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런
- 감독
- 닉 파크, 피터 로드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멜 깁슨, 줄리아 사왈하, 필 다니엘스, 린 퍼거슨, 토니 헤이가스, 제인 호록스, 티모시 스펄, 이멜다 스턴톤, 벤자민 위스로우, 미란다 리차드슨, 존 샤리안, 조 알랜, 리사 카이, 로라 스트라찬
지난 4월,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했을 때, 문득 아드만 스튜디오의 1989년작 단편 < 동물원 인터뷰 Creature Comforts > 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삶의 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대처가 총리직을 그만두기 1년전에 제작, 발표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개인적으로 당시 집권 보수당의 정책과 영국인들의 삶을 결부시키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평론가의 가장 나태하고도 안일한 태도는 특정 작품을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민족성/국민성과 같은 상상적 본질로 환원시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현실 삶과 작품의 연관 고리를 거두기 어려운 까닭은 인터뷰 형식이 깔고 있는 ‘목소리’ 때문일 테다. 남녀노소, 토박이, 이방인을 아우르는 등장 목소리들은 방금 전에 거리에서 인터뷰를 따온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분명 ‘자신의 삶’에 대해 면전에서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여전히 든다. 이전에도 아드만은 ‘대화’ 시리즈 (Animated Conversations 시리즈와 Conversation Pieces 시리즈)를 만들면서 목소리의 현장성을 살린 선녹음 방식을 취했는데, 닉 파크의 합류 후 립싱크는 아드만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한층 강화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 월레스 앤 그로밋 >의 그로밋은 말을 하지 않는다.) 현실과 연결된 또 하나의 장치는 카메라/스크린의 사각 틀이 만들어내는 프레이밍(framing)이다. 카메라는 이미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속의 동물과 바깥의 관람객을 구분하는 쇠창살이나 유리창은 사라진다. 그리고 마이크를 쥔 ‘사람’의 손이 프레임에 걸쳐있다. 인터뷰 중간에 프레임 바깥에서 프레임 안으로 공이 날아 들어오기도 하고, 물벼락이 들이치기도 한다. 이처럼 카메라가 잘라낸 프레임의 위, 아래, 양옆, 앞, 뒤로 끊임없이 개입하고 확장하면서 동물원 속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거리를 좁혀간다. 이들 동물원 속 동물이 말하는 안락함은 영국이라는 국가체에서 흥미로운 쌍곡선을 그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복지는 영국 근대 자본주의의 고안물이었고, 그러한 복지는 인류를 뛰어넘어 근대적 동물원의 효시격인 런던 동물원에서 보듯 동물의 안식처(라는 여전히 논쟁이 잦아들지 않는 주장)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신자유주의의 논리 속에서 공공 복지 부문이 처참히 파괴된 시기였다. 그래서 제도가 보장하는 삶의 안락함은 이미 인간의 세상에서는 사라졌고 (시장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 세계로 내던져졌다), 동물원 울타리 속 동물들에게나 그럭저럭 허용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5분남짓의 짤막한 이 작품을 보다보면, 동물원이라는 전시 공간 속 전시물이었던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 관객의 처지가 어느 순간 역전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전적으로 철의 여인에게 헌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삶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동물원이나 그 바깥이나 늘 그렇듯이 여전히 유효한 민생 관련 현안이지 않은가? 다만 어떠한 삶이 만족할 만한 삶인가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의 목소리를 빌자면 단지 ‘밥 먹여주는’ 수준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리고 분문보다 더 긴 사족들 # 1. 브라질에서 건너온 사자는 아마존을 꿈꾼다. 실제 브라질 이주 남성의 목소리를 따온 이 동물을 사자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갈기 없는 수사자이거나, 고양이과의 다른 맹수이거나 하는 식으로 모호함을 남긴다. 2005년, 7/7 테러 직후 영국 경찰은 테러 용의자로 한 청년을 추적, 현장 사살하였다. 아랍계로 오인된 이 청년은 브라질에서 왔다. 인종적, 문화적으로도 이슬람권과는 연관이 없었다. 모호함과 선입견이 낳은 비극이었다. # 2. 이 작품을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폴란드 억양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 이주 노동자의 대거 유입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를 패러디하여 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 3. 막내 북극곰의 이름은 ‘앤드류’인데 (그렇다면 첫째 북극곰 이름은 찰스, 아빠 북극곰은 필립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요즘 리메이크한다면 두 어린 북극곰의 이름도 윌리엄과 해리(헨리)라고 부를 법하다. 아드만은 장편 < 치킨 런 > 속에서 탈출을 꿈꾸는 암탉 진저를 질주의 속도감 속에서 다루었는데, 나는 다이애너 전 왕세자비와의 오버랩을 지우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윌리엄이 득남을 하였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도 흥얼대며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까.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동물의 세계를 Animal Kingdom, 영국을 United Kingdom이라고 한다.) # 4. 대처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영국의 언론 매체들은 이미 입을 맞춘듯 하나의 헤드라인을 손쉽게 뽑아냈다. “영국을 둘로 쪼갠 인물.” 이 분할비율이 5:5 가르마를 뜻하지는 않는다. 대처의 발자취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한국의 TV에서 방송했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이 안다면 자못 뜨아해 할 것이다. 혹자는 대처의 오랜 재임 기간이 영국인의 지지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테지만, 대서양 건너 그녀의 소울 메이트인 레이건의 연임과 결부시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한결 손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이들이 침체에 빠져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단숨에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제 지표의 상승 뒤에는 공통적으로 전쟁이 놓여있고 (내전이 아닌, 자국 영토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데이터가 필요할 테다. 다만 ‘20세기의 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다’는 에릭 홉스봄의 혜안에 기대보고자 한다), 이 전시 상황은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모으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었으니까. 대처 시대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집권 기간 이상으로 오래갔다. 일례로, 2005년 선거에서 세번째 연임을 노리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자신들이 등장하지 않는 선거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주인공은 대처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던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당수였고, 영상은 대처와 메이저 전 총리로 이어지는 보수당 정권 시절에 이루어진 대량 해고와 공장 폐쇄, 노동자들의 항의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력, 단호한 정책 실행의지를 피력하는 보수당 정치인의 모습 등의 보도 사진들을 엮은 것이었다. 그 이미지들에 “Memories~”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얹는 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이 선거 영상물의 제목은 ‘기억하는가?Remember?’였다. 당시 보수당은 조금 더 자극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도대체 병원은 왜 이다지도 불결한 건가?’, ‘어째서 경찰들은 안 보이는가?’와 같은 도발적 문구를 낙서체로 휘갈긴 대형 포스터를 곳곳에 붙였는데, 유권자들은 친절히 그 포스터들 위에 보수당의 질문에 답을 달아주었다. ‘그러니까 병원 청소부를 자른 건 누군데?’, ‘경찰인력을 축소한 게 누구였을까?’라는 문구를 진짜 낙서 글씨로 말이다.
