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감독
- 오정훈, 이안숙
- 제작년도
- 2000
오래 쉬고 다시 시작한다. 9월까지 ‘영예의 시대’를 중심으로 존 포드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단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존 포드 영화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여정을 계속하려 한다. 첫 번째 영화는 < 태양은 밝게 빛난다 The Sun Shines Bright >(1953)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포드는 이 영화를 < 젊은 날의 링컨 > < 웨건 마스터 > < 도망자 > 등과 함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다. 감독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화는 가장 좋은 영화라는 뜻이 아니라, 가장 그의 개인적인 영화라는 뜻일 것이다.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서 작업했고 성공했지만 존 포드는 개인적인 영화 만들기의 시도를 멈춘 적이 없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그 시도가 낳은 한 정점이다. 1. 1900년대 초, 미국 켄터키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죽은 창녀를 실은 영구 마차가 막 출발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마차에는 동료 창녀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고 마차는 마을 초입에서부터 지방판사 선거가 진행 중인 마을 회관을 지나 장례가 치러질 교회에 이를 것이다. 영구 마차의 등장은 마을 전체를 긴장하게 만든다. 죽은 창녀는 전직 남군 장성 페어필드의 아들과의 사이에 오래전 딸을 낳았고, 그 아들은 불명예스럽게 죽었으며, 레이크 박사에게 입양돼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 딸 루시는 최근에야 자신의 출생 비화를 알게 되었다. 프리스트 판사와 몇몇 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근엄한 페어필드 장군은 루시가 자신의 손녀임을 부인해왔다. 병든 창녀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동료 창녀들은 전날 밤 프리스트 판사를 찾아와 장례식 추도사를 부탁했다. 재선을 노리는 프리스트 판사는 이 부탁을 들어주는 순간 자신이 낙선될 것임을 알고 있다. 이미 그는 술꾼으로 알려져 있고 영향력이 막강한 부인회가 창녀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려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대답을 미룬다. 창녀들의 영구 마차는 서서히 마을 중심부로 다가온다. 길 가에 서 있던 프리스트 판사는 말없이 장례 마차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부인들은 질겁하지만 몸집 큰 한 부인도 무리에서 빠져나와 판사 뒤를 따라 조용히 걷는다. 늙은 의사와 목수도, 식료품점 주인도, 이름 없는 노인들 몇몇도 그들 뒤를 따라 묵묵히 걷는다. 선거를 치르느라 떠들썩하던 마을 회관 앞에 마차가 이르자 모두 침묵에 빠진다. 그를 지켜보던 죽은 창녀의 딸 루시는 마차에 올라타 창녀들 옆에 앉고, 그녀를 사랑하는 방탕하지만 순정적인 청년 애쉬비도 그 뒤를 따른다. 우드포드 노인은 집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무언가 결심한 듯 집으로 들어간다. 고요한 장례 행렬은 그렇게 교회 앞에 도착한다. 이 영화를 본다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발자국 소리와 장례 행렬의 느린 움직임 외에는 대사도 배경음악도 없이 7분 가까이 지속되는 이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흔든다. 이 장면 앞에서 나는 넋을 잃고 눈앞이 흐려져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에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하지만 결국 자문해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이 장면을 그토록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장례식 행렬 2. 우선 이 장면에서 장례행렬에 가담하는 인물들의 결단 자체가 주는 감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을 윤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 도덕이 아니라 윤리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선 얼마간의 우회가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 도덕은 공동선의 규범과 실천의 영역을 지칭하는 단어로 한정해 사용한다. 도덕은 주체의 외부에서 주체 쪽으로 요구되는 준칙이다. 반면 윤리는 공동선이라는 공리적 판단이나 효용성과는 무관하게 주체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자기 명령을 지칭한다. 존 포드가 그 장르의 대부처럼 여겨지는 서부극은 가장 도덕적인 장르로 간주되어 왔다. 공동체의 악과 그에 맞선 도덕적 영웅인 서부사나이의 대결 이야기.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에는 도덕적 대립 구도가 없다. 이 공동체에서 제거되어야 할 악은 특정한 실체로 등장하지 않으며, 한 에피소드의 소재인 인종주의 외에는 특정한 악덕도 지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도덕관념을 명확히 갖고 있는 주체는 부인회이며, 그들은 술과 창녀촌을 공동악이라고 생각한다. 프리스트 판사는 기묘한 존재다. 그는 판사이고 정치인이며, 전통을 중시하는 남군의 장교 출신으로 군인의 정체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판사, 정치인, 군인은 제도가 세속적 도덕의 실행을 위탁한 직업들이다. 