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 감독
- 임정환
- 제작년도
- 2014
- 출연
- 조현철, 정혁기, 임철, 김상범, 임정환, 이유진, 김준겸, 정양지
이 영화는 동유럽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공항에 도착해 생수를 단숨에 들이켜는 유진( 김새벽 )의 첫 쇼트는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반짝인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녀의 몸짓에서 매혹적인 여행지의 마법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엉뚱한 사건과 상황이 중첩되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같은 인물 비슷한 대사가 반복되고 시간과 공간이 모호하게 혼재된다. 이야기를 좇는 길목마다 퀴즈를 푸는 만만치 않은 모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난 캐릭터, 거침없는 대화, 자유로운 연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빚어내는 젊은 패기와 활력이 영화를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폴란드에 도착한 유진은 한국 남성들을 우연히 만나고 고려인에게 행운의 꽃을 선물 받는다. 선배 동철( 조현철 )과 만난 바에서 인상 나쁜 한국인을 다시 만나자, 유진은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친구 원식(정혁기)을 만나러 우크라이나로 간 동철은 세르게이(박진수)가 벌이는 위험한 사업에 말려든다. 이 과정에서 원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동철은 원식과 함께 도망 중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국경의 왕’ 챕터이다. 이어지는 ‘국경의 왕을 찾아서’ 챕터에 동일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설정이다. 구성상 ‘국경의 왕’은 허구이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실제이다. 거칠게 구분하면 ‘국경의 왕’은 동유럽에서 영화를 찍고자 하는 유진과 동철이 쓰고 있는 허구의 시나리오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는 유진과 이곳에 거주하는 동철의 이야기이다. 은경(이유진)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이들은 영화와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새로운 친구(정혁기, 박진수)를 사귀기도 한다. 후반의 챕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유진과 동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이 어떻게 각자의 시나리오에 반영되었는지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나 동행한 친구가 범죄 장르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타인이 겪은 경험과 이야기가 시나리오에 천연덕스럽게 배치된다. 말 못하는 관계의 감정 또한 조심스레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시나리오고 어디까지가 실제라는 주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영화의 구분점이 무색하게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전개되고,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의 장난스런 말과 행동은 앞뒤의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유머러스한 완결성을 가진다. 정교한 내러티브 서사를 포기한 순간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났다 해도 농담이라 퉁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감독이 절친한 동료와 실제 여행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제작 배경은 영화 속 작은 퍼즐을 압도한다. 전작 < 라오스 >에 이은 이러한 방식의 영화 만들기는 진짜와 가짜, 허구와 실제에 대한 논의를 본질적으로 확장시킨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 <국경의 왕>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심상을 탐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두드러지게 받게 된다. 영화 속엔 인기 아이템 포켓몬에 열중하며 손쉽게 일확천금을 꿈꾸는 유치한 세대의 표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여행하며 영화와 인생을 고민하는 진지하고 고독한 개인이 존재한다. 마음, 소원, 믿음 등 이성적 세계와 동떨어진 종교적 언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따뜻하며 기이한 정서는 불현듯 등장하는 유령( 임철 )의 존재처럼 영화에 일정한 태도와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것 같다. 왁자하고 떠들썩한 인물 가운데 도시를 여행하는 유진의 걸음이 부지런하다. 카메라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회색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미지의 가능성과 불안을 묘하게 포착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에 평화는 찾을 수 있을는지.
