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실
- 감독
- 고낙균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정예영, 남기찬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사진첩 속에서 그 누군가는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진첩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죠. 그렇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한 ‘어느 영화인의 사진첩’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인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사진첩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경기도 시흥군 동면 안양리(현 안양시), 얼핏 봐도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일 정도로 인파가 북적이는 이곳.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일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공사장에 말이다.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짓고 있는 중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멋들어지게 늘어서서 단체 사진은 또 왜 찍고 있는 걸까? 혹시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일까? (좌) 홍찬, 현제명 등 / (우) 박계주, 조경희 (좌) 한형모, 허백년, 이진섭 등 / (우) 김학성, 유계선 등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들어설 것 같은 흥분으로 가득한 이곳은 다름 아닌, 동양 최대 규모의 영화 스튜디오가 될 수도영화사(대표 홍찬 ) 안양촬영소 정초식 및 상량식(이하 정초식) 현장이다.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 속 여러 장에 걸쳐 발견되는 일련의 사진들에는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과 현제명 박사, 문학가 박계주 와 조경희, 시나리오 작가 유한철 과 이진섭 , 영화평론가 임영 과 허백년 , 스틸 작가 백영호 , 감독 한형모 , 배우 이민 과 유계선 등의 인물들이 포착되어 있다. 생전 이 사진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던 촬영감독 김학성 의 모습 역시 박혀있다. 그러나 이 행사에는 문화계 인사만 자리한 것이 아니었다. 단신에 가까운 신문 기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동정을 따라가는 <대한뉴스>에서 확인되는 이날의 공식 기록은 이러하다. 안양촬영소 정초식은 1956년 10월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양리 공사 현장에서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현제명 박사는 공사 경과를 보고했고, 이승만 대통령과 최규남 문교부 장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주1 그 밖에도 여기에는 당시 민의원 의장이었던 이기붕과 내무부 장관이었던 이익흥 등의 정부 인사 역시 자리했다. 영화배우 주증녀 가 영화인 대표로서 단상에 올라 대통령에게 꽃다발을 전달했고, 정초식 이후 대통령은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촬영소 모형도를 살폈다. *주2 이 같은 공식 기록을 놔두고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의 사진들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것이 다름 아닌 ‘개인의 기록’이라는 데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열거하며 대통령의 동정에 초점을 맞춘 공적 보도와 달리, 이 일련의 사진들은 순수하게, 안양촬영소 건립에 들뜬 영화인의 시선으로 기록된 것들이다. <대한뉴스>에서 전달되는 근엄하고 정제된 분위기와 달리, 사진은 어딘가 다소 어수선하고 북적인다.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시각 요소만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왠지 이곳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대화 소리, 북적이는 인파와 공사장의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것만 같다. 공적 기록과 달리 정제되지 못한 개인의 사진(심지어 이 사진들은 인화되지 못한 채 필름으로 남아 있다)은 이렇게 예상외의 것마저 전달한다. 그렇다면 영화인뿐 아니라 여러 문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모두 축하하고 있는 안양촬영소 건립이란 당시에 어떤 의미였을까? 