우리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을 상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의 이름(Priest)이 뜻하는 성직자다. 물론 그는 교회에 복무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성직자가 아니며 성직자 같은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준 즉 종교적 수준의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이 그를 다른 의미의 성직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창녀들이, 어떤 목사도 자기 앞길을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게 뻔해, ‘친절한’ 프리스트를 찾아와 장례식 추도사를 요청했을 때, 판사, 정치인, 군인으로서의 프리스트는 이 난제에 답할 수 없다. 그의 난제가 걸려 있는 영역은 공동선의 도덕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했던 창녀는 이미 죽었고, 다른 창녀들은 조만간 추방될 것이며 프리스트는 부인회의 창녀 추방에 반대한 적이 없다. 곧 추방될 창녀들이 주재하는 장례 참여 여부라는 극히 사소한 행위는 공동선과 무관할 것이다. 그는 또한 직업적 성직자가 아니므로 교회 제도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교리 해석자가 될 수도 없다. 그러니까 그는 신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 달리 말하면 그의 행위가 신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보증이 그에게는 없다. 그를 성직자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대답 없는 신의 뜻을 어떤 보증도 없이 따른다고 간주될 때이다. 여기서 대답 없는 신의 뜻과 윤리의 자기 명령은 정확히 동격이다. 두 부류의 종교적 인간이 있을 수 있다. A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뜻이 이러하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그러한 뜻을 따른다.’ B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의 뜻을 모른다... 나는 신의 뜻을 따른다.’ 프리스트는 후자에 속한다. 윤리의 자기 명령도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나는 이것을 해야하는 다른 이유를 모른다... 다만 나는 그것을 해야하므로 한다.’ 프리스트의 선택을 윤리적이라고 말하는 건 이런 의미에서다. 행위의 동기를 어디에도 귀속시킬 수 없을 때, B의 경우라면 그 동기를 귀속시켜야 할 신의 뜻이 텅 비어있을 때, 그것은 온전히 자기 명령이 되며 우리는 그 행위를 윤리적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정의를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교통사고의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한 사람에게 어떻게 자신도 크게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는 지금 질문에 정확히 답하고 있는 게 아니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하니까 그랬다’라는 건 대답이 아니다. 자기 명령으로서의 윤리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동기, 이유, 원인의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조리 있게 대답하는 사람보다 대답을 찾지 못해 난처해 하는 사람이 더 윤리적이라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윤리의 중핵이 온전히 자기 명령에 있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고전적 서부극이 도덕적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서사의 차원이고, 서부사나이는 오히려 윤리적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의 준칙은 ‘남자는 할 일을 한다’는 것이고 일이 끝나면 말없이 뒤돌아서 떠나기 때문이다. 그의 과묵함은 단순한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그의 결단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는 윤리적 차원에 있음을 방증하는 표지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는 이 단순하고 흔해빠진 표현이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법이다. “정언명법은 더 이상의 어떤 목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필연적인 것으로서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다.”(「실천이성비판」) 가언명법은 반대로 “다른 어떤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칸트는 윤리의 자기명령이라는 차원을 가혹할 만큼 엄격하게 정식화한다. 윤리(도덕적 가치)는 정언명법에 따라 “오직 의무로부터” 행위할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직’은 공리적 판단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정념을, 심지어 우리가 보통 선하다고 간주하는 감정인 연민과 동정심마저 배제한다. 만일 아이를 구한 의로운 사람이 ‘남을 돕는 것은 기쁜 일이므로’, 혹은 ‘아이가 불쌍해서’라고 대답한다 해도 칸트는 그 행위에 ‘도덕적 가치’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에게 윤리는 ‘순수 형식’이다. 칸트의 정언명법으로서의 윤리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론 많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정언명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실은 사회적 규범이 내면화된 초자아가 아닌가(프로이트). 