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愛 - 내 생애 첫 사투리랩 그리고 첫 방송출연
- 제작년도
- 2007
누군가는 첫 영화를 만들 것이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첫 영화는 3분 남짓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수는 첫 번째 영화가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며 그중 운 좋은 일부는 두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아주 소수는 이후 창작 활동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심사숙고와 인내의 시간을 지나 제대로 된 기반 아래서 스스로가 생각한 인생작을 첫 번째 영화로 만들 수도 있지만, 또 어느 누구는 예상치 못한 기회에 아이폰으로 만든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번쯤 고민이 든다. 내가 첫 번째 만든 영화가 나의 첫 영화인가? 첫 번째 관객을 만난 영화가 나의 첫 영화인가? 어쨌든 첫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된 창작자들, 그것도 준비가 안 된 예상치 않은 순간에, 영상 창작이라는 운명을 만난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또한 얼결에 첫 번째 실패를 겪고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의 시도를 위해 좀 더 먼저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픈 이들을 위해서도 이 글을 쓴다. 당신이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썼고 가상의 이야기와 공간 아래 설 가상의 인물이 필요하다면, 그 가상의 인물을 연기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내가 처음 쓴, 내 생애 첫 영화의 주인공을 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경험 없는 연출자가 배우를 찾고 만나는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연출자는 자신이 그리는 인물을 표현해줄 좋은 배우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겠지만, 동시에 좋은 배우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프로젝트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비전, 연출자의 좋은 역량을 보여줘야 좋은 스태프를 만나고 또 좋은 배우를 만날 수 있다. 다행히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시나리오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전세금을 빼서 영화를 만들 각오를 할 수는 있지만 배우 전도연에게 캐스팅을 제안하고 동의를 얻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스타 캐스팅을 할 수는 없다. 일단 내 첫 번째 영화를 위한 탄탄한 시나리오와 동료들, 그리고 예산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치열한 사전준비단계의 어느 지점, 내 영화를 현실화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일 때 우리는 캐스팅을 하게 된다. 러닝타임 10분짜리 내 인생 첫 영화의 히로인을 찾아보자. 하늘 저 멀리 떠 있는 스타를 캐스팅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방법으로 욕심을 조금 내 볼 수는 있다. 단편영화 혹은 독립영화 안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들, 시스템의 바깥에서 새로운 영화에 의욕적인 도전을 해줄 수 있는 좋은 배우들에게 약간의 무모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첫 번째 출발선에 섰다면 일단 같은 출발선에 선 사람을 찾는 방법도 있다. 자신처럼 맨몸으로 뛰어들어 뭔가를 해보려는 동료들, 경험은 없지만 미래의 재능을 믿는 자신과 같은 선상에 있는 동료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어느 독립영화의 단역 혹은 대학교 1학년 실습작품에 나온 배우였지만 내 영화의 보석이 되어줄 것임을 직감한 배우, 어느 연극무대 위에서 보았던 조역 등 발품을 팔아 어렵게 말을 건네고 대화하고 내 영화의 비전을 설명해 내 첫 번째 영화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내가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단편 작업을 했을 때 가장 많은 캐스팅이 그런 발품을 통해서였다. 여느 상업 영화 현장처럼 배우모집공고를 내고 오디션을 보는 방법도 있다. 필름메이커스, 액터 잡 등의 웹사이트(조금 옛날이야기인데 지금은 조금 더 좋은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다)에 캐스팅 공고를 낼 수 있다. 내가 아무리 경험이 없더라도 내 비전에 허풍을 섞지 말고 되도록 솔직하게 배우 모집 공고를 낸다. 배우를 모집하는 영화의 성격과 시놉시스, 연출자의 경력사항, 배역의 성격, 예상되는 촬영 회차, 출연료 유무 등을 솔직하고 자세하며 간결한 방식으로 기술하고 공지한다. 그리고 연출자 혹은 조연출의 연락처를 남긴다. 당신의 경험이 미천하더라도 당신의 작업에 의미를 부여할 좋은 동료들 몇몇이 메일로 프로필을 보내줄 수 있다. 운이 좋게도 받은 메일 중 준비하는 캐릭터의 이미지와 가깝고 궁금한 배우들이 생기면 시나리오를 보내주고 미팅 혹은 오디션을 요구해본다. 아직 얼굴도 안 봤고 캐스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내도 될까,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시나리오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어떤 이가 내 아이템을 훔쳐 영화를 만들고 칸영화제에 가는 꼴을 어떻게 보지?” 