , 김석훈 , 이대엽 으로 이어지는 1960년대 스타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역이기는 하지만 안성기에게 이 영화는 그의 27번째 출연작이다. (임권택에게 <십자매 선생>은 8번째 연출작이다) 안성기는 1957년 김기영 의 < 황혼열차 >에 처음 출연한 이후 34편의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하였다. 하지만 <십자매 선생> 이후 안성기는 더 이상 아역으로는 임권택의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우리는 어린아이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전후로, 말하자면 중학생이 된 안성기의 출연작은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다. 안성기는 1968년 이성구 의 < 젊은 느티나무 >를 마지막으로 영화 현장을 떠났다. 이 영화의 주연은 신성일 과 문희 이다. 아마도 그는 아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며, 어른이 된 다음에 영화배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결정이 그 자신의 선택인지 아니면 그의 부모의 조언인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그때 그는 아직 열일곱 살이었다) 그런 다음 12년 동안 안성기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의 공백 기간 동안 한국영화는 반공법과 유신정책, 국책영화, 이중의 검열 속에서 거의 부서졌다. 일종의 빈칸. (인터뷰에 따르면) 안성기 는 월남전에 장교로 복무하고 제대한 다음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1977년 김기 가 연출한 < 병사와 아가씨들 >에 출연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때는 한국영화를 사람들이 거의 보지 않았다. 음울한 시대. 1979년 10월 15일 부산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독재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이 발표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 시위는 마산과 창원으로 확산되면서 닷새 동안 이어졌다. 위수령이 발동되고 505명이 연행되고 59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0월 26일, ‘그때 그 사람들’.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는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하였고, 긴 어둠이 끝났다. 그런 다음 아주 잠깐 1980년 민주의 봄이 왔다. 하지만 그해 5월 광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그때 이장호 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이 도착했다. 도시 변두리의 중국집 배달부인 덕배와 그의 동네친구인 길남과 춘식은 매일매일 부서져 가는 희망을 안고서 살아간다. 아무것도 잘되지 않고 그들은 차례로 세상 안에서 자기의 꿈을 배신당한다. 덕배는 우스꽝스럽고 무기력한 남성성(masculinity)이 마주친 어떤 몰락의 증후처럼 보였다. 여기서 한국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괴이할 정도로 과장된 가부장제의 권위는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계급적 권위의 폭력과 그것을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위기의 경계들뿐이었다. 웃음들, 하지만 조롱. 안성기는 그 덕배라는 인물 안에 들어가서 1980년대의 초상화가 되었다. 슬픈 왜소함. 위태로운 얼굴선. 약간 쇳소리가 섞여 들어간 것만 같은 목소리. 아름다운 얼굴은 1980년 5월 광주 이후에 풍화작용을 거치기라도 한 것처럼 닳아버렸다. 대중들은 그 얼굴에서 어렴풋하게 자기들의 존재 방식을 보았다. 지식인들은 그 얼굴에서 시대정신의 패배를 예감했다. 안성기는 정확하게 그 순간에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런 다음 정반대의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임권택 은 < 만다라 >를 준비하면서 속세를 등지고 한겨울 소승불교의 여정을 떠나는 젊은 승려 법운으로 안성기 를 떠올렸다. 그는 여기서 속세의 소란스러움에서 눈을 돌린 채 병 속의 새를 찾아 걷고 또 걷는다. 그때 그가 만행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여자와 ‘이층을 쌓은’ 다음 파문당하고 대승불교의 길을 걷고 또 걷는 지산 스님이다. 선승들의 각(覺)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쉴 사이 없는 대화들. 그때 안성기는 세상의 삼라만상의 풍경과 연기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는 종종 바람에 흔들이는 나뭇잎 없는 나무처럼 서 있었고, 어디 낙하할지 장소를 정하지 않은 채 바람에 흩날리는 홀씨처럼 중력을 잃어버린 듯 걸었고, 등을 돌린 채 자신의 뒷모습으로 연기를 해야만 했다. 안성기는 시나리오의 인물을 재현한다기보다는 그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 인물의 진실을 묘사한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임권택 은 안성기 와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찍었다. < 오염된 자식들 >과 < 안개마을 >. 그러나 두 사람의 작업은 거기서 일시적이긴 하지만 중단되었다. 안성기는 배창호 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홍콩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을 빌리면 배창호는 “1980년대 한국영화의 스필버그”였다. 그중에서도 < 깊고 푸른 밤 >은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이장호 는 그와의 작업을 이어나갔다. 1988년 세대라고 불리는 장선우 (< 성공시대 >), 박광수 (< 칠수와 만수 >), 이명세 (< 개그맨 >)가 모두 안성기와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런 다음 강우석 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 투캅스 > 이후) 여기에 정지영 을 더해야 할 것이다. (< 남부군 >) 안성기는 이들의 영화에서 자신이 주연인지 혹은 조연인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저 자기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인물. 그는 분장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았다. 안성기가 즐기는 순간은 어떤 감정이 자기 몸을 통과해갈 때 일단 잠시 멈춰 세운 다음 그걸 음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걸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오구리 고헤이일 지 모른다. 그는 < 잠자는 남자 >에 안성기를 초대한 다음 자기 영화 안에서 우주를 꿈꾸는 잠자리에 눕힌다. 가끔 그는 연기하지 않는 대신 그저 존재하듯이 거기 있을 때가 있다. 임권택 과 다시 만난 영화는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1994년에 만들어진 < 태백산맥 >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빨치산이 된 형 염상진과 토벌대가 되어 뒤를 쫓는 동생 염상구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심을 잡는 자리에 지주이지만 이들 모두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지는 김범우가 있다. 안성기 는 김범우가 되었다. 지주라는 반동분자. 기회주의적인 지식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민족주의자. 안성기는 마치 이야기 바깥에 있는 것처럼 영화 안에 머물렀다. 임권택은 거기서 무엇을 끌어낸다기보다 무언가를 활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성기는 초상화 같았던 자신을 때로는 풍경화로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염상진을 연기한 김명곤과 염상구를 연기한 김갑수는 전혀 다른 전통에 놓인 연기자이다. 안성기는 영화 속에서 이 둘을 번갈아 마주친다. 이때 안성기는 단지 자신의 역할 때문만이 아니라 연기의 관계 속에서 이 둘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떤 균형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간격의 연기. 커다란 짐을 내려놓듯이 < 태백산맥 >을 마치자 임권택 은 거의 동화와 같은 구조 안에 들어가서 장례식에 관한 영화 < 축제 >를 찍었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 는 치매를 오랜간 앓아온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상주 역할을 맡으면서 거의 무색무취한 인물을 그려내는 데 성공하였다. 말하자면 승리. 진정한 승리. 연기하지 않는 배우라는 존재감. <축제>는 사실상 드라마라고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만나는 소소한 일상의 사건이 전부인 영화이다. 호상이라는 상가.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라는 이치 앞에서의 슬픔. 안성기는 여기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아무것도 덜하지 않았다. 몸의 의미로부터 안성기는 의미라는 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먹어가는 나이를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런 다음 임권택 은 아마도 그 자신의 자화상에 가까운 영화일 < 취화선 >을 찍었다. 그때 오원 장승업을 연기한 사람은 최민식 이다. 안성기 는 여기서 장승업을 평생에 걸쳐 지켜보는 개화파 학자 김병문으로 그 곁에서 이따금 등장하면서 연기한다. 2002년 이후 임권택은 세 편의 영화를 더 찍었지만(< 하류인생 >, < 천년학 >, < 달빛 길어 올리기 >) 안성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지금 102번째 영화 < 화장 >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이 영화의 배역에 대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안성기는 어떤 이미지로 정의되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다른 영화에서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았으며, 그때마다 나는 그 역할이 지나치게 정확하거나 때로는 다소 희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상대 배역의 연기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 거리가 주는 안정감만큼이나 어쩔 수 없이 거기에서 기대되는 예외적인 힘의 돌출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더. 안성기는 이야기 안의 인물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이야기 속의 그 인물. 나는 일반론으로 더 밀고 나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져본다. 임권택 감독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안성기 씨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겨났을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배우란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 인물과 만날 때가 있어요” 이 말이 내게는 이상할 정도로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런 인물이라는 표현 대신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겨났을 때 마치 구조를 구하듯이 그 자리에 초대되는 배우. 임권택의 영화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라는 인물이란 누구일까. 말하자면 안성기 선배에게 질문을 준비하는 지금 내가 떠올리고 있는 말은 그 한 마디이다. 그래서...... 정성일 _ 모두들 두 분 사이 인연의 시작에 대해서 < 만다라 >를 얘기하지만 임권택 감독님과 가장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건 1964년 작품인 < 십자매 선생 >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현재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승호 선생님을 시작으로 올 스타 출연 인정미담 희극이었습니다. 이 영화 현장이 기억나시는지요? 안성기 _ 그런 스타일의 영화가 당시 많이 있었어요. 임권택 감독님만의 색깔이라기보다는 이봉래 감독님이라고 계시는데, 영화가 유행이 있잖아요, 이건 그분 스타일의 영화인 거 같아요. 아기자기하고 소시민적인 주변의 이야기, 아마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니었나. 진짜 영화는 생각이 안 나요. (잠시 생각) 임 감독님 인상착의는 생각나는데 굉장히 무섭다, 젊었을 때 보면 굉장히 마르고 무서우셨어요. 어린 시절에 보면. 그랬어요. 지금같이 온화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물론 지금도 역정을 내시면 무서우시지만 보통 때는 안 그러신데, (웃음) 젊으셨을 때는 보통 때도 굉장히 무서웠어요. 정성일 _ < 십자매 선생 >이 임 감독님께는 6번째 영화지만, 안성기 선배께는 벌써 22번째 영화였습니다. 임 감독님보다 데뷔도 먼저 한 선배 신데(웃음),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에서 시작하셨고, 영화라는 경험으로만 본다면 임권택 감독님보다 더 많은 작업을 한 셈입니다. 희미한 기억일지라도 이 연출자는 이전에 내가 함께 작업한 감독과 다르다고 느꼈던 점이 떠오르는 에피소드나 그런 대목이 있으신가요? < 십자매 선생 >(1964) 안성기 _ 아역 때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임 감독님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 마찬가지예요. 어렸을 때는 거의 끌려갔던 기억밖에 안 나요. 나도 어렸을 때는 거의 서너 편 동시 출연을 했어요. 같은 옷 입고 여기 나가고, 저기 나가고 그래서 야 이놈아 너 또 이거 입고 나왔니, 이런 소리도 듣고(웃음) 그 당시는 진짜 정리된 게 없고 너무 소모적이었죠. 정성일 _ 어떤 점에서 안성기 선배는 한국영화사의 일부이자 증인이기도 한데 그 시절 동시 출연이 기억을 겹쳐놓은 것이 저로서는 안타깝습니다. 안성기 선배는 중간에 공백이 있었습니다. 1968년 < 젊은 느티나무 >를 마지막으로 충무로를 떠났고, 그런 다음 1977년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학업 상의 이유라면 대학입학을 한 다음 다시 연기생활을 계속했을 텐데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전공도 연기가 아니라 베트남어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필모그래피로만 보면 영화를 떠날 결심을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안성기 _ 중학교 때 < 얄개전 >(1965)에서 정점을 다 찍은 거 같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섭외 들어오는 영화도 없어지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약간 시들시들해졌어요. 나도 하려면 정말 제대로, 열심히 하면 모르겠는데, 어쩌다가 연락 오고 출연하고 이러는 게 부담이 되더라구요. 게다가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그 시기는 입시 때문에 공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고 성적은 너무 안 좋고, 특히 수학은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되겠다, 라는 걱정이 생겼죠. 그리고 그전에는 성격도 외향적이었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알아보고 하는 것이 그 당시 사춘기 때는 좀 가라앉는 분위기잖아요, 자꾸 혼자 있으려고 하는, 그런 내향적인 성격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떠나게 되었어요. < 하얀 까마귀 >, < 젊은 느티나무 > 이 정도 하고, 그러고 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한정된 데다가, 고등학생 역할이 없었고. 하이틴 영화는 내가 떠난 이후에 임예진 , 이승현 이 나오는 영화들이 유행을 했구요, 사실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하면서도 매력을 갖고 야 이거 재밌는 작업이다, 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판단 능력도 없었고. 어렸을 때 뽑혀가지고 한 거고, 아, 그렇다고 부모가 강제한 것도 아니고, 나 같은 경우는 친구 아버지인 김기영 감독에게 픽업 돼서 연기한 거여서 제작부장이 나 데리고 다니고, 끝나면 집에 데려다 주고, 그런 생활이었어요. 만약 영화라는 게 좋고 그랬으면 아마 거기에 대한 향수가 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나한테는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더 어렸을 때는 자고 싶은 데 잠 못 자는 게 그저 기분 안 좋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놀고 싶었는데 제작부에서 와서 데리고 끌고 가고. 내 의지대로 안 되니까 그런 것이 싫었던 느낌, 뭔가 불안한 느낌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친구들과 있을 때는 굉장히 마음이 푸근하고 편했었는데 어른들 세계로 가면 뭔가 정서적으로 불안해. 가정이 잘 버텨줬기 때문에 내 스스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느낌이 즐겁고 편하고 이러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역할이 없어지면서 영화에서 멀어진 거지요. < 병사와 아가씨들 >(1977) 정성일 _ 그렇다면 1977년 < 병사와 아가씨들 >에 출연하면서 다시 영화로 돌아온 결심이랄까, 계기가 있으신가요? 안성기 _ 그것도 뭔가 결심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취직이 안 되다 보니까, (웃음) 그런 거였지. 애초에 선택은 타의적이었고, 하지만 일단은 내가 이거 해야 되겠다 했을 때는 희망을 갖고 아주 적극적으로 포부를 갖고, 이젠 내가 결심을 하는 거고, 어른이 되어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기왕 하는 거 평생 할 것이다 마음먹고 한 거지요. 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해서 베트남에 가려고 했는데, 알다시피 뭐, 그때 패망해서 갈 수 없게 되었고, 대기업 원서 넣은 것도 다른 친구들은 다 되는데 나만 잘 안되면서, 취직이란 건 나하고는 잘 안 맞는가 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가장 남들보다 잘 할 수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니 그게 영화였고, 그때 아버지가 세경영화사에 전무님으로 기획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수월했죠. 