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
- 감독
- 데이비드 핀처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제스 아이슨버그, 앤드류 가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이미 해머, 루니 마라, 브라이언 바터, 조쉬 펜스
1. 설리 Sully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6) 그저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고마운 감독들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바로 그런 이름들 중 한 명일 것이다. 2014년. 여든이 넘은 나이의 이 노감독이 < 저지 보이즈 >와 < 아메리칸 스나이퍼 >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그 장르로 인해 실패하는 영웅을 그려내면서 장르적인 영웅의 신화를 산화시키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과 감탄은 여전히 이스트우드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저지 보이즈>에서 삶의 낙천성에 대해 노래하던 가수들에게도,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전장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심판하던 저격수에게도, 그들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는 이제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숙명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공개될 이스트우드의 신작 <설리>는 2009년 1월 허드슨 강에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불시착시켜 탑승객을 모두 살린 설리 슐렌버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에서 생명을 구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스트우드가 영웅의 위대함을 얘기하는 영화를 찍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IMDb에 따르면, 설리는 이 사건으로 영웅이 되지만, 그 이후로 이 영웅의 삶이 처절하게 망가진다, 라고 적혀져 있다). 과연 이스트우드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저격수처럼, 다른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 자신이 영웅이 되는 ‘성공적인 실패’를 경험한 ‘설리 슐렌버그’를 어떻게 그려냈을 것인가? 2. 내 친구 꼬마 거인 The BFG (스티븐 스필버그, 2016) 내게 2015년 최고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 스파이 브릿지 >였다. 이제 스필버그는 도저히 나쁜 영화를 찍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 원래부터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던 스필버그가 21세기부터 그 테크닉의 속도를 제어하는 방법을 알게 되다 보니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 감독이 그 페이스를 조절함으로써 영화를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것은 데이비드 핀처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느낌으로서의 장악이 아니라,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본인의 비전과 거의 똑같이 영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느낌으로서의 장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공개되는 스필버그의 신작 <내 친구 꼬마 거인>은 스필버그의 근작인 < 워 호스 > < 링컨 > < 스파이 브릿지 >와는 약간 다른 의미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로알드 달의 원작 동화를 각색하였고,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디즈니와 함께 만드는 영화인 이 영화는 여러모로 < 이티 >와의 접점이 보인다. 보호자가 온전하지 않은 아이. 우호적인 외계의 존재와의 만남. 게다가 <내 친구 꼬마 거인>의 각본을 쓴 사람은 <이티>의 각본을 쓴 맬리사 매티슨(그녀의 유작이다)이다. 역사 안에 휩쓸린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온 근래의 영화에서 다시 원래 스필버그가 잘하던 판타지, 모험 영화로 돌아온 이 영화에서 스필버그가 어떤 영화를 완성시켰을지 궁금하다. 3. 뤼미에르 이전과 이후의 24프레임 24 Frames Before and After Lumiere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6) 2010년과 2012년. < 사랑을 카피하다 >와 < 사랑에 빠진 것처럼 >을 만들면서 지난 2000년대에 본인이 만든 영화 형식과 작별한 키아로스타미가 다시 돌아온다. 올해 공개될 키아로스타미의 신작 <뤼미에르 이전, 이후의 24프레임>은 2000년대에 가장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그때의 실험 정신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24분 15초짜리로 구성된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을 예정이라는 이 영화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한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현재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여러 사진과 그림(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영상과 사운드가 복합적으로 사용될 영화라고 하는 동시에, 키아로스타미 영화로는 처음으로 그린 스크린이 등장한다고 한다. 