일제강점기 때부터 국내의 영화인들은 영세한 자본에다 촬영소는 물론이고 변변한 영화 기자재도 없는 현실을 탄식하며 탄탄한 자본력을 가진 영화 기업을 기대했고, 영화 예술을 위해 헌신하는 굴지의 독지가가 나타나길 바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기도 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고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있는 시설마저 파괴되었으니, 영화인들이 느꼈을 실망과 좌절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고 쉬이 짐작 가능하다. < 춘향전 >(이규환, 1955년 국도극장 개봉) 흥행을 계기로 영화 제작에 숨통이 조금 트였다고는 하지만, 안양촬영소가 개소하기 전까지 국내에 있는 영화촬영소라고는 미국의 아시아재단 원조로 들여온 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정릉 스튜디오와 < 자유부인 >(한형모, 1956)의 제작사 삼성영화사가 서울 군자동에 설립한 삼성스튜디오 정도였다. 이마저도 모두 안양촬영소가 한창 공사 중이던 1957년의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1956년 10월의 안양촬영소 상량식이 영화계, 나아가 문화계 전반의 큰 행사이자 축제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안양촬영소는 대지 면적 32,000평, 건평 5,400평의 규모로, 자타공인 당시 동양 최대 스튜디오였다. 한국영화 1세대 촬영기사이자 테크니션이던 이필우 의 설계를 바탕으로, 3개의 스튜디오(500평, 380평, 150평)와 래보라토리(105평), 녹음실(60평), 소도구 및 대도구 제작실(150평), 분장실(100평), 촬영 장비 저장소(100평) 등을 구비했고, 식당과 샤워실, 총 3,300kW 출력이 가능한 변전실 3개 등의 부대 시설까지 완비했다. 기자재로는 당시 접하기 힘들었던 미첼 NC 카메라 3대와 웨스트렉스 녹음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최신 설비와 시설을 자랑했다. *주3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확인되는 이 같은 모습을 차츰 갖춰가고 있던 1956년 10월, 사진 속의 이날은 그렇기에 더욱 흥분과 경이로 가득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근사하게 차려입고 이곳에 모인 많은 이들의 상기된 표정은 안양촬영소가 영화인들에게 와닿는 의의를 설명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편 안양촬영소가 여전히 한창 공사 중이던 1957년 3월의 어느 날, 수도영화사 대표 홍찬은 《국제영화》와의 인터뷰에서 촬영과 조명, 소품, 의상, 메이크업 등의 기술 스태프 500여 명을 전속으로 기용할 예정임을 은연중에 밝히기도 했다. *주4 홍찬이 발표한 이 말이 사실이라면, 수도영화사의 안양촬영소 건립은 영화인들에게 또다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속’이라 함은 곧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영화사가 안양촬영소 건립과 함께 제시한 청사진은 영화인들이 불안정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도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스태프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지만, 위 사진들의 원 소장자 김학성이 수도영화사와 촬영감독 전속 계약을 맺은 사실은 그의 컬렉션을 통해 확인된다. 김학성의 수도영화사 전속 촬영감독 임명장 (한국영화박물관 상설 전시 자료, 우측은 필자의 한글 병기) 수도영화사의 전속 촬영감독으로서, 김학성은 이곳에서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 창립 작품 < 생명 >(이강천, 1958)의 촬영을 담당했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도 수도영화사 전속 촬영감독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양촬영소 상량식 사진들 못지않게, 촬영감독 김학성 컬렉션에는 그가 <생명>을 촬영할 당시에 찍은 사진들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영화사 사무실에서 촬영된 필름을 검토하고 있는 모습부터 <생명> 고사 현장, 한강 로케이션 촬영 현장과 안양촬영소 세트장에 이르기까지, 사진 자료만도 89점에 달한다. 이는 그가 참여한 작품에 관한 컬렉션 사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성대하게 지어진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의 수명은 안타깝게도 그리 길지 못했다. 수도영화사는 창립 작품 <생명>에 이어 < 낭만열차 >(박상호, 1959)를 제작했지만, 두 작품의 잇따른 흥행 부진으로 수십억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안양촬영소는 1959년 4월 부도 처리되며 상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갔다. 이후 선민영화사와 홍성기 감독, 범아영화사가 잠시 운영을 맡기도 했지만, 한동안 방치되었고 1966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인수돼 안양필름(1967~1968), 안양영화제작주식회사(1970~1973) 등의 스튜디오로 활용되었다. *주5 *** 주1. “안양촬영소 정초식 성대”, 《조선일보》 1956. 10. 18., (석)3면. 주2. “ 대통령 각하, 안양촬영소 정초식에 임석 ”, <대한뉴스> 제94호, 1956. 10. 주3. 안재석, 「 안양촬영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4. “[신춘대담 no.3] 현란한 문화기업의 개화전: 영화산업의 왕자 ‘수도’의 구상”, 《국제영화》 1957년 4월호(15호), 93쪽. 주5. 안재석, 앞의 글; 조준형, 『영화제국 신필름』, 한국영상자료원, 2009.