등의 무한상상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무 영화도 만든 적이 없는 나를 믿고 오디션에 와 줄 배우는 세상에 없다. 그가 아무도 모르는 당신의 영화에 자신의 프로필을 보내 준 것처럼 당신 또한 당신의 시나리오를 보내주는 것으로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영화제작에 있어 신의란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점검이 지나고 호의가 남아 만나게 되는 단계까지 왔다면 그다음의 신중한 판단들이 남아있다. 우선 어떤 만남을 가질 것인가. 단순한 미팅을 할 수도 있고 오디션의 형태로 배우를 만날 수 있다. 배우와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배우에게 연기에 대한 주문을 할 것이라면 또 그에 맞는 공간(빈 강의실이나 방해받지 않을 미팅룸)이 필요하다. 배우와의 오디션에서 핵심은 대화와 리딩이다. 배역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연출자는 자신이 준비하는 영화와 자신이 생각하는 배역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영화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계기이고,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영화에 대한 견해와 배역에 대한 해석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배우와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프로필에서 느끼지 못한 그 사람의 생생한 표정과 발성, 습관 등을 알 수 있다. 리딩을 부탁할 것이라면 사전에 배우에게 알려야 한다. 전체 대본에 대한 리딩보다는 원하는 포인트를 지정해서 부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시나리오가 길지 않으면 전체 리딩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특정 부분만 지정해 준비하도록 하는 게 배우에게 있어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게 하는 방법이거니와 애초에 잘못된 해석과 설정이 있어도 배우가 많은 교정을 할 필요가 없다. 리딩을 통해 우리는 그 배우가 연기를 할 때의 발성, 연기에 있어의 다른 습관들, 어떤 식의 연기를 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리딩에서 연출자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만 보면 된다. 경험상 오디션이나 리허설에서 배우와 너무 많은 것을 만들면 현장에서 그 배우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배우와의 미팅을 위해 연출자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기 바라는 마음이 있다. 첫 연출이든 어느 정도 경력이 생긴 다음의 연출이든 연출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디렉팅과 콘트롤의 위치에 선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상하관계라는 계급의 위에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배우와의 만남이 그 작품으로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만남 자체가 다양한 배우에 대한 연출자의 데이터로 만들어진다. 당장의 배역에는 맞지 않지만 차후에 같이 작업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고 나의 경우에도 수많은 배우들을 그렇게 만났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캐스팅이 있지만 좋은 배우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연출자의 많은 준비와 자기증명이 필요한 일이다. 그 외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캐스팅의 예도 있다. 만약 당신이 첫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면 때로는 영리한 접근이 필요하다. 멋진 캐릭터들의 향연, 멋진 대사, 강한 드라마를 가진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러한 시나리오를 썼다 하더라도 그것이 처음 연출하는 사람, 몇 번의 경험이 없는 촬영자와 스태프들, 경험 없는 배우들, 50만 원의 예산으로 만든다면 연출자의 머릿속에 있던 아름다운 영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많은 경험과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영화는 세부로 만들어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좋은 대사, 뜨거운 감정을 표현할 대사를 쓰고 배우를 찾는 것보다, 비전문 배우인 내 친구들, 혹은 나 자신도 표현할 수 있는, 과하지 않은 연기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러한 내용에 맞는 촬영적인 접근을 하고, 비전문 배우를 써 본다. 그렇게 내 친구들만 데리고 아이폰으로 3분짜리 영화를 찍었다 하더라도 그 영화가 관객의 울림을 주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 영화와 당신이 준비한 좋은 대본으로 두 번째 영화를 함께 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것이다. 당신이 노력하고 그 길에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조금씩 당신의 상상력을 확장하더라도 그 상상을 실현해 줄 좋은 배우와 스태프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 경험이 없거나 실패했던 영화감독들이 배우를 만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보았다. 몇 가지 방법 안에서 당신의 첫 번째 영화의 캐스팅을 마무리했다면 먼저 좋은 선택에 축하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그 다음은...
