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었어
- 감독
- 오은진, 이정원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유인선, 이민주, 이원호, 오은진, 이우빈, 이정원
< 팔도사나이 >(1969)를 시작으로 < 실록 김두한 >(1974)과 < 협객 김두한 >(1975), 그리고 허경 필자가 소개한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1981)에 이르기까지 김효천 감독의 ‘김두한 사랑’은 남달랐다(<팔도사나이>와 1982년작 < 종로 부루스 >에서는 주인공이 김두한으로 짐작이 가긴 하나 구체적으로 호명되지는 않는다). 물론 김두한의 흔적이 지워진 액션영화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일본 야쿠자 장르와 반공영화가 결합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1980)이다. 그 매력의 핵심은 역시 김희라 의 화끈한 남성미로 인한 것이다. 장동휘 , 박노식 , 이대근 , 김희라, 이강조 , 윤승원 으로 이어지는 ‘김효천의 남자들’ 리스트에서 그는 단연 돋보인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이 카리스마와 별개로 뭔가 ‘토속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이강조는 실력에 비해 유명세가 떨어지고, 김효천 액션영화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 일본대부 >(1989)의 윤승원은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남은 상태로 작별을 고했다. 그에 반해 김희라는 진정 세련되고 멋지다. 남자 중의 남자다. 김효천 의 남자들, 장동휘 박노식 이대근 김희라 이강조 윤승원 영화가 시작하면 오사카 아오야마 조직의 ‘오야붕’이 습격당하고, 평소 그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던 가네모도( 김희라 )가 혈혈단신 복수를 하러 떠난다. 적의 본거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을 ‘아오야마가의 불사신 가네모도’라고 (자기 입으로 직접) 밝히고는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박력부터 남다르다. 역시 김희라! 그리고는 단검 하나로 여러 개의 좁은 다다미방을 저벅저벅 옮겨 다니며 싸운다. 굳이 ‘가오 상하게’ 뛰어다니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적들 앞에서도 ‘어차피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듯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으로 대결에 임하는 그 표정이 딱 ‘쓰바키 산주로’ 도시로 미후네의 그것이다. 상대 오야붕 신타로( 배수천 )가 마사오( 조춘 )를 이용해 가네모도를 처리하고자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잠시 수세에 몰리려는 찰나, 가네모도의 동생 아라이가 멋지게 슬로모션으로 마당에 등장해 졸개들을 화려한 돌려차기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발기술이 약한 김희라의 우직함을 보완하는 김효천 감독 특유의 연출이리라. 그래도 무게중심이 아라이로 기울 수는 없는 법. 가네모도가 창호지 문을 뚫으며 몰래 숨어있던 야쿠자를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하는 장면도 일품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오고 가네모도는 아라이에게 당장 여기를 떠나라고 말한다. 남자답게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말일 것이다. 도망치라 했다고 진짜 혼자서 달아나버린 아라이가 야속하긴 하지만, 뭘 거추장스럽게 줄줄이 끌려간단 말인가. 혈혈단신(feat. 스틸과 캡쳐 화질의 간극) 이처럼 도입부부터 숨 가쁘게 펼쳐지는 습격신은, 김효천 감독 특유의 박력 넘치는 액션 연출과 김희라 의 선 굵은 연기가 결합하여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제야 영화제목이 뜨면서 체포와 동시에 히로시마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가네모도의 모습, 그렇게 감독이 ‘갔다 왔다 치고’라고 말하는 듯 역시 숨 가쁘다. 또 다시 이어지는 크레딧 ‘제작 김치한’. 바로 김효천 감독의 다소 민망한 본명이다. ‘치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초 감독이라니. 그의 액션영화를 흠모하는 것과 별개로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우파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불편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미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다시 도시로 돌아온 김치한, 아니 김희라의 뒤로 “사나이 전성시대... 외로운 별, 세월은 간다... 낭만은 있다...”라는 가수 김동아의 주제가가 흐른다. 히트곡 ‘나를 두고 가려무나’로 유명한 김동아는 1970년대 초반 불난 집에서 아버지를 구하려다 화상을 입어 반년 이상 입원했고, 결국 그 흉한 얼굴로 인해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가수다. 뭔가 그러한 사연도 김효천 감독의 남자영화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제 가네모도는 출소와 함께 못 다한 복수를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복수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일본 라멘을 먹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몇 젓가락 밖에 되지 않는 일본 라멘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먹고 난 다음 젓가락을 아그작 뽀개버리는 모습 또한 박력 넘친다. 