그때는 (한국영화 진흥정책에 따라) 흥행영화와 우수영화가 있는데, 흥행영화는 다른 사람이 하고, 흥행과 상관없는 < 병사와 아가씨들 >이라는 우수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76년에 제대해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2년간은 나름대로 준비기간을 가졌어요. 영화를 하는데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나 나름대로 준비를 했어요. 프랑스 문화원에 자주 가서 영화도 많이 보고, 운동도 좀 하고, 몇 가지 배우로써 준비기간을 2년 가졌고 기회가 와서 데뷔를 했어요. 근데 결과는 참담했죠. 정성일 _ 그때는 한국영화 자체가 흥행이 안 되던 시절이었지 않습니까? 당시 기억나는 기사는 해방 이후 발전하지 않은 건 국회와 한국영화뿐이다, 라는 말이 있었고, 대중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안방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안성기 선배는 아역으로 시작하면서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일정 기간 연기수업을 쌓은 다음 배우가 되는데 안성기 선배는 아역 시절부터 여러 감독들의 연기지도를 받으면서, 혹은 선배 연기자들의 지적을 받으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성장한 배우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혹은 지금 돌아보면 누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까? 안성기 _ (잠시 생각) 배창호 감독인 거 같아요. 배창호 감독하고는 진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장가가기 전까지는 일이 없어도 날마다 만났어요. 사귀는 사람처럼 매일 만났어요. (웃음) 그리고 영화 얘기만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영화얘기와 그 다음에 할 영화 얘기를 끊임없이 했어요. 그러면서 여러 편 같이하다 보니까 겹쳐지지 않게 하자. 캐릭터라든가 그런 것들을 되풀이하는 걸 경계하자, 했어요, < 고래사냥 2 >는 최악의 필름이라고 배 감독도 얘기했지만(웃음) 겹쳐지는 것 말고, 매번 조금 더 다른 모습을 찾고, 끊임없이 얘기해서 아이디어도 주고 어떤 성격적인 변화라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했어요. 배 감독하고 한 영화를 주욱 보면 < 꼬방동네 사람들 >, 약간 홍보영화 비슷한 < 철인들 >, < 적도의 꽃 >, < 개그맨 >, < 고래사냥 >, < 깊고 푸른 밤 >, < 황진이 >, <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 < 안녕하세요 하나님 >, 그렇게 자꾸만 새로운 걸 해나가자. 그렇게 나의 연기의 폭을 점점 더 넓혀 나간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는 내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지. 나는 요즘 아역 배우들을 보면 정말 저놈이 생각들이 있는 거 같아. 너무 잘하는데, 내걸 보면 그냥 개구쟁이야. 근데 나는 그런 모습도 좋더라고. 외국영화들 보면 연기 못 하는 놈들 있잖아. 그게 너무 좋은 거야. 어린애다우니까. 어렸을 때는 나는 진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커가지고 생각이 들어간 건 네 편 영화에서 조역을 할 때가 처음이야(< 병사와 아가씨들 >, < 제 3공작 >, < 야시 >, < 우요일 >) 그러다가 < 바람 불어 좋은 날 > 할 때 이장호 감독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걸 완전히 뒤집었다고 그럴까. 하나의 인물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내가 맡았던 중국집 배달부 덕배라는 인물이, 최일남 선생의 (원작 소설인) <우리들의 넝쿨>에서 그 역할이 사시 캐릭터거든. 진짜 사시를 데려다가 집에서 연기훈련을 시켰어요. 배창호 감독이 그때 조감독 할 때인데, 배 감독이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나한테 되게 많이 시켰어요. 코에 힘 좀 줘봐, 입 좀 한번 벌려봐, 눈 멀뚱멀뚱하게 뜨고, 걸음걸이 그렇게 하고, 이런 방법적인 거를 통해서, 그렇게 덕배라는 인물로 가기 위해서 굉장히 진짜, (잠시 생각) 그 전에는 캐릭터라는 게 없었어요. 한 역할이라는 게 소품처럼 쓰여 지는 것이지. 이 사람이 갖고 있는 개체로서의 매력은 처음 느낀 거거든. 진짜 많은 것을 얻었고, 배웠어요. 그런 다음에 임 감독님의 < 만다라 >를 했는데, 임 감독님의 연출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근데 나는 그것도 굉장히 좋더라구요. 얘기해주는 것도 좋은데 말없이 이렇게, 이렇게, 그냥 그 말만 하는 것이 굉장히 방향을 좋게 잡아줬어요. 정지영 감독님이 약간 그런 스타일이이에요. 된 것 말고 안 된 것만 얘기해서 슬슬 잡아나가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게 오히려 굉장히 편안해. 뭐랄까. 감독님이 갖고 있는 어떤 생각의 깊이가 나한테 잘 와가지고 나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달까, 임 감독님과는 매 작품마다 그랬어요. 정성일 _ 안성기 선배께 아마 굉장히 많은 시나리오가 찾아올 텐데, 그때마다 영화출연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안성기 _ 대부분 시나리오예요. 정성일 _ 감독보다도? 안성기 _ 하지만 예외적인 것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장호 감독은 다시 영화를 시작했을 때 배우란 것이 이런 거구나, 를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그분이 작품 한번 하자 이러면 해요. < 천재선언 >은. 이것 참, 이런 건 아닌데 미치겠다. (웃음) 그래도 하는 거죠. 그것도 < 헤어드레서 >란 영화를 하고 있는 중간에 그 영화를 출연하고 그랬어요. 하여튼 영화가 실패하고, 그럴 때는 늘 부담을 갖고 있죠. 배창호 감독은 뭐랄까, 시나리오도 아니고 배 감독 때문도 아니고 늘 얘기를 해서 뭘 할지 늘 알았기 때문에 계속했었던 거예요. 그것도 감독 플러스 시나리오라 할 수 있고... 정성일 _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두 개의 제안이 동시에 안 선배님을 찾아온 겁니다. 시나리오는 정말 좋은데 이 감독의 예전 작품이 아니라는 평가를 계속 받았던 경우와 시나리오는 무척 별로인데 이 감독의 앞에 찍었던 작품이 정말 좋은 겁니다. 두 감독 다 같이 일해본 적이 없는 경우고, 두 영화가 다 일정이 딱 겹쳐서 하나만 결정해야만 하는 겁니다. 이런 경우 어떤 작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안성기 _ 이거 장고에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바둑처럼 (웃음) 그럴 수 있지. 그럼 일정을 조절하는 게 낫겠는데.(웃음, 그러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고) 그 전에 안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때는 잘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물론 그거는 영화란 게 감독 따라나온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감독이 망나니고 인간성 안 좋고 그러면 좀 그렇지만, 영화 자체가 기술이 안 좋은 경우, 하지만 작품이 좋다면, 그 감독도 작품에 힘을 얻고 배우도 작품에 힘을 얻고 그러면 괜찮을 거 같애. 그리고 실력 좋은 분은 달리 실력이 좋은 게 아니라 그렇게 안 좋은 경우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또 바꿔가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예전에 저런 경험이 있었어요. 김기영 감독님을 15년 전쯤에 연강홀인가에서 무슨 행사에서 만났어요. 거기서 나랑 영화 해야지, 나랑 하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럼 한다고 하면 되는 건데, 나는 한다고 하면 그때까지도 무조건 하는 거였어요. 뭐, 할게요, 그러고 안 하는 걸 너무 싫어했어요. 말을 못 뱉는 거예요. 그래서 답을 못했어요. 그분한테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는데, 시나리오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니 허, 이 자식 봐라, 이러셨어요. 그런 거 보면 시나리오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어른한테 그렇게 말한 거 보면... 정성일 _ 시나리오 받고 인물을 연기하게 되면 따로 준비하는 게 있으신지요? 배우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두 가지 다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고 때로 그 직업을 가져보기도 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게 선입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 안의 인물에만 집중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안성기 _ 변한 거 같애. 초반에는 인물 안으로 들어가서 해볼 거 다 해보고, 그랬는데 차츰차츰 그냥 시나리오로 들어와서 이렇게 해석하고, 물론 중요한 정보라든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만, 나 나름대로 생각을 갖는 편이에요.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의 덕배 정성일 _ < 바람 불어 좋은 날 >에서 덕배라는 인물은 한국영화사 속의 남자 주인공을 새롭게 만든,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주인공의 탄생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영화 속의 남자는 아버지의 이미지이거나 ‘싸나이’ 문화의 다양한 변주였는데, 덕배는 처음으로 마초적이지 않은 남자였습니다. 전례 없는 인물을 만들었달까요, 문제는 이런 인물은 잔향효과라고나 할까, 일종의 그림자처럼 남아서, 안성기 선배가 이 인물을 통과하는 순간, 전형적인 아버지의 역할이나 마초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 무언가 그 역이 몸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안성기 선배에게 어떤 영화였습니까? 안성기 _ 뭐라 그럴까. 그 역할을 하면서 내가 빠져 들어가고, 사람들이 느낌에서 오는 것도 있는데, 그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고 그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든 어떤 부담감이 있는데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명보극장에서 십 몇 만이 본거 죠. 당시라면 뉴 엘리트계층들이 본 영화이고 그분들은 쉽게 빠지지 않는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영화에서 또 다른 걸 기대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천만 든 영화다, 이런 영화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죠. 속박이 아니었고, 그냥 연기자로서 하나의 좋은 방법도 알고 길을 찾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근데 저런 건 있어요. 80년대라는 시대적인 것이 직선적이지 않고 표현이 우회적이어야 되고 풍자적이라는 것, 주인공이 똑똑해서는 위험하다는 것. 그러한 캐릭터는 그 이후부터 주욱 가져간 거죠. 심지어 사랑 이야기인 < 기쁜 우리 젊은 날 >에서도 더듬더듬 거리면서 말하는 톤이 된 것이고. 그것은 또 시대가 요구하는 캐릭터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 _ 그리고 마침내 임 감독님의 < 만다라 >를 만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순서대로 반복해보겠습니다. 1964년 처음 만났을 때는 임권택 감독님도 대중영화를 만들면서 충무로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할 때였고, 안성기 선배로 아역으로 만났습니다. 1980년 다시 만났을 때 임권택 감독님은 예술적인 결단을 내렸고, 안성기 선배는 연기자로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의 시간의 변화라기보다는 어른으로 영화에서 다시 만났을 때 첫 느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안성기 _ 그 당시만 해도 요즘 같은 편안함은 없었죠. 그때 임 감독님도 영화를 만들 때 굉장히 투철하게 몰두해서 최선을 다해 만들지 않으셨을까 해요. 임 감독님 눈빛이 사실 좀 무섭다고. 마주 보기 굉장히 힘든 면이 있는데, 이렇게 의중을 꿰뚫어보시는 듯한. 그런 건 있어요. 어렸을 때 같이 했다는 걸로 엉겨 붙는 그런 거. (웃음) 난 어렸을 때 한 걸로 굉장히 덕 봤어요. 안녕하세요, 이러면 신인 같으면 생면부지니까 아는 체를 잘 안 하실 텐데, 나는 오래 같이 일한 데에 대한 호감들이 있어서, 난 사실 굉장히 편하게 접근이 되었죠. 다른 신인들은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 만다라 > 찍을 때 임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에 대한 내 열정도 대단해서 어떻게 하면 십 년 수행한 스님의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유니폼이 주는, 세월이 묻어있는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승복을 맞춰가지고 잠잘 때도 입고 하루 종일 입고 뒹굴었죠. 때 국물이 흐를 정도로. 그게 나한테 맞아야지 되니까. 감독도 그걸 보면 알지. 이놈 되게 노력하는 놈이구나. 잘 때도 시나리오를 딱 머리맡에 두고 자니까. 어쩌다와서 그걸 봤나봐. 그런 것에 대한 좋은 마음. 감독님도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나도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근데 되게 혼난 적이 있었어요. 이장호 감독이 짓궂어서 그런 건데, 그때 < 어둠의 자식들 >을 화천공사에서 같이 찍었어요, 거기서는 잠깐 나오는 거고, 두 작품 다 같은 영화사에서 작업하니까 괜찮겠지 했어요. 근데 <만다라> 때문에 머리를 깎았으니까 <어둠의 자식들>에서는 가발을 쓰기로 했는데 이장호 감독님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걸로 하고, 그냥 가발 쓰지 말고 머리 깎은 걸로 가자 해서 그렇게 찍었죠.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찍었어요. 그때 내가 교도소 나와서 나영희 찾아가는 기둥서방이었어요. 결국 그 얘기를 안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임 감독님께 내가 얘기를 했어요. 진짜 화를 내셨어요. 집에까지 찾아가서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고 빌 정도로 정말 화를 내셨죠. 집에서까지 화를 내실 정도였어요.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못 한다 그럴 걸. 그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임 감독님이 < 오염된 자식들 >을 하셨어요. 그때는 화가 풀리셨고. 결국은 임 감독님도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아셨기 때문에 화를 푸셨어요. < 만다라 >(1981)의 법운 / < 어둠의 자식들 >(1981)의 태봉 정성일 _ < 만다라 >에 출연하던 시기 즈음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른 영화를 보신 게 있으세요? < 깃발 없는 기수 >랄까, < 짝코 >랄까... 안성기 _ < 짝코 >를 봤는데 아주 좋았어요. <짝코>는 배우 입장에서 보면 두 인물들이 아주 매력적인 영화라, 작품성도 있고 상업성도 나는 있다고 보았어요. (<짝코>는 개봉을 못 하고 재개봉관에서 상영되었다) 정성일 _ 단도직입적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배우는 머리를 삭발하고 나면 상당기간 동안 다른 영화 출연을 못하기 때문에 그건 큰 결정입니다. < 만다라 > 출연을 결정한 건 시나리오와 감독 둘 중 어느 비중이 더 좋았나요? 안성기 _ < 만다라 > 그 작품이지. 원작소설을 굉장히 잘 읽었고 그걸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그 자체가 너무 매력이 있었고, 그걸 임 감독님이 한다고 하시고, 그리고 당시 최고의 영화사인 화천공사에서 한다고 하니 안 할 수 없었어요. 정성일 _ < 만다라 >를 찍으면서 임권택 감독님이 다른 감독들과 연출이 다르구나, 느낀 대목들은 어떤 순간이었나요? 안성기 _ 현장 콘티가 달랐어요. 정성일 _ 그때는 다 현장콘티 아니었나요? 안성기 _ 배 감독은 진짜 자기가 다 써가지고 했고, 이장호 감독도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시나리오가 진짜 탄탄하고 좋았어요. 하나하나 정성 들여가지고 누구나 보기 좋고, 완성도 있게 했어요. 시나리오가 이미 콘티였어요. 근데 그다음에는 현장에서 뭐 이거 어떠냐, 그렇게 즉흥적으로 바뀌셨지만. 임 감독님은 혼자 생각이 많으시고 즉흥적인 부분도 많으시고 그 전날이나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신 경우가 많았어요. 나는 그 당시 그것도 좋았어요. < 만다라 > 할 때는 나는 스님같이 살았으니까. 내가 다른 거 하다가 스님으로 들어오면 부대꼈을 텐데, 그때 내가 영화 하려는 열의와 혼자 장가도 안 갔겠다, 그냥 스님처럼 살았어요. 뭐가 들어와도 다 흡수했어요. 대사가 길어도 아무 생각 없이 다 오케이였고 그것이 힘들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 축제 > 때도 그랬고 현장 콘티가 많았는데 그러려니 생각해서 어려움이 없었어요. 정성일 _ 이렇게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 만다라 >를 하면서 그런 건 다 좋은 점이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서 이건 되게 힘들구나, 라고 느낀 적도 있으셨을 거 같은데. 나쁜 점을 여쭤보는 게 아닙니다. 단지 육체적인 고난이 아니라 무언가 배우와 연출 사이에서 특별하게 만들어지는 긴장은 영화마다, 감독마다 달라지지 않습니까? 안성기 _ 난 그런 거 당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예를 들어 (< 서편제 >에서) 오정해 같은 경우는 감독님이 부담되고 힘들다고 그렇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못 느껴봤어요. 감독님과 잘 맞는다고 해야 하나 힘든 거 전혀 없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의 연기지도는 어디까지 지도를 하시나요? 이를테면 제가 현장에 방문을 해서 많은 감독들이 연기지도를 하는 걸 옆에서 보면 어떤 감독들은 아무 지시도 안 하고 배우가 하는 걸 지켜본 다음에 자신이 원하는 게 나오는 걸 기다렸다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게 나와도 그게 좋으면 오케이를 하는 감독도 있는가 하면, 어떤 감독은 때로 자신이 직접 시연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작은 손동작까지 필요한 것들을 꼭 설명하거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른 것이 나오는 것을 모두 버리고 자기가 바라는 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연출자들이 있습니다. 