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헤비
- 감독
- 신창환
- 제작년도
- 1997
(사진: “ Häxan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반드시, 라고 단언하고 싶은데,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일시적으로 이상한 영화를 찾아보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재빨리 빠져나오고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머문다. 그 영화들이 ‘불법적인’ 대상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스너프 필름, 아동성애 영화, 기타 등등)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이상한 영화’의 수호성인 아모스 보겔은 ‘전복적인 예술영화(subversive art film)’라고 불렀다. 아모스 보겔을 이야기할 자리는 1974년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여기서 질문은 영화사의 순간들에서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언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방점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다른 계보를 열거하게 될 것이다.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사회적 위반, 법적 금지의 경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선을 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한계를 부수길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돈을 원했다. 누군가는 예술적인 실험을 하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쾌락을 향유했다. 여러 영화 제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세계영화사의 순간들은 그렇게 가끔 하나의 선처럼 느껴지는 앞과 뒤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내가 ‘이상한 영화’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가장 멀리서 마주친 영화는 벤야민 크리스텐센의 스웨덴 영화 < 헥산 >(1922)이다. “Häxan”은 번역하면 ‘마녀’라는 뜻이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19세기인 1879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배우가 되기를 원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18년부터 ‘흑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서점을 뒤지던 벤야민은 독일 베를린 서점에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사본을 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1486년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하인리히 크라메르가 쓴 마녀 처단에 관한 책이다. 주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마녀로 규정된 여자의 마법의 악을 ‘끝내기 위해서’ 자백을 끌어내는 고문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 유럽에서는 마녀로 내몰린 여자들이 산채로 화형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마녀의 존재를 신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주장하고, 더 나아가 마녀사냥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심지어 이 책은 마녀재판의 법전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소설에서 사용된 장면들,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 실려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 책은 논쟁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래서 많은 독자를 얻게 되었다. 1519년에 야콥 스프렝게르가 이 책에 새로운 저자로 나서서 마치 개정 증보판처럼 추가해서 1533년에 출간하였다. 손에 손을 거쳐 이 책은 마녀를 자백시키는 안내서가 되었고, 잔인한 고문 기술자들은 상상으로 쓰인 이 책의 내용을 감옥에서 불행한 여자들에게 실행하였다. 『마녀의 망치』는 일시적으로 판금 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왕실 궁정에서 공공연하게 읽히는 금서가 되었으며, 16세기 이후에 마녀재판에서 더 잔인한 기술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녀의 망치』 표지와 <헥산> 포스터 (사진: “ Häxan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구한 사본 『마녀의 망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본이 15세기라는 것을 셈에 포함해주길 바란다. 1부에서는 먼저 마녀의 존재와 악행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2부에서는 마녀들이 저지른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범죄와 악마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마녀재판의 실제 절차와 고문을 통한 자백 유도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마녀의 망치』에 만족하지 않고 벤야민은 1919년부터 거의 2년 동안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 사례, 실제로 실행하는 집행과정을 담은 삽화들, 여기에 더해 각종 문건을 모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벤야민은 1920년까지 발표된 마녀들에 관한 소설과 희곡도 모았다. 그런 다음 자료들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을 결심하였다. 