근래 영화의 트랜드라고 할 수 있을 ‘익스탠디드 시네마’의 개념의 영화가 될 것 같은 키아로스타미의 이번 신작이 2002년에 키아로스타미가 영화 < 텐 >으로 보여준 디지털 시네마의 혁명처럼 영화의 새로운 개념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된다. 4.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A Lullaby to the Sorrowful Mystery (라브 디아즈, 2016) 라브 디아즈는 2016년 현재 가장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라브 디아즈가 가장 솔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이 영화는 다른 라브 디아즈 영화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긴 러닝타임(482분) 동안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필리핀 역사를 쫓아간다. 너무도 참혹하고 끔찍해서 차마 생생한 컬러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듯이 탈색시켜버린 라브 디아즈의 흑백 화면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30분 사이에 잠깐 그 영화에 빠졌다가 그 러닝타임에 반비례되어 현실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4시간에서 9시간까지 긴 러닝타임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역사와 하나가 될 때까지 그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게 만드는 라브 디아즈 특유의 영화적 태도가 그대로 묻어 있을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기도 하다. 5. 파리 이즈 해프닝 Paris est une fete (베르트랑 보넬로, 2016) 베르트랑 보넬로가 2014년에 < 생 로랑 >을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영화제 데일리에서 보넬로를 인터뷰를 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차기작에 대해 묻는 것이었고, 보넬로는 거기서 ‘8명의 젊은 청년들이 파리 시내에 폭탄을 설치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보넬로의 신작인 <파리 이즈 해프닝>은 보넬로가 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2년 전보다 좀 더 의미심장한 영화가 되었다. 지난해 11월에 파리의 곳곳에서 일어난 연쇄 테러 사건은 들뢰즈의 말처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든다. 보넬로 본인은 다시 한 번 현대물을 찍고 싶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보넬로의 단순한 의도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일종의 예언이자 다시 한 번 그 비극을 복기하는 영화가 될 운명이 된 것 같다. 파리 테러 이후에 보넬로가 만드는 파리 테러 영화는 그 자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넬로의 의도대로 가장 ‘현대적인’이면서 가장 ‘동시대적인’ 영화가 될 가능성이 운명이 되었다. 영화란 때론 역사와 너무 가까이 닿아 있기도 하다.
애초 작성한 리스트에는 23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10편만 선정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여러 편의 영화를 제외해야 했다. 2014년의 영화로 선택한 < 보이후드 >의 리뷰에 앞서 전체 리스트를 수정 공개함을 알려 드린다. 이용철 영화평론가의 23편 2014년의 영화 보이후드 Boyhood , 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다섯 편의 장르영화 나를 찾아줘 Gone Girl , 데이비드 핀처, 2014 더 홈스맨 The Homesman , 토미 리 존스, 2014 다크 밸리 Das Finstere Tal , 안드레아스 프로차스카, 2014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 마틴 스콜세지, 2013 콜드 인 줄라이 Cold in July , 짐 미클, 2014 로버트 패틴슨이 나온 두 편의 영화 더 로버 The Rover , 데이비드 미쇼드, 2014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2014 다섯 편의 아트하우스 더 원더스 Le meraviglie , 알리체 로바허, 2014 도원경 Jauja , 리산드로 알론조, 2014 실스 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 올리비에 아싸야스, 2014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 장 뤽 고다르, 2014 에덴 Eden , 미아 한센 로브, 2014 두 편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땅 Pays Barbare , 예르반트 지아니키안/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위로공단 , 임흥순 , 2014 두 편의 한국 드라마 절경 , 남근학 , 2014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 2014 여섯 편의,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한 영화 호스 머니 Cavalo Dinheiro , 페드로 코스타, 2014 사랑스러운 자매 Die Geliebten Schwestern , 도미닉 그라프, 2014 프랑스 공주 La Princesa de Francia ,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아프리오리 Mula sa kung ano ang noon , 라브 디아즈, 2014 신이 되기는 힘들다 Trudno Byt Bogom , 알렉세이 게르만, 2014 위플래쉬 Whiplash , 데미언 차젤, 2014 (링클레이터는 < 스쿨 오브 락 >의 개봉 후에 아역 배우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 도중 그 편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멋진 시간을 함께 보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배우의 