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 감독
- 최훈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박노식, 주증녀, 김지미, 이민, 엄앵란, 김동원, 주선태, 노재신, 김칠성, 문일봉, 하지만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에 있는 무궁무진한 자료 중에는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비장한’’ 가치를 품은 원석들이 있습니다. 그런 원석을 골라내고 잘 다듬기 위해! 아키비스트들은 오늘도 여러 단서를 모아 추적에 나섭니다. 하찮아 보이는 자료가 역사적 의의를 지닌 원석 으로 발굴되기까지, 자료의 맥락을 추적하는 KOFA 추리반장 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익히 봐온 < 오발탄 >(유현목, 1961) 포스터.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포스터 상단, 입 주위를 손으로 감싸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김진규 의 얼굴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한 배우 최무룡 의 표정이다. 그런 후 천천히 시선을 옮기면, 포스터 왼쪽으로 수영복을 입은 배우 김혜정 의 전신이 보인다. 곰곰이 생각하면, 포스터 속 김혜정의 모습은 다소 의아하다. 영화에서 김혜정이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처음엔 이 포스터를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포스터 속 김혜정의 모습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포스터를 그다지 주의 깊이 보지 않았던 탓도 있다. 만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영화에 없는 장면일지언정 이걸로 관객을 모을 수만 있다면, 포스터는 그 자체로 소임을 다 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포스터 속의 이 장면을 기대하며 극장을 들어섰는데 기대한 장면이 안 나오기로서니, 일단 집계된 관객 수는 물론이고 관객이 지불한 영화 값은 되돌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뻔뻔하게 만들어내는 AI 시대의 함정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벌일 만큼의 과감함이 과연 그 옛날에 있었을지 의심했어야 했다. 이상하리만치 이상하지도 대수롭지도 않던 이 포스터가 불현듯 의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 ”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련의 사진들을 접한 때부터였다. (좌) DST702647_01 / (우) DST702648_01 사진에는 ① 배우 김혜정과 감독 유현목 , 촬영기사 김학성 이 등장한다. 아마도 셋이 함께 참여한 작품과 관련된 사진일 것이다. 사진 아래에는 ② “1960.8” 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는데 이는 사진이 촬영된 날짜로, 해당 시기에 촬영 중인 작품과 관련된 사진일 것이다. 또한 ③ 김혜정이 수영복을 입고 있어 , 이 작품에는 김혜정이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자, 이제부터는 이 단서들을 가지고 사진과 관련된 영화가 무엇인지 추적해야 한다. 먼저 ①과 ②의 단서로, 이 사진들이 영화 <오발탄>과 관련된 것이라는 추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대의 신문 기사들이 이 같은 추론에 강력한 근거로 작용했다. 1960년 4월, 여러 신문 기사는 유현목(감독)과 김학성(촬영), 김성춘 (조명 및 제작)이 동인제 방식으로 <오발탄> 촬영에 곧 들어갈 예정이라고 보도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영화가 촬영 중이며 배우들이 무보수로 출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영화가 드디어 완성돼 1961년 초에 개봉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당대의 기사를 종합하면, 영화 <오발탄>은 1960년 4월 무렵부터 12월까지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진들은 그들이 <오발탄>을 한창 촬영하고 있던 때에 찍은 사진 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③에 있었다. 영화 <오발탄>에서 김혜정(극 중 영호의 애인이자 영화배우인 미리 역)이 수영복을 입은 모습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진들을 처음 본 순간, 아주 잠깐이나마 이런 가설을 세워 보기도 했다. ‘이 사진은 그들이 <오발탄>을 한창 촬영 중일 때 찍은 것이기는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 찍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8월이라는 한여름, 때가 때인 만큼 어쩌면 촬영 중에 잠시 짬을 내 피서를 갔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문득 주의 깊이 보지 않았던 포스터를 다시 보게 되었고, 거기에 그려진 김혜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961년 2월과 3월, <오발탄> 개봉을 예고하는 신문 광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사진 속 김혜정이 입은 수영복의 무늬가 포스터와 신문 광고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까지 확인되었다. 이 사진들이 두말할 나위 없이 <오발탄> 촬영 현장 사진 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추리를 마쳐서는 안 된다. 아키비스트의 추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 사진들이 <오발탄> 촬영 현장이라는 것은 영화 <오발탄>에 미리가 등장하는 수영장 신이 있었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오발탄> 영상에 해당 장면이 없다는 것은 이 장면이 어떤 이유에서든 삭제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쯤에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첫째,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오발탄>의 수영장 신은 무슨 내용이었으며, 둘째, 이 장면은 언제 무슨 이유로 삭제되었을까? 