<햇볕을 볼 시간>을 연출한 이다영 감독은 제작일지를 통해 이 작품이 “2021년 여름, 6명의 동료와 함께 찍은 단편영화”라고 적었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명징한 작품 소개가 있을까. 감독은 작품의 이야기를 포장할 수 있는 미사여구를 쓰는 대신 작업 과정을 사실적으로 압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제작일지에는 제작 동기를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도 있다. “한 달 동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우리끼리 즐기면서 영화 찍으면 재밌겠다.” 제작일지에 적힌 이 두 문장은 영화 만들기가 어떤 목적을 위해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닌 영화 만들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햇볕을 볼 시간>은 영화 만들기에 빠져든 영화인들을 위한 그리고 그들이 만든 세계에 빠져들 관객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불완전한 상태를 가진 사물 또는 사람이다. 여주인공 재경은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이다. 그녀는 출연이 예정된 작품의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연습에 몰두한다. 영화 속 주요 소품 중 하나인 외바퀴 자전거는 재경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녀의 자질과 가능성을 두루 비추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외바퀴 자전거는 바퀴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재경은 미숙하게나마 외바퀴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그녀가 연기해야 할 캐릭터는 그녀보다 더 능숙하게 외바퀴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야 한다. 배우와 캐릭터의 불일치 그리고 배우의 현재와 배우가 꿈꾸는 미래의 불일치. 이러한 이유로 재경에 대한 문자적 묘사는 ‘아직’이라는 부사와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아니다’ 혹은 어떤 상태를 부정하는 ‘없다’라는 형용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그녀는 아직 그녀가 꿈꾸는 배역이 갖추어야 할 어떤 자질이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재경과 동거하고 있는 현수 또한 불안한 현재를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현수는 일상 곳곳에서 소리를 수집하여 음악을 만드는 일을 즐겨 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생계유지를 위해 하는 일은 사운드 엔지니어이다. 만약 현수가 음악가로서의 꿈을 꾸고 있다면 그가 소망하는 미래는 현재 그의 직업적인 일로 인해서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재경은 현수의 음악과 그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에게 유튜브를 해보라고 권하지만, 그런 재경의 제안에 현수는 “모르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현수는 자신의 현재가 불안정하다고 해서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내기를 걸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 현수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그것은 현수가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될 시점이 가까워지자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겠다고 통보하면서부터 시작되는 불안이다. 이 일로 현수와 재경의 삶에는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두 사람은 가까운 미래에 정든 공간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과거와 미래는 현재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 또한 재경과 현수의 일상에서 불현듯이 감지되는 과거의 어느 순간 또는 미래의 어느 순간과 마주할 수 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영화는 어떻게 현재를 묘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어떻게 현재라는 시간이 과거나 미래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햇볕을 볼 시간>은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기묘함을 드러내기 위해 신체에 습관의 형태로 각인된 감각을 시각화하는 방식과 함께 특정 대상이 시간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방식을 두루 활용하고 있다. 먼저 전자의 경우로는 신체와 몸짓을 통해 시간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장면들이 있다. 재경이 출근, 퇴근, 외출 등을 할 때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모습, 현수가 녹음실에서 자판을 보지도 않고 키보드를 다루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재경과 현수가 의례적인 몸짓으로 가벼운 신체 접촉과 함께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재경과 현수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함께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 등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이 장면들 모두 재경과 현수가 직업적으로나 일상적으로나 반복된 행동 양식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장면에서 배우들의 몸짓은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과거, 즉 영화가 애써 다 보여주지 않은 캐릭터의 과거의 누적된 경험을 관객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음으로 후자의 경우로는 특정 대상이 시간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하는 상태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대체로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재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의 배역을 따내기 위해 외바퀴 자전거를 타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예로는 재경이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로 구연동화를 하는 장면들을 거론할 수 있다. 재경은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즐거워하기를 바라면서 구연동화의 시연 방식을 조금씩 바꾼다. 