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
- 감독
- 정도영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표기훈, 최우태, 권민서
“60년대 이후 한국영화, 하면 ‘충무로’였잖아요. 근데 지금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가 거의 없거든요.”(임필성 감독) “충무로란 단어가 주는 올드함, 다가가고 싶지 않은 비호감의 이름을 껴안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이날치의 국악 공연이 주는 신선함처럼 즐길 수 있는 ‘힙함’을 만들고 싶었죠.”(민규동 감독) ‘THE CMR-디렉터스 위크’. 올해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새롭게 손잡고 출범한 제5회 충무로영화제(12월 1~5일)의 새 이름이다. 왕년의 한국영화 1번지 충무로의 재탄생이란 의미로 영어 첫 글자만 따온 ‘THE CMR’에 국제영화제란 명칭일랑 떼고, ‘감독주간’이란 뜻의 영문부제(Directers Week)를 달았다. 국내 전무후무한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슬로건)다. 중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프로그래머를 자처한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을 2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충무로엔 2007년 고전영화의 ‘발견, 복원, 창조’를 내걸고 나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2016년 새 장르로 갈아입은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출범했지만 모두 4회 만에 수명을 다한 터. 올해 제5회 영화제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앞서 두 영화제를 각각 운영위원장, 예술감독으로서 이끈 김홍준 감독이 개최시기를 두 달여 앞두고 다급히 감독조합 문을 두드리면서다.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감독조합 공동대표인 민 감독은 “온전히 장르를 감독으로 설정하고 이름도 바꾸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했다”면서 1998년부터 개최해온 감독들이 서로 한해 영화들을 돌아보는 시상식 ‘디렉터스 컷 어워즈’가 토대가 됐다고 했다. “오프라인으로 부딪혀야 재밌는 행사여서 올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는 내년으로 넘겼지만, 감독이 중심이 돼서 주차관리, 티켓발급, 테이블세팅, 음식준비, 청소 같은 작은 일까지 직접 호스팅하는 전통이있거든요. 이번(THE CMR)에도 감독들이 전면에 나섰어요. (코로나19로) 좀 세포가 죽어있던, 짓눌렸던 감독님들이 몸 움직이면서 감독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워밍업하고,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죠.” 영화제는 1일부터 닷새간 네이버TV, 네이버 시리즈on, 틱톡(TikTok), 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열린다. 구석구석 창작자들다운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개막작 ‘The CMR’은 중구 15개동을 감독 15인이 각기 세로 화면의 단편에 담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올해의 장편영화 9편, 단편 10편을 각기 선정한 상영 프로그램 ‘쌀롱 드 씨네마’엔 상영 후 각각을 연출한 감독에게 또 다른 감독이 진행을 맡아 질문하는 관객과의 대화(GV) ‘감감묻(감독이 감독에게 묻다)’도 마련했다. ‘충무로 클라쓰’ 섹션에선 이경미 감독 등이 OTT 오리지널 작품 연출에 대해 말하는 ‘극장을 탈출한 감독들’, 연기자로 출발한 감독들의 체험을 나누는 ‘감독이 된 배우들’, 최근 시나리오 작법서를 낸 오기환 감독의 강연 ‘흥행하는 글쓰기’를 진행한다. ‘한숨 토-크’ 섹션에선 윤제균‧이준익 등 올해 신작 개봉을 연기해야 했던 굵직한 감독들의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 개막작으로 신개념 세로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분투기도 들을 수 있다. 나원정: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상했나. 임필성: 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영화제고 감독들이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는 얘기를 주로 하니까,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잖나(웃음). 