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난파선
- 감독
- 김세미, 이정준
- 제작년도
- 2017
■ 2000년대 극장애니메이션의 국내 관객동원 상황 지난 2010년 5월 14일 필자가 쓴 「애니칼럼:2000년대 후반 한국애니메이션의 변화」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2000년대 이후 국산 극장애니메이션의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외국의 애니메이션은 2008년 『 쿵푸 팬더 』가 그 이전까지의 애니메이션 관객동원 기록을 갱신하는 등, 국내의 극장 관객들에게 일정 정도 이상의 선호도를 이미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애니메이션도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이후 『 벼랑 위의 포뇨 』(약 153만명), 최신작 『 마루 밑 아리에티 』(약 107만명)까지, 스튜디오 지부리의 작품들은 충분히 이름값을 했다. 반면 한국애니메이션은 관객동원수 운운 이전에, 개봉관 자체가 갈수록 줄어들어 단관개봉이거나 애니메이션 전용상영관 등 대중적이지 않은 스크린 위주로 상영되는 등의 상황에 관해 위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와중에 2010년도에 개봉된 유일한 한국산 극장애니메이션이 바로 『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다. 2010년 8월 19일 개봉된 이 작품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현재(2010년 12월 말) 시점에서 2010년도 극장 개봉된 유일한 국산 장편애니메이션이다. 10월까지 약 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는, 올해 개봉된 애니메이션 중에서 크게 나쁘지는 않은 성적이지만 그렇다고 매우 만족스러운 정도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 명탐정 코난:천공의 난파선 』(62만명)이나 『 극장판 도라에몽:진구의 인어대해전 』(26만명)에는 못 미쳤으나, 『 원피스 극장판 10기─스트롱 월드 』(14만명), 『 케로로 더 무비 5:기적의 사차원섬 』(11만명)과는 비등한 기록을 남겼다. 2009년 개봉작인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 』(14만명)과도 비슷하고, 『 나루토 질풍전 극장판─불의 의지를 잇는 자 』(약 3만명)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성적이다. 또한 아동작품이 아닌 일본애니메이션은 관객 10만명 동원도 어렵다는 것을 감안할 때, 『 마법천자문 』의 12만명 관객동원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닌 것이다. (2010년 『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 2만4천명, 『 동쪽의 에덴 』 1만2천명, 『 스카이 크롤러 』 1천8백명, 2009년 『 에반게리온:파 』 6만5천명, 『 스트레인저─무황인담 』 1천2백명, 다만 2009년 개봉작 『 썸머 워즈 』만이 아동 대상이 아닌 일본애니메이션으로서 13만명이라는 관객동원수를 기록.) ■『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에서 보인 희망 이와 같이, 공표된 데이터를 보면 상황이 명확해진다. 학습만화로 인기가 높은 『마법천자문』 시리즈를 원작으로, 아동 대상으로 재미있게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인 『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가 1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리고 이는 국내에서 장기간 케이블TV 등을 통해 수많은 아동들에게 애니메이션으로써 ‘현재 시점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명탐정 코난』이나 『도라에몽』 시리즈에는 아직 못 미칠지언정, 이미 어느 정도는 유행이 지나간 『원피스』나 『케로로』, 『짱구는 못말려』와 비슷한 수치에 올라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려 1200만부나 팔렸다는 『마법천자문』 원작만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서도 극장에서는 결국 12만명의 동원에 그쳤다는 점은 만화책과 극장애니메이션이 아무래도 다른 시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과거에 필자도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글에서 여러 번 지적했던 바이지만) 아무런 실적도 없이 무작정 제작되었던 오리지널 극장판이나, 원작이 존재하긴 하나 제작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등의 이유로 원작의 힘이 거의 사라진 이후에 개봉되는 작품이란 것이 얼마나 근거없는 희망에만 기대어 제작되었는지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마법천자문』 시리즈도 TV판 방영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인지도가 좀 더 높아지거나 혹은 극장판이 2편, 3편 계속 연이어 제작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성적이 더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1970~80년대 이후 한국 극장애니메이션에서 절멸한, ‘극장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란 점에서도 그 부분에 특히 더 관심이 간다. (지난 2010년 8월 13일자 영상물등급위원회 웹진 「달리보니」의 『마법천자문』 윤영기 감독 인터뷰에 ‘인기 여하에 따라’ 시리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다.) 『마법천자문』의 TV시리즈는 내년을 목표로 3D용으로 제작되고 있다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번 『 마법천자문─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 』의 2D화면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듯 하니 앞으로도 2D버전의 『마법천자문』 애니메이션이 또 만들어졌으면 한다. 첫 번째 작품으로 스토리를 비롯하여 세세한 부분에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애니메이션을 계속 제작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울 테니, 그런 의미에서도 『마법천자문』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고 싶다.