재경은 자신의 구연동화를 듣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미래, 즉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러 시도를 한 것이다. 또한, 이사를 앞두고 재경과 현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사소한 언쟁을 벌이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반복과 습관을 통해 과거가 현재로 지속되고, 기대와 예측을 통해 현재가 미래로 연장되는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두 개의 시간, 즉 과거가 새어 들어오는 현재와 미래가 새어 들어오는 현재는 질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실상 두 경우 모두 시간의 속성이 인간이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에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썼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시간이 이음매에서 벗어나” 있는 그런 상태를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분명 뒤엉킨 시간의 질서는 우리를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들겠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시간의 기묘한 성격으로부터 도리어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면 우리는 무기력해질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나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좌절, 무기력, 패배,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고 난 뒤에 따사한 햇살과 말간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은 우리에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행복과 위로를 전해주기도 한다. <햇볕을 볼 시간>에서 그런 우연은 재경이 산 중고 캠코더 안에서 발견된 누군가가 찍어 놓은 동네 풍경 또는 재경과 현수가 함께 하는 여러 소소한 일상들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다른 시간적 경험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그것이 다시 하나의 리듬을 구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삶의 흐름이 만들어낸 하나의 교항곡과 같다. 음악의 리듬을 듣고 느끼는 것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듯이 누군가의 삶의 리듬을 보고 느끼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
아네트는 두 발로 걷지 못한다. 침대에 혼자 남겨진 앤(마리옹 코티아르)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몇 걸음 걸어오다가 쓰러지고 만다. 앤이 “그대로 계속 걸으렴, 한발 한발씩”이라 격려의 노래를 부르지만 결국 실패한다. 걷지 못하는 대신 아네트는 침대에 눕거나 바닥에 앉아 있고, 이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눕거나 앉을 수 없는 무대 위에서는 차라리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오른다. 레오스 카락스는 < 아네트 >에서 앤과 헨리 사이에 태어난 어린아이 아네트를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표현했다. 단순히 촬영하는 데 있어서 실제 어린아이 배우가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보다 수월하다는 이유로 결정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인형이라는 소품의 의미를 짚어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아네트가 영화에 부여하는 조건을 말해보고 싶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처럼 두 발로 걷지 않는 마리오네트 피사체가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화면의 부자유이기 때문이다. 말과 걸음이 금지된 마리오네트 인형이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되면서 영화는 불가피하게 숏의 형식을 전환한다. 설계된 장면의 동선을 교정하고, 공간과 다른 공간을 비약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이제 <아네트>의 인물들은 하나의 장면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멈춰 서서 침묵하는 아네트를 품에 안거나,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반응할 따름이다. 아네트가 닫힌 입을 열고 노래할 때까지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영화의 마지막 공연에서처럼 말이다. 녹음실에서 시작해 한밤의 거리까지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의 연속적인 롱테이크는 성립되지 않는다. 앤과 헨리가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이동하는 매혹적인 순간도 마찬가지다. 앤의 죽음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헨리의 거짓 변명은 이런 차원에서 의미심장한데, 아네트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은 영화 전체에 드리워진 역학적인 층위의 속박처럼 들린다. 아네트가 머무는 자리에서 영화는 벗어날 수 없다. 이 마리오네트 인형을 주시하기 시작하면서, <아네트>를 관류하던 통상적인 영화의 규칙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아네트라는 인형극의 기호가 실사 영화의 세계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한몸을 이루며, 두 인물이 대화하고 움직이고 행동을 주고받는 통상적인 화면의 규범에서 벗어난 영화의 논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네트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이 마리오네트 인형은 고정된 기반(Grund) 위에 발을 디디는 대신 바닥없는 심연(Ab-grund)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른다. 좌표를 가늠할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빛을 발하며 부유하는 아네트의 움직임은 기존의 영화적 공간을 추상적으로 뒤튼다. 아네트는 그 어두운 평면 위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어둠을 영화적 무대의 공간으로 재편하는 것은 이 광학적 인형(Optical toy)이 만들어내는 한없이 가벼운 움직임이다. 물리적인 발걸음과 탈것으로 이곳과 저곳을 오가던 영화는 공중에 떠오른 아네트의 신체를 빌려 가상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든 곳으로 움직인다. 