랏슈
- 감독
- 이봉원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송승환, 최영준, 최미선, 박용식, 남영미, 노정아, 한현배, 최연식, 이민재, 최일, 김기수, 박정호, 남포동, 한상국, 김경신, 신선아, 박홍근, 김정태, 김광록, 김규완, 문중섭, 박정남, 유선애, 김생기, 조경모, 길달호, 정영국, 서국현, 박종설, 정성진, 김낙흥, 이재구, 조원균, 윤기홍, 염정아, 주원철
영화 동아리 시절. 매일 밤 음주 70% 저질농담 20% 영화 얘기 10%의 함량으로 지새며 아침 해를 맞이하던 때였다. 당시 나와는 꽤 학번차이가 많이 났던 선배가 ‘너 이런 영화 아냐?’라며 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영화판에서 10년이나 연출부 생활을 하던 두 사내가, 인생 역전을 꿈꾸며 현금수송차량을 탈취한다는 내용이었다.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에 나름대로 재미를 느껴왔던 바이고, 또 한국에 그런 장르 영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때였기 때문에 < 랏슈 >라는 좀 이상한 제목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 선배는 넌 평생 볼 일 없는 영화라며 마치 전설 속의 무엇처럼 말했지만, 섭섭한 소리. 영상자료원에 비디오테이프가 있다. 영화는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는 여자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마도 명동으로 생각되는 곳.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 한 여인의 몸이 추락한다. 땅에 부딪히는 순간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며 그것이 마네킹임을 알게 된다. 연출부로 일하고 있는 택호( 송승환) 와 촬영부인 영준( 최영준 )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영화인이다. 하지만 십 년째 이러고 있는 본인들의 처지가 불쌍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택호는 영준에게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죽여주는 계획을 풀어 놓는다. 그것은 가짜 영화 제작사를 차리고, 실제 현금수송차량이 지나가는 시간, 장소에서 영화를 찍는 것처럼 위장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들에게 차량 탈취를 시키는 것이다. <서울 루팡>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가짜 영화 계획은 탈 없이 성공한 듯 보였다. 그들은 탈취한 차량의 돈을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의 어느 산속에 묻어놓고 1년 후에 찾기로 했으나, 돈은 사라지고 처음 보는 사람의 시체가 누워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때부터 돈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갖 곳을 수소문하는 택호와 영준. 알고 보니 택호는 단골술집 마담인 혜란의 술수에 걸려들어 이용당한 것이었고 혜란 역시 영화 제작사의 사장인 황사장(박용식)의 사주를 받은 것이었는데. 영화의 초반은 상당히 재미있다. 십 년째 영화판을 전전하지만 늘 구박 덩어리에 언제 감독 입봉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가진 돈도 없어 깡소주를 까거나 단골 술집에 가 남은 술을 요구하는 택호와 영준(이 부분은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이 가짜 영화 촬영을 하며 현금수송차량을 탈취하는 부분까지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을 만큼 썩 괜찮은 연출을 보여준다. 늘어지지 않는 진행과 필요한 부분을 적절히 보여주며 흥겹게 도둑질의 과정을 그린다. (개그맨 백재현 이 앳된 모습으로 등장해 반가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돈의 행방을 찾는 모험은 허탈할 만큼 아쉽다. 훔친 돈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관객으로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들의 탐정 같은 활약일 테다. 그러나 택호와 영준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아 어떡하지.” “어쩐담.” 을 연발하며 불쌍한 얼굴을 하고 수소문 한다. 원래도 불쌍한 얼굴인데 더 불쌍하게 영준은 여장을 한다.(말투도 여자 말투 흉내를 낸다.) 수배 전단이 뿌려져 정체를 감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둑질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 도둑들 >이 그렇고 < 리얼 맥코이 >가 그렇듯이 멋있어야 한다. 그것은 장르의 법칙이다. 그러나 택호와 영준은 지질하기만 하다. 그렇게 돈을 찾아 헤매던 중간 중간 영준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자수하자며 잉잉 울고, 택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럴 수는 없다고 달래고. 