내가 본 세계는 이미 일그러져 있었고 내가 본 세계는 이미 무너져 있었고 내가 볼 세계는 그 다음은 - 매드 클라운 <껌> 중에서 그러니까 어떤 영화들, 별일 아닌 듯 반복되는 이상한 시간들, 정작 영화는 유쾌하지 않은 장면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주는데도, 객석의 나는 어딘지 불편한 의혹을 떨쳐버리기 위해 끝없이 어떤 번역 혹은 해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영화들이 있다. 물론 임정환 감독의 < 라오스 >는 그것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불안의 정체를 모른 채, 집으로 향하는 그 밤 내내 시달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악마의 ‘다녀감’처럼 스산하다. 이 영화에 등장한 이상한 음악, 케미컬 브라더스의 ‘The devil is in the details’처럼 영화 <라오스>는 전체가 사소한 것이 되기를 원했고, 사소한 것이 전체를 이루기를 원했다. 강한 비트들의 반복처럼 그들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 혹은 원했던 것들이 저 멀리 알 수 없는 시간들을 통해서 다시 회귀한다. 영화 <라오스>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과 감추어진 의혹들의 연쇄 반응으로 인한 기이한 불편함이 도처에 머물러 있다. 영화 초반 감독으로 등장하는 원식은 조연출인 후배 현철이 시나리오를 바꾼 것이 불만이다. 갑자기 여배우가 절(수상법당)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 현철은 이 영화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이자 영화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답을 한다.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 없이 그저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은 대사를 퉁 치는 것이라고.’ 그때 원식의 대답은 또 이렇다. ‘그러니까 뭘 퉁 치고 뭘 보여주는 거냐고, 절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수상법당에서의 원식의 질문 ‘시나리오를 왜 따르지 않는가.’는 돈을 벌기 위해 떠난 태국에서의 현철의 대답 ‘인간의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동일한 말을 다른 차원에서 반복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논리로 자신이 합리적이라 믿는 확신만 강화하는 상황. 그런 확신으로 자신의 의미의 지층을 설계할 때, 현실의 상황은 더욱 뒤틀리고, 포착되지 않는 세계는 불안으로 자꾸 표류하는 것이다. 나는 마치 현철이 글을 쓰면서 이미 떠나버린 원식을 장면 내에 불쑥 들여놓은 것처럼, 문득 < 메콩호텔 >(2012)을 떠올렸는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메콩 강 어귀에 살다가 사라져버린 어떤 삶의 기억들을 복원한 것처럼, 영화 < 라오스 >는 기억의 미래를 현실로 불러들인다. 우리의 현실에는 유령이 산다. 합리성의 시대, 다시 말해 합리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는 시대의 유령은 개인의 차원에서 작동하고 그 유령은 스스로 합리적이라 믿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징후이다. 자신의 확신과 합리적이라는 믿음이 하나가 되어서 오히려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세계로 흘러든다. 그것이 어쩌면 자본이 꿈꾸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영화 안에서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 사소함이라 불릴 수 있는 장면들 그것이 세계에 대한 어떤 실마리로서 기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 라오스 >는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영화다. 그중 마지막 6장의 제목은 ‘모든 길은 한 곳으로 통한다’이다. 이는 주역의 계사전 ‘천하가 돌아가는 곳은 같되 길이 다르며, 이르는 것은 하나지만 백 가지 생각이 있다(天下同歸而殊途, 一致而百慮)’ 와 같은 의미처럼 보인다. 그 길과 생각은 다르지만 결국 그것들은 한 곳으로 통한다는 것, 그래서 라오스의 이름 모를 어떤 음악을 배경으로도 현철은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라오스>가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 작동하는 합리성이라는 믿음에 대한 혐오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 도달하지 않았고 여전히 길 위에서 서성이는 중이다.