아네트의 변형된 움직임이 곧 영화의 변형된 형태가 된다. <아네트>가 구축하는 영화적 세계의 이미지는 혼종적이다. 그 가운데에는 영화의 순수한 형태를 위협하는 서로 다른 무대들의 표상이 있다. 관객들을 웃음으로 ‘죽여주는’ 헨리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과 사람들을 ‘구원하는’ 앤의 오페라 무대, 그리고 앤의 목소리를 이어받아 노래를 부르는 아네트의 무대는 각각의 상이한 속성과 외형을 드러내며 한 영화의 내부에 이질적으로 접합해 있다. 카락스는 객석을 가득 메운 극장의 관객들을 묘사한 킹 비더의 <군중>(1928)의 한 장면과 헨리와 앤의 공연을 지켜보는 무대의 관중들을 수평적으로 배치하고,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라이브 공연의 롱테이크와 스마트폰으로 촬영되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조각난 영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네트>라는 독특한 뮤지컬 영화는 영화의 옆자리에 무대와 객석을,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영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이 혼종적인 결과물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영화적’인 걸작이 아니다. 반대로, <아네트>는 놀라우리만큼 다면적인 비영화적 장치들로 편재한 비순수 영화의 한 사례다. 영화적인 것들과 비영화적인 것들이 분열적으로 경합을 벌이는 <아네트>에서 ‘영화적인 것’의 주요한 참조물 가운데 하나는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선라이즈>(1927)이다. 차 안에서 악몽을 꾸고 깨어난 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양식적인 제스처, 침대에 앉은 헨리의 불안한 신체 위로 유령이 된 앤의 형체가 겹쳐지는 이중인화의 표현은 무르나우의 영화에 담긴 세부를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영화가 강렬하게 공유하는 것은 물에 빠진 여인의 이미지일 터이다. <선라이즈>의 남자와 <아네트>의 헨리는 모두 배 위에서 아내를 물에 빠트려 죽이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카락스는 “해가 뜨고 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있을 법한 범용한 이야기(<선라이즈>의 도입부에 나오는 자막의 한 부분)”를 기묘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선라이즈>에서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소리의 유혹이었다. 도시에서 온 여자의 휘파람에 이끌려 남자는 집 밖으로 나가고, 소리가 도달하는 곳에서 아내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다만 <선라이즈>는 무성영화다. 음악이 있고 대사가 있지만 목소리는 없다. 부부를 파멸로 인도하는 음성은 영화에 들려오지 않는다(<아네트>가 참조하는 두 편의 무성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꽤나 미묘한데, <군중>과 <선라이즈>는 최초의 토키영화인 <재즈 싱어>(1927)와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의 끝자락에 있는 작품들이다). 그와 달리 <아네트>는 유성영화이며 뮤지컬 영화다. 음악과 노래, 목소리가 모든 순간에 있다. 폭풍우에 휩쓸리지만 끝내 구제되어 살아나는 <선라이즈>의 아내와 다르게 <아네트>의 앤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 위에서 헨리의 손에 의해 물에 빠져 죽는다. 이것으로 연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조차 어려운 아네트의 뻣뻣한 신체에 앤의 목소리가 깃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선라이즈>의 부부는 죽음의 순간을 벗어나 삶의 두 번째 기회를 얻고 구제와 재회의 빛으로 향하는 결말을 맞는다. 카락스의 <아네트>는 오늘날의 영화가 놓인 조건에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고전기의 무성영화가 음성의 유혹을 넘어서는 회복의 몸짓으로 연인의 영화를 완성했다면, 오늘날의 뮤지컬 영화에서 그런 순수한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이는 앤의 악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헨리의 근원적인 폭력성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과 소리는 불균질하게 뒤섞여 모든 곳에 비치된다. 빛을 발산할 때마다 아네트의 목소리를 일깨우는 환등 기구는 혼잡스러운 영상과 소리의 상태를 지시하는 과거형의 장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카락스는 영화의 주변을 맴도는 서로 다른 매체와 영상의 소란을 산포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 조응하듯 앤의 목소리를 이탈한 음성은 아네트에게 깃들어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영화를 움직이게 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아네트의 신체는 영화의 형상을 전환하는 근거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카락스는 영화를 둘러싼 모순과 변형을 간직한 마리오네트 인형과 더불어 <아네트>의 마지막 무대로 진입한다. 헨리가 갇힌 형무소의 면회실에 들어선 마리오네트는 어느 순간 인간의 형상으로 탈바꿈한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발견한 영화의 근원적인 트릭의 원리처럼, 컷이 바뀌면 마리오네트-아네트가 사라지고 인간-아네트가 벽에 기대어 있는 식이다. 영화의 이미지란 언제든지 인형과 인간의 외형을 바꿔치기하고, 아무것도 없는 벽 앞에 피사체를 나타나게 한다. 인형극에는 영화만큼이나 마술적인 속성이 있다고 말한 카락스의 언급은 영화와 인형극을 무람없이 오가는 이 장면에서 매혹적으로 도래한다. 인간-아네트는 헨리 앞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두 발로 걸어온다. 앤의 노랫말처럼 “그대로 계속 걸으렴, 한발 한발씩” 헨리에게 다가온다. 영화의 카메라 또한 공중으로 떠오르는 대신 지면에 멈춰 선다. 무대 위의 공연을 포착한 기나긴 롱테이크 화면과 빠른 속도의 몽타주를 오가며 운행되던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러서야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시선을 오가는 숏/역숏의 데쿠파주를 선보인다. 이 자리에서 영화에 남겨진 것은 서로의 얼굴과 시선을 주고받는 영화적 방법의 해체일까, 그것의 갱생일까? 맞부딪힌 두 얼굴이 잠시나마 한 장면에 포개진 뒤 하나의 얼굴은 화면 바깥으로 사라지고, 하나의 얼굴은 등을 돌린다. 그러고 나면 바닥에 떨어진 마리오네트-아네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인형이 움직이지 않는 지점에서 영화도 화면을 멈춘다. 카락스가 당도한 영화의 심연이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