순수 형식이 어떻게 행위를 촉발하는 동기라는 질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욕망 혹은 충동의 문제가 아닌가(라캉). 칸트의 의무는 결국 선험적으로 식별될 수 있는 악을 전제한 뒤 그것의 반대편에 자리잡은 자명한 규범들의 체계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바디우).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는 치열한 사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사유가 진리의 윤리학으로 귀결되지 않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진리(혹은 실재, 사건)에의 충실성이 윤리라면, 윤리라는 영역이 따로 설정될 필요가 있을까. 달리 말해, 진리가 총체적이거나 규범적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사건적(혹은 위반적)이며 열린 지평으로 개시되는 것이라면 윤리의 내용은 이미 진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정신분석학자들의 논변 혹은 진리의 윤리학이 흔히 인용하는, 자기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의 사례에서처럼 상징계의 의미가 완전히 소진되고 실재와의 대면이라는 무시무시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윤리가 드러난다면, 일상적 영위에서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상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런 반문은 이론적인 수준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에서 프리스트의 행위를 진리-사건-실재의 영역에 위치 짓지 않고도 윤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방금 구운 빵을 대접하는 빵집 주인의 행위는 진리나 미의 추구와 무관한 지극히 단순한 선의에서 비롯된 윤리적 행위가 아닌가. 혹은 TV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곧 요양원으로 보내져야 하는 치매 노인을 콜라텍으로 데리고 가서 마지막 춤을 추게 도와주는 창만의 행위를 윤리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우리를 종종 감동케 하는 건 그 순간의 충만함 외에는 어떤 효용도 어떤 깊이도 없는, 카버 소설의 제목대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런 단순한 선의의 행위가 아닌가. 우리는 프리스트와 빵집 주인과 창만에게 행위의 동기를 듣지 못했고, 그들의 행위를 자기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물론 말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정념적 동기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일 것이다. 그 행위가 그것을 목격하는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도 일정한 기쁨과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을 그 텍스트들은 감추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칸트의 정언명법에 동의한다 해도, 일체의 정념 배제라는 차원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어려우며, 윤리와 정념의 관계가 매우 엄격한 사유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의제임을 뜻한다.(이것은 라캉의 욕망이론으로 칸트의 윤리를 재해석하려는 「실재의 윤리」(알렌카 주판치치)의 중심 의제이기도 하다.) 사소한 선의의 행위를 윤리와 연관 짓는 것은 사실상 엄격한 사유로부터 퇴각하는 것이다. 윤리에서 선의의 정념을 배제하지 않으며 진리-사건-질재의 영역까지 밀고 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이 지향한다고 가정되는 진, 선, 미의 영역을 어느 정도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선을 ‘(진리의) 깊이도 (공동선의) 효용도 없는 자기충족인 선의’라는 선험적인 명제로 받아들여 이것을 윤리의 내용 가운데 하나로 삼는 절충적인 사고이다. 이것은 사실상 진리의 윤리학과 (공동선이 아닌) 선의 윤리학을 동시에 긍정하는 엄격하지 않은 지적 태도다. 그것이 자기명령인 한 주체의 수만큼 많은 윤리학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며, 윤리가 일반 명제의 주어가 아니라 개별 진술의 술어 자리에 놓여야 함을 뜻한다. 사소한 선의의 행위를 윤리적이라고 말하기 위해, 이런 퇴각과 절충이 불가피해졌다. 절충주의를 돌파할 수 있는 또 다른 사유의 길을 탐색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과 내 능력 밖에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혹시 사소한 선의에 대한 이런 열중이 일종의 도피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진리의 개시, 해방의 정치에 대한 체념과 반지성적 염세주의가 ‘투쟁의 형식’으로서의 윤리가 아니라 사소한 선의에 몰두하게 만든 건 아닐까. 혹시 절충이라고 말하면서 내심으로는 진리의 윤리학을 사실상 포기하고 이젠 사소한 선의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의 서부사나이는 더 이상 ‘남자는 할 일을 한다’가 아니라 이제 ‘남자는 (사소한 선의의 행위 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컨대, 21세기의 관객인 내가 프리스트의 선택에 감동받는 건 이런 도피의 차원과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질문을 짊어지고 있을 뿐 그것에 정확히 답할 수 없다. 다만 이 질문이 존 포드 서부극의 근본적 질문 가운데 하나라는 점만 상기하고 싶다. 단지 ‘서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만 빼면 여타 서부극과 무관해 보이는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존 포드의 서부극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 질문 때문이다. 