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참사(大慘死)
- 감독
- 레리 사바드브
- 제작년도
- 1977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5천여만 명(7천만 명으로 추산하기도 함)의 사망자가 발생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 전쟁 기간 중 나치 독일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대학살 했다.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20세기 최대의 대참사, 우리는 이 사건을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 제인 휘팅엄 감독의 < 홀로코스트의 아이들 >은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홀로코스트’의 끔찍함을 겪었던 루트 로고프, 마틴 카펠, 트루드 실만, 하인츠 스카이트, 아레크 헤르쉬, 수잔 립튼 등 현재는 80~90대 노인이 된 여섯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Animated Documentary’ 영화로, 국내에서는 2015년 EBS 국제다큐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제인 휘팅엄 감독은 단편애니메이션 <어 워 위딘 A War Within>(2012)을 통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고통을 그려낸 바 있기도 하다. < 홀로코스트의 아이들 >은 폭격과 공습으로 인한 전쟁의 참화, 강제 이송 혹은 이산(離散), 집단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 학살당하는 부모와 가족 등 실사 영상(Live action)으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양한 미장센의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창조된)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들은 전쟁의 비극과 상처를 확장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 인물들의 성장 과정을 텍스트로 보여주고, 이어 각 인물들의 현재 모습과 실제 인터뷰 영상이 등장한다. 이제 80대가 넘어선 나이이고, 교사·교수·과학자·작가·사회사업가 등 일정하게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의 비극과 고통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루트 로고프(1933년 출생) / 마틴 카펠(1930년 출생) 트루드 실만(1929년 출생) / 하인츠 스카이트(1920년 출생) 아레크 헤르쉬(1928년 출생) / 수잔 립튼(1936년 출생) 중학교 교사가 되었고, 홀로코스트 기억 보존 활동을 하고 있는 루트 로고프는 “홀로코스트에 대래 알게 된 걸 결코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이야기를 전파하는 것보다,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해요”라고 말하고, 과학자 겸 교수가 된 마틴 카펠은 “현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통해 현재가 생긴 과정을 아는 거예요. 역사를 배우지 않는 자는 과거를 반복하거든요. 한 번 생겼던 일은 두 번도 생길 수 있어요. 이 일은 사람들의 기억에 새겨둬야 해요”라고 말한다. 생화학자 겸 교수가 된 트루드 실만은 “홀로코스트의 그림자는 제 평생 지워지지 않았어요. 제 가족의 파멸은 아직도 한스럽죠. 어머니의 행방은 알지도 못하고, 부모님 무덤조차 없어요”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껴안고 있는 전쟁이 남긴 슬픔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인츠 스카이트는 “절대 방심하지 말고 잘못을 관망하지 말라. 잘못된 일이나 악한 일에는 저항하라”라고, 아레크 헤르쉬는 “전 그때 겪은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해요. 전 엄청난 고통을 받았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겪었어요.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돼요. 지난 역사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교육하면,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맞서 저항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 수잔 립튼은 “그 후 부모님은 두 번 다시 못 만났어요. 전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됐어요. 전 군대에 입대해서 독일인을 다 죽이는 게 꿈이었어요. 그들을 증오했어요. 공포와 분노를 느꼈고 울분을 느꼈어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이 생겼어요. 계속 충격 상태가 지속되죠. 오히려 더 말하고 밝혀야 치유가 시작되는 거예요. 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이 영원히 유지될 거라고 믿어요. 기억과 교육을 계속해야 해요. 홀로코스트만이 아니라 르완다나 시리아의 대학살이나 유고슬라비아의 참사는 계속 가르쳐야죠. 계속해서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어야 해요. 결코 잊혀서는 안 돼요”라고 자신의 분노와 트라우마의 고통을 호소하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과 교육에 대해서 역설한다. 아우슈비츠는 나치가 세운 강제 수용소 중 최대 규모였다. 