여름이 늘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사이에 쏙쏙 박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들의 전쟁이 또 시작되고 있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3D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전면전은 비켜가면서 매달 한두 편씩 극장에 투하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선제공격을 감행한 드림웍스의 < 드래곤 길들이기 >에 이어 7월 1일 < 슈렉 포에버 >이 개봉했고, 7월 22일과 29일엔 차례로 팬층이 두터운 두 편의 일본 애니가 아이들을 노린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새 극장판 < 명탐정 코난 : 천공의 난파선 >과 < 도라에몽 : 진구의 인어 대해전 >이다. 정식 개봉작은 아니지만, 7월 15일부터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건담 특별전’이 열린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극장판의 걸작들을 8편 만날 수 있다니 ‘오덕’은 아니지만 흥미로워 보인다. 8월엔 픽사의 전설을 이어갈 < 토이 스토리 3 >, 린타로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 요나요나 펭귄 >이, 9월까지 가면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를 만들었던 블루 스카이의 < 슈퍼배드 >가 있다. 그 와중에 일본 현지에선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가 7월 17일 개봉한다.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거의 여름을 찜쪄 먹을 기세. 그런데 가만히 이 리스트를 쳐다보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감독들의 크레딧 때문이다. 개봉했거나 대기중인 애니메이션들 속에서 세월과 성장, 변화가 보인다. 먼저 < 드래곤 길들이기 >의 경우 8년 전 <릴로 앤 스티치>라는 걸작을 만들었던 크리스 샌더스와 딘 데블로이스가 연출을 맡고 있다. 드림웍스는 디즈니 출신의 이 두 감독을 데려와서 그동안 말발로 시건방을 떨던 기조를 버리고, 서사와 3D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활력은 있으나 품위는 없었던 유머를 개조했다고 할까. 구관이 명관. 오랫동안 숙련돼온 장인들의 기술과 경험이 발휘된 측면이 있다. 70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신기한 린타로 또한 노장 투혼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선 세대교체와 색다른 변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 슈렉 포에버 >의 경우 < 듀스 비갈로 > < 스카이 하이 > 등 실사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던 마이클 미첼이 감독을 맡고 있다. 하기야 < 인크레더블 > < 라따뚜이 >의 감독인 픽사의 브래드 버드가 실사영화 < 미션 임파서블 4 >의 연출을 맡는다니 그 반대도 가능할 일. 코미디에 강한 실사 감독의 기용은 정체된 시리즈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효과가 있었는지, <슈렉 포에버>는 제 무덤을 파던 < 슈렉 3 >때보다 나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2편 이후 11년만에 개봉하는 < 토이 스토리 3 >에선 픽사의 세대교체가 눈에 띈다. 연출을 맡은 리 언크리치는 < 토이 스토리 2 >와 < 몬스터 주식회사 > < 니모를 찾아서 >의 공동 감독 출신. 재탕, 삼탕이라는 비난이 있긴 해도 <토이 스토리 3>는 픽사의 간판 브랜드인데, 여기에 꾸준히 양성해온 내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꽤 부럽다. 픽사 내부에서 훈련과 경험을 축적, 계승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 아이스 에이지 > 시리즈로 픽사, 드림웍스와 함께 할리우드 애니의 ‘빅 3’를 구성해온 블루 스카이의 신작 < 슈퍼배드 >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감독을 영입,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려 애쓰는 중이다. 90년대 초부터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세대교체를 고민해온 스튜디오 지브리는 최신작 <더부살이 아리에티>의 연출을 36살의 젊은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에게 맡겨 화제가 됐었다. 96년에 지브리에 입사, 애니메이터로서는 < 모노노케 히메 >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했던 요네바야시는 지브리의 거대 재앙이었던 <게드 전기>의 미야자키 고로(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에 비하면 훨씬 기대 받고 있다. 미야자키가 좋아했던 영국의 아동문학 <마루 밑의 소인들>이 원작이고, 지브리 특유의 캐릭터 디자인이 여전한 까닭에 얼마나 신선할 지는 미지수지만, 지브리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의 하나로 보이긴 한다. 세대교체와 노장투혼은 월드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특히나 가장 크리에이티브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꼭 필요하다. 