한해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들을 어림잡아 헤아려도 그 수가 몇 백 개를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몇몇 해외 영화제들을 굳이 꼽자면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행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와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예술 지향의 일본의 히로시마와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북미를 대표하는 캐나다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리고 세계 컴퓨터 그래픽스 역사의 궤적을 함께 그려온 미국 시그래프 컴퓨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정도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영화제라 할 수 있겠다(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전 세계에는 수 없이 많은 영화제들이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위에 개성을 입혀 신선하고 톡톡 튀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애니메이션의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선사하고 있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국내 어느 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시작한 영화제 인생이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처음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그렇게 덤벼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영화제 운영이 뭔지도 모르는 제로베이스에서, 소위 4대 영화제라고 불리는 페스티벌들의 홈페이지를 일일이 뒤져가며 그렇게 시작했으니 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표현이 그저 적절할 뿐이다. 그래도 역시 세월만한 스승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영화제 프로그래머란 직업적 특성 상 세계 여러 나라의 페스티벌들을 다니며 작품들을 찾아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색다른 경험과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는데 바로 이런 즐거움과 설렘이 지금도 내가 영화제를 계속하는 이유인 것 같다. 세계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담아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행사를 찾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참신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수혈하고 새로운 포맷을 제시하며 진화해 나간다. 실사 영화제들처럼 레드카펫 위에 세계적인 스타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것도 아니요, 세계 영화산업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지만, 여기에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마다 ‘변화’ 혹은 ‘지속’이라는 나름대로 지켜나가야 할 명제와 철학을 담아 행사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때로는 잘나가던 페스티벌도 정체된 철학만을 고수하다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며 도태되기도 한다. 자그레브와 함께 가장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영화제 스타일을 고수해 왔던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지난 2004년 10회째를 고비로 산업 논리를 일부 수용한 마켓을 유치하면서 변화를 꾀했고, 2008년까지 비엔날레로 개최됐던 홀랜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연례행사로 전환하면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안시 역시 수년전, 정체된 페스티벌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연간행사로의 변모를 꾀했고 상업지향적인 페스티벌로 전향하면서 다른 이종 행사와의 교류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fmx행사와 같이 영화제와 컨퍼런스가 만나면서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하이브리드적 페스티벌 포맷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들은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는 애니메이션 환경과 장르를 수용하며 발빠르게 적응해 나가기도 하고, 뚝심과 열정으로 전통과 역사를 지켜나가기도 하면서 애니메이션의 활성화와 과거에 누렸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꿈꾸며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페스티벌들 중에서도 독특함과 세심한 친절함, 그리고 페스티벌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열정 때문에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영화제가 있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페스티벌이 보여주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개성 가득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프로그램과 함께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영화제가 갖춰야 할 덕목은 바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해마다 그곳을 가면 오랜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보고 싶은 작품들을 챙겨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영화제를 지속적으로 찾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가면 늘 뵐 수 있었던 분이 바로 퍼펫 애니메이션의 거장 카와모토 키하치로 감독이셨다. 그리고 시그래프에 가면 현존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대가들을 모두 만날 수 있고, 영국 브래드포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찾으면 영국을 대표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닉 파크 감독과 매혹적인 연필 드로잉의 조안나 퀸 감독 등도 볼 수 있다. 또 어느 영화제에서 운이 좋으면 <나무를 심는 사람>의 프레데릭 벡 감독과 잠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페스티벌과 같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며 한 걸음에 달려와 열심히 참여해 주는 페스티벌들. 페스티벌이 변화의 기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도 페스티벌의 존재 이유를 피력하며 끊임없이 진화해 나가고 있는 해외의 페스티벌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렵고 힘들게 쌓아올린 한국의 애니메이션 역사와 함께 지켜나가고픈 페스티벌을 우린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가? 변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역사와 전통은 절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페스티벌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과 애정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비전을 보여줘야 관객들이 영화제를 계속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변화에 성공한 영화제들에서 그런 의지와 열정을 읽었다. 해마다 규모가 쪼그라드는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우리도 안시나 히로시마, 시그래프 행사들처럼 오랫동안 지켜나갈 가치가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대표선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