길을 걸어가라고 부추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인생에서 보낸 하나의 좋은 챕터가 곧 가장 좋은 시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신 곁에 머무는데, 나는 그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긍정적인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그게 완성된 것이 아닌 경험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부모의 이혼으로 메이슨과 누나 사만다는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멀리 알래스카에서 일한다고 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한 엄마는 공부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친정이 있는 휴스턴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아빠도 근처로 거처를 옮긴 차였다. 이후 12년 동안의 시간 흐름을 담은 < 보이후드 >는 제목 그대로 메이슨의 소년기이자 누나 사만다의 소녀 시절 이야기이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의 기록이다. 촬영은 실제로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되었으며, 그 사실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감탄을 불러낼 만하다. 링클레이터는 이미 ‘비포 연작’을 통해 (동일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과 그들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그리고 < 스쿨 오브 락 >(2003)이나 < 배드 뉴스 베어즈 >(2005) 같은 장르영화를 만들 때면 어김없이 어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사람이다. 그에게 <보이후드>가 뜬금없는 작업이 아니란 이야기다. 기실 영화가 12년 정도의 시간 흐름을 담았다고 해서 무조건 열광할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앱티드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50년이 지나도록 ‘업(Up) 연작’을 계속 연출하고 있다. 소년의 성장을 20년 넘게 극화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또 어떤가. 그래서 <보이후드>에서 우선 관심이 갔던 것도, 시간 속에서 인물을 포착하는 감독의 태도였다.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된 ‘업 연작’은 매번 유명한 문구 - ‘7살 때까지 아이를 맡겨 달라. 그러면 인간을 보여주겠다’ - 로 문을 연다. 이 문구를 살짝 바꾸면 곧 < 보이후드 >의 모토가 된다. ‘7살짜리 꼬마를 맡겨 달라. 그러면 소년 시절을 보여주겠다.’ <보이후드>를 본 평자들은 누구나 ‘업 연작’의 영향을 이야기하며, 링클레이터 또한 인터뷰에서 앱티드의 영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2012년의 <56 업>까지 매 7년마다 한 편씩의 영화로 발표된 ‘업 연작’은 현실의 인물에서 ‘가족, 친구, 애정, 교육, 계급, 타자, 빈부, 정치, 기회, 종교, 도덕, 꿈’을 읽어내 영국의 미래를 논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사회의 축소판이자 거대한 실험장으로 발전한 ‘업 시리즈’의 감동은 삶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신비롭게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삶의 전개 방향이야말로 다큐멘터리로서 ‘업 시리즈’가 드러낸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보이후드>의 주인공 엘라 콜트레인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6살 아이였으며 영화가 만들어지는 12년 사이에도 배우로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보이후드>는 콜트레인과 직업 배우들이 서로 소통하며 찍은 반 다큐의 느낌을 준다. 링클레이터는 매해 소년에게 일어난 변화를 영화에 반영했음은 물론 콜트레인이 직접 소년기의 대사를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업 연작’이 시간의 경과 위로 사회와 문화의 지도를 그리려 한 작품이라면, <보이후드>는 한 소년의 얼굴 그리기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긴 세월에 걸쳐 콜트레인이라는 배우와 메이슨이라는 인물이 은연중에 작가처럼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의 성장을 연대순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 보이후드 >는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트뤼포는 앙투안 역할을 맡을 배우로 어린 장 피에르 레오를 선택했고, 감독과 배우와 인물이 어우러진 다섯 편의 영화 - < 400번의 구타 >(1959), < 앙투안과 콜레트 >(1962), < 훔친 키스 >(1968), < 부부의 거처 >(1970), < 사랑의 도피 >(1979) - 가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런데 트뤼포 자신이 말했듯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드라마이며, 그러한 성격은 <보이후드>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향점과 어느 정도 상치되는 부분이다. 