이 안쓰러운 기분. 택호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영준 그러니까, 시작은 현금 탈취인데, 진행될수록 휴먼드라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은 ‘돈을 찾는다’가 아니라 ‘이 불쌍한 두 영혼이 결국 어떻게 될까’ 가 되어 버린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게 되면 돈의 행방은 궁금하지도 않다. 얘네가 이 곤경을 어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가 관건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80년대 한국 영화이니 잘 끝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되면... 거 참 예상 밖의 엔딩이 우리를 기다린다. 모든 범죄를 지휘한 황사장을 찾아낸 택호와 영준은 그를 잡기 위해 뛰어다닌다. 마찬가지로 최종 보스의 체통 따위는 내다버린 황사장도 뛴다. 마치 통과 제리처럼 건물 안에서 서로를 쫓고 쫓기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참 안됐다는 생각 이상 어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탄 황사장이 머리를 벗는다. 가발이었던 것이다!(고 박용식씨가 앞서 머리가 있는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어 아, 그때는 두발이 있으셨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충격은 꽤 크다. 물론 너무 뜬금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고서는 황사장은 포위된 경찰과 구경꾼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니 이 영화는 범인이 잡히지 않는 영화의 몇 안 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갖다 붙이자면 < 살인의 추억 >의 선배쯤이라고나 할까. 사라지는 황사장 뒤로 경찰에게 체포된 택호와 영준의 억울한 외침이 들리지만 영화는 그렇게 끝나고 만다. 생각해보면, 장르 영화라고 시작은 했지만 결국 뛰어도 날아도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를 표현한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택호와 영준은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혜란이 전달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어찌어찌 일은 해내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 안에서 놀아난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봉원 감독은 전작 < 내일은 뭐 할거니 >를 통해 담담한 일상 속에 현실 풍자를 녹여내 당시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검열 당국의 폭력 속에 많은 부분 삭제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 그의 경험이 < 랏슈 >를 조금 애매한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일이다. < 랏슈 >는 ‘RUSH’를 발음한 것이다. 옛날 신문에도 ‘러시아워’를 ‘랏슈아워’로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러시 필름’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영화판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설정된 제목일 테다. 장르 영화 제작이 원활하지 않았던 1989년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 꽤 모험이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는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어서 <랏슈>의 소재선택은 나름대로 과감한 면이 있다. 꽤 섭섭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매력적인 소재와 괜찮은 연출의 초반부를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개인 블로그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간단히 올렸더니, 이봉원 감독 본인이 찾아와 ‘6공 시절에 영화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라는 댓글을 남겨주셨다. 이해가 간다. 전작 < 내일은 뭐 할거니 >를 제작하면서도 검열 삭제를 통해 큰 상처를 입은 뒤였다. 당시 많은 영화들이 진부한 가치관을 보여주며 제자리걸음을 할 때, 나름대로의 야심으로 색다른 영화를 들고 나왔지만 흥행에도 실패 하고 말았다.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 갈 길 모르고 한숨 쉬며 방황하듯 돈의 행방을 찾는 택호와 영준처럼, 이봉원 감독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많은 제한들 속에서 어쨌든 영화 한 편 만들겠다는 의지만 남았을 것이다. 범인이 잡히지 않고 도심 속으로 사라지고, 피해자인 택호와 영준이 황사장이 저기 간다며 고래고래 악을 쓰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경찰의 모습은 이봉원 감독의 작은 반항은 아니었을지. <랏슈> 이후 이봉원 감독의 연출작은 확인되지 않는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송승환 최영준 감독: 이봉원 각본: 이봉원 개봉극장: 허리우드(서울) 관람인원: 3,424(서울)명