벤야민이 준비한 것은 단지 마녀에 관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준비한 <헥산>은 유럽 중세로부터 400년에 걸친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백과사전이었다. 벤야민은 제작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구한 도판들을 그 앞에서 전시하다시피 했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재판기록과 집행을 낭송하기도 했다. 이 기괴하지만, 분명히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스웨덴 필름 인더스트리가 관심을 보였다. 벤야민과 촬영 감독 요한 안케르스트예르네는 덴마크에 오직 <헥산> 촬영을 위한 영화 스튜디오를 사들였다. 그런 다음 야외는 중세를 재연하였고, 실내는 모두 밀폐시킨 다음 어두운 그림자와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가 떨어진 다음에만 촬영을 시작해서 새벽이 오면 멈추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헥산>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제단화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비싼 무성영화가 되었다. <헥산>은 1921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그해 10월까지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 간 대조가 두드러지는 장면 / 우주를 둘러싼 천사 합창단의 모습 (사진: “Häxan( 1 , 2 )”, IMDb) 영화 <헥산>은 7개의 연대기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시작은 마치 학술 발표를 위한 도판 설명처럼 이어진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주변에 공기와 불이 둘러싸고 별들이 주변을 떠돌면서 천사 합창단이 보인다. 그런 다음 악마와 마녀의 조각상, 목판화, 삽화를 차례로 소개한다. 이 화면자료들이 펼쳐지면 IMAX 스크린으로 벽화처럼 보고 싶을 것이다. 사탄이 나타나서 부부가 잠든 침대에서 아내를 유혹하고, 질식시키고, 살해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의 묘약을 구하는 여인, 성에 눈뜨는 여인, 그 여인이 몰래 먹이는 묘약에 흥분하는 승정(僧正), 게걸스러운 폭식, 들린 자들(the possessed)이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한밤중에 불을 피우고 춤을 추는 축제,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이 장면들을 종종 멜리에스 영화에서 본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오싹해지는 것은 만들고 있는 쪽에서 지금 이걸 진심으로 믿고 있구나, 라는 설득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담과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처럼 보였지만 여기에 교회가 개입하면서 고문이 등장한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그 과정의 세부를 묘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여기서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졌단 생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신성모독 장면을 재연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헥산>을 보고 있으면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장면들과 마주치게 된다. (상) 마녀와 악마에 관한 삽화 / (하)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들린 자들(the possessed) (사진: “Häxan( 1 , 2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1921년에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저술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아직 살아있었고,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발표한 직후이다. <헥산>의 마지막 연대기는 동시대에 이른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여성은 몽유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그 당시 정신병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고문 장면뿐만 아니라 성상 모독, 마녀에 관한 찬양, 중세 교회에 대한 적나라한 재판 장면과 함께 여성의 누드, 신체 훼손, 시체 손상에 이르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개봉 당시 스웨덴과 덴마크의 검열은 통과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특히 미국에서는 검열에서 문제가 되어 개봉을 위해 재편집이 불가피했고 상당 부분이 삭제되어 국가별로 여러 판본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가장 흥미로운 판본은 1968년 메트로 픽쳐스 코퍼레이션이 <헥산; 옛날 옛적부터의 마녀들(Häxan; Witchcrafts through the ages)>이다. 이 판본에서는 『네이키드 런치』의 윌리엄 버로스가 영어 나레이션을 한다(고 한다). 이 무렵 윌리엄 버로스는 마약중독 상태에서 장 주네를 둘러싼 친구들과 친교를 맺던 시기였다.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작 이 판본의 복원 소식은 들리지 않고 1976년부터 1922년 판본을 원본에 가깝게 몇 차례에 걸쳐 복원하고 있다. 물론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윌리엄 버로스의 판본이 궁금하다. 아마 언젠가는 될 것이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나는 2014년 5월 개봉 당시 < 도희야 >를 외면했다. 집에서 도보로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극장에서도 상영해주던 이 영화를 외면한 것은 줄거리를 보자마자 찾아온 지겨움 때문이었다. KMDb에 게재된 줄거리 첫 번째 문단. “외딴 바닷가 마을, 14살 소녀 도희―빠져나갈 길 없는 그곳에서, 친엄마가 도망간 후 의붓아버지 용하와 할머니로부터 학대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도희 앞에 또 다른 상처를 안고 마을 파출소장으로 좌천된 영남이 나타난다.” 