현재 남아 있는 <오발탄> 영상에서 삭제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미리의 수영장 신이 무슨 내용이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해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졌다. 유현목 감독의 부인, 박근자 작가가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 영화감독 유현목 연출 자료 컬렉션 ”에서 말이다. 이 컬렉션에는 여러 판본의 <오발탄>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는데, 그중 「<오발탄> 대사대본(녹음대본)」(이하 ‘녹음대본’, 관리번호 DCKN002163_01)에 문제의 이 장면이 남아 있었다. 「<오발탄> 대사대본(녹음대본)」(관리번호 DCKN002163_01), 68~69쪽. (여우 미리를 회견하는 기자군. 계단을 내려오든 미리, 얼굴을 가리며) 미리: 아… (머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이러한 기회를 베풀어 주신 여러분의 앞날에 행복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기자들과 회견하는 미리) 기자: ⓔ 예술에 대해서 좀… 견해를 듣고 싶은데요. 미리: 예술이 뭐냐구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마치 인생이 뭐냐고 캐묻는 질문처럼… 기자A: 어려우실 줄 압니다만 간단히 요약해 말씀하시면… 미리: 우리들 인생이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꿈결! 기자A: 아주 명답이었습니다. (녹음기가 돌아간다) … 그런데 현대 과학이 우리들 꿈에 미치는 영향이란 무엇일까요? 미리: 특히 전 어린 시절에 별을 좋아했어요. 저 반짝이는 어린 별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하늘나라에 가 봤으면… 그런데 오늘날 그 어린 별마저 권태로운 이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과학의 소리를 들었을 때 난 막 울고만 싶었어요. 기자 A: 미스 고의 그 울고만 싶어지는 감정 속에 저이들도 한몫 끼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수영장 조약대에서 선수들이 다이빙한다. 풀에서 나오는 수영복의 미리, 기자들이 몰려든다) 기자 A: 다음은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좀… 미리: 적어도 현대 여성이라면 그런 질문에 답변치 않을 거예요. 기자 A: 왜 그럴까요? 수영장에서 스타 배우인 미리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녹음대본에서 이 장면은 미리의 주선으로 배우가 될 기회를 뿌리치고 은행강도를 계획 중인 영호(최무룡)가 경식( 윤일봉 )이 잠적했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과 설희( 문혜란 )의 아파트 관리인에게서 간밤에 설희가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 사이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타가 된 미리와 그런 기회를 박차고 절망 속에서 그릇된 길로 들어서는 영호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장치가 된다. 또한 이 장면은 미리가 생각하는 예술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꿈결’이 현실과 모순되는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역할에 대한 감독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언제 그리고 왜 삭제되었을까? 혹시 유교적 도덕관에 입각해 풍기문란을 우려한 검열관이 삭제를 지시한 것일까? <오발탄>의 검열 서류를 찾아봐야 할 시점이다. <오발탄>을 제작한 대한영화제작주식회사(대표 김성춘)는 1961년 2월 9일, 문교부에 영화 상영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문교부는 2월 15일, <오발탄> 상영을 허가하면서도 “개천 하수도에서 어린이를 업은 여인이 목매단 장면”이 잔인하므로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아마도 제작사는 이를 받아들여 해당 장면을 삭제하고 4월 13일부터 서울의 국제극장 에서 상영을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 장면 외에 검열에서 삭제 지시된 장면은 더 이상 없다. 물론 영화 <오발탄>의 시련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개봉(4월 13일)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4월 14일, 문교부 문화국 예술과는 내무부 치안국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오발탄>에 관한 재심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내무부 치안국은 4월 19일과 5월 28일, “공산주의 선전 색채가 농후하여 반공 국시에 위배되며 사회적인 악영향이 심하다”라는 의견을 문교부에 보냈고, 결국 <오발탄>은 재심의를 거쳐 7월 20일, 국내 상영 보류 결정을 통보받았다. 제작사는 그 후 수차례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기각되었다. 그러다 1963년 7월, 공보부 영화과는 <오발탄>에 대한 국내외 긍정적인 여론을 반영해 마침내 상영 보류를 해제했다. 단, 극 중 노모( 노재신 )가 “가자!”라고 외치는 대사와 화면을 삭제하고 미군이 명숙을 희롱하는 장면을 단축하는 조건이었다(관련 내용은 “ 유현목 검열자료 컬렉션 ” 내 <오발탄> 심의서류 참조). 그런데 여기에서도 미리의 수영장 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런 점에서 수영장 신은 검열로 삭제된 것이 아님 이 분명하다. 극중 노모가 “가자”를 외치는 장면 당국의 검열로 인한 삭제가 아니라면, 혹시 감독의 연출적 판단이었을까? 