그 질문을 말하기 위해 하나의 도식을 제시하고 싶다. 3. 고전적 서부극에서 남자는 할 일을 한다. 그 일은 공동악을 제거하는 것 즉 공동선으로서의 도덕적 행위이다. 도덕적으로 자명한 일을 서부 사나이는 윤리적으로 행한다. 하지만 여기서 도덕과 윤리의 일치는 사후적인 것일 뿐 선험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전적으로 임의적이고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김훈이 서술하는 이순신의 태도도 이것이다. 이순신을 움직이는 건 왕에 대한 충심도 애국심도 아니다. 다만 그가 ‘해야할 일’이 충과 애국에 결과적으로 부합했을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적의 적’이라는 이미 주어진 자리였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바랐다.” 도덕과 윤리의 동반은 임의적이고 불안정하다. 존 포드의 서부극은 그 임의성과 불안정성을 노출한다. 포드 서부극에서도 남자는 할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은 ‘우연히’ 공동선이다. < 역마차 >의 링고 키드는 죽은 형제의 복수를 위해 플러머 형제를 처단한다. 그런데 마침 그들은 공동체의 악이었다. < 수색자 >의 이산 에드워즈는 형의 가족의 복수와 납치된 조카 데비의 구출을 위해 코만치 일당을 추격한다. 그런데 마침 코만치 일당은 공동체의 위협이었다. 링고와 이산은 공동체에 근본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다. 링고는 탈옥수이자 범법자로서 결국 공동체를 떠나며, 이산은 자신의 복수 시도가 공동체에 더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을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한다. < 황야의 결투 >에서 와이어트 업은 자신의 소 떼가 도둑맞지 않았다면 툼스톤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드 서부극에서 도덕과 윤리는 위태롭게 연대하거나 간혹 대립한다. 어느 경우에도 공동선의 도덕은 자명한 것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영웅의 사적 복수와 공동선의 사후적 일치의 서사 조작술은 오늘의 대중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동선을 사적 복수라는 정념으로 보충하는 데 그친다. 공동선의 도덕은 질문되지 않은 채 다만 사적 복수라는 공동선 외부의 동기로부터 정념의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이다. < 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콜세지, 1976)는 이 임의적 일치의 가장 냉소적 패러디 가운데 하나이며, 미국 TV드라마 < 덱스터 >는 가장 영리한 패러디 가운데 하나이다. <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2007)는 임의적 일치 여부를 놓고 벌이는 교활한 게임이다. 하지만 많은 대중영화의 영웅서사에서 그 일치의 임의성은 감춰진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의 공동체에는 공동악이 등장하지 않으며 복수 서사도 작동하지 않는다. 남군 문화와 북군 문화, 백인과 흑인, 부인과 창녀의 차이가 갖가지 갈등을 빚어내지만, 공동체 전체의 생존이 걸려있던 다른 서부극에 비하면 이런 갈등들은 사소한 것이다. 이 사소한 갈등들을 정돈할 수 있는 공동선의 도덕적 규범은 불투명하다. 창녀들의 장례식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갈등들 중에서도 가장 사소한 것이다(예컨대 창녀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창녀 추방 여부보다 훨씬 사소하다). 가장 사소한 의제에 프리스트 판사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 전부가 걸려 있다. 포드는 여기서 도덕과 윤리의 불안정한 관계로부터 오직 윤리만이 문제 되는 상황으로 이행한다. 존 포드의 서부극은 도덕의 서부극이 아니라 윤리의 서부극이다. < 역마차 >의 주정뱅이 의사 닥 분은 “내가 누구라고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겠어”라고 중얼거리는데, 포드의 영웅들은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듯,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는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서부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서부’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불안정한 동반에서 오직 윤리만이 문제되는 상황으로의 이행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포드 서부극의 윤리의식이 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리스트 판사는 공동선으로 보충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는 윤리의 실행자라는 점에서 포스트 서부사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리스트가 사는 세상은 이런 것이다. 적이 사라지거나 비가시화하면 적의 적이라는 나의 자리도 확정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나쁘지만 희생양(강간범의 누명을 쓴 흑인 소년)을 가상의 적으로 삼아 분노를 해소하려는 것은 집단적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일상의 진부함과 그 진부함을 버텨내는 기교만 남아 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지 않으면 심장박동이 회복되지 않으며 적의 적으로 싸웠던 시절의 향수에 젖는 것 외엔 낚시와 춤과 소란, 로맨스의 대리만족에 몰두한다. 이 모든 건 프리스트의 증상이다. 그러다 죽은 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 가장 사소한 요청에 응하기 위해선 목숨을 제외한 자신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 사소한 행위야말로 이 늙은 서부사나이에게 남겨진 마지막 윤리이다. 