전통을 이어가는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의 거대 경연장에서, 우리는 너무 단발성 기술력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나 일본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배울 건 있다. 눈에 불을 켜고 3D만 쫓아다니지 말고, 정신과 경험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문화를 육성하는데 돈 좀 쓰면 안 될까.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고교시절 배구선수였었다는 그는 운동은 한낮 여기에 불과했을 뿐, 당시 그가 내심 희구했었던 것은 아마도 연극 연출가나 영화감독도 아닌 연극 배우나 영화 배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한때 충무로 일원에서 몇몇 영화감독들이나 스탭들을 지목해 운운할 때 '응! 아무개 그 사람 본래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어.' 라고 심심찮게 객담의 화두에 올려 이러쿵저러쿵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당시 고영남 감독이 아닌 진석모(고영남 감독의 본명) 고교졸업생은 뜻한 바 있어 고향 충청북도 충주군 수안보에서 무성영화 변사의 구성진 나레이션처럼 서울행 완행열차를 타고 부푼 마음으로 상경했던 것이었다. 당시 신상옥 , 유현목 , 김기영 등으로 이어지는 기라성 같은 대 선배 감독 군, 다음세대들이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각기 전문학과를 수학했던 것처럼 고영남 감독 역시 상기 학교 연극 영화과에 등록했단다. 그는 이 학교에서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전환기를 마련해준 연극계의 원로 이광래 교수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필자도 종종 뵌 적이 있는 그분을 바싹 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졌음에도 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연한 학자였음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풍부한 젊음의 감성과 번뜩이는 예지로 이광래 교수로부터 희곡론, 연출론 등을 깨우친 고영남 감독은 당시 요즈음 대학로와 같은 연극의 메카 명동에 입성하게 되고, 그곳에서 선배들의 후원으로 입단하기 어려웠던 권위 있는 연극단체 '신협'에 비교적 쉽게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가 연극에 깊이 천착하기도 전에 예기치 않은 또 다른 전기가 찾아온다 어느 날 명동과 인접했었던 영화의 메카, 충무로에서 제작부로 일하던 선배가 불쑥 찾아와 다음작품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던 그에게 함께 영화작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종용해 온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기꺼이 응했다. 그때 제작되고 있던 영화는 외국의 저명한 소설을 번안한 멜로드라마 ' 육체의 길 ' 이었다. 당시 충무로에서 흥행감독으로 명성을 떨치던, 조긍하 감독의 야심적이었는데 장안은 물론 전국의 최루파 관객을 울음바다로 몰아 넣었던 이 작품의 라스트 시퀀스 촬영분은 눈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이었던 명우, 김승호 가 방황과 질곡의 세월을 보내고 걸인이 되어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장면, 그런데 촬영팀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함박눈은 끝내 내려주지 않았다. 촬영팀은 하는 수없이 눈을 만들어 뿌리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전 스탭들이 모두 동원돼 이 작업에 동참했다. 일정한 포지션이 없었던 고영남 도 친구와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고 어두워지자, 스탭들은 모두 식당과 술집으로 흩어졌고, 고영남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외모와는 달리 충청도 시골출신답게 성실한 모습으로 홀로 작업하고 있던 그의 모습은 곧 조긍하감독의 눈에 띄게 되고, 즉시 즉시 연출부로 발탁되는 행운을 잡는다. 그렇게 제작 완료된 ' 육체의 길 '은 대히트를 하게 되고, 비록 연출부 신출내기로 입문했지만 고영남 의 어깨는 으쓱해졌다. 그 후 그는 권영순 감독에게서 이광수 선생의 '흙'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의 '표류도' 등 문예작품의 조감독으로 수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당시, 편집작업을 돕고 있던 김기덕 감독을 만나게 되고, 그의 데뷔작 ' 오인의 해병 ' 출세작 ' 맨발의 청춘 '등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며, 감독수업의 야심을 쌓아 간다. 그 즈음 영화계 배급구조와 흥행판권은 각 지방 업자에 의해 장악되었고 영화제작은 이들의 제작자본에 의존해 제작되던 시기였다. 이 무렵, 고영남 감독은 현 서울극장 대표이며 전국 극장연합회 회장인 곽정환 씨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당시 ' 주유천하 '라는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곽사장은 현재의 위치와 성공을 예고라도 하듯 놀라운 추진력으로 충무로를 종횡무진했다. 고영남 감독은 곧 그의 눈에 뜨였고, 곽사장은 그에게 파격적인 너무나도 파격적인 임무를 맡긴다. 그에게 대뜸 영화 ' 잃어버린 태양 '을 연출 의뢰한 것이다. 고영남 감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온 정열을 쏟아 자신의 데뷔작을 연출했다. ' 잃어버린 태양 '은 결국 크게 히트했고, 이에 고무된 곽사장과 고영남 감독은 즉시 요즈음 조폭 영화처럼 유행했던 액션 멜로 ' 명동 44번지 '를 제작 연출했고 이 영화는 그해 흥행 1위를 쉽게 탈환해버린다. 