유엔은 1945년 1월 27일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된 날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로 지정하고,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1947년 희생자 박물관이 세워졌으며,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기억하고 교육하는 활동은 지금도 전 세계 각국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보통 웃기다 싶지 않은데 < 이터널 선샤인 >(2004)에서 찰스 강 장면을 찍는 아이디어를 내놓던 미셸 공드리 감독이, 강이 얼기 전에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를 집어넣고 강물이 얼게 한 후 그 위에 누운 짐 캐리의 머리가 위치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사랑의 기억을 찾아 쫓고 쫓기는 조엘(짐 캐리)의 머리로 ‘영원한 빛’이 스며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재현할 생각에 그가 얼마나 들떴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 허황된 생각은 스태프들의 거센 만류로 중단됐고, 아시다시피 사실 얼어붙은 강 아래 헤드라이트 없이도 그 장면은 명백히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 이터널 선샤인 > 불발된 장면이 어디 이쯤이라. 시시각각 샘솟는 공드리의 아이디어야 늘 넘쳐서 탈이다. 그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무슨 장난을 했는지 상기해봐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역사상 망작 리스트에 단단히 자리매김하는 < 그린호넷 >(2011)의 ‘대참사’야말로 공드리라서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작인 < 무드 인디고 >(2013)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이 엉뚱한 아이디어들의 무한투척은, 영화가 기대에 미치고 못 미치고의 문제를 떠나 공드리 영화임을 알려주는 인증마크다. < 더 위 앤 더 아이 >(2012)를 처음 본 건, 2012년 칸국제영화제에서다. 그해 감독주간 상영작으로 초청된 이 작품을 보러 가면서도 이번엔 그가 어떤 엉뚱한 상상을 화면으로 구현해낼까, < 수면의 과학 >(2006) 같은 아날로그적인 꿈속 장면을 한두 시간 동안 헤집고 다니다 나올 요량으로 극장에 들어갔던 것 같다. < 더 위 앤 더 아이 >는 이런 예상을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여지없이 무너뜨린 영화다. 물론 이제나저제나 이건 아니지 뭐든 나올까 싶은 마음은 남아, 100분이 넘는 영화상영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기존 공드리 영화와는 다르군 하고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영화는 힙합의 본고장이자 할렘가인 뉴욕 브롱크스의 한 공립학교 십 대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하굣길, 그들이 시내버스에서 나누는 대화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정말이다. 그게 전부다. 사실 감독 이름을 살짝 스파이크 리로 표기했다면 차라리 그편이 더 수긍이 갈 정도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에서 공드리 특유의 엉뚱한 아이디어가 구현된 장면이 있지 않냐고 재차 물으신다면 오프닝 신이 전부인데, 카세트 플레이어를 장착한 미니버스(리모컨 장난감 차)가 도심을 횡단하다가 똑같은 모양의 실제 사이즈 버스와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긴 하다. 하늘을 나는 조랑말(< 수면의 과학 >)이나, 구름 모양의 기구를 타고 다니는(< 무드 인디고 >) 판타지 장면들은 아무리 ‘리와인드’를 해도 없을 테니, 그런 상상력을 기대한다면 아예 첫 장면에서 끄는 편이 낫다. 오프닝을 질주하던 미니버스가 실제 크기의 버스로 대치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한 치 자비 없이 100% 리얼함만을 탑승시킨 채 끝까지 달려나간다. 오프닝 ‘불량배들’, ‘혼돈’, ‘나’ 이렇게 총 3장으로 구성되는 영화는 공드리가 이 지역의 한 커뮤니티 센터의 십 대들을 만난 후 영감을 얻어서 발전시킨 이야기다. 1장 ‘불량배들’은 인종차별적 관점에서 십 대들의 공격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버스 뒷좌석에 앉은 ‘빅 T’라는 흑인 소년은 “피임약 먹어요. 관계는 솔직해야 해요. 나는 빅 T예요. 뭐든 크죠.”라며 옆에 앉은 백인 할머니를 희롱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은 중년의 백인 남자를 타깃으로 껌을 씹으며 위협하기까지 한다. 가득 찬 버스 안의 다른 소년 소녀들도 각자 대화에 바쁘다. ‘3년 동안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돈을 엄마가 다 가져가서 돈 한번 구경 못 해 봤다’ ‘케이블 수신료는 내가 다 낸다’는 푸념 섞인 소녀들의 대화 사이로, 찐한 키스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커플과 그런 그들을 역겨워하는 소녀의 모습이 교차된다. 공드리 자신의 십 대를 빌려 온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데, 움츠린 어깨에 뿔테 안경을 끼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꽤 창의적이고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는 얌전한 소년도 등장한다. (최근 공드리가 직접 그린 < 이터널 선샤인 >의 스케치 노트가 공개됐는데, 아무래도 이 추측은 신빙성이 꽤 높다.) 