지난 회에 이어 여름특집은 계속된다. 여름 하면 역시 블록버스터다. 터지고 부서지고 그 사이에 맺어지는 화끈한 인연!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미 유명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가 됐던 영화다. 그래서 삐용삐용B무비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다룬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무조건 이 영화다. “우리도 < 터미네이터 > 같은 영화 하나 만들어 봅시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말 한마디로 시작되곤 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당시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 슈퍼 홍길동 > 등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Shut up! Take my money!’ 를 외치게 했던 김청기 감독의 야망에서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한계를 느낀 김 감독은 이후 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섞는 작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완전한 실사영화를, 다시 말해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본격 성인대상의 액션-에로틱-SF로 기획된 이 영화는,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가 되었고 동시에 작품성도 알아보는 재능을 보여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던 한 젊은 배우에게 김 감독이 건넨 한 마디로 의기투합해 제작이 성사되고 만다. < 바이오맨 >. 한국이 키운 가장 강한 男子! ‘8메가 디램이라니 그런 터무니 없는...! 일본과 미국같은 선진국가에도 4메가 디램이 없소’ 재벌기업 총수인 장만근( 윤일봉 )의 둘째 아들 장도일( 박중훈 )은 매일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술이나 먹고 여자와 노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기업에서 개발한 ‘초 고용량 메모리’인 8메가 D-RAM 칩의 설계도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일은 자신에게 메모리의 정보를 묻던 친구가 생각나고, 그를 다그쳐 홍콩에 문제의 설계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홍콩으로 떠난, 갑자기 효자가 된 도일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동남아 최대 조직의 보스인 ‘스리랑카의 별’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쫓는다. 형 영일( 남성훈 )이 붙여준 여자 요원 수지 한( 신미아 )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에 쳐들어간 도일은 애석하게도 악당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수지 역시 그들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진다. 소식을 들은 형 영일은 한달음에 홍콩으로 달려간다. 온몸의 기능이 망가졌으나, 정신력으로 뇌파만이 요동치는 도일을, 그는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기계 인간으로 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영일을 돕는 오석도( 신우철 )는 마약에 취한 채 윤락녀로 사는 수지를 찾아 병원에 입원시킨다. 상태가 호전 된 수지, 그리고 기계인간이 된 도일과 베트남 참전용사 오석도는 의기투합하여 ‘스리랑카의 별’을 찾아 라오스와 크메르(캄보디아를 크메르라고 말하고 있다.) 국경 어드메 쯤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무사히 ‘스리랑카의 별’을 해치우고 8메가 D-RAM 설계도를 찾아올 수 있을까? 바이오맨의 탄생 “시나리오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100명이 나와야 할 장면에 10명 나오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져야 할 장면에 제작비 때문에 한 번 갈기면 30명씩 나가떨어지고... 아무리 각본이 좋아도 프로덕션이 못 받쳐주면 답이 없구나 하는 걸 느꼈죠.” < 바이오맨 >의 주연인 배우(이자 감독) 박중훈 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만큼 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 성인용으로 기획된 만큼 영화에는 꽤 수위가 있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수지가 적에게 붙잡혀 강제로 탈의 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는 마약에 찌든 윤락녀가 되어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인, 그것도 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뉘앙스가 담긴 묘사들이 꽤 있는 데다가 최후에는 아예 헐벗은 여성 전투원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 특명! 미녀군단 >도 그랬는데 왜 조명화 감독의 영화엔 항상 이런 분들이 등장하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성인용’으로 부르기에도 조금 어렵다. 왜냐하면 성인이 봐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집은 축약을 넘어서 거의 축지법 수준이고, 묘사는 적극을 넘어서 극단적이다. 악어와의 결투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면, 으아아아아!!!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한다.(끝도 없이 들어가는 줌 인!) 장도일은 강하다! 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면 갑자기 잘 가던 자동차가 진흙에 빠진다.(이건, 빠지는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 번째 컷이 잘 굴러가는 자동차, 두 번째 컷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 헛도는 자동차. 이런 식이다.) 그리고 도일은 한 손으로 차를 번쩍 들고, 자기 발 위에 바퀴를 올려놓는다. “헉! 도일씨 발에 바퀴가!” 라며 수지가 놀래면, 도일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으응?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분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악어와의 일 대 일 맞장을 들 수 있다. 이 에피소드 역시 아무런 앞뒤가 없는데, 수지가 강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으니 악어가 슬금슬금 나온다. 분명히 오석도는 기관총을 들고 있는데, 장도일은 칼을 들고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악어와의 사투. 우리는 분명 악어의 아가리에 감겨있는 피아노 줄을 볼 수 있다. 