이강천 (李康天) 감독은 17년 남짓의 영화 생활을 통해 대표작인 < 피아골 >(1955)을 비롯하여 < 격퇴 >(1956), < 백치 아다다 >(1956), < 아름다운 악녀 >(1958), < 생명 >(1958), < 두고 온 산하 >(1962), < 대좌의 아들 >(1968) 등 모두 28편을 남겼다. 1954년 데뷔작인 < 아리랑 >에서 마지막 작품이 된 < 타인이 된 당신 >(1971)까지 멜로드라마 12편,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을 소재로 한 반공영화 9편, 시대극 7편이 그것이다. 이를 작품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멜로드라마 < 백치 아다다 >(1956), < 사랑 >(1957), < 아름다운 악녀 >(1958), < 종말 없 는 비극 >(1958), < 생명 >(1958), < 젊은 아내 >(1959), < 청춘 화원 >(1960), < 사랑의 역사 >(1960), < 나그네 >(1961), < 무정 >(1962), < 낙동강 7백리 >(1963), < 타인이 된 당신 >(1971) 2. 반공 영화 < 아리랑 >(1954), < 피아골 >(1955), < 격퇴 >(1956), < 두고 온 산하 >(1962), < 나는 속았다 >(1964), < 남북 천리 >(1966), < 죽은 자와 산 자 >(1966), < 대좌의 아들 >(1968), < 어떤 눈망울 >(1968) 3. 시 대 극 < 팔검객 >(1963), < 수양과 백두건 >(1964), < 미녀와 도적 >(1965), < 살아야 한다 >(1965), < 계룡산 >(1966), < 유성의 검 >(1968), < 공산성(公山城)의 혈 투 >(1968) < 아리랑 >( 허장강 · 김재선 주연)은 무성영화 시대에 제작된 나운규 의 < 아리랑 >(1926)을 원작으로 했으나, 시대 배경을 일제 지배 아래가 아닌 6·25 전쟁 이후 공산치하로 바꿔, 영진의 집 외양간에 숨어든 두 명의 미군을 간호하고 여동생이 희생되는 가운데 쫓아오는 북한군으로부터 탈출시키는 내용을 16밀리 화면에 담았다. 6·25 때 전선에서 낙오하여 공산군에게 고초를 겪었던 딘 소장의 실제 이야기를 주제로 부각시킨 것이다. < 피아골 >( 김진규 · 노경희 주연)은 지리산에 숨어 활약하는 빨치산들이 경찰지서를 습격했다가 빠져 나올 때 부상을 입고 소총을 버린 한 대원이 처단되면서 벌어지는 조직 내부의 반목과 모순된 이념에의 회의, 여대원을 둘러싼 애욕의 갈등 속에 자유를 선택하는 청년(철수)의 모습을 그린 문제작이다. < 격퇴 >( 황남 · 최봉 주연)는 김만술이라는 육군 소령의 6·25 참전을 바탕으로 승공 의욕을 고취시킨 실화물이고, < 나는 속았다 >( 신영균 · 문정숙 주연)는 남로당 재건을 시도하는 거물급 공산주의자를 돕다가 배신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여간첩 김수임의 일대기를 담은 것이며, < 두고 온 산하 >( 김진규 · 모니카 유 주연)는 해방 후 흥남에 주둔하는 소련군 고문관의 딸과 한국 청년간의 국경을 초월한 로맨스를 바탕으로 소련군의 만행과 자유를 갈구하는 북한 동포들의 실상을 묘사한 것이다. < 남북 천리 >( 김지미 · 김진규 주연)는 인민군에게 납북돼 강제 수용소에 갇힌 남한의 애국지사들을 구출하는 한국군 정보 장교의 활약상을 부각한 것이며, < 죽은 자와 산 자 >( 신영균 · 김혜정 주연)는 1·4 후퇴 때 서울에 남아 국군 정보 장교를 도와 첩보 활동을 하다가 죽은 젊은 미망인의 이야기를, < 대좌의 아들 >( 신성일 · 박노식 주연)은 모스크바 유학까지 한 인민군 대좌의 아들이 공산주의에 회의한 나머지 탈출을 꾀하다가 자기 아버지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극을, 그리고 < 어떤 눈망울 >( 남궁원 · 박노식 주연)은 북한군의 후방에 잠입하여 싸우다 부상을 입고 은신중인 한 중위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위기 속에서 북진해온 국군과 극적으로 재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강천 감독이 주력한 분단 전쟁의 영화들은 한결같이 게릴라, 첩보, 전투, 전향 등 국군이나 민간인들의 반공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빨치산 조직 내부에 앵글을 맞춰 분란을 겪는 공산주의자들의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을 그린 < 피아골 >은 단연 이채롭다. 