그의 선택이 감동적이라면 그 감동은 승리의 쾌감이라기보다는 이 사소성에 새겨진 거대한 퇴각의 흔적이 불러일으키는 운명적 비애감에 가깝다. 마지막 장면 4. 상황과 선택이라는 서사적 요소만으로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말하는 것은 충분치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아름다움은 포드의 다른 걸작들이 그러하듯 질서와 소란, 심판과 축제, 이성과 도취, 비극과 유머의 종잡을 수 없는 배열이 빚어내는 천의무봉한 합주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례행렬 장면은 다른 점에서 특별한 것 같다. 프리스트는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그는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였고 권력과 법의 인간이었지만 이제 권력도 법도 없이 그냥 걷는다. 작고 늙은 그가 걷는 형상은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내려다보인다. 카메라는 접사도 앙각도 없이 대개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 왜소한 노인의 걸음을 보여준다. 그는 행진 장면의 어느 쇼트에서도 프레임을 물리적으로 장악하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사소한 피사체로 아니 그저 피사체들의 하나로 느리고 조용히 움직인다. 행렬을 따라 걷는다는 이 사소한 동작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프리스트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걷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기에 걷는다. 장례행렬은 마을의 큰 길을 따라 창녀촌이라는 가장 비천한 곳에서 출발해 마을 사람들의 생활공간 그리고 정치와 사교의 공간인 마을 회관을 거쳐 교회라는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세속적 삶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 운동이다. 존 포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말이 달리는 모습과 커플이 왈츠를 추는 모습”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찍은 사람이다. 그가 말하진 않았지만 포드가 좋아한 또 다른 모습은 행진이다. 한 감독의 영화에서 그처럼 많은 행진 장면이 등장하는 다른 사례를 기억해내기 힘들다. 행진이 일상인 전쟁영화나 유사 전쟁영화들을 제외해도 포드 영화에서 행진은 때로 승리의 자축연으로(< 저지 프리스트 >), 때로 죽음 같은 공포의 형상으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 때로 그 자체가 거대한 축제로(< 조용한 사나이 >), 때로는 삶 자체의 율동으로(< 도노반의 산호초 >) 빈번하게 등장한다. 행진이 시작되면 마치 행진 스스로 저 자신의 생동에 도취되어 서사를 잊어버린 듯 하염없이 지속된다. 존 포드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도 이런 순간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 태양은 밝게 빛난다 >의 행진과 같지 않다. 이 행진은 창녀촌에서 교회로의 이동이라고 해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혹은 세속에서 숭고로, 혹은 죄에서 대속으로의 은유적 이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차이를 행진의 느리지만 강력한 운동성으로 일거에 무화시키는 움직임이다. 오직 하나의 운동이 존재한다. 이 운동이 시작되면 어떤 다른 방향의 움직임도 상상될 수 없다. 장례 행렬이 출발하고 프리스트가 그 뒤를 따라 걷는 순간 누구도 이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릴 수 있다. 조용하고 느린 걸음에 한 노인의 생애 전체 어쩌면 그보다 더 거대한 것이 걸려있어 어떤 힘이 그를 멈춰 세우려는 순간, 그가 폭파되든 세상이 폭파되든 둘 중 하나다. 그 운동의 힘이 서사 안에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라고 이제 물을 수 없다. 이 기적 같은 운동은 더 이상 서사적 탐문의 대상이 아니며, 오직 그것에의 감화를 요청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행진에 이어진 장례와 선거가 이 영화의 결말이다. 행진 장면의 기적과도 같은 힘을 생각하면 결말은 오히려 느슨한 후일담처럼 느껴진다. 프리스트가 마지막으로 투표하고 단 한 표 차이로 승리한다는 만화 같은 설정은 차라리 유머에 가깝다. 잊혀지지 않는 건 마지막 쇼트다.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무리들이 집 앞을 지나갈 때 프리스트는 물끄러미 지켜보다 돌아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은 어둠에 잠겨들고 문이 닫힌다. 사건 전개와는 무관하게 장례 행진의 운동은 바로 이 쇼트로 맺어진다.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며, 그는 이제 어둠 속에 머물 것이다. 세속적 승리와 은유적 죽음 사이. 무슨 차이가 있으랴. 대체될 수 있는 사건과 결말은 관심을 둘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좀 전에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영화적 순간을 이미 경험해버렸다.(계속)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1월 13일,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는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을 발표했다. 한독협은 “독립영화에게 기회를! 시장에는 공존을! 모두에게 영화를!”