화창한 날이거나 무더운 날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극장 나들이를 즐겨 하시지도 않았던 어머니가 왜 그날 극장에 가셨고 여러 영화중에서도 왜 그 무서운 영화를 혼자 골라 보신 것인지 알 수 없다. 아직은 그런 영화를 볼 나이도 아니었을 여섯 살 혹은 일곱 살짜리 아들을 함께 데리고 간 것을 보면 우연히 보았건 의도적으로 보았건 극장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당신께서도 적잖이 무서웠던 건 아니었을까 짐작될 뿐이다. 그날에 대해서 훗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잘 알지 못하셨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잊지 못했다. 그날 느낀 극장에서의 공포감을.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과 몇몇 장면은 잊히지를 않았다. 그것이 내 기억에 존재하는 나의 생애 첫 번째 영화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제목은 떠오르질 않았으니 답답한 일이었다. 그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회고전에서였다. 유년의 기억이 돌아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박윤교 의 < 망령의 곡 >(1980)이었다. 대를 이어내려는 가부장적 재벌가의 강요로 젊은 새 며느리(점례)가 아이를 낳은 다음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 맺힌 그녀가 가문에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은 무섭지만 실은 상투적이다. 박윤교 는 ‘며느리’와 ‘한’만 있으면 공포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는 감독이었으니 그의 영화 인생 후반에 속하는 이 영화의 내용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또렷이 기억하는데 내게 공포의 근원지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실은 다른 두 가지였다. 점례의 관 위에 덮인 붉은 천, 그러니까 점례의 괴기한 출몰이 아니라 그녀가 죽어서 그 안에 있다는 걸 상상하게 하는 그 붉은 천이 참으로 두려웠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에 관한 나의 첫 번째 인식이었음은 훗날 돌이켜본 다음에야 알게 됐다. 영화 속 돌산의 풍경과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볼 때의 공포감은 그 관의 붉은 천 보다 더 강력했다. 죽기 전 며느리 점례는 마지막 소원으로 말하기를 제발 자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 부탁만 지켜졌어도 점례는 여귀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장의 지시를 받고 점례의 관을 옮기던 회사쪽의 직원들은 그녀의 관을 그냥 회사 소유의 개발부지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매장해버린다. 점례가 여귀가 되어 돌아오자 직원들은 그녀의 관을 다시 찾으려 하는데 그 관이 묻힌 위치를 알 길이 없다. 이미 땅은 개발의 초입에 들어서 전부 파헤쳐져 있고 사방에는 돌과 붉은 흙만 널려 있을 뿐이다. 직원 한 명이 점례의 관을 찾으러 그 돌산을 헤매다가 하필이면 발파 장소에 이르러 다이너마이트의 폭파와 함께 몸이 산산조각 나던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했다. 유년 시절에는 그 장면이 이유 없이 무서웠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의미심장하여 음산하다. < 망령의 곡 >의 한은 양지 바른 곳에 소박하게 묻히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황폐한 돌산 그 아래 묻힌 자의 한이다. <망령의 곡>의 여귀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때문에 찾아왔다. 개발 독재 안에서만 가능했던 그 돌산의 살풍경은 오래도록 잊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박윤교 와 < 망령의 곡 >에 관하여 조금 더 덧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망령의 곡>이 박윤교의 가장 큰 흥행작 중 한 편인 것은 알려져 있다(그러니 극장에 잘 가지 않던 가난한 아기엄마까지도 극장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몇 장면에서 두드러지는 어딘가 투박하지만 단호한 플래시백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플래시백의 경험치를 놓고 역으로 관객과 게임을 벌이는 어떤 장면 효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무속과 기독교를 고루 개입시키는 전략 및 저예산 공포영화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셋트와 로케이션의 활용도 말할 만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장르영화의 노림수를 넘어서는 진짜 죽음의 기운이 어느 때부터인가 감돈다. 그것이 전적으로 의도적이고 능숙한 연출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할 길 없는 시대적 반영에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고 해도 그렇다. 어처구니없이 강력하고 위태롭고 돌이킬 수 없는 전멸적인 결과로서 도처에 널린 죽음의 기운들. 그 기운들이 <망령의 곡>에 떠돈다. 인과응보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므로 사족에 불과하다. 박윤교 의 < 망령의 곡 >이 비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령의 곡>은 마치 마리오 바바의 어떤 저예산 B급 공포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 내내 조악하다가 한 순간 심연의 무엇을 길어 올리는 경험을 전한다. 그것이 나의 미숙한 유년의 기억에 빚진 착각일지라도 나는 그 조악함이 불러들인 음산함에 원초적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참으로 일찍이 죽음에의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이 영화를 내 생애 첫 번째 영화 혹은 나의 첫 번째 길티 플레저로서의 걸작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