이 영화가 해방 후 만들어진 < 오발탄 >(1961· 유현목 감독), < 하녀 >(1960· 김기영 감독),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신상옥 감독) 등과 함께 수작으로 꼽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피아골>은 인간과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 7인의 여포로 >(1965· 이만희 감독), < 남부군 >(1990· 정지영 감독),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 반찬욱 감독)의 출발점이자 화두라 할 수 있다. 계용묵의 대표작인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 백치 아다다 >( 나애심 · 한림 주연)는 남편의 난봉과 도박으로 인해 겪는 순진한 벙어리 아내의 설움을, 이광수 원작인 < 사랑 >( 김진규 · 김현주 주연)과 < 무정 >( 최은희 · 김승호 주연)은 각기 아내를 잃은 뒤에도 한눈 팔지 않은 병원장을 짝사랑하다 떠나는 간호사의 행로와 반일 혁명가의 딸 박영채의 고귀한 애정을 그렸으며, < 아름다운 악녀 >( 조항 · 최지희 주연)는 모델이 된 창녀가 화가의 사랑을 받게 되자 신분의 한계를 느끼고 물러서는 내용을 담았다. < 종말 없는 비극 >( 박암 · 한미나 주연)은 1·4 후퇴 때 헤어진 남편을 만났으나 병석에 누운 애의 치료를 위해 여급 생활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버림받는 아내의 슬픔을, < 생명 >( 최성진 · 문정숙 주연)은 고아로 자라나 사랑하게 된 두 남녀가 헤어지지만 미국 유학길에서 재회, 다시 결합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 청춘 화원 >( 김진규 · 도금봉 주연)은 사기로 재산을 날린 아버지의 건축 공사를 아들이 맡아 일으켜 세운 뒤 도움준 애인과 결혼하는 해피엔드를, 그리고 <사랑의 역사>(최은희·김진규 주연)는 죽은 남편의 제자인 대학생을 몸을 팔아 뒷바라지 하는 미망인의 헌신을 소재로 삼았다. < 낙동강 7백리 >( 최무룡 · 김지미 주연)는 낙동강 상류에서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 한 노인의 외동딸이 서울 청년의 유혹에 빠져 임신, 상경한 후에 겪는 비애를 부각시켰고, < 타인이 된 당신 >( 신성일 · 문희 주연)은 시어머니와 맞지 않아 가출한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돼 남자 앞에 나타나지만 재결합을 외면하고 제 길을 걸어가는 자립의 의지를 그렸다. 또한 < 팔검객 >( 김진규 · 이예춘 주연)은 광해군의 학정에 반기를 든 여덟 명의 무사를, < 수양과 백두건 >(김진규· 박노식 주연)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폐비 소생의 세 옹주를 따라 나섰다가 흑두건 일당의 모함으로 살인 누명을 쓰게 된 세조를, < 계룡산 >( 허장강 · 김혜정 주연)은 이조 말엽 계룡산 일대를 중심으로 서식한 사교 교주를, < 유성의 검 >(박노식·김혜정 주연)은 상납금을 호송하다 모사꾼 일당에게 급습당해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됨으로써 복수에 나서는 사나이를, 그리고 < 공산성의 결투 >(박노식·문희 주연)는 정적의 흉계로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전하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오는 백제 개로왕의 손자 마모를 각기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전을 겨루게 했다. - 데뷔 전후 이강천 은 1921년 12월 10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종사하다가 이만흥 감독의 < 끊어진 항로 >(1948)의 미술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가 전주문화극장의 경영주인 친구 김영창 (金永菖)의 제안으로 < 아리랑 >을 연출하게 된 것은 미술적인 감각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1952년 가을의 일이다. 먼저 남주인공인 영진 역에 이향 , 여주인공인 그의 여동생 영희 역에 주증녀 를 내정하고 교섭차 서울로 올라간 제작자와 촬영기사( 강영화 )가 그들 대신 허름한 차림의 낯선 사내와 여자를 데리고 전주역에 나타나면서 실망스러웠지만, 촬영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길다란 얼굴에 주먹코, 붕 뜨는 특유의 음성을 가진 이 사나이는 KAS라는 군예대 소속으로 무대 생활을 하던 허장강 이었고, 여자는 극협(劇協) 회원인 김재선(金在仙)이었다. 이들을 남녀 주인공으로 기용한 이강천은 그때까지만 해도 허장강이 영화계의 보물로 크게 한몫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날씨 속에 소방차를 동원하여 비를 뿌리는 강행에도 허장강은 몸을 움츠릴 뿐 군말이 없었다. 이 작품은 16밀리이기 때문에 촬영 당일에 필름을 현상하여 프린트기 대신 영사기에 구워서 랏슈를 볼 수 있었다. < 아리랑 >의 흥행(1954년 6월 11일·시공관)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의 시책으로 이루어진 국산 영화에 대한 면세 조치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리랑>이 촉진시킨 < 피아골 >은 1954년 해맑은 봄날 예향 전주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강천 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북 경찰국 공보계에 근무하는 김종환(金宗換)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자 후방에서 선무공작 업무를 수행하던 중 귀순자들이 쓴 좋은 영화 소재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지리산에는 빨치산이 출몰하고 있었다. 