고민의 핵심은 감독들이 중심이 된 영화제에서 영화 좋아하는 관객들, 영화학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였다. 두 번째는 저희 감독조합 회원이 370명 정돈데 감독들도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서 어떤 걸 궁금해 할까. 마스터클래스(충무로 클라쓰)도 원래 영화감독인데 OTT 화제작을 찍은 이경미 감독을 모셔와서 어떤 일이 있었나 저부터 궁금했다. 마스터클래스는 사전 녹화했는데 촬영하던 강대규 감독도 도중에 진지한 질문을 막 하더라. CG가 많지않은 영화를 주로 찍던 이경미 감독이 한 에피소드에 CG 몇백컷짜리 작품을 찍었잖나. 젤리 괴물의 첫 소스는 뭐였고 창작 과정에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 저부터 궁금했으니까. 또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거나 아예 감독 변신한 배우들이 많아지니까, 왜 오게 됐을까 묻고 싶었다. 한국 감독의 80% 이상이 시나리오를 겸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얘기하면 재밌지 않을까. 상영 프로그램도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대표작, 상업영화 흥행작과 영화제 수상 단편 및 해당 감독의 전작 단편까지 한눈에 정리할 수 있게 마련했다. 색깔은 좀 없을지 몰라도,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영화제에 쫓아가서 볼 수 없었던 감독, 관객들 한번에 보면 소위 얘기하는 충무로 정신, 충무로의 문화와 이어지는 면이 있지 않을까. 내년을 위한 일종의 ‘프리 페스티벌’로 준비했다. 민규동: 게으른 자들을 위한 컴필레이션인 셈이다(웃음). 나원정: 감독조합은 올해 OTT SF 시리즈 ‘SF8’, 여성주의적 영화를 고찰한 ‘벡델데이’ 등 새로운 플랫폼, 인식에 꾸준히 도전해왔는데, 이번 개막작도 세로란 점이 신선하다. 민규동: 영화제도 새로워지고 공간도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새로, 새로’ 하다가 ‘세로로 찍자’고 결정했다(포스터에 적힌 ‘충무로, 새(세)로 보다’에도 ‘새’와 ‘세’를 합한 형태의 글자가 사용됐다). 감독조합 밴드에 공고를 받아서 추첨을 통해 4대 1 경쟁을 뚫고 당선된 15명에게 행정동을 추첨으로 나눠주고 영화 ‘사랑해, 파리’처럼 미션을 주고 찍었다. 제작비 300만원 주고 한 달 동안 알아서 찍으랬다. 세로란 느낌이 특화된 영화도 있고 여전히 가로와 세로가 구분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다들 고민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대화샷을 못 찍고 풀샷의 개념이 달라지니까. 위아래조차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가 익숙한 언어를 뒤집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안 찍어본 감독님이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시작한 작품도 있다. 이옥섭 감독님의 ‘동화동’은 구교환 배우가 나와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신아가 감독님의 ‘신당5동’도 몰입감이 굉장하다. 임필성: 2분이든, 3분이든 짧은 작품이라도 감독한테 좋다고 생각한다. 정규 영화 하겠다고 5년, 10년 기다리면 감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이번 개막작도 일종의 짧은 작품이라도 만들 기회를 주는 일종의 수요 창출이다. 네이버TV는 전체 15편을 각 4분짜리 풀 버전으로 개막일부터 볼 수 있고 틱톡에선 3분짜리 재편집된 버전을 개별 관람할 수 있다. 나원정: GV와 토크 관람은 무료지만 직전에 상영되는 장‧단편 상영작 온라인 관람은 1,000원(장편 기준)가량 결제해야 한다. 상영작을 행사 스케줄에 맞춰 실시간 온라인 상영하는 점도 새롭다. 앞서 국내 비대면 영화제들에선 잘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다. 민규동: 신개념 시도다.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개봉 성공했다고 하지만 직접 GV, 무대인사를 못 했잖나. 또 단편은 1+1로 감독의 전작까지 튼다. 모두 한 시간씩, 원하는 스태프, 배우 다 데려와서 모든 진행은 감독조합 소속 감독이 맡는다. 감독들이 딱 한 주간만이라도 자기 정체성이 존중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각 제작사와 협의해서 성사했다. 나원정: 장편 상영작은 독립영화 ‘69세’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부터 상업영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 ‘반도’ 등 선정 폭이 넓다. 민규동: ‘SF8’처럼 플랫폼은 다변화되는데 그런 작품이 갈 수 있는 영화제 성격은 정해져있더라. 