을 기치로 삼아, ‘지속 가능한 독립영화 기반 구축, 영화 시장 경제 민주화, 지역 영화 진흥 및 영화 문화 복지 기반 구축, 독립영화인 사회보장 확대, 표현의 자유 확대’ 등을 5대 핵심과제로 내걸고, 독립영화 법제, 영화진흥정책 집행, 독립영화인 사회보장, 창작, 투자, 상영, 배급/유통, 방송, 관객 개발, 해외, 교육, 연구, 아카이브 지원 등 13개 분야에 걸쳐 53개 정책을 상세히 제시했다. 이 정책안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구축과 “경제 민주화”라는 경제 공약 용어가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뜨거운 화두임이 우선 눈에 띈다. 2007년 11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하고 뒤이어 여러 극장에서 독립영화를 걸면서, “개봉”은 더 이상 충무로 영화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으며, 방송?통신이 융합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도 활발해졌다. 전통적 의미의 영화 시장 뿐 아니라, 여러 장에서 독립영화 제작·배급 기회도 늘어난 것이다. 허나 독립영화가 적극적으로 진출하게 된 시점에, 시장은 거대 사업자가 유통 시장을 지배하는 형태로 재편되었다. “수직 계열화” 등 불공정 경쟁이 관행화된 시장에서, 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기반 또는 기초체력”으로 일컬어지는 독립영화와 이를 생산하는 독립영화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문제의식이 “경제 민주화”라는 고언을 독립영화 진흥 정책에도 등장시켰다. 한독협 정책안은, 기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사업에서 흔히 목도되는 백화점식 분산지원 정책을 지양하며, 이번 정부만이 아니라 십 년을 내다보며 독립영화인이 주체가 되어 제작-유통-상영 등 전면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장기 전략을 세우고 ‘독립영화-영화산업-영진위’를 아우르는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또, 기존 시장 구조에 기댄 독립영화 제작·배급 구조의 확대 말고도 여전히 시장 영역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댄 문화공동체 설립과 운영 지원으로 영화 문화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광역시를 제외한 기초자치단체 60%에 여전히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없어 균등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박탈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 등을 과제로 제시한다. 예술인복지법 입안 등이 현실화되고 있으나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어서 여전히 사회 안전망 밖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의 독립영화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과, 현정부 아래 5년을 보내며 여러 번 침해된 독립영화 표현의 자유 확대도, 지면상 길게 쓸 순 없지만(이미 쓴 적도 있다), 주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11월 29일부터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향후 5년, 독립영화 정책을 점검하다”라는 이름으로 이 정책안을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세미나도 열렸다. 그동안 정책 생산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진흥정책에 대한 자문과 그로 말미암은 수혜(물론 때로는 반대와 저항도 수반했으나)에 자족했던 독립영화 진영이, 정책을 먼저 수립하여 공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독립영화 진흥정책’은 특정 후보 캠프를 위한 정책 하청이 아니라 독립영화 생산 주체들 자신이 앞으로의 5년을 바라보며 제언한 정책이므로, 대선이 끝난 지금은 새 정부를 준비하는 정책 입안자와 집행자들이 이를 다시 새기고 실천하도록 추동할 적기일 터다. 글을 맺으며, 지지 후보가 낙선했다 하여 헛헛해 하고 있는 많은 벗들에게 이즈음 읽은 책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인간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는 기초 위에서 정치의 현실을 다루어야 하고,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을 구현한 이상과 비전의 정치가 균형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중략)정치의 이율배반성은 끝도 없이 많다. 어쩌면 그것은 선하게만 살 수 없는 인간의 운명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중략)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에게 정치를 맡길 수도 없다. 시민을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로 만들거나 철학 세미나를 하듯 정치를 운영할 수도 없다. 정치가 혹은 정치적 실천에 나선 사람들이라면 이런 조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차이와 갈등 속에서도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찾을 수 있고, 허황된 기대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냉소하고 방치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누가 더 진보적이고 누가 더 민중적이고 누가 더 고생했고 누가 더 착하고 누가 더 진정한지에 대한 것으로 시간과 열정을 다 소진하지 않고, 누가 더 정치적으로 권력을 선용할 만큼 담대하고 결국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중략)정치는 (중략) 감당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횔덜린의 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구원은 위험이 있는 곳에 있다.”” -박상훈, 「진보와 정치적 이성」,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2012)중에서