이를 계기로 곽사장과 고영남감독은 당시 한국일보 현상공모 장편소설 당선작 ' 잃은 자와 찾은자 ' 강제구 소령의 전기영화 ' 소령, 강제구 ' 등 잇달아 히트작을 양산해낸다. 이때부터 충무로에서 그의 인기와 주가는 초고속 수직 상승했고 이러한 돌발현상은 그에게 미래의 부푼 희망과 감당할 수 없는 질곡을 예고하고 있었다. 충무로 전역 모든 제작자들은 고영남 감독을 연호 했고, 그에게 다투어 메가폰과 거액의 개런티를 맡기었으며, 그는 마치 급류에 휩쓸리듯 겉잡을 수없이 거품인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함몰 되어갔던 것이다. 그가 연출한 108편이라는 엄청난 편수는 대부분 이 시기에 작업한 것이다. 그의 술회에 의하면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작업개념이었다는 것이었다. 영화제작자이기 전에 장사꾼이었던 그들의 무절제한 욕심과 고영남 감독의 자신에 대한 통제능력부재가 그를 그렇게 몰아 세웠던 것이다. 그는 소용돌이에 밀려 지칠 대로 지친 채 1970년대 중반이라는 하구, 어느 둔치에 난파선처럼 표류한다. 그리고 쓰여진 그곳에서 멀리 구비쳐 오는 탁류의 범람을 응시하며 전신을 질타해오는 자괴감에 눈을 지긋이 감는다. 그로부터 2년 동안 고영남 감독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실의와 방황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통음한다. 마치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처럼,,,,,, 그는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긴 오수에 빠져든다. 그때 그의 지친 어깨를 두들기는 손이 있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영혼이었다. 그의 대표작 ' 설국 ' 고영남 감독,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황폐한 그의 가슴에 ''이즈''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그는 짧은 영탄과 함께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고향산야를 돌아보았다. 거기, 멀리 산자락에서 마치 하얀 베일과 같은 소나기가 겹겹이 몰려오고 있었다. 황순원 의 ' 소나기 ' 한국 단편 문학의 백미인 이 작품과 필자와의 만남은 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였다. 고영남 감독과 필자는 나란히 유년의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엔 개울물과 징검다리와 쪽빛하늘, 갈밭, 들판을 나르는 학과 뚝길이 있었고, 멀리서 소나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과 소년이,,,,,, 이 두 작품을 연출한 것을 계기로 고영남 감독은 긴 슬럼프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활기찬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도약한다. 이후 그는 ' 꽃신 ', ' 빙점 ', ' 외인들 ', ' 영원한 관계 ', ' 코리아 커넥션 '등 종전과는 다른 장르를 섭렵한다. 그러나 그에게 나름대로 새로운 의미와 보람을 준 작품은 역시 '소나기'였다. 당시 흥행에선 실패했지만,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출품에 시도되었고, TV에서도 해마다 방영이 되어, 오히려 안방극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도 EBS방영 이후 네티즌 사이에 '소나기를 사랑하는 모임'이 생겨날 정도였다. 또한 한국 문학 해외 소개차원으로 아리랑TV로 해외에 방영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지금 노년의 뜰에 서서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의욕과 향수에 가슴 설레고 있다. 마치 개울가에서 조약돌을 주무르며 소녀를 기다리는 작품 속의 소년처럼,,,,,,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자연 친화적인 영상에 대한 영원한 노스탤지어 일 것이다. 이진모 (시나리오 작가) / 2003년 <프로필> 1935년 2월 22일 충북 수안보 출생 1964년 < 잃어버린 태양 >으로 데뷔 <주요 경력> 1980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1988 영화진흥위원회 자문위원 1993 아트시네마 대표 이사 1995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2001 아시아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작품 연보> 1964 잃어버린 태양 / 명동44번지 1965 마지막 정열 / 이세상 끝까지 1966 잃은자와 찾은자 / 소령 강재구 1967 탈선 / 바람 1968 안개낀 초원 / 빙우 1969 결사대작전 / 태양은 늙지 않는다 1970 위험한 관계 / 훼리호를 타라 1971 탈출 / 서북청년단 1972 꽃신 / 비목 1973 독수리전선 / 공수특공대작전 1974 청춘의 문 / 사랑의 나그네 1975 죽어서 말하는 여인 1977 설국 / 십대의 영광 1978 소나기 1979 수제자 1980 빙점81 1981 외인들 / 여자의 방 1982 광염소나타 1983 위험한 향기 1984 영원한 관계 1985 생머리 19살 1986 내가 마지막 본 흥남 1987 밤이 무너질 때 1988 미리마리 우리 두리 1989 제2의 성 1990 매춘2 1991 코리언 커넥션 1992 나의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들 1993 그림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