이번 선정작엔 영화제 환영작뿐 아니라 아주 대중적인 영화도 담았다. 임필성: 상업영화는 나름의 신선한 시도를 하고 관객한테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아도 비평가가 인정하지 않거나 흘러가버리곤 한다. 어떤 배우의 오랜만에 너무 의미 있는 복귀작이라거나, 기술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제시를 했다거나, 흥행성이 아쉬워도 최소 100명은 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 감독 입장에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종합상차림처럼 됐는데 개성 없는 게 개성인 것 같다. 민규동: 뮤지컬, 건축, 무용…. 넘치는 영화제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제가 공해가 되지 않으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감독 자체를 장르로 삼는 영화제는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프로듀서, 배우 등도 모두 감독의 관계망으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 이번 영화제에선 ‘오케이 마담’의 주연 배우 엄정화, ‘담보’의 성동일처럼 평상시 GV에서 잘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눈다. 민규동 감독은 이전에도 감독들의 비전을 담은 영화제를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에 제안하며 고민해왔다고 했다. 부산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는 감독조합상 ‘비전상’이 그런 결과물의 한 예다. 하지만 단순한 시상을 넘어 기존 프로그래머, 평론가와 다른 시선으로 작가, 감독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는 다른 성격의 비전을 새로이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프리 페스티벌’ 이후 내년엔 어떤 영화제의 모습을 꿈꿀까. 코로나 상황이 개선된단 가정 하에 그가 답했다. “큰 영화제와 작은 영화제의 갈림길이 오프라인 행사죠. 상황이 가능해진다면 대면 방식의 정통 영화제 형식을 확장시켜보고 싶은 몇몇 아이디어가 있어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극장을 벗어나 맛집, DDP, 덕수궁, 남산타워도 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엄숙주의를 최대한 빼고 좀 더 즐길만한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지옥화 스틸> 1950년대 후반 한국영화계 전후 한국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한 것은 역시 영화였다. 전쟁 중에도 영화제작을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은 폐허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바로 제작에 착수했다. 영화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론 영화는 크든 작든 자본의 투자와 회수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산업임이 틀림없고, 분명 개인 창작자로서의 욕망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영화인들에게는 한국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열정이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 것 같다. 환도한 이승만 정부도 이를 파악하고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로 한국영화 지원책을 단행한다. 전후 한국영화 부흥의 기폭제가 된 작품은 이규환의 <춘향전>(1955)이다. 1955년 벽두에 국도극장 한 관에서 개봉한 이 작품에 관객들은 2개월간의 장기 흥행으로 보답했다. 영화인들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영화로 채산을 맞추는 것을 넘어 큰 수익도 올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춘향전>의 성공으로 이듬해까지 <심청전>(이규환, 1956) <장화홍련전>(정창화, 1956) 등 사극·시대극이 유행했고, 관객들이 싫증을 낼 틈도 없이 멜로드라마 현대극 장르가 열기를 이어갔다. 이를 주도한 것은 한형모인데, 대학교수와 교수 부인의 각기 다른 연애를 다룬 <자유부인>(한형모, 1956)으로 전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후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역시 멜로드라마였다. 