유도 8단이 단단한 체격에 굵고 검은색이 짙은 눈썹, 정감이 넘치는 호남형 마스크의 윤양하 는 멜로물 데뷔로 영화배우를 출발했으나 곧 검객물의 히어로로 탈바꿈했다. 윤양하는 1967년 김수용 감독의 멜로물 < 빙점 (氷點)>에 데뷔했다. 일본 여류작가 三浦綾子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양녀로 입적시킨 소녀를 친딸을 죽인 살인범으로 오해한 양부모가 그녀를 구박해오다 20년이 지난 다음 사실이 밝혀져 양부모가 양녀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이다. 부모 역으로 김진규 , 김지미 양녀 역에 당시의 톱스타 남정임 이 출연했고 윤양하는 남정임의 상대 역이었다. 이 영화는 야녀와 양부모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었음으로 젊은 남배우의 영화 속 배역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윤양하는 퍽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그러나 그 당시 한국영화계 제작 상황이 윤양하 를 멜로물에 머물게 하지 않게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 영화시장은 단연 일본과 홍콩의 검객물이 풍미했다. 일본은 가스 신따로를 내세운 <맹협 시리즈>를 , 홍콩은 왕우를 간판으로 한 <외팔이 시리즈>로 동남아 영화 흥행을 휩쓸었다. 이들 두 사람을 주연으로 한 검객물의 위세가 어떻게나 설쳤는디 마침내 가스 신따로와 왕우 두 검객 스타를 한 영화에 출연시킨 <맹협과 외팔이>란 영화를 만들어 동남아 극장가를 석권했고 한국에도 1969년 상영되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영화제작계도 검객물의 영향과 자극을 받아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검객물 붐이 일었다. 당시는 한국영화 전성기로 일년에 200편 이상의 영화를 쏟아냈다. 그래서 당시의 톱스타 남배우들은 멜로물의 겹치기 출연에도 숨이 벅차 검객물 출연은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체격이 단단하고 검객물 주연 마스크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윤양하 가 검객물의 히어로로 발탁된 것이다. 이런 영화계 사연으로 머리을 올려 상투로 묶고, 턱에 수염을 붙이고, 들짐승 가죽으로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손에 든 한국의 검객 스타 윤양하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 월하의 검 >, < 필살의 검 >, < 내장성 대복수 > 등 20여 편의 검객물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검객물 붐이 쇠퇴하자 윤양하 는 중후한 조연 배우로 토속물과 역사물, 액션물에서 새로운 연기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검객물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했지만 윤양하는 여기에 얽매이지 않고 조연배우로서 다시 신인이 된 자세로 연기에 임했다. 토속물로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물레방아 >, < 씨받이 > 역사물로 < 악인의 계곡 >, < 30인의 여도적 >, < 오사까의 대부 >, < 카페리호 불청객 > 멜로물로 < 속눈썹이 긴 여자 >, < 복부인 >, < 겨울부인 >, < 설마가 사람잡네 >, < 흑녀 > 문예물로 <갈매기떼>, < 아제아제 바로아제 >, 전쟁물로 <안케작전>, < 아벤고 공수군단 >, < 일송정 푸른 솔은 > 등을 들 수 있겠다. 1967년 데뷔 이래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지금도 현역 배우이다. 200여 편의 출연을 통한 연기 흐름을 볼 때 단연 토속물엣 윤양하 의 연기는 빛났다. 특히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의 산 사내 역과 < 씨받이 >에서의 문중 종손 대를 잇게 하려는 시골 양반 배역은 분명 윤양하 연기의 대전환기를 보여 주었으나 이를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작품을 이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윤양하는 본명이 윤병규(尹炳奎)로 1940년 5월 1일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로이 장대한 대장부였고 어머니는 둥근 얼굴에 하얀 피부를 지닌 전형적인 대가집 마님 스타일이었다. 체격은 아버지를 얼굴은 어머니를 이어받은 윤양하는 소년 시절부터 같은 나이의 아이들보다 체격이 크고 힘이 셌다. 동네에선 대장이었다. 윤양하와 악수를 해본 사람은 느꼈겠지만 그의 손은 솥뚜껑처럼 두껍고 단단해 장력이 대단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이 컸다.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은 전북 내륙지역 순창은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집에서 순창읍 버스 정류장을 운영했으니 집안 형편은 여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힘이 세며 특히 장력이 뛰어난 윤양하 는 그 당시 시골에서 가장 인기있는 운동이 씨름을 했다. 중학교 때는 학교 안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씨름꾼이 되었고 순창농고 재학시절에는 군 단위 씨름대회에 출전, 어른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순창에서는 고교시절부터 잘 생긴 씨름 선수로 이름을 떨쳤다. 장래 희망도 대한민국 제일의 장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꿈이 바뀌고 인생행로를 영화배우로 세웠다. 그때 홍성기 감독의 < 춘향전 >에 이도령 역으로 주연했던 고향 선배 신귀식 이 귀향했는데 순창읍이 떠들썩할 정도로 환영을 받았고 읍내는 신귀식을 보려는 사람들로 난리를 피웠다. 