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 감독
- 곽은미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이민영, 윤혜리, 김지현, 이민영
이 사회의 불균형을 이장하다 “장남도 없이 (어떻게) 무덤을 파냐!” 큰아버지( 유순웅 )의 불호령에 아버지 묘 이장을 하러 고향 마을에 막 도착한 네 자매들은 연락이 되지 않은 남동생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장남, 그 이름이 하필 ‘승락’이다. 혜영( 장리우 ), 금옥( 이선희 ), 금희( 공민정 ), 혜연( 윤금선아 ). 승락의 위로 줄줄이 누나들이 모두 왔는데도, 승락의 승낙 없이는 이장이 불가능한 사회. 승락이 아니라 혜연이 사정상 못 왔다면 이장은 진행되었을, 이곳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딸 넷에 막내아들. 이 집은 말 그대로 아들 낳으려 계속 출산을 했을, 오남매는 구성 자체가 딱 가부장제 가족이다. 이쯤 되면 막내딸 이름이 ‘다음 아이는 아들을 얻겠다’는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은 희생되는 ‘후남’ ‘차남’ ‘필남’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어쨌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온갖 방법을 다해 찾아낸 승락이 화면에 등장하는 건 영화가 시작된 지 44분 36초 만의 일이다. 전체 러닝타임 94분 중 거의 절반이 지나서야, 카메라는 노트북 앞에 앉은 승락의 뒤통수를 필두로 그의 손가락을 훑어 간신히 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에 잔뜩 열 받은 첫째 혜영이 승락이 있는 반지하 창문에 돌을 던지면서다. 여자친구 윤화( 송희준 )의 임신에 책임회피 중인 승락은 여러모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발언권을 가진 중요 인물로 치부된다. 그러니까 그게 남성이 집안의 통솔권을 가지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 사실 큰아버지가 승낙을 데려올 것을 ‘명령’한 건 재개발로 이장을 하게 된 지금, 자신 동생의 묘를 매장 대신 화장하려 하는 조카 딸들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남자인 장남 만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믿으며, 또 그런 이유로 장남인 승락에게 더 큰 권위를 부여해 주려 한다. 가령 이미 죽은 오남매의 아버지는 혜영의 말대로 ‘그 인간 죽어서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문제를 회피하기 급급한 승락은 ‘우리가 (언제까지) 걔 엄마야?’라는 누나 금희의 독설을 받는 대상이다. 영화는 가부장제 아래 집안의 권위를 부여받은 남자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남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엽거나 사랑스럽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겉으로 볼 때 무섭거나(큰아버지), 비겁하거나(승락), 말 안 듣거나(혜영의 아들 동민) 지질(금희의 남친) 해서 여자들을 자주 괴롭힌다. 물론 아버지 묘의 이장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기존 사회 질서에 부합해 흘러가지 않는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남매는 변화하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며, 그래서 지금 심하게 이 사회와 부대끼는 중이다. <이장>의 여성인 네 자매는 그래서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려는 이 사회 여성들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첫째 혜영은 싱글맘이라는 상황으로 인사 가산점이 깎여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권고받았으며, 둘째 금옥은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떳떳하게 판을 뒤집지 못하는 평범한 주부다. 두 언니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도 셋째 금희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철없는 남친에 갑갑한 채로 N포 세대의 곤궁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청춘이다. 여성 인권을 외치는 막내 혜연은 학내에 자신이 애써 붙여놓은 대자보 위에 ‘너도 결국 한남의 씨에 불과한 종족이다’라는 테러성 반응에 맞서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되어 우울증을 겪는 < 82년생 김지영 >(2019)의 ‘김지영’이 이들의 사촌자매 쯤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다. 결국 육아휴직, 남편의 외도, 결혼 문제, 페미니즘 등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고충의 총합이 이 자매 안에 다 보인다. 정승오 감독은 이장을 하러 오랜만에 모인 남매를 혜영의 미니밴에 탑승시킨다. ‘이장 후 받게 될 500만 원을 누가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시종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남매간에 그동안 쌓여 있던 갈등을 점화시킨다. 티격태격 가족 로드무비의 원조 격인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미니밴 버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네 자매와 혜영의 아들인 초등학생 동민( 강민준 ), 승낙의 전 여자친구 희준도 한 차에 타고 내리고 해서, 차 안은 시종 구성원이 바뀌고 복닥복닥 거린다. 시동이 걸리고 출발을 한 이상 도로 안에서 쉬이 내리는 건 불가능하고,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맞붙는 ‘말싸움’ ‘몸싸움’의 조합도 새롭게 재편된다. ‘제한된 상황’ ‘다양한 인물’들이 이렇게 새로운 조합으로 영화의 액션과 리듬, 코믹과 드라마를 만드는 재미들이 모여 <이장>의 미니밴을 굴러가게 만든다. <이장>의 이 오밀조밀 갈등이 폭발하는 공간 구성은 사실 정승오 감독의 주특기다. 