특히 홍성기가 <애인>(1956), <실락원의 별>(1957)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상업영화 감독으로서는 1인자의 자리를 누렸다. 영화사가 이영일은 특히 <자유부인>에 방점을 찍어 “시대 풍조의 멜로드라마”로, 홍성기의 영화는 “전형적인 애정 멜로드라마”로 정의하지만, 이 시기 어떤 멜로드라마든 전후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심리를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무명의 영화청년 신상옥의 등장 잘 알려진 것처럼 신상옥의 영화적 스승은 ‘남한’영화의 시원이라 할 최인규다. 한형모가 일제 말기 최인규의 영화에서 도제를 시작했다면, 그는 해방 이후 최인규의 문하에 참가하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장르에 충실하고 기술에 뛰어난 한형모가 테크니션으로서 최인규의 적통이라면 신상옥은 이는 물론이고 영화작가로서의 면모까지 확실히 이어받았다. 어쩌면 1950년대에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한 최인규의 영화세계를 완전히 계승한 이가 바로 신상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말기 최인규의 영화에서 미완에 그쳤던 리얼리즘의 화법과 장르적 세계의 결합은 신상옥이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일곱 번째 작품<지옥화>다. 사실 신상옥의 초기 영화들은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흥행에 실패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26세 때 만든 데뷔작 <악야>(1952)는 전쟁 시기 양공주를 그린 작품인데, 그 역시 증언했던 것처럼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염세적인 프랑스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전쟁 중 대표 장르였던 세미 다큐멘터리 <코리아>(1954) 그리고 시대극 <젊은 그들>(1955), <꿈>(1955), <무영탑>(1957)을 연출했다. 영화계의 주류가 아니었던 그의 초기 필모그래피는 확실히 한형모가 보여준 참신함이나 세련됨이 느껴지지 않는다. 훗날의 신상옥다운 과감함이 제대로 발현된 작품은 1958년 만들어진 <지옥화>였다. 현대극·멜로드라마의 유행과 1958년부터의 악극을 원작으로 한 이른바 ‘신파물’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 이 영화는 당시 한국영화 경향에서 완전히 돌출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악야>에서 다룬 바 있는 양공주를 소재로 전후 한국 사회의 단면을 리얼리즘 화법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강렬한 파토스(pathos)를 드러내는 멜로드라마적 화법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었다. 물론 이 영화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다. 기지촌을 통해 드러낸 전후 한국 사회 <지옥화>는 동두천 기지촌을 배경으로 미군을 상대하는 양공주들과 미군 부대의 물건을 훔쳐 암시장에 내다 파는 갱단이 등장하는, 한국영화사 전체를 훑어봐도 매우 흥미로운 소재의 영화다. 영화는 형 영식(김학)을 찾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동식(조해원)이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어지러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의 가방을 훔치는 날치기를 쫓으려던 동식은 불량배들의 시비로 자기 가방마저 잃어버려 망연자실하고, 이를 본 남대문의 지게꾼들은 세상을 한탄한다. 결국 동식은 남대문시장에 장물을 팔러 온 형을 발견하고 동두천으로 따라가게 된다. <지옥화>의 서두는 마치 기록영화인 듯 미군 부대 앞 시장통 풍경, 미군과 양공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영화 곳곳에서 다큐멘터리적 질감이 활용되는데, 단순히 기록영화적 화면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르영화의 문법과 결합시키는 연출이 무척 흥미롭다. <자유부인>에서 한형모가 영화 속 볼거리로 댄서의 장면을 보여준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신상옥 역시 당시 관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미군 부대의 댄스홀 장면을 넉넉히 보여주지만, 영식 일당이 양공주들의 도움으로 미군 부대에 잠입해 물건을 훔치는 장면까지 덧붙이고 있다. 즉 댄서들의 공연 장면을 기록영화를 보는 듯한 숏들로 구성하는 한편, 교차 편집을 통한 장르적 긴장감까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리얼리즘 화법과 결합한 멜로드라마 양식 영화는 영식과 그와 동거하는 양공주 쏘냐(최은희) 그리고 동식과 그를 좋아하게 된 주리(강선희)를 주요 인물로 배치한다. 