그리고 술이 빠질 수 없다. 제목도 어울리게 ‘이방인’이라는 바에 들른 가네모도에게 나이 많은 바텐더가 묻는다. “여행을 다녀오셨나 보군요.” ‘깜빵’ 생활을 여행으로 돌려 표현한 바텐더에게 가네모도는 미소를 띠우며 답한다. “인생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길이야.” 이윽고 바텐더는 ‘귀향’이라는 이름의(물론 자체 작명) 술을 건네는데, 가네모도가 “난 돌아갈 고향이 없네”라고 말하자 “그럼 (고향을 몰라도 그리워한다는 의미에서) 망향이라고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여행과 유학, 그리고 고향과 망향, 거의 직접 시나리오를 썼던 김효천 감독 특유의 낭만성이 부각되는 장면이다. 심지어 바텐더는 자신의 가게를 처음 찾은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며 ‘또 들러 달라’고만 한다. 마초의 낭만 “자네 망향 잊지 않겠네.” “난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 다시 출출해졌는지 그는 한 초밥집에 들른다. 알고 보니 재일교포 겐이찌( 한지일 )와 하루미( 이경실 )가 운영하는 초밥집이다. 초밥을 2인분으로 달라고 하고, 술은 5인분으로 달라고 하는 가네모도에게 하루미는 하트를 뿅뿅 발사한다. 심지어 하루미가 술을 따라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원래 술을 이렇게 마십니다”라며 도쿠리를 원샷하는 신공을 선보인다. 그렇게 배를 채운 가네모도는 신타로 일당의 도박장으로 찾아가 속임수를 쓰는 도박사의 손목을 단검으로 잘라 버리고 “주인의 복수를 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어 7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히로시마의 표범’ 마사오의 목숨마저 가져간다. 그러다 숨어있던 다른 졸개에게 허벅지에 칼이 찔린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이리와, 이리와!”라는 단 두 마디에 칼을 찌른 그 놈은 얼어붙는다. 진정 카리스마 넘친다. 말 그대로 감독 또한 배우의 매력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다리에 찔린 칼을 뽑으며 “이리와, 이리와!” 졸개는 정말 이리와서 얻어 맞는다. 얄궂지만 얻어 맞는 건 고화질로...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모방인가? 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겐이찌와 하루미가 조총련의 협박을 받는 재일교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게다가 가네모도는 물론 그를 보살폈던 오야붕이 한국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총련=북괴’라는 등식의 반공영화 컨벤션이 침투해 들어온다. 당시 영화포스터에도 ‘이 영화는 일본영화가 아닙니다!’라는 카피가 덧붙여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김효천 의 이전 김두한 시리즈가 일종의 반일(反日)적인 성격을 띠었다면, 이제 북괴가 등장하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는 형태를 취한다. 아오야마가의 새로운 오야붕이 된 쟈니( 박근형 )가 가네모도의 빨갱이 소탕을 적극 돕고 나선 것이다. 가네모도와의 대화 도중 영국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는 등 어딘가 낭만적인 모습의 쟈니는(그래서 그는 ‘센티멘털 쟈니’라 불린다), 북조선의 만경봉호가 뭔지도 모르는 그를 향해 “가끔은 자네처럼 신문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해”라며 은근히 ‘디스’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조총련에 속아서 북송선을 타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최후의 대결을 벌이러 떠난다. 그들이 결전을 준비하며 일본도를 닦고 온천에서 피로를 풀 때 흘러나왔던 사운드트랙은 바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1악장’이다. 난감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그 대목에서, 어쨌건 그들은 국경을 초월한 형제애를 나눈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고 아래위는 물론 넥타이까지 하얀 색으로 ‘깔맞춤’ 한 가네모도에게 쟈니는 말한다. “나도 함께 가는 거다. 난 회장님의 복수를 하고 아우의 큰일을 돕고, 내가 가야할 이유는 너무나 많아.” 죽음을 예상하고 거의 즐기는 표정으로 싸우는 가네모도와 ‘폐병’을 앓으며 힘겹게 싸우는 쟈니의 모습은 거의 장철 감독 영화의 적룡과 강대위를 연상시킨다. 심지어 싸우는 와중에 남자들끼리 간절히 손을 맞잡는 마지막 장면의 정서(오우삼의 < 첩혈쌍웅 >에도 수혈됐던)는 장철의 < 대결투 >(1971)의 판박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센티멘털 쟈니는 “너 때문에 내가 멋있게 죽을 수 있다”며 오히려 그를 다독인다. 반공영화답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가네모도의 마지막 모습만 아니었다면, < 오사카의 외로운 별 >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남자들이 손을 맞잡는 마지막의 비장함 끝으로, 김효천 의 액션영화를 흠모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본다. 