안성기 _ 전자 쪽이지. 그리고 얘기해줄 때 보면 주관적인 얘기보다 객관화시켜갖고 말씀하세요. 약간 건성 건성하면서 뭐 이런 거 있잖아, 뭐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그때 연기자가 캐치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이게 뭐하는 거요, 하고 꾸중이 바로 들어오는 거고, 그래서 배우가 영리하게 받아야 해요. 내가 감독님 표현을 잘 알잖아요. 요즘도 “액션”이 아니라 “고!” 하시죠. (연기가 끝났는데) 그냥 멈춰있으시면 다시 한 번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그런 걸 보지 않아야 되는데, 연기하면서도 옆에서 보이는 거예요. 중간에 멈추시면 신이 안 나는 거죠. 아 이거 또 해야 하는구나.(웃음) 정확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으로서의 감정이 맞아 들어가는 걸 좋아하세요. 디테일한 거 이런 거 보다는 큰 거를 좋아하세요. 정성일 _ 근데 인물에 대한 해석이라는 게 배우와 감독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임권택 감독님과 영화를 하시면서 그 인물 연기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항상 연출자의 생각을 좇아가는 쪽이세요, 아니면 장면에 따라 연출자를 설득을 한달까요? 안성기 _ 거의 다 난 신인감독이래도 무조건 존중해요. 거의 무조건. 감독과 얘기할 때도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 이건 이렇게 가야 해, 하고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연기자로써 사줘야 하겠지만 아무리 신인감독이래도 그 사람을 사줘야 할 부분이 있어요. 나도 전체를 본다했어도 감독이 더 전체를 생각했을 것이고, 도움이 된다고 그러면 전체를 위해서 더 좋은 거지만, 내가 우기고 해서 내 입장을 설득한다고 노력한 적은 없는 거 같애. 영화 외적인 건 굉장히 설득하지. 나 지금 밥 먹고 해야 해. 스텝들은 지금 배가 고파, 이런 게 현장은 중요해요. 예전에 < 영원한 제국 > 할 때 박종원 감독이 밥을 안 먹어. 아침 먹고 하는데 오후 2시, 3시 됐는데도 밥을 안 먹어. 애들이 전부 빌빌하는 거야. 나도 배고프고. 연기해야겠다가 아니고 밥 먹어야 되는데 이런 거야. 박 감독, 밥 먹는 걸 리듬이 끊긴다고 생각을 하면 안 돼. 리듬 중에 밥이 쑥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생각해야지. 이걸 감정이 다 끊겨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든 거야. 그냥 시간 되면 밥 먹고 하자. 아주 쉽게 생각하자구, 뭐 그런 걸 이야기한 적은 있죠. (웃음) 정성일 _ < 만다라 > 시기부터 80년대 내내 임권택 감독님 영화가 다른 시기와의 차이점 중 하나가 배우의 입장에서 롱 테이크 촬영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 안성기 선배와 작업한 감독들은 이상할 정도로 롱 테이크 감독들이었습니다. < 황진이 > 이후의 배창호 감독, 박광수 감독, < 아름다운 시절 >의 이광모 감독이 있습니다. 배우에게 롱 테이크는 미학적인 문제라기보다 육체적인 문제이지 않습니까? 임권택 감독님의 롱 테이크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제가 안성기 선배와 처음 인터뷰를 한 게 1991년 6월 청담동에서였는데 그때 연기하실 때 가장 힘든 게 무엇입니까, 라고 여쭤보니 두 가지가 힘들죠, 하나가 베드 신이고 다른 하나가 겨울에 찬물에 들어가는 겁니다, 하하하, 이건 농담이고, 롱 테이크 촬영이 힘들죠, 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웃음) 안성기 _ 지금은 너나 할 거 없이 디지털화 되가지고 너무들 길게 많이 찍잖아요. 시나리오를 통째로 씬 별로 외우고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요거 찍고, (그런 다음에 다시 촬영 준비하고 그 사이에 준비해서) 저거 찍고 가야지 이런 거에 익숙하다가, 계속 롱 테이크로 찍으니까, 감정 긴 거를 나누는데 굉장히 익숙하게 만들어 놨다가 그걸 다시 연결해 붙이려니 호흡이 굉장히 안 맞는 거예요. 연결을 해야 되니까 힘들고 벅찬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롱 테이크가 힘들다는 거였고, 임권택 감독님의 롱 테이크는 그렇게 롱 테이크는 아니었어요. 의도적인 롱 테이크도 아니었고, < 만다라 >의 경우에는 작품이 가진 성격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까 롱 테이크가 들어갔던 거 같고, < 기쁜 우리 젊은날 >에서 황신혜 기다리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버텨놓고 한 통의 사 분의 일을 돌려버리는 롱 테이크, 나중에는 그게 굉장히 재밌더라고, 그때는 NG나면 필름을 통째로 버린다는 게. (웃음) 요즘은 디지털이니까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 한강 변에서 리버사이드라는 카페에서 오전에 롱 테이크 들어가는데, 리허설을 보통 많이 한 게 아니야. 필름이 조금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한 통 다 들어가니까. 연극을 하듯이 그렇게 끝나고 나니 굉장히 성취감이 좋았어요. 또 감정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맛을 조금씩 알게도 되고, 초반에는 너무나 잘라놨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감정을 탁탁 끊는 거에 익숙해져서 힘들었어요.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하면 가장 좋은 점은 어떤 건가요? 안성기 _ 감독님께 묻어가면 된다는 거가 일단은 굉장히 큰 거예요. (웃음) 정성일 _ 그러면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하면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안성기 _ 심리적 정신적으로 힘든 건 나는 별로 못 느끼겠고 감독님도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감정으로 나를 대한 거 같애. 감독님도 나를 대하는 게 아주 편안하게 하신 거 같고. 하나 있다면 새벽에 일찍 집합해야 하는 거. 겨울에도 새벽 5시 껌껌할 때 나가야 하고. 우리 리듬이 늦게까지 하는 리듬이라. 물론 현장에서는 감독님께 맞춰지지만. 그건 좀 힘든 거 같애. 정성일 _ < 안개마을 >은 이문열 작가의 작품인데, 원작소설이 있는 경우 먼저 영화를 찍기 전에 원작소설을 꼼꼼하게 읽으시는 건지, 아니면 감독을 믿고 시나리오로 각색된 얘기를 중심으로 인물에 다가가고 원작은 그냥 참고도서 정도로 보시는 건지요? 안성기 _ 원작소설은 참고만 해요. 어떤 감독하고도 마찬가지예요. 그건 소설이지 그게 바로 영화화될 것은 아니잖아요. 문학적으로도 소설은 시나리오나 대본과는 구별되는 거니까. 정성일 _ < 안개마을 >은 임권택 감독님도 따로 기억하실 만큼 촬영기간이 정말 짧았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쫓기게 되면 감독과 달리 배우 입장에서는 그 인물 안에 들어갔다 나올 시간 자체가 몹시 부족하지 않습니까? 안성기 _ 쫓긴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그 좁은 마을 거기서 시작하고 끝났기 때문에 굉장히 느릿느릿한 느낌이었어. 오히려. 여기 갔다 저기 이동하는 것이 사람 호흡을 급하게 만드는 거지. 일어나면 거기, 그다음에 또 거기, 거기 지나다니면서 “밥 도” 이러고, 어슬렁어슬렁 다니고 그러니까 굉장히 빨리 찍었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어요. < 안개마을 >(1982)의 깨철 정성일 _ < 안개마을 >에서 깨철은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배우에게서 대사가 사라졌을 때는 비유적으로만 말하면 아리아 없이 노래해야 하는 오페라 가수와 같은 심정이 되지 않습니까? 이때 육신만으로 깨철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데, 사실 깨철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마을의 수수께끼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물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어떻게 연기 플랜을 설정합니까? 이 작품의 경우에는 시간적으로 짧아서 감독님과 이 인물에 대해서 길게 토론할 시간도 없었을 것 같은데... 안성기 _ 그건 배우의 능력이라기보다는 그런 능력을 있게끔 만드는 작품의 성격인 거 같아요. 그 사람이 대사가 없어도 작품이 잘 표현하고 그 사람을 도와주게 되어있지. 연출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까 연기를 잘할 수 있는 거같이 보이는 거지. 자기의 능력 이상의 것을 받는다고 보면 돼요. 난 요즘에 조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대사가 너무 많아져요. 주연들은 대사가 별로 없어요. 그게 정답이야 그게. 대사 없는 것이 너무 좋아 사실. 나는 예전부터 그게 좋았지만, 진짜 필요한 것만 딱딱할 때가 좋지, 그걸 설명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통 배우들은 대사를 챙기려고 애쓰는데 나는 어떡하면 대사를 줄일까 했어요. 꼭 필요한 것만 하는 것이 훨씬 영화적으로, 개인의 연기나 연출에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정성일 _ 영화를 찍을 때 안성기 선배께서는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 사이즈를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하십니까? 말하자면 자신을 클로즈업으로 찍는지 미디엄으로 찍는지 염두에 두시나요, 아니면 그런 사이즈는 생각 안 하고 인물의 연기에만 집중하십니까? 안성기 _ 그건 본능적으로 느껴져요. 어려서부터 작업을 해서. 가끔가다 촬영 조수에게 이건 몇 미리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몇 미리다, 얘기하면 그에 따라 표현이 섬세해지고, 작아지고 이런 건 있는 거 같애. 그건 배우의 매커니즘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잘못 움직이면 깨지니까 그건 알아야 할 거 같애. 풀 쇼트를 좋아하는 이광모 감독 같은 경우 연극적인 표현을 무지무지 해줘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클로즈업이 자주 들어오는 콘티 같으면 염두에 둬야 해요. 정성일 _ 한편으로는 안성기 선배 경우에는 감독이나 장르에 따라서 좀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있겠네요? 안성기 _ 다른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로 가면 자연히 변화가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양복을 입으면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져요. 청바지를 입으면 약간 껄렁해지고 임금 옷을 입으면 팔자걸음으로 가게 돼요. 일자로 가지지가 않아요. 팔자로 가야 임금 움직임이 나거든. 이건 본능적으로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의상을 무지무지 중요하게 생각해요. 배우에게 있어서 의상이 주는 것이 그 연기에 얼마나 보탬이 되고 마이너스가 되는지 몰라요. 정성일 _ 안성기 선배께서 인물에 접근할 때, 영화 안에서 인물을 해석해나가나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작품을 해석해나가는 쪽이세요? 안성기 _ 전체를 놓고 인물을 해석해요. 그래서 감독들이 나를 좋아해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내가 여기선 좀 더 죽어야 되겠구나, 그러니까 자기감정으로 가면 자기는 계속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전체로 보면 부드럽지 않아요. 시나리오에 따라서 죽어야 할 때는 철저히 죽어야 하고, 작품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가는 게 반드시 맞다고 생각해요. 정성일 _ 국내외 영화를 가리지 않고 안성기 선배께서 연기를 할 때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배우가 있나요? 안성기 _ 예전에 로버트 드니로 너무 좋아했죠. 초창기 영화는 대부분 좋았어요. < 택시 드라이버 >에서부터 <킹 오브 코미디>까지 약간 좀 과장되지만 표현이 인간적인 매력도 있고, 캐릭터로서의 매력도 있어요. < 대부 2 > 같은 건 얼마나 좋아요? (웃음) 정성일 _ 배우라는 건 어떤 경우에도 혼자 하는 연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배우라는 까다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이때 상대배우의 캐스팅이 자기 의지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항상 상대배우가 앙상블을 이루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안성기 _ 어떻게 해서든 맞춰요. 그건 어떡할 수 없다, 생각하는 거죠. 상대 배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나는 못 하겠어 그런 적은 없었어요. 상대와 어떻게든 호흡을 맞춰서 해야 되는 건 아닌가... 뭐든지 사줄 만한 데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노력하면 되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정성일 _ 많은 영화에 출연하셨습니다. 이때 항상 모든 영화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오염된 자식들 >은 임권택 감독님이 먼저 저에게 인터뷰를 할 때, 그 영화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라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웃음) 어떤 순간에 안성기 선배께서도 이 영화는 훌륭하지 않겠구나, 이런 느낌을 영화를 찍으면서 받는 적이 있으실 거 같습니다. 임권택 감독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니까, 그건 시나리오를 볼 때 그런 느낌을 받는 순간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문제는 여기까지 오면 연출자는 이미 물러설 수가 없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포기할 수 있는 단계를 지났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영화의 산업적인 측면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성기 선배께서도 백여 편 넘게 출연하시면서 그런 느낌을 언제 받으시는지요? 안성기 _ 완벽한 시나리오를 만나기는 거의 드물다고 봐야 해요. 문제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어느 정도 애매모호함이냐 차이가 있는데... 요즘 같으면 최근에 조역이 많고, 신인 감독들이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이런 말들이 오가요. 주변에서 이 친구 괜찮다 권유가 많은데, 이걸 해도 좋을까, 예전에는 이걸 할지 말지 굉장히 철저했었는데, 어느 순간에 내가 완전히 주(主)가 되면 나 자신이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 건데, 조역으로 가다 보면 해도 되고 빠져도 되고 그런 거거든. 주변 사람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더 애매해, 결정하는 것이. 그 애매함을 갖고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했는데 현장에서 촬영할 때, 첫날의 느낌들, 거기서 이미 뺄 수 없는 상태를 느끼는데, 이거 굉장히 힘들겠구나 싶어요. 현장 분위기도 그렇고. (잠시 생각) 그런데 결국 중요한 거는 연출자지 뭐. 전체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감독에서 나오는 느낌이지. 힘들겠다, 그러면 어떻게 방법이 없잖아요. 나름 열심히 하자고는 하는데 근데 그게 한다고 해서 잘 안되지. 마음은 최선을 다하자 하지만 몸은 최선이 안 되는 그런 거지. 그 부분이 참 힘든 부분이에요,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맛있는 것만 따먹을 수는 없잖아. 이것도 어떻게 힘이 되가지고 잘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힘 합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요런 것 때문에 같이 하게 되는데... 정성일 _ 좀 이상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보다 결과적으로 나온 후 훨씬 좋았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안성기 _ 애초에 영화는 뭘 남기겠다고 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자세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한다는 거에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거거든. 결과가 안 좋아도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고 그런 문제이지. < 부러진 화살 > 이거 보너스 많이 받았나.(웃음) 이런 것 때문에 하는 건 아닌 거 같애. 그것보다 오랜만에 정지영 감독과 같이 간다는 설렘. 전우같이 < 남부군 >, < 하얀 전쟁 > 두 큰 작품을 힘들게 같이 했는데. 그동안 잘 안되다가 이십년 만에 레디고 부르는 벅찬 감정. 와이프가 내가 시상식에 상 받으러 간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상 받는 게 좋지가 않았어. 아예 안 받는 게 나았어. 못 받는 사람도 많고 그걸 보는 것도 그러고. 나는 사실 그게 부담스럽고 그랬어. 상 몹시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눈물도 많이 흘리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그런 감정을. 내가 많이 받아서 그러나 (웃음) 하여튼 제일 중요한 거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게 나는 가장 행복한 거예요. 그리고 이왕이면 결과도 좋고 마음 맞는 사람과 계속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죠. 정성일 _ < 안개마을 >과 < 오염된 자식들 >을 찍고 나서 12년 만에 다시 임권택 감독님을 만나서 < 태백산맥 >을 찍었습니다. <안개마을>부터 <태백산맥>을 찍을 때까지가 임권택 감독님을 미학적으로만 설명하면 가장 많은 것들이 변화했고, 자신의 영화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안성기 선배도 그 사이에 80년대 한국영화의 ‘국민’ 배우가 되었고, 또 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했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가장 새로운 기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안성기 _ 일단 같이 하게 되서 굉장히 기뻤고, 여태까지 나를 왜 이렇게 버리셨지, 같이 할 게 그렇게 없었나, 그런 생각도 했었고.(웃음) 내 생각인지 몰라도 감독님은 끊임없이 내가 보여 드린 성실함이라든가, 작품만 맞았으면 같이 하자고 그러셨을 거 같애. 