전작인 단편 <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2016)은 <이장>의 프리퀄 격인데, 입원한 엄마의 병문안을 간 딸들이 모두 엄마의 침대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씬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탁월한 장면 연출이다. 이같은 구성이 독립영화계의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자신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 세대를 거친 남성으로서 정승오는 <이장>의 가족들이, 더 나아가 이 사회가 기울어진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역시 새벽녘 오남매가 함께 걸터앉은 좁은 툇마루 씬에 말갛고 기분 좋은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승낙의 전 여자친구가 승낙의 사과에 보인 일격은 영화를 보는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각자의 가족 깊숙이 공기처럼 스며든 가부장제 사회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그 관습의 이장을 제안해 주는 영화 <이장>의 질문이 반갑다.
< 즐거운 나의 집 101 >은 밀양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비교적 둘로 나뉘었는데, ‘불호’ 쪽에 선 사람들은 대체로 땅과 자연에 대한 할매들의 애착, 국가폭력 앞에 내던져진 그들의 한(恨)과 의식의 각성, 그리고 몸을 던져 막아내는 격렬한 투쟁 이야기를 밀양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오히려 “캠핑 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산속 농성장의 즐거운 농성생활을 그리고 있다. 고립된 농성장을 기본적으로 휘감고 있는 긴장과 불안을 어느 정도 균형감 있게 담았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영화는 밀양 투쟁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투쟁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또 밀양에는 ‘할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외부세력’이라는 근거 없는 말이 왜 쉽게 타파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 영화는 밀양 주민만이 아니라 연대자들도 밀양 싸움의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밀양 싸움은 다양하게 말해져야 한다. 나는 적어도 < 즐거운 나의 집 101 >이 ‘밀양 투쟁’의 ‘다양성 영화’의 테이프를 끊었다고 생각한다. 갖다 붙이자면 말이다. 이 영화 제목에 나오는 ‘101’은 송전탑 번호이자, 그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에 들어선 농성장 이름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밀양에는 총 69기의 765kV 송전탑이 세워졌는데, 송전탑 번호로 치면 82~150번까지이다. 이 중 단장면 용회동 뒷산에 세워질(지금은 다 세워진) 101번 송전탑 부지가 이 영화의 중심 무대이고, 이 부지에 농성 움막을 짓고 살면서 여기를 지켰던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01번에 농성장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농성에 합류하러 처음으로 101번에 오르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저녁 7시쯤이었지만, 초봄의 산속은 7시면 깜깜한 한밤중이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발밑만 겨우 비추면서 깜깜한 산을 혼자 오르면서도 전혀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내 딴에는 농성장을 지켜야 한다는 ‘투지’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투지는 얼마 안 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싸울 의욕이 없어진 게 아니라, 그런 전투적 자세는 농성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전투적 자세가 별 도움이 안 되다니? 영화 < 즐거운 나의 집 101 >은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당시에 나는 고립된 산속에서 농성을 하면서 잘 해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투지’로 똘똘 뭉친 농성은 밥이나 겨우 지어서 밑반찬 두세 개로 끼니를 때우며 견디는 것이었다. 전쟁터이지 않은가? 더구나 물도 전기도 없는 고립된 산속이다. 물을 비롯한 생필품을 일일이 등짐을 져서 날라야 했으므로, 양치질이나 세수는 물론 설거지도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주민과 연대자들은 개미처럼 등짐을 지고 나르면서 끊임없이 전을 부치고 과일을 깎고 산 아래서 순대를 쪄오고 닭발을 삶아 왔다. 고등어와 석쇠를 사 와서 불을 피워 고등어 장작 구이를 해먹었고, 오리 백숙을 끓여 먹었다. 산에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삶의 안정이 있었고, 같이 밥해 먹으며 연대가 무르익었다. 누군가 기타를 들고 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곧 우리는 밤마다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리고 농성장 주변에 널린 벌목한 나무들을 자르고 다듬어 멋진 카페를 만들었다. 날이 좋은 밤이면 이 카페는 훌륭한 야외무대가 되어주었고, 낮에는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장소가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농성 중임에도 우리는 문화생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101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 묵을 수 있게 끊임없이 움막을 손보고 화장실을 만들고 난로를 청소하는 등의 부지런함과 함께, 그늘에 모여앉아 기타를 딩동 거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낮잠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아무도 이거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왜 거기 있냐고 여기 있으라고 구속하지 않았다. 