감격스럽게도 < 킬리만자로 >(2000) 이후 두 번째 영화 < 무뢰한 >을 촬영 중인 오승욱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에서 “밑바닥 사내들의 야비함과 비겁함,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적인 <수호지>적인 의협, 이런 것에 대한 과잉 애정이 너무나 지나쳐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어버린 과잉의 영화”라며 ‘노골적인 빨갱이 혐오’ 정서에 대해서는 “그 꽉 막힌 혐오와 증오가 왜 우리의 바탕인지를. 그의 영화를 보며 우린 그 시대의 오줌 지린내 고약한 우리 동네의 뒷골목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또 < 돌려차기 >(2004)를 만들기도 했던 남상국 감독, 남정욱 이 쓴 「한국영화, 황금기를 찍다」에서는 김효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상찬하고 있다. “김효천 감독의 영화에는 ‘감정’이 있다. 어지러운 시대에 살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나이의 격한 감정이 살아있다. 주인공을 분노의 끝까지 몰아넣고, 관객이 마음 속 깊이 주인공이 복수를 해 주길 원할 때, 마음 같아서는 관객이 스크린으로 뛰쳐 들어가 악당들을 쳐 죽이고 싶을 때, 바로 그 때! 주인공의 분노를 터트리고, 주인공의 주먹에 악당들은 지리멸렬 나가떨어지고, 관객들은 가슴이 뻥 뚫리면서 주인공의 복수에 박수를 치게 하는 그런 연출의 대가다.” 김희라 이경실 박근형 감독: 김효천 각본: 김효천 개봉극장: 중앙(서울) 관람인원: 30,271(서울)
샌프란시코 강력반 형사 하나가 단골 식당에 들른다. 언제나처럼 커피를 시키며 신문에 정신 팔린 형사. 그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단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사실 식당은 4인조 무장 강도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음에도 신문 삼매경에 빠진 형사는 종업원이 타준 커피를 받아 계산을 치르고 유유히 밖으로 나선다. 한 모금 커피를 맛보고서야 고개를 들고 식당을 쳐다보는 형사. 문에는 어느새 영업종료 간판이 걸려있다. 그가 나가자마자 작업을 개시하는 4인조 강도들. 손님과 주인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데, 식당 안쪽 문에 형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우뚝 서 있다. 그의 등장에 깜짝 놀라는 강도들. 그들과 상관없이 형사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10년간 이곳에서 단골로 블랙커피를 마셔왔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너무도 단 커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겠다는 형사의 협박에 영문을 모른 채 되묻는 강도들. 분명 그 혼자 서 있는데 ‘우리’라니? 그러자 스미스와 웨슨과 나라고 대답하는 형사. 그의 ‘스미스 앤 웨슨’ 총에서 불꽃이 튄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3명의 강도. 그리고 인질을 잡은 한 명의 강도에게 총을 겨누며 AFI에서 선정한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대사 6위 에 오른 바로 그 말을 건넨다. “Go ahead, Make my day!” (덤벼봐, 오늘 다 죽었어!) “Go ahead, Make my day!” 7~80년대 가장 파급적이고 논쟁적인 경찰영화였던 <더티 해리> 시리즈는 그간 도덕 교과서에 나올법한 모범적인 경찰 이미지를 걷어차고 악을 악으로 제압하는 이이제이식의, 다소 불경한 태도를 보이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성능의 매그넘 44를 들고 언제나 인상 쓴 얼굴로 당당하게 등장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렇다고 공권력에 대해 불신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나름의 소신과 임계치를 갖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가 이전에 연기했던 마카로니 웨스턴 속 ‘반영웅’ 총잡이들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만 현재로 바뀌었을 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세력과 매스미디어의 탐욕 그리고 70년대 당시 인권 신장과 부흥으로 교묘히 법망을 악용해 피해가는 범죄자들과의 싸움은 과거 황무지 속 무법자들과의 결투와 다를 바 없다고 빗대는 듯하다. 히피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정치 못한 시선이나 보수·우경화된 내러티브가 종종 엿보이지만, 그런 동시에 사회적 입지가 약한 히스패닉과 흑인, 여성과 동양인을 각 시리즈마다 파트너로 택할 만큼 공정하고 진보적인 측면도 갖고 있었다. 그중 시리즈 사상 가장 흥행했던 < 서든 임팩트 >는 여러모로 더티 해리 영화들 중에서 인상적인 특징들을 보이는데, 우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유일하게 직접 감독한 작품이자 영화 내 그의 파트너가 등장하지 않으며, 시리즈의 배경인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 센폴로에서 사건이 전개되고, 유일하게 범인을 처단하지 않고 묵과해주는 파격적인 엔딩을 취하고 있다. 