근데 그때 필모그래피를 보면 나랑 조금씩 안 맞아서 그런 게 아니었나. 그래서 공백이 생긴 게 아닌가 싶고. < 태백산맥 >에서 제대로 만났고. 같이 하자고 그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 정성일 _ < 태백산맥 > 이전의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들을 계속 보셨을 텐데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무엇이었습니까? (< 안개마을 > 이후) < 불의 딸 >,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 < 길소뜸 >, < 티켓 >, < 씨받이 >, < 아다다 >,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세 편의 < 장군의 아들 >, 그리고 < 서편제 >. 안성기 _ 전부 좋았던 거 같애. < 티켓 >같은 것도 그렇고, < 장군의 아들 >도 이태원 사장님하고 그 세 분의 조합이 좋았어요. 감독님만의 기운으로 거기에 가기는 좀 힘든, 다찌마와리를 좋아하는 이태원 사장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크지 않았나. 임권택 감독님만의 힘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헤어지긴 했지만 그때 그 조합이 감독님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봐요. < 태백산맥 >(1994)의 김범우 정성일 _ < 태백산맥 >에서 안성기 선배께서 연기한 김범우는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소극적이고 가장 조용하고 방관자적인 인물입니다. <태백산맥>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염상진, 염상구형제로 각각 김명곤 씨와 김갑수 씨가 연기했습니다. 이 말뜻은 이 영화에서 김범우가 가장 차가운 인물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태백산맥>에서 김범우가 가장 돋보이지는 않지만 반대로 이 인물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이야기가 산만하게 가지가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어서 김범우는 이 인물들 사이에서 감독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이 큰 이야기 안에서 김범우를 풀어내는 것은 안성기 선배께도 몹시 특별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안성기 _ 일단 생각나는 게 대사가 굉장히 설명적이고 문어체적인 대사여서 거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감독님께 아 이거 정말 방법이 없네, 이러면서 찍었던 기억이 나요. 일편이 소극적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원래 이편을 찍으려고 했어요. 이편에서는 홍길동처럼 나와서 액션 영화처럼 등장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일편에서는 굉장히 차분하게 가야겠다, 생각을 한 거지. 만약 이편이 없었다, 그러면 좀 더 열을 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건 아마 감독님도 마찬가지였을 거 같아요. 정성일 _ < 태백산맥 >은 원래 이부작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야기가 중간에 갑자기 계획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여건 때문에 못 찍게 되었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도 연기 플랜을 짜놓았다가 완전히 바뀌게 된 경우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찍어놓은 분량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중간에 바뀌게 된 경우인데, 이런 경우 중간까지 연기해놓은 자신의 인물을 이제 수습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물론 연출의 몫도 있겠지만 남은 장면으로 찍지 않은 분량까지 마무리하면서 김범우를 연기해야하는 연기자의 몫도 고스란히 떠맡게 되는 셈인데 그런 상황에선 어떻게 하셨나요? 안성기 _ (잠시 생각) 그건 할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거지 뭐. 방법을 찾는다거나 그럴 수 없는 거 같애. 아 안됐네, 하고 끝내야지,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하려고 그건 어려운 거 같애. 정성일 _ 저는 임권택 감독님이 시나리오 리딩(reading, 讀會)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다른 감독들은 리딩을 하지 않습니까. 리딩이 없는 과정이 편하세요, 아니면 리딩이 있는 게 편하세요? 안성기 _ 리딩은 신인감독이거나 작품 편수가 몇 편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를 잘 모르니까, 서로를 아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리딩은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서로 알고 인사하고 미리 친해지는 시간이에요. 임권택 감독님 경우에는 전부 아는 분들이 많고, 그리고 그 전에 만나서 충분히 얘기를 했다고 생각을 하시니까 그런 과정을 생략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성일 _ 일정상의 이유나 다른 이유로 임권택 감독님 작품 출연을 거절하거나 못하신 작품이 있으세요? 안성기 _ (한참 생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 개벽 >이었나... 확실치가 않네요. 정성일 _ < 태백산맥 >은 워낙 많은 배우들이 출연했고 중간 변수가 많아서 오히려 < 축제 >를 하면서 두 분 사이에서 서로 내면적인 만남의 시간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 만다라 >와 <축제> 사이에는 16년이 있었습니다. 크게는 연출의 방법이, 디테일하게는 연기지도라는 점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셨는지요? 안성기 _ 작품의 성격에 따라 변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 만다라 >의 삶의 구도에 대한 치열함 같은 것이 그 당시 감독님의 마음속에 꽉 차 있었다면, < 축제 >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세상을 관조하는 느낌,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마음의 편안함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도 작품의 성격만큼 변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정성일 _ < 축제 > 인터뷰를 할 때 임권택 감독님이 굉장히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안성기 선배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성기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보았는데, 안성기 씨가 아니면 아무도 안 되는 그런 인물을 영화를 하다 보면 마주칠 때가 있다, 는 이상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축제>의 이준섭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사실 저는 이 대답이 약간 수수께끼처럼 들렸습니다. 이건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의 교감에서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수수께끼를 안성기 선배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안성기 씨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한 칭찬을 훨씬 넘어서는 느낌이었거든요. < 축제 >(1996)의 이준섭 안성기 _ 감독님이 그 현장에서 가끔 좋아서 입을 벌리고 ‘허~’ 하시는 때가 몇 번 있었어요. 그 인물 자체가 변화라던가 큰 표현은 없는데, 작가로서의 인간적인 성격의 하자도 있는 것 같고, 특히 제일 공감되었던 게 (이준섭 작가를 존경하면서 한편으로 취재를 위해 작가의 모친상 장례식까지 내려온 기자인) 정경순을 만나서 약간 이상한 감정도 들어가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의 표현들을 감독님이 굉장히 좋게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고 연기하는데, 별거 아닌데 그 인물과 착 달라붙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영화에서 특히 그랬어요.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 축제 >는 그런 영화였어요. 정성일 _ < 축제 >는 이청준 작가님의 어머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청준 작가께서도 촬영장에 계속 내려와 계셨습니다. ‘이준섭’이라는 인물은 이청준 작가님이기도 한 셈인데, 이런 경우엔 이청준 작가님과 얼마나 교감을 하셨나요, 아니면 그건 완전히 별개의 인물이니까 오직 임권택 감독님과 소통할 문제인가요? 안성기 _ 이청준 작가님은 선배로서 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촬영 들어가서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감독이 작가와 얘기할 순 있어도, 배우는 감독과 소통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정성일 _ < 축제 >는 드라마가 거의 없는 영화입니다. 감독이야 그 인물을 짜나갈 수는 있지만,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기승전결이 없지 않습니까? 드라마가 기복이 없으니까 배우가 리듬을 타는 게 몹시 힘든 영화이기도 하고, 게다가 <축제>는 두 가지 이야기가 평행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장례식과 동화. 두 가지 이야기가 별개로 교차편집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은 감독의 머릿속에서 교차편집이 되는 거죠. 연기를 해야 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떤 식으로 교차편집이 될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보이는 거지, 게다가 영화현장을 배우 자신이 컨트롤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성기 _ 근본적으로 이청준 작가의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라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단순한 동화지만 너무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 자체가 작품 속에 녹아있다고 생각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 작품에 아쉬움이 있다면 감독님이 현장에서 너무 이해하고 관대하신 것이에요. 예전처럼 세트의 허술함에 좀 더 엄격하셨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은 받았어요. 정성일 _ < 축제 >에 출연하던 무렵이 다른 시기와 달랐던 점은, 이전에는 이장호 감독님이나 배창호 , 이명세 , 박광수 , 강우석 처럼 몇몇 감독들의 영화에 번갈아 출연해서 어떤 면에서는 잘 아는 감독들과 작업을 반복해서 했었던 시절인데, <축제> 때서부터는 한 편 이상 같이 작업하지 않은 많은 감독들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 아름다운 시절 >의 이광모 감독이나, < 박봉곤 가출사건 >의 김태균 감독, < 헤어 드레서 >의 최진수 감독, < 퇴마록 > 박광춘 감독, < 이방인 >의 문승욱 감독, < 미술관 옆 동물원 >의 이정향 감독, < 무사 >의 김성수 감독, < 진실게임 >의 김기영 감독, < 킬리만자로 >의 오승욱 감독처럼 한 편만 출연한 감독들이 많은데, 이렇게 작업하면 배우로서 새로운 기분을 가져볼 수도 있지만, 반면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계속 호흡을 맞춰야 되니까 상대방의 장단점을 알기 힘들다는 점도 있지 않나요? 안성기 _ 아마 그 시기부터 주인공의 모습을 하는 시기가 지나서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주연을 할 시나리오도 없고 나이 들어가면서 젊은 사람이 주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한 번하고 빠지고, 한 번하고 빠지고 이런 경우인 것 같아요. 나야 계속 같이 작업했던 감독들과 같이 가고 싶지만.. (웃음) 정성일 _ < 축제 > 이후에 < 취화선 >에서 임권택 감독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여기서는 장승업을 평생 동안 지켜보는 김병문 선생으로 나오셨습니다. 안성기 선배께서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나온 영화들을 쭉 보면 일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임권택 감독님은 안성기 선배의 이미지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안개마을 >과 < 오염된 자식들 >을 예외로 하면 < 만다라 >에서부터 < 태백산맥 >, <축제>, <취화선>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지식인의 역할을 했었습니다. 인물들은 마치 임권택 감독님이 입혀주는 옷 같은데, 그런 역할을 연기할 때 느낌이 어떠신가요? 어떤 경우에는 본인의 이미지와 달라도 입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이 옷 자체가 딱 붙어서 편안한 경우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안성기 _ 편안한 편이에요. 편안한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맡은 역할들이 참 편안했어요. 내가 고뇌 안 해도 되는 스타일의 역할이었어요. 사실 힘들긴 해도 고뇌해야 하는 쪽도 좋은 것 같긴 해요.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과의 작업이 항상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출연한 작품 중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리테이크(retake) 촬영을 한 영화의 장면이 있나요? 저는 임권택 감독님의 현장에서 밤을 새워서 한 장면을 32 테이크를 다시 찍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안성기 _ (잠시 생각) 나는 금방 끝났는데... 항상 금방 끝난 것 같아요. 정성일 _ < 안개마을 >이 그렇게 빨리 끝난 이유가 있군요.(웃음) 안성기 _ 그때 울었죠, 그래서...(웃음) 정성일 _ 안성기 선배의 영화 편수 전체를 놓고 말한다면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에게나 한국영화사에서 그 영화들은 매우 중요한 걸작들이었습니다. 1980년 < 만다라 >부터 지금까지 안성기 선배에게 임권택 감독님은 한 사람의 감독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안성기 _ 굉장히 어른으로서 마음과 모습을 가지신 분이에요. 만다라 때 사진을 보면 굉장히 젊구나 싶어요. 그때 ‘임노인~, 정노인~’라며 농담을 했는데 40대 중반이었어요. ( 임권택 감독은 그때 46살이었고, 정일성 촬영감독은 51살이었다) 지금 보기에는 어린데, 그 당시는 굉장히 나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셨어요. 그때는 의지가 밖으로 강하게 표현이 되셨어요. 지금은 그것들이 쌓여서 득도를 하신 단계가 아닌가 생각해요. 웬만한 돌을 던져서 파문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신 게 아닌가 생각해요. 편안함이 있으시고, 작품도 그렇게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 취화선 >이란 영화를 통해서 큰 부담이었던 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수상에 대한 부담이 컸었어요. 내가 상 받아서 다행이라고 하셨죠. < 천년학 >이 너무 외면받았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어요. 지금 감독님을 평가하기보다, 감독님이 하시고 싶었던 작품을 하셨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정성일 _ 안성기 선배가 출연하지 않은 임권택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이 어느 영화인가요? 안성기 _ < 짝코 >가 좋았어요. 인물들이 매력이 있고,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비극을 그 두 사람을 통해서 잘 표현했어요. 재미있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정성일 _ 지금은 손사래를 치시지만 아주 오래전 임권택 감독님이 다시 만들고 싶은 영화로 < 짝코 >를 말씀하셨어요. 쫓는 자, 쫓기는 자, 그 두 인물 중에서 안성기 선배가 캐스팅된다면 둘 중에 누구를 맡고 싶으세요? 안성기 _ 김희라 씨가 워낙에 튀고, 최윤석 씨가 상대적으로 약했는데, 약하게 나온 역할을 한번 맡아보고 싶어요. 정성일 _ 감사합니다. 제가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홈페이지에 보내온 유저들의 질문을 대신 드리겠습니다. 이경준(babapapa)님의 질문입니다. 그냥 읽겠습니다. 예전부터 운동을 해 오셨던 건가요? 사실 저에게 안성기 배우란 < 안녕하세요 하나님 >의 병태, < 기쁜 우리 젊은 날 >의 영민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어수룩하거나 아니라도 그냥 젠틀맨의 느낌. 그러다 < 실미도 > 스틸에서 웃통 벗으신 거 보고 깜놀 했는데요, 배용준이 몸 만들었다고 사진 돌렸을 때보다 더 놀랐음. 생각해보면 < 남부군 > 때도 운동을 하셨던 몸인 거 같기도 하고. 암튼 운동과 안성기라는 이미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무사에서의 캐릭터가 여전히 각인되어 있어요. 아주 예전부터 꾸준히 몸 관리를 해오신 건가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운동을 시작하신 걸까요? 그 계기는 특별한 영화였던 건지요? 안성기 _ 배우로서 기본적으로 몸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을 예쁘게 만든다는 게 아니라 체력으로써, 에너지를 갖춰야 하니까 지금까지 끊임없이 운동을 해온 거죠. 정성일 _ 이소진(sbear6)님의 질문입니다. 80년대 당시 TV가 보편화 되면서 영화계의 불황과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하는데요. 주인공으로서 조그마나 심리적 부담은 없으셨는지, 또한 80년대의 영화사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텔레비전에 특별하게 출연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안성기 _ 당시 TBC에 전인권 씨의 형, 전세권 피디가 있었어요. 원래 배우 지망이었고 같이 출연도 했어요. 배우가 안 돼서 피디로 갔는데, 형사 단막극에서 범인으로 하루만 나와 달라고 해서, 나는 영화만 한다고 했는데 하도 끈질겨서 나갔어요. 일주일에 스튜디오 녹화, 야외 녹화, 더빙 녹화를 해서 50분짜리를 만드는 거예요. 영화에서는 50분짜리를 만들려면 두 달이 걸리잖아요. 