꼭 그 점이 아니어도 나는 <보이후드>와 비교되어야 할 작품이 ‘앙투안 두아넬 연작’이 아니라 장 외스타슈의 < 나의 작은 연인들 >(1974)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소년 다니엘의 딱한 형편은 <보이후드>의 메이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니엘은 할머니와 살다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게 된 소년이며, <나의 작은 연인들>도 소년 다니엘이 성장해 어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단, 외스타슈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링클레이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보이후드>와 상반되게) <나의 작은 연인들>은 극 중 소년의 외모가 별로 변하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며 외부의 세계와 단절된 인상을 강화한다. ‘앙투안 두아넬 연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나의 작은 연인들>을 굳이 불러내 비교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짧은 장면 때문이다. 다니엘은 한 소녀와 노변 풀밭에 누워 있다. 곧 어른이 돼 순수의 시대와 작별을 고할 소년은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서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다. 이 장면은 <보이후드>의 첫 쇼트 - 여섯 살 메이슨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흡사 링클레이터는 고통스럽고 아픈 소년 시절을 보낸 다이넬의 시간을 돌려 메이슨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른 태도로 새롭게 쓰려는 듯하다. 그는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애쓴다. 자신을 포함해 당신들도 소년 시절의 통증을 겪었음을 알고 있는 까닭에, 극에 뛰어들어 아파하는 척하지도 않는다. 링클레이터 영화의 특징은 ‘단순한 자연미’다. 장르 영화를 찍을 때도 그렇지만, 그것이 더 잘 드러나는 경우는 그만의 소품을 찍을 때다. < 비포 미드나잇 >(2013)이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는지 확인해보라. 영어에 ‘Don’t make a scene(야단법석을 떨지 마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의미는 달라도 링클레이터 영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매년 사나흘 동안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여 15분 분량의 촬영을 거듭한 < 보이후드 >에는 사건이라 부를 만한 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업영화로서 너무 심심해 보일까 걱정해야 할 판이다. 어느 날 어느 십 대 소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한 장면을 손질하지 않고 내놓는 것, 그 이상을 영화는 욕심 내지 않는다. 지금 장면이 어떤 해에 벌어진 일인지 구분해 밝히지 않기에, 흐르는 음악과 열중하는 게임과 구경 간 스포츠 경기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대충 어느 정도 지점의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가 카메라를 보는 실수를 하는데도 숨기지 않아 자연스러운 맛을 강조하기도 한다. 부모를 비롯한 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소년이 겪을 성싶은 일들이 그저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게 다인 것 같은데 <보이후드>는 시간의 에센스를 놓쳤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건 소년의 얼굴 덕분이다. 그냥 몸이 커지고 머리 스타일이 바뀌는 게 다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흘린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메이슨의 얼굴에 자국을 남긴다. 16살 생일을 맞는 해에 메이슨의 얼굴은 밉다. 이전까지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지했던 콜트레인은 무슨 일인지 잔뜩 우울한 표정과 지저분한 얼굴로 메이슨이란 인물을 연기한다. 사춘기여서 그랬을 터인데, 링클레이터는 일부러 예쁘게 분장하지 않았고, 콜트레인도 통과 중인 시기가 입혀준 표정을 거짓 마스크로 가리지 않는다. 링클레이터는 < 보이후드 >를 찍는 과정이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다. 상영시간이 165분인 영화가 대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에서 막을 내릴까. 평범한 영화였다면 메이슨이 차를 몰고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끝났을 것이다. <보이후드>로 인해 유명해진 인디그룹 ‘패밀리 오브 더 이어’가 부른 <히어로>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큰사람이 될 마음이 없어요. 나는 여기저기서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요. 나를 놓아줘요’라는 가사가 엄마의 품을 떠나는 장면과 썩 어울려 이 정도면 엔딩으로 훌륭하다 싶었다. 끝없이 뻗은 텍사스의 도로를 보며 누구나 감동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링클레이터는 그런 감상을 빚을 생각이 없다.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소년은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배경음악으로 ‘콜드플레이’의 <옐로>가 흐른다. 노래의 가사는 ‘별을 바라봐, 별은 너와 너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어’이다. 소년이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 나는 대낮인데 설마 별을 보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다. 또는 내 생각과 달리 소년이 자신만의 별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소년이 보는 것은 화면 바깥에 놓인 무엇이었다. 곧 누군가 소년을 부르고 소년은 극 중 현실로 돌아온다. 이어 12년의 시간을 산다. 