촬영을 했으나 편집 과정에서 불필요한 장면으로 판단해 거둬내는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곧바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잠정적인 추정이기는 하나, 미리의 수영장 신이 남아 있는 <오발탄> 녹음대본은 제작사가 1963년 당국에 재심의를 진정하면서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 김성춘은 1963년 6월 11일에 공보부와 중앙정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노모가 ‘가자’라는 헛소리하는 구절이 대중에게 오해될 우려가 있어 그 구절을 ‘저 푸른 벌판의 양 떼를 따라가자’라는 내용으로 간결 명확히 하여 인간의 평화스러운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본심을 강조”하는 등의 수정 부분을 열거하며 상영 허가를 간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녹음대본에는 김성춘이 진정서에서 밝힌 수정 방향과 일치하는 다음의 대사가 등장한다. “얘야 가자! 어서들 짐을 싸고 나서렴! 저 양 떼를 따라가야지. 모두들 모두들 푸른 곳으로 가는데 얘야 어서들 가자!(녹음대본 76쪽)” 이 점에서 <오발탄> 녹음대본은 1963년 재검열 진정을 위해 영화를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판본일 수 있는데, 여기에 수영장 신이 있다는 것은 1963년까지도 해당 장면이 영화에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임을, 따라서 감독의 연출적 판단만으로 삭제된 게 아니었을 것임 을 방증한다. 당국의 검열에 의한 것도, 감독의 연출적 판단에 의한 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이는 영화 프린트가 여러 목적으로 복사, 복제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당할 듯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현재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오발탄>은 1963년 11월에 개최된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를 위해 영어 자막을 입힌 후 1975년 영화진흥공사가 주최한 ‘광복 30주년 기념 한국영화 감상회’를 위해 복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린트를 원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러하기에 <오발탄> 녹음대본에는 존재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영화 판본에는 부재한 미리의 수영장 신은 1963년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출품용 프린트가 만들어지는 과정, 혹은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 한국영화 감상회’를 위해 그것이 또다시 복제되는 과정(이때의 <오발탄> 상영은 결국 무산되었다)에서 삭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해당 장면이 삭제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한 삭제를 결정하기까지 연출자 유현목의 의도가 얼마만큼 반영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 [1] 김기호, 「<오발탄> 디지털 복원 과정에 대해」, 한국영상자료원, 『<오발탄> 블루레이 소책자』, 2016.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국어 시간에서 접했을 소설 『오발탄』(이범선, 1959). 1959년 발표된 이 작품은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듬해인 1960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1961년 봄 개봉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레이션의 껍데기로 지붕을 이었다”라는 원작의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묘사가 보여주는 해방촌의 모습처럼, 전후 서울의 실상을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사실적 재현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 오발탄 >(유현목, 1961)을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치는 원작의 뛰어난 영화화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오발탄>은 당대 서울의 도시 공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함으로써, 도시사와 도시계획사 연구에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서울은 국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서의 도시계획과 고도경제성장의 동력 속에서 매해, 아니 매달 철거와 신축이 반복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맥락을 감안했을 때, 1960년 하반기에 촬영된 <오발탄>은 6.25 전쟁과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던 서울의 민낯을 참으로 절묘한 시점에 카메라에 담아낸 셈이다. 덕분에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보듯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다. 이제 영화가 포착한 서울의 다양한 면모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철호의 판잣집과 계리사 사무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주인공 철호( 김진규 )가 산비탈의 판자촌 사이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비춘 뒤, 곧장 서울 도심의 계리사 사무실을 비추는 시퀀스를 보여준다. 사는 곳은 무너져가는 판잣집이지만, 일터는 시내 한복판의 말끔한 오피스 빌딩이라는 점에서, 당시 서울의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투영된 도시 공간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철호의 계리사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입구에는 ‘대한상공회의소’라는 명판이 걸려 있는데, 2025년 현재까지도 상공회의소는 남대문 바로 옆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비탈의 판잣집을 내려온 철호가 서울의 중심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그가 아침저녁으로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치라 해석할 수 있다. 