나는 그 스피드와 호흡이 감당이 안 됐어요. 그리고 무성의했어요. 배우 얼굴과 대사만 나오는 거예요. 공중전화를 하는 씬이 있는데, 계속 얼굴만 찍었어요. 그래서 카메라도 위치를 바꾸면서 돌리고 뭐 그렇게 해야 하지 않냐 했더니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건 나하고 안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경험이 한번 있어서 그 이후로는 거절을 했어요. 정성일 _ 정혜경(jhkgr)님의 질문입니다. 예전에 시나리오를 쓰셨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요즘 박중훈 씨, 유지태 씨, 하정우 씨 등 배우들의 감독데뷔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영화 출연 경험으로 보면 안성기 선배가 연출을 못 하실 이유가 없는데, 연출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 꿈이 있으신지요? 안성기 _ 없어요. 힘들어서(웃음) 옆에서 너무 힘든 걸 봤어요. 정성일 _ 어떤 시나리오나 어떤 원작을 보면 이거 내가 하면 정말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 적은 없나요? 안성기 _ 위험한 생각이에요. 나도 한번 해볼까, 이런 치고 빠지는 생각은 위험하고, 난 감독이야, 이런 생각이면 해야겠죠. 완전히 감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감독을 해야 되는 거죠. 정성일 _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영화와 인생을 감당할 만큼 산 다음에 갖는 경험과 세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을 때, 제안이 오면 다른 영화에 출연도 하시면서 연출을 같이 하는 것은 생각해 보신 적 없나요? 안성기 _ 예전부터 감독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고통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상태가 내게 오면 해야 되겠죠. 그런데 그런 것은 없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장면과 생각은 너무 건조해서 상업적이지 않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트위터로 온 질문입니다. ‘이 구역의 작은 손’님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용기를 내서 드리겠습니다. (웃음) 안성기 선배께 인생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안성기 _ (한참 망설인 후)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뭔가 남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 게 인생 아닌가 싶어요. 정성일 _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국민배우라고 불릴 만큼, 배우로서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되는데, 앞으로 배우로서 더 이루고 싶은 것이 계십니까? 안성기 _ 이룬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힘이 있는 데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때까지 열심히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 _ 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해보았는데,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으십니까? 안성기 _ 많지요. 요새 대부분 많이 안 해봤어요. 이창동 감독,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 김지운 감독. 정성일 _ 출연작 중에서 먼 훗날에 이게 내 대표작이야, 라고 생각하는 어떤 영화가 언급되어지길 바라시나요? 안성기 _ < 바람 불어 좋은 날 >, < 만다라 >, < 하얀 전쟁 >, < 기쁜 우리 젊은 날 >, < 고래사냥 >, 개인적으로 < 개그맨 >도 좋아하고, 오승욱의 < 킬리만자로 >도 좋아해요. 내가 나중에 그런 걸로 영화제 한번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오! 이런 영화도 있어?’라고 할 만한 <킬리만자로>, < 축제 >, < 남자는 괴로워 >,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못 봤던 < 개그맨 >, < 안녕하세요 하느님 >, 이런 걸 하면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목은 ‘관객들이 손을 안 들어준 영화’ (웃음) 정성일 _ 출연작 중에서 단지 숫자상으로가 아니라 기대했던 것보다 정말 관객이 안 들었던 영화가 있나요? 안성기 _ < 영원한 제국 >. 그 당시에 관객 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그 해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를 했었고, 원작도 베스트셀러였고, 열심히 나름 잘 만들었는데, 뚜껑 열어보니까 생각보다 관객이 안 들었어요. 보고 싶은 영화로만 끝난 게 아쉬웠어요. 그 영화제에 <영원한 제국>도 들어가야겠네요. (웃음) 정성일 _ 만일 그 영화제를 한다면 저는 거기서 오구리 고헤이의 < 잠자는 남자 >도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안성기 선배의 걸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다음 영화에서 어서 다시 뵙고 싶습니다. 인터뷰_ 2013년 5월 24일 날씨 맑고 참 더웠음. 정리_ 이지영 진행_ 유성관, 이지영 사진_ 유성관
보고 난 다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미 불이 켜진 다음이고 화면은 하얀 천을 드러내면서 영화가 끝났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극장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텅 비어있었다. 그때는 항상 그러했다. 나는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보았을 때의 어리둥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숨은 걸작을 발견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무언가 이건 난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 족보 >를 만든 다음, 이미 < 짝코 >를 만든 다음, 이미 < 만다라 >를 만든 다음에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 안개마을 >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연대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 이 우진필름에서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찍을 때 화천공사에서 <안개마을>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충무로 식으로 말하면’ 두 편의 영화는 ‘가께모찌(掛持ち)’로 진행되었다. 한쪽에서는 <안개마을>의 촬영 로케이션 장소에 내려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강원도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지역을 돌면서 촬영을 시작하였다. (내가 알기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의 마지막 ‘가께모찌’ 영화이다. 나는 이 방법에 대해서 공격할 생각이 없다. 이건 상황이다. 한국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일정에 대해서 익숙해있었고, 많은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1982년 그해 가을에서 겨울 첫눈이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내게 말하기를 “<안개마을>은 첫눈이 내릴 때 즈음 촬영이 끝났어요”라고 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 길소뜸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티켓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씨받이 >를 만들 것이다. 종종 임권택을 하나의 직선처럼 설명할 때가 있다. 그저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일직선처럼 이어지는 선. 앞의 영화가 뒤의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인 작가주의의 믿음. 그때 의도적으로, 이를테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같은 영화)를, 슬그머니 셈에서 빼고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영화의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엇이 무엇을 포함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숨어있는 사건. 우리는 선을 따라갈 때 종종 중간에 사라져버린 점을 놓칠지 모른다. 하지만 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구멍이 되어 그 안에 예기치 않은 역량들을 숨겨놓았을 때 우리는 결정체의 서사들 속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버린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떤 가시적인 비정상성. 예기치 않은 구성. 거의 부서져버릴 지도 모를 지경까지 이르러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된 시퀀스들. 영화에서 가끔 그런 순간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힛치콕의 <염소자리 아래에서>를 떠올리고 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견디고 있는 화면들. 그런데도 더할 나위 없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감각. 예기치 않은 반응. 그 안에서 지각의 상황과 청각의 조건이 변화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과거의 관습과의 긴장을 해결하는 새로운 기능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가능성의 조건들. 상황을 열어 놓아야 한다. 상투적인 비평들은 <만다라> ‘이후’를 말하면서 임권택의 ‘완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게으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영화 모두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매번 영화를 본다는 문제가 그 유일무이한 중간과정의 상황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작가주의 담론 안에서 헤게모니화 되지 않은 점. 그때 이 점을 파고 들어가 구멍으로 만든 다음 그 안에서 미처 전개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밀고 나가볼 용기가 비평에 있어야 한다. 블록을 무너트려야 한다. 펠릭스 가타리가 1965년 메어리 반스의 사례를 본 다음 한 선언. 그런 다음 여백에 무언가를 써 넣어야 한다. 데리다가 필립 솔레르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 했던 그 작업. 이건 나의 배움이다.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임권택의 1980년대 영화들, 그러니까 <만다라>와 <길소뜸> 사이에,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우스꽝스러운 제목에 대한 (다소 도식적인) 가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라는 제목은 누구라도 임권택 의 영화 목록을 정리하다말고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이 제목에서 어떤 시적인 기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경은 늦가을에 시작해서 이른 겨울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영화가 끝나면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들, 이영하와 나영희 두 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녔던 강원도와 충청도의 낯선 공간에는 첫눈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임권택은 안성기 와 정윤희 를 데리고 정일성 의 촬영으로 < 안개마을 >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안개마을>은 두 편 모두 시나리오를 송길한 이 썼다. 이 영화는 봄에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장면에서도 나비를 볼 수 없다. 혹은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이 영화의 이야기, 장소, 인물, 에피소드, 미장센, 소도구, 그 어느 것과도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영화감독 정진우 의 영화사 우진필름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진우는 임권택과 함께 정창화 밑에서 연출부 도제수업을 했으며, 그런 다음 그 둘은 1962년 거의 동시에 첫 번째 영화를 찍었다. 좀 더 정확하게 임권택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찍을 때 “그 영화가 대작이잖아요, 스타들도 많이 나왔고, 내가 첫 영화인데다가 아무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영화사에서 진우한테 좀 도와주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진우가 데뷔할 때 내가 돕는 걸로 이야기를 했죠, 물론 그냥 이야기로 끝났죠, 아무래도 이미 감독이 된 사람이 현장에 와서 있으면 불편하니까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정진우는 그 이듬해 < 외아들 >로 데뷔하였다. 그 대신 임권택은 그 후에 제작사를 낸 정진우의 영화사에서 많은 영화를 찍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가장 안 팔리던 시절”인 1973년 < 장안명기 오백화 >로 시작해서 두 편의 영화 < 연화 >와 < 연화 2 >(1974년), < 맨발의 눈길 >과 < 아내 >(1976년), < 임진왜란과 계월향 >, < 옥례기 >(1977년), < 아벤고 공수군단 >(1982년), 그리고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년)까지 모두 11편을 만들었다. 정진우 자신도 1960년대에 쉬지 않고 영화를 연출하였다. 임권택과 다른 점은 (아마도) 1967년부터 그는 자신의 영화를 직접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영화사를 차렸고, 그는 자신의 영화를 거기서 연출하였고 그러면서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 영화사의 목록에는 김기영 의 < 화녀 >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좀 더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김수용 의 < 화조 >. 정소영 의 < 나는 고백한다 >. 그러면서 정진우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그 영화들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자기의 리듬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제작할 무렵 정진우는 그 자신이 제작한 일련의 영화들을 마치 연작처럼 제목을 지었다. 1980년에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를 만든 다음 그 이듬해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그리고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임권택이 찍고 있을 때 그 자신은 <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를 찍었다. (하지만 두 편이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두 편은 모두 나영희 가 주연이며 동일한 계절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을 생각한다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정진우의 일련의 영화들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제목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제목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 안으로 이끄는 입구와도 같은 것이며, 때로는 영화 전체에 대한 일종의 다이어그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를 (다시) 보고 난 다음에도 그렇다. 나는 여기서 영화와 제목 사이의 상호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본 다음 느낀 난처함은 단지 그런 이유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느끼는 것은 위험한 혼합의 가능성이 종종 각자의 방법을 독립된 항목처럼 내세울 때마다 서로 분리되는 것만 같은 형태 안에서 매번의 표현이 매번의 다른 방향에서 제시된다는 데서 오는 기괴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단순히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상하게도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도 갖지 않은 채 기이하게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돌연한 근접이 계속해서 시도되었다. 이때 영화는 위계질서가 중요해진다. 이제 그것을 저것과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에 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위 혹은 아래로 옮길 것인가. 영화에서 배치라는 문제. 이때 이것이 저것과 소통하느냐의 문제는 단지 미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보고 난 다음 무언가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 영화 안에서 무언가는 소멸해가고 다른 무언가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아마 나는 끝내 그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붙든다. 다만 나는 여기서 몇 개의 씬들을 설명하는 대신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그 안에서, 그 씬의 방법 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배열하는 구성의 원칙을 물어본 다음, 서로의 이질성을 존중하면서 재빨리 빠져나올 생각이다. 나는 이들 사이의 기능보다는 다소 제한적으로 그냥 그 씬이 활동하는 흔적만을 볼 것이다. 그 씬의 방법은 어디서 왔는가, 그런 다음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의 다른 판본. 