쏘냐가 동생 동식을 유혹하고 둘이 가까워지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멜로드라마의 세계로 진입한다. <지옥화>의 전단지에 붙은 “물결치는 관능의 파도”라는 문구처럼 사실 이 영화의 애정 묘사는 <운명의 손>(한형모, 1954)의 키스신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해진다. 영식과 쏘냐가 침대나 풀밭 또는 강변에서 보여주는(마치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프레드 진네만, 1953)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러브신, 쏘냐가 동식을 유혹하는 장면과 이후 둘의 러브신이 숨가쁘게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학자 벤 싱어(Ben Singer)는 무대 멜로드라마에서 시리얼 퀸(serial queen)의 연속 영화(serial film)로 이어지는 멜로드라마적 특성으로 파토스, 과도한 감정, 도덕적 양극화, 비고전적인 내러티브 구조뿐만 아니라 육체에 위험을 가하는 스펙터클, 스릴, 폭력, 액션의 강조로 정의되는 ‘선정주의’를 거론한 바 있다. <지옥화> 역시 멜로드라마의 이러한 관점에 정확히 일치하는데, 영화는 영식, 동식, 쏘냐의 복잡한 관계로 야기되는 액션 신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전체 러닝타임(86분) 중 후반부 30분 동안 펼쳐지는 기차 액션신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스펙터클이다. 신상옥 사단이자 훗날 스릴러·액션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떨친 강범구 감독이 달리는 열차 위에 밧줄로 몸을 묶고 촬영했다는 바로 그 장면이다. 영식 일당은 미군 부대의 물자를 실은 열차칸을 탈취하기 위해 떠나고, 쏘냐는 동식과 달아나기 위해 헌병대에 이들을 신고한다. 일당은 탈취에 성공하지만 헌병대가 이들의 차량을 쫓고, 이를 안동식은 형을 구하기 위해 이들을 쫓아가고, 쏘냐마저 영식을 쫓아가는 3중의 추격전이 펼쳐진다. 헌병대와 총격전을 벌이던 영식 일당의 차량이 전복되고 영식은 겨우 살아남아 동식에게 발견되지만, 뒤따라온 쏘냐를 본 그는 그녀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지금 성수대교 근처의 당시 사근동 늪지대에서 찍었다는 마지막 장면은 단연코 이 영화의 백미다. 쏘냐와 동식은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며 사투를 벌이고, 칼로 쏘냐를 찌른 영식 역시 죽은 그녀 옆으로 기어가 운명을 다한다. 진흙으로 가득 찬 늪은 영화의 초입 남대문의 지게꾼이 말한 “어지러운 세상”의 축도였다. 다행히 영화는 동식과 함께 시골로 떠나는 주리의 장면으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쏘냐는 ‘지옥화’로 남았고, 동식과 주리만이 그 지옥을 탈출해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19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서다 이후 신상옥은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자매의 화원>(1959), <동심초>(1959) 등 서구영화를 지향한 세련된 멜로드라마를 선보이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성춘향>이 크게 성공한 1961년, 신필름을 설립한 그는 1960년대 한국영화 전반을 리드하게 된다. 당시 한국영화계를 부르는 별칭 ‘충무로’는 신필름과 그 외 영화사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신필름이라는 영화왕국의 군주였다. 영화제작자로서 양산 체제를 지휘하는 한편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작가로서의 작업도 유지한, 세계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축복받은 존재였다. 1960년대 초반 영화산업의 외양이 급격히 확대되었고, 1962년부터 연간 제작편수가 100편을 넘게 된다. 한국 영화산업은 규모의 경제뿐만 아니라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가 보여주는 예술성으로 깊이가 확보될 때 힘을 받았다.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앞둔 1996·1997년 홍상수·김기덕·이창동이 차례로 데뷔한 것처럼, 1960년 김기영이 <하녀>를, 1961년 유현목이 <오발탄>을, 신상옥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한국영화사의 위대한 걸작을 내놓으며 1960년대 르네상스의 폭과 깊이를 두루 만족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