할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나서서 했지만, 할 일이 없으면 각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각자 취향대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밥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지만(남자보다는 여자가, 출퇴근하는 연대자보다는 상근하는 주민과 연대자가) 일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술만 마신다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하는 일이 없어 보여도 다들 무언가는 하고 있었기에. 재밌는 얘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거나, 아니면 썰렁한 개그로 사람들을 웃겨주려 하거나. 이렇게 101번은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었다. 피가 마르는 긴장과 무료함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지는 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은 알아갔던 것이다. 송전탑은 밀양을 넘어서는 탈핵의 문제이며, 탈핵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싸움이란 것을. 송전탑은 반드시 세워질 것이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고, 그 싸움은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잘 먹고 잘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행정대집행으로 인해 강제로 산을 내려온 밀양 주민들은, 이제 곧 송전탑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임에도 “우리는 지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 말은 당시에는 상당히 의심스러웠으나, 행정대집행 이후 1년 동안 내가 본 밀양은 과연 무엇이 승리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101번을 지켰던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마을에 바느질 방을 열고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여전히 산에서처럼 수다를 떨고 뜨개질을 하고 수를 놓으며 예쁜 수예품들을 만들어냈다. 마을 뒷산에 101번 송전탑이 쑥쑥 올라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주민들은 (주문량을 채우기 너무 바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탈핵탈송전탑 원정대’를 꾸려서 전국 각지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을 다니며 실상을 파악하고 투쟁 경험을 나누었다. 밀양 주민들은 탈핵의 아이콘이 되었다. 밀양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인 싸움에 승패를 나눌 수는 없지만, 101번 사람들은, 밀양은, 투쟁으로 얻으려 한 것을 이미 투쟁 과정에서 이루었다. 국가가 할 일이 따로 있지 않고 그저 놀러 가는 아이들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듯이, 송전탑 반대 투쟁의 목적도 결국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투쟁의 한가운데서 이 사실을 깨닫기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어낸 밀양 주민과 연대자들이 있었다. 나의 영화는, 거대하게 치솟은 69기의 철탑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밀양 싸움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알리는 영화이다.
<즐거운 나의 집 101>은 밀양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호불호가 비교적 둘로 나뉘었는데, ‘불호’ 쪽에 선 사람들은 대체로 땅과 자연에 대한 할매들의 애착, 국가폭력 앞에 내던져진 그들의 한(恨)과 의식의 각성, 그리고 몸을 던져 막아내는 격렬한 투쟁 이야기를 밀양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그런 내용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오히려 “캠핑 왔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산속 농성장의 즐거운 농성생활을 그리고 있다. 고립된 농성장을 기본적으로 휘감고 있는 긴장과 불안을 어느 정도 균형감 있게 담았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영화는 밀양 투쟁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투쟁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또 밀양에는 ‘할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외부세력’이라는 근거 없는 말이 왜 쉽게 타파되지 못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 영화는 밀양 주민만이 아니라 연대자들도 밀양 싸움의 주체라고 말하고 있다. 밀양 싸움은 다양하게 말해져야 한다. 나는 적어도 <즐거운 나의 집 101>이 ‘밀양 투쟁’의 ‘다양성 영화’의 테이프를 끊었다고 생각한다. 갖다 붙이자면 말이다. 이 영화 제목에 나오는 ‘101’은 송전탑 번호이자, 그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에 들어선 농성장 이름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밀양에는 총 69기의 765kV 송전탑이 세워졌는데, 송전탑 번호로 치면 82~150번까지이다. 이 중 단장면 용회동 뒷산에 세워질(지금은 다 세워진) 101번 송전탑 부지가 이 영화의 중심 무대이고, 이 부지에 농성 움막을 짓고 살면서 여기를 지켰던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01번에 농성장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농성에 합류하러 처음으로 101번에 오르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저녁 7시쯤이었지만, 초봄의 산속은 7시면 깜깜한 한밤중이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랜턴을 들고 발밑만 겨우 비추면서 깜깜한 산을 혼자 오르면서도 전혀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내 딴에는 농성장을 지켜야 한다는 ‘투지’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투지는 얼마 안 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싸울 의욕이 없어진 게 아니라, 그런 전투적 자세는 농성에 별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전투적 자세가 별 도움이 안 되다니? 