어떻게 바깥은 안에 있는가. 끊임없는 분산. 이때 임권택 은 중심 없는 중심에서 어떻게 그것을 동여매는가. 매듭이라는 방법. 그저 인상적으로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어딘지 모르게 < 만다라 >의 다른 버전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어떤 장면도, 어떤 이미지도, 어떤 줄거리도, 그런 연상을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임권택 이 연출을 하고, (<만다라>의 각색을 한) 송길한 의 시나리오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다라>는 영화가 시작하면 한 겨울 어느 시골길에서 시외버스가 멈춘 다음 거기서 두 승려가 내리고, 그런 다음 두 번 다시 그 두 사람은 차를 타지 않고 내내 걸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영화가 시작하면 늦가을 강원도 어느 호텔 앞에서 여자가 택시에 올라탄 다음 내내 이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때 둘 사이는 단지 걸어간다, 와 차를 탄다, 라는 동사의 차이가 아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보는 세상과의 만남의 방식과 차를 타고 달리면서 지나쳐가는 세상과의 관계의 방식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주제나, 테마나, 소재나, 인물이나, 대사나, (말하자면 그런 방식의 분류에 따르면) 서로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다. 단지 한 가지. 둘 사이의 진행방식의 지각이라는 점(의 차이)에서만 동일하다. 이때 여기서 문제 제기를 하는 위상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영화가 세상을 지각하는 두 가지 방법. 신체적 지각과 기계적 지각. 이때 기계적 지각은 우리의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운동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라는 질문에로 이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지가 베르토프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요리스 이벤스가 있다. 나는 여기에 장 마리-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이예를 더하고 싶다. 당신은 내가 지금 너무 많은 예를 들고 있다고 염려할지 모른다. 나는 이미 말했다. 원칙을 물어본 다음 그 안에서 다이어그램의 계보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먼저 지가 베르토프의 간격. 따로 떨어진 것은 끝내 서로 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둘 사이에서 그 안에 있는 규칙을 따르는 대신 그 둘의 간격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예외적인 특징의 관계를 끌어내야 한다. 영화가 보여준다는 것은 세상의 틈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시간의 이미지들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고스란히,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무엇보다 간격의 영화이다. 거의 일제히, 라고 할 만큼 시퀀스들이 각자의 구성 원칙에 따라서 떨어져 나간다. 임권택은 그걸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게 연결시켜 놓은 다음 그냥 거기서 멈춘다. 심지어 어떤 장면들은 분리가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장면들은 계획 없이 찍혔으며, 많은 쇼트들은 그 장소의 조건에 기꺼이 따르고 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구체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이고, 종종 어떤 장소들이 초현실주의적인 무대처럼 보이며, 때로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상황 때문에 부조리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가 진행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그대로 그 방법을 복사하듯이 전달할 것이다. 한가로운 첫 장면, 설악산의 늦가을. 호텔 침대에서 막 일어난 여자가 잠시 풍경을 감상한 다음, 한껏 게으르게 그 시간을 누린다. 계절의 기호. 장소의 약속. 이곳에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객들이다. 그러나 이 여자가 이상한 것은 이 장소에 혼자 왔으며, 그녀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냥 그녀는 한가하게 풍경을 본 다음 테라스에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한다. 자동적인 약속. 아마도 이 영화는 그 사연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자의 이름을 한참 뒤에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는 사람은 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나도 그저 그녀라고 부를 것이다. 체험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 아마도 차례로 나타나게 될 장애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지식? 그렇다. 우리는 아직 이 영화의 목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그녀에서 멈추지 않고 동시에 그 경로 자체에 대한 탐색이 될 것이다. 이때 이걸 어느 한 쪽의 이야기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순간 이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녀이기 때문에 미리 결정지어진 장애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우얼바하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율리시즈를 방해하는 괴물들, 마녀, 재난, 하여튼 그 모든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가 율리시즈이기 때문에 그 앞을 가로 막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율리시즈를 설명하는 존재들이다.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우리를 막아 나서는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장애물이다. 세상의 일부였던 내가 부분들 사이의 연결의 계기가 될 때 갑자기 세상은 마술적인 질서를 새로이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 짜여지는 경우의 수. 무엇이 무엇을 대체한 것일까. 관점의 새로운 이동.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분리. 아마도 이것을 임권택 은 < 만다라 >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이 분리를 다시 한 번, 그러나 다른 지각의 간격을 통해서 반복한다. 그저 다짜고짜,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시작.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만날 것인지, 누가 그녀와 동행할 것인지, 아니,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여기가 어디인지, 미처 아무 것도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바깥으로 나온 다음 호텔을 나서서 그녀가 학동으로 가자고 했을 때 모두들 이 장소에 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거절의 제스처. 그때 그 거절은 장소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무언가 끊어진 것을 다시 이으려는 노력. 그런데 무엇이 끊어진 것일까. 그것을 다시 이어놓을 때 그녀에게는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일까. 그녀가 처음 택시를 잡으려 들자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운전기사들은 고개를 가로 저은 다음 그녀 곁을 떠난다. 그녀는 지금 갈 수 없는 곳에 가려는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장소. 아마도 지금 그녀를 태운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잘 모르기 때문에 엉겁결에 태웠을 것이다. 택시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정비소에 잠시 머물렀을 때 여기서 만난 청년은 운전기사에게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지 아느냐고 핀잔을 준 다음 그 택시비로는 어림도 없다고 충고한다. 이때 우리는 이 장소가 이 이야기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 등장인물. 그녀의 여행을 위해서 운전하며 함께 목적지까지 가게 될 남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의 길 안내를 하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동선이 될 것이며), 그녀의 말 상대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상대 쇼트(reverse shot)가 될 것이며), 그녀에 관한 지식의 일부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운전기사는 처음에는 택시라는 자동차와 거의 동일한 사물처럼 다루어진 다음 다시 자기의 인격을 얻게 될 것이다. 두 가지 단락. 첫 번째, 언제 운전기사는 택시로부터 분리되어 자기의 인격을 갖게 될 것인가. 두 번째, 그런 다음 어떻게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때 그녀는 그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혹은 반대로 그녀 아니면 그는 상대방의 세계로부터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녀가 택시에 타자 운전수는 오로지 그녀를 위해 라디오를 튼다. 이때 라디오에서는 영화 < 러브 스토리 >의 사운드 트랙을 편곡한 선율이 흐른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에릭 시걸이 쓴 베스트셀러를 아서 힐러가 1970년에 만든 미국영화. 하버드 법대를 다니던 백만장자의 아들과 프린스턴 대학교 여대생의 ‘러브 스토리’. 그 둘의 사랑은 여자의 불치의 병으로 끝나고, 남자는 눈 내린 센트럴 파크의 공원에서 “바하와 비틀즈와 나를 좋아한 다음 29살에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긴 플래시백을 하고 나서 그렇게 거기서 끝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러브 스토리>로부터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영화이다. 게다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은 이 영화와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다른 영화에서 이미 들었던 ‘지나간’ 영화 음악을 다시 들을 수는 있다. 그때 이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렇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라디오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마치 하나의 리듬처럼, 영화 바깥의 음악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때 이 영화는 라디오에 가깝게 다가간다. 영화가 때로 미디어에 다가간 다음 자신이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할 때가 있다. 더 할 나위 없는 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 비디오드롬 >. 마치 이 영화는 종종 라디오의 사연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임권택 은 영화를 진행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음악과 풍경의 교차. 달리는 자동차. 그녀는 지금 풍경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여기에 이미 와 본 적이 있는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고의적이리만큼 그녀의 마음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여자는 풍경을 쳐다보다 말고 생각났다는 듯이 운전수에게 이 영화를 미국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칠년 동안 미국에 있다가 막 돌아왔다고 덧붙인다. 이 대답을 듣자마자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구태여 셈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러브 스토리>를 보았다면 이 여자는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에 거의 관심이 없었거나(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없었을 만큼 바빴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는 그 이듬해에, 그러니까 1971년에,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여자는 조금 전에 미국에 칠년 동안 갔다 왔다고 말했다. 지금은 1982년이다. 그녀는 1975년에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극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 가지 가설이 더 남아있다. 그녀는 지금 그냥 떠오르는 대로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라는 지각. 그것으로 어떻게 건드리고 싶은 것일까. 라디오라는 청각기호. 그것으로 무엇을 끌어당기려는 것일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그녀가 옛 애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잡아 이끄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그녀를 가로 막아 나서는 것일까. 그들은 마치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각자의 역할. 그들 각자의 은유. 택시가 고갯길을 넘어 학동에 다가가려 할 때 그들을 가로 막아나서는 사람은 그저 태워달라는 큰 짐을 옆에 낀 영감이다. 택시는 그냥 지나치려 하지만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듯이 자동차는 고개에서 뒤로 미끄러지고, 그걸 쳐다보던 영감은 학동까지 가는 지름길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과 동행이 된 영감은 여행을 함께 하기에 좋은 동반자가 아니다. 이미 올라탄 영감의 보따리에서 생닭이 푸드덕 거리기 시작할 때 무언가 여기에는 어딘지 불쾌한 초현실주의적 기분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때 무례한 영감과 그가 들고 탄 생닭은 무언가 그녀의 이 여행에 대한 기대를 깨트리고 있다는 인상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무엇이 무엇을 망쳐버리고 있는 것일까. 마치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기분. 그걸 단지 환상 안으로 침입한 실재라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여기에는 정반대로 추상적인 미로 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바깥과 안의 비대칭의 탈구. 그녀는 무언가를 음미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정확하게 그 만큼 무언가를 일깨우려고 방해하는 자들의 노력. 그런 다음 듣게 되는 두 번째 음악. 다시 두 사람이 되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에게 말한다. “라디오를 틀어드릴까요?” 라디오를 켜자 그룹 이글스(Eagles)가 부른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흐른다. 1976년의 노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 첫 번째. 무언가 이 영화의 선곡에는 동시대라는 느낌이 없다. 마치 여기에는 1970년대의 어디론가 시간적인 추락을 했다는 인상이 있다. 혹은 저 멀리서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두 번째. 처음 <러브 스토리>의 선율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여기서 음악이 영화에 무드를 제공한다고 얼핏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지금 이 영화의 무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혹은 서사에 어떤 모티브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대칭이 되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호텔 캘리포니아>는 무엇을 위해서 흐르는 것일까, 혹은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라디오는 마치 자율적인 행동을 개시한 등장인물처럼 그녀의 마음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선곡을 시작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렇게 자꾸만 사슬에서 영화의 여러 기호들이 풀려나간다. 두 번째 오류 추론. 나는 학동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 끝내 도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처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택시는 학동에 도착했다.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학동 장면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동(鶴洞)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고즈넉한 옛 마을의 이미지. 그러나 여기는 탄광촌이다. 이제까지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던 것과 대조적으로 사방이 온통 시커먼 색으로 가득 차 있고, 거기서 살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의 무리가 보인다. 그녀는 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내내 자신이 떠도는 모든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기표이다. 