내성적인 소년은 사진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제 소년은 하늘이 아닌 자기 앞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조금 슬픈 얼굴의 여섯 살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띤 열여덟 살 청년으로 컸다. 변하지 않은 것 하나,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메이슨은 화면 바깥을 응시한다. 청년이 된 메이슨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메이슨에 해당하는 자신을 바라본다고 말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앞에 펼쳐진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보이후드>는 시간을 과거에 흘러간 어떤 것이라는 개념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나, 살아가야 할 매 순간이자 현실이라고 <보이후드>는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나의 소년기를 향수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년기 혹은 삶의 한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살고 있었던 거다. 메이슨의 알싸한 성장통이 나의 것인 양 내 몸이 반응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두 남녀가 술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의 ‘Ball And Biscuit’이 그들 사이에 인상적으로 흐른다. 중국의 천재들이 미국 인구수보다 많다는 믿지 못할 주제로 시작해 수능 만점에 교내 사교 클럽과 조정팀 얘기까지. 좌충우돌 동충서돌 이리저리 오가는 남자의 속사포 잡담에 여자는 도통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결국 말꼬리 잡기와 의심, 오만과 독단 그리고 변명이 뒤섞인 대화에 지친 여자는 화를 내며 일어나고 남자는 허무하게 끝나버린 관계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른 채 술집에서 빠져나간다. 이 5분 30초간의 인트로 씬을 통해 감독 데이빗 핀처와 각본가 아론 소킨은 이 남자의 성격과 미래를 조망한다. 넷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에 혁신을 가져다주었지만 자신은 현실적 소셜 네트워크가 불가능했던 아이러니한 천재, 페이스북의 개발자이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마크 주커버그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진실 여부에 관심이 없다. 실제 주커버그와 영화 속 주커버그는 다른 인물이다. 페이스북 설립과 이를 둘러싼 소송에 대한 사건들만이 사실일 뿐, 아론 소킨은 주어진 현실보다 더 극적이고 인위적으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소송의 당사자 중 하나인 에두와르도 세브린의 증언을 바탕으로 삼은 영화의 원작은 다소 편향적이긴 했지만, 소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서로간의 증언과 주장을 교묘히 대립시키고 그들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주커버그란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건 그리고 관계들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여지를 주었다. 이를 리드미컬한 감각으로 쪼개 숨 가쁘게 재구성한 데이빗 핀처의 신들린 연출은 뻔한 전기물과 지겨운 법정물 사이에서 방황할 수 있는 드라마를 강렬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심리극으로 치환해냈다. 생생한 캐릭터들의 압도적인 대사, 탁구시합을 보듯 빠르게 주고받는 플래시백 향연에, 정교한 카메라 워크와 좋은 연기가 곁들어진 영화는 상투적일 것 같은 성공담의 신화를 넘어 그 뒤에 감춰진 장중하고 세련된 희비극에 집중한다. 21세기판 <시민 케인> 이자 IT버전의 <라쇼몽> 이다. 이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건 그러한 반목과 오해, 번민들을 백일몽처럼 희석시켰다 다시 증폭해내는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의 공감각적인 스코어다. 트렌트 레즈너. 소음도 충분히 상업적인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대부. 그는 세기말 ‘나인 인치 네일스’란 원맨밴드로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파괴적인 노이즈, 불길한 엠비언트 등을 버무려 기존의 아름다운 화성의 곡과는 다른, 새로운 감성을 창조했다. 방법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실험성을 넘어 대중적 환호까지 이끌어낸 건 그가 처음이었다. 왜곡되고 변형된 보이스를 통해 섬뜩하고 진중한 의미를 전달하는 한편, 불협화음과 극단적인 음악적 해체에 가까운 효과들, 철저하게 계산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종교에서 탐욕, 성별, 명성, 중독, 자기기만, 후회, 허무주의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까지 암울하고 혼란스런 시대상의 모습과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요즘 인더스트리얼의 파급력은 그때보다 약해졌지만, 그가 시도하고 창안하는 사운드가 주는 의미와 충격파는 여전히 유효하다.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 못지않게 스토리텔링의 앨범 콘셉트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연출, 기괴한 뮤직 비디오 같은 비주얼적인 측면도 인정받으며 자연스레 영상과 관련된 작업들에 조금씩 관여했는데, 음악적 컨설턴트로 참여한 <내츄럴 본 킬러> 나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 <둠> 시리즈로 유명한 id소프트사의 FPS 게임 <퀘이크>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고, 여러 단편 작업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을 보였다. 