휴. 2010년대 중반 한국 영화계에는 잔혹한 현실을 드러낸다는 명분으로 여성/소녀 피해자의 고난을 전시하는 영화가 드물지 않았다. 그런 영화들은 설령 만든 이의 자세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해도 종종 재현의 불온함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했으며, 결말에서 구원이나 복수에 이름으로써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한다 한들 일단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고 있기 거북했다. 더욱이 <도희야>의 포스터 디자인은 자신이 제2의 < 도가니 >라고 부르짖는 듯했고, 무엇보다도 이미 한 달 앞서 < 한공주 >가 극장가를 휩쓸고 지나가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 뒤였다. 아동 학대나 시골의 전근대적인 폐쇄성은 분명 중요한 문제이고, 배두나 와 김새론 과 송새벽 은 연기를 잘할 테고, 소재 때문에 힘들게 고민 많이 하면서 만들었을 테지만, 저는 사양할래요. 이런 몰지각한 자에게 그해 연말에 한 번 더 극장 관람 기회를 베풀어준 KT&G 상상마당 영화관과, “ 정주리 의 데뷔작은 처음에는 한국의 어른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다룬 또 다른 선의로 충만한 휴먼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내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이고 도덕적으로 복잡한 유사 스릴러로 돌변하여 어떤 흔한 멜로드라마적 장치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이해력에 의지해 영화 속의 약자들과 교감해보라고 도전장을 내민다.”라는 문장으로 귀를 솔깃하게 해준 Koreanfilm.org의 김규현 리뷰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이런 부분은 좀 별로지만……’이라는 단서 없이 마냥 아낄 수 있는 한국 영화가 하나 더 생겼으니까. < 도희야 >를 사회 비판 드라마로 단정하고 지나쳤던 것이 실수였다. 이것은 차라리 < 네이키드 키스 >(1964), < 어여쁜 독 Pretty Poison >(1968), < 끼었다 Stuck >(2007) 같은 영화들 옆에 나란히 놓을 만한 필름 누아르다. 가해자-피해자-고발자의 구도는 생각만큼 그리 명확하지 않다. 용하( 송새벽 )는 몹쓸 인간임에 틀림없지만, 그를 향한 모든 혐의가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도희( 김새론 )는 학대당한 아이임에 틀림없지만, 무력하게 도움을 기다리는 피해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영남( 배두나 )은 틀림없이 올곧은 경찰관이지만, 늘 옳은 판단이나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모호한 여백과 뉘앙스 위에 도희와 영남의 관계가 위태롭게 쌓여간다. 둘의 관계는 강직한 사회파 드라마에서 만남 직한 학대 피해자와 성인 보호자의 관계와는 한참 거리가 있으며, 차라리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탐정과 팜므파탈의 관계를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욕실 장면의 묘사는 < 올드보이 >나 < 아가씨 > 정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위험한 금기에 음험하게 도전한다.) 또한 여기에는 분명 아동 학대, 동성애 혐오, 외국인 노동자 착취, 폐쇄적인 시골 공동체의 폭력성 등을 향해 날을 세우는 대목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런 사안들을 고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풍요로운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환경에 충실하고자 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작심하고 모든 것을 하나의 발언을 위해 때려 박기보다는 이처럼 자기 이야기에 충실한 가운데 비스듬히 찔러 넣는 비수가 더 날카로울 때도 있는 법. 비슷한 예로는 ‘호남 혐오 고발 영화’는 아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호남 혐오를 적나라하게 짚어낸 < 비밀은 없다 >도 떠오르는데, <도희야> 역시 그만큼이나 컬트적인 인기를 누려 마땅한, 맹독을 품은 독초 같은 영화다. 원고 분량이 다 되어가지만, 배두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이 글을 맺을 수 없다. 나는 배두나가 좋은 배우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비현실적인 외모를 바탕으로 한 엉뚱하고 외계인 같은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배우의 큰 자산이며 추호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연기 테크닉에 특별히 눈길을 준 적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영남을 연기하는 배두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의 몰지각함을 반성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내지르는’ 유형의 연기가 ‘명연’으로 대접받는 편이고, 그래서 < 도희야 >에서도 김새론 에게 더 눈길이 가겠지만(그리고 김새론도 틀림없이 잘했지만), 배두나의 ‘억누르는’ 연기는 특별하다. 특히 용하가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보라. 영남은 파출소장으로서 아동학대자인 용하를 혼내야 하며, 그럴 권한도 있다. 하지만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데다 난폭한 남자인 그를 너무 몰아세우면 난처해지는 것은 오히려 영남일 것이다. 따라서 영남은 분노하고, 상대를 냉정히 꾸짖음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알려주되, 너무 몰아세워서는 안 되고, 용하가 달려들 틈을 주지 않으면서 체면을 유지한 채 먼저 물러나야 한다. 이 호흡을 배두나는 완벽하게 연기한다. 그러니 <센스 8>을 다 보고 볼 게 없다고 투덜거리시는 분들이여, <도희야>로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