그녀가 찾는 남자는 여기까지 어떻게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러나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그 남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파면 당했다, 는 말을 들을 뿐이다.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는 자꾸만 그녀로부터 달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그의 행방을 멀리서부터 하나씩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 학동에 도착했을 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하여튼 여기서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녀가 (이 곳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여인숙 앞을 서성거리는 장면만을 찍은 다음, 영화는 더 이상 그 앞에서, 그 안에서, 그 주변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날 밤 그 여인숙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숙에 머무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어떤 상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마치 거의 피하듯이, 영화는 단 한 쇼트도 이 장소에 할애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날 저녁 그녀는 낮에 헤어진 택시 운전기사를 다시 만난다. 그런 다음 그에게 남자가 범우사에 가서 스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건 우리가 사무실에서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걸 그녀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왜 그녀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이 영화가 지금부터 남자의 자리를 놓고 일종의 수건돌리기와 유사한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여겨졌다. 처음부터 빈자리. 그런 다음 차례로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그 무언가가 동원되기 시작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거기엔 원래 아무 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목표는 사라지고 이 여행은 중단될 것이다. 그때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단지 그녀의 말뿐이라는 것을 당신은 환기해야 한다. 말이 채우는 공백. 말 속의 인물. 역설적으로 그녀와 그녀의 말 사이에서 정작 탈락되는 것은 그 대상으로서의 남자 그 자체이다. 도식적 설명. 환상과 상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이상한 전도가 보여주는 역설은 이때 그녀는 사실상의 빈자리에 지나지 않는 그 남자의 뒤에 숨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를 가기 위해 강원도를 떠나서 충청도로 옮겨간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지역적 분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임권택 으로서는 드물게 지리적인 지표들의 모습도 거의 대부분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경계를 넘을 때 임권택은 작은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튿날 그녀가 운전수 옆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좀 더 가까워진 거리. 단지 거리만이? 이때 그 자리가 앞과 뒤에서 옆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한다. 평행의 자리. 새로운 관계의 시작. 이날 운전수는 라디오를 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녀와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그 어떤 기호도 그 둘 사이의 대화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듯이, 그는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우리는 첫날 라디오를 켠 사람이, 그녀(와 우리)에게 <러브 스토리>의 음악을 들려준 사람이, 운전수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택시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항상 예기치 않은 이들이, 그 여행 안으로 끼어든다. 그녀가 뒷좌석을 비우자 마치 그 자리가 비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문득 길 위에 선 스님이 그 차를 멈춰 세우고 동승을 부탁한다. 그런 다음 잠시 후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통기타를 든 청년과 그의 애인이 더불어 남은 자리를 차지한다. 뒷좌석은 가득 차고, 택시는 과밀해진다. 그 안에서 청년은 자기 애인의 바지 안에 손을 넣고 성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나는 그녀를 앞좌석으로 보낸 다음 뒷좌석을 비워놓은 것이 단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자리의 핵심은 운전석 앞에 매달려 있는 백미러에 있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뒤에 탔을 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구태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거울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기능적으로 그녀와 운전수가 더 이상 친밀해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중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들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우리는 이 여행이 그녀가 자기의 과거를 찾으러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은 왜 그녀가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 안에 끼어들었는가. 이 질문이 성립된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대의 방법으로도 던져볼 수 있다. 왜 그녀는 지금 그들 각자의 여행길을 동시적으로 하나로 묶는 순간을 마련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우연의 계획이라는 네트워크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물론 이 계획은 임권택 의 배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방향에서 바라보면서 그녀는 범우사에 가기 위해서 가던 길에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태우기 위해서 범우사에 가고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설명하면서 배치에 관한 다른 의미의 네트워크를 건드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인내심을 갖고 그 자리에서 오늘 여기를 ‘우연히’ 지나가게 될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말하자면 순환의 네트워크. 이 순환이 그녀의 과거에로 향하면서 만들어져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때 그녀가 만난 스님과 그 곁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길 위의 우연이라기보다는, 또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들은 그녀의 그 남자와의 시간 속에서 불러온 과거 안의 미래와 과거의 과거 그 어느 순간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그 남자가 불교에 귀의하고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소 서둘러 보자. 그녀가 잠시 후 범우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 그 남자와의 과거를 짧게 플래시백으로 회상한다. 이때 그녀가 떠올리는 시간은 그 남자와 모닥불 캠프에 와서 텐트를 치고 보낸 그날 밤이다. 아마도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의 그 나이, 그 복장.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스님이 먼저 내리고 그 택시를 떠나자, 마치 운이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택시는 고장 나고, 뒤이어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그 차를 떠난 다음, 운전수는 도리 없이 자동차를 수리할 부품을 구하기 위해 여자를 혼자 남겨 놓고 떠난다. 저녁이 찾아오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혼자 기다리는 여자. 깊은 밤이 된 다음 돌아온 운전수는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수리할 정비차가 이곳에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낯선 곳에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녀와 운전수에게 서로 더 다가갈 상황을 계속해서 만든 다음 반대로 이 상황을 방해하는 인물을 정확하게 그 순간에 제공한다. 그녀와 운전수가 비를 피해 한 밤중에 낯선 집의 작은 방에 머물 때, 그들 자신만의 시간을 시작하기 위하여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비를 피해 이 방에, 낮에 헤어졌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다시 찾아온다. 망친 시간. 하지만 무엇을? 임권택 은 단지 그 둘 사이의 시간만을 망치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다음 문득 통기타 청년은 기타를 들고 마치 답례라도 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가 두 번째 날 듣게 되는 유일한 노래이다. 호세 펠리치아노(Jose Montserrate Feliciano Garcia)의 <레인(Rain)>. 청년은 누군가를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다소 감동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음미한다. 이때 (아마도 이 집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옆방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서 이 노래로부터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 좀 잡시다”라는 말로 이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임권택은 이 여행에 어떤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확하게 그 무드는 그녀가 되찾고 싶어 하는 과거 속의 시간 그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억의 어떤 기호들이다. 왜 그걸 망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일까. 이상한 장면. 그녀와 통기타 남자와 여자, 운전수는 (지금 열거한 순서대로) 차례로 누워서 불을 끈 다음 잠을 청한다. 상상하기에 따라서 몹시 외설적인 동침. 통기타 청년은 이불 속으로 그의 애인을 노골적으로 만지기 시작하고 그들은 곧 성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다. 이때 이 둘이 애무를 시작하자 운전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이제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 두 사람과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방어막도 없다. 그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성적인 관계를 나누기 시작한다. 두 가지 이상한 점. 첫 번째. 이때 갑자기 이 상황이 비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누워있는 얼굴을 보여줄 때 상상선을 넘어간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를 보면서 상상선이 거의 철의 규칙처럼 지켜져 온 것을 보아왔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의 일흔 여덟 번째 영화이다. 이 데쿠파주는 그녀가 성 관계를 나누는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만 설명하면 이렇게 찍기 위해서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다시 눕혀야 한다. 혹은 그녀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누워야 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넘어간 상상선을 일부러 그렇게 찍어서 선의 체계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이때 이 넘어간 상상선이 기이하게도 두 남녀의 성적인 행위와 등을 돌린 그녀 사이에 마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선을 그어서 저 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넘어올 방법이 없다는 듯웰옛錚?방어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상한 점. <나비 품에서 울었다>에는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 남자를 생각하는 단 한 번의 플래시백이 나온다. 그때 그 남자는 텐트 안에서 무리하게 그녀의 옷을 벗긴 다음 성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녀는 저항하며 가까스로 팬티만을 입은 채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고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다시 돌아 들어간 다음 화가 나서 그에게 거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는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녀가 그 남자에게 떠오르는 (영화 속의 유일한) 기억은 섹스(에 대한 시도의 실패)이다. 그런데 이 순간, 섹스에 관한 광경이 바로 그녀 곁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녀는 그걸 떠올리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플래시백. 기억의 지연. 그녀가 이걸 떠올리는 건 다음 날 범우사에 가서 한낮에 그 절에 놀러온 젊은 커플들을 보면서이다. 영화에서 작동하지 않는 기억장치. 그렇다면 그때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의 표정 이미지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 표정에서 시간을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읽어야 하는 감정의 기호들은 그녀 뒤편의 섹스로부터 무엇을 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종종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는 분명한데도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불투명해진다. 세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운전수에게 자기가 여기 왔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오현주라고 말해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둘 사이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다음 동일한 상황의 반복. 남자는 이 절을 이미 떠난 다음이고, 오현주는 다시 운전수와 함께 그 남자를 찾아서 이 여행의 선을 계속 연장한다. 이 날도 장소를 이동하는 중에 한 남자를 만나고, 남자는 운전수에게 고장 난 자신의 자동차의 수리를 부탁한다. 잠시만 멈춘 다음 약간의 셈. 세 번의 반복. 매번 오현주(와 운전수)는 자신들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길에서 만난다. 매번 그 남자는 거기에 없다. 반본 안의 차이. 오현주는 운전수에게 그만큼 다가가고, 그 만큼 방해를 받는다. 그때 이상한 것은 오현주가 찾으러 다니는 남자의 점에서 우리는 그들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삶의 선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현주의 말에 따르면) 폐병을 앓던 그 남자가 왜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탄광촌에 갔는지 우리는 어떤 단서도 거기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범우사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과 탄광촌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났다”는 사실 사이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운 인상은 그 둘이 전체 안의 부분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기에 실패한 데서 오는 그 어떤 심연의 자리, 혹은 그 안의 한계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여행은 앞으로 밀고 나가면 나갈수록 미로 안에 들어간다기보다는 반대로 점점 더 신기루에 의해 채워지는 텅 빈 비일관성과 마주칠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판본. 같은 말의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드는 것일까. 이때 둘 사이의 간극은 오현주의 두 개의 시간에서 오는 엇갈림이다.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사이의 틈새로의 여행. 그 여행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반대로 차례로 현재의 칸막이를 넘어가는 오현주와 운전수 사이의 성적인 이끌림이다. 우리는 이미 둘째 날의 비오는 밤에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에 의해서) 망쳐진 그들만의 시간을 보았다. 세번째 날 오현주와 운전수는 함게 금정여관에 머물면서 거의 키스하기 직전까지 가지만 갑작스럽게도 검문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의 안전한 방어막이었던 방문이 열리고) 임검경찰이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이들의 키스 사이에 끼어들어 그 둘 사이를 (이야기의 차원에서) 찢어놓는다. 