특히 데이빗 핀처와의 인연은 드문드문하지만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타이틀 시퀀스의 고전이 된 <세븐> 의 오프닝 크레딧에 ‘Closer’가 편곡돼 쓰였고, 원작자 척 팔라닉의 강력한 추천으로 <파이트 클럽> 음악을 맡을 뻔 했지만 그 당시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e Fragile’ 활동과 겹쳐지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2005년 발표한 ‘Only’의 뮤직비디오를 핀처가 감독하며 둘은 비로소 조우하는데, 그 인연으로 핀처는 <소셜 네트워크> 의 음악을 레즈너에게 부탁한다. 오랜 투어와 레코딩 작업에 지친 그는 핀처의 제안을 수차례 거절하지만 결국 자신의 앨범을 함께 했던 아티커스 로스와 공동으로 처음 영화음악에 도전하게 된다. Only 최첨단의 트렌드가 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발해 억만장자에 오른 남자의 이야기에 산업화된 사회에 반기를 든 인더스트리얼 뮤직의 대부를 골랐다는 점도 의미심장하지만, 이 미니멀하고 반복적인 사운드를 통해서 고립된 인물의 내면과 단절되어버린 인적 교류 관계를 시니컬하게 묘사해 나간 것도 탁월하다. 디지털 시대 넷이란 가상의 공간에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정작 현실에선 점점 더 외로워지고 마는 인간의 뒷모습을 역설적으로 담아낸 영화에 이 먹먹하고 혼돈스런 일렉트릭 사운드는 잔인한 비가(悲歌)이자 기존 스코어에 이별을 고하는 송가로 비친다. 종종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음색은 일말의 휴머니즘을 상징하지만 이내 사라져버릴 듯 가녀리고 얄팍하다. 그 주변을 감싸는 건 시끄러운 노이즈와 식상한 패턴의 음향들뿐이다. 이는 초조하게 고조되고, 무겁게 침전되었다가, 몽롱하게 허공을 부유한다. 차가우면서도 복합적이고 실험적이며 누구보다 공격적인 그들의 사운드스케이프는 핀쳐가 그려낸 캐릭터들의 심리와 방황에 너무나 잘 부합된다. 감성적인 엠비언트 사운드로 현실의 무게감과 감정들을 담아내는 레즈너와 로스의 이 놀랄만한 협업물은 <파이트 클럽>에서 들려준 더스트 브라더스의 일렉트로니카 충격을 넘어선다. 더스트 브라더스가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DJ 믹스의 트립합을 통해 파멸적이고 분열적인 내면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다면, 나인 인치 네일스는 단색의 모노크롬과 같은 기계적 음색으로 세상의 알고리즘을 거부하고 부정한다. 모든 트랙에 걸쳐 들리는 스산하고 씁쓸한 뒷맛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Ghosts I-IV, Peer Gyunt suites <소셜 네트워크>의 스코어는 불균질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2008년에 발표한 앨범 ‘Ghosts I-IV’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실제로 3번 트랙을 비롯해 몇몇 트랙들은 ‘35 Ghosts IV’의 변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음악적인 부분을 넘어 음향적인 기능까지 수행하는 아슬아슬하고 모호한 경계가 분분한 이견을 만들어낸다. 주로 호러 영화에서 나타나는 사운드 디자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키마우징과 라이트모티브에서 빗겨난 이 소리들의 배치는 시종일관 밋밋하게 보이는 변호사 사무실과 대학교, 방안과 술집 같은 평범한 공간에 긴장과 심리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부여한다. 사정없이 옥죄고 느슨했다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리듬감은 바로 이 소리들 때문에 생겨난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단조롭고 재미없게 들리지만 영상에 종속되는 순간 폭발적인 힘과 짙은 공허함, 애수와 분노를 가지고 꿈틀댄다. 의미가 만들어낸 스코어인 셈이다.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제1번 Op.46 제4곡 산의 마왕의 전당에서’을 가져온 12번째 트랙이다. 핀처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웬디 카를로스 스타일이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고, 트레너와 로스는 이에 맞춰 곡을 찾고 편곡해 조정 경기 씬에서 독특한 효과를 보았다. 장난스럽지만 동시에 처절한 감정을 농축시켜 결국 윙클보스 형제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트렌트 레즈너는 첫 영화음악이란 한계가 무색하게 아티커스 로스와 2010년과 11년의 시상식에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를 비롯해 8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해 데이빗 핀처와 두 번째 결과물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를 내놓으며 성공적으로 2년차 징크스를 극복했다. 이쯤 되면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Hand Covers Bruise Track List 1. Hand Covers Bruise 2. In Motion 3. A Familiar Taste 4. It Catches Up with You 5. Intriguing Possibilities 6. Painted Sun in Abstract 7. 3:14 Every Night 8. Pieces Form the Whole 9. Carbon Prevails 10. Eventually We Find Our Way 11. Penetration 12.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Edvard Grieg) 13. On We March 14. Magnetic 15. Almost Home 16. Hand Covers Bruise, Reprise 17. Complication with Optimistic Outcome 18. The Gentle Hum of Anxiety 19. Soft Trees Break the F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