판잣집 사이로 내려와(상) 계리사 사무실(대한상공회의소 건물)로 들어서는 철호(하)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1957년에 준공되어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現 흥국생명빌딩)은 영화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등장하는 건물이다. 카메라가 남대문을 잡으면 반드시 화각에 들어오는 탁월한 입지 덕분에, 1966년작 <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에서도 남대문 주변 전경을 비출 때면 이 빌딩이 당당히 중앙을 차지한다.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이 정성 들여 설계한 오피스 빌딩으로, 지금 보아도 유선형 외관이 인상적이며, <오발탄> 촬영 당시에는 더욱이 초현대적이고 세련된 자본의 상징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극중에서 철호의 동생 영호( 최무룡 )는 이 빌딩을 올려다보았다가, 후반부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마침내 은행강도를 감행하는데, 이 두 시선의 대비를 통해 감독은 전후 제대군인들의 비극적 처지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현대식 빌딩을 의도적으로 대조한 것으로 보인다. <오발탄> 중 한국상업은행 남대문지점 한국산업은행 남대문지점 터에 현재 자리한 흥국생명빌딩 (사진: 필자 제공)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러닝타임 63분경, 철호는 집에 들어가려다 노모( 노재신 )의 “가자, 가자” 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려 남산 중턱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본다. 남산 중턱에는 판잣집이 들어서기 이전, 일제강점기부터 부유층을 위한 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주택지의 거주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철호와 같은 판잣집 주민들은 언덕 한참 아래 한강로의 전차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철호가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경은 부의 상징이 아닌 가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부유한 이들이나 관광객이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과, 산비탈 빈민이 도심을 ‘마지못해’ 내려다봐야 하는 현실의 차이를 이 시퀀스는 절묘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철호가 내려다본 서울 전경 영호의 도주 영화 후반, 은행강도를 감행한 영호의 도주 장면은 경찰 무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종로2가와 청계천4가, 5가, 달리는 노면전차의 궤도, 그리고 종암동으로 이어지는 추격전은 당시 구간별로 진행 중이던 청계천 복개 공사 현장에서의 총격전까지 더해져 강렬한 긴박감을 자아낸다. 1930년대 후반 시작되어 전쟁 이후 1958년에 재개된 청계천 복개 공사는 자재와 예산 부족으로 부분적으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영호와 같은 도망자가 복개된 지하 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제공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전차를 타고 도망가는 영호의 모습 대신, 카메라가 어지럽게 뻗어나가는 전차 선로를 속도감 있게 포착해 낸 장면이다. 특히 쭉 뻗어나가던 선로에서 갈라져 나가는 분기점을 담아냄으로써, 감독은 영호의 돌이킬 수 없는 일탈을 은유적으로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복개된 청계천의 지하 공간 전차가 빠르게 달리는 와중 포착된 선로의 분기점 철호의 배회 영호는 결국 체포되고 부인은 출산 중 사망한 상황에서, 넋이 나간 철호는 서울 도심을 정처 없이 배회한다. 러닝타임 95분경, 딸에게 사주고 싶었던 신발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철호의 뒤로 반도호텔(1938년 준공, 1976년 철거)과 미도파백화점(現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의 세련된 외관이 드러난다. 당시 이 거리의 랜드마크였던 미도파백화점과 반도호텔 중 반도호텔은 롯데호텔로 재건축되며 그 흔적을 감췄지만, 미도파백화점은 리모델링을 거쳐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로 남아있다. 덕분에 지금도 을지로입구역에서는 영화 속 장면과 동일한 구도로 <오발탄>의 의도를 마주할 수 있다. 극중 반도호텔이 등장한 자리의 현재 모습 (사진: 필자 제공) 극중 미도파백화점과 현재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명동본점 (사진: 필자 제공) 유현목 (1925-2009) 감독은 생전 인터뷰에서 영화 속 판잣집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해방촌을 방문하여 영호네 집과 같은 실제 거처를 물색했다고 밝혔다. 감독은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생략된 서울의 도시공간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 <오발탄>은 시간이 흘러도 당시 서울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빈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는 마치 ‘서울의 도시 공간’이라는 이름 없는 배역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것과 같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무언의 명배우의 연기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오발탄>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오발탄". '욕망과 좌절의 거리 서울'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