나는 이때 이 방문이 반투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아마도 그 남자를 만날 때까지 오현주의 동선과 운전수의 동선은 겹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불확실한) 의심. 나는 왠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 원래는 진행할 생각이었다가 중간에 그만 둔 대목이 있다는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이상할 정도로 수많은 쇼트들이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잠재성을 놓아둔 채 그냥 거기서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가능한 사건. 그 안에 담긴 가능한 행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가능한 감정. 물론 이런 쇼트를 잘못 건드리면 그때부터 소설이 된다. 나는 그 위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쇼트는 하나의 증거이다. 오현주와 운전수가 이제 그 남자를 만나러 강 위에 놓여진 다리를 건넌다. 그 다리를 건너기 직전 <나비 품에서 울었다>로서는 이례적으로 커다란 클로즈업의 쇼트가 나온다. 그 장면이 쇼트이기 때문에 안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다. 이 남자는 아마도 사진작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리들과 함께 이곳을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쇼트의 진행은 단순하다. 그러나 이상한 자리에 이상한 순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자리? 잠시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오현주는 지금 막 강원도의 경계를 넘은 다음 충청도에 와서 그 남자가 있다는 (태안반도에 있는) 청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신문사 앞에서 거의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전수가 그를 부르러 간 짧은 순간에 오현주는 그 남자를 만나는 상상에 잠긴다. 그 남자의 첫 마디. “오랜만이군” 대답. “그렇군요” “우리 칠년 만인가?” “그래요” 그런 다음 오현주가 질문한다. “결혼은 하셨겠죠?” “아니, 현주는?” “좋도록 생각 하세요”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군” “저도요”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이 오현주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에 문득 깨어나면서 깨닫게 된다. 이때 이 모든 대화가 오현주의 환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대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오현주가 그 남자에게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결혼 여부라는 것이다. 오현주는 그 남자와 의 결혼을 허락받기위해서 칠년을 기다린 다음 미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런 다음 더 이상한 반응. 질문에 부정을 하자 오현주는 만족한 표정을 지은 다음 그 남자의 반문에 대해서는 좋도록 생각하세요,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잠시의 틈새 사이로 들어온 찰나의 상상. 이때 그녀의 환상이 재구성하기를 바란 상상적인 상황은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으로 인하여 그 환상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요구가 원하는 지위가 무엇인지 그 상황에서 달아나버린다. 왜 오현주는 자기의 환상 안에서조차 자기의 요구에 대한 대답과 타협하지 않는 것일까.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오현주가 환상에서 깨어나자 그 환상의 자리에 동일한 자세로 뛰어온 운전수는 (그가 왜 동일한 자세로 그 자리에 왔는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불길한 표정을 지은 다음 이 곳에 없지만 그 남자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면서 그 곳에 가기를 망설이는 말을 한다. 내가 지적한 쇼트는 그런 다음 등장한다. 영화가 갑자기 무드를 바꾼 다음 추락의 신호를 보냈을 때 마치 어떤 절단이 거기 있는 것처럼 그 쇼트가 등장했을 때 누구라도 거기서 어떤 방향 전환의 기호를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 쇼트는 그런 다음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설혹 그 장면을 찍었다 할지라도 편집실에서 그 쇼트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얼룩처럼 그 쇼트는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었다. 끝내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클로즈업은 우리에게 무엇의 소재를 알려주기 위한 것일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환상의 얼룩을 그냥 남겨 놓음으로써 영화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방법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그 쇼트들이 그렇게 머물러 있다. 결국 마지막 시퀀스. 오현주의 환상이 그만 깨져버렸을 때 누구라도 그 남자가 환상 속에 머물러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이다. 우리는 이미 오현주의 여행에서 그 남자의 자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 점점 희박해지는 기억의 자리. 끊임없이 차에 동승하기를 희망하는 인물들은 이미 그걸 경고하기 위하여 그 빈자리를 차지한 다음 도착을 조금이라도 미루도록 지연시킨다. 말하자면 이직 셈이 끝나지 않은 리비도의 경제학이 취하는 부채의 바리케이드. 왜 통행은 제한되는가. 그 남자를, 이제는 비루해져버린 그 남자를 그저 멀리서 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라디오가 무언가를 대답한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바보 같은 행동 (Foolish behaviour)> 두 번째 실려 있는 노래 <패션(Passion)>. ‘바보 같은 행동’, 그리고 ‘열정’. (어쩌면 ‘수난’?) 하지만 당신은 이 음반의 제목과 노래가 서로 묶이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설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시작될 시간을 경고하는 것인지 서둘러 결정하면 안 된다. 오현주가 이제 미국에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운전수는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 오겠냐”고 반문한다. 그게 누구냐고 반문하자 “최순호라는 남자”라고 대답한다. 물론 최순호는 운전수의 이름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작별밖에 없다. 사실상 영화는 여기서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영화가 이야기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끝나야 할 데서 끝나지 않을 때 그것은 이후, 가 아니다. 새로운 가정. 말하자면 재구성. S#1 S#2 S#3 S#4 S#5 여기서부터 오현주와 최순호, 그 두 사람이 호텔에서 각자의 방에 머물 때, 마치 이 영화에서 이 시퀀스 전체가 이야기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다음 무언가 처음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 그렇다. 이 영화가 막 시작했을 때의 장면으로 돌아간 다음, 미처 그 호텔을 떠나기도 전, 그 남자를 찾으러 가기도 전, 그러니까 오현주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의 거의 그 순간 언저리 어딘가에서 다시 맴돌기 시작한다. 의미의 위치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임권택은 둘을 갈라놓는다. 오현주의 방에서 최순호를 내 보낸 다음 (S# 1)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할 수 없이 돌아온다. (S# 2) 다음 쇼트. 오현주의 샤워 장면. (S# 3) 이 변덕스러운 전환. 이때 이 장면이 현실적인 대구인지 아니면 최순호의 방 안에서 그의 뇌 속에서 진행되는 잠재적인 장면인지 이상할 정도로 모호하다. 그런 가정을 끌어내는 카메라의 좀 더 분명한 제스처는 마치 최순호가 그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그 상상의 시선을 따라가듯이, 쏟아지는 샤워물길을 따라 과도하게 다가간 카메라가 오현주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살결 위로 핥듯이 따라 내려온다. 사라진 욕실의 마스터 쇼트. 제 방으로 돌아온 최순호는 망설이다가 방문을 나선 다음 오현주가 머무는 208호실 문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S# 4) 이때 작동하는 것은 환상의 안으로의 향유일까, 아니면 그 바깥에로의 접근일까. 이 위험한 움직임. 이 쇼트는 욕실 장면 바로 뒤에 따라오기 때문에 두 가지 양상, 두 가지 회로, 두 가지 선택 사이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시간적 동시성에 따라 샤워하는 오현주의 방 안으로 거의 유혹에 이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최순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상상하는 장면에 사로잡힌 채 문 저편의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안에 침입하는 것이다. 상상적인 전체에 잡아먹힐 것인가, 아니면 육체적인 사건에 사로잡힐 것인가. 최순호는 문 앞에서 저편의 소리를 들으면서 서 있다가 문 열쇠 고리 안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다음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S# 5) S#6 S#7 S#8 자기 방으로 되돌아온 최순호. 세 가지 기호.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되돌아올 때 자기 방문을 닫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반쯤 열린 문. 바깥으로 벌어진 방의 틈. 그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 배려한 듯한 통로. 그런 다음 최순호는 침대 위에 엎드려 눕는다. 마치 침대와 섹스를 나누는 듯한 그 자세. 몸이 무언가를 향하여 자기를 쓰고 있다. 상형문자와도 같은 제스처의 문장들. 그러다가 최순호는 수화기를 든 다음 교환에게 208호실을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 그는 더 이상 망설임을 참지 못한다. 만일 그 전화를 받았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교환은 금방 그 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세 가지 가정. 오현주는 벌써 잠든 것일까. 그렇다면 침대 곁에 있는 전화를 받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들어버린 것일까. 오현주는 아직도 샤워를 마치지 않은 것일까. 마지막 가정. 만일 오현주가 방에 없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답. (S# 6) 오현주는 지금 최순호의 열린 방문 앞에 서서 그가 자기에게 시선을 돌리길 기다리는 중이다. 이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최순호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치 어떤 입구를 지시하기라도 하듯 매달려 있는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베일이다. 마치 무대와 같은 장치. 만일 이 장면의 고정점이 최순호라면 오현주가 그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반쯤 열린 이 문 안으로 들어온 다음 그 문을 잠그고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이중자물쇠의 열쇠소리를 채우는 클로즈업. 오현주의 손의 활동. (S# 7) 이상한 대사. “여긴 조용해서 좋아요, 살인이 나도 쥐도 새도 모를 거예요” 지금 두 사람은 동반자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섹스에는 어딘가 모르게 죽음의 그림자가 감돈다. (S# 8) S#9 S#10 S#11 S#12 S#13 S#14 S#15 S#16 그런 다음 마치 장면들은 회상 안에 빠져든 것처럼 연속성 없는 단편들의 씬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 없는 추억. 이것이 팽창된 환상인지, 반대로 수축한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사건의 시간들은 지금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야외 벌판에 놓여진 택시에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옮겨간 다음 (S# 9) 전혀 다른 공간인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아침에 일어나 다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동한다. (S# 10) 이때 의도적으로 임권택 은 이 시간이 아침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까치들의 장면의 인서트한 다음 그걸 오현주가 보게 한다. 다시 한밤중에 호텔에 택시가 들어선 다음 (S# 11) 방 안에서 오현주는 최순호의 신발을 벗긴다. (S# 12) 이 장면을 임권택은 의도적으로 침실로 들어가는 방문 바깥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영화의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든다. 이때 이 프레임은 처음 오현주가 최순호의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보았던 베일의 반복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다음 우리가 마주치는 검은 페이드이다. (S# 13) 이 갑작스러운 신호. 무엇이 무엇에로? 마치 자기 뒤에 아직 세계가 있는 지 돌아보는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단절. 그런 다음 싸구려 욕실로 보이는 곁에서 시작해서 오현주와 최순호의 섹스가 이어지는 무아지경으로 옮겨간다. 이때 이 이부자리는 명백히 이 장소가 신발을 벗겨주던 그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S# 14) 그런 다음 다시 페이드. (S# 15) 나는 이 장면을 순서대로 몇 차례를 보았지만 아직도 이 칸막이의 빗금 친 지층을 넘어가기 힘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음 장면. 마치 맨 첫 장면의 호텔로 되돌아온 것만 같은 장면. (S# 16) 원래로 돌아온 영화의 리듬. 처음으로 돌아온 장소. 나는 처음에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가 오현주의 회상을 알리는 출구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렸다. 깨어난 오현주 저 편의 침대에는 최순호가 아직 잠들고 누워있다.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 전화하는 오현주를 엿들으면서 우리는 그녀가 유부녀이며, 남편이 잠시 동안 집을 비우자 강원도에 혼자 온 것이며, 그녀가 생각지 않았던 이른 일정으로 남편이 돌아오자 황급히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력적인 환상의 연기의 끝. 잠시 동안의 시간의 연출. 미처 우리가 어리둥절해서 기억의 셈을 끝내기도 전에 오현주는 잠든 최순호를 남겨두고 그에게 “고단하게 주무셔서 그냥 갑니다. 즐거웠어요. 안녕”이라고 쓴 다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장소를 떠난다. 사라진 최순호의 자리. 즐거웠어요, 안녕. 작별인사. 두 번 다시 우리는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끝난 시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이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필요 이상으로 늘려놓을 생각이 없다. 뒤늦게 깨어난 최순호가 택시를 끌고 달려가지만 이미 떠나가는 기차를 그저 먼발치에서 보아야 한다. 돌아가는 길. 어디로? 원래의 그 자신의 삶에로. 옆 자리가 비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해서, 최순호는 라디오를 켠다.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진행자 중의 한 명은 모두들 고독, 고독, 고독을 말한다면서, 이제 앞으로는 고독이라는 말을 쓰면 사연을 소개하지 않겠다고 까지 말한다. 사라져가는 택시의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는 서바이버(The Survivers)의 <아이 오브 더 타이거>(Eye of the Tiger)>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 록키 3 >의 주제곡. 이 뜬금없는 노래. 이때 이 어처구니없는 노래를 의미로 쫓아간다면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막 개봉할 무렵 이 노래가 히트곡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화 사이의 동시대성.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최순호의 마음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다. 무기력한 행위에로의 이행. 이때 주인공의 실패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상이라는 시간의 폭력인 제스처. 당신을 위한 매우 복잡하고 리얼한 심리적인 설명 따위란 없다. 마치 라디오의 음악은 먼 시간의 여행으로 시작해서 바로 지금까지 온 다음 그 시간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최순호를 보잘 것 없는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자,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여기엔 왠지 불현듯 끝나버린 난처함이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빨리 < 안개마을 >을 찍어야 한다. 이미 쫓기기 시작한 일정. 금방 첫눈이 내릴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임권택은 서둘러 함께 진행되고 있었을 그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1983년 83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름 각본 송길한 촬영 손현채 편집 김희수 음악 이철혁 나영희 이영하 한소룡 윤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