그나마 변함이 없는 게 있다면 시리즈 내내(는 아니다. 3편만 제리 필딩이 맡았다) 음악을 맡아주던 랄로 쉬프린 정도랄까. < 미션 임파서블 > 테마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그는 재즈를 차용한 리드미컬한 악곡으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창출해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미 오랜 기간 방영된 TV 형사극 <매닉스>나 피터 예이츠 감독의 <불리트>를 통해 이런 장르에 최적화된 바 있는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에서도 그루브한 리듬에 탁월한 멜로디 감각으로 시니컬한 영화에 더욱 쿨한 감성을 채워 넣는데, 때론 멜랑꼴리한 라운지 음악으로 우수에 젖다가도, 재즈가 가진 즉흥성과 불협화음으로 혼돈의 시대상과 흉포한 야수성을 드러내고,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고유의 테마를 부여하며 최신 유행 스타일과 접목하는 등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물론 1편부터 5편까지 반복되는 더티 해리의 고유 선율은 존재하지만 이에 특별히 집착하기보단 더 확장되고 펑키한 사운드를 덧입히며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같은 형사의 단죄와 고독한 질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티 해리>에서 락킹한 일렉 기타와 도시감각 넘치는 재즈로 기본 베이스를 잡았다면 2편 < 이것이 법이다 >에선 으스스하고 사이키델릭한 여성 보이스를 극대화시켜 역동적이고 폭력적인 색채를 더했다. 3편 < 집행자 >를 건너뛰고 10년 만에 시리즈에 복귀한 4편 <서든 임팩트>에선 시대적 유행을 받아들여 기본 그루브한 재즈 사운드는 유지한 채 DJ 스크래칭과 무선 경찰 주파수를 믹스시킨 그루브하고 박력 넘치는 메인 테마를 완성해냈다. 이는 당시(1983년) 가장 화두를 이끈 허비 행콕의 ‘Rock it‘을 연상케 만드는 파격적인 힙합 비트로 최첨단 유행을 지나치지 않고 접목시킨 랄로 쉬프린의 노련한 감각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거기에 그루브한 베이스와 열정적인 브라스 섹션이 어우러져 쉽게 잊혀지지 않을 더티 해리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물론 메인 테마 외 다른 큐들도 언더스코어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전의 <더티 해리>와 <이것이 법이다> 때보다 원숙해지고 절정에 오른 쉬프린은 더 크고 풍부해진 스트링 편성에 목관부와 혼의 강조, 그리고 신디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 다양하고 깊어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보다 개인적이고 어두우며 침울해진 영화의 내용처럼 분열적이고 실험적인 큐들도 종종 눈에 띄는데, 트라우마로 가득한 놀이동산을 상징하는 카니발 사운드 (‘Remembering Terror’나 ‘Unicorn’s Head’)의 기괴한 변조와 인용은 여성 유린을 담은 남성 유희에 대한 음악적인 기믹이며, 악당들과 더티 해리와의 최종 대결에서 등장하는 ‘A ray of Light’같은 곡조는 얼핏 그가 주연하고 랄로 쉬프린이 음악을 맡았던 일련 서부극(<일망타진>이나 < 조 키드 >같은)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연상케 한다. 또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차 안에서 흐른 ‘Muder by the sea’의 초반부나 제니퍼와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You’ve come a long way’의 초반부는 라운지 스타일의 무드 곡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안타깝게도 사운드트랙엔 더티 해리의 주된 테마 선율로 만든 엔딩 크레딧 때 흐른 로베타 플랙의 주제곡 ‘This side of forever’가 실려 있지 않은데, 그 연주 버전인 ‘San Francisco after dark’로 조금은 해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든 임팩트>는 랄로 쉬프린의 가장 황홀했던 전성기의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후 그는 브렛 레트너 감독과 < 러시아워 >를 함께 하기 전까지 주로 TV물이나 마이너급 영화들의 음악을 담당하거나 재즈 콘서트 작업에 매진했다. 점점 거장이 되어간 액션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달리 인상적인 필모를 쌓지 못한 랄로 쉬프린은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을 런칭하며 여전히 현역으로 최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비록 상복도 작품복도 유난히 없던 그이지만, 누구나 들으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전설적인 음악을 만든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 중 하나다. 이견이 많았던 <더티 해리> 시리즈와 달리 전혀 이견 없는 스코어를 완성한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빛나는 노력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랄로 쉬프린의 이 강력하고 매력적인 사운드트랙은 영상도서관(F-0444)에서도 만날 수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Murder by the Sea 3. Too Much Sugar 4. Frisco Night 5. Target Practice 6. The Road to San Paolo 7. Remembering Terror 8. Cocktails of Fire 9. Robbery Suspect 10. Ginley’s Bar 11. Another Victim 12. You’ve Come a Long Way 13. Darkness 14. Crazy 15. Hot Shot Cop 16. Alby and Lester Boy 17. The Automag 18. Unicorn’s Head 19. A Ray of Light 20. Stairway to Hell 21. San Francisco After Dark (End Titles) Bonus track: 22. Main Title (Alter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