넓은 아량으로 역시 위험하니까, 라고 생각하지만, 꼬리 쪽에 보이는 어색한 사람의 손을 보면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에드우드>에서 보았던 벨라 루고시와 거대 문어 인형의 격투 장면을 보는 듯하다. 팀 버튼이 이 장면에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과 퇴물 배우의 애잔함을 동시에 배어 나오게 했다면 < 바이오맨 >에서는 기관총을 든 오석도의 멍청함과 기계 인간 장도일의 뛰어난 방수성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여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삐용삐용B무비를 시작한 이래, 첫 회를 장식했던 < 신사동제비 > 이후로 이렇게까지 막가는 영화는 처음이다. 그나마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격투장면도 허탈할 뿐이다. 그나마 오석도 역을 맡은 중견 액션 배우 신우철 (전에 소개했던 < 김두한 형, 시라소니 형 >에서 시라소니 역의 그 배우다.)이 약간의 다찌마리를 소화하고 있지만 주연 박중훈 의 액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고 라스트 장면이 다가오면, 관객은 심각한 멘붕에 빠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수지의 배신으로 에너지 칩이 빠져버린 장도일은 결전에 앞서 오석도에게 비장한 부탁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쓰지 않던 하오체를 써가면서 말이다. 도일 : 난 절대 포기하지 않소. 당신은 알고 있죠? 어서 에너지를 비상전달 장치로 연결해 주시오. 어서. 석도 : 그건 자폭하는 짓이야! 도일 : 나는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기계 인간일 뿐이오. 어서. 시간이 없소. 어서. 석도 : 미스터 장... 도일 : 딱딱(손가락을 튕긴다) 착잡한 표정의 오석도는 칼로 도일의 등을 따서 전기선을 뽑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 비장한 장면에서 전기 공사 일을 하시는 우리 삼촌이 잠깐 떠올랐지만 어쨌든 슬픔이 밀려온다. 바이오맨의 이 숭고한 희생 앞에서, 토종 히어로의 탄생을 목도하는 기쁨에 복받치지 않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결국 악당의 소굴을 초토화시킨 둘. 스리랑카의 별은 다급히 차에 올라타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를 뒤쫓기 시작하는 도일. 그리고 그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차와 함께 터져버린다. 에너지 비상전달 장치가 전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나는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장도일! 끝내 인간이고 싶어 했던 마지막 절규와 함께 그는 몇 조각의 전자부품 조각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국경에서... 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득하다. 김청기 감독과 조명화 감독은 성인을 타깃으로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방향을 급선회하여 전체관람가로 등급을 낮추고 어린이 회관, 무지개 극장 등을 통해 개봉했다고 한다. 당시 손에 손잡고 극장에 들어간 가족들이 영화가 끝나고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이 영화를 ‘체험’한 관객이 KMDb 집계 2,445명. 정극배우를 대거 기용하고 박중훈 이라는 당대의 청춘스타까지 캐스팅해 < 터미네이터 >와 < 람보 >를 섞어 대한민국 슈퍼히어로를 만들려던 야심은 이렇게 안타깝게 실패했다. 김청기 감독은 이 영화의 실패로 막대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편의 <우뢰매>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는 없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 의적 임꺽정 >은 관객 151명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남기며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놀라지는 말자. 이 분야에서는 허리우드 극장 1일 개봉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기남 감독의 < 천년환생 >이 있다. KMDb 집계 관객수 39명) 김청기 감독은 분명 어린이 영화계의 흥행사였다.(<우뢰매>의 오리지널리티나 작품들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내 또래 중 그가 만든 영화 한 편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야심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한국에 토종 슈퍼 히어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아동용 감독이 아니라 누가 봐도 멋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 그러나 인프라의 부족과 장르 이해의 부족으로 결국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온 < 바이오맨 >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도 속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그냥 이 상태로도 좋다. 모든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힘들어했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B무비는 나름의 방식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재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런 재미가, 영화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어떤 예술이 ‘실패’와 ‘실수’에서 애정을 끌어낼 수 있는가. 그런 사랑스러움이 내가 그동안 삐용삐용B무비를 해나갈 수 있었던 힘 이었을 거다. 시작할 때는 꽤 오래 하겠구나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금방이었다. 내가 쓰는 삐용삐용B무비는 다음 회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맞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쪽 분야에서 괜찮은 영화를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막 나가는 영화를 골라야 할 것도 같고. 그러나,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삐용삐용B무비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다. 무게를 담으면 안 된다. 잘하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지고, 그것이 낭비냐 밑거름이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쿨내 진동하는 이런 영화들을 소개하려 했던 것이 본 코너였다. 잘 되었던 것일까? 일단 마지막 회에서 뵙겠다. 박중훈 신미아 신우철 감독: 조명화 , 김청기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무지개, 바다, 다복(서울) 관람인원: 2,44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