그는 이 소재를 놓고 며칠 동안 생각했다. 내용은 마음에 드는데 스폰서가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좋은 동조자를 얻었다. 백 명의 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리산 기슭 구례가 고향인 이 사람은 근방의 지리에도 밝았다. 그 동조자인 김병근이 제작에 직접 나섰음은 물론이다. 피아골은 지리산에 깊숙이 자리잡은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학란이 있었던 조선조 말기에는 그 피아골에서 무수한 학살극이 빚어졌고, 6·25 전쟁 때는 은신의 거점으로 삼은 북한 잔류군과 빨치산에 의해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강천 은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해변 마을 변산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평야를 덮어버릴 듯한 노란 채소꽃들이 복숭아꽃과 어울려 초가지붕을 둘러싼 부감의 정경은 차라리 한폭의 동양화였다. 그가 여름을 피해 굳이 가을을 촬영의 시기로 택한 것은 산의 선과 암석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는 암갈색의 구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갓 데뷔한 김진규 를 빼고는 노경희 , 이예춘 , 허장강 등 경험있는 배역으로 짜여져 연기의 대결을 벌이도록 유도하였다. 출연자에게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인공적인 분장을 피하고 머리와 수염을 기르게 하였다. 잠자리에 들 때도 극중 의상을 입고 자도록 지시함으로써 연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름이 모자란다는 점이었다. 속이 탄 것은 감독과 촬영 기사였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15커트를 세 커트로 줄여서 찍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아차린 김진규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 피아골 >은 이와같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화제와 논란을 파생시켰다. 전북 경찰국과 내무부치안국이 후원한 작품이었지만 빨치산 묘사에 사실과 다른 점이 내포되었다는 이유로 후원을 번의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었다. 함에도 불구하고 <피아골>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이기 쉬운 분단영화에 설득력 있는 사실성을 부여하여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1955년 영화인 이금룡 (李錦龍)을 추모하여 처음 시행한 제 1회 금룡 영화상 작품, 감독, 연기( 노경희 ), 녹음상( 이경순 ) 등 주요 부문을 휩쓸게 됨으로써 입증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를 정점으로 그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강천 은 1993년 9월 2일 일흔 세 살의 나이로 허장강 ( 아리랑 ), 김진규 ( 피아골 ), 최지희 ( 아름다운 악녀 ), 전영선 ( 종말 없는 비극 ·아역)등 당대에 이름을 날린 배우들을 영화계에 배출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김종원 (영화평론가·청주대 겸임 교수) / 2003년 <프로필> 1921년 12월10일 충남 서천 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 졸업 1954년 < 아리랑 >으로 데뷔 1993. 9. 1 타계 <주요 경력> 한국영화인협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 간사 심의위원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 한국공연윤리위원회 영화검열심의위원 <수상 경력> 국방부장관 표창, 문교부 문예상,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표창 문화공보장관 공로상, 영화진흥공사장 공로상,대한민국 문화훈장 <작품 연보> 1954 아리랑 1955 피아골 1956 격퇴 / 백치아다다 1957 사랑 1958 아름다운 악녀 / 종말 없는 비극 / 생명 1959 젊은 아내 1960 청춘화원 / 사랑의 역사 1961 나그네 / 이 순간을 위하여 1962 두고 온 산하 / 무정 1963 팔검객 / 낙동강 칠백리 1964 수양과 백두산 / 나는 속았다 / 미녀와 도적 1965 살아야 한다(일명 배꼽대감) 1966 남북천리 / 계룡산 / 죽은자와 산자 1968 대좌의 아들 / 유성의 검 / 어떤 눈망울 / 공산성의 혈투 1971 타인이 된 당신