이 황홀난 광경을 목격한 윤양하 는 씨름장사보다 더 인기있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고향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 선배 영화배우를 보고 윤양하는 자신도 배우가 되기로 작정했다. 대학은 유도대학(현 용인대학교)으로 진학했다. 당시 유도대학은 서울 소공동에 있었는데 씨름선수였던 그였기에 유도 실력도 일취월장으로 늘었다. 스타에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유도에만 매달려 피나는 연습을 했다. 마침내 윤양하는 국가대표 선수로 뽑혔다. 중량급 선수로서 올림픽 출전 후보 선수로 선발되어 대망의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두었으나 최종 선발에서 재일교포 선수 김의태에게 패배, 아깝게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 순간에 세계 제패의 꿈이 사라지자, 윤양하 는 깊은 허탈감에 빠져 좌절했다. 그러나 좌절의 기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두 번째로 희망했던 배우에의 길을 두드렸다. 실의를 딛고 당시 충무로에 있었던 한국배우 전문학원에 입학했다. 4년제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되기 전에는 국내 유일의 배우 양성기관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학원으로 신성일 , 최지희 , 김창세 등도 이 학원에서 수학했다. 원장은 김인걸 (金仁杰)로 작고했지만 일본대학 연극과 출신이었다. 그 당시 이 학원에는 유현목 , 김수용 , 박상호 같은 당대의 유명감독들이 출강하고 있어서 윤양하는 이들 감독들의 이름을 보고 학원에 들어갔다. 이 배우학원에서 김수용 감독을 만났고, 이 만남이 인연이 되어 김 감독이 연출한 < 빙점 >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예술적인 열정과 사회적인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윤양하 의 행동 반경은 배우라는 단순한 범주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더우기 술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을 천성적으로 즐긴 그는 사람 교제 범위가 다양하고 넓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체육계, 기업, 법조계 등에 친교가 넓다. 그와 술을 한번이라도 마셔본 사람이라면 우선 그의 주량에 놀라고 압도당한다. 맥주, 소주, 양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대량으로 마시면서도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하게 이끄나. 어쩔 땐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만큼 친화력이 화려하다. 윤양하 는 1986년부터 88년까지 3년간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때 그는 16개 영화사에게만 영화 제작권을 독점케 하는 영화법을 개정해서 제작자유화로 이끄는 영화운동을 온 몸으로 펼쳤다. 1986년 영화법 개정의 숨은 일꾼은 영화배우협회 회장 윤양하였다. 그는 두더쥐작전으로 영화법 개정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신문광고를 전격적으로 게재했다. 이 광고문이 영화법 개정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지금도 윤양하는 영화인협회 총회에서 논리적인 어법과 달변으로 영화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서 많은 영화인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의 열정과 야망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이어진다. 그는 1996년 고향인 전북 순창.임실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 첫 출마였다. 7명의 후보 중에서 2등했다. 그러나 한 명만 뽑는 선거에서 2등도 패배자였다. 차점으로 낙선했다. 지금은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 체육계 활동에 열성을 쏟고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유도협회 수석 부회장으로 있다. 유도 8단으로 1월 25일 유도인의 날 기념식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유도협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명사회자로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고향인 순창에 청소년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전주대 교수로 있는 이장호 감독과 손을 잡고 수련원 부지에 영화촬영 세트장 건립을 추진중에 있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이장호이고 부회장은 윤양하 다. 가족으로는 이화여대 체육과 출신의 부인 서성미와 두 아들이 있다. 장남 윤세웅 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영화배우가 되어서 이혁수 감독의 < 클릭 >과 김영한 감독의 < 천사의 시 > 두 편에 출연했다. 차남 윤태웅은 동원증권 아이스하키 팀의 주전 선수이고 국가대표이기도 하다. 김화(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본 명 : 윤병규 출 생 : 1940. 5. 1 전북 순창 학 력 : 용인대 유도학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데 뷔 : 1968년 김수용 감독 < 빙 점 > 주요 경력 : 한국영화배우협회 23,24대 회장 역임/ 현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 바르셀로나, 아틀란타 올림픽 한국유도대표팀 단장/ 현 대한유도회 수석 부회장 수상경력 : 전남일보(1972) 신인상 / 호남일보(1973)남우조연상 등 다수 주요작품 : < 빙점 >, <시발점>, < 필살의 검 >, < 임진란과 계월향 >,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등 23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