영화 <즐거운 나의 집 101>은 이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당시에 나는 고립된 산속에서 농성을 하면서 잘 해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투지’로 똘똘 뭉친 농성은 밥이나 겨우 지어서 밑반찬 두세 개로 끼니를 때우며 견디는 것이었다. 전쟁터이지 않은가? 더구나 물도 전기도 없는 고립된 산속이다. 물을 비롯한 생필품을 일일이 등짐을 져서 날라야 했으므로, 양치질이나 세수는 물론 설거지도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주민과 연대자들은 개미처럼 등짐을 지고 나르면서 끊임없이 전을 부치고 과일을 깎고 산 아래서 순대를 쪄오고 닭발을 삶아 왔다. 고등어와 석쇠를 사 와서 불을 피워 고등어 장작 구이를 해먹었고, 오리 백숙을 끓여 먹었다. 산에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삶의 안정이 있었고, 같이 밥해 먹으며 연대가 무르익었다. 누군가 기타를 들고 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곧 우리는 밤마다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리고 농성장 주변에 널린 벌목한 나무들을 자르고 다듬어 멋진 카페를 만들었다. 날이 좋은 밤이면 이 카페는 훌륭한 야외무대가 되어주었고, 낮에는 차 마시고 수다 떠는 장소가 되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농성 중임에도 우리는 문화생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101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 묵을 수 있게 끊임없이 움막을 손보고 화장실을 만들고 난로를 청소하는 등의 부지런함과 함께, 그늘에 모여앉아 기타를 딩동 거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낮잠을 즐기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아무도 이거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왜 거기 있냐고 여기 있으라고 구속하지 않았다. 할 일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나서서 했지만, 할 일이 없으면 각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각자 취향대로 시간을 보냈다. 주로 밥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지만(남자보다는 여자가, 출퇴근하는 연대자보다는 상근하는 주민과 연대자가) 일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술만 마신다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하는 일이 없어 보여도 다들 무언가는 하고 있었기에. 재밌는 얘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거나, 아니면 썰렁한 개그로 사람들을 웃겨주려 하거나. 이렇게 101번은 평화로운 공동체가 되었다. 피가 마르는 긴장과 무료함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여기에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지는 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은 알아갔던 것이다. 송전탑은 밀양을 넘어서는 탈핵의 문제이며, 탈핵은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싸움이란 것을. 송전탑은 반드시 세워질 것이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고, 그 싸움은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잘 먹고 잘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행정대집행으로 인해 강제로 산을 내려온 밀양 주민들은, 이제 곧 송전탑이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임에도 “우리는 지지 않았다”고 외쳤다. 이 말은 당시에는 상당히 의심스러웠으나, 행정대집행 이후 1년 동안 내가 본 밀양은 과연 무엇이 승리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101번을 지켰던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마을에 바느질 방을 열고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여전히 산에서처럼 수다를 떨고 뜨개질을 하고 수를 놓으며 예쁜 수예품들을 만들어냈다. 마을 뒷산에 101번 송전탑이 쑥쑥 올라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주민들은 (주문량을 채우기 너무 바빠)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탈핵탈송전탑 원정대’를 꾸려서 전국 각지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역을 다니며 실상을 파악하고 투쟁 경험을 나누었다. 밀양 주민들은 탈핵의 아이콘이 되었다. 밀양 싸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인 싸움에 승패를 나눌 수는 없지만, 101번 사람들은, 밀양은, 투쟁으로 얻으려 한 것을 이미 투쟁 과정에서 이루었다. 국가가 할 일이 따로 있지 않고 그저 놀러 가는 아이들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듯이, 송전탑 반대 투쟁의 목적도 결국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투쟁의 한가운데서 이 사실을 깨닫기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어낸 밀양 주민과 연대자들이 있었다. 나의 영화는, 거대하게 치솟은 69기의 철탑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밀양 싸움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알리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