개중에는 왕따 소녀도 있고, 생일파티 문제로 정신이 팔린 소녀도 있다. 2장 ‘혼돈’에 이르러서 잡다한 소음에 뒤섞여 있던 각각의 아이들의 갈등이 좀 더 구체화되는데, 버스 창밖 자전거를 탄 가슴 큰 여자에게 반해 소동이 벌어진다거나, 평소 좋아하던 소녀에게 급기야 저녁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다거나, 게이 커플이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등 사건이 하나둘 인지되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아이들끼리 보내는 핸드폰 동영상, 문자메시지도 정신없이 오고가는데 역시 왕따인 소녀는 그 전송의 흐름에서 소외된다. 복잡한 소동들 사이로 버스는 달리고 멈추기를 그치지 않으며, 아이들도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고 바깥은 점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혼돈’의 2장을 거쳐 온 3장 ‘나’에 이르러서는 이제 인물들이 한층 정돈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약중독자였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소년, 오래된 자동차를 수리해서 타는 걸 즐기는 소년의 대화가 진행된 이후, 한 소년이 내리면 이제 대화는 다시 남은 소년과 왕따를 당해서 계속 우울증약을 먹으며 버텼던 소녀의 대화에 이르게 된다. 종착역을 향해 가는 버스처럼, 소통이라고는 불가능할 것 같던 버스 안의 상황도 차츰 공감대에 도달하게 된다. 솔직히 3장으로 오기까지는 버스 안 아이들의 캐릭터와 소음이 뒤섞인 대화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공드리가 쓴 트리트먼트는 24페이지에 불과했다지만, 아이들이 두서없이 쏟아내는 대사는 가늠이 안 될 지경으로 방대하다. 게다가 좁은 버스 안을 촬영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핸드헬드 촬영을 해야 했고, 그래서 안정적인 화면이나 사운드도 기대하기 힘들다. 나름 스토리를 가진 메인 배역이 다섯 명 정도 되는데 모두 얼굴을 아는 배우는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총 40여 명의 아이들은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자 모두 비전문 배우로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버스 탑승 경험이 있었던 공드리는 떼로 있을 때 공격적이던 아이들이, 점점 한둘 내리고 나서 소수만 남았을 때 차분해지고 속내를 드러내는 걸 보고 거기서 착안해서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 버스를 탄 아이들이라면 듣지도 않는 80년대 유행한 Young MC의 ‘버스트 어 무브 Bust a Move’를 제 취향이라는 이유로 영화에 사용하는 프랑스 감독이 할렘가 아이들을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는 당연한 질문 앞에서 그는 “편부이거나, 왕따를 당한다거나, 또 괜히 심각한 아이들은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라,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이자, 캐릭터”라고 응수한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공드리는 촬영에 도움을 준 한 어머니가 촬영팀에게 보낸 편지를 덧붙이며 영화를 맺음 한다. 어느 모로 뜯어봐도 공드리 영화 같지 않은 덕분에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 ‘십 대들이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내용’이라는 추측성 기사가 보도되는가 하면, 영화제목 ‘We and the I’를 듣고, 스필버그가 아니고 공드리의 영화니까 ‘Wee(오줌) in the Eye’일 거라고 지레짐작 하고 공드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까지 나왔었다. ‘자신에게는 현실이 곧 꿈의 연장 선상이자, 그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평소 설파하던 공드리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십 대 이야기를 한건 분명 의외의 선택이지 싶다. 짐작컨대, 데뷔작 <휴먼 네이처>(2001)의 혹평 이후 < 이터널 선샤인 >을 만들기 전 그가 전작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반성노트를 썼다고 하는데, 아마 < 그린호넷 >의 황당한 전개 이후 또 한 번 반성 노트를 쓴 결과로 허벅지 꾹꾹 누르며 창의력을 줄인, 이런 극도의 리얼함을 실은 버스 이야기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간 < 더 위 앤 더 아이 > 이후에는 <무드 인디고>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미크로브 에 가조왈 Microbe et Gasoil>(2015)을 만들기도 했다. 반에서 따돌림을 받는 십 대소년 둘이 기상천외한 집 모양 차를 만들어 프랑스를 여행하는 로드무비로 <이터널 선샤인>에서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조엘이나 <수면의 과학>에서처럼 꿈과 현실을 혼동해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 하는 스테판을 거친 또 다른 왕따 소년들의 이야기다. 평소의 엉뚱한 표현력은 자제했지만, <더 위 앤 더 아이>도 결국 비슷한 곤란을 겪는 아이들이지 싶다. 엔딩 크레디트의 편지 비요크(Bjork)의 뮤직비디오로 일약 뮤직비디오계의 총아를 받던 공드리에게 사람들 모두 “그걸 능가할 뮤직비디오는 언제 나오냐?”고 닦달을 했다. 영화로 치자면 < 이터널 선샤인 >이 비요크의 뮤직비디오 같은 ‘그가 넘어야 할 작품’인 셈이다. 사람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공드리에게 특정 분위기를 갈구하지만, 그는 이미 끊임없이 다른 시도로 그 벽을 두드리고 있다. 완